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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차 강의: 10. 인종 문제와 다문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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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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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차 강의: 10. 인종 문제와 다문화 사회

1963년 8월 28일, 차별 철폐와 비폭력, 다시 말해 정의와 평화에 헌신한 마르틴 루터 킹 은 4분의 3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25만 명을 이끌고 워싱턴 시까지 행진했다. 거기서 그는 “I have a dream”을 연설하며 다인종 아메리카에 대한 꿈을 피력했다. 그리스도인은 같은 꿈을 꾼다. 우리는 성경에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인 구속 받은 자들에 대한 환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꿈이 이 루어 지기 전 인종적 정의와 인종적 조화가 특징인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인종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살펴보기 전에, 그 정의를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 인종차별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피부색, 문화, 인종적 기원 때문에 그 사람에게 손 해를 끼치거나 이익을 주는 행동이나 말이나 관행으로 드러난다. 미묘한 인종차 별도 명백한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해롭다.

제도적 인종차별은 이렇게 규정된다.

- 어떤 조직이 사람들의 피부색, 문화, 인종적 기원 때문에 집단적으로 그들에게 타당하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과정, 태도, 행동에서 볼 수 있거나 감지할 수 있다. 소수 인종 집단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부지불식간의 편견, 무지, 부주의, 인종에 대한 고정 관념 등을 통한 차별이 이에 해당한다.

미국의 노예제도

인종 문제에 있어서 노예 제도를 덮어 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또한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접하면서 남북전쟁 이전에 사탕수수 농장에서 자행된 잔인하고 타락한 행태를 돌 아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에는 세 가지 특징으로 규정되는데, 그의 인성은 다른 사람의 재산이며, 그 의 의지는 주인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고, 그의 노동이나 섬김은 강압에 의해 갈취된다.

노예는 재산으로 간주되며 인권을 기대할 수 없다. 기독교 국가라고 공언하는 유럽국가 들(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이 식민지 개척 중 저지른 비인도적 관행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다. 더 나쁜 것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아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변명했다는 것이다. 노예 주인들의 이런 합리화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뻔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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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경제적 필요 (식민지에는 유럽의 산업혁명에 필요한 원료를 제 공해줄 다른 노동력이 없었다.)

- 인종적 우월감 (검둥이들은 더 잘 대접해 줄 필요가 없다.) - 성경의 허용 (성경은 노예제도를 규제하지만 정죄하지는 않는다.)

- 인도주의적 유익 (노예무역은 노예들을 미개한 아프리카에서 문명한 미국으로 이주시켜 주었다.)

- 선교적 기회 (아프리카인 이교도들은 신세계에서 기독교를 소개받을 것이다.)

재산으로서의 노예

노예 제도의 악은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존엄성을 모욕하고 부인한다는 것이다. 많은 노 예들이 아프리카에서 잡혀 사슬에 매이고 지나치게 많은 사람과 함께 배에 실렸다. 이 과정에서 좁고 비위생적이어서 절반이 죽었고, 도착한 사람들은 바로 경매에 부쳐졌고 도망가면 죽임을 당했다.

짐승으로서의 노예

어떤 사람들은 노예들이 짐승이기 때문에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이는 창조주의 창 조 과정에서 아프리카 흑인은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 을 폈다. 어떤 이는 속(屬)은 같으나 종(種)은 다른 존재라고 했으며, 어떤 이는 그들은 오랑우탄과 백인 사이 어디쯤에 속하는 존재로 보았다.

어린아이로서의 노예

또 다른 열등 이론은 흑인이 재산도 짐승도 아니고 어린아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유순하 지만 무책임하고, 충성스럽지만 게으르고, 겸손하지만 거짓말과 도둑질을 일삼고, 주인과 그의 관계는 전적인 종속 관계이자 어린아이 같은 애착 관계였다. 이런 시각 때문에 노 예제도를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노예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는 인간임을 실 증해야 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심한 편견을 내어 인종에 위계 질서가 있다는 것처럼 믿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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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반유태주의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

