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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의 사적 조망 검무의 사적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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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일 : 2015년 05월 12일

작성자 : 김 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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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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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의 사적 조망 검무의 사적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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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그림으로 보는 검무의 형상과 의미 그림으로 보는 검무의 형상과 의미 검무의 지정 및 전승

검무의 지정 및 전승

검무의 가치 및 의미

검무의 가치 및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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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의 사적 조망 검무의 사적 조망

의궤로 본 검무의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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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의 사적 조망 검무의 사적 조망

교방 관련 기록으로 본 검무 영조 (英祖) 대(3년, 1727년) 평안남도 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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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벽루연회도 (浮碧樓宴會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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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의 사적 조망 검무의 사적 조망

교방 관련 기록으로 본 검무 헌종 (憲宗) 대(1842년) 평안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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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38년(1712)의 기록인 김창업의 『연행일기』

어린 동기 (童妓) 가학(駕鶴)과 초옥(楚玉)이 대무(對舞) 형식으로 검을 들고 춤을

춘 것이 그 시작인데 , 이 춤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어 8도 관아의 모든 관기

들은 제일 처음으로 이 춤을 헌정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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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의 사적 조망 검무의 사적 조망

교방 관련 기록으로 본 검무 고종 (高宗) 대(1865년) 경상남도 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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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억(趙泰億, 1675∼1728) 1721년에 제작된 문집『겸재집』

천년의 경주 흥망을 탄식하니 반월성과 첨성대는 반이나 황폐하구나 오 직 교방이 있어 옛 풍속을 전하니 추은 쌍검에서 왔으니 황창을 배웠도다

*숙종 37년(1711) 통신사 부사(副使)로 일본에 다녀 온 임수간(任守幹)의

『동사일기』에는 각 지역의 기악에 대한 묘사가 있다 . 임수간은 안동의성, 영천 , 경주, 부산, 등지에서 기악(妓樂)을 보았는데 향기들의 칼춤이 볼만했 고 , 때로는 향기들에게 칼춤을 부탁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김인겸(金仁謙, 1707∼1772)도 영조 40년(1764)에 쓴 「일동장유가(日東壯 遊歌 )」에서 “대구 기생 옥진 형제 황창무(黃倡舞)를 일등하네”와 “음식도 무던하고 검무도 보암직다 .”라 평하였다. 신재(信齋) 이영익(李令翊, 1740∼?) 의 『신재집』에 실려있는 <황창무>는 황창랑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영 남 교방의 지금 이 춤이 희 (戱)가 되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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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의 사적 조망 검무의 사적 조망

교방 관련 기록으로 본 검무 고종 (高宗) 대(1865년) 경상남도 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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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검무기 劍舞記>

二妓劍舞, 絨服氈笠, 霎拜逈對, 徐徐而起. 旣掠其鬢 ?整其襟, 翹襪蹴裳, 以擧其袖. 劍器在前, 若將不, 悠揚折旋, 惟視其手.

