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진석**
목 차
1. 이끄는 말
2. 주자 충서론의 다층적 해석 3. 맺는말
<국문초록>
주자의 충서론은 여러 논의들 속에서 우리에게 다양한 해석의 공간들을 열어 놓았 다. 먼저, 체용의 구조로써 설명된 주자의 충서 논의는 보편 규율에 대한 근거를 전제로 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타인에게까지 그 규율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관계의 윤리가 부각되고 있다. 나와 타자의 관계가 천도에 근거를 둔 보편규율의 상호 공감 속에서 충서의 실천은 가능하며, 이는 먼저 행위 주체인 나의 도덕 잣대와 도덕 원리를 충실히 한 다음에 비로소 타인에게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둘째, 학인과 범인의 현실 지평에서 논해진 충서는 칸트가 말할 것처럼 인간에게 이미 분명하게 주어진 도덕의무의 근거이거나 나와 타자에게 공통으로 구비되어 있는 상호책무의 당위적 실천 강령이라기보다는 한 행위의 주체가 공부를 통해 자신 의 도덕적 기준을 배우고 살피며, 이를 통해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서 나의 도덕적 실천이 합당한지를 여러모로 고려한 후 비로소 실천하고 확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셋째, ‘삼접설(三摺說)’로 이해된 ‘혈구지도’는 세 종류 이상의 주체가 모여서 구성되는 윤리의 덕목을 말한다. 이는 셋 이상의 관계와 상하 사방의 네트워 크 속에서 윤리 주체는 ‘혈구’ 즉 도덕적 잣대로써 관계의 윤리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 본 논문은 2016년 11월 11일 조선대 우리철학연구소 및 화순시 주최로 열린 ‘주자사상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정 및 확대 보완하였음.
본 논문은 2016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내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작성되었음.
** 한국외국어대학교
주제어 : 충서, 해석, 도덕기준, 도덕원리, 공동체 윤리
1. 이끄는 말
오늘날 한국사회에 등장한 많은 문제들은 우리의 삶과 정신생활에 큰 영 향을 끼치고 있다. 그 중에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대인 관계의 문제로는 21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공동체 문화의 저급성을 들 수 있 다. 개인과 개인에 팽배해 있는 상호 불신의 풍조, 상호 존중보다는 충돌로 점철되는 가치관들, 이해와 관용의 미덕보다 더 강력한 상호 공격의 자세들 은 어느덧 우리 주변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대인 관계의 저급성은 우리 주변의 이데올로기 또는 공동체 문화 와 결합되면서 더 큰 기세로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무한경쟁과 1등주의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다원의 덕목을 무시하는 획일적인 사회 풍조, 자기집 단 우선주의에서 비롯된 이기주의와 불신풍조 등은 개인 간의 윤리 붕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간의 관계마저 무기력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 용하고 있다.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집단 간의 힘겨루기와 무한 분 쟁의 모습들은 우리 사회 전체를 하나의 피로사회로 몰아넣고 있다. 대화의 자세와 관용의 미덕은 우리 사회에서 투쟁의 기세와 불신의 확장 속에서 저 먼 치 뒤로 밀려나 있는 형세이다.
21세기에 들어선지 이미 10살 하고도 5세가 지났건만 (공자는 “15세에 배 움에 뜻을 두고 30세에 일어섰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신뢰사회와 관용사 회는커녕 불신사회와 피로사회의 표제가 더 어울리는 암울한 현실 속에 처해 있다.
우리 주변을 상호 불신하고 피로 만연으로 이끄는 요소들은 국내적 요소 뿐 만이 아니라 국제 정세와 세계 사조 속에서도 그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오늘날 한반도의 상황은 상호신뢰 구축이나 대화무드 조성이라는 용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상호 불신에 뿌리를 둔 힘겨루기의 판 세로 넘어간 지 오래되어버린 듯하다. 대화의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상호 불신과 이념 불일치의 강세 속에서 전혀 그 정당성을 찾기 어려워진 듯하 다. 북한의 주변국에 대한 깊은 불신은 결국 하드파워의 고취라는 외길로 치닫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에 대한 대응 속에서 한국 사회는 사드 배치 문 제 등으로 또다시 광대한 대립의 장을 연출하고 있으며, 이러한 반도의 모 순은 미중 간의 대립이라는 국제관계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어 오늘날까 지 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계정세 역시 한반도의 암울한 현실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리 는 프랑스 발로 날아온 화두, 즉 ‘도전받는 똘레랑스’의 사태를 목도하면서 분노와 절망에 휩싸이고 있다. 2015년 11월 프랑스에서 발생한 극단주의자 들에 의한 테러는 기존의 ‘똘레랑스(tolérance)’가 어디까지 용인되고 적용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극단적이고 첨예 한 대립 가운데 과거 상호 간의 용인, 배려, 공감에 기초했던 윤리와 도덕이 설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축소되고 있다. ‘똘레랑스’(용인, 인내, 관용)의 축소 와 후퇴는 곧바로 ‘앵똘레랑스(intolérance)’ 즉 불관용과 배척의 논리가 득 세하게 되는 글로벌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자국 이기주의와 민족 우선주의 는 미국과 유럽에서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이를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과거 ‘관용’, ‘공감’, ‘배려’ 등의 철학적 원 천이 되었던 동서양의 ‘황금률(golden rule)’이 그 신념이나 이념에 있어서 심각하게 훼손되고 표류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는 불신사회, 피로사회, 불관용사회, 분노사회와 같은 대내외적 환경 속에서, 다시금 동 서양 ‘황금률’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 린 것은 무엇이고 망각하게 된 원인은 무엇이며 되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 가? 이러한 문제에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필자는
‘황금률’로 대표되는 고전적인 윤리관에 다시 주목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 리의 시야를 오늘의 세태에 대한 직접적이고 기술적인 처방을 내리는 데에 서 거두어들여, 보다 근본적이고 원천적인 물음을 자기 자신에게 던짐으로 써, 향후 우리가 21세기에 접어들어 ‘서른 살’(공자가 말한 “서른 살에 비로 소 일어섰다”)이 되었을 때 한국 사회에서 마침내 반듯하게 일어설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찾고자 하는 데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필자는 동양의 황금률로 불리는 ‘충서(忠恕)’ 사 상에 다시 주목해 보았다. 충서는 동서양 황금률 중에서 동양의 황금률을 대표하는 윤리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충서는 공자로부터 언급된 이후 수 천 년간 유가(儒家) 윤리론의 핵심적인 내용이 되어왔다. 충서에 대한 논의 는 원시유가와 송명리학에서 다양하게 언급되어져 왔고 우리나라 조선유 학에서도 광범위하게 다루어졌다. 공자로부터 제시된 충서 사상은 “내가 원치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1)는 그 유명한 동양적 황금률의 명제 를 낳았다. 그리고 이 명제는 “내가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 라”2)는 기독교의 황금률과 대비되면서, 동서양 황금률의 대조를 이루는 두 명제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유가의 황금률로 대표되는 충서 사상은 “내가 원치 않는 바를 남 에게 베풀지 말라”는 대표명제 외에도 다른 여러 논의들을 함께 포함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충서 윤리의 다양한 특색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 면 공자가 말한 “내가 서고자 하면 남도 함께 세워주고, 내가 달성하고자 하면 남도 함께 달성하게 한다”(뺷논어뺸 옹야)는 명제는 유가 황금률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유가 윤리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면을 밝혔다는 점에서 소극적이고 부정화법(“~을 하지 말라”는 어법이란 의미 에서의 부정화법)을 보여주는 명제인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
1) 뺷論語뺸 「衛靈公」 : 己所不欲, 勿施於人.
