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아카이브 다시 그리기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1

Share "아카이브 다시 그리기"

Copied!
36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 강홍구의 사진그림에서 수행되는 예술실천의 함의

박 영 선*

1)

Ⅰ. 들어가는 글

Ⅱ. 아카이브, 사진, 그림

Ⅲ. 아카이브 실패시키기

Ⅳ. 인덱스, 몽타주, 여백

Ⅴ. 나가는 글

Ⅰ. 들어가는 글

20세기말부터 국내외 예술현장에서 아카이브 경향 작품들이 상당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 작품 해석을 위한 다양한 담론들도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의미있는 예술실천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온 토착 한국 작가들의 작업에 집중하는 세부 연구 는 충분치 않은 편이다. 이 논문은 이런 상황 인식에서 출발하여, 한국적 현실에

*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

이 논문은 한국미학예술학회 2016년 가을 정기학술대회 기획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원고 를 수정보완하여 게재한 것임.

* DOI http://dx.doi.org/10.17527/JASA.49.0.04

(2)

서 가능한 독특한 통찰을 담은 작품들을 199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으로 발표해온 작가 강홍구의 최근작 ‘언더프린트’를 ‘아카이브’와 한국 사회의 문화적 개인적 기 억의 연관 속에서 살펴보려 한다.1)

강홍구는 입자의 섬세도와 재현력이 뛰어난 아날로그 사진 장치들이 주류를 이루던 1990년대에, 당시 국내 시각예술가들이 거의 관심을 갖지 않던 컴퓨터와 디지털사진 장치를 적극 활용해서 거칠고 생경한 ‘B급’ 합성사진들을 생산했다.

이후 20여 년간 디지털 사진을 주 매체로 한국에서의 전통과 근현대의 얽힘의 양 상을 이미지-기억-장소의 연관 안에서 재환기시키는 작업을 수행해왔다.2) 강홍구 는 2015년 11월 서울 원앤제이갤러리에서 개인전 ‘언더프린트: 참새와 짜장면’을 개최했다. 전시에 출품된 사진그림 연작(이하 ‘언더프린트’로 표기)은 매우 중층적 이고 복합적인 유사-고고학적(para-archaeological) 몽타주들로서, 서구 근대 아카 이브에 대한 독특한 예술적 정치적 언급이었다. ‘언더프린트’의 몽타주들에서는 한 국의 연대기적인 역사적 사건들과 문화적 기억들이 그 연대기성을 파괴당하고 상 실한 파편으로서 개인적 기억 이미지들의 일부로 ‘되돌아와’ 제시될 뿐 아니라, 강 홍구의 기존 작업들의 주요 모티브와 이미지들 역시 변형된 파편으로 ‘되돌아와’

중층적으로 조우, 충돌, 부유, 중첩, 용해되면서 재맥락화하고 있다. 이 과정을 매 개하는 작가의 주된 예술실천이 ‘다시 그리기’ 즉, ‘사진과 그림의 중첩’, 또는 ‘그 림을 통한 사진의 수정보충’이다. 강홍구의 ‘다시 그리기’ 실천은, 19세기 서구 근 대 고고학자와 역사학자 들이 견지했던 관점―아카이브를 객관적 역사와 지식(나 아가 합법적 이성적 권력)의 등가적 상관물로 이해하려는 관점―을 무효화함으로 써, 서구 근대 아카이브를 실패시킨다. 나아가 그의 ‘언더프린트’는 인덱스 효과의 반어적 활용과 몽타주적 재배치, 그리고 메시지를 최소화하는 여백의 구사를 통

1) 여기서의 ‘아카이브’는 서구 근대에서 기획되고 추진되었던 아카이브로 한정해서 사용 함을 밝혀둔다. 자세한 내용은 이 논문 Ⅱ장 참조.

2) 강홍구의 작업 이력 전반에 대한 논의는 졸고, 디지털사진과 개인적 기억: 강홍구의

<그 집>에 나타난 작업수행과정을 중심으로 , 현대사진영상학회지, Vol. 14 (2011.

11), p. 86 참조.

(3)

해 감상자에게 기억과 상상의 자치권을 되돌려주는 생성적인 정치성까지 획득한 다. 이 논문에서는 강홍구의 사진그림 연작 ‘언더프린트’의 실천이 지닌 이러한 함 의들을 서구 근대 아카이브와의 연관이라는 맥락에서 세부적으로 접근해보겠다.

Ⅱ. 아카이브, 사진, 그림

‘아카이브’라는 용어는 서구 문명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가진다. 고대 그리스 어의 동사 ‘아르코(archo)’는 ‘군대를 싸움으로 인도하다’라는 뜻을 가지며, 여기서 확장된 ‘앞서다’, ‘지배하다’라는 파생의미를 갖게 된다. 그 명사형 ‘아르콘(archon)’

은 ‘법적 통치권자’를 뜻하고, 그 통치자가 사는 공간이 ‘아르케이온(arkheion)’이 다. 이 말들과 같은 어원을 가진 아카이브(archive)는 ‘통치권자의 거주 장소’이자

‘국가 공식문헌의 보존 장소’라는 뜻을 동시에 갖는다.3)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 제에 의해 뽑힌 통치권자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아카이브) 내의 일정한 장소 (아카이브)에 통치에 필요한 공식문헌들을 보관해두고 정치적 필요에 따라 폴리 스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데리다는 아카이브라는 말이 ‘아르케(arkhē)’라는 명사형을 지시하고 있음을 환기시켰다. 아카이브는 “물리적, 역사적, 존재론적 의미에서 근원적이고 시원적인 것”을 뜻하는 아르케를 지시할 뿐 아니라, “그보다 더 일찍부터 더 강력하게 ‘법 률학적’ 의미에서(in the nomological sense) 법집행을 강요하는 명령 (commandment)을 지시한다.”4) 이런 맥락에서 아카이브는 모든 사물현상을 지배 하는 원리, 근원, 원인이 되는 진리로서의 지식체계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법과 권력의 명령과 통제 체계가 발생되는 상징적 공간’이 된다. 서구 문명사에서 아카 이브는 그 어원적 실천적 기원에서부터 통제체계로서의 ‘권력과 지식’, 나아가 ‘합

3) http://www.dictionary.com/browse/archives

4) Jacque Derrida, Archive Fever, trans. Eric Prenowitz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pp. 1-5.

(4)

법화된 폭력과 합리성’의 문제에 언제나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 통치권자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아카이브) 안에 그들이 행사하는 통치권의 입법적 정당성을 증명할 공식자료들의 보관소(아카이브)를 마련해두고, 시민들에게 권력 행사의 정당성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때 그 목적에 맞게 취사선택한 문헌체계(아 카이브)를 내보임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일련의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실천 속에서는, ‘통치자와 증거물들의 처소’인 아카이브는 진리와 법의 입증 과정 을 통해서 권력의 주체인 통치자 그 자신을 재귀적으로 지시하게 된다. 아카이브 가 통치자의 거주지이자 공식문헌의 보관소인 것은, 통치자가 행사하는 권력의 정당성이 ‘아카이브를 통해서’ 다시 통치권의 정당성으로 환원된다는 것을 지시하 며, 이러한 환원성은 고대 그리스에 기원을 두는 서구의 이성중심적 사유가 생산 한 진리체계의 자기지시성과도 긴밀한 관련을 가진다.5)

서구 근대6)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아카이브라는 용어가 함축해온 위와 같은 권력-지식-법의 자기지시적인 정당화의 관계를 모티브로 해서 세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합리적 통제체계로 구축하려는 야심에 의해 추동되었다. 이런 맥 락에서, 서구 근대의 기획은 ‘자기지시적 이성을 매개로 한 아카이브 프로젝트’라 고 불러도 무방하다. 이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에서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은 추상 적 지식들의 무수한 분류색인(index)이 집합된 백과사전으로 세계를 표상하는 “18 세기 아카이브”7)를 구축했다. 그러나 19세기 역사가들과 과학자들은 18세기적인 추상적 지식들을 나열하는 분류체계를 넘어서, 인간의 이성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5) 졸고, 존재, 진리, 사진 ,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 (홍디자인 출판부, 2000), pp.

