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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와 예술 그리고 인간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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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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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려 고분벽화와 예술 그리고 인간심리 대구 한의대 재활교육상담학과 김성삼

예술과 인간심리 예술과 인간심리

추모왕의 고구려 건국

-부여에서 이주해온 추모왕

-추모왕의 고구려 건국

(2)

예술과 인간심리

(3)

예술과 인간심리

(4)
(5)

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고구려의 돌무덤

2

고구려 수도이었던 연변 집안 (中國 吉林省 集安)에 있는,

일명 동방의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이 장군총은 집안 지역에서 가장 특출하게 돗보이는 반듯한 피라미드로 인하여 만주 전역을 휘어잡은 고구려 (高句麗)의 광개토대왕의 무덤 (廣開土王陵)으로 여겨졌었다

미술감상

2. 벽화고분의 유형

(6)

장군총의 높이는 12.4미터, 한 변의 길이는 30미터가 넘는다. 사용된 화강암이 1만

9,000톤(5톤 트럭 3,800대 분량), 흙 1만 2,5000톤(5톤 트럭 2,5000대 분량), 총

동원인원 7만 명으로 추측된다. 이런 거대한 피라미드를 축조하는 것은 충분한

경제력과 강력한 왕권을 가진 왕조 아래서나 가능하다.

(7)
(8)

고구려 고분벽화

3

초기 4~5C

후기

6C후반~7C전반 중기

5C후반~6C전반

미술감상

2. 벽화고분의 유형

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9)

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고 분 벽 화-초기 미술감상

2. 벽화고분의 유형

안악 3호분

(10)

집안 고구려 벽화 고분 분포도

환문총, 모두루총, 장군총, 태왕릉, 무용총, 삼실총, 산연화총, 사신총, 오회분 4호묘, 오회분 5호묘, 미인총, 귀갑총, 각저총, 마선구 1호분, 광개토왕비, 산성자산정, 국내성

평양 고구려 벽화 고분 분포도 (용강군, 대동군, 강서군, 안악)

고산리 1,9호분, 강서대묘, 강서중묘, 약수리벽화고분, 연화총, 대성리 1,2호분, 쌍영총,

수렵총, 진파리 1,2호분, 안악1,2,3호분, 덕흥리 벽화고분, 덕화리 1,2고분, 동명왕릉,

수산리벽화고분

(11)

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미술감상

2. 벽화고분의 유형

초기고분의 특징

4~5C

대체적으로 4~5세기 전반에 조성.

현실(玄室) 앞에 전실(前室)이 있고, 다시 전실의 좌우 측실(側室)이나 감(龕)이 달린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 가장 전형적이다.

대체적으로 묘주 부부의 초상이 4벽의 주제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12)

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고 분 벽 화-초기 미술감상

앞방 주실/널방

널길

(13)

안악3호분 [ 安岳3號墳 ]

북한 황해도 안악군 유순리에 있는 고구려 전기(4세기, 영화 13년 357년의 묵서명이 있음)의 벽화고분..제작연도가 확실한 고구려 고분 중 가장 오래된 벽화고분으로 그 규모가 크고 웅장하여 흡사 지하궁궐의 내부를 상기시킨다.

석실봉토분으로, 내부는 남쪽으로 열린 연도(羡道)와 그것과 이어지는) 연실(羡室), 동서에 측실이 있는 사방 약 3m 사방의 전실, 거의 같은 크기의 주실(현실)과 그것의 동 · 북 두변을 둘러 싼 길이 10m의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정은 각 실마다 삼각형의 지송식(持送式) 천정 (라테르넨데케)이며, 벽면은 물에 의해 연마된 거대한 석회암 석판 위에 묵선과 단자계통의 채색으로 그려졌다. 벽화의 내용은 여러가지 풍속화로서 전실의 서쪽 측실에는

