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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안동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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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역 주변 시내 모습

김현주 | 구암고등학교 지리교사([email protected])

새 중앙선과 함께

꿈꾸는 안동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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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경북선의 종점이었던 안동 그리고 중앙선과 임청각

2016년 가을에 개봉한 영화 ‘밀정’

에서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 분) 과 독립 운동가 김우진(공유 분)은 압록강 철교를 넘어 멈춰 선 ‘안동 역’으로 항일 무장 투쟁에 쓸 폭탄 과 무기를 반입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20년대의 안 동역은 일제가 관할하던 중국 단동 역이다. 우리의 안동역은 1949년 6월까지는 ‘경북안동역’이었다. 안

동에 철도가 처음 들어온 것은, 경부선이 김천과 대구에 개통된 지 20여 년이 흐른 뒤인 1930년이 되어 서였다. 철도 개통에 있어 경부선 김천보다는 늦었지만, 1941년에 중앙선이 개통된 영주보다는 빨랐다.

이 당시 경북안동역은 김천에서 시작하는 경북선의 종점이었다.

1940년에는 드디어 서울과 경주를 잇는 제2 종관철도 중앙선이 안동을 통과하게 된다. 이로써 안동 은 중앙선, 경북선이 교차하는 지역 중심지가 되었다. 이 당시 안동역은 제천역(충북)에서 화산역(경북 영천)까지 중앙선 20개 역을 관할하였으나, 그 기간은 14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 1944년 태평양 전쟁 중이던 일본은 경북선 노선 중 점촌~안동 구간 철로를 뜯어서 군수물자로 사용하였다. 김천~점촌으로 구간이 단축된 경북선은 광복 후 1966년 점촌~예천 구간을 개통하고, 안동 대신 영주를 잇는 노선으로 재개통했다.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면서 중앙선만 통과하는 안동 대신 강원도 지역의 자원 수송에 유 용한 영동선과도 이어지는 영주를 택하는 노선으로 변경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경북안동역은 간도나 황해도로 떠나는 빈농, 강제징용된 사람들, 독립운동가 등을 실 어 나르는 장소였을 것이다. 중앙선이 추가로 개통되면서부터는 만주, 러시아까지도 갈 수 있는 경북 북부지역의 중심지 역할도 수행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버텨낸 안동역에는 특별한 철도 관련 시설이 있다. 철길 옆에는 과거 증기기관차가 다닐 적에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다각형 모양의 육중한 급수탑이 있다. 차량을 유치하여 둘 수 있는 선로는 물론 기관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전차대도 있다. 중앙선은 청량리~경주 구간을 오가지만, 안동에서 청량리까지 오가는 무궁화호 상 · 하행선이 하루 7회씩 운행한 다. 안동역에 도착한 무궁화호 열차는 기관차만 떼어 전차대에 올려서 서울 방향으로 방향을 바꾼 후, 다시 여객열차와 함께 출발한다. 안동역에서는 증기기관차, 디젤(전기)기관차의 흔적을 모두 볼 수 있 다. 현재 중앙선, 영동선을 운행하는 모든 여객열차가 정차하는 안동역은, 2020년 송현동 버스터미널 쪽으로 이전을 앞두고 있다.

안동역

주: 안동역 현판은 퇴계이황의 ‘매화시첩’에서 세 글자를 따와서 2016년부터 한글과 한자가 함께 쓰이고 있음.

제2 종관철도_중앙선을 타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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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에 이어, 2017년 7월 필자가 안동을 다시 찾았을 때, 안동역에서 낙동강과 중앙선 철길을 따라 1km 정도를 달려 ‘임청각’을 찾아갔었다. 임청각은 지난 여름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언급 되어 유명해졌지만, 이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임청각 주변은 낙동강 제방 옆에 높여 지은 중앙선 철 길이 담벼락처럼 막고 있어 막다른 골목처럼 느껴졌다. 임청각 옆으로는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과 국보 16호인 법흥사지 칠층전탑이 있었다. 임청각과 종택 모두 숙박시설로 쓰이고 있었다.