113-115.

6) 독일 역사학자 코젤렉은 서구 근대는 16-19세기까지 400여 년의 형성기를 거친다고 본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서구의 근대를 수학적 이성에 바탕한 추상적 사유가 물 질실천의 작동체계로까지 구현되는 18-19세기에 한정하고자 한다.

7) “18세기 아카이브”와 “19세기 아카이브”는 스벤 스피커가 서구 근현대 아카이브와 20 세기 미술과의 관계를 통시적으로 고찰하면서 사용하는 분류 개념이다. 이 장에서 검 토하는 서구 근대 아카이브 개념은 스피커의 관점을 참조했다. Sven Spieker, The Big Archive: Art From Bureaucracy (MIT Press, 2008), chap. 1-3.

(5)

우발적이고 구체적인 순간들, 운동들, 즉 사건적 과정 그 자체를 ‘잘게 나누어진 측정된 시간’과 ‘잘게 나누어진 고정된 범주로서의 공간’의 이름으로 통제하고자 했다. 그들은 우발적일 뿐인 현재 순간의 측정과 기재가 가능할 것이라는 수학적 상상, 나아가 자연의 유동적인 힘의 측정과 기재 역시 가능하다는 과학적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수량적이고 균질적인 직선의 진행체계로서의 선형적 시간관과 유 동성 자체인 우주를 범주적으로 분할하는 공간화8)에 입각한 “19세기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19세기 아카이브는 권력과 지식과 법의 장소이기를 넘어 측정가능한 시간 자체의 퇴적층을 찾기 위한 공간, 즉 역사적-과학적-고고학적 장소가 되었 다. 우연한 시간과 유동적 공간을 측정가능한 것으로 전환시키려는 서구 근대의 과학적 역사적 야심은 ‘진실한 기록’에의 열망을 가장 적극적으로 매개하는 장치 인 ‘사진’의 상징적 야심이기도 했다.

사진은 이미 그 발명 초기에 천문학자 프랑수아 아라고에 의해 공식적으로 보고되어 프랑스 의회로부터 과학 탐구를 위한 탁월한 장치로서 공인된 바 있으 며, 생리학자 에티엔 쥘 마레는 동물뿐 아니라 지구와 대기 운동을 연구하기 위 해 ‘사진총(fusil photographique)’이라고 불리는 연속사진 장치를 개발했다. 또한 프랑스 경시청 직원이자 생체인식기술(biometrics) 연구자였던 알퐁스 베르티용이 인류학의 기술 분과인 인체측정학과 사진기술을 결합시켜서 법집행을 위한 범죄 자 분류-증명 체계를 고안했다.9) 이질적이고 우발적인 사건들의 연쇄, 그리고 복 잡한 유동성을 보이는 물질현상을 분절적 단위의 측정 대상으로 환원시킴으로써 통제가능한 객관적 지식과 합리적 권력의 체계를 구축하려 한 19세기 과학자와 역사가들의 아카이브적 야심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술 장치 가 필요했다. 그 필요에 의해 선택된 장치가 사진 매체이다. 그러므로 사진은 (데 리다의 표현법을 빌어 말하자면) “물리적, 역사적, 존재론적 의미에서” 아카이브 를 지시하며, “법률학적 의미에서”는 그보다 더 앞서서 더 강하게 아카이브를 지

8) 18-19세기 서구 학계에서 수행된 이 같은 실천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알프레드 N. 화 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 오영환 옮김 (민음사, 1991), 제10장 참조.

9) Allan Sekula, “The Body and the Archive”, October 39(1986), pp. 18-19.

(6)

시한다. 19세기 아카이브의 전통 속에서 사진은 존재와 진리의 강력한 증거로서, 지식-법-권력의 순환적 통제체계가 원활히 작동하도록 매개한다.10) 이것이 사진 이라는 장치가 지닌 문명사적 기원의 큰 줄기이다. 사진은 그 태생에서부터 서구 근대의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추동하는 과학기술의 산물이며 선형적 진보를 믿는 역사주의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장치이다. 그러므로 사진이 구질서를 전복하는 근 대적 의미에서의 예술의 매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 매체 자체의 기원에 대한 재 검토와 탈구축 작업이 요청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사진의 발명이 그 당시 화가들에게 큰 위협이면서도 매혹으 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19세기 아카이브가 이룬 매우 효율적이고 강력한 분절과 통제의 체계가 이룬 기술적 성취에 대한 양가적 태도였다고 하겠다. 현생 인류의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림의 초역사적인 전통은 19세기 서구인들이 수 행하려는 과학적 역사적인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림은 분 절적이기보다 종합적11)이며, 비가시적인 기억을 측정불가능한 물질의 유동성에 기대어 가시화하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화공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유는 자신 이 긋는 선의 진행이나 눈앞에 있는 모델을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림의 필선은 “시각의 영역 밖으로 달아난다.”12) 데리다는 진리의 시각적 재현성을 추구하는 서구 이성중심주의 형 이상학을 탈구축하고자 했다. 그런 그가 제시하는 그림그리기와 기억에 대한 현 대적 해석은 동아시아를 포함하는 중국문화권에서 오랫동안 견지되어온 ‘그림그 리기’의 수행론인 화론(畫論)을 상기시킨다. 동아시아 문인들에게 그림과 글쓰기 는 사물의 외양이 아니라 천지만물에 생동하는 비가시적인 우주적 기의 유동적 흐름을 자신의 심신을 통해 일거에 누리고자 하는 수행이었다.13) 그림은 “존재의

10) 아카이브와 사진의 관계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졸고,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디지털 아 카이빙과 사진의 상호관계 , 기초조형학연구 Vol. 15 No. 6 (2014. 12.) 참조.

11) 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이재원 옮김 (이후, 2004), p.75.

12) Jacque Derrida, Memoires of the Blind: The self-portrait and other ruins, trans.

Pascale-Anne Brault and Michael Naa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3), p.

45.

(7)

본질이나 우리가 추구해야 할 수단에 관해 어떠한 확실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14) 그들에게 그림그리기는 보이지 않는, 망각된 근원적 기억을 그림을 그 리는 자신의 현재 속에서 단번에 되살려내는 기억실천이라 할 수 있다.15)

사진의 발명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림과 사진의 특성을 비교하는 다양한 담 론들이 제시되었다. 그 내용의 세부를 떠나서 이러한 비교 담론의 양적 방대함은 서구 근대 아카이브를 축으로 해서 이 두 매체가 인간에게 매우 대조적인 세계 경험과 실천을 가져다주기 때문일 것이다. 보다 확장해서 말하자면, 인간의 신체 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와 기계장치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를 구분하는 큰 기준은 분절성의 여부이다. 윌리엄 미첼에 따르면, 후지산을 그린 소묘와 후지산의 지진 을 기록하는 지진계 그래프에서, 후지산 그림은 농밀하고 충만한 아날로그적 상 징이지만 지진계 그래프는 농밀하면서도 부분적으로는 아날로그적이고 부분적으 로는 디지털적이다. 그림의 선의 굵기에서 나타나는 모든 차이, 색이나 질감의 모 든 변화는 그림에 대한 감상자들의 독해에 다양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그 지체로는 확정적이지 않다(측정불가능하다). 그와 달리, 그래프에 대한 감상자들 의 독해는 완전하게 차이화되지 않는다. 그래프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측정가능 한 좌표의 위치값이기 때문에, 그래프가 지닌 잉크의 색, 선의 굵기, 종이의 색조 나 질감에서의 차이는 의미의 다양한 차이를 생산하지 못한다.16) 이런 맥락에서 사진 장치가 생산하는 이미지 역시 일종의 그래프로 간주할 수 있다.

강홍구가 디지털사진의 유희적 냉소적 조작으로부터 디지털사진 위에 그림 을 그리는 실천으로 이행한 것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서구 근대 아카이브 프로 젝트에 깊이 연루되어 있는 사진이 지닌 그래프로서의 혐의와 그에 따른 의미작 13) “夫一畵, 含萬物於中” 石濤, 「苦瓜和尙畵語錄」, 『中國畫論類編』上, 兪崑 編著, (華

正書局, 1973), p 149. 김용옥, 석도화론 (통나무, 2012), p. 77.