2) 뺷마태복음뺸 7 : 12
於人)”과 뚜렷한 대조를 보이면서 유가 황금률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 리고 뺷대학뺸과 뺷중용뺸에서 언급된 내용은 또 다른 차원의 대인 윤리를 말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두 원전에서 다루어진 윤리를 ‘혈구지도(絜矩之 道)’로 부른다. 뺷대학뺸에서 말한 “윗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 리지 말고, 아랫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라”(뺷대학뺸 傳 10장)는 말과 뺷중용뺸에서 말한 “자식에게 원하는 것으로 부모 섬기기를 제대로 못하고, 신하에게 원하는 것으로 임금 섬기기를 제대로 못한다”(뺷중 용뺸 13장)는 말은 일대일의 대인 윤리를 넘어서 적어도 3인 이상의 대인 관 계 속에서 적용될 수 있는 공동체 윤리의 한 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충서론과 혈구지도로 대표되는 유가의 윤리관에 대한 2차적 해석 의 논의 중에서 중국 남송시대 주자(朱子 : 朱熹, 1130-1200)의 해석에 주 목하였다. 그 중에서도 필자가 본 논문에서 다루려고 하는 내용은 중국 남 송시대 주자(朱子 : 朱熹, 1130-1200)의 충서론이다. 주자가 구상했던 충서 의 문제는 동양 유학의 황금률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주자 는 유가의 경전을 주석하고 설명하는 가운데 충서 사상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논점들을 제시하였다.
그의 충서론은 대표 저작인 뺷사서집주뺸와 뺷사서혹문뺸을 통해서 그리고 제자와의 대화록인 뺷주자어류뺸의 내용 가운데 주로 제시되고 있는데, 이를 관통하는 핵심명제는 “나 자신을 다하는 것이 충(忠)이고, 나 자신을 미루어 남에게까지 미치는 것이 서(恕)이다”(뺷논어집주뺸)3)로 압축된다. 이 말을 다 시 풀어보면 “나 자신의 도덕적 기준에 충실하여 이를 최대한 성실하게 하는 것”이 충(忠)이고, “나 자신의 도덕적인 잣대를 따라 남과의 관계 속에서도 이를 잘 헤아려 실천하는 것”이 서(恕)이다. 충은 보편적 윤리의 기준이 존재 한다는 전제 하에서 형성된 일종의 자기의무적 덕목이고, 서는 나와 남의 관계에서도 이 기준에 합당한 실천을 확대하라는 일종의 실천윤리적 덕목이
3) 뺷論語集注뺸 卷5 : 盡己之謂忠, 推己之謂恕.
다. 이 유명한 명제는 대체로 자신의 도덕성에 충실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이를 잘 헤아려 실천하라는 내용으로 압축되어 있어서, 이를 넘어선 또 다른 해석의 공간을 찾기 어려운 듯이 보인다. 특히 고도의 형이상학적 메타포를 구사했던 주자학의 특성에 비추어볼 때 주자의 충서론도 이에 상응하여 선명 한 체용(體用) 관계를 드러낸 것으로 이해되기 쉽다. 천도(天道)가 리일분수 (理一分殊)의 체용 관계로 이루어졌듯이 인간의 대인 관계도 충서의 리일분 수적 체용 관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주자 충서론의 굵직한 논의 중의 하나이 다.4) 즉 나 자신의 도덕 기준이 본체로서 이미 명료하게 주어져 있고, 이 덕목을 타인에게 적절하고 합당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외에도 주자 충서론은 자체로 지닌 여러 논의들 속에서 우리 에게 또 다른 해석의 공간들을 열어 놓았다. 필자가 주목한 내용은 주로 도 덕 기준을 둘러싼 문제, 충서를 공동체적 윤리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 주자 충서론을 어디까지 확대 해석할 수 있는가의 문제 등이다. 첫째 물음은 주 자 윤리론을 동서양 비교론적 시각 속에서 조명하면서 이른바 ‘황금률’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차이를 탐구하자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둘째 물음은 이 른바 ‘충서’와 ‘혈구지도’로 이어지는 논의 속에서 다자 간의 윤리인 공동체 윤리의 새로운 의미를 논해보자는 것이다. 셋째 물음은 주자 충서론이 지니 는 확대 해석의 가능성은 무엇이고 그 한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이다.
이를 기존 연구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첫 번째 주제에서는 먼저 동서양 황금률이 지닌 내용의 유사성을 검토하고, 현대 윤리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칸트의 황금률 논의에 대한 국내 연구를 검토하여5), 이를 통해 주자 충서론
4) 주자가 충서를 체용(體用)으로 설명한 것은 북송의 이정(二程 : 정명도, 정이천) 사상 을 계승한 것이다. (강진석, 뺷체용철학뺸, 문사철, 2011, 111~113면 참조) 주자는 이 사상 을 계승하여 천도가 리일분수의 체용 관계로 이루어졌듯이 인도(人道)인 충서의 원리 도 충(忠)에 보편적 도덕의 기준이 존재하고, 이를 서(恕)인 실천윤리로 확대하는 것으 로 이해하였다. (강진석, 「關於‘忠恕’的視角和解釋之探討」, 뺷國際中國學硏究뺸 15輯, 2012, 206면 참조)
5) 관련 자료: 임헌규, 「유가의 도덕원리와 칸트」, 뺷한국철학논집뺸 29집, 2010; 홍성민, 「恕
이 지닌 현 주소를 다시 점검하고자 하며, 두 번째 주제에서는 주로 ‘혈구지 도(絜矩之道)’에 대한 주자의 해석을 통해 주자 윤리론이 지닌 공동체 윤 리적 의미를 짚어보자는 것이며6), 세 번째 주제에서는 서양에서 논해진 동 양 황금률에 대한 몇몇 논의들을 통해7), 주자 충서사상이 지닌 현대적 의의 를 조명해보자는 데 그 의의가 있다.
