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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인본주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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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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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인본주의 2

에스겔서 36장 16절부터 21절 “16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7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 고토에 거할 때에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소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18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의 위에 쏟아 19 그 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열방에 헤쳤더니 20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 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통하여 차례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신앙의 본질에 대해 서 살펴보았고, 거짓 신앙체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에 율법주의는 앞으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거짓 신앙체계는 율법주의, 기복신앙, 인본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신앙에 대한 왜곡된 이해라는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인본주의의 한 부분에서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인본주의의 특징은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첫째는 자기 자원으로 사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목적 을 위해 사는 것이고 셋째는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자기 자원으로 살 고, 자기 목적을 위해 신앙생활하고, 자기 방식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은 전혀 신앙생활이 아니다.

전혀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니다. 이것은 거짓된 신앙생활이다, 그릇된 신앙생활이다. 라는 것을 살 펴보았습니다. 특별히 지난주에는 시간적인 이유 때문에 우리 신앙은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것인 데 자기 자원으로 사는 것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율법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 목적을 위해 사는 것이고, 자기 방법대로 사는 것입니 다. 사실 자기 목적을 위해 사는 것, 자기 방법대로 사는 것은 살펴보려면 살펴볼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편으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제가 왜 본문을 에스겔서를 읽었느냐면 자기방식대로 신앙생활 하는 거짓된 신앙체계와 하나님의 기준에 철저히 서는 것이 교회의 회복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인가 하는 부분을 에스겔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살펴보기를 원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오늘 본문을 에스겔서를 읽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인본주의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자기 목적을 위해 사는 겁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자기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기복 신앙과 연결이 돼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기복신 앙에 대해서 살펴보았듯이 예레미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만큼 하나님께 헌신적이었느냐면 우리나라에서 필리핀 가는 거리만큼 그 먼 거리에까지 가서 특별한 향료를 사다가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니 본인들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겠습니까? 필리핀은 비행기로 4시 간을 가는데 그 당시에는 비행기도, 차도 없는데 특별히 그 길은 사막 길인데 시바의 에디오피아까 지 가서 그 향료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전혀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죠. 본인들은 당연히 하나님이 기쁘 게 받으신다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그 헌신을 행하죠.

그럼 왜 안 받으신다고 말씀하셨는가? 그들이 그러한 헌신을 하는 그 중심에 탐심이 가득하다는 것 입니다. 결국 자기들이 신앙생활 하는 것이 자기들이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고,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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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는 것이건, 자식 잘 되는 것이 목적이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채워주시도록 하나님께 제사와 예 배와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탐심이 가득하다고 얘기하시면서 전혀 하나님께 올바 른 예배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죠.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시죠. 그리고 자기를 부인 하고 주님을 따르라고 주님이 우리의 목표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자기 목적으로 사는 것 또한 자기 방법대로 사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헨리 블레가비 목사님도 하나님을 대치하는 우상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 부분을 언급하고 있거든요.

하나님의 임재를 대치하는 것들이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여러 가지 방법론, 프로그램, 그리고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영적 성장과 교회 성장을 이루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의뢰하기 보다는 그것들에 전적으로 의뢰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야 교회도 성장하고, 하나님이 오셔야 우리 가운데 생명이 넘칩니다. 하 나님이 오셔서 운행하시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하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것이 알파 코스든지, 셀이든지 그런데 핵심은 하나님이 운행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을 고해야 합니다. 하나님 의 역사를 담는 그릇으로서 그런 프로그램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구하기보다 이런 프로 그램들을 통해서 수귀의 목적을 거두려고 하는 것은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치하는 것이 라는 것입니다.