室之隅樂作, 鼓隆笛亮. 於是, 二舞薺進, 頡頏久之, 張袖而合, 亞肩而分, 酒翩然而坐, 目注於儉, 欲取 未取, 愛而復惜, 將近忽却, 將襯忽驚. 如將得之 ?將失之, 虛挐其光, 乍攫其旁. 袖欲興之掃, 口浴興之, 腋臥背起, 欹前側後, 以至衣帶毛髮, 無不飛揚頓挫, 而十指無力, 幾委復擧, 舞之方促, 手如謠綏, 翻然而起, 劍不知處, 仰首擲之, 雙墜如霜, 不徐不疾, 奪之空中. 以鐔尺臂, 昻然而退, 颯然相攻, 猛如 可刺. 劍至於身, 不能以寸, 當掣不掣, 若相讓者, 欲閃未閃, 如不肯者, 引而莫伸, 結而莫解, 合而爲四, 分而爲二, 劍氣映壁, 若波濤魚之狀, 驀焉分開, 一東一西. 西者揷劍千地, 垂手而立, 東者奔之, 劍爲之, 走而剚衣, 仰而刮頰.西者寂然, 立不失容, 若郢人之質也, 奔者一躍, 賈勇千前, 耀武而還, 立者逐之, 以報其事, 掀如馬笑, 忽如豕怒, 俯首直拊, 如冒雨逆風而前趁也. 鬪而不能鬪, 止而不可止, 二肩趁搏, 名白不音踵隨而旋, 如斡樞機, 俄之, 東者已西,而西者已東, 一時俱回, 額與之撞, 容與千上, 飛騰千下, 劍爲之眩, 希見其面, 或自指千身, 以示其能, 或虛迎千空, 以盡其能, 輕步而跳, 若不履地, 盈之縮地, 以達餘氣, 凡擊者, 擲者,進者, 退者, 易地而立者, 佛者, 扯者, 疾者, 疾者, 徐者, 皆以樂之範而隨其數, 已而鏗然有聲, 投劍而排, 能事畢矣. 四生如空, 寂然無言. 樂之將終, 細其餘音, 以搖曳之. 其始舞 而拜, 左手捧心,右手鉗笠, 遲遲而立,若將不勝者, 始條理也, 鬖髿其鬖, 顚倒其裾, 倏忽俯仰, 翻然擲劍, 綜條理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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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의 사적 조망 검무의 사적 조망

교방 관련 기록으로 본 검무 고종 (高宗) 대(1865년) 경상남도 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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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검무기 劍舞記>

기 생 둘 이 검 무 를 춘 다. 융 복 ( 戎 服 ) 입 고 , 전 립 ( 氈 笠 ) 쓰 고 , 잠 깐 절 하 고 서 빙 돌 아 마 주 선 채 천 천 히 일 어 난 다. 귀 밑 머 리 쓸 어 올 리 고 옷 깃 을 여 민 다 . 버 선 발 가 만 히 들 어 치 마 를 툭 차 더 니 소 매 를 치 켜 든 다. 검 은 앞 에 놓 였 거 만 알 은 체 도 하 지 않 고 멋 지 게 회 전 하 며 손 끝 만 을 쳐 다 본 다. 방 모 퉁 이 에 서 풍 악 이 시 작 되 어 북 은 둥 둥 , 저 는 시 원 스 럽 다 . 그 제 야 기 생 둘 은 나 란 히 앞 에 나 와 앞 서 거 니 뒤 서 거 니 한 참 을 논 다. 소 매 를 활 짝 펴 고 모 이 더 니 어 깨 를 스 치 고 서 떨 어 진 다. 그 러 더 니 살 포 시 앉 아 서 는 앞 에 놓 인 검 을 쳐 다 본 다 . 집 을 듯 집 지 않 고 아 끼 는 물 건 을 조 심 스 레 다 루 듯, 가 까 이 가 려 다 가 문 득 물 러 나 고 , 손 을 대 려 다 가 주 춤 놀 란 다. 물 건 을 줍 는 듯 , 물 건 을 버 리 는 듯 , 검 의 광 채 를 잡 으 려 고 얼 른 그 곁 에 서 낚 아 채 기 도 한 다. 소 매 로 는 휩 쓸 어 가 려 는 지 , 입 으 로 는 물 려 는 지 , 겨 드 랑 이 를 깔 고 눕 다 가 등 으 로 일 어 나 고, 앞 으 로 기 우 뚱 뒤 로 기 우 뚱 거 린 다 . 그 러 니 옷 과 띠 , 머 리 털 까 지 휘 날 린 . 문 득 멈 칫 하 여 열 손 가 락 맥 이 빠 진 듯 쓰 러 질 듯 다 시 일 어 난 다 . 춤 이 막 빨 라 져 서 손 은 칼 에 달 린 끈 을 흔 드 는 가 하 였 더 니 훌 쩍 일 어 날 때 검 은 간 데 없 다. 머 리 를 치 켜 들 고 던 진 쌍 검 이 서 리 처 럼 떨 어 지 는 데, 느 리 지 도 빠 르 지 도 않 게 공 중 에 서 앗 아 간 다 . 칼 날 로 팔 뚝 을 재 다 가 헌 거 롭 게 물 러 선 다. 홀 연 서 로 공 격 하 여 사 납 게 찌 르 는 듯 검 이 몸 에 겨 우 한 치 떨 어 졌 다. 칠 듯 하 다 아 니 치 고 서 로 사 양 하 는 듯 , 찌 르 려 다 아 니 찌 르 니 차 마 못 하 는 , 당 기 고 는 다 시 펴 지 못 하 고 묶 은 뒤 엔 좀 처 럼 풀 지 못 한 다 . 싸 울 적 에 네 자 루 요 , 갈 리 니 두 자 루 다. 검 은 기 운 이 벽 에 어 른 거 려 파 도 를 희 롱 하 는 물 고 기 의 형 상 같 다 . 문 득 갈 라 져 하 나 는 동 에, 하 나 는 서 에 선 다 . 서 쪽 기 생 은 검 을 땅 에 꽂 고 팔 을 늘 어 뜨 리 고 섰 는 데 동 쪽 기 생 이 달 려 든 다. 검 은 날 개 가 달 린 듯 달 려 나 가 서 쪽 기 생 의 옷 을 푹 찌 르 고 , 고 개 를 쳐 들 고 뺨 을 벗 겨 내 기 도 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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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의 사적 조망 검무의 사적 조망