묘주부처의 초상화, 전실과 동쪽에는 행진, 악대, 각저(角低), 우사(牛舍), 푸줏간, 주방, 우물, 화장실, 마굿간 등 일상생활의 풍속. 회랑벽에는 가마에 탄 인물을 중심으로 기마와 보행인물의 대행렬, 천정에는 해, 달, 당초(唐草), 연화, 유운(流雲) 등의 장식무늬가 그려져 있다. 서쪽 측실 입구 좌벽에 있는 7행 68자의 묵서명에 근거해

연나라에서 귀하하여 동진(東晋) · 영화(永和) 13년(357)에 사망한 동수(冬壽)가 묘주라고 설명하고있다. 그러나 묘주가 고구려 왕-미천왕(재위 300~331년)-이라는 설도있다.

장하독帳下督의 묵서명-임금이나 높은 지위의 장군 아래에 있던 군사 지휘관

서쪽 동쪽

(14)

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고 분 벽 화-초기 미술감상

안악 3호분

-정면상의 고식화된 구도

-전체적으로 안정된 삼각형포치

-주대종소의 전형적 신분표현

-의습에서 보이는 음영법과 태서법

- 탑개의 봉오리진 연꽃

(372보다 빠른 불교의 용인 증거) 특징

(15)

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고 분 벽 화-초기 미술감상

안악 3호분

-남편 쪽을 향한 측면구도

-전체적으로 안정된 삼각형포치

-상류층의 머리(얹은머리)

-얼굴의 구분이 모호(초기초상화의 특징) 특징

(16)

묘주인

동수묘설

왕릉묘설

방입구를 지키는 장하독에 대한 묵서명 68자 -1열: 영화 13년(357) 제작시기 명기

- 2열: 동수의 관직열거(평동장군, 지방태수) - 3열: 출신(고구려인이 아닌 요동출신중국인)

<자치통감>

-북중국 선비족 모용씨가 세운 전연(수도 용성)에서 왕위승계를 두고 형제의 난이발생. 이 때 모용유, 모용치, 곽충은 동쪽으로 도망갔는데, 동수와 곽충만은 고구려로 도망갔다는 기록이있음

1

분묘의 특징이 중국과 유사

(좌우대칭의 여러 개방, 기둥, 벽화)

-낙랑을 매체로한 중국 한대묘의 영향결과

2

주변부의 인물옆에 있는 중국관직명의 근거

<진서직관지>를 기준으로 보면 안악3호분의 묘주가 동수임을 드러내는 근거

3

묵서명의 위치

-묘주의 묵서명을 문밖 장하독 위 명기 이유 -애써 장하독의 머리에 맞춰 쓴 흔적 간취 -글씨체가 너무 조잡(묘주격에 맞지않음) -묵서명의 동수는 장하독본인을 일컬음

(방을 관리하는 책임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새로운 관직설

-중국의 관직을 받아들여 고구려식으로 정비 해 가던 중에 나타난 고구려식 관직

1

규모

-지방장관(태수)규모가 아닌 왕묘의 규모다 -여러 개의 기둥(지하궁전을 연상)

2

3

행렬도/취악대

-회랑에 250여명,전체500여명(중국 200여명) -취악대 (다종의 북, 뿔피리, 나팔) 200여명 -삼국사기:김유신 사망시 취악인원 100여명

4

성상번

-주인공 수레 앞 깃발에 “성상번”이라고 명기 -모두루총에도 추모성왕, 호태성왕을 표시 -태수와 지방장관에는 성상표기못함

5

백라관

-이마와 ‘책’사이에 금테띠가 있음

-흰색의 곱고 섬세한‘라’(비단관)의덧관이있음 -관의 끈이 턱밑에서 묶여 가슴까지 내려옴 (중국왕은 끈이 매우 짧음)

6

(17)

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고 분 벽 화-초기 미술감상

2. 벽화고분의 유형

안악 3호분

(18)

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고 분 벽 화-초기 미술감상

안악 3호분

-정면상의 고식화된 구도

-전체적으로 안정된 삼각형포치

-주대종소의 전형적 신분표현

-의습에서 보이는 음영법과 태서법

- 탑개의 봉오리진 연꽃

(372보다 빠른 불교의 용인 증거) 특징

(19)

안악3호분 [ 安岳3號墳 ]

북한 황해도 안악군 유순리에 있는 고구려 전기(4세기, 영화 13년 357년의 묵서명이 있음)의 벽화고분..제작연도가 확실한 고구려 고분 중 가장 오래된 벽화고분으로 그 규모가 크고 웅장하여 흡사 지하궁궐의 내부를 상기시킨다.