“고조된 감정, 화려한 의식, 그리고 종교 행사가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에서 하나 님과의 친밀한 임재를 이런 것들로 대치할 수 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여러분,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 데 이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그러데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대신에 화려 한 의식, 아름다운 찬양, 좋은 성가대의 주악,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 등 이런 의식들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대신하는 것은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치하는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목적을 대치하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례식과 주의 만찬식을 통해 공개적으로 간증을 나누며, 주님을 기억하고, 자기를 성 찰하며, 주님과의 교제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전통 이나 종교의식 차원으로 하락시킨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의 대부분을 이기적인 즐 거움을 누리는데 허비하고,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공의와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 등 하나 님의 관심사 등에는 무심하다.”이것이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 와서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교회 출석률 향상, 목표 달성 율을 전도 심방에 심혈을 기울인다.”잃은 영혼을 전도하기보다 예수 믿는 사람 자기 교회 빼앗아 오기 힘쓰는 것은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대치하는 것?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여 산다.

하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자기와 자기의 입지를 먼저 챙긴다.

하나님은 자기를 낮추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스스로를 높인다.

하나님은 자기 목숨을 잃으라고 즉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의 가진 것을 나누어주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구원코자 우리가 가진 것을 움켜 쥐려고 애쓴다. 다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님께서 일군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교묘히 조종 하여 봉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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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길을 대치하는 것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없이 많이 살펴 볼 수가 있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이러한 부분들을 제가 같이 살펴보기 원합니다.

그러니까 거짓 신앙체계는 자기 방법대로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더라도 자기 식대로, 그런데 참다운 신앙은 하나님의 다림줄, 철저하게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 라, 하나님의 다림줄에 대한 부분은 앞으로 자세하게 살펴 볼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교회의 회복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다림줄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부분은 살펴보되 에스겔서에 나오는 하 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이 부분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출애굽기 34장 14절에 보면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나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 중에 하나가 질투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이 레, 여호와 샬롬이 하나님의 이름인 것처럼 질투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젤러스’라는 말을 ‘캐피러’ 그러니까 대문자 J 로 썼어요. 이름이 질투입니다. 그 다음에 속성 중에 하나가 질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

그러면 그 질투는 인간적인 질투를 가리키는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죄의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인간적인 질투와 시기, 간음이나 우상숭배 못지 않게 하 나님 앞에서 엄청난 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죄인, 인간적인 질투를 가지고 계신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질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에게 소중한 것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가리킵니다. 사실 하나 님의 이 질투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우리가 하나 님의 질투를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질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질투라는 단어를 영어 성경에 보면 많은 경우에 ‘지르’ 열심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 나라 말에도 열심이라고 번역 되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왜 이 하나님의 질투는 바로 그러한 것을 가리키기 때 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러 가지 것에 대해서 질투하시는데,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서 질투하시고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질투하시고요, 하나님의 교회, 예수님, 성령님, 하나님의 말씀 등,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질투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시고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시고 하나님의 것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중한 일한 부분들을 보호하십니다. 그 중에 하 나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향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하나님은 역 사하십니다.

그런데 에스겔서를 쭉 보다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부 분을 이렇게 알 수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에스겔서 전체의 부분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에스겔서는 한편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하나님의 질투라 이름해도 그렇게 제목을 붙여 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부분을 볼 수 있 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는 그래서 그것을 2가지로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제가 살펴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살펴보는 이유는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회복시키시는가 저와 여러분이 볼 수 있기 바라고요, 그것을 봄 으로 하나님께서 지금 포도나무 교회 가운데, 저와 여러분 가운데 행하고 계신 일이 무엇인가? 이 부분을 볼 수 있기 바라고요,

더 나아가서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행하심에 우리가 우리의 힘을 다해 동참하고 참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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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것인가 이 부분을 보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다림줄이 중요한가? 라는 부분을 볼 수 있기 위해서 제가 오늘 이 말씀을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저는 두 부분을 크게 살펴보기를 원하는데,

첫째, 하나님의 심판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와 둘째는 하나님의 회복에 나 타난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에 대해서 살펴보기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 심판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그 아래 세 가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신 목적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목적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함입 니다. 잘 들으십시오. 우리가 워낙 오늘날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별로 관 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예수 믿으면 내가 원하는 게 잘 될까, 어떻게 하면 내 목적을 성취할까, 어떻게 하면 내가 바라는 게 이루어질까? 여기에만 온갖 관심이 있습니다. 거짓신앙체 계, 기복신앙, 자기 목적,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 얘기 해봐야 감동도 없습니다. 그 만큼 타락했습 니다.