독일의 반유태주의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은 얼핏 보기에 서로 달라 보인 다. 그러나 그 두 체제의 토대를 이루는 ‘인종’ 이론은 거의 똑같다. 많은 독일인과 남아 프리카인들이, 그들은 다스리도록 정해졌고 인종적 순수성을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히틀러는 인종적 우월감을 가지고 유태인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도덕적으로 문명을 파괴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그가 창조주 대신 그들을 손보는 중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아프리카너(Afrikaner: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의 백인들. 특히 네덜란드계)의 신적 운명에 대한 인식은 그들이 새로운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록 정해진 구약의 하나님 백성과 유사 하다고 보았다. 그들은 그 지역을 정복해야 했던 아말렉이나 블레셋 사람들에 해당된다 고 보았다.

그러나 순수한 인종이나 혈통이란 없고, 우리는 모두 잡종이다. 모든 집단은 말할 것도 없이 많이 섞여 있으며 그 혈통은 대단히 복잡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어나는 변화

80년대 후반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수많은 기독교 성명이 발표되었으며, 수많은 사 건이 일어났다. 남아프리카에서 무역을 하는 회사들에 대한 불매 운동과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기 위한 운동 등이 일어났고, 1986년에 미국이 제정한 포괄적 반인종차별법과 같 은 제재가 생겨났다. 1985년에는 마이클 캐시디를 비롯하여 인종과 교파가 다양한 그리 스도인 지도자 약 400명이 화해를 위한 전국 발기 대회를 개최했다. 몇 주 후 흑인 신학 자 약 150명이 “카이로스“ 문서를 발표했는데 그것은 해방신학이었고 세 가지 선택안을 약술했다. 첫째로, 아프리카너 교회들의 ‘국가 신학’을 거론했는데,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법과 질서’를 근거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현상 유지를 정당화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 ‘국 가 신학’이 이교적이고 신성 모독적이라고 선언했다. 둘째로, ‘교회 신학’이었는데 회개 없 는 화해, 정의 없는 평화를 추구했던 것이다. 셋째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는데, ‘예언자적 신학’이었다. 그것은 성경과 성경의 예언자적 전통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면서, 민족주 의 정부를 억압자로 규정했다. 1986년 7월, 흑인 복음주의자 130명이 자신들의 불행을 담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복음주의적 증거」를 펴내어, 헬라적 이원주의, 서구적 자 본주의적 보수주의 등을 비판하고 진정한 회개를 촉구했다. 1986년 10월, 네덜란드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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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교회와 사회」에서 인종차별은 통탄할 죄라고 고백했고 그것은 거부되고 반대되 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에 인종차별을 지지하고 변호했던 교회로서는 엄청난 방향 전환 이었다.

정권 안에서도 중대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통행법이 폐지되었다. 1989년 3월에는 올리비 어가 의장을 맡은 저명한 사법 위원회가 보고서를 통해 다음 사항을 요청했다.

- 인종차별 정책의 전적 해체

- 1950년에 통과된 인종차별 정책의 양대 법적 기둥인 집단 지역법과 인 구 등록법 폐지

- 보편적 참정권

1990년대에는 빠른 속도로 인종차별 구조가 와해되었고, 민주적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탄생했으며,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서 풀려나 ANC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영국의 태도와 긴장

영국의 식민지 통치가 식민지 국가들에게 교육, 보건, 공적 정의의 기준 면에서 어느 정 도 유익을 준 것은 사실이나 영국도 ‘앵글로색슨족의 출중함’과 그것을 보존할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 영국의 보스 정신은 인도에서 훨씬 분명하게 나타난다. 아놀드 토인비가 말 한바 “인도의 영국 개신교 통치자들은…당대의 그 어떤 서구 통치자들보다 엄격하게 피 지배자들과 거리를 둔” 것이었다.

이민, 인종 관계, 제도적 인종차별이라는 주제로 나누어 영국의 식민지 기록을 살펴보려 한다.