교방 관련 기록으로 본 검무 고종 (高宗) 대(1865년) 경상남도 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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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검무기 劍舞記>

서쪽 기생은 까딱않고 선 채 얼굴빛도 바꾸지 않으니 옛날 영인(郢人?)의몸가짐 같다. 달려온 기생은 훌쩍 날뛰며 용맹을 뽐내고 무예를 자랑하다가 돌아간다. 서 있던 기생이 그를 쫓아가 보복한다.처음 에는 히죽이죽 말이웃듯 부르르 떨더니 문득 성난 멧돼지처럼 고개를 숙이고 곧바로 달려든다. 질풍 폭우를 무릎쓰고 내달리는 용사와도 같다. 그러나 정작 곁에 가서는 싸우려다 싸우지도 못하고, 말자 해도 말지 않는다. 두 어깨가 슬쩍 부딪치더니 각자가 불의에 서로 발꿈치를 물고 돌아가는 모양이 마치 지도리를 박은 무슨 물체가 도는 듯 하다. 어느새 아까 동쪽에 있던 기생은 서쪽으로, 서쪽에 있 던 기생은 동쪽으로 위치를 바꾼다. 일시에 함께 몸을 돌려 이마를 마주 부딪고 위에서는 넘실넘실 춤추고 아래에서는 씩씩 거린다. 싸움 때문에 검광이 현란하여 낯이 보이지 않는다. 혹은 자기 몸을 가리켜서 솜씨를 뽐내기도 하고, 혹은 부질없이 허공을 안으면서 온갖 태도를 다한다. 사뿐사뿐 걷다 가 날름 뛰어 땅을 밟지도 않는 듯 하고, 걸음을 늘였다 줄였다 하여 미진한 기운을 뽐낸다. 무릇치는 동작, 던지는 동작, 나아가는 동작, 물러나는 동작, 위치를 바꾸어 서는 동작, 스치는 동작, 떨어지는 동작, 빠른동작, 느린동작이다. 음악의 장단에 따라 합치됨으로써 멋을 자아내었다. 이윽고 쟁그랑 소 리가 나더니 검을 던지고 넙죽 절했다. 춤이 다 끝난 것이다. 온 좌석이 텅 빈 것 같이 고요하여 말이 없다. 음악이 그치려는지 여음이 가늘게 흔들리며 소리르 끌었다. 검무를 시작할 때는 절을 하고 왼 손을 가슴에 대고 바른 손으로 전립을 잡는다. 더디게 일어나는 자태가 몸을 이기지 못할 것 같으니 이것이 시조리(始條理)다. 귀밑머리가 흐트러지고 옷자락이 어수선하게 나풀거리며 순간몸을 뒤집으 며 훌쩍 검을 던지는 것이 종조리(終條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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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의 사적 조망 검무의 사적 조망

