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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인도의 경제체제와 체제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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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인도의 경제체제와 체제전환

제1절 인도의 경제체제와 외환위기

1. 경제개혁 이전의 인도경제

인도는 1947년 8월 15일 200년 동안의 영국 지배로부터 독립한 이후 정치적으 로는 의회제 민주주의를 추진하면서 경제개발전략으로는 소련과 유사한 계획경제 모델을 추진해 왔다. 물론 독립 이후 1980년대까지 인도의 경제정책도 숱한 굴곡 을 겪어 왔지만, 근본적으로 계획경제 모델 자체는 인도 경제정책의 근간을 형성해 왔다. 인도가 자본주의 국가임에도 체제전환국 가운데 하나의 유형으로 분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독립 이후 인도의 경제발전과정은 크게 다음과 같은 몇 단계 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즉 ① 자립경제 기반확충(1947~65) ② 농업개발 및 인민주 의 추구(1965~80) ③ 경제자유화 (1980년대) ④ 신경제정책 (1990년대) 등이 그 것이다.

인도경제의 제1기는 독립 직후의 제1차 계획과 네루-마할라노비스 모델이 본격 적으로 추진되는 제2차 및 제3차 계획의 기간이다. 이 시기동안 경제개발의 가장 주요한 목표는 중화학공업화를 통한 자립경제기반의 확충과 국민소득의 증대였다.

제2기는 196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으로, 이 기간 동안에는 네루 사망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 기타 대내외적인 환경의 변화로 국유화와 자유화 정책들이 서로 반복되던 시기이다. 중화학공업 중심의 개발정책으로 인한 농업부문 의 피폐와 잦은 정권교체로 인해 이 시기의 정책들은 농업생산력 확대와 인민주의 적 목표들에 보다 높은 가치를 두게 만들었다. 제3기인 1980년대는 이미 앞에서 잠시 서술한 바와 같이 대내외적인 자유화 조치들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한 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방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과도한 정부투자와 공 공부문의 확대가 이루어짐으로써 1990년의 외환위기를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 시기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제4기는 1990년의 외환위기와 1991년 라우 정부의 신경제정책 이후의 시기이다. 이 기간은 경제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당면한 위기 를 극복하고 독립 이후 고착화되어 온 인도경제의 구조와 질서를 경쟁적 체제로 전 환하고자 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차대전 이후 독립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과 마찬가지로 독립 당시 인도경제 가 안고 있던 가장 중요한 과제도 식민지배 기간 동안 왜곡되고 기형적으로 성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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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경제구조와 아직 미청산된 전근대적 잔재들을 청산하고 자립경제의 기반을 구축 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독립 당시 인도의 국민소득은 865억 루피, 1인당 소 득은 247루피(약 50$)였다. 취업인구중 공업인구는 9%에 불과했고 70%가 농업에 종사하였다. 국민소득의 부문별 분배율을 보면 농업소득이 49%, 제조업 및 광업 부 문이 17%, 운수 및 서비스 부문이 34%로 전형적인 1차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 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이 처음부터 계획경제 모델 로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인도는 1951년부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 획(1951/52-1955/56)을 추진하였으나, 이 계획의 주요 내용은 이미 영국 통치시절 이나 그 이후부터 건설 혹은 계획중이던 사업들을 실현하기 위한 공공지출의 구체 화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이 시기에도 인도의 발전전략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몇 가지 계기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1948년의 「산업정책결의(Industrial Policy Resolution)」인데, 그 주요내용은 중점 생산부문 및 국가산업 부문의 창설, 민간부문의 적극적 역할 보장, 노사평화 확립, 자본 및 기술시장 개방 등이다. 그러 나 이 결의는 외국자본 및 국내독점자본의 존재를 기본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경제활 동에 대한 국가개입을 강조하고 있다. 즉 결의는 공업부문을 제1범주(군수산업, 원 자력, 철도운수 등 중앙정부에 의해 독점되는 3개 산업), 제2부문(석탄, 철강, 항공 기, 조선, 전화, 광유 등 신규사업의 설립시에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가 배타적 접근 권을 가지는 6개 산업), 제3범주(국익상의 관점에서 중앙정부의 계획, 규제의 대상 이 되는 부문), 제4범주(국가가 개입한다는 유보조항을 둔 채 기본적으로 민간부문 에 개방된 부문)의 네 부문으로 나누고 공업개발에서 국가가 주도적인 역할을 완수 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결의는 뒤에 「56년 결의」로 수정되었다. 또 1947년에는 수 입을 금지 또는 제한한 「수입조정법」이, 1951년에는 「산업개발규제법」이 각각 입 법되었다. 「산업개발규제법」은 새로운 공장의 설립, 생산능력의 대폭 확장, 신제품 의 제조, 공장입지의 변경 등 중요한 4개 영역에 대해 정부 허가의 취득을 의무화 하였다.(정동현, 2001, 253쪽.)

인도정부의 개발계획이 본격적으로 수립되는 것은 1956년부터 시작된 제2차 경 제개발 5개년계획(1956~1960)과 이어지는 제3차 5개년계획(1961~1965)에서이다.

