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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9:14-18하나님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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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론 48 1 로마서 9:14-18 하나님의 선택

❖ 로마서 마흔여덟 번째 강론

로마서 9:14-18 하나님의 선택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원에 대하여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교회사적으로 개 혁주의 내에서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이른바 ‘알미니안주의’와 ‘칼뱅주의’이다. ‘알미니안주의’란 타락 한 인간은 완전한 죽음의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하실 때에 얼마든 지 반응을 할 수 있고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주실 때 그것을 붙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구원이 이루어지려면 하나님께서 구원의 뜻이 있고 인간이 믿겠다고 해야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칼뱅주의’란 에덴에서 추방된 인간은 완전히 죽음의 상태에 있다고 보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지 않으면 구원의 여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믿는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줄 때 그것을 붙잡 을 능력조차도 없으므로 성령께서 오셔서 믿게 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알미니안주의는 예수님이 만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보지만, 칼뱅 주의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이 따로 있고 그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고 믿는 것 이다.

오늘날 교회들은 교단과 상관없이 이 두 양상으로 뚜렷이 드러난다. 전에는 어느 교단 교파에 속 하였는가로 어떻게 믿는가 하는 것이 달랐지만 지금은 그런 구분조차 없어졌다. 모두가 자기 믿고 싶 은 대로 믿고 자기가 신앙생활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칼뱅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내용은 알미니안주의인 경우도 많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면서도 인간의 행위와 노력을 강조한다. 물론 믿은 이후에 자기 신앙의 성숙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 구원을 받기 위한 것 인지 성숙을 위한 강조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헷갈리게 인간의 행위와 노력을 강조한다.

오늘날 교회들이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고 강조하면 신앙생활이 나태해 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기 손에 자신의 운명이 달려 있고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구원을 얻 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훨씬 도전적이고 매력적이라는 사실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노력과 행위를 강조해야만 교회 생활에 많은 열심을 내고 성취감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의 일방적인 예정이나 선택이란 그저 교리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성경을 오해하고 있어서 이런 현상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하 나님의 예정이나 선택을 ‘인간 구원’에 핵심이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고, 뿐만 아니라 그 예정이나 선 택을 ‘나 개인’을 향한 것으로 생각하고 성경을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 님의 예정이나 선택이란 단순히 우리 죄인을 향한 것이거나 나의 구원을 기준으로 말씀하는 것이 아 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시는 구원이란 마치 핀셋으로 많은 것들 속에서 하나하나씩 집어 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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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론 48 2 로마서 9:14-18 하나님의 선택

는 식이 아니라 있음의 존재를 통해 없음 가운데서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작업이다.

이 작업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만들어 내시는 것이다.

그것을 바울 사도는 구약 성경의 에서와 야곱이라는 인물을 들어서 설명하였다. 하나님께서 야곱 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라기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야곱 한 개인을 사랑하고 에서라고 하는 한 사람을 미워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야곱이라는 이스라엘 안에 이 땅에 보내실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한 언약이었고 하나님의 선택은 주님의 몸 된 교 회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의롭지 못하다는 문제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아브 라함의 씨에 대해서 말하면서 육신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를 대조하여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들어서 설명하였던 것을 이제 더 구체적으로 모세와 바로를 예로 들어서 제시한다.

14절에서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라는 물음으로 시작하여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강조하여 답변한다. “불의”라는 말은 ‘하나님의 의’(롬 3:5)나 ‘진리’(요 7:18, 롬 1:18, 2:8)와 대조해서 쓰이는 단어이다. 이런 점에서 이 말을 ‘불공평’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는 없다. 왜 냐하면 하나님의 의나 진리가 공평하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신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 홀로 의로우시고 진리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15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라고 구약의 말씀을 증거로 제시한다. “긍휼”(헬, 엘레에오)과 “불쌍히 여김”(헬, 오이크테이로)이란 말이 달리 쓰이고는 있지만 ‘은혜를 베풀다’라는 같은 의미로 이해해도 무방한 말 이다. 따라서 같은 의미의 말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말 씀을 보았을 때 우리가 가지는 생각은 어떤가? 우리가 스스로 불쌍한 상태가 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인용한 출애굽기의 말씀을 보자.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19-20)