그런데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시는 목적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이 그 들을 통해 높임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성경 여러 곳에서 이러한 부분을 볼 수 있습니 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우리가 잘아는 내용이죠.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구약의 이스라 엘 백성들을 향하여 지칭했던 그 모든 복들을 신약의 교회에게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는(그 이유 는 그 목적은) 너희를 어두운 가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 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에베소서 1장도 보십시오. 4절-6절 보겠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 하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아멘

11절-14절,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 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러한 구절들을 보면 또렷하게 알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높임을 받으시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질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하실 것이라고, 그래서 그들을 심판하 실 것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때 마다 나온 구 절이 뭐냐 하면? 그 결과 저들이 “내가 여호와 인 줄 알리라. 내가 여호와 인 줄 알리라. 내가 여호와 인 줄 알리라. 내가 여호와 인 줄 알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목적으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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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셨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서 20장에 보아도, 이 출애굽 사건에 대해서 실제로 그것을 언급하고 있 습니다. 거기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우상숭배 가운데 있음으로 하나님이 저 들을 마땅히 심판하셔야 했다.

근데 하나님이 저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저들을 구원하셨는데, 그리고 그 강력한 팔을 펴사 하나 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셨는데, 그 이유가 뭐냐?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 때 문이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20:8~10 ‘8 그들이 내게 패역하여 내 말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 눈을 드는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여기 보면 ‘눈을 드는 바’ 이 말이 영어성경에 이렇게 되어 있어요 ‘they did not get rid of the vile images they had set their eyes on’(NIV - 여주봉 목사님이 봉독하는 영어성경 본문을 찾지 못했습니다) ‘자기의 눈을 두는 것’ 그게 우상이라는 겁니다. ‘자기의 마 음을 두는 것’ 그게 우상이라는 겁니다. 우상은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었노라 9 그러나 내가 그들의 거하는 이방인의 목전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었나니’ 여기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랬죠! 영어성경에 보면 (도대체 어떤 버전의 영어성경을 보는지 알 수 없습니다) 내 자신을 그들에게 계시했다. 이게 뭘 말하는 지 아십 니까? 하나님의 그 놀라운 능력, 하나님의 그 놀라운 권능, 하나님의 그 놀라운 역사가 하나님 자 신을 계시하신 한 표현입니다. 성경에 보시면. 그렇게 나타내셨다. 그럼 왜 그렇게 하나님 나타내 셨는가?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목전에서 더럽히지 않으려하여 행하였음이로라’ 여기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하 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신 목적 중의 중요한 한 가지가 뭐냐?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 이 높임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도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라고 기도하라’ 가장 먼저 기도하라고 하신 내용 중에 하나가 그 것이었습니다.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2) 하나님의 백성이 타락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열방 중에서 멸시를 받고 조롱을 받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타락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열방 중에서 멸시와 조롱을 당합니다.

오늘 에스겔 36장 여기 보십시오. 아까 읽은 본문 말씀입니다. ‘인자야’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17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 고토에 거할 때에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소위가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18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 노를 그들의 위에 쏟아 19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열방에 헤쳤더니 20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 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타락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멸시를 받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되 믿는 우리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 밖에 못 봅니다.

무슨 말이냐? 세상 사람들은 성경 안 봅니다. 저들은 성경 믿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볼 수 있는 하 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뿐입니다.

근데 신앙이 타락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걷히고, 하나님의 실재가 걷힙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걷힙 니다. 온갖 죄의 억압과 세상의 억압과 세상적인 가치관과 세상의 방법, 세상의 자기 목적만 있을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는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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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절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이름 때문에, 그 이유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하나 님을 조롱하고 멸시하고,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은 땅에 떨어집니다.

여러분 이 점만 보더라도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타락해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조롱과 멸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저 때문에, 여러분 때문에!

우리가 교회를 저기 샀다가도 못 들어갔죠. 그래서 세주고 말았지만, 그들은 교회를 혐오시설 가까 이 취급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일에 관심도 없습니다.

