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명에는 대체로 그 법이 담긴 내용을 대표하는 용어가 사용된다. 예컨대, 현 정부 들어 제정된 주요 법률 중 하나인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 법」의 경우 그 법명만 보더라도 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정보통신 분야의 진흥 및 융합 활성화를 촉진하는 것이 법률의 주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법명에 “등”이라는 표현을 넣은 것은 법률이 다루는 내용이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에 국한하지 않 고 그에 준하는 다른 내용도 포함하고 있음을 암시하기 위한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법명의 작성 방식으로 볼 때,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독점규 제”와 “공정거래”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하는 법률이고 또한 그래야 한다. 그러나 최근에 이 법이 개정된 내용을 보면, 법이 원래 담아야 할 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면 서 법이 추구하는 것과 동떨어진 정책적 목적으로 법이 동원되는 것 같아 심히 우려스 럽다.
공정거래법이 아닌 국민정서법
2013. 8. 13. 공포된 공정거래법의 개정법률은 그 전부터 있던 위반행위 유형인 부 당지원행위의 구체적 유형을 추가하고 요건을 완화하는 한편, 새로운 위반행위 유형으 로서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이익제공 금지규정을 신설하였다.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 당이익제공 금지규정은 이른바 재벌그룹에 속하는 회사가 총수 일가나 그 지분율이 일 정 수준 이상인 계열회사와 일정한 유형의 행위를 통해 총수 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이익제공 금지규정이 공정거래법의 최소한의 부당성 요건인 공정거래저해성 기준의 적용마저 회피하려는 입법의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개정문에서도 이 규정의 신설 취지를 “공정한 거래를 저해하는지 여부가 아닌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위법성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개정이유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공정거래법에는 더 이상 경쟁은 물론 공 정거래와도 관계없는 금지규정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총수 일가에 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경쟁 또는 공정거래와 무관 하다면 도대체 어떤 기준을 갖고 총수 일가에게 귀속된 이익이 부당하다고 평가할 수
거꾸로 가는 공정거래법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변호사
2013-09-16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경쟁 또는 소비자에 대한 어떤 피해를 상정하지 못할 때, 단순히 총수 일가에게 이익이 귀속되었다는 이유로 그 거래를 비난하려면 그 근거는 초점 없 이 막연한 국민정서에 기댄 정책에 근거한 기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더 이상 공정거래법이 아니라 국민정서법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미국 공정거래법 시행 경험의 교훈
공정거래법이 경쟁 또는 공정거래와 같이 경제적 이론의 근거를 갖고 증거에 의하여 입증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라 경제적 이론의 근거가 취약하면서 증거의 뒷받침도 받 기 어려운 기준을 사용하려고 한 시도는 미국에서도 있었다. 미국의 반독점법 적용에 대하여 법원은 경쟁에 대한 피해를 유일한 기준으로 하여 사업자의 행위가 그러한 피 해를 초래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납득할 만한 이론과 이를 뒷받침하는 경험적 증거를 요구한다. 이에 대하여 반독점법의 적용범위가 너무 축소된다고 생각한 의회에서 법 개정을 통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에 부여한 권한이 “불공정하거나 기만적인 거래행위 또는 거래관행”을 금지하기 위한 법 집행 권한이다. 이 규정에는 경쟁이라는 표현이 빠 져 있기 때문에 경쟁에 대한 피해를 입증하지 않고도 사업자의 행위를 규제하는 근거 가 될 수 있었다. 불공정성을 기만성과 구별할 때 불공정한 거래행위 또는 거래관행은 우리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와 비교될 수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처음에는 어떤 거래행위 또는 거래관행이 불공정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세 가지 정도로 넓게 잡았다. 첫째는 행위가 공공정책에 반한다는 것 이고, 둘째는 행위가 비윤리적이거나 억압적이거나 파렴치하다는 것이며, 셋째는 행위 가 소비자, 경쟁자 또는 기타 사업자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이 중 셋째 기준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경제학적 설명이 가능하지만, 첫째와 둘째 기준은 집행자 의 개인적 가치에 따라 그 적용범위가 달라질 수 있는 추상적이면서 추론만이 가능한 기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특히 행위가 공공정책에 반한다 는 기준을 갖고 경쟁당국의 역할을 넘어서는 영역에 대한 개입을 시도하였다. 예컨대, 1970년대 후반 당시의 위원장은 위법한 외국인 고용을 규제하고 조세회피자와 환경오 염자를 제재하기 위하여 불공정성 기준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러 한 경쟁당국의 궤도를 넘은 시도는 사업계는 물론 의회와 언론으로부터도 우려를 불러 일으켰고, 한 언론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가 “국민보모”가 되었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하 였다.
사회적 비판에 직면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결국 공공정책 기준에서 벗어나 소비 자 피해 기준으로 이행하면서 불공정성에 대한 적합한 기준으로 제자리를 찾게 되었 다. 현재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소비자 피해를 불공정성 판단의 유일한 기준으로 하
면서 그 피해는 실질적이고 이익으로 상쇄되지 않으며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회피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고 그 기준을 구체화하여 적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경쟁과 관계없 는 불공정성 기준은 사업자 대 사업자 관계에는 적용되지 않고 사업자 대 소비자 관계 에만 적용되고 있다. 사업자 대 사업자 관계에서는 전통적인 반독점법 규정 외에 불공 정한 경쟁방법 규정이 적용되지만, 최근에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경쟁방법의 불공정 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경쟁을 중대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와 인식 가능한 효율성의 결여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갖는다고 선언하여, 사업자 대 사업자 관계에서 일어나는 행 위에 대한 법 적용은 증거에 기초한 경쟁정책을 그 토대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공정거래법 적용의 최소한도는 공정거래저해성이 되어야
우리 공정거래법의 불공정거래행위 규정은 일차적으로 사업자 대 사업자 관계에 적 용된다. 또한 그 기준이 되는 공정거래저해성은 경쟁에 대한 피해까지 입증할 필요 없 이 공정거래를 저해할 우려만 입증해도 충족된다. 미국의 공정거래법보다 우리 법이 훨씬 낮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법률은 “지원행위가 현저히 유리한 정도에 미치지 못하거나 사업자가 아닌 특수관계인 개인을 지원하는 경 우에는 사실상 공정거래저해성을 입증하는 것이 곤란하여 규제가 어려운 실정”임을 강 조하면서, 공정거래법 집행이 제 궤도를 이탈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법의 해석과 집행은 개별 규정에 대한 입법자의 의도에 얽매이지 않고 규정의 내용 을 충실히 따르면서 법의 목적 및 다른 규정과의 정합성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그 출발점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이익제공 금지규정에서 일정한 행위가 공정거래법 에 위반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요건이 되는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이라는 부분 에서 “부당한”의 판단기준을 바르게 설정하는 것이다. 입법자는 회사와 그 특수관계인 과의 거래에서 그 특수관계인에게 특정한 이익이 발생하기만 하면 그 행위로 인하여 부의 세대 간 이전이 가능해지고 특수관계인을 중심으로 경제력이 집중될 기반이나 여 건이 조성될 여지가 있다는 추론만으로 그 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입법적 수단을 제공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법이 그렇게 집행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공정거 래법이 아니다. 또한 이미 법원 역시 그러한 추론만으로 공정거래저해성이 인정된다는 것이 공지의 사실이 아니고 별도의 입증을 요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따라서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이익제공 금지규정에서 부당성의 판단기준은 적어도 공정거래 저해성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정거래법이 거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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