14) 양신 외, 중국 회화사 삼천년, 정형민 옮김 (학고재, 1999), p. 95.

15) 동아시아인들의 산수화 그리기와 기억 문제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김우창, 풍경과 마음 (생각의나무, 2006), 제4장과 졸고, 실재에의 기억: 김장섭과 한국적 모더니티 의 심연」, 김장섭: 풍경너머풍경 (컬처북스, 2012) 참조.

16) W. J. 미첼, 아이코놀로지: 이미지, 텍스트, 이데올로기, 임산 옮김 (시지락, 2005), pp. 98-99.

(8)

용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Ⅲ. 아카이브 실패시키기

내 사진은 전통적 의미의 사진이 아니라 위장된 사진이다. 그 위장은 사진 의 인증력을 비롯한 관념에 대한 불신의 결과이다. 그리고 그 불신은 사진 뿐 아니라 사진에 기반을 둔 모든 시각적 매체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불신이다. (중략) 대중매체 시대에 특수한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미술 혹은 사진은 그러한 매체들에 의해 매개될 수 없는 욕망에 대한 대안으로 존재 한다. 세계에 대한 개인적 시선이 무의미한 시대에 심미성과 신화화라는 함 정을 피할 수만 있다면 개인적 시선은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따라서 미 술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더욱더 개인적으로 되거나, 개인적인 시각을 영향력 있는 대중매체의 시각과 최대한 충돌시키는 길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 수 있는 탁월하고도 적절한 방법이 있을까? 물론 나는 디지털 사진을 그 수단으로 선택했지만…17)

2009년에 쓴 위의 에세이에서 강홍구는 사진의 위장된 인증력과 그를 둘러 싼 관념에 대한 불신을 표하면서 그 대항 전략으로 “사진을 위장한 사진”을 제작 한다고 말한다. 그가 누누이 표명하는 사진으로 대표되는 서구 근대의 지식-권력 -법을 생산하고 통제하는 체계에 대한 깊은 불신(“사진뿐 아니라 사진에 기반을 둔 모든 시각적 매체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불신”)은, 사진의 인증력의 근거 라고 하는 물리적 지시성 즉 지표(index)라는 것이 비어있는 기호임에도 불구하 고 이를 적극적으로 오인하는 서구 근대 지식과 권력 체계의 암묵적 합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한다.18) 사진의 “위장된 인증력”은 그것이 매개하는 서구의 19세기

17) 강홍구, 캔버스-카메라-도망자 , 인물과사상 (인물과사상사, 2009. 9), pp. 80-81.

18) 주형일에 따르면, 사람들이 지표성과 인과성을 동일시하지만 엄밀히 얘기해서 지표성 과 인과성은 다르다. “인칭대명사나 대상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지표로 분류되기는

(9)

아카이브의 객관성을 결국은 위장된 것, 허구로 만들 수밖에 없다. 또한 사진의 인증력을 담보하는 기호적 성격인 지표성의 원어인 ‘index’가 가진 ‘색인 목록’이 라는 뜻은 바로 서구 근대 아카이브의 가장 기본적 특성을 지시하고 있다.19) 요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진 것처럼, 사진의 위장된 인증력은 권력자의 통제와 관 리를 정당화하는 지식의 진리성과 사실성을 지지하는 (허위의) ‘물증’으로 기능하 는 다양한 아카이브들의 위장된 인증력을 압축하고 있다.20)

앞에 인용한 글을 쓴 다음해(2010년)에 강홍구는 개인전 ‘그 집’을 개최했다.

이 전시에서 그는 재개발로 철거되기 위해 비워진 집들을 찍은 디지털사진 파일 들에서 컬러를 제거하고 흑백으로 프린트한 뒤, 그 위에 자신이 기억하는 색을 물감으로 덧칠한 사진그림 연작 ‘그 집’을 발표한다. ‘그 집’에서 강홍구가 수행한 예술실천은, (사진의 “위장된 공신력”에 기초한) 이미지와 지식의 생산-통제 체계

하지만 자신들이 지칭하는 대상과 인과관계를 맺지 않는 지표가 존재한다. 또한 발자 국이나 노크 소리 같은 흔적도 특정한 한 동물이나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 니라 그런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부류의 동물이나 사람 일반을 지칭할 뿐”이라고 말한 다. 즉 지표는 구체적인 특정 실체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 존재가능 성을 지시할 뿐이다. 사진 역시 그러한 (의도적으로 조작될 수 있는)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다양한 대상들의 일반적 존재 가능성을 지칭할 뿐이다 (주형일, 사진: 매체의 윤리학, 기호의 미학, 인영, 2006, pp. 199-200). 스티글러에 따르면, 사진은 빛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 대상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진이 사물에 대해 갖는 간접성과 광자(photon)에 대해 갖는 직접성으로부터 사진의 유령성이 가능 해진다 (베르나르 스티글러, 구분되는 이미지 , 에코그라피 [민음사, 2002], pp.

257-260). 지표와 사진의 인증력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졸고, 디지털사진과 개인적 기억: 강홍구의 <그 집>에 나타난 작업수행과정을 중심으로 , 현대사진영상학회지

Vol. 14 (2011. 11), pp. 81-91 참조.

19) index는 어원상 ‘안으로, 무엇을 향해서’의 뜻과 나아가 ‘원인을 만든다’는 뜻을 가지게 되는 접두어 ‘in-’과 ‘보여주다, 선언하다, 가리키다, 가르치다’의 뜻을 두루 가진 연결 사 ‘dec-’에 명사종결형 x(s)가 결합된 말로서, ‘어떤 것에 대한 지식으로 안내한다’는 함축을 담고 있다. http://www.dictionary.com/browse/index

20) 권력자의 통제를 체계화하고 정당화하는 객관적 상관물로서의 아카이브와 사진의 사 회적 기능에 대한 중요한 분석으로는, 앨런 세큘러의 앞의 논문과 이경민의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제국의 렌즈 등이 있다.

(10)

에 의해 부과된 ‘사진의 색’을 벗겨내고, 색이 벗겨진 사진의 윤곽 위에, 작가가 사진 찍었던 ‘사라져버린 그 집의 그 색’을 기억해내며 붓질을 통해 색을 덧입힘 으로써, ‘사라져버린 그 집’들을 ‘지금의 이 집’들로 되살려내는 것이었다.21) 그의 사진그림 작업은, 그것이 아무리 합성 조작된 것이어도 무의식의 차원에서까지 (위장된) 인증력과 준과학적 설득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그래프로서의 사진의 힘에 대항한다. 그것은 사진적 기억의 오류 내지 한계를 개인적 기억의 지극히 개별적인 물질적-육체적 구체성을 통해 수정보충하기, 즉 ‘덧그리기와 다시 그리 기’를 통해 ‘아카이브 실패시키기’로 나아가는 적절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2015년 에 발표된 보다 중층적이고 복잡해진 또 다른 사진그림 연작 ‘언더프린트’에서는 추상적인 대표기억이 아니라 “감각 가능한 구체적인”22) 기억들을 보다 적극적으 로 현재화함으로써 아카이브 실패시키기가 더욱 생성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그 세부를 검토하기 위해, 앞서 논의한 서구 근대 아카이브와 사진의 위장된 인증력 과 관련하여 ‘언더프린트’라는 말이 함축하는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더프린트는 돈이나 우표의 밑바탕에 깔리는 희미한 인쇄를 말한다. 이번 내 작업들도 그와 비슷하다. 여러 곳에서 찍은 벽 혹은 담 사진 위에 뭔가 를 그린다는 점에서.23)

언더프린트는 돈, 수표, 우표 등 국가나 그 밖에 유사한 주요 자본권력기관 에서 발행하는 (대용)화폐나 중요문서의 위조나 복사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미지 나 반복패턴의 기호들을 종이 바탕에 인쇄하는 기법이자 그 결과로서의 이미지인 데, 그 물건이 ‘진짜’임을 발행처의 권위로써 인증하는 기능을 한다. 말하자면 언

21) 사진과 그림의 매체적 차이, 강홍구의 사진그림 연작 ‘그 집’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졸 고 디지털사진과 개인적 기억 참조.

