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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간 바회아래 띠집을 짓노라 니(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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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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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간 바회아래 띠집을 짓노라  니(1)

내 버디 몃치나 하니 水石(수석 과) 松竹(송죽 이라) 동산 의 달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

( ) 東山

두어라 이 다삿 밧긔 또 더하야 머엇하리

설날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가는 일은 거의 모든 국민이 하는 일이다.

연휴를 즐기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13살에 고향을 떠나 40년을 넘게 살아온 이래 군대생활 기간과 몇 번의 특별한 때를 빼놓고는 매년 해 오던 일이다.

그러나 그 가는 길은 주지하다시피 항상 만만찮다 문제는 이제는 시골에 가. 도 아는 얼굴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을 볼 수 없게 되는 점을 빼더. 라도 돌아가시는 분이 많아졌고 늙으신 어른들은 집밖에 나오기조차 힘든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절에 시골에 가도 점차 재미가 없어지는 것. 은 솔직한 심정이다 재미있을려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 그러니 설날은 그 럭 저럭 집에서 손님을 맞지만 그 다음날은 이웃 마을 친지를 뵈러 간다는 핑계로 마실길을 나서기 마련이다.

아무니라우!

해남에 이모부가 돌아가신지 얼마되지 않는 이모님이 살고 계셔서 이모님뵈 려 간다는 핑계를 대고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찾아나선다 며칠전 문화재청. 자유게시판에 윤선도 유적지가 지정되지 않은 것이 있고 바로 코앞에 폐건 축물 폐기장이 들어서게 되서 문화재청이 빨리 나서주기를 바란다는 호소문 비슷한 것이 올려져 있어서 거기를 찾아 나서고 싶었던 것이다.

강진에서 완도로 가는 길과 해남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있는 마 을이름은 계라리 다 우린 어렸을 때 개나리 라고 불렀다 발음으로만 들어‘ ’ . ‘ ’ . 서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계라리 삼가리를 지나 해남읍을 향하여 가면 해남군 옥천면이 나오고 그 옥 천면을 지나면 아주 험한 재는 아니지만 꼬불꼬불한 재를 넘어 해남읍에 도 달한다 요즘은 준고속도로의 터널이 개설되어 쉽게 넘었지만 몇 년 전만 하. 더라도 이 고개는 눈이라도 쌓일라치면 꽤나 조심해야하는 재였다.

(2)

해남읍내 입구에서 대흥사쪽으로 길을 들어선다 남쪽으로 난 길이다 불과. . 몇 킬로를 가면 좌측으로 연동의 윤선도 고택이 있는 마을이 보인다.

오늘은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다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삼산면이 나. 오고 거길 지나서 대흥사 입구에 거의 다다를 무렵 현산면으로 가는 길과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현산면쪽으로 꺽어든다. .

왼쪽으로 저수지 하나를 지나고 좀더 고갯길을 가면 또 하나 저수지가 나타 난다 오른 쪽에 깊이 파헤쳐진 채석장이 보인다 여기다. . .

설날 무작정 해남군 현산면 만안리 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 전화를 받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고 여자다 저어. ~ 이장님 부탁합니다 하니 저어~ 지가 이장인디오 하고 대답한다 아니 이런. ~! 뭐 내가 잘 못걸린건가? 아무 래도 극성스런 노처녀가 마을 이장하겠다고 나서서 좌충우돌 영웅심리에 이 일저일 저지르는 그런 사람이면 어떻하나? 불안감이 잠시 스친다 그러나 이. 미 전화는 걸려 있으니 여기서 손을 뺄 수는 없다 저어. ~ 그 뭐시냐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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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동 고산 유적 보존해야 된다는 글을 문화재청 게시판에서 읽었는데 그 글을 올리신 이장님 맞습니까? 하고 물으니 바로 네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 이 온다 이거 오늘 제대로 걸렸네. ~! 어떻게 돼것지~!

사실 저는 내일 그 곳을 방문하고 제가 뭐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알아볼 려고 전화했는디오 내일 쭘 그곳을 방문하려고 하는디 안내좀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아무니라우 하고 대답한다! .

그래서 정월 초 이튼날 해남을 향해 출발한 것이다.