이민

영국 이민은 전 세계적인 이민 유형을 배경으로 봐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35명중 1명은 외국에서 온 이민자일 정도로 그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유럽 전역에는 이민 근로자들이 필요하다. 낮은 출산률 때문에 취업 연령에 해당하는 인구를 안정되게 유지하기 위해서 이다. 또한 이민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나라의 사회와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영국 경제 여러 분야에서는 교육받은 이민자들이 상당히 필요하다. 실제로, 의사의 23퍼센트와 간호사의 47퍼센트는 영국 밖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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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이민에 대한 법령은 인종 차별적인 것을 반영한 것이 많았다. 1948년에 영국 국 적법은 영국 시민을 영국이나 영국 식민지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으로 규정했었으나, 점 차 제한적이 되었고 인종적 동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종 법이 이민을 제한하여 영국사회의 참된 다인종적 특성을 표현하지 못했다. 이 과정 동안 교회 지도자들은 서너 번에 걸쳐 이런 정책들에 불만을 제기했었다. 망명자들은 거리에서 살고 있거나, 사람이 살 만하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었으며, 심지어 인종차별주의자에게 살해당하기도 했다.

인종 관계

지난 40년간, 이 분야와 관련된 법률 제정을 보면 인종 관계 정책은 다인종 사회를 장려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오늘날 영국에 여전히 존재하는 외국인 혐오증 에 거만하게 의지하는 인종차별적 수사법이 여전히 드러난다. 그리고 영국에서 이따금 인종 간 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종적 다양성을 인정하고자 하는 사람들, 이민자들을 좋게 보는 사람들, 핍박을 피해 도피하는 망명 신청자들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 다. 1976년 인종 관계법으로 인해 인종 평등 위원회가 생겨나기도 했다.

제도적 인종차별

제도적 인종차별의 본질을 보여 주는 한 가지 예는 경찰 및 형사 재판 제도다. 그리고 핵심 문제는 경찰의 ‘불심검문권’ 사용과 남용이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소수 인종 이 불심검문을 당하는 비율은 해마다 늘어났다. 2000년에 테러법이 생긴 이후, 민감한 나 머지 아시아계 사람들이 경찰에게 불심검문을 당한 수치가 3배 증가했다.

사법 제도를 보면 제도적 인종차별에는 또 다른 극히 충격적인 측면들이 있다. 영국 경 찰관 중 소수 인종 집단 출신은 거의 없다. 또한 판사나 행정관 중에서도 흑인은 너무 적다.

인종적 다양성에 대한 성경적 토대

현대 세계의 인종적 신화와 편견과 긴장에서 다민족 공존 사회에 대한 성경의 관점으로 눈을 돌려 보자. 그것은 바울이 아테네 철학자들에게 한 유명한 설교에서 철저히 개진되 었다. 그는 다인종적, 다문화적, 다종교적 상황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그는 네 가지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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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다.

그는 인류의 하나됨 혹은 창조의 하나님을 선포했다. 그는 한 사람에게서 모든 족속을 만드시고 온 땅에 거하게 하셨다. 친밀한 개인적 관계에서 보면 하나님은 순전한 은혜로 입양하신 모든 사람의 아버지시며 우리 형제자매들은 그 가족 구성원이지만, 일반적인 견지에서 보면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아버지시다. 모두가 그분이 보시기에 평등한 가치 와 존엄성이 있으며, 정의와 존중에 대한 평등한 권리가 있다.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이다.

바울은 민족의 중요성과 문화의 다양성 혹은 역사의 하나님을 선포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족속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다. 그러므로 국가들의 존립 시간과 장소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외국 영토를 정복하고 합병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이 사실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는 태곳적 명령을 넌 지시 암시하여 하나님의 축복 아래 흩어지면 독특한 문화가 발전할 것을 말했다. 성경은 인간 문화의 다채로운 모자이크를 경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인종 사회는 단일 문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보장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 종족의 단일성과 민족 문화의 다양성을 동시에 주장해야 한다.

하나님은 계시의 하나님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최종성 혹은 계시의 하나님이다. 그는 세계적 회개를 촉구하시 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전하며 설교를 맺는다. 그는 종교적 다원주의를 묵인하지 않는다.

여기서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종교의 다양성을 평등하게 받아들이 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포하면서도 모든 사람을 위 한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

하나님은 구속의 하나님이다.

