2·13합의가 어렵사리 이행단계에 진입했지만, 여기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우선 북한은 폐쇄라 는 말 대신에 가동중지라는 표현만 사용하고 있다. 7월 6일자 외무 성대변인의 발언도 “핵시설 가동중지 과정에 실제적으로 착수”했 다는 것이다. 폐쇄가 재가동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반면에 가동중지는 재가동이 가능하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표현이다.
5MWe 원자로가 노후화될 대로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재가동이 어
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폐쇄라는 용어가 북한 당국의 핵폐기 의사를 보다 진솔하게 보여주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제네바 기본합의 때와 같이 IAEA 사찰관이 영변 핵단지에 상주하지도 못하고 있다. 금년 6월 IAEA 사찰부국장을 단장으로 한 IAEA 전문가팀이 영변을 방문해서 북한과 합의한 문서에도 사 찰관이 상주할 수 있다는 문구는 없다. 이는 현 단계에서 영변 핵단 지 내에서 사람과 기계에 의한 모든 핵활동을 점검하는 데는 한계 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군축회담에서 흔하게 사용되지 않는 “불능화”(Disablement)라는 표현이 등장함으로써 많은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 로, “동결”(Freeze)은 시설을 그대로 놔 둔 채 가동만 하지 않는 상
태를 말하고, “폐기”(Dismantlement)와 “해체”(Disassembly)는 시 설을 파괴하거나 해체해서 재가동이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 이다. 이와 비교할 때, 불능화는 동결과 폐기·해체의 중간단계로서 완전한 폐기는 아니지만, 재가동이 불가능한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파악된다. 불능화가 생소한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기술적으로 구체적인 정의를 내렸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불능화의 범 위와 심도는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어왔다. 당초 한·미 양국은 거의 불가역적인 수준의 불능화를 염두에 두었지만, 북한의 반발 때문에 크게 양보한 것으로 보인다. 영변의 핵심 시설 세 곳에서 핵심 장비를 분리, 별도의 장소에 보관함으로써 북한이 핵활동을 재개하는 데 1년 정도 소요되는 수준의 불능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능화의 수준이 미흡하다는 비판에 대해서, 한·미 당국은 2008 년도부터 핵폐기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 단계로 들어 서게 되면 불능화의 수준 정도는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 다. 그러나 과연 2008년부터 핵폐기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지는 불 확실하다. 핵폐기는 2·13합의의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별도의 협 상이 필요하며, 핵폐기 협상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복잡하고 어려운 협상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와 관련, 2·13합의 협상과정에서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을 중 단하는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회담결과를 보도한 2월 13일 자 조선신보도 이번에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과 미국의 무력증 강계획을 중단하도록 요구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북한은 핵폐기 협 상과 연계해서, 한·미 군사훈련 중지, 주한미군 철수, 핵우산 보장 조약 체결 금지 등 ‘북한식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요구를 강하게 제기할 것이다. 즉 6자회담 본회담과 비핵화 실무그룹을 북·미 핵
Ⅰ
Ⅱ
Ⅲ
Ⅳ
Ⅴ
Ⅵ
Ⅶ
Ⅷ
Ⅸ
Ⅹ
군축 회담의 장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시설 가동중단과 불능화의 대가로 2·13합의의 범위를 벗어나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우선 북한 외무 성대변인은 7월 6일 핵시설 가동중단 조치를 취한 후에도 약속된 정치·경제적 보상이 뒤따르지 않으면 핵활동의 재개는 합법성을 띠게 된다고 경고했다. 7월 15일자 발언에서는 2·13합의의 완전한 이행은 미국과 일본이 대북 적대정책을 해소하는 조치를 어떻게 취 하는가 하는 데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보고해야 하는 “모든 핵프로그램”에 포함되는 것들이 무 엇인지를 놓고서 상당한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어쩌면 핵시설 폐쇄·봉인보다 중요한 2·13합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플루토늄 프로그램,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핵무기 및 핵실험 시설 네 가지가 모두 포함되어야 하며, 영변 핵시설에서 “군사용”이라는 이유로 제네바 합의당시 사찰대 상에서 제외되었던 두 개의 시설도 이번에는 포함되어야 한다. 그 러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6자 수석대표회담을 끝낸 김계관 외 무성 부상은 7월 21일 핵무기의 신고 여부와 관련해서, “지금 우리 가 논의하는 것은 현존 핵계획, 다시 말해 영변 핵시설을 가동 중단 하고 무력화하고 궁극적으로 해체하는 것이며 그러자면 경수로가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계관의 발언은 불능화·신고의 범위 를 영변 핵시설에 국한하면서 HEU와 핵무기는 신고대상이 아니라 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과 미국이 기대하는 모든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한 한국이나 미국 모두 국제 법상 경수로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김계관의 주장은
사실상 억지와 다를 바 없다. 핵무기확산금지조약, 즉 NPT 규정상, 핵보유국에 대한 원자력 기술 지원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북 한은 NPT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보유국이 된 인도가 핵무 기를 보유한 채 미국과 원자력협력협정을 체결하고 기술지원을 받 는 것을 보면서 인도와 같은 대우를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지난 3월 5일 뉴욕에서 있은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회담에서 북한을 인도처럼 대우해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10·3합의에서 2007년 말까지 북한의 불능화와 핵프로그램 신고를 하고, 나머지 5개국이 백만 톤의 중유를 제공하고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하는 데 합의하였다. 10·3합의를 전후해, 북한은 불능화와 핵프로그램신고가 완료된 후,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절 차에 착수하는 것을 용인하고, 중유제공도 2008년 5월까지 완료되 는 것을 이해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북한의 성실한 불능화 이행 여부, 핵프로그램 신고시 UEP 문제 등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장애가 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북한의 대시리아 핵기술 이전 문제와 테러지원국 해제에 대한 일본의 반대 입장이 변수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