22) Georges Didi-Huberman, “To Render Sensible”, What is a People?, Alain Badieu et al.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6), p. 65.

23) 강홍구, 개인전 ‘언더프린트: 참새와 짜장면’ 팸플릿 (원앤제이갤러리 [서울, 2015]), 작 가노트.

(11)

더프린트는, 그것이 인쇄된 화폐나 기타 문서가 담고 있(다고 가정되)는 교환가치 와 정보의 진리성을 권력의 이름으로 인증하는 (상징적) 지표index이자 서구 근 대 아카이브와 자본주의적 교환가치를 지탱하는 (상품아카이브의) 색인목록index 으로 기능한다. 언더프린트의 대조쌍인 ‘오버프린트’는 화폐나 우표의 유통 과정에 서 보다 특수한 추가 가치나 용도가 발생했을 때 덧 인쇄하는 것이다. 오버프린 트는 특히 서구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에서 자국의 화폐와 우표를 별도 로 유통시킬 때 식민지 지역의 이름과 현지 가격 등을 추가 인쇄하는 데에 주로 사용되었다.24) 요약하자면, 언더프린트와 오버프린트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이후 서구 근대 산업자본주의 체계의 원활한 작동에 필요한 자본권력의 적절한 유통과 관리를 위해 교환가치를 독점적으로 물화시키는 매체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사진이 서구 근대 아카이브, 특히 19세기 과학과 역사학의 대중화 및 자본 주의 상품형식의 범세계적 이미지화를 매개한 주된 기술매체로서 기능한 것과 긴 밀히 연관된다. 이들은 모두 부재하는 실재들(사용가치, 경험적 실체로서의 과거 등)을 물화시키는, 즉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서 가리키는 모순의 지표index이며, 근대를 지탱하는 지식과 권력 및 상품 아카이브 체계의 색인index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홍구가 자신의 작업을 이러한 언더프린트와 “비슷한 것”으로 명명하면서 사진 위에 이런저런 생각나거나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글자를 쓰는 실천은, 언더프린트로 상징되는 근대적 지식체계의 물리적 기호적 상관물인 아카이브와 인덱스의 작동을 그의 특유의 “위장” 전술로 교란시키면서 (벽)사진들이 가진 독 점적 인증력을 덧그리기와 다시 그리기를 통해 분산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제 ‘언더프린트’ 작업의 세부를 살펴보자. ‘그 집’에서는 기본적인 사진이미 지의 윤곽을 1차 조건으로 수용하면서 그것을 수정보충함으로써 재배치하는 방식 으로, 즉 “사진을 따라서 동시에 사진을 지우면서”25) (최소한으로) 그림을 그렸다.

‘언더프린트’에서는 사진이미지의 세부 윤곽을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24) https://en.wikipedia.org/wiki/Underprint

https://en.wikipedia.org/wiki/Overprint#Colonial_overprints 25) 졸고, 디지털사진과 개인적 기억 , p. 90.

(12)

(이미지의 물질적 지지대인 인화지를) 그리기라는 행위를 자극하는 바탕이자 매 체이면서, 망각된(잠재된) 유년의 기억이 깨어나서 감상자의 현재적 경험을 결합 하고 자극하는 시공간 또는 장(場)으로 적극적으로 용도를 변경시킨다.

담 사진들은 서울 재개발 지역, 창신동, 한남동에서 부산, 청주, 전남 신안 군에서 찍었다. 어디엔가 쓸 수 있을 것 같아 찍어 놓은 것들이다. 담 위에 왜 뭔가를 그리냐고? 그냥 그리고 싶어서였다. 십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 담은 일본이나 유럽과 전혀 다르다. 한국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엉성함, 정리 덜 됨, 내버려 둠에 가까운 분위기. 그리고 그건 비싼 건물이나 부잣 집 담이 아니라야 더 두드러진다.

그릴 내용들을 특별히 정하지도 않았다. 사진을 프린트해서 붙여놓고 뭔가 를 그리고 싶어질 때까지 드로잉을 하거나 생각을 하다 떠오르면 그렸다.26)

강홍구는 ‘언더프린트’ 작업에서 사진을 바라보며 “드로잉을 하거나 생각을 하다 떠오르면” 이런저런 이미지들을 그렸다. ‘그 집’ 작업에서는 대부분의 작품에 서 사진에 남아 있는 집들과 사물들의 윤곽을 바라보며 동시에 색을 ‘기억해내고’

그 윤곽 위에 덧입히는 작업을 했지만[도 1], ‘언더프린트’ 연작에서 사진은 이제 배면이자 프레임이 되고, 강홍구는 의도와 계획을 최소화하고 벽(사진)을 보며 이 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섯 개의 의자와 파파 스머프와 고길동씨를 그리기도 하고[도 2], 노랗고 빨간 승용차와 나무 한 그루를 그리기도 한다[도 3]. <의자>[도 2]에서 다섯 개의 의자와 스머프와 고길동 씨는 그들 상단의, 누구누구들의 연애를 지시하는 듯한 푸른색 낙서와 무언가를 붙였 다 뗀 자국들, 담 안쪽으로 보이는 집의 창에 강홍구가 끼워 넣은 겸재의 <인왕 재색도> 복제사진과 거의 대등한 비중을 지닌다.

26) 강홍구, 개인전 ‘언더프린트: 참새와 짜장면’ 팸플릿 (원앤제이갤러리, 2015), 작가노트.

(13)

[도 1] 강홍구, <그 집 물>, 2010, 피그먼트프린트, 잉크, 아크릴물감, 127x100cm

[도 2] 강홍구, <의자>, 2015, 사진 위에 아크릴물감, 150x100cm

[도 3] 강홍구, <자동차>, 2015, 사진 위에 아크릴물감, 170x100cm

이러한 배치는 <자동차>[도 3]에서 변주된다. ‘차고 앞 주차금지’라고 써진 벽의 사진 위에 나란히 그려진 노란색 차와 나무 아래 빨간색 자동차, 그 문 위 의 트럭은 사진의 왼쪽 프레임을 향해 있다. 빈 집(충신동 1-134번지)의 잠긴 문 위의 일련번호와 딱지들은 공권력이 퇴거와 철거 명령을 집행하기 위해 부여한 일종의 분류색인이다. 빈집들은 그 자체가 이미 아카이브가 된다. 노란색 차가 1972년에 현대가 생산한 한국 최초의 소형차 포니이고 나무 아래 빨간색 차가 2015년 경찰이 단순자살로 수사를 종결한 국정원 직원의 마티즈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일어나는 집단적 기억의 파편들의 무거운 충돌은, 문 위의 천진한 트럭이 작가의 아들이 마치 벽에 낙서하듯 그린 것임을27) 알게 되면, 다시 출렁인다. 자

(14)

동차를 둘러싼 개인적 기억과 집단적 기억이 중첩하는 몽타주 <자동차>에서, 길 고 짧은 시간차를 두고 서로 다른 누구누구들이 벽과 사진 위에 남긴 흔적들은 강홍구의 표현대로 ‘딱히 중요치 않은’ 대등한 긴장을 주고받으며 감상자들로 하 여금 자신들의 망각된 과거를 현재화하도록 이끈다. 이런 대등한 배치는 ‘언더프 린트’ 연작의 모든 작품에서 확인된다. 사진 찍기 전에 이미 그곳에 자리 잡은 낙 서나 흔적들의 위치가 존중되고, 그 자리를 피해서 그림이 그려진다. 이러한 병렬 몽타주식 배치에 의해 <의자>와 <자동차>는 실제의 벽에 누군가 낙서했을 시간, 누구누구들이 벽에 벽보나 스티커를 붙이고 떼기를 거듭했을 시간들, 그 후 벽이 강홍구에 의해 사진 찍혔을 시간, 그리고 강홍구가 그 벽 사진 프린트 위에 그림 을 그린 시간, 고길동과 스머프의 이야기를 즐긴 무수한 누구누구들의 시간, 한국 최초의 소형 승용차 생산과 국정원 자살사건에 연루된 천지만물의 시간 들 사이 의 격차가 유지된다. 물론 <의자>의 경우, 겸재가 인왕산을 바라보고 유람하고