바울은 기독 교회의 영광 혹은 구속의 하나님을 선포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 하셔서 새롭고 화목된 공동체인 교회를 만드셨다는 설교를 하였다. 구약에서는 민족들이 해외로 퍼져 나가고 분열되고 싸우는 이야기가 있는 한편, 신약에서는 민족들을 하나의 국제 사회로 모으시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이 하나임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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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국제주의’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속하므로 우리의 국적이 말소된 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종적, 민족적, 사회적, 성적 구분이 더 이상 우리 를 분열시키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인종적, 다민족적, 다문화적 특성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이 지니는 보편성과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참된 신학, 하나님에 대한 이 네 가지 성경적 계시만이 우리를 인종적 교만 과 편견에서 구할 수 있다. 인종적 통합을 위해 어떤 정책들을 개발하든 반드시 이러한 교리를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토론을 위한 질문들

1. 당신은 소수 인종 집단의 이민이 다른 사람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하 는가? 일부 사람들이 이민자들에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 서구 국가 정부들은 이민과 난민 정책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예를 들면, - 완전히 개방해야 하는가?

- 신청자가 그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에 기초해야 하는가?

- 신청자의 본국이 관련이 있는가?

3. 어떤 식으로 당신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보여 주고 강조 하는가?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 당신은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4. 인종의 다양성에 대한 성경의 네 가지 토대는 무엇인가? 각각이 함의하는 것이 무엇인가?

5. 인종차별과 차별 철폐의 역사에 대해 말해보라. 현재는 어떤가? 당신이 인종차별 을 하거나 받은 경험은 있는가? 그것은 어떤 형태였나?

11. 경제적 불균형

서구인들이 물질주의적이고 피상적이며 이기적이라고 묘사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소유하고 소비하려는 욕구와 가치를 재물로 측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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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이다. 북미와 유럽은 부유하지만, 빈곤은 아무리 해도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엄청난 비율의 숫자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 부요와 빈곤의 심각한 불균형은 나라들 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나라 내에서도 나타난다.

빈곤에 대한 세 가지 접근 빈곤에 대한 경험적 분석

첫째, 통계에 근거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사회 정의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절박하게 생각하는 문제인 아동 빈곤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유니세프가 후원한 한 권위 있는 보고서를 보면, 10억 명에 이르는 아동이 심각한 빈곤의 영향으로 고통 당한다.

- 아동 3명 중 1명은 방 하나에 5명 이상이 사는 곳에서 혹은 진흙 바닥에서 산다.

- 세계 아동의 거의 20퍼센트는 안전한 물을 구할 수 없거나 15분 이상 걸어 야 물을 길을 수 있다.

- 개발도상국의 5세 이하 아동 중 15퍼센트 이상이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다.

남아시아만 해도 아동 9,000만 명이 날마다 굶주린다.

- 7-18세 아동 중 1억 3,400만 명은 학교에 가 본 적이 없다.

-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 특 히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학교에 한번도 가 보지 못할 가능성이 3배 더 높다.

영국의 경우, 많은 아동이 빈곤하게 산다. 아동 빈곤을 줄이는 것이 영국 정부의 핵심 목 표가 되었는데도 그 결과는 여전하다.

- 360만 명의 아동이 빈곤하게 산다. (31%)

- 200만 명의 영국 아동들은 필요한 것들 중 최소 두 가지는 없이 견딘다(하 루 세 끼 식사, 장난감, 적절한 의복 등).

- 유니세프 보고서의 23개 선진국 성적 일람표에서 영국은 ‘상대적으로’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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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사는 아동의 비율이 끝에서 넷째며, ‘절대적으로’ 빈곤하게 사는 아동 비율은 끝에서 여섯째다. 영국에서는 아동의 30퍼센트가 ‘절대적으로’ 빈곤 하게 살지만, 스웨덴에서는 그런 아동이 5퍼센트 미만이다.

- 영국은 유럽 연합에서 아동 빈곤율이 두 번째로 높다.