2. 주자 충서론의 다층적 해석
2.1. 동서양 황금률의 유사성
흔히 학자들은 황금률의 보편적 근거를 논하면서 기독교 성경의 어구를 인용하곤 한다. 그것은 인간이 신의 형상을 닮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도덕적 이고, 이로부터 선함과 악함을 구별하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8) 그리고 이러한 구약성서의 전통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이르면서 어 떤 보편적 윤리의 근거로 인식되었다.
유대교 전통 속에서 랍비 힐렐(Hillel)은 이렇게 말한다. “네 자신이 싫어 하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 이것이 곧 율법의 전부이니, 나머지는 주석 일 뿐이다. 가서 이를 배워라.” 또한 구약성서는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
의 의무론적 특징과 양상- 주자와 다산의 윤리학에서 恕의 함의」, 뺷동양문화연구뺸 13집, 2013; 유일환, 「칸트의 황금률 비판과 유가의 忠恕 개념」, 뺷철학사상뺸 53집, 2014; 김형 철․문병도, 「유가와 칸트의 도덕판단 방법론 비교 연구」, 뺷철학뺸 77집, 2003.
6) 관련 자료: 이철승, 「유가철학에 나타난 충서관의 논리구조와 현실적 의미」, 뺷중국학보뺸 58집, 2008; 전병욱, 「“絜矩之道”에 대한 해석을 통해 본 주자의 공동체 윤리」, 뺷동양철학 연구뺸 83집, 2015; 지준호, 「恕와 유가의 실천윤리」, 뺷한국철학논집뺸 19집, 2006.
7) 관련 자료 : Qingjie James Wang, “The Golden Rule and Interpersonal Care-From
a Confucian Perspective”, Philosophy East & West Vol. 49, 1999; Yong Huang, “A Copper Rule Versus The Golden Rule : A Daoist-Confucian Proposal For Global Ethics”, Philosophy East & West Vol.3, 2005.
8) 뺷창세기뺸 1장
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9)라 고 말했다. 유대교에서 신약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기독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도 긍휼히 여김을 받은 것이 요”10), “네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곧 율법과 선지 자의 말씀을 요약한 것이다.11)”12)여기서 우리는 이른바 서양의 황금률 전 통의 한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이 명제들 속에서 유가 황금률 과 유사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유대교에서 말한 “네 자신이 싫어하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공자가 말한 “자기 자신이 원치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13)는 명제 와 매우 유사하며, 기독교에서 말한 “네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 하라”는 명제는 뺷중용뺸의 저자가 말한 “자식에게 원하는 것으로 부모 섬기 기를 제대로 못하고, 신하에게 원하는 것으로 임금 섬기기를 제대로 못하 며, 동생에게 원하는 것으로 형 섬기기를 제대로 못하고, 친구에게 원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먼저 행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14)는 말과 유사한 내 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기독교에서는 공자가 말한 “네 자신이 싫 어하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명제를 은률(Silver Rule)로 구분하여 예수의 적극적인 황금률과 대립적으로 사유하는 경향도 있었으나, 큰 맥락 에서 볼 때 동서양의 황금률은 유사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황금률의 유사성은 기타 종교 윤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이 말하는 황금률로는 “부모와 친척들, 고아들, 그리고 네 곁의 벗들과 네가 만난 여행자들에게 친절함을 베풀고 선을 행하라.”15) “모든 계명을 하나로
9) 뺷출애굽기뺸 22 : 20 10) 뺷마태복음뺸 5 : 7 11) 뺷마태복음뺸 7 : 12
12) Harry J. Gensler, Ethics and The Golden Rule, Routledge, 2013, pp.36~42.
13) 뺷論語뺸 「衛靈公」
14) 뺷中庸뺸 13章
요약한 것이 이것이니, 즉 어떤 진실된 자가 네게 행하기를 바라는 대로 너도 그 생명체에게 행하라.”16) “네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남도 대접하라. 네 자신이 불쾌함을 느낀 바대로 남도 그에 맞게 (불쾌함을 느낄 것을 헤아려) 대접하라. 네가 잘못되기를 원치 않는 것처럼 너도 남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
남들이 너에게 선을 행하길 원하는 것처럼 너도 남에게 선을 베풀라.”17)힌두 교에도 유사한 전통이 있다. “드넓은 동정심의 종교를 실천하는 자는 가장 고귀한 선을 이룬 것이다. ……모든 생명을 네 자신과 같이 여기고, 네 자신에 게 행한 것 같이 그들에게 행하라. …… 네 스스로 해가 된다고 여긴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18)”19)
이처럼 동서양의 종교와 사상 속에서 황금률은 유사한 명제와 내용을 띠 고 제시되어 왔다. 요약하면 네 자신이 지니는 도덕적 (또는 종교적) 원리에 맞추어 남에게도 그와 같이 행하라는 것이고, 나와 타자와 관계는 주어진 윤리적 공감대 속에서 상호 인정될 수 있고 상호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동양의 황금률도 이러한 맥락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중에서 유가의 황금률은 공자의 사상을 하나로 꿰뚫는다는 뜻에서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도(道)로 불렸다.
공자께서 “증자야,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을 수 있다”고 말하니, 증자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자께서 나가시자 문인이 “무슨 뜻인가요”라고 물 으니, 증자는 “선생님의 도는 충서(忠恕)일 뿐이다”라고 대답했다.20)
증자는 공자가 언급한 ‘일이관지의 도’를 충서(忠恕)로 해석했다. 그리고
15) 뺷쿠란뺸 4 : 36 16) Ibn Arabi
17) Imman Ali c.600-60 18) Mahabharata bk.13
19) Harry J. Gensler, 같은 책, pp.43~50.
20) 뺷論語뺸 「里仁」.
이 ‘충서’의 명제는 증자에서 자사(子思)에 이르는 유가 계보의 저작인 뺷중 용뺸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다. 사람을 도를 실천하면서 사람에게서 멀어진다면 도가 될 수 없다. …… 충서는 도에서 멀지 않으니, 자신 에게 행하여지기를 원치 않는 것을 또한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 군자의 도는 넷 이 있는데, 나는 그 하나도 실천하지 못한다. 자식에게 원하는 것으로 부모 섬기 기를 제대로 못하고, 신하에게 원하는 것으로 임금 섬기기를 제대로 못하며, 동 생에게 원하는 것으로 형 섬기기를 제대로 못하고, 친구에게 원하는 것으로 그 들에게 먼저 행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21)
우리는 뺷논어뺸와 뺷중용뺸에서 논의된 윤리적 내용 속에서 동서양 황금률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나 자신이 원치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것이고 또한 내가 원하는 바에 비추어 남에게도 동일하게 실천하라는 것이다. 위의 뺷중용뺸 풀이는 매우 중요한데, 이 저자는 충서의 본래적 내용인
“자신에게 행하여지기를 원치 않는 것을 또한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명제와 함께, 행위자(agent)가 스스로에게 행하여지기를 원하는 바를 수동자(recipient) 에게도 동일하게 행해야 한다는 내용을 함께 말하고 있는 점이다.