석실봉토분으로, 내부는 남쪽으로 열린 연도(羡道)와 그것과 이어지는) 연실(羡室), 동서에 측실이 있는 사방 약 3m 사방의 전실, 거의 같은 크기의 주실(현실)과 그것의 동 · 북 두변을 둘러 싼 길이 10m의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정은 각 실마다 삼각형의 지송식(持送式) 천정 (라테르넨데케)이며, 벽면은 물에 의해 연마된 거대한 석회암 석판 위에 묵선과 단자계통의 채색으로 그려졌다. 벽화의 내용은 여러가지 풍속화로서 전실의 서쪽 측실에는

묘주부처의 초상화, 전실과 동쪽에는 행진, 악대, 각저(角低), 우사(牛舍), 푸줏간, 주방, 우물, 화장실, 마굿간 등 일상생활의 풍속. 회랑벽에는 가마에 탄 인물을 중심으로 기마와 보행인물의 대행렬, 천정에는 해, 달, 당초(唐草), 연화, 유운(流雲) 등의 장식무늬가 그려져 있다. 서쪽 측실 입구 좌벽에 있는 7행 68자의 묵서명에 근거해

연나라에서 귀하하여 동진(東晋) · 영화(永和) 13년(357)에 사망한 동수(冬壽)가 묘주라고 설명하고있다. 그러나 묘주가 고구려 왕-미천왕(재위 300~331년)-이라는 설도있다.

장하독帳下督의 묵서명-임금이나 높은 지위의 장군 아래에 있던 군사 지휘관

서쪽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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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고 분 벽 화-초기 미술감상

앞방 주실/널방

널길

(21)

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미술감상

2. 벽화고분의 유형

초기고분의 특징

4~5C

대체적으로 4~5세기 전반에 조성.

현실(玄室) 앞에 전실(前室)이 있고, 다시 전실의 좌우 측실(側室)이나 감(龕)이 달린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 가장 전형적이다.

대체적으로 묘주 부부의 초상이 4벽의 주제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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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고 분 벽 화-초기 미술감상

앞방 주실/널방

널길

(23)

안악3호분 [ 安岳3號墳 ]

북한 황해도 안악군 유순리에 있는 고구려 전기(4세기, 영화 13년 357년의 묵서명이 있음)의 벽화고분..제작연도가 확실한 고구려 고분 중 가장 오래된 벽화고분으로 그 규모가 크고 웅장하여 흡사 지하궁궐의 내부를 상기시킨다.

석실봉토분으로, 내부는 남쪽으로 열린 연도(羡道)와 그것과 이어지는) 연실(羡室), 동서에 측실이 있는 사방 약 3m 사방의 전실, 거의 같은 크기의 주실(현실)과 그것의 동 · 북 두변을 둘러 싼 길이 10m의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정은 각 실마다 삼각형의 지송식(持送式) 천정 (라테르넨데케)이며, 벽면은 물에 의해 연마된 거대한 석회암 석판 위에 묵선과 단자계통의 채색으로 그려졌다. 벽화의 내용은 여러가지 풍속화로서 전실의 서쪽 측실에는

묘주부처의 초상화, 전실과 동쪽에는 행진, 악대, 각저(角低), 우사(牛舍), 푸줏간, 주방, 우물, 화장실, 마굿간 등 일상생활의 풍속. 회랑벽에는 가마에 탄 인물을 중심으로 기마와 보행인물의 대행렬, 천정에는 해, 달, 당초(唐草), 연화, 유운(流雲) 등의 장식무늬가 그려져 있다. 서쪽 측실 입구 좌벽에 있는 7행 68자의 묵서명에 근거해

연나라에서 귀하하여 동진(東晋) · 영화(永和) 13년(357)에 사망한 동수(冬壽)가 묘주라고 설명하고있다. 그러나 묘주가 고구려 왕-미천왕(재위 300~331년)-이라는 설도있다.