여러분 요즘 텔레비전 보십시오. 무당 얘기 많이 나오고, 전생에 대한 얘기 많이 나오고, 사술에 대한 얘기 많이 나옵니다. 누가 조금 용하다, PD들이 난리입니다. 거기서 하나님 얘기 해보십시오.

코웃음 칠겁니다. 비웃을 겁니다. 조롱할 겁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교회들은 자기들 돈이나 뜯어가는 거지인줄 압니다. 우리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 름이 땅에 떨어져 멸시와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게 저때문이고, 여러분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기 위함이었는데, 근데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관심조차 없습니다.

3)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십니다.

근데 심판을 하시는 이유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입니다. 제가 에스겔서를 쭉 읽으면서요 이런 표현이 아주 자주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에스겔 6장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하 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구절입니다.

11절입니다. ‘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할찌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 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필경 칼과 기근과 온역에 망하되 12 먼데 있는 자는 온역에 죽고 가까운데 있 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는 기근에 죽으리라 이같이 내 진노를 그들에게 이룬즉 13 그 살륙 당한 시체가 그 우상 사이에, 제단 사방에, 각 높은 고개에, 모든 산꼭대기에, 모든 푸른나무 아래에, 무성한 상수리나무 아래 곧 그 우상에게 분향하던 곳에 있으리니’ 그렇게 되리니 어떻게 되요? ‘너희가 나 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이러한 부분이 여러 번 나옵니다.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그 아랫 구절도 보십시오. ‘14 내가 내 손을 그들의 위에 펴서 그 거하는 온 땅 곧 광야에서부터 디블라 까지 처량하고 황무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11:10~12도 마찬가지입니다. ‘10 너희가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변경에서 너희를 국문하리 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11 이 성읍은 너희 가마가 되지 아니하고 너희는 그 가운데 고기가 되지 아니할찌라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변경에서 국문하리니 12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여기 보십시오.

하나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시되 심판하시는 목적도 무엇인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 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같이 가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7절 이하 18절을 보아도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고 그랬고, 에스겔서 9장 3절에서 6절을 보아도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전에서 시작된다고 그랬습니다. 이방인의 심판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없이 에스겔서에 보면 그 중에 한 예사 에스겔서 28장, 시돈에 대 한 심판의 예인데 거기에 서도 왜 심판하시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28장 20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애 인자야 너는 낯을 시돈으로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라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시돈아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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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운데서 내 영광이 나타나리라 하셨다 하라”보십시오 심판하시는 목적을···. “내가 그 가운데서 국문을 행하여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지라” 그 다음 바로 다음절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23b) 바로 다음절 아래에 “무리가 그들이 나를 주 여 호와인줄 알리라”(24b)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도 왜 심판하시는가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심판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하나님의 심판에 나 타난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두 번째 큰 두 번째입니다. 회복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 여기에서는 네 가 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아래 네 가지···.

1)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일을 하십니다.

에스겔서 36장 16절에서 2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난 고로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열방가운데에서 더렵혀졌다. 그러나 21절에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라고 말씀을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하나님의 질투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22절부터 보시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시키시되 하나님의 이름의 질투 때문에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여러분 뭐하게 할지라고요?

거룩하게 하신다고 그랬어요. 이걸 동그라미 해 놓으세요. 왜냐하면 이따가 이것의 의미를 알아야 되니까요.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누구로 인하여 “하 나님의 백성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23절) 여기보시면 하나님께서 이제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시키시되 하 나님 백성들 때문도 아니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도 아니요, 하나님의 백성들로 인해서 더럽 혀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일어나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에스겔서 11장 18절에서 20절에도 똑같습니다. 에스겔서 20장 40절에서 44절까지도 똑같습니다. 에스겔서 여러 곳에서 이것 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에스겔서 20장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40절에서 44절 “나 주 여호 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 를 섬기리니” 회복에 대해서 말하죠. 뭐에 대해 말하면서 심판에 대해 말씀하면서···.