그러므로 아동 빈곤은 영국 정부의 의제에서도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영국은 아동 빈곤을 1998년부터 2004년가지 4분의 1로 줄이겠다는 전략을 서술했다. 이것은 교회와 정부가 모두 나서야 할, 상존하는 현실이다.

빈곤에 대한 정서적 반응

우리는 빈곤이라는 현상을 감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제3세계에 가보면 그런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예수님이 굶주린 무리를 보고 그러셨듯이, 동정심을 가지고 그들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제3세계의 절대적 빈곤뿐만 아니라 서구 도심 지역의 상대적 빈곤 역시 우리의 감정을 자극해야 한다. 청년 실업 및 장기 실업, 소홀히 여겨지는 주택 공급, 불충분한 학교 교육 기회, 소외감, 심지어 버려진 느낌에 대해 깊이 공감해야 한다.

빈곤에 대한 성경적 반응

우리는 이성과 감정을 넘어 성경적으로 빈곤문제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 성경에서 부와 가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의 깊게 경청하고 살펴야 한다. 시편 기자는 모든 나 라 위에 높으시며 영광이 하늘에 높으신 그분이 스스로 낮추사 인간이 처한 비참의 깊이 를, 가난한 자들을 동정하는 마음으로 보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분은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들어 올리신다.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그의 백성 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신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은 낮추시고, 겸손한 자들은 높 이시며, 부자는 가난해지고, 가난한 자들은 부유하게 하신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가 난한 자’는 누구인가?

가난한 자들은 누구인가? 빈곤의 역설

구약에 6개의 주요 히브리어 어근에서 유래한, 가난에 대한 수많은 단어가 200번 이상 나온다. 가난한 사람들은 주로 세 가지로 구분되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난한 자들, 사회적으로 힘없는 가난한 자들, 영적으로 겸손한 가난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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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가난한자

이들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의식주가 온전치 않은 자들인데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여기에 속한다. 성경에서는 이런 자들을 원조해 주어야 할 대상으로 보았고, 가난은 사회적 악으로 보았다. 십일조는 레위인, 이방인, 고아와 과부를 부양하는 데 사용해야 했다. 구약의 지혜 문학은 이런 가르침을 확증한다. 의인의 특징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는 것,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것,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는 것이다. 예수 님도 이런 것을 실천하셨다. 그분은 궁핍한 자들과 친구가 되셨으며 주린 자들을 먹이셨 다. 이런 섬김을 하는 자들은 곧 예수님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가르치시기도 하였다.

게으른 가난한 자

게으름이나 낭비, 탐식과 같은 자신의 행동으로 가난해진 것일 수 있다. 서구에서 소비를 장려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빚, 신용카드 빚을 지게 만든 경우가 이런 것에 해당될 것이 다. 잠언은 이에 대해 게으른 자에게 지혜를 얻기 위해 개미가 하는 방식을 연구하라고 권고한다.

힘없는 가난한 자

사회적 혹은 정치적으로 억눌린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구약에서는 가난이 그냥 생겨 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나타나는데, 가난은 다른 사람들의 죄, 즉 사회적 불의로 인한 것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변화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에 무력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시고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 에게 정의를 베푸실 것이다. 성경 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빈곤한 사람으로, 구해 주어야 할 사람으로, 사회 불의의 희생자로, 옹호해 주어야 할 존재로 보았다.

겸손한 가난한 자

영적으로 온유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경건한 자이다. 스바냐는 그들 을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는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이라고 묘사하며, 이사 야는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는”자들이라고 부른다. 시편에서는 이런 자들을 구 원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한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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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범주를 궁핍한 자들과 힘없는 자들의 물질적 가난과 겸손하고 온유한 자들의 영적 가난으로 축소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가난은 하나님께서 반대하시는 사회적 악 인 반면, 둘째 가난은 하나님이 좋다고 인정하시는 영적 미덕이다.

교회는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내놓을 만한 어떠한 의도, 공로 도 없다.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로 받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 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복된 소식을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들을 교 제권으로 맞아들이며, 그들의 몸부림에 동참해야 한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가난한 교인에 게만 관심을 국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믿음의 가정들’에게 특별한 책임이 있고, 또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해야 한다.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의 세 가지 선택

부유한 우리에게는 세 가지 선택 사항이 있다. 첫째는 가난해지는 것, 둘째는 부유한 채 로 있는 것, 셋째는 아낌없이 베풀고 검소하며 만족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난해져야 하는가?