장하독帳下督의 묵서명-임금이나 높은 지위의 장군 아래에 있던 군사 지휘관

서쪽 동쪽

(24)

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고 분 벽 화-초기 미술감상

안악 3호분

-정면상의 고식화된 구도

-전체적으로 안정된 삼각형포치

-주대종소의 전형적 신분표현

-의습에서 보이는 음영법과 태서법

- 탑개의 봉오리진 연꽃

(372보다 빠른 불교의 용인 증거) 특징

(25)

묘주인

동수묘설

왕릉묘설

방입구를 지키는 장하독에 대한 묵서명 68자 -1열: 영화 13년(357) 제작시기 명기

- 2열: 동수의 관직열거(평동장군, 지방태수) - 3열: 출신(고구려인이 아닌 요동출신중국인)

<자치통감>

-북중국 선비족 모용씨가 세운 전연(수도 용성)에서 왕위승계를 두고 형제의 난이발생. 이 때 모용유, 모용치, 곽충은 동쪽으로 도망갔는데, 동수와 곽충만은 고구려로 도망갔다는 기록이있음

1

분묘의 특징이 중국과 유사

(좌우대칭의 여러 개방, 기둥, 벽화)

-낙랑을 매체로한 중국 한대묘의 영향결과

2

주변부의 인물옆에 있는 중국관직명의 근거

<진서직관지>를 기준으로 보면 안악3호분의 묘주가 동수임을 드러내는 근거

3

묵서명의 위치

-묘주의 묵서명을 문밖 장하독 위 명기 이유 -애써 장하독의 머리에 맞춰 쓴 흔적 간취 -글씨체가 너무 조잡(묘주격에 맞지않음) -묵서명의 동수는 장하독본인을 일컬음

(방을 관리하는 책임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새로운 관직설

-중국의 관직을 받아들여 고구려식으로 정비 해 가던 중에 나타난 고구려식 관직

1

규모

-지방장관(태수)규모가 아닌 왕묘의 규모다 -여러 개의 기둥(지하궁전을 연상)

2

3

행렬도/취악대

-회랑에 250여명,전체500여명(중국 200여명) -취악대 (다종의 북, 뿔피리, 나팔) 200여명 -삼국사기:김유신 사망시 취악인원 100여명

4

성상번

-주인공 수레 앞 깃발에 “성상번”이라고 명기 -모두루총에도 추모성왕, 호태성왕을 표시 -태수와 지방장관에는 성상표기못함

5

백라관

-이마와 ‘책’사이에 금테띠가 있음

-흰색의 곱고 섬세한‘라’(비단관)의덧관이있음 -관의 끈이 턱밑에서 묶여 가슴까지 내려옴 (중국왕은 끈이 매우 짧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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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고 분 벽 화-초기 미술감상

고구려식 부엌(시루+아궁이) 푸줏간 차고(묘주인, 부인)

(27)

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고 분 벽 화-초기 미술감상

높이 2M, 길이 6M의 250여 명의 대행렬도

(28)

1 2

3 창수

4 검수 5 46

미술감상

성상번 聖上幡

(29)

고 분 벽 화-중기 미술감상

중기고분의 특징

4~5C

대체적으로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에 조성.

전실과 현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기의 벽화는 묘주부부의 모습이 아직 나타나기는 하지만 초기의 경우처럼 단독초상화식이 아니고 그들이 생전에 겪었던 중요한 사건의 주인공으로 도상화되는 것이 상례이다.

따라서 기록적이고 설명적인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며 때문에 화면은 자연 풍속 화적인 성격을 띤다.

고구려재발견 고분벽화 초 기 중 기 후 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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