이미 연락이 된 해남군 현산면 만안리 이장님이 마을 젊은이들과 함께 도착 한다 마을 젊은이들이 앞장서고 이장이 그 뒤를 따른다. . 50을 넘은 여성 이 장의 당찬 모습이 서울 촌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저 시골 아낙정도. 라고 예측했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아니 이런 분이 문화재 지정을 요청. 했단 말인가? 이런 분이 문화재에 대한 식견을 가지고 자기 마을의 유적을 보존하려고 나선단 말인가? 이장 월급이 얼마나 되길래? 그리고 뒤따르는 젊은이들은 뭐하는 치들인가? 농촌에 젊은이들의 씨가 마른지 오랜데...

그녀의 혁혁한 활략은 후반에 기록하자.

그나저나 이 첩첩 산중에 파헤쳐진 채석장의 규모가 보통이 아니다. 10년을 넘게 해 왔다니 그럴만도 하겠지 채석장 중심을 지나 고산의 유적지가 있다. 는 후면으로 오른다. 이미 숲이

우거질대로 우거졌다 첨 가보는.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을 것같 다 채석장이 끝나는 곳에 경계를. 이르는 듯한 둑이 있고 그 곳을 지나 잠시 계곡이 이어진다 대나. 무 숲이 이어지고 이내 유적들로 보이는 석축과 평평한 바닥이 보 인다.

수정동의 고산 유적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하연지 이다 이미 거의 유실되‘ ’ .

그림 3 채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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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 흔적이 선명치 않지만 배치도와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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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지를 지나 좀더 들어가면 우 측에 인소정이 있던 자리가 축대 위로 보인다 고산이 처음 이 곳. 에 온 것은 언제 일까? 우리는 연동의 녹우당에 대해서는 잘 알 지만 수정동이나 금쇄동 유적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지 못한다.

특히 수정동에 대해서는 잘 알려 지지 않았다.

고산이 53세 되던 기유년(1636 년 에 영덕에서의 유배에서 풀려) 해남 연동의 종가로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이 곳을 찾아 와 인소 정을 짓고 거처했던 곳이 수정동 이다 이후 금쇄동과 문소동을 얻. 고 수정동과 더불어 삼승(三勝)을 이루어 기뻐했다고 했다. 수정동 에 조성한 원림의 인소정은 그의 산중신곡 중 만흥 의 첫

‘ ’ ‘ (漫興)’

작품에서 노래되었다.

산수간 바회아래 띠집을 짓노라 니 그 모른 들은 욷는다 다마

어리고 향암(響巖)의 뜻에는 내 분( )分 인가 노라

인소정 터에 오르면 평평한 바닥 위에 아직도 옛 기왓조각이 여기 저기 몇 개씩 보인다 건축물이 어떤 식으로 앉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기왓. . 조각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띳집을 지었다는 기록과는 배치된다.

조사 보고서 한국건축문화연구소 소장 김홍식 명지대교수 에는 네 개의 기( , ) 둥 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초석으로 확실한 것이 세 개 있었다는 말이다 또. . 방을 갖춘 집이었는지 아님 그냥 정자였는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

그림 5 인소정을 받치던 석축 그림 4 하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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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석의 배치로 보아 2.7m 방형의 1칸 규모로 추정한다.

인소정 터에서 서측 상류 쪽 에 병풍바위가 보인다 바위 위로부터 작은 물( ) . 줄기가 떨어지고 있다 겨울철 갈수기라서 물줄기가 작지만 물이 흔한 여름. 철이면 상당한 물줄기를 볼 수 있을 것같다 안내한 이장의 말을 들의면 예. 전에는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물을 맞으려 왔다고 한다 나도 어린. 시절 고모의 손을 잡고 멀리 물맞으러 간 기억이 난다 대개는 한여름이면. 더위를 잠시라도 피하기 위해 모시옷을 입고 물을 맞는 것으로 위에서 쏟아, 지는 폭포와 같은 물줄기를 머리에서부터 맞고 탄성을 질렀던 어슴프레한 기억이 잠시 스치고 지나간다 요즘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참으. 로 정겨웠던 기억이다 생태적 피서법이 아니겠는가 남자들은 대개 동네에. . 서 자주 찬물을 끼얹거나 멱을 감을 수도 있으나 여자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별루 없다 밤이나 되어야 동네 하나 밖에 없는 공동우물가에 나아가 찬물을. 끼얹을 수 있었다 그러니 더위 식히기에 여성들은 남자들보다는 한층 어려. 운 환경이 아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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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바위 윗 부분은 펑퍼짐하게 넓다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이런 바위는 바. 위 아래서 차거운 물을 맞고 체온이 식어 입술이 파래지도록 놀다가 바위 위로 올라 몸을 말리며 다시 체온을 얻기에 안성마춤인 곳이 되는 바위이다.