그런데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푼다는 그 대상인 이스라엘 이 어떤 형편에 처해 있는지 상황을 알 필요성이 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건져내셔서 시내 산에 머물게 하시고 언약의 말씀들을 주신다. 그것 때문에 모세를 산 위로 부르셨다. 그런데 40일 동안 모 세가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 안에 있는 동안 기다리던 백성들은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자신 들을 애굽에서 구원한 하나님으로 규정하고 절기를 정해서 제사를 하였다(출 32:1-29). 그때 모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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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저주를 받더라도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시기를 기도하였다(출 32:31-32).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며(출 33:7-11) 모세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누구는 용서해 주고 누구는 왜 용서해 주지 않느냐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그런 입장이다. 다 죽어야 하는데 아니 이미 다 죽은 존재에게 긍휼을 베푸신 것이다. 그래 서 호세아 선지자도 이렇게 선포하였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 라 하리라 하시니라(호 2:23)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 죄인이다. 죄인이 아니고 중립 선상에 있는데 하나님이 누구는 잡아당기고 누구는 지옥으로 떠밀어 넣는 작업이 아니다. 다 지옥의 상태에 있는데 누구는 살려냈다 는 것이다. 그 누구가 바로 출애굽 당시에는 모세였고 그 모세가 자신이 저주를 받더라도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시기를 기도한 것을 통해 이 땅에 친히 저주를 받으실 언약의 인물을 지칭하고 있었다.

결국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어 은혜를 베푸셨던 이 일을 통해 이 땅에 보내실 언약의 성취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긍휼을 베푸실 것을 보여주고자 하셨다(참고/신 18:15).

그러면 이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16절에 보면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 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라고 말씀한다. 은혜가 베풀어지는 것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달음박질하는 자”

로 말미암아 되는 것도 아니라고 선언한다. 여기서 “달음박질하는 자”란 바울 시대 당시 달리기 경주에 서 승리하여 월계관을 차지하는 운동 경기를 빗대어서 하는 표현이다. 즉 달리기 경주를 하여 월계관 을 쟁취하듯이 그렇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구원의 원인자는 죄인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편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바로의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시는 의도를 밝힌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17절)라고 출애굽기 9:16 말씀을 인용하였다. “세웠으니”라는 말은 ‘존재하게 하셨다’

라는 의미이고 “능력”이란 ‘힘’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존재하게 하신 이유는 자신의 힘과 이름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이름”이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기 에 이름이 필요 없는 분이다. 그런데 이름을 나타내시겠다는 것은 이 땅에 이름을 가진 분으로 오시 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구원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셨다(마 1:21, 21:9). 그분이 바로 죄에서 구원 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결국 하나님께서 바로를 선택하셔서 존재하게 하신 것은 예수 그 리스도를 통해 베푸실 긍휼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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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론 48 4 로마서 9:14-18 하나님의 선택

라”(18절)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 자에게는 베풀지만, 은혜를 베풀지 않을 자에게는 베푸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씀이 우리가 은혜를 베풀만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베푸신다는 의 미가 아니라 금송아지를 만든 출애굽 사건을 통해 보여주듯이 우리는 은혜를 입을 자가 아님에도 불 구하고 하나님의 은혜, 긍휼이 베풀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의미이다.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라는 말씀은 출애굽기 4:21, 7:3,13, 9:12, 10:27, 11:10, 14:4,8,17에 나오는 데 문자적으로는 ‘굳게 하다’, ‘굳어지다’라는 말인데 하나님의 뜻에 강하게 저항한다는 의미이다. 인 간은 죄의 권세에 매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하나님을 강하게 대적하는 존재인데 그 상태 그 대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서 인간의 죄악 됨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이름을 드러내신 것이었다. 그러니까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이나 애굽을 심판하신 것은 그것 자체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능력과 이름을 드러내 시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결국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지는 은혜를 보여주시기 위 한 하나님의 선택이었다는 의미이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 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 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 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모세와 이스라엘은 구원받을 만한 일을 했고, 바로와 애굽 백성들은 구원받지 못할 만큼 하나님께 괘씸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행하신 것이다. 그래서 11절에서도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 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부르신다고 생각하는데 로마서 4:17에 보면 이렇게 말 씀한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 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이고 없는 것을 있게 하는 부르심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우리를 부르셔서 영생의 자리에 두시는 것이 아니라 없음의 상태에서 부르심이다. 다시 말해서 죄의 권세에 매여 있는 죄인을 죽이신 거기서 불러내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이다. 그러므 로 하나님의 선택이란 인간들이 하는 것처럼 두 가지 중의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없음의 상태에 서 새롭게 만들어 내셔서 십자가로 베푸시는 긍휼이고 은혜이다(20201011_강론/김영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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