예수님의 본

예수님은 하늘을 버리고 가난한 집에 태어나셨다. 공생애 기간 동안 집도 없으셨다. 예수 님이 가난하셨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분은 직업이 있었고 목수였다.

그분께서는 중산층인 숙련 노동자 출신이셨다. 그분께서는 빈곤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르라고 하셨다. 사도들은 그렇게 했고, 젊은 부자도 그렇게 하도록 도전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보편적인 법칙인가?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이며 또한 ‘제자’’로 묘사된다. 문자 그대로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선으로 여기는 것이다.

예수님의 초대교회

누가는 최초의 기독교 공동체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 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보편적인 것도 의 무적인 것도 아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신자들은 여전히 집을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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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었고 사람들이 거기에서 모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본과 가르침 그리고 초대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확증하지는 않는다. 다만 물질주의와 사치를 버리도록, 탐욕을 버리고 가 난한 사람들을 돌보도록 도전한다.

우리는 부유한 채로 있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호소하며 이것을 정당화하려 한다. 구약시대에는 재물이 하나님의 복의 표시였다. 이러한 추론에 관한 예 중 가장 파렴치한 예는, 어떤 오순절파 복음 전도 자의 문헌에 나오는, 기복적인 글일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번영’ 혹은 ‘건강과 부’의 복음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다. 성 경은 물질적 복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 주신다고 가르친다. 다른 반응은 그들이 간과한 나누어 주는 덕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부유한 채로 있을 수는 없다. 재물에 따르는 영적 위 험을 경고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가난해지고 다 버리지 않더라도 나누어주고 부유한 채로 있으면 안될 것이다.

재물과 교만

재물이 지닌 첫째 위험은 교만이다. 부자들은 그들의 소유들을 뽐내는 경향이 있다. 그들 은 사회적 계층을 강조하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기 쉽다. 야고보는 교회에서 부자가 더 대우 받는 상황을 묘사하는데, 이것은 계층 차별의 죄며, 모임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재물과 물질주의

물질주의도 위험하다. 물질주의는 그 소유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이다. 재물에 소망을 두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어야 한다. 물질주의에 대한 기독교적 해독제는 금욕주의가 아니다. 금욕 자체를 위한 금욕은 창조주의 좋은 선물을 거부한다.

재물은 교만과 물질주의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동료들과의 관 계를 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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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함, 관대함, 자족함

가난해지는 것과 부유하게 지내는 것은 상반된 선택사항이고 우리는 둘 다 거부했다. 세 번째는 관대하고 자족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두 가지를 권고한다.

성경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선한 사업을 많이 하게 하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라고 한다. 그들에게 관대한 우리 하나님을 따 라 하게 이끈다. 그리고 우리는 자족함을 추가해야 한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된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탐욕은 우상숭배로 물리쳐야 할 것이라고 성경은 끊 임없이 강조한다. 자족은 내적 평강의 비결이다. 한편, 검소함은 어떤가? 그것은 필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며 우리가 사용하는 것으로 측정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낭비와 탐 욕과 무절제를 미워하신다.

우리는 가난해지지도 부하지도 말고 관대함과 자족함을 계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시점 에서 물질주의, 금욕주의, 바리새주의를 피하고 원리에 충실 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다.

토론을 위한 질문들

1. ‘적자생존’이 존재 이유인 자본주의 경제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가장 약한 자들을 보호’하라는 성경적 관점을 지지할 수 있는가?

2. 다음은 구약 율법을 따르는 것 배후에 있는 원리들과 그에 해당하는 현대의 원리 들은 무엇이며, 이 현대의 원리들을 오늘날 실천해야 하는가?

3. 이 장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그 세 가지는 무엇인가? 각 각의 특징은 무엇인가?

4.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의 세 가지 선택은 무엇인가? 그 중 세 번째 대안을 당신의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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