바위에 귀를 대고 귓 속에 들어간 물도 빼낸다 그리고 또 다시 물 속으로. 들어 간다 그런 바위가 이 병풍바위이다 물론 병풍바위란 이름은 병풍처럼. . 빙 둘러서 있는 이 큰 바위의 모습에서 따온 말이 되겠지만...

아침 안개에 쌓인 병풍바위 요석암 위에 높다란데, 수정발처럼 맑은 물줄기 옥루 곁까지 뻗치네

어찌하여 이처럼 호사스런 극치가 있는고 혼자 웃다가 문득 술잔을 드네

우후희부취병비폭

- (雨後戱賦翠屛飛瀑)-

병풍바위 밑을 지나 오르면 호랑이굴이 나타난다 시골의 어느 동네나 조그. 마한 굴이 있으면 으례이 그 이름이 호랑이굴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 다 말하자면 동물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호랑이었고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침으로써 아이들의 훈육에 활용했을 게다.

굴 속에는 여러 새들의 배설물로 보이는 것들이 많다 아마도 박쥐의 똥들로. 보이는 것도 섞여 있다 깊지는 않다 호랑이가 여기와서 살았을까. . ? 고산의 무료를 달래주었을까? 그 동물이 담배피던 시절일 것이니 이 정도로 넘어가 자.

병풍바위 뒤로 작은 또랑이 얕은 물로 흐른다 이것이 병풍바위 위를 지나. 실폭포를 이룬다 그 또랑을 따라가니 대나무 숲을 지나 작은 못이 나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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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키가 작은 시누대가 군집을 이루며 그 사이를 물길이 지난다 여기가 상. . 연지다 지금은 많이 매꾸어져 물이 얇게 고여 있거나 말라 있다 크지 않는. . 연못은 위쪽에 아트막한 축대로 둑을 만들었고 아래쪽으로 물흐름을 두어 흐르게 했다 못 바닥을 파네고 발굴하면 그 옛날 고산이 즐겼을 숲 속의 작. 은 연못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읊은 시조를 다시 한번 음미. 해 보자.

구름빗치 조타 나 검기 로 다.

바람 소래 다 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조코도 그츨 뉘 업기 믈뿐인가 노라

연못의 뒤쪽은 그가 조림한 숲이 울창하다 크게 자란 나무 밑은 얼마 전까. 지만 해도 아랫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여름이면 음식물. 을 준비해 와서 이 숲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며 놀았다고 이장은 일러 준다.

이상한 문화재 사적 지정

이런 유적이 왜 이제까지 팽개쳐져 있을까?

명지대학교 부설 한국건축문화연구소 가 지난 년 조사를 실시하여

[ ] 1999 “尹

및 ”를 해남군에 내었다고 한다 이 후 이. 善道遺蹟 懸山古城 學術硏究報告書

들 유적에 대하여 사적 지정을 위한 자문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그래서 금쇄. 동과 수정동을 포함하여 사적으로 지정하도록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년 사적 지정이 고시되었는데 그 내용은 엉뚱한 것이었다고 한다 금쇄

2001 .

동만 사적이 되고 수정동은 빠진 것이다 자문위원회가 두 유적지를 동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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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사적으로 지정할 것을 의결하였는데 결과는 반토막이었던 것이다 무슨. 연유가 있었던 것일까?

수정동 유적지 앞에는 민간업체가 채석장 사업을 하고 있었다 수정동 유적. 지가 사적으로 지정되면 채석장 사업은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한다 사적지 주. 변 500m가 문화재보호구역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문화재청이 지금 같으면 문화재위원회 가 의결하면 문화재, ‘ ’ 청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동일한 수준의 유적지가 그리고 서로 연. , 계된 유적지가 한쪽만 되고 한쪽은 안 될 수 있을까?

필자는 작년 추석 보길도를 방문하고 고산 관련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은.

[ 혼자 시붕그리기 ] 세연정 문짝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였다 윤 고산유적지에. 대한 얘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또 이 용맹한 만안리 이장의 이야기도. 많이 남아 있다.

2008. 4. 23 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 김란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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