주자는 한편으로는 원시 유가의 충서론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고도의 메타포를 통한 재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는 ‘충서’를 공자가 말한 ‘일관지도(一貫之道)’와 동일시하면서 이렇게 해석한다. “나 자신을 다하는 것을 충(忠)이라 하고, 자신을 헤아려 행하는 것을 서(恕)라 고 한다.”22) 이 말은 나 자신의 도덕적인 원리에 충실하기를 힘쓰는 것이 충(忠)이고, 이를 바탕으로 나의 잣대를 헤아려 타인에게 도덕적인 행위를 삼가 행하는 것을 서(恕)라고 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21) 뺷中庸뺸 13章
22) 뺷論語集注뺸 卷5 : 盡己之謂忠, 推己之謂恕.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이 충서의 윤리가 천도(天道)의 원리와 부 합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도덕적 기준에 충실할 수 있는 그 윤리적 보편 성의 근거는 기독교처럼 인간을 창조하신 신의 형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운행하는 원리이자 인간 본성의 근거가 되는 천도로부터 왔다.
지극히 참되고 쉼이 없는 본체가 도의 체(體)이고 만물이 분화된 것의 하나 된 근본이다. 만물이 각자 이를 부여받아 자리를 잡은 것이 도의 용(用)이고 하 나 된 근본이 만 갈래로 분화된 것이다. 이로써 보면 ‘일이관지’의 실체가 잘 드 러난다.23)
천도 본체의 유행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충(忠)이고, 그로부터 만물을 창생하 는 일이 사람에 있어서는 서(恕)이다.24)
나 자신을 다하는 것이 충(忠)이고, 도의 체(體)이다. 나 자신을 미루어 행하 는 것이 서(恕)이고 도의 용(用)이다.25)
사람의 윤리인 충서는 천도의 운행과 맞닿아 있다. 하늘의 도는 지극히 참되고 쉬지 않고 운행하는 데, 사람이 이를 본 받아 충서의 원리로 삼고 실천하는 것이 바로 ‘하나로 꿰뚫는 도’이다. 이 충서의 원리는 마치 천도의 구조와 같아서 충(忠)이 그 형이상학적인 근거를 이루고 이로부터 서(恕) 가 현실세계로 분화되면서 적용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람은 먼저 나 자 신의 도덕을 진실하고 무망(无妄)하게 가다듬는 것이 필요한 데 이것이 충 (忠)이고, 이로부터 나 자신의 도덕적인 잣대와 기준에 합당하게 다른 이에
23) 뺷論語集注뺸 卷2 : 蓋至誠無息者, 道之體也, 萬殊之所以一本也; 萬物各得其所者, 道之用也, 一本之所以萬殊也. 以此觀之, 一以貫之之實可見矣.
24) 뺷四書或問뺸 卷4 : 其本體之流行者, 在人則謂之忠; 由是而生物者, 在人則謂之恕耳.
25) 뺷四書或問뺸 卷4 : 蓋盡己爲忠, 道之體也; 推己爲恕, 道之用也. 忠爲恕體, 是以分殊 而理未嘗不一; 恕爲忠用, 是以理一而分未嘗不殊. 此聖人之道, 所以同歸殊塗, 一致 萬慮, 而無不備, 無不通也.
게 실천하는 것이 서(恕)이다.
그리고 천도에 근거를 둔 충서의 원리는 체용(體用)의 구조로 표현된다.
주자의 충서론은 보편규율로서의 도덕 잣대가 내게 주어져 있다는 차원에서 충을 먼저 논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게 주어져 있는 보편 규율에 비추어 남 에게까지 이 원리를 실천으로써 적용해가는 구조를 띠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충서의 체용 구조는 체가 먼저 정립된 후에야 비로소 용으로 확장되는 선체후용(先體後用)의 구조를 띠고 있으며 또한 나의 주체인 체의 기준에 맞추어 타자에 그 기준과 원리를 적용하는 체일용수(體一用殊)의 구조를 띠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체용의 구조로써 설명된 주자의 충서 논의는 보편 규율에 대한 근거를 전제로 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타인에게까지 그 규율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관계의 윤리가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원시유가의 대표명제인 ‘기소불욕, 물시어인’ 즉 “나 자신이 원치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 지 말라”와 “자식에게 원하는 것으로 부모를 섬기는 것”이 지니는 상호 관계 성을 체의 보편 규율과 체에서 용에 이르는 즉 충(忠)을 먼저 정립하고 이로 부터 서(恕)로 확장하는 이론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주자의 충서 체용론은 나와 타자의 관계가 천도에 근거를 둔 보편규율의 상호 공감 속에서 충서의 실천은 가능하며, 이는 먼저 행위 주체인 나의 도덕 잣대와 도덕 원리를 충 실히 한 다음에 비로소 타인에게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2.2. 도덕기준과 도덕원리
천도의 체용을 본받은 인간의 충서는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흠이 없는 자에 의해 온전하게 구현된다. 주자는 이를 성인(聖人)의 충서로 이해하였다. 유가 의 성인(聖人)은 이러한 조건과 기준을 온전히 충족한 자로서, 그가 행하는 충서의 도는 하늘의 도와 합치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성인의 충(忠) 은 기실 순진무구하고 생생불식하는 천도의 성(誠)에 온전히 부합한다. 성 (誠)은 천도이고 도덕의 근거라고 말한다면, 성인은 이를 본받아 사람의 윤리
로서 온전히 구현하는 자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인의 경지에서는 실천 원리로 서의 서(恕)와 도덕 원리인 인(仁)이 별 차이가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성인의 서(恕)는 인(仁)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26) 성인의 충은 자신의 도덕 기준과 원리에 충실하다는 의미에서 성에 가깝고, 성인의 서는 자연스럽 게 자신의 도덕적 행위를 남에게 베푼다는 점에서 인에 가깝다.
성인의 충(忠)은 분명 성(誠)의 발현이고 성인의 서(恕)는 분명 인(仁)의 베 품일 것이다. 그러나 충이라 말하고 서라고 말한 데에서 체용이 서로 의존하는 뜻을 볼 수 있고, 성(誠)이라 하고 인이라 말함은 전체를 통관한 바를 말한 것이 니 체용의 구분이 드러나지 않는다.27)
도덕적 인간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성인이 실천하는 충서는 하늘의 도덕기준에 온전히 부합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자기 자신의 도덕원리를 자발적이고 힘들이지 않게 타인에게 베풀 수 있다. 이러한 충서의 윤리는 유가의 이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인(聖人)의 경지에서 드러난 충서는 윤리학이 지니는 여러 요소, 예를 들어 도덕기준, 도덕의무, 자발적 행위 등의 개념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충서라 함이 성(誠)이 자연스럽게 발현되고 인(仁)의 실천이 충실하게 구현되는 경지라면, 이는 마치 서양 윤리학의 태두인 칸트 가 정밀하게 분석했던 황금률의 보편법칙에 관한 논증이 무력화되는 느낌 을 받는다.