임청각은 1515년 고성 이씨 이명(李洺)이 지은 집으로 당시에는 99칸에 이르렀다고 한다. 임청각은 영남산의 남사면에 지어져 낙동강을 남쪽으로 바라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에 해당한다. 이 집의 진정한 가치는 500여 년이 넘어서도, 대규모 민가여서도 아니다. 석주(石州) 이상룡(李相龍)의 생가이 자 그 일가의 독립투쟁 본산이기 때문이다. 이상룡은 독립 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을 지냈다. 이상룡과 아들 준형은 물론 두 동생 상동 · 봉희 일가, 심지어 자형(姊兄)인 백하 김대락 일가 까지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임청각과 그 부속 토지 일부만 제사를 위해 남겨놓고 모든 재산을 팔아 독립전쟁에 바쳤다. 한때 99칸에 이르던 임청각은 현재 50여 칸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일제가 중앙 선 철길을 안동의 북동쪽에서 낙동강

제방을 따라 놓으면서 임청각의 일부 건물을 허물었기 때문이다. 중앙선 철 길에 잘려 나가고, 철길 담벼락에 가 로막힌 임청각 건물은 최근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재조명 되고 있고, 복원 움직임이 활발하다.

1930년에는 안동읍성 남문 밖에 경 북선 안동역이 들어섰다. 10여 년이 흐른 1941년, 영주와 이어지는 중앙선

임청각과 중앙선

출처: http://www.tourandong.com/public/sub1/sub1_6.cshtml? seq=695.

안동역 안동읍성 남문

의성방향

운흥동 낙동강 오층전탑

동주 전탑 독묘 강무당

영호루 안동역

안동읍도(좌) 및 해동여지도(우)에 나타난 옛 안동 일대와 지금의 중앙선 출처: http://www.ugyo.net/cf/frm/mtFrm.jsp?CODE1=03&CODE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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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놓이면서 임청각의 50여 칸 정도가 철로 개설로 수용되었다.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독립 운동가의 집 앞에 일부러 철길을 냈는지는 사실 확인이 더 필요하다. 일제는 이미 놓인 경북선 안동역 과 영주역을 연결하면서 읍성 안쪽의 민가 토지 수용에 따른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임청각의 상징적 의미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적, 물적 자원 수탈이 1순위였기 때문에 철길을 우회하거나 다 른 철길을 염두에 두는 건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일부러 그랬건, 모르고 했건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일 제가 놓은 중앙선 철길로 인해 임청각이 잘려 나갔다는 점이다. 지난 여름 임청각에 갔을 때에도 중앙 선 무궁화호 열차가 안동역을 향해, 영주역을 향해 달릴 때마다 소음과 진동에 잠시 멈칫해야만 했다.

2020년 중앙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안동역이 송현동 버스터미널 근처로 이전하게 되면 중앙선 철길 이 헐리고 임청각 군자정에서 막힘없이 낙동강을 내려다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그 많던 기차역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중앙선 영주역에서 안동에 이르는 동안 여객을 내려주는 곳은 오직 안동역뿐이다. 창밖으로 지나치는 옹천역, 마사역, 이하역, 서지역, 무릉역, 운산역에는 여객 열차가 서지 않는다. 안동의 작은 간이역들 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사라져가고 있다. 2020년 중앙선 복선전철 사업이 마무리되면 안동역은 도시 서 쪽으로 이전을 하고 무릉역은

지선의 형태로 남지만, 다른 간 이역들은 폐역이 될 예정이다.

안동에서 처음으로 지나치 는 옹천역은 영주댐 건설로 중 앙선 철로 구간 일부가 물에 잠 기면서 2013년에 1km 남짓 남 쪽으로 이설되어 신호장으로 격하되었다. 지난 여름에 찾 아갔던 옛 옹천역은 간판만 없 을 뿐 비교적 깨끗하고 현대적

인 모습이었다. 여전히 맞이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기차가 출발할 것만 같았다. 이 역은 1941년에 개통 됐지만 1998년에 새 역사가 완공되었다. 답사 때 만난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15년 남짓 사용한 옹천역 은 지금은 개인에게 임대되었다고 한다. <표 1>을 보면, 옛 옹천역은 인근에 북후면 옹천리 마을이 있어 2013년 3월 폐역 전에도 비교적 여객 수요가 적지 않았다. 다른 간이역들의 여객취급 중지가 여객 수요 감소에 따른 것인 데 비해 옹천역은 철로 수몰로 인한 폐쇄여서 더욱 안타깝다. 옹천리 주민들이 서울 에 가려면 번거롭더라도 안동시내행 버스를 타고 안동역이나 안동버스터미널에 내려 다시 열차나 고속