<인왕재색도>를 그렸을 시간들, <인왕재색도>가 누구누구들에 의해 감상되고 기 억되었을 시간들, 원본이 누구누구에 의해 사진찍혀지고 복제파일이 생성되었을 시간들, 강홍구가 그 복제파일을 퍼 와서 사진찍힌 창틀에 다시 얹었을 시간의 층들이 더해진다. 이것은 <도둑고양이>, <뭉크>, <세잔>, <고호> 등 조선 민화 나 서양화 이미지를 몽타주한 작품 모두에 해당된다. 이 시간적 격차의 공간적 중첩과 병렬, 즉 압축에 의해 생성되는 긴장28)이 누구누구들의 구체적이고 개별 적인 행위가 생생하게 진행되었던 시간의 지층대를 형성함으로써 <의자>와 <자 동차>는 준(準)고고학적인 현장성을 획득하며 감상자의 현재 속으로 되돌아온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 작품의 저자는 과연 강홍구 한 사람 일까? 이 질문에 대해 ‘차용’이라는 현대미술의 관례를 답으로 제시할 수도 있겠

27) “자동차 그림의 노란색은 첫 국산차 포니, 빨간 차는 자살한 국정원 직원 차입니다.

뭐 중요치는 않아요. 그리고 트럭은 아들이 그냥 그린 거네요.” 2016년 8월 16일자 작 가와의 메일 인터뷰 중 일부.

28) 시간적 격차의 공간적 압축에 의한 긴장은 곧 ‘여백(餘白)’ 효과라 할 수 있다. 강홍구 의 작업은 산수화의 여백 문제를 현재화하는데, 이 문제는 이 논문 Ⅳ장에서 다룬다.

(15)

다. 그러나 ‘언더프린트’에서는 ‘단독 저자’ 또는 ‘주체로서의 인간’이라는 관념에 대한 믿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누가 그리는가(만드는가)의 문제는 간단치가 않다.

누군가 벽을 만들었고, 누군가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 그려진 벽을 사진 찍고, 그 사진 위에 다시 그림을 그렸다. 베르너 헤어조그의 영화 <잊혀진 꿈의 동굴>은 1994년 프랑스 남부 아르데스 협곡에서 발견된 3만 2천 년 전 고대 인류 의 벽화가 그려진 ‘쇼베 동굴’에 관한 고고학적 기록영화다. 이 영화에서 고고학자 들은 동굴 벽화의 인접해 있는 두 개의 그림 사이에 약 5천 년의 시간 격차가 있 다는 분석 결과를 보고한다.29) ‘언더프린트’ 연작의 대부분 개별 작품에서 보이는 시간적 격차 유지와 공간적 병렬의 몽타주 방식은 고대 동굴 벽화에서 보이는 시 간적 격차와 공간적 인접성을 ‘압축’하고 있다. 고대 동굴벽화의 고고학적 시간의 중층성을 압축적으로 인용한 ‘언더프린트’ 연작은 ‘그림-건축-사진-그림’으로의 매 체 이동과 순환을 거듭하면서 이 매체들의 중층적 교류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시공간의 중층적 공존과 매체적 중첩을 통해 ‘세계(관)의 확장’을 일으키는 이같 은 유사고고학적 배치에 의해, 서구 근대의 산물인 ‘예술작품’과 그 제작주체로서 의 ‘작가’라는 제한된 관념이 상대화되고 동요되는 효과가 일어난다.

주체 관념의 약화와 시공간 및 물질적 실천 층위의 확장은 다시 비인간의 영역으로 전환된다. <참새>[도 4]에서 벽 사진의 오른쪽 하단 위에 강홍구가 영 어로 쓴 질문 “Where am I?”의 주체는 강홍구에서부터 (사진 찍힌 돌 위에 그려 져서 앉게 된) 참새에게로 확장되며, 이는 강홍구의 초기작 <나는 누구인 가?(Who am I?)>[도 5]에서의 강홍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불러들여서, 지금(그때) 어디에 있는지(있었는지)에 대한 참새 자신의 위치에 대한 질문으로 변화시킨다. ‘언더프린트’ 작업에서 ‘I’는 강홍구에서 참새로 바뀐다. 강홍구는 서 구 근대인들이 ‘회의’라는 방법적 사유를 통해 획득한 자아 즉 주체의 개념을 언 제나 대문자로 표기되는 1인칭 주어 ‘I’로써 지시하면서, 동시에 ‘I’에 관한 질문을 본질에서 위치로, 질문의 주체를 인간에서 비인간(참새)로 전환시키고 있다.

29) 베르너 헤어조그, <잊혀진 꿈의 동굴>, 2010.

(16)

[도 4] 강홍구, <참새>, 2015, 사진 위에 아크릴 물감, 240x110cm

[도 5] 강홍구, <나는 누구인가(Who am I?)>, 1996-1999경, 가짜 영화 스틸

이러한 해석은 작가에 의해 의도된 것이라기보다 각 감상자의 개별 체험의 조건 속에서 우발적으로 생성된다. 강홍구는 이미지들 간의 의도된 연결성을 최 소화하고 해석과 효과의 우발성을 허용하는 ‘여백’을 가시적 비가시적으로 비중있 게 배치함으로써, 관리되고 통제된 아카이브의 의도된 색인들 사이의 틈을 개방 시켜서 아카이브 실패시키기의 전략을 이끌어간다. 아카이브를 실패시키기 위한 강홍구의 재배치 전략에서 ‘여백’은 상당히 중요하다. 각 이미지들은 그 이미지들 이 향유(되었다고 역사가들에 의해 지정)된 사회문화적 의미맥락에서 떨어져 나 와 벽 사진 위에 (떠다니듯이) 재배치되어 있다. 과거는 “구제되어야 할 비밀스런 실마리를 가지고 있”으며, “과거를 역사적으로 분절하는 것은 그때 정말 어떠했는 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면,30) 감상자에게는 이 부유하는 과거에 서 온 이미지들의 가능한 맥락들을 개별적으로 (그리고 의식되지는 않겠지만 집 단적으로) 재현장화할31) 여지(餘地)가 주어진다. 과거를 역사적으로 분절하고 선

30) Walter Benjamin, “On the Concept of History”, Walter Benjamin: Selected Writings (이하 SW로 약기), Vol. 4, Harvard University, 2003, pp. 390-391.

31) 벤야민은 19세기 서구 주류 아카이브, 그리고 전통을 파괴하며 선형적으로 진보하는 역사적 유물론의 역사관을 비판하면서 과거의 착취가 아니라 과거의 구원과 현재화를 실천하는 유대적 역사관을 제시한다. Walter Benjamin, “On the Concept of History”,

“Paralipomena on the Concept of History”, SW, Vol. 4, pp. 389-411. 그런 맥락에서 김남시가 제안하는 “재현장화” 개념은 적절하다. 김남시는 벤야민의 역사철학에 대한

(17)