칸트는 일찍이 뺷윤리형이상학 정초뺸의 각주 부분에서 황금률을 논하면서,
“사람들이 네게 행하기를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어구에 대 해 이는 보편적 법칙일 수 없다고 단정 지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 자신 에 대한 의미의 근거도, 타인에 대한 사랑의 의무도 함유하고 있지 않고,
26) 뺷朱子語類뺸 卷26 : 問“聖人之忠卽是誠否?”, 曰“是.” “聖人之恕卽是仁否?”, 曰“是.”
27) 뺷論語或問뺸 卷3.
또한 서로 간의 당연한 의무들의 근거도 함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 자는 이를 빌어 그에게 형벌을 내린 재판관에 대항하여 논변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28)기실 칸트가 논하고자 했던 도덕의무 또는 도덕근거의 유무(有 無) 문제는 동양철학과 주자철학의 핵심적인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
이에 대해 문병도는 만약 서(恕)를 “타인의 입장에 섰을 때 도덕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해주기를 바라지 않는 행위를 타인에게 하지 말라”로 해석한다면, 이러한 전제 하에서 서(恕)는 칸트가 말한 정언명법 (Categorical Imperative)과 합치된다고 보았다. 최상의 도덕 원리는 도덕적 의무로서 무조건적인 명령과도 같은 것이다.29)이것을 주자의 방식으로 말 하면 앞서 말했던 충의 보편규율을 충실히 하는 가운데 사람에게 갖추어지 는 것으로, 이를 통해 사람은 타인으로의 확장인 서(恕)를 실천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유가의 이상적 인물인 성인이 추구하는 충 서의 윤리는 도덕 근거에 대한 충분한 기준을 지니고, 자기 자신에 대한 도 덕적 철저함과 함께 타인에 대한 자발적이고 수혜적인 도덕적 실천을 의무 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홍성민은 이러한 차원에서 주자의 충서는 도덕적 의무에의 충실과 규범의 실행이라는 요건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말한다. 충(忠)은 타인에 대한 요구를 자기 자신 역시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서(恕)는 내가 먼저 도덕적 의무 를 충실히 수행하고 난 다음에 타인도 그것을 똑같이 수행하라고 권유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충서는 도덕의 상호 책무라는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주자의 서는 자신과 타인이 도덕적 의무를 공유하고 함께 수행해나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주자의 충서는 도덕 주체를 확립하고, 그 주체의 도덕성을 타자에게 확장해 감으로써 자타가 모두 도덕의무를 충실히 수행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30)임헌규 역시 충의 자기정립은 곧 보편 도덕인
28) 유일환, 「칸트의 황금률 비판과 유가의 忠恕 개념」, 뺷철학사상뺸 53집, 2014, 8면 재인용.
29) 김형철․문병도, 「유가와 칸트의 도덕판단 방법론 비교 연구」, 뺷철학뺸 77집, 2003, 345면.
인(仁)의 구현을 자기 임무로 삼은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충서의 개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들의 근거를 함유한다고 보았다. 또한 충서는 인(仁)의 실현을 지향하며, 인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동정을 지닌다는 차원에서 충서 개념에는 타자에 대한 사랑의 의무들의 근거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31)이러한 견해는 앞서 필자가 제시한 성인(聖人)의 차원에서 구현된 충서의 맥락에서 볼 때 논지의 타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주자의 충서론을 도덕의무 또는 상호 도덕책무의 시각에 서 조명하는 논의가 얼마나 타당한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다시 말해 성인의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충서의 논의는 부분적으로 칸트가 말한 정언 명법에 부합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주자의 충서 론은 기실 성인(聖人)의 경지에서 발현되는 충서의 논의 외에도 학인(學 人) 즉 범인(凡人)의 지평에서 바라 본 충서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 이를 개념 해석의 차원에서 말한다면 논의의 다양성은 다름 아닌 주자가 서(恕) 를 정의하면서 말했던 ‘추기급인(推己及人)’에서 ‘추기’ 즉 ‘나 자신을 미루 어’ 또는 ‘나 자신을 헤아려’가 지니는 의미의 다중성에서 기인한다.
주자에 따르면, 뺷중용뺸에서 언급된 충서는 성인의 충서가 아니라 학인 (學人) 즉 열심히 배우고 힘써 행해야만 도에 도달할 수 있는 범인(凡人)의 충서라고 말한다.32)여기서 말하는 뺷중용뺸은 곧 13장의 “충서는 도에서 멀 지 않으니, 자신에게 행하여지기를 원치 않는 바를 또한 남에게 행하지 말 라”는 내용을 말한다. 학인은 성인과 달라서 노력하고 힘써야만 도에 가까 워질 수 있고 도덕적 기준에 도달할 수 있으며 도덕적 실천을 이룰 수 있다.
30) 홍성민, 「恕의 의무론적 특징과 양상 - 주자와 다산의 윤리학에서 恕의 함의」, 뺷동양문 화연구뺸 13집, 2013, 273~280면.
31) 임헌규, 「유가의 도덕원리와 칸트」, 뺷한국철학논집뺸 29집, 2010, 142면; 유일한, 같은 책, 15면 참조.
32) 뺷朱子語類뺸 卷27, 뺷論語뺸 9, 671면: 問“在學者言之, 則忠近誠, 恕近仁.” 曰“如此, 則已理會得好了. 若‘中庸’所說, 便正是學者忠恕, ‘道不遠人’者是也.”
학인은 도덕기준의 인식 차원에서나 실천의 완성 면에서 성인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에 매우 미달된다. 따라서 도덕의무의 시각에서 볼 때 도덕의 무의 기준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덕의무의 실천도 책무적 인 차원에서 실행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도덕기준은 성인처럼 태어나면서 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므로 배워서 알아가야 하는 인지 과정이 필요하다. 범인은 또한 자기 스스로 도덕원리에 비추어 좋아하는 것과 싫어 하는 것 또는 올바른 것과 잘못된 것을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이러한 자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주자가 말한 격물궁리이다.
주자는 ‘혈구지도(絜矩之道)’를 논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스스로 궁리(窮理)하고 정심(正心)하여 미루어 가면 나의 좋아하고 싫어하고 취하고 버리는 것이 모두 올바르게 되고 나 자신을 미루어서 남에게 행하는 바도 올바르지 않은 바가 없게 되니, 상하 사방이 이를 가지고 헤아리면 가지런히 저마다 그 본분을 얻을 것이다. 만약 이치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마 음이 올바르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바도 반드시 합당한 원함이 되지 않을 것이 고 내가 싫어하는 바도 반드시 합당한 싫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살피지 않고 이를 남에게 행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뜻이 비록 공평할지라도 그 일 은 사적인 것이 되어 타인과 내가 서로 침범하고 서로 상해를 입히게 된다.33)
도덕기준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궁리와 정심의 공부 가 있은 후에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도덕의무를 말하기에 앞서 먼저 나 자신의 도덕기준을 명확히 밝혀야 하고 이를 기준 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논의의 초점을 도덕의무의 근거 를 지니는가 또는 도덕의 기준이 올바른가의 논의로부터 다시 공자가 본래 말하고자 한 것 그리고 주자가 논구하고자 했던 그 취지로 옮겨와야 할 필 요가 있다. 그 초점 중의 하나는 바로 범인은 궁리(窮理)와 정심(正心)을
33) 뺷大學或問뺸, 36~37면.