<표 1> 안동지역 내 철도역별 승하차인원의 변화 (단위: 명)

역명 1970년 1980년 1990년 2000년 2006년 2012년

옹천 300,726 314,754 105,838 21,924 7,461 5,597

마사 128,327 157,163 28,643 2,333 163 -

이하 95,416 149,551 20,508 442 199 -

서지 - - - - 56 -

안동 1,753,044 2,758,292 1,896,741 1,288,588 530,478 657,844

무릉 83,122 30 - - 129 -

운산 250,683 105,149 12,157 3,058 518 -

출처: 해당 연도 철도통계연보. 빈칸은 신호장역(서지) 혹은 여객취급 중지 시기임.

제2 종관철도_중앙선을 타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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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니 비교적 넓은 앞마당을 둔 이하역이 나타났다. 깔끔한 맞배지붕과 들꽃이 만발한 앞마당, 철길 옆 에 자리한 소박한 관사, 오랜 세월 이하역을 지켜줬던 플라타너스 나무들까지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신호장역으로 시작한 서지역을 제외하고는 마사역, 이하역, 무릉역, 운산역 모두 2007년 6월부터 10여 년 가까이 여객 열차가 서지 않았다.

안동역을 지나 찾아간 무릉역은 다른 간이역과는 외관부터 달랐다. 1990년에 전용선이 신설된 성신 양회 안동공장이 옆에 있었다. 조심스레 역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우리들에게 무릉역장은 ‘무릉역은 도담역이나 입석리역 등에서 시멘트 수송을 모두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멘트를 철송(鐵送)한 후, 이곳에서 다시 육송(陸送)으로 분담해 이동시키기 위한 곳’이며, ‘화물 물류량이 가장 많았던 1980년대 초에 비하면 지금은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하였다. 역의 왼편에는 성신양회 사 일로(시멘트 저장고)가, 오른편에는 대성산업의 안동저유소가 있었다. 무릉역은 화물역답지 않게 역의 상 · 하행선 양쪽으로 모두 터널이 있는 경관이 멋있어서 일부러 웨딩 촬영 등의 기념사진을 찍으러 오 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줄어들었다고 한다. 근처를 가게 되면 빨간 벽돌의 단층 역사와 사일로만 보고 그저 그런 화물역이겠거니 넘겨짚지 말고 꼭 한번 들러서 멋진 사진과 추억을 남기기를 추천한다.

무릉역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역은 운산역이다. 운산역은 1970년 한 해 동안 무려 25만여 명이 넘는 승객이 이용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여객취급이 중지되었다. 운산역 앞의 ‘점빵(구멍가게)’은 한때 역세권 으로 위세를 떨쳤을 때의 모습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낡아 있었다. 운산역 구내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심어 놓은 쌍둥이 왜향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두 그루의 나무가 마치 한 쌍의 은행 나무처럼 사이좋게 있었다. 운산역은 권정생의 동화 「몽실언니」의 배경이기도 하다. 몽실이가 어머니 밀 양댁을 따라 새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위해 처음 기차를 탔고, 다시 고향 마을로 돌아올 때도, 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낯선 항구

도시인 부산으로 가기 위해서 도 기차를 탔던 곳이다. 권정생 작가는 운산역이 있는 일직면의 한 교회에서 종지기를 했었다.

폐교된 일직 남부초등학교가 ‘권 정생 동화나라’로 꾸며져 있어 작가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학교 조회대 한편에 ‘강아 운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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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똥’을 형상화한 조형물 앞에서 한 컷 찍으면서 동심으로 돌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안동의 간이역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지역민들과 함께해 왔지만, 지금 은 비용 대비 여객 수요가 모자란 형편이다. 직선화, 복선화, 전철화가 한꺼번에 이루어지고 있는 중앙 선 안동 구간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사라지는 간이역들에 대한 보존, 활용방안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이루어지길 바란다.