하나님은 심판에 있어서도 사랑과 공의가 같이 가고요. 회복에 있어서도 사랑과 공의가 같이 갑니 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항상 회복에 대해서도 같이 말씀하십니다. “거 기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지라 거기서 너희 예물과 너희 천신하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을 요구하리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열국 중에서 나오게 하고 너희의 흩어진 열방 중에서 모아 낼 때 에 내가 너희를 향기로 받고 내가 또 너희로 말미암아” 보세요.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열국의 목적에서 나타낼 것이며” 똑같죠. 그 부분을 동그라미 해 놓으시면 됩니다. “내가 너희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들일 때에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 고”(42절) 여기 보십시오. 계속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바로 그 다음 44절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여기에 보시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행 과 하나님 백성들의 더렵혀진 행위 때문에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렇게 행했을지라도 그들 로 인하여 더렵혀진 하나님의 이름을 인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하나님이 그 하나님 이름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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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역사하사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한 기도의 그 기초였습니다. 이사야가 하늘이 막히기를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이사야가 다시 하늘이 열리기를 위해서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이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할 때에도, 이사야는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였는가? 하나님이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임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렇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하나님이심 을 알리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기도의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 분 제가 아까 하나님의 질투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 님의 질투가 우리 속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그 질투가 있 으십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분에게 소중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가 여러분에게 어떠한 의 미를 가집니까? 그게 의미가 없다면 여러분은 전혀 신앙생활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자세가 전혀 아닙니다. 엘리야는 이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질투가 그의 기도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일어나 역사하여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서 9장을 보십시오. “우리와 우리조상이 범죄 하여 임으로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의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수욕은 우리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하면 그러나 “하나님! 하나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주의 황폐한 성소에 주 의 얼굴빛을 비취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다시 일어 나십니다.

2) 하나님 이름을 위하여 일어나시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하나님의 기준 을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 세우십니다. 잘 들으십시오. 이게 이제 오늘 우리가 살펴본 가장 주된 내 용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데 하나님 의 백성들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다림줄을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세우십 니다. 아까 에스겔서 36장에 23절을 읽으면서 동그라미 하라고 했습니다. 거기 다시 한번 보시죠.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어떻게 할지라. 거룩하게 할지라. 자 보세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겠다고 그랬어요.

동그라미 치십시오. 그 다음에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이방인의 목전에서, 안 믿는 자들의 목전 에서 너희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라” 아멘!