통해 도덕기준을 배우고 이를 조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궁리와 조정의 과정은 결코 자발적이거나 능동적인 면에서 촉발되 기보다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잣대를 탐색하는 궁리의 과정 속에서, 그리고 내가 자발적으로 타인에게 완벽하게 행하는 경지보다는 오히려 나 스스로 꺼리고 싫어하는 바에 대해서 반추하여 헤아리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된다.
이 점은 공자가 직접 언급한 서(恕)의 한 단면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자공이 “한 마디 말로써 평생을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공 자께서 “그것은 서(恕)일 것이다. 자신이 원치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34)
범인(凡人)에게 놓여진 윤리의 곤경은 자기 스스로 도덕의 기준을 인지하 고 실천하기에는 매우 불분명하고 불확실하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이를 알아 가는 궁리의 과정이 필요하다. 나 자신을 반추하여 타인에게 내가 원치 않는 바를 행하지 않는 것은 곧 나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조정하는 과정임과 동시 에 타인과의 도덕적 조율이 필요한 단계에서 요청되는 적절한 행위이다.
성인의 이상과 학인의 현실의 차이를 보여준 앞의 내용과 유사하게, 주자 는 서(恕)와 인(仁)의 차이를 인위적인 노력과 자연스런 행위의 차이에 있 다고 논하고 있다.35)자연스러움과 인위적인 노력의 차이는 자율적이고 능 동적인 실천이 가능한 경지와 공부에 힘쓰고 조정이 필요한 실천이 필요한 수준의 차이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서와 인의 차이는 적극적인 면과 소극 적인 면의 차이를 말하거나 긍정화법과 부정화법의 구분을 말하는 것이 아 니라 다른 층차의 공부와 개념을 논한 것이다.36)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충
34) 뺷論語뺸 「衛靈公」.
35) 뺷論語集注뺸 卷3 : “程子曰 ‘我不欲人之加諸我, 吾亦欲無加諸人, 仁也; 施諸己而不 願, 亦勿施於人, 恕也. 恕則子貢或能免之, 仁則非所及矣.’ 愚謂無者自然而然, 勿者 禁止之謂, 此所以爲仁恕之別.”
36) 姜眞碩, 「關於‘忠恕’的視角和解釋之探討」, 뺷國際中國學硏究뺸 15輯, 2012, 211면.
서는 자기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더 확실히 알아가는 과정이자 나의 도덕 적 기준을 헤아리고 이를 타인에게 적용하면서 일치시키려는 과정이며, 나 아가 이 과정 속에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그러한 도덕 원리를 타인에게 베풀려는 실천의 과정이다.
나 자신의 도덕원리를 성찰하고 이를 헤아려서 남에게 실천하는 과정인
‘진기(盡己)’와 ‘추기급인(推己及人)’은 인(仁)이 지니는 자발적이고 능동 적인 도덕 실천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주자는 이런 차원에서 공자가 「옹 야」 편에서 말한 성인의 덕목과 서(恕)는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옹야」 편 에서 공자가 말한 내용이다.
자공이 “만일 백성에서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습니 까? 인(仁)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공자가 말씀하시길 “어찌 인 (仁)을 일삼는데 그치겠는가? 반드시 성인일 것이다. 요순도 이를 부족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인자는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해주고, 자신이 달성코자 하면 남도 달성하게 해준다.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가까운데서 취하 여 비유할 수 있으면 가히 인을 실천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37)
인(仁)은 “내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한다”는 데 있어서 주저하거나 돌 아보지 않고 자신의 도덕 기준에 맞추어 자연스럽고 능동적으로 행한다. 이 러한 차원에서 나 자신의 도덕의무의 기준에 근거해서 타인에게 그러한 도 덕의무를 실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서(恕)는 나의 도덕기준에 비 추어 타인에게 실천하는 과정에서 지체하거나 생각하는 단계가 필요한데, 이 둘의 차이는 마치 내가 밥을 먹고 싶을 때 따로 생각할 것도 없이 자연
(주자 충서론에 있어서 행위 주체가 타인이 나에게 행하기를 원치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행위와 내가 원치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금지적 행 위는 충과 서의 구분이나 서(恕)의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의 구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仁)과 서(恕)의 서로 다른 층차를 말한 것이다.)
37) 뺷論語뺸 「雍也」.
스럽게 다른 이도 밥을 먹게 하는 경우와 내가 밥을 먹을 때 다른 이가 밥 을 먹는 것이 합당한 가를 생각해보고 비로소 밥을 먹게 하는 경우로 나누 어 이해될 수 있다.38)
이 사례는 우리에게 충서의 실천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먼저 도덕적 기준 에 합당한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고 또한 타인의 조건에 대한 고려가 필 요함을 함께 논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도덕의무로서 선험 적으로 주어져서 당연히 실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써 노력해야 할 하나의 과정이고 실천을 통해 확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추 기급인(推己及人)’은 실로 실천하여 확장해야 하는 과정의 덕목이다. 주자 가 “만약 자신을 미루어서 남에게까지 미치지 않으면 단지 자기 자신만 이 해할 뿐 남을 돌보지 않게 되고, 다른 이의 일에 대해 내가 상관할 바가 아 니라고 말하게 된다”39)고 말한 것도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학인과 범인의 현실 지평에서 논해진 충서는 칸트가 말한 것처럼 인간에 게 이미 분명하게 주어진 도덕의무의 근거이거나 나와 타자에게 공통으로 구비되어 있는 상호책무의 당위적 실천 강령이라기보다는 한 행위의 주체 가 공부를 통해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배우고 살피며, 이를 통해 타인의 입 장을 헤아려서 나의 도덕적 실천이 합당한지를 여러모로 고려한 후 비로소 실천하고 확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궁리와 실천은 자발 적이고 능동적인 인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서(恕)의 실천 덕목이고, ‘기 소불욕, 물시어인’은 나 자신을 헤아리고 이를 남에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주요 방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2.3. 공동체윤리로서의 해석가능성
유가의 황금률은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를 논하는 개인윤리에만 국한되
38) 뺷朱子語類뺸 卷27, 뺷論語뺸 9, 691면.
39) 뺷朱子語類뺸 卷27, 뺷論語뺸 9, 696면.
