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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날짜: 년 월 일 / 국문학사 / 담당교수 : 김상진(jeank29@hanyang.ac.kr)
제5강 중세 전기문학 2기 - 고려전기
□ 우리 문자의 공백기 : 차자표기 사멸, 한글창제 이전.
한문학의 융성 : 승려 및 유학자들에 의해 수준 향상
신라의 향가문학은 고착형태로 남거나 변화되어 고려의 서정문학으로 맥을 이음 신라시대의 영웅담은 건국신화로 장식되거나 윤색되어 설화로 전승
→ 그러나 이미 신화시대가 지남.
1. 고려 시대의 향가
고려 전기의 지배층 :
서라벌 문신귀족 신라 말 지방호족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 귀족신분 획득 ;고려 통일 후에 지방호족과 밀착된 선종보다 화엄종 같은 교종이 더 큰 구실을 하게 됨.
그런 임무를 담당한 인물이 균여(929~979) → 화엄종과 함께 향가를 고려에 계승
1) <普賢十願歌>
균여가 따로 이름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현시원가’ ‘普賢十鍾願往歌’ 등으로 명칭함.
崔行歸의 한역시와 함께 전함.
2) 睿宗의 <悼二將歌>
主乙 完乎白乎 니믈 오오 임의 목숨을 온전하게 하신 心聞 際天乙 及昆 하 밋곤 마음은 하늘 끝까지 미치고, 魂是 去賜矣中 넉시 가샤 넋은 가셨지만
三烏賜敎 職麻 又欲 사샨 벼슬마 져 내려주신 벼슬은 또 대단하구나.
望彌 阿里刺 라며 아리라 바라보면 알리라 及彼可 二 功臣良 그 두功臣여 그 때의 두 공신이여.
久乃 直隱 오라나 고 이미 오래 되었으나
跡烏隱 現乎賜丁 자 나토샨뎌 (거룩한) 자취는 나타나시도다.
(1) 작자 : 고려 16대 왕. 풍류와 문학적 아취를 즐겨 廟樂, 宴樂을 많이 제작하였다.
〈벌곡조〉의 작가로 『고려사』에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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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용 : 건국 초에 功臣이 몸으로써 죽음을 대신한 충절을 추도하고 칭송함으로써 신 하들의 위국 충성의 결의를 굳게 하여 왕실의 기초를 다지려는 군주의 뜻에서 지어진 노래.
(3) 형식 : 전대의 향가와 고려적 성격을 띤 가요를 연결시키는 역할. 표기법이 정통 향가 와는 다소 차이가 있으면서도 향가에서 볼 수 없는 분장의 형식은 고려가요와 접맥되어 있 다. 곧 쇠잔해가는 향가에 미련을 남기면서 새로운 시가 형식의 모색을 의미. <모죽지랑가>
와 같은 8구로 된 노래. 또한 노래를 시조의 3장 형식과 통할 수 있도록 해독할 가능성도 있어, 향가에서 시조로 이행해 가는 과정의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3) 鄭敍의 <정과정>
(前腔) 내님믈 그리와 우니다니 내 님[임금]을 그리워하여 울고 지내고 있으니 (中腔) 山졉새 난 이슷요이다 산의 두견새와 나는 비슷하나이다.
(後腔) 아니시며 거츠르신 아으 아니며 허황하신 줄을 아아!
(附葉) 殘月曉星이 아시리다 殘月曉星이 아실 것입니다.
(大葉) 넉시라도 님은 녀져라 아으 넋이라도 님과 한 곳에 가고 싶습니다. 아아!
(附葉) 벼기더시니 뉘러시니가 어기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二葉) 過도 허믈도 千萬 업소다 잘못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三葉) 힛 마리신뎌 말짱한 말씀이었구나 (四葉) 읏븐뎌 아으 슬프군요, 아!
(附葉) 니미 나 마 니시니가 님이 벌써 나를 잊으셨습니까
(五葉)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마소서 님이시여, 다시금 들으시어 사랑하소서.
(1) 작자 : 鄭敍가 의종 5년 (1151) 4월부터 의종 24년 (1170) 까지 配所에 머물며 지은 작품.
구체적인 시기 : ①5년간의 東萊配所 (의종 10년 전후) 에서 지었다는 설
②거제시대에 의종 복위 운동 및 被弑를 둘러싸고 이루어진 것으로 의종 24년 9월부터 10월 사이라고 추정하는 설
(2) 내용 : 忠臣戀主의 情
(3) 형식 : 일반 향가보다 길기는 하지만 10구체 향가로 파악할 수 있다. (감탄구가 10구) 10구체 향가에 가깝고 우리말로 불리어졌다는 점에서 향가와 유사.
참조 :『악학궤범』에는 ‘三眞勺’으로 전함. 이란?
2. 기타 문학
1) 과거제도 실시와 한문학의 융성
- 3 - - 광종의 과거제 실시와 호족세력 진압
- 과거의 시험 과목은 ‘詩 賦 頌 時務策’
- 성종은 과거제 정착을 위해 관학(官學)인 국자감 설립.
- 문종에 이르러 私學이 생겨나 몇몇 가문에서 벼슬을 대거 차지하며 문벌귀족 형성.
2)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 『三國史記』
舊三國史를 기초로 묘청의 고구려 정통론을 누르고 신라 정통론을 확보한 책. 자주적 기 상보다는 유학이나 한문학을 중시하여 민간전승의 하층 문화를 대신 상층 문화를 국가적 규 범으로 설정
3) 『수이전(殊異傳)』
원제목은 ‘신라수이전’
우리나라 최초의 설화집으로 ‘뛰어나게 기이한 전기’란 의미를 지님.
정확한 작자는 알 수 없으나 원작자는 崔致遠, 작자는 朴寅亮으로 추측. 책은 전하지 않 으나 10편의 이야기가 『삼국유사』를 비롯한 여타의 책에 전함.
『삼국사기』와는 반대의 성격을 지니며 국풍을 존중하려는 민간전승의 집성.
4) 정지상(鄭知常, ? ~ 1135)의 漢詩
묘청과 함께 서경 천도를 본격화한 인물.
향토의 정서를 살리면서 아름다운 표현을 쓰고자 함.
대표작으로 漢詩 <송인>이 전함.
참조 : 작품보기
<送人>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가 갠 뒤 긴 언덕에는 풀빛이 짙어 오는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그대를 남포로 보내니 슬픈 노래가 나오네.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은 언제나 마를 것인가.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해마다 이별의 눈물을 푸른 물결에 보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