자 여기보시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심으로써 이 열방가운 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미 본대로 아까 20장에도 동일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도 보시면 41절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열국의 목전에서 나타낼 것이며” 그랬습니다. 자, 그러면 문제는 이 겁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시냐는 겁니다. 어떻 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시겠느냐는 거죠. 어떻게 그 일을 하시느 냐는 겁니다. 그 해답이 에스겔서 37장이 있습니다. 37장 마지막절 28절에 보시면 이렇게 나와 있 습니다. 거기에 해답이 있습니다.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 있으리니 열국이 나를 이스라 엘을 거룩케 하시는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여기 보십시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하나님 백성을 회복시 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며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 함을 열방 가운데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하시느냐? 여기 보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케 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케 하심으로... 그 일을 하십니다. 왜요? 세상이 볼 수 있 는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래서 그들을 거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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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 함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도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하십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케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이게 무슨 말인가? 철저히 하나님의 기준에 세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다림줄. 하나님의 기준에 세운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에스겔 서 22장을 보시면 그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26절. 에스겔서 22장에 보면 그 당시 거짓된 제사장 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에 대해서는 관심 없는, 하 나님의 백성의 복지에는 관심 없는, 자기의 명예와 자기의 뱃속에만 관심 있는 이들을 심판하실 것 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하여 하나님이 직접 일어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양무리들 중에 서로가 서로 싸우며 자기를 드러내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 다. 자, 그러면서 그 당시 제사장들의 잘못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여기 중요한 부 분이 있습니다. 26절.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여기 보십 시오.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변하지 아니 하였으며 그 눈을 가리워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 니라” 여기에 보시면 중요한 부분이 있죠. 그들이 뭘 안 했다구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변하 여 구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변하여 구별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함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러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변하지 않았다는 것 은 무슨 말인가? 그 의미를 알려면 레위기 10장에 가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레위기 10장에 가면 우리가 여러 번 살펴 본대로 하나님의 질투 특별히 거룩함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나옵니다. 거기 에 보시면 아론의 두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그들은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되 다른 불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즉시 불이 나와서 두 아들을 살라 죽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졸 지에 두 아들을 잃은 아론에게 곡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시고 머리를 푸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시 고 옷을 찢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시고 심지어 성전 문을 떠나는 것도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그는 그 대로 두 아들을 잃고도 그에게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있는바 자기 자리에서 충실하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신 구절입니다. 그러면서 그 두 아들을 죽인 심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 에 대해서 모세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장 3절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다.” 여기 보십시 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십니다.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 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거룩하게 되어지는가? 그게 여기 나와 있는 대 로 8절에서 11절입니다. 그 아래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 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 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 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여기 보면, 나답과 아비후가 술 에 취에 들어간 것 같아요. 제사를 드릴 때. 그런데 술 먹었다는 그 자체로 죽임을 당했다기 보다 는요 술취해 들어가서 분별력이 흐려져 하나님의 길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임의로 했어요. 하나 님 앞에서 하나님의 길을 따라 행함으로 속된 것과 거룩한 것,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과 세상으로 부터 나온 것, 하나님의 길과 세상의 길을 구분하여 철저히 하나님의 길에 서야 하는데 그렇게 하 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거룩함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그들이 죽임을 당 했습니다. 한 가지 무서운 사실은요 모세가 가나안 땅 못 들어갔죠. 왜 못 들어간 줄 아세요? 하나 님이 이 반석 위에 마라라고 했는데 처음에 치라고 했는데 첫번째 사건 이번엔 마라라고 했는데 그 당시 모세가 화가 나 있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반역하니까 그래서 분을 내면서 하나 님 명령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그 돌을 두 번 쳤어요. 그래서 물은 나왔는데 사람들 앞에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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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길에 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기준에 따 라 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가나안 땅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옥 간 건 아닙니다. 당연 히.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보며 우리는 뭘 알 수 있냐 하면 하 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 기 위해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길을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하나 님의 기준에 따라, 하나님의 길에 따라 정결케 하시고 깨끗케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하 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왜? 세상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은 하나님 백성들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에.

3) 그러면 하나님은 왜 그들을 거룩케 하시는가?

왜 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기준으로 세우는가?

금방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이 거룩한 분임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거룩케 하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주된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내내 계속해서 흐르 는 한 가지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이 기준을 세우시는가?

하나님이 성전 삼고 거하시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영광으로 오셔서 그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

에스겔서 37장을 보십시오. 에스겔서 여러 곳에서 이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37장 26~27절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영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들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여기 보면 성소는 구약의 성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 기 원하시는 성소입니다.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이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에스겔서 26장 2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다” 그 부분에 있어서 추가로 말씀드리면 36장 23절부터 보십시 오. 그들의 목전에서, 열방의 목전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라”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한다고요?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의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케 하시되 이러한 은혜를 부으셔서 하나님의 기준에 서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세상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관심있는 타락한 거짓 신앙체계에서 벗어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우리에게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을 주시도 록,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주시도록,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시도록, 우리에게서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하나님이 부드러운 마음 주셔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하나님 말씀 앞에 엎 드려지며, 하나님이 말씀이 그러하면 내 삶을 조정하여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 가운 데 내 삶이 조정되어지고, 순복되어 질수 있도록 그것을 구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추구하는 바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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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렇게 거룩하게 하실 때에 우리의 관 심은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동안 그리고 지금도 그 일들을 우리 가운데서도 해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너무나 많은 경우에 관심이 다른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준을 우리 가운데 세워 우리에게 이러한 하나님 앞에 올바른 자세와 태도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준 앞에 우리의 삶이 엎드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의 삶이 정결케 되어지고,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 우리의 삶이 조정되어지므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사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 을 우리를 통해서 드러내기 원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명예에는 관심이 없이 우리의 취향, 우리의 원하는 바, 우리의 육체적인 욕심과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 기초한 우리의 목적을 이 루는데만 관심 있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합하지 않으면 메시지가 세다느니, 너무나 강하다느니, 현실을 아느냐, 모르냐 그런 말로 대적하는 그러한 자세를 갖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렇게 거룩하게 하시기 원하시면 가슴을 찢어 회개하셔야 합 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거룩하기를 원하시는가? 아주 중대한 일이 있습니다.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 니다.