지 않는다. 충서가 개인윤리의 영역을 넘어서 하나의 공동체 윤리라는 점을 보여주는 내용은 ‘혈구지도(絜矩之道)’ 사상에서 잘 드러난다.
군자는 혈구지도가 있다. 윗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앞사람에게서 싫었던 것 으로 뒷사람에게 가하지 말고, 뒷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앞사람을 따르지 말 며, 오른쪽에서 싫었던 것으로 왼쪽을 사귀지 말고, 왼쪽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오른쪽에게 사귀지 말 것이니, 이것을 일컬어 혈구지도라고 한다.40)
도덕의 잣대로써 헤아린다는 뜻의 ‘혈구’의 도는 나와 남이라는 일대일의 관계 윤리가 아니라 나, 윗사람, 아랫사람 또는 나, 앞사람, 뒷사람 등 적어 도 3인 이상의 관계 속에서 구축되는 윤리이다. 다시 말해 만약 내가 윗상 사에게 온당치 않은 대접을 받았을 때 싫었던 감정과 경험에 비추어 아랫 사람에게도 이에 준하는 대접을 잘 해야 한다는 것으로, 적어도 3인 이상의 공간 속에서 적용되는 윤리이다. 이러한 관계는 위에서 아래로 또는 앞에서 뒤로 등과 같은 일방적인 관계의 윤리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언제든지 교차적 고려와 적용이 가능한 쌍방향 또는 다차원적 관계 특성을 지닌다. 주자는 이러한 혈구지도의 특징을 ‘삼접설(三摺說)’로 불렀 다.41) ‘삼접’은 세 번 접는 책을 비유하는 말로서 개인 윤리를 넘어선 관계 를 말한다. “내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세워주는” 윤리는 나와 남의 두 관계로 이루어진 ‘이접설’(二摺說)에 해당된다면, ‘혈구지도’는 세 종류 이상의 주 체가 모여서 구성되는 윤리의 덕목을 말한다. 이는 셋 이상의 관계와 상하 사방의 네트워크 속에서 윤리 주체는 ‘혈구’ 즉 도덕적 잣대로써 관계의 윤 리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주자는 혈구지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40) 뺷大學뺸 傳10章.
41) 뺷朱子語類뺸 卷16, 뺷大學뺸 3, 362면.
나 자신의 마음으로써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남이 싫어하는 것이 나 와 다르지 않음을 알면 나의 싫어하는 것을 함부로 남에게 행하지 않을 것이다.
내 몸을 이 곳에 놓게 되면 상하 사방과 만물과 나의 관계가 각자 그 본분을 얻 어 서로 선을 넘지 않게 되고, 각자 중심을 잡게 되고 그 점한 자리를 잘 가다듬 게 되어, 넓고 좁고 길고 짧은 것이 모두 가지런히 하나처럼 되고 분명하고 반듯 하게 되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되니, 이것이 소위 혈구이다.42)
혈구지도는 비록 나 자신의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서 출발하 지만, 그 윤리적 행위는 공동체의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나라는 한 윤리 적 주체는 상이하고 다양한 여러 ‘타인’과 접촉하게 되고 이 속에서 “만물과 나의 관계가 각자 그 본분을 얻어 서로 선을 넘지 않는” 그러한 관계를 지 향하게 된다.
왕칭지에(Qingjie James Wang)는 이러한 유가 윤리의 특성을 보편화가 아닌 ‘공동체화(communalizability)’로 설명하였다. 유가의 황금률은 초월적 또는 신성적인 권위로부터 유래한 규범 또는 규율이 아니라 인간 상호 간 의 마음, 구체적인 현실적 상황 하에서 드러난 마음 간의 공감에 기초한다 고 보았다. 이것이 이른바 “사람이 도를 넓힌다”43)는 의미이다. 유가가 지 향하는 것은 사람의 공동체 속에서 실천적 경험으로부터 아우러진 인간적 이고 상호적이며 공평한 윤리이다. 이처럼 공동체 속의 실제적인 경험과 현 실적인 상황에서 생성된 것을 중시하는 윤리적 경향은 이미 주어진 어떤 의무로서의 도덕상의 절대적이거나 정언명령적인 이념을 거부한다. ‘공동 체화’를 지향하는 유가의 도덕적 특징은 정언적이기보다는 사례적이고 명 령적이기보다는 협의적이며 규율적이기보다는 교육적이다.44)
다시 말해 유가의 충서는 자체적으로 개인 주체가 개별적인 도덕기준을
42) 뺷大學或問上뺸, 36면.
43) 뺷論語뺸 「衛靈公」 : 人能弘道.
44) Qingjie James Wang, “The Golden Rule and Interpersonal Care-From a Confucian
Perspective”, Philosophy East & West Vol. 49, 1999, pp.426~427.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상하 사방과 같은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의 잣대를 다시금 헤아리는 작업이 필요할 수 있다. 임헌규는 유가의 도덕 주체가 ‘중 (中)’으로 자신을 정립하여 법도를 넘지 않는 표준적인 삶을 구현하려고 하 기 때문에 공동체의 삶에서 법도를 헤아리고, 이를 바탕으로 자기를 정립하 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45)공동체 속에서 법도를 헤아리고 상호 간 의 선을 넘지 않는 중(中)을 찾는 것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과 같은 작은 단 위와 함께 개인과 공동체 간의 관계를 고려하는 조건이 함께 작동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윤리적 실천은 이미 주어진 불변의 도덕 기준을 어 떤 매뉴얼로 채택하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 공동체의 황금률로서
‘지속적’으로 방대한 틀을 잡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46)
왕칭지에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원하는 바를 하라”는 긍정화법보다 “원 치 않는 바를 하지 말라”는 부정화법이 더 선호된다고 보았다.47)이렇게 볼 때 뺷중용뺸 13장에서 “자식에게 원하는 것으로 부모 섬기기를 제대로 못하 고, 신하에게 원하는 것으로 임금 섬기기를 제대로 못하며, 동생에게 원하 는 것으로 형 섬기기를 제대로 못하고, 친구에게 원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먼저 행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고백한 공자의 말은 기실 충서의 실 천이 어렵다는 것을 고백한 것과 함께 공동체의 윤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토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철승은 혈구지도의 공동체 윤리가 지니는 현실적 문제에 대해 더욱 천 착하고 있다. 그는 공동체에 주어진 도덕의 원리나 기준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내용이 다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화할 수도 있다는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도덕의 내용은 어느 시기에 어느 지역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보편성을 유지하다가 다른 시기에 다른 상황에 의해 특수성으로 전락하거
45) 임헌규, 같은 책, 142면.
46) Qingjie James Wang, 같은 책, p.427.
47) Qingjie James Wang, 같은 책, p.427.