경북선의 흔적을 찾아서: 풍산역 찾기

앞서 둘러본 간이역들이 이제 곧 사라질 역들이라면, 지금 부터 찾아볼 철길은 이미 사라진 것들이다. 경북선 예천~

안동 구간은 1931년에서 1944년까지만 기차가 다녔던 철 길이다. 일제는 1944년 태평양전쟁에 쓰일 전쟁 물자로 점촌~안동 구간의 철로를 철거해 버렸다. 광복 이후, 점 촌~예천 구간이 먼저 개통되고, 다시 예천에서 안동이 아 닌 영주 구간으로 확정 개통되었다. 옛 경북선은 고평~호 명~경북풍산~명동~경북안동 구간이다. 경북풍산역(개 통 당시 함북선의 풍산역과 구분하기 위한 명칭), 명동역, 경북안동역이 안동에 있었던 옛 경북선 역들이다.

지난 여름 안동지역 답사를 갔을 때, 풍산역을 찾아 풍산읍까지 갔었다. 풍산읍사무소 주변은 꽤 큰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인근 부동산에 들러 풍산역에서 기차를 타 보셨을 연배의 어르신들에게 물어보 고 일러주신 대로 가 봤지만, 풍산역 터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지쳐갈 즈음 옛 풍산역 바로 앞에서 태어 나고 지금도 살고 계신 어르신을 만났다. 80세를 훌쩍 넘긴 조래유 어르신은 어릴 적 풍산역에서 기차 를 타고 예천을 오갔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하였다. 풍산역이 없어진 이후로는 예천까지 시외버스로 이 동하였다고 한다. 풍산역 터는

풍산읍사무소에서 예천 방향으로

‘풍산중앙길’을 따라 가다가 ‘역전 1길’로 들어서면 만날 수 있다.

풍산역은 정미소 건물을 담벼 락 삼아 들어선 길에 덩그러니 터만 남아 있었다. 과거 플랫폼 옆에 있었던 창고 건물이 지면보

다 약간 높게 있어서 그 앞으로 경북도청 전경

옛 경북선 예천~안동 구간이 지나던 34번 국도 34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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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도청신도시는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 일대에 조성되고 있으며, 2016년에 대구광역시에 있던 경북도청이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풍산역 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철로가 끊겼던 안동과 예천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길 바란다.

안동다움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안동

안동은 일찍이 고려 시대에 안동부로 시작하여 안동대도호부로 승격되고 조선 시대에는 안동에 관찰부 를 두고 경상도 동북부 17개 군을 관할하였다. 경상북도 중북부에 위치한 안동은 대구, 포항, 김천, 경 주에 이어 1963년 시로 승격되었다. 1995년에는 안동시와 안동군이 통합되어 지금의 행정구역을 갖추 게 되었다. 안동시는 서울의 2.5배인 1521㎢로 시 단위 지역 중에서 행정구역 면적이 가장 넓다.

경북선과 중앙선이 교차할 뻔한 철도도시였으나, 그 자리를 영주에 내 준 이후에도 안동은 경북 북부 내륙의 지역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안동권’은 2014년 국토교통부에서 확정한 20개 중추도시생활권에 포함되어 있으며, 예천군, 의성군, 청송군, 영양군 등에 다양한 생활거점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중심 지이다.

안동은 오랜 세월 동안 지역의 사회 · 경제적 중심지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 통문화 중심지로서 역할을 해 왔다. 2006년 특허청에 등록된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또는 ‘지붕 없는 박 물관’ 등으로 불리어 왔다. 전통문화를 내세운 다른 도시와 안동의 차별성은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재를 고르게 보유했다는 점일 것이다. 안동에서는 시대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어느 한쪽에 편중되지 않고 민속, 불교, 유교, 최근의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는 물론, 나아가 옛 조상들의 생생한 생활 모습까지 만날 수 있다.

안동역에 내리자마자 역사 옆에 보물로 지정된 ‘운흥동 오층전탑’을 볼 수 있다. 중앙선 철길 옆 임청 각 앞에는 국보로 지정된 ‘법흥사지

칠층전탑’이 있다. 굳이 시간을 내어 찾아가지 않더라도 안동 어디에서든 다양한 문화재가 우리 곁에 있었다.