그것이 뭐냐? 그 다음절에 보십시오.

28절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것이 성 전 된 삶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단순히 신분적으로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 백성, 그것을 말하는 것 이 아닙니다. 이제 조금 더 보면 나옵니다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두루 행하시는 그 하나님의 성전 된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거룩케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실 때 철저하게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취향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취향을 따라 맞추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 임해서 제사장들이 감히 서서 제사를 지내지 못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그 자리에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보여 주느냐? 하나님의 교회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다림줄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머무는 곳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가 시간이 있다면 그것을 성경을 통해서 확실하게 증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건물에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구약에서도 그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성전 삼고 거하시는데 있습니다.

성전 삼고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 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후서 7장도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고후 7장 1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이 약속은 무슨 약속입 니까? 바로 그 위에 있는 6장 16절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성전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약속입니다.

6장 16절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같이 하 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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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하셨느니라”

보십시오. 이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일부는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성령 이 우리 안에, 교회 안에 오시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도 약속으로 남아 있다고 말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성전 삼고 성전에 거하시는 약속이 이루어졌습니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열방 중에서 멸시를 받고, 조롱을 받 는 가운데 지금 있습니다.

그러면서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경외하는 가운데, 거룩함으로 온전히 이루어 영과 육의 육과 영의 온 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여 구별되고, 분별하여 구별 하 라고 말합니다,

자, 이렇게 거룩하게 하신 목적은 뭐냐? 하나님이 친히 그 가운데 오셔서 성전 삼고 거하시기 위함 입니다.

4)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성전 삼고 거하실 때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첫째는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두루 행하실 때 하나님의 생명이 넘칩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그때야 비로소 세상이 교회 가운데 있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때야 비로소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임을 알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질투를 위해서, 그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시 키시는데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시켜 하나님이 기준을 세워 하나님이 친히 그 가운데 오셔서 운행하 심으로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생명이 넘칩니다.

에스겔서 34장 25절~31절.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 며 수풀 가운데서 잘지라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 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의 멍엣목을 꺾고 그들로 종을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후에 그들이 나를 여호 와인 줄 알겠고 그들이 다시는 이방의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며 땅의 짐승의 삼킨바 되지 아니하고 평안히 거하리니 놀랠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들을 위하여 유명한 종식할 땅을 일으키리니 그들이 다시는 그 땅에 서 기근으로 멸망하지 아니할지며 다시는 열국의 수치를 받지 아니할지라 그들이 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며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라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가운데 오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므로 하나 님의 생명이 그 가운데 넘치게 하시겠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이 오셔서 운행하시므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두루 행하여 운행 하실 때 세상이 그들 가운데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교회 가운데 하나님이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영광 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앞에 나오기를 두려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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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그들이 죄악이 다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날마다 믿는 자가 더해 갔습니다. 저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사람들은 경외 하며, 감탄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찬송하기를 “너희 가운데 과연 하나님이 계시다. 너희 가운데 과연 하나님이 계 시다”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믿는 자가 더해 갔습니다.

여러분, 초대교회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친히 거하고 계시며, 운행하시며,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심이 열방 가운데 드러나게 되므로 뭇백성이 주께 더 해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향하여 질투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 백성을 뽑으신 목적 중에 하나 도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느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기준에 철저히 세워져서 하나 님의 은혜로 나눠지지 않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령, 하나님 말씀 앞에 떠는 자세를 가지고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을 바라며, 주님을 사모하며, 주님이 우리를 빚어가심을 따라 우리의 삶을 기꺼이 조정하여 하나님의 기준 앞에 우리가 세워지게 될 때, 우리가 다듬어지고 빚어지게 될 때, 그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거룩한 하나님이심을 드러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영광으로 임하셔서 운행하심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열방 가운데 나타내실 것입 니다.