나, 혹은 어느 시기에 어느 지역에서 특수성으로 머물다가 다른 시기에 그 사회를 포함한 다른 사회에까지 보편성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러한 보편성 을 이철승은 ‘시한부 보편성’ 또는 ‘제한된 보편성’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도덕적 회의주의나 몰가치적 윤리설이 아닌, 주어진 시공간의 영향 속 에서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민주적인 협의와 합의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내는 변화 가능한 보편성이다.48)이러한 논점은 앞서 왕칭지에 가 영구불변의 보편성과 구별하여 말했던 ‘공동체화’된 황금률의 개념과 유 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49)이러한 공동체 윤리에서 더욱 필요한 것은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나의 도덕의식과 타인의 도덕의식 사이의 간극을 해 소하는 것임과 동시에 새로운 공통의 공속의식을 창출해내는 것이다.50)
사실 ‘혈구지도’와 관련된 주자의 해석은 앞서 언급했던 ‘삼접설’의 논의 와 “나 자신의 마음으로써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차원에서 공동체 윤리를 논했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혈구지도’에 관한 보다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논의는 한국유학의 해석 속에서 전개되었다.
전병욱은 이 논의들에 주목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조선시대 유학자의 ‘혈 구지도’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하나는 ‘이구혈지(以矩絜之)’ 즉 남의 마음 을 헤아릴 때 공평한 기준을 사용한다는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혈이구지 (絜而矩之)’ 즉 남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헤아려 남들도 나와 같 이 공정한 몫을 얻도록 하는 방식이라는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두 종류의 해석은 주자의 ‘삼접설’ 즉 일대일의 개인윤리가 아닌 공동체 윤리 속에서의 논의가 지니는 다층구조의 성격을 더욱 구체적으로 해석한 사례 로 볼 수 있다. 이 논의들은 성호 이익과 정약용에 이르러 ‘혈이구지(絜而 矩之)’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이병휴(李秉休)의 경우에는 ‘혈구지
48) 이철승, 「유가철학에 나타난 충서관의 논리구조와 현실적 의미」, 뺷중국학보뺸 58집, 2008, 438면.
49) Qingjie James Wang, 같은 책, p.426.
50) 이철승, 같은 책, 439면.
도’를 “공평한 기준을 사용하여 남과 나의 몫을 헤아린다”는 뜻의 ‘도물이 구(度物以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남과 나의 몫을 잘 재서 그 크기를 반듯하게 하다”는 뜻의 “도물득방(度物得方)”을 말한 것으로 주장 하기도 하였다. 전병욱은 주자를 둘러싼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그 근거가 있 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구혈지(以矩絜之)”에서 “혈이구지(絜而矩之)”
에 이르는 실천의 과정이라고 주장한다.51)
필자는 이 논의들 속에서 공동체적 충서 윤리의 또 다른 공간을 발견하 게 된다. 조선유학자들이 제시한 ‘혈이구지’ 즉 ‘남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 인지 잘 헤아려 남들도 나와 같이 공정한 몫을 얻도록 하는 방식’이라는 이 해의 해석은 나와 타인의 상호 기준의 적용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실제로 주자 본래의 해석 범주를 넘어선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주자의 충서 해석이 ‘추기급인’ 즉 나의 기준을 미루어서 남에게까지 미치게 한다는 실천적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이를 거꾸로 보면 타인의 조 건과 요구는 논의의 바깥에 설정되어 있었던 해석상의 한계가 존재했다.
우리의 논의를 다시 “이구혈지(以矩絜之)”에서 “혈이구지(絜而矩之)”에 이르는 과정에 집중하고, 이를 다시 유가원전에 대한 이해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현실 공동체 속에서 “나 자신의 마음으로써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으로부터 “윗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 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않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 또는 “나 자신의 마음으로써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으로부터 “자식에게 원하는 것 으로 부모 섬기기를 제대로 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단계에는, 보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서(恕)’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이해될 수 있다. 전병욱이 지적하였 듯이, 조선유학의 충서와 혈구지도의 논의는 주자학 자체의 충서론 논의를 훨씬 풍부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논의는 해석의 확장으로도 볼 수 있고 시각
51) 전병욱, 「“絜矩之道”에 대한 해석을 통해 본 주자의 공동체 윤리」, 뺷동양철학연구뺸 83집, 2015, 190~198면; 강진석, 2016 재인용
의 전환으로도 볼 수 있다.
3. 맺는말
이상으로 주자의 충서론이 지니는 현대적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필자 는 본 논문을 전개하면서 두 가지 내용에 주목하게 되었다. 첫째는 공자에 서 주자에 전승되었던 사상의 맥락을 되짚어보는 것이었고, 둘째는 공자와 주자의 논의 속에서 우리가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시각이 없었는지를 점검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문제의식 속에서 필자는 공자가 말했던 ‘기소불욕, 물시어인’이 주자의 해석 중에서 어떤 내용과 연결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학인의 충서에 주목하고자 했던, 그리고 그 과정 속에 강조되었던 궁리, 정심의 대 내적 실천과 ‘추기급인’의 대외적 실천의 면모를 다시 성찰하게 되었다. 두 번째 문제의식 속에서 필자는 ‘혈구지도’가 지니는 다층적이고 공동체적인 구조와 여러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혈구지도’로 대표되 는 충서의 윤리는 개인에서 타인으로 향하는 일방적인 윤리실천만이 강조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특수성도 함께 고려되는 쌍방향적이고 공동체적 인 윤리에 기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불신과 갈등으로 팽배해진 오늘 우리의 주변을 보면서 주자의 윤리 사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주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 중의 하나는 대인 윤리에 있어서 이상과 현실의 층차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 게 이상의 엄격함과 함께 현실의 유연성을, 기준의 확실함과 함께 교육의 중요성을, 의무의 강조와 함께 상황에 대한 고려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주자는 우리의 현실사회에 공동체 윤리의 다원적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내 기준의 확고한 신념과 함께 타인의 조건에 적용하는 데 있 어서 합당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고, 개인 주체들이 공동체 속에서
적재적소의 합리성을 얻기 위해서는 개인윤리와 공동체윤리가 함께 작동 하고 또 시대에 따라서 윤리적 기준을 조정해야 하는 등의 다양한 고려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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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Discussion on the Multi-Dimensional Interpretation of Zhu Xi's Theory of Zhongshu
52)Kang, Jin-seok*
Zhu Xi's theory of Zhongshu opened various spaces for us in various discussions. Based on the rationale for the universal rule, zhongshu emphasized the ethics that apply to others based on the rules. The theory of zhongshu that the general public is understood is understood by the process of learning and practicing moral standards, rather than the moral imperative that it is already explicitly given to humans. The theory of Jiejuzhidao refers to the virtue of the moral virtues of three groups of actors.
Key Words : Zhongshu, Interpretation, Moral Standard, Moral Principle, Community Ethics
<필자소개>
이름 : 강진석
소속 : 한국외국어대학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논문투고일 : 2016년 12월 31일 심사완료일 : 2017년 2월 10일 게재확정일 : 2017년 2월 13일
* Hankuk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