형적 시간의 연대기로 기술하는 것은 서구 근대 아카이브의 방식이다. 유년의 기 억, 개인적 기억과 집단적 기억의 중첩을 통한 집단적 기억에로의 부단한 생성적 재접속에 의해서 가능해지는 ‘지금 여기의 살아있는 역사’는 19세기 서구의 선형 적인 역사적 아카이브를 탈구축하는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다시 벽으로 돌아가 보자. 사람이 사는 공간들 사이의 경계 인 담과 벽은, 작가의 유년 시절에는 주로 동네 어린아이들(과 간혹 어른들)의 낙 서판이었고, 국가 권력자들의 반공이데올로기와 경제개발정책이 선전되는 게시판 이면서, 끊임없이 재개발이 진행되는 대도시에서는 빈민들에게 법(권력)의 이름으 로 자진철수를 명령하고 강제철거의 임박을 알리는 고지 스티커와 분류 번호가 낙인찍히고 매겨지는, 사라질(사라져버린) ‘그 집’들의 피부였다. 이러한 담벼락의 용도는 한국 근현대기에 그치지 않고 고고학적 시공간으로 확장된다. 몇만 년 전 고대인들은 동굴의 암벽에 들소, 동굴곰, 털코뿔소, 매머드 등 지금은 멸종된 동물 들을 심혈을 기울여 그렸다. 그것은 생존욕구와도 관계있다.32) 고대인들은 수렵의 대상인 짐승들을 벽에 그렸고, 현대의 강홍구는 짜장면과 식빵을 벽에 그린다. 그 리고 고대 인류의 야생동물들이 현대의 동굴일 어느 건축 공사장 속으로 되돌아 온다[도 6-9]. 벽이 집(안)과 밖의 경계라는 점에서 그것은 솟대, 큰 나무와 연결 되며, 성과 속을 구분하는 경계이면서 그 양자가 만나는 (서로에게 되돌아가는) 양가적 장소이기도 하다. 강홍구에게 벽은 이러한 고고학적 양가성과 만나는 원 초적 현장일 것이다. 벽-솟대-큰 나무의 양가성은 사람의 경우에 국한되지 않는 다. 짐승들이 나무에 몸을 문지르거나 배설물을 남겨 자신의 영역(공간을 지배하

논문에서 벤야민의 역사관 이해의 핵심어인 “Eingedenken은 회억으로 번역되어야 한 다”고 제안한다. 그는 과거를 단순한 기억의 대상으로 보는 회상이 아니라, 과거를 현 재 속에서 구원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재현장화시키는 기억실천이 “회억”이라고 논한 다. 회억과 재현장화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김남시, 과거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발터 벤야민의 회억 개념 , 영미문학연구 안과밖 제37호 pp.243-272 참조.

32) 인류의 모든 고대 문명은 벽에 그림을 남겼다. 무수한 성스러운 제의들과 사건들이 수만 년의 시간에 걸쳐 벽에 새겨지고 그려졌다. 매리 홀링스워스, 세계 미술사의 재 발견-고대벽화미술에서 현대 팝아트까지, 제정인 옮김 (마로니에북스, 2009) 참조.

(18)

는 힘)을 표시하는 공식적이면서도 (배설이라는) 은밀한 양가적 행위가 발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집과 벽의 이 같은 고고인류학적 함의는 스피커가 말하는 한 일화를 통과하면서 다시 강홍구의 ‘언더프린트’가 환기시키는 아카이브적 실천과 접속할 수 있다.

[도 6] 강홍구, <짜장면>, 2015, 사진위에 아크릴, 240x100cm

[도 7] 강홍구, <빵>, 2015, 사진 위에 아크릴, 100x135cm

[도 8] 강홍구, <곰>, 2015, 사진 위에 아크릴, 100x35cm

[도 9] 강홍구, <고릴라>, 2015, 사진 위에 아크릴, 100x35cm

서구 근현대 아카이브와 20세기 미술과의 관계에 대한 통시적 고찰을 한 책

빅 아카이브에서 스피커는 앤디 워홀의 ‘타임캡슐’에 들어있던 30년 전의 콩코 드기 수집품을 보게 된 일화를 얘기한다. 그것을 보기 직전에 콩코드기 추락사건 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는 마치 그 수집품들이 30년 후에 일어날 사건들을 미리 추념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19)

아카이브가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카이브와 대면하는 우리가 의식할 수 있 는 것(what our consciousness is able to register)과 거의 일치하지 않는 다. 아카이브는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경험의 부재를 기 록한다. 아카이브들은 어떤 경험이 그 원래의 장소에서 사라져버린 바로 그 상실의 지점을 표시할 뿐이다. 따라서 어떤 아카이브에서 우리에게 주어지 는 것은 당연히, 그 최초의 장소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을 바로 그것이 아니다. 아키비스트의 통제를 벗어나는 아카이브의 어떤 부분, 말하자면 (아키비스트의) 발견의 도구들로는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아카이브 너머”

의 어떤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이런 “너머의 것”은 운하임리히 (unheimlich, 섬뜩하다)고 말할 수 있다. 집(Heim)과 숨은(heimlich)이라는 어원을 갖는 이 말은, 아카이브와 여러 가지로 접속된다.33)

아카이브 너머의 것이 불러일으키는 섬뜩함을 나타내는 형용사 ‘운하임리히’

는 집(Heim), 즉 안으로(index의 ‘in’)34)서의 장소(즉 아카이브)를 상실하고 유령 처럼 떠돈다는 의미로 확장된다. ‘운하임리히’라는 말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아 카이브에 관한 정조를 함축한다.35) 집-안-아카이브 너머의 것은 집을 구성하는 공간의 테두리인 벽이나 담을 그 경계로 한다. 강홍구의 ‘언더프린트’가 수행하는 재현장화―텅빈 지표적 상상, 그리고 실재의 부재를 은폐하는 상징체계로서의 근 대적 아카이브, 이 양자 사이의 공모에 사로잡힌 벽 ‘사진’의 용도를 고고인류학적 현장으로서의 벽으로 바꾸어놓는 예술실천을 이런 맥락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스피커는 앞서 인용된 책에서 ‘실패한 아카이브’의 사례로 일리야 카바코프의 <열 여섯 줄>(1984년 설치작품)을 들었다. 그는 노버트 위너의 피드백으로서의 역사

33) Sven Spieker, The Big Archive, p. 3.

34) 이 글의 각주 19 참조.

35) 스피커는 이 섬뜩함을 프로이트의 정의 즉, 어떤 기록이 예기치 않게-우발적으로 ‘되 돌아옴’과 관련시킨다. 그 예기치 않게 되돌아와 섬뜩함을 자아내는 기록이 우리 의식 의 기재록에 빠져있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친숙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Spieker, The Big Archive, pp. 3-4. 지그문트 프로이트, 예술, 문학, 정신분석, 정장진 옮김 (열린책들, 2008), pp. 401-451. 아카이브 너머로 나갈 때의 이런 섬뜩한 실패를 피하 기 위해, 서구 근대의 19세기적 아카이브가 기획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

의식 개념의 성공적 사례인 양키 바스켓메이커의 공구 수집물, 즉 공구 아카이브 와 <열여섯 줄>을 비교하면서, 카바코프의 <열여섯 줄>의 아카이브가 역사의식 의 수립에 어떻게 실패하는가에 대해 얘기한다. 카바코프의 모든 것들(쓰레기들) 을 모아놓은 ‘잡동사니들’의 아카이브는 살아있는 과거에 대한 준객관적 상관물이 되지 못하고 역사적 체계화에 실패함으로써, “질서와 혼돈, 조직과 무질서, 목소리 의 존재와 물체들의 침묵 사이에 놓여 있는 아카이브의 불안한 위치를 좀더 일반 적으로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36) 그러나 강홍구는 카바코프와 다른 전략을 택 한다. 카바코프처럼 모든 잡동사니를 모아놓아 결과적으로 아카이브를 실패시키 는 것이 아니라, 사진의 인증력을 개인적(집단적) 기억의 그림에 의해 탈색시키고 여백을 활용한 간결하지만 중층적이고 압축적인 재배치를 통해 생성적이고 확장 적인 효과를 발생시킴으로써 서구 근대 아카이브를 실패시키고 있다.

Ⅳ. 인덱스, 몽타주, 여백

앞에서는 ‘언더프린트’ 작업이 갖는 함의를 개괄적으로 살피면서 강홍구가 실패시키려 하는 서구 근대 아카이브와 사진적 인덱스가 공유하는 위장된 지시성, 그리고 ‘언더프린트’의 준고고학적 시공간 배치에 의해 가능해지는 과거의 현재화 와 주체의 확장성 등을 다루었다. 이 장에서는 ‘언더프린트’가 서구 근대 아카이브 를 생성적으로 실패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인용 또는 몽타주적 재배치와 여백의 현재화에 대해 작품의 세부를 관찰하며 살펴보겠다.