그것이 부흥의 역사입니다. 그것이 회복의 역사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것이 하나 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이루어지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있어야 할 것을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신앙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우리 때문에, 믿는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조롱과 멸시를 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시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깨십시오. 안일하고, 나태한 생각에서 일어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이 나라 가운데 행하고 계신 일을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금 그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붓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십시오.

그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그 은혜를 받아들이십시오. 그 은혜를 열망하십시오. 그리고 바로 그 하 나님의 은혜를 따라 여러분의 삶이 철저히 하나님의 다림줄에 의해 빚어지십시오. 하나님의 손에 맡긴바 되어지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조정하여 하나님의 기준에 서십시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 의 기준을 따라 희생과 댓가를 치루십시오. 삶을 조정하십시오. 하나님께 순종하십시오. 교회가 그 렇게 되기를 또한 추구하고 열망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 진실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기준에 그렇게 합하며 빚어지고, 더듬어지 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임하실 수 있는 그러한 교회로 세워져야 의미가 있을 줄로 믿습니 다.

그렇게 되어지게 될 때 하나님이 머지않아 하나님의 영광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임하사 더욱 놀라웁게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리시므로 하나님의 생명이 이 가운데 넘치게 하고, 열방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게 하시므로 뭇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받는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실 줄로 믿습니다.

그 일을 위해 저와 여러분이 쓰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

그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우리가 일심으로 주를 향하여 달려 나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 일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오늘은 그냥 넘어 갔는데 에스겔서 보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그를 막아설 중보 기도자들을 찾고 계셨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다윗의 장막이 좀 소홀하게 되는 경향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의 장막을 시작한지 1년이 되었 습니다. 한편으로 이해 하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특별한 한 달이 아니고, 일주가 아니고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 앞에 긍휼을 구하며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눈이 그 만큼 어두워졌다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하나님을 떠나 있으며,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우리 자신이 거룩하게 됨으로 하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임을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야 되며, 그 거룩한 삶을 위 해 우리에게 나눠지지 않은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령, 이러한 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하나님의 길에 행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 어야 하는데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높아지고, 우리가 자족감과 자만심 가운데 빠져있으며, 그만큼 인본주의적인 사고가 우리 가운데 가득하고, 안일함이 가득하다는 징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 음에 하나님 은혜 주시고 우리를 깨뜨려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기를 소원합니 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오늘 에스겔서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를 봅니다. 하나님의 의중을 봅니다. 아 울러 오늘날 우리에게 처한 상황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을 듣습니다.

아버지,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컫는 우리들은 오늘날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목적과 우리의 유익과 우리의 추구하는 바에만 빠를 뿐입니다.

아버지,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은혜를 구하오니 아버지의 이름을 위하여 은혜를 부으사 우리로 인하여 열방 가운데 더럽혀진 아버 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인하여 은혜를 부으사 우리에게 나눠지지 않는 마음주셔서 일심으로 여 호와를 경외하게 하시고, 우리에게서 굳은 마음을 제하게 하시며, 살과 같은 마음 부어 주셔서 하 나님 말씀 앞에 순간 순간 우리가 엎드려 경외하며, 우리 삶을 조정하여, 주의 말씀 앞에 순종하므 로 따르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과 같이 있기를 열망하며,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 부음을 우리에게 부으사 우리로 일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따라 행하게 하여 주시므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영광으로 임하셔서 운행하실 수 있는 그러한 은혜가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포도나무 교회를 축복합니다.

이 곳에 머리숙인 한 분 한 분을 축복합니다.

주님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혀 주시옵소서.

우리로 하나님의 길을 선명히 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로 주의 길에 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포도나무 교회 전체가 그렇게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 드렸사옵나이다. 아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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