신윤복의 검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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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검무기> 내용과의 유사성 1.형식 :

2.의상 :

3.특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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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의 사적 조망 검무의 사적 조망

교방가요의 검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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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형식 :

2.의상 :

3.특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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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의 사적 조망 검무의 사적 조망

세시기로 본 검무

1

•현종(顯宗) 대(1669년) 민주면의 『동경잡기(東京雜記)』

<검무지희(劍舞之戱)> : 황창랑(黃倡郞)은 신라 사람이다. 전설에

의하면 나이 7세에 백제의 시가로 들어가 칼춤을 추니 구경꾼이

담처럼 둘러섰다 . 백제의 왕이 그의 소문을 듣고는 불러 당에 올

라 칼춤을 추라고 명했다 . 황창랑은 이에 칼춤을 추다가 백제왕을

찔렀다 . 이에 백제 사람들이 그를 죽였다. 신라 사람들이 그를 가

엾게 여겨 그의 형상을 본떠서 가면 (假面)을 만들어 칼춤 추는 형

상을 하였는데 조선 후기까지 그 칼춤이 전해 내려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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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검무의 사적조망 그림으로 보는 검무의 사적조망

근대시기 기생엽서 속 검무

근대시기 기생엽서 속 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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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의 지정 및 전승 검무의 지정 및 전승

지정 경과 춤 사위 및 전승양상

☞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12호 지정

- 문화재보고서 : 1.지정에 관한 이유서 ,2.머리말, 3. 역 사적 이해 , 4. 무보 성설, 5.

진주검무에 사용되는 자료 와 반주에 사용되는 악기와 악곡 , 6. 보유자조서

-1966년 김천흥/박헌봉/유 기룡

☞ 춤사위 및 그 과정

-한삼사위 : 평사위-배맞추기-숙인사 위 -뿌릴사위-쌍어리-결삼사위-낙삼 사위

-맨손사위 : 맨손입춤-방석돌이-삼진 삼퇴 -앉은사위-앉은 맨손 칼사위 – 앉은 칼사위

-칼사위 : 위엄사위-삼진삼퇴-원형대 형만들기 -연풍대-원형대형풀기-일자 형대형만들기 -인사

☞ 대형

-일자형 대형 마주보기 -이자형 대형 마주보기 -아자형 대형 만들기 - 원형 대형 만들기

http://video.search.naver.com/search .naver?where=video&sm=tab_nmr&

query=%EC%A7%84%EC%A3%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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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의 가치 및 의미 검무의 가치 및 의미

1. 진주검무- 궁중계통 검무의 보존력을 높이 평가 2. 정중동의 묘미를 지닌 최고의 예술

3. 오늘날 싸이의 강남스타일 = 조선후기 검무스타일

4. 역사성, 예술성, 학술성의 대표 문화재

참조

관련 문서

이 때문에 최근 다양한 IT조직에서는 위 어려움들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애자일 방법론을 도입하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이 많아졌고, 이에 따 라 애자일 기법에

해설 일요일 오후에는 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 우리 학교인 우주

그리고 자유시장경제질서와 사적 자치의 원칙과 같 은 헌법상의 기본적 가치들에 대한 희생을 무릅쓰면 서까지 사적 자치를 제한해야 할 공공의

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환경규제와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증가시키며 연구개발투자의 사회적 수익률이 사적 수익률 보다 큰 것으로

-결국, 기존 지표는 계열출자가 가지는 관계적 성격 중 계열출자 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아 이것이 지배주주 사적 이익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반영치 못 할 수 있음...

사적 부패 (private corruption or non-political corruption)는 부정적 이웃효과(negative externality)인 사회적 비용이 크지 않거나 당사자 간에 해결될 여지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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