‘언더프린트’ 연작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인용 또는 전용’과 그 효과 문제 다. 인용은 이전의 확정된 맥락에서 부분들을 ‘떼어냄’과 ‘다시붙임’, ‘덧붙임’을 통 해 또 다른 맥락과 새로운 의미를 생성시킨다.37) 이러한 인용 행위는 곧 몽타주 적 재배치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연대기적 역사 서술 또는 서사를 파괴

36) 스벤 스피커, 빅 아카이브: 마르셀 뒤샹부터 소피 칼까지, 요식주의에서 비롯된 20세 기 예술, 이재영 옮김 (홍디자인, 2013), pp. 8-13.

37) 김남시, 과거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 pp. 265-266.

(21)

하는 인용의 실천은 사진의 매체적 기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사진 매체는 양가적 욕망을 지닌 주체를 구성한다. 사진 인덱스의 위장된 지시성을 따라 우연 한 순간을 측정가능한 시간의 연속적 아카이브로 구성하려는 욕망, 그와 동시에 파편화와 몽타주적 재배치를 통해 연속체로서의 시간을 파괴하고 우발적인 질적 도약을 감행하려는 욕망, 이 이율배반적인 양방향의 욕망을 사진적 주체는 실천 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 자체가 인용(전용) 행위이다. 앞에서 다룬 사진적 인덱스의 위장된 지시성 역시 사진 대상이 지닌 물질성의 (추상적) 인용(전용)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사진은 주형일이 지적한 대로 인덱스의 일반 성으로 인해 불완전한 메시지를 담고 있고, 모든 사진 메시지의 의미는 필연적으 로 맥락에 의해 결정된다.38)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오인된 인증력의 토대인 인덱스는 여전히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디디-위베르만은 이 설득력을 “지시성 의 환상”이라고 불렀다. 그에 따르면, “사진 인덱스가 (지시 대상에 대한 현존적 증거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시성의 환상을 통해 부재한 존재를 증거”하면서 “비물 질성의 환상”을 통해 실재의 흔적을 불러온다.39)

강홍구는 사진에 찍힌 자국들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사진적 인덱스 의 “지시성의 환상”을 반어적으로 활용한다. <불>[도 10]에서, 왼쪽 벽의 돌출된 기둥 구석에 기대어진 삽과 그 기둥의 돌출된 하단에 강홍구가 그린 삽질하는 사 람의 실루엣[도 11]은 인덱스의 지시성과 그 반어적 전이에 대해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삽질하는 사람 그림은 사진 찍혀진 삽에 의해 연상되는 도상일 수 있 다. 그런데, 삽질하는 사람의 세부를 들여다보면, 이 그림은 사진 찍힌 벽의 얼룩 의 바탕 윤곽에 섞이면서 그 모양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거기서 사 진적 인덱스의 효과가 비슷한 색의 물감과 붓질의 물질성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인덱스의 용해가 옆에 놓인, 그림보다 훨씬 큰 사진 찍 힌 삽과 충돌하면서 미묘한 의미작용의 파장을 일으킨다. 또한 벽에 기대세운 합 38) Allan Sekula, “On the Invention of Photogaphic Meaning”, Photography against

Grain (1984), p. 37.

39) Georges Didi-Huberman, “The Index of the Absent Wound(Monograph on a Stain)”, October 29 (Summer, 1984), p. 78. 최종철, 디지털 아카이브 그리고 파라- 인덱스 , 예술과 미디어, Vol. 15:2 (2016), p. 11.

(22)

판의 사진이미지[도 12]는 불이라는 그림을 그릴 지지대(캔버스)가 되며, 한편으론 실제로 불이 붙을 수 있는 원물질인 나무이기도 하며, 또 그것은 공장에서 나무 를 원료로 가공한 건축용 상품이며 (그려져서 합판 옆에 기대어진) 나무둥치이면 서, 이 나무둥치는 고대부터 솟대나 기둥처럼 공간의 중요한 경계 표시에 사용되 어왔음을 환기시킨다. 원래는 옆에 그려진 나무와 가깝게 생겼을 합판에 박힌 못 들은 불과 못박힘과 지옥의 날카로움과 고통을 불러온다. 이 파장은 지속되고 중 첩되면서 <불>의 물리적 프레임을 넘어서 강홍구의 초기작 <Home Sweet Home>[도 13]의 불을 되불러낸다.

[도 10] 강홍구, <불>, 2015, 사진 위에 아크릴, 240x100cm [도 11] <불>의 부분, 삽질하는 사람

[도 12] <불>의 부분, 합판과 불

[도 13] 강홍구, <Home Sweet Home>, 1996-1999

(23)

그림이 사진의 인덱스를 전용하면서, 달리 표현하자면 그림이 사진을 조건 으로서 수용하면서, 사진의 인덱스적 지시성이 그림에로 사진에로 그림에로 거듭 확장되고 나아가 작품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서까지 돌고 되돌면서 전이된다. 이 처럼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잡미묘한 중층적 의미작용은 다른 작품에서도 계속된다. <돌>[도 14]에서 벽돌을 쌓으면서 배어나온 시멘트 흔적들의 색(사진) 을 인용하며 섞이고 닮아가며 그려지는 회색 사발은 벽의 고고학적 지층에서 막 발굴되고 있는 유물처럼 보인다. 사진 찍힌 벽 속에 들어있는 벽돌들의 ‘흔적’은 벽을 쌓은 누군가의 행위, 그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의 현장 분위기 들을 불 러온다. <바나나>[도 15]에서는 미장이가 담을 쌓고 마무리하면서 흙손으로 그려 놓았을 꽃그림의 기울기(사진)을 인용하며 (앤디 워홀의) 바나나가 그려진다. 이 러한 인용과 전이에 의한 되돌아옴의 의미작용은 다양하게 변주된다. <폭격기>

[도 16]에서는 사진 찍힌 벽의 얼룩(무늬)들이 무거운 구름이 자욱이 깔린 회색 하늘로 인용되면서 그 하늘에 폭격기가 날아가고 그려지며 무거워지는 비구름에 서는 비가 내려 벽 아래, 그려져서 자라는 잡초 위로 떨어진다. <게시판>[도 17]

에서는 1975년에 만들어진 벽이자 “새마을 계시판”의 ‘계’(사진)라는 글자를 인용 하며 게 한 마리가 그려져서 사진 위로 되돌아온다. 이 ‘되돌아옴’은 지시성의 환 상 개념을 참조하면서 실재의 귀환과 연결 지어지고, 정신분석학적 맥락을 참조 하면서 앞에서 스피커가 얘기한 아카이브의 실패가 함축하는 정조인 프로이트의 이른바 섬뜩함이나 라캉의 개념들, 지젝과 할 포스터의 담론으로 연결 지을 수 있다. 그러나 ‘변화되어 되돌아옴’은 동아시아의 오래된 세계관의 핵심주제이다.

노자 도덕경 40장에 나오는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 되돌아오는 것이 도의 움 직임이다.)”40)의 통찰은 2장에서 언급한 중국문화권의 ‘그리기’ 수행을 떠받치는 핵심적인 사상이다. 석도의 ‘일획(一畵)’ 역시 천지만물이 다채로운 생동 속에서 일도(一道), 일기(一氣)로 ‘되돌아오는’ 우주적 차원에서의 기억실천으로서의 그리 기(글쓰기)를 지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 기억이 집단적 기억의 파편을 40) 王弼 注, 老子道德經 (商務印書館, 1973), p. 38. 黃元吉 撰, 蔣門馬 校註, 道德經註

釋 (中華書局, 2012), p. 169.