<표 2>를 보면 안동에는 93점의 국 가지정문화재가 있는데, 이 중 봉정 사 극락전 · 대웅전, 법흥사지 칠층전

<표 2> 안동시의 문화재 현황 (단위: 개)

국가지정문화재

유형문화재 중요

무형 문화재

기념물 중요

민속 문화재

등록

문화재 총계

국보 보물 사적 천연

기념물 명승

5 40 2 2 7 2 32 3 93

출처: 안동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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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하회탈 및 병산탈, 징비록 등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외에도 226점의 도지정 문화재를 포함하 여 무려 총 319개의 문화재가 있다. 안동은 퇴계 이황으로 대표되는 성리학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하였으며, 근대 기독교 문화를 꽃피우기도 한 지역 이다. 언뜻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다양한 문화유산을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안동에는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등 서원 26개소가 아직 현존한다. 퇴계 이황을 기리는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에는 안동댐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안동호를 즐길 수 있다. 서원 맞은편 강 건너로는 ‘시사단’이 있다. 서애 유성룡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병산서원은 하회마을에서 화산을 넘어 낙동강을 마주하고 있 다. 우리나라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간직한 서원으로 유명하다.

서원에서 다소 엄숙하고 근엄한 분위기를 느꼈다면, 하회마을에서는 시간여행자가 되어 조상들의 생 활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하회마을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 동성(同姓)마을로 낙동강이 이리저리 감싸 흐르고, 3개의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전형 적인 물돌이 마을이다. 부용대에 오르면 하회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둘러보기만 하는 게 아쉽다면 하회마을뿐 아니라 안동 곳곳에 있는 고택이 게스트하우스로도 쓰이니 옛 한옥에서 묵을 수도 있다. ‘헛 제삿밥’이 안동의 먹거리가 된 이유는 수많은 서원과 종택에 모여 제사를 지내면서 얻게 된 음식 풍습 때문일 것이다.

안동은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문화유산을 간직해 왔다. 한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이다’라는 문구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감히 ‘가장 안동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 을 정도로 안동의 많은 문화유산은 한국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안동은 든든한 과거를 발판으로 이제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

낙동강 물줄기와 산들에 둘러싸인 하회마을 전경 제2 종관철도_중앙선을 타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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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한때나마 경북선이 오갔던 예천과 상생하여 안동이 다시 한 번 경북 내륙의 중심지가 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북 북부 지역의 철도서비스를 향상시키고 지역균형개발을 촉진하려는 중앙선 복선전철사업도 추 진되고 있다. 중앙선 서울 청량리∼안동 구간은 KTX에 버금가는 시속 250㎞의 고속 열차가 도입돼 운 행 시간도 크게 단축될 예정이다. 안동∼청량리 소요 시간은 기존 3시간 30분(무궁화호 기준)에서 1시 간 20분대로 단축된다. 안동역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온 지 90년이 되는 2021년 경북안동역으로 시작 한 지금의 안동역은 사라진다. 새 안동역은 지금의 송현동 버스터미널 옆으로 이전하여, 도심의 동쪽을 남북으로 관통하던 중앙선 안동 구간이 도심의 서쪽을 지나게 된다. 안동시는 옛 철길을 중심으로 도심 재생사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임청각의 복원이 포함되어 있다. 오랜 시간 묵묵히 안동다움을 지켜 온 안동시에 모처럼 새로운 활력과 기운이 넘치고 있다. 부디 이 기운이 안동 구석구석에 있는 우 리의 문화유산,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고루 퍼지길 바란다.

참고문헌

국토연구원. 2014. 중추도시권 등 지역생활권 추진현황 및 발전방안 연구. 안양: 국토연구원.

안동관광정보센터. 안동 임청각. http://www.tourandong.com/public/sub1/sub1_6.cshtml?seq=695 (2018년 1월 29일 검색).

안동시. 2017.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안동: 안동시청.

안동시청. http://www.andong.go.kr.

한국철도공사 철도통계연보. http://info.korail.com/mbs/www/jsp/board/list.jsp?boardId=9863289&id=www_060702000000 (2018년 1월 29일 검색).

유교넷. http://www.ugyo.net/cf/frm/mtFrm.jsp?CODE1=03&CODE2=04 (2018년 1월 29일 검색).

임청각. http://www.imcheonggak.com/board/index.php (2018년 1월 29일 검색).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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