(24)

내함한다는 벤야민의 통찰은, ‘언더프린트’에서 생성되는 ‘되돌아옴’의 의미작용을 동아시아적 전통에서의 그리기(글쓰기) 실천과 노장사상의 현재적 인용를 통해 재배치하는 작업에서 참조할 만하다. ‘언더프린트’에서 “변화되어 되돌아옴”의 복 잡미묘한 연결망은 동아시아 지역 거주자들이 오랫동안 공유해왔지만 서구 근대 의 세계 지배 이후 와해되어온 집단기억의 파편들이 작가나 감상자의 개인적 기 억의 심층에 잔존하면서 현재화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언더프린트’

의 벽(사진)은 아이가 낙서를 하듯이 모든 사건이 예기치 않게 돌발하는 생동하 는 세계이면서, 우발적 만남과 비합리적 연쇄에 의해 체계적인 목록 작성과 합리 적 통제에 실패할 ‘어떤 미지(未知)의 유사-아카이브’를 추동하는 동인이자 매체 가 되며, 그 자체가 연속적인 역사적 서사의 고정성을 파괴하며 스스로를 생성시키 는 ‘또 다른 아카이브’가 된다.

[도 14] 강홍구, <돌>, 2015, 사진 위에 아크릴, 100x65cm

[도 15] 강홍구, <바나나>, 2015, 사진 위에 아크릴, 100x150cm

[도 16] 강홍구, <폭격기>, 2015, 사진 위에 아크릴, 200x100cm

[도 17] 강홍구, <게시판>, 2015, 사진 위에 아크릴, 100x65cm

(25)

‘언더프린트’에서 서구 근대 아카이브를 생성적으로 실패시키기에 주효한 방 법은, 역사가들이 부여하는 사회역사적 내러티브의 맥락에서 이미지들을 떼어내 어 재배치함으로써 시공간의 격차를 중층적으로 압축하는 준-고고학적 몽타주이 다. 이정하에 따르면, 몽타주는 “서구 모던의 예술적 제작원칙이자 인식의 방법 론”이며, 모던의 테크네이자 “사유의 발견술”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몽타주는 관 습적인 아카이브의 질서와 언어체계를 파괴하고 불연속적인 이미지와 기타 요소 를 충돌시킴으로써 제3의 효과를 생성시키는 데 효과적이다.41) 스피커에 따르면, 우연한 시간을 객관적 역사의 합리성으로 길들이려는 19세기 아카이브에 대한 결 정적 도전이 다다 몽타주(콜라주, 아상블라주, 포토몽타주)이며, 다다이스트 몽타 주는 현대 아카이브를 특징짓는 중심장력인 ‘서사(narrative)’와 ‘우발성 (contingency)’ 사이를 오가는 위태로운 진동을 극화한다. 다다이스트 몽타주가 그 자체로는 비아카이브 영역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아카이브 기반 모더니즘의 일부 로 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19세기 아카이브를 비판하고 뒤엎기 때문이다. “‘마 치’ 고고학적으로 구성된 무엇인 양, 잔뜩 쌓아올려 만든 다다이스트 몽타주는 하 나의 반아카이브(anti-archive)로서 기능함으로써 잡동사니들을 문화로 전환한 19 세기 아카이브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다”는 것이다.42)

몽타주의 가장 큰 특징은 탈연속적 배치이며, 이것은 ‘인용에 의한 재배치’

에 의해 실천된다.43) 앞에서 살펴본 대로 강홍구 작품에서는 이러한 탈연속적 재

41) 이정하, 모던의 예술제작 및 인식의 방법론으로서의 몽타주 , 미학, 제81권 2호 (2015. 6).

42) 스벤 스피커, 빅 아카이브, p. 26. 이러한 몽타주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벤야민 의 역사철학과 긴밀한 관련을 갖는다. 벤야민은 과거-현재-미래가 선형적 균질적 연 속성을 갖는다는 19세기 서구 학자들의 아카이브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고 ‘회억 (Eingedenken)’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회억에서 과거는 시간․사건의 경과․삶의 연속적 흐름이 아니라, 공간·순간·불연속적 형태로 등장한다. 회억은 과거의 사건들을 그 의미를 규정하는 연속적 내러티브 속에서 떼어내어 현재화시킨다.” 김남시, 과거 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 pp. 265-266.

43) 벤야민 회억 개념의 가장 큰 특징은 “탈연속성”인데, 회억을 위한 인용의 실천적 방법 론이 곧 ‘몽타주’다. 스피커는 벤야민이 다다이스트 몽타주를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고

(26)

배치의 방법이 적극적으로 실천된다. 여기서, 강홍구의 몽타주적 실천과 연결되어 야 하는 것이 ‘여백’이다. 여백은 문인산수화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로 사혁(謝赫) 의 육법(六法) 가운데 하나인 ‘경영위치(經營位置)’에서 등장한다.44) 강홍구는 이 여백을 단순히 구도나 포치(布置)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며, 여 백이 “비본질적이고 불필요한 것을 모조리 생략해버리고 핵심적인 것만 표현하려 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가령 매화를 그린다면 중요한 것은 매화이지 그 배경이 아니다. 그러므로 배경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로 남는 것이다. 또한 이 여백은 그려 진 대상이 존재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그림을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 극하는 상상의 공간이기도하다. 즉 끝없이 변화하는 천지만물이 존재하면서 동시에 변화, 생성되는 상징적인 공간인 것이다.45)

산수화의 여백에 대한 강홍구의 이러한 해석은 ‘언더프린트’의 시공간의 재 배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령 <의자>[도 2]의 창에 강홍구가 따 붙 인 <인왕재색도> 복제이미지는, 벽에 그려진 캐릭터들이 감상자가 되어 창을 통 해 내다(들여다)볼 수도 있을 가능성 속에서 창 ‘너머’의 풍경이 되면서 벽의 바 깥쪽이 안이 되고 벽의 안쪽이 밖이 되는 공간적 역전 효과를 일으킨다. 이러한 효과는, 고대인들이 동굴 벽에 들판의 짐승들이 싸우는 광경을 그릴 때, 선비들이 유람을 하고 돌아와 방 안에서 산수화를 그릴 때처럼 ‘기억에 의한 그리기’ 행위 를 통해 ‘공간의 역전과 과거 시간의 현전’이라는 가능세계의 확장을 시도했던 실 평가한다. (다다이스트들은 몽타주를 통해) “1차대전의 파괴적 분위기 속에서 계몽주 의적 합리성(그리고 전통적 예술)의 기저에 깔려 있는 질서 명령과 일반 수학에 도전 한다. 또한 총체적 무질서의 와중에서 예술의 생산이 아카이브 형식 외의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관점을 시험한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고려 없이 물질적 대상물의 단 편적 존재에 호소하고 있다.” 스벤 스피커, 빅 아카이브, p. 28.

44) 謝赫, 「古畵品錄」, 『中國畫論類編』上, 兪崑 編著 (華正書局, 1973) p. 355. 강홍구,

그림 속으로 난 길 (아트북스, 2002), p. 272.

45) 강홍구, 그림 속으로 난 길, p. 272.

참조

관련 문서

도시민은 과밀과 혼잡의 일상 속에서 누적되는 피로를 농업체험을 통해 해소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 하여 가족이 함께 소비한다..

또한 충서는 인(仁)의 실현을 지향하며, 인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동정을 지닌다는 차원에서 충서 개념에는 타자에 대한 사랑의 의무들의 근거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이를 통해 건강을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신체에 맞는 운동을 계획할 수 있다.. 코딩을 통해 나에 게 맞는 운동을 설계하여 아바타와 함께 신체활동을

균의 산도 screening 실험을 통해 대표적인 유산균 6종 ( Leuconostoc kimchii, Lactobacillus paraplantanum, Leuconostoc gasicomitatum, Lactobacillus

셋째 , 진로와 연계한 초등학생 STEAM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과학에 대한 흥미도가 증가하였다.. 셋째 , 진로와 연계한 초등학생 STEAM 프로그램을

• 그러나 독일의 경우 서임권 문제가 발생할 무렵 하인리히 4세는 지 방제후들을 누르고 강력한 왕권을 수립할 시점에 있었고 성공할 가 능성이 매우 높았음.

폐기허증 面色㿠白 폐기쇠절증 面色㿠白 신기허증 面色㿠白 신기불고증 面色㿠白.

 Core는 전에 언급한 것과 같이 개인의 합리성(Individual Rationality)과 단체의 합리성(Group Rationality)의 교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