1954년 국민회의당(National Congress I)이 지배하던 인도 의회는 앞으로 인도가 자립경제 기반을 달성하기 위하여 추구해야 할 사회경제정책의 구체적 목표를 ‘사 회주의형 사회(Socialistic Form of Society)’의 실현에 두어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이 결의는 인도의 경제개발계획이 경제의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성장과 평등 및 자 립이라는 복합적인 목표와 과제를 지향하고 있음을 의미하였다. 이른바 ‘사회주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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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정확한 개념과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에 대해서는 많 은 논란이 있다. 어떤 학자들은 1954년 인도 의회의 결의가 당시 국민회의당의 지 도자였던 네루(Pandit Jawaharlal Nehru, 1889~1964) 총리의 경제관을 적극적으 로 반영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네루는 영국의 귀족교육을 받은 페이비안 사회주의자로서 사적 기업들과 영리행위에 대한 불신, 가격기구의 배분적 기능에 대한 폄하, 소련식 계획체제에 대한 호감, 그리고 빈민에 대한 동정 등의 경제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목표와 경제관이 구체화되어 나타 난 것이 바로 네루 총리와 당시 계획위원회(Planning Commission)의 위원장이었던 마할라노비스(Prasanta Chandra Mahalanobis, 1893~1972) 교수에 의해 입안된 이른바 네루-마할라노비스 모델이었다.

네루-마할라노비스 모델은 기본적으로 중앙계획에 의한 전체 경제의 통합과 중공 업 우선의 투자를 통해 경제 전반을 견인해 나간다는 계획으로서, 소련이 사회주의 혁명 이후 채택했던 경제개발 모델과 유사한 발상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어떤 이는 인도 발전계획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란 소련 공산주의에서 폭력을 제외한 대신 사적 소유를 포함시킨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Rohwer, 1995, p.177.) 이 모델의 핵심은 폐쇄경제체제의 조건하에서 공업부문을 생산재 생산부문과 소비재 생산부문으로 나누어, 전자에 대한 투자배분이 증가할수록 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 이 높아진다는 데 있었다. 요컨대 네루-마할라노비스 모델은 자립경제와 사회적 정 의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인도의 경제사회 발전전략으로서 대규모 공업투자에 의존하는 수입대체적 중공업화의 추진을 지향하고자 기도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 다.

마할라노비스는 경제를 I.자본재 부문, II. 소비재 부문, III.소공업 및 가내공업 부 문, IV. 서비스 부문의 네 부문으로 나누었다. 이 혼합경제에서 공공 부문의 활동은 거의 I부문 전체이며, II부문과 IV부문은 민간부문과 공유한다. 반면에 민간부문은 III부문에서 자유롭게 활동한다. 이 모델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기초공업 및 중공 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기계와 하부구조 시설을 생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기계와 하부구조의 공급은 I부문에서 창출된 추가 수요와 함께 II부문의 발전을 자 극할 것이라는 데 있다. I부문 및 II부문의 성장이 지속되는 동안 III부문은 소도구 및 장비와 기타 투입물의 추가적 공급으로 혜택을 입을 것이며, 노동력이 I부문 및 II부문으로 이동해 감에 따라 심각한 인구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 태 진전은 III부문의 발전을 가속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IV부문도 발전할 것이며, 전체 경제는 IV부문과 여타 부문의 상호의존관계로 혜택을 입을 것이다. 즉 여타 세 부문의 발전은 서비스에 대한 추가 수요를 창출할 것이며 기본적 서비스의 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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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여타 부문의 발전을 한층 더 자극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투자를 위한 공공 부문의 자금조달은 민간 및 가계 부문에 대한 과세와 차입증가로 가능하게 된다고 생각되었다. 민간 부문의 경우 경제활동의 폭발에 기인하여 증대된 이윤을 재투자 함으로써 발전의 초기단계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리고 경제가 더 높은 단계로 이행해 감에 따라 공공 부문은 자립적 자금조달의 단 계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발전전략에 기초하여 산업정책의 기본 틀도 이 시기에 확립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1956년의 <산업정책결의(Industrial Policy Resolution)>인데, 이 결의는 사회주의형 사회의 실현이 사회경제정책의 목표로 설정되고 제2차 5개 년계획에서 중화학공업 우선정책이 세워짐에 따라 <48년 결의>의 내용을 보다 확 대 심화시킨 것이었다. 즉 <56년 결의>는 사회주의형 사회의 실현과 계획에 의한 빠른 발전을 꾀하기 위해 “기초적,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산업과 공익사업적 성질 을 가진 산업, 나아가 국가밖에 담당할 수 없는 대규모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산업 은 모두 공공부문이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결의는 공 업부문을 제1범주(신규사업의 설립시 국가가 배타적 책임을 지는 부문), 제2부문(민 간부문에 활동의 기회를 인정하면서도 국가에 의한 신규사업의 설립이 점차 확대되 어 가도록 예정되어 있는 부문), 제3범주(장래의 발전이 민간부문의 주도와 기업에 위탁되는 부문)의 세 범주로 구분하였는데, <48년 결의> 당시 제1범주와 제2범주 에 속하는 산업이 9개 부문에 지나지 않았던 데 반해 <56년 결의>의 제1범주는 17개 산업으로 확대되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56년 결의>는 <48년 결의>에 비해 공공부문의 확대를 한층 더 강조한 것이었다. 물론 <56년 결의> 역시 명목적 으로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분리와 민간부문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인도의 공공부문은 원칙과는 무관하게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방식 등으로 소비재 분야에까지 영역을 크게 확대시켜 나갔다. 또한 1947년에 만들어진

<수입조정법>에 따라 1955년에는 수입조정 대상품목을 선정하여 수입을 허가하는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Positive List System)이 실시되었다. 모든 수입허가 대상 품목은 포괄수입승인품목(Open General Licence)으로 규정되었으며, 이 품목들은 다시 자본재, 원자재, 소비재, 부품, 공구와 예비품으로 구분되어 최종소비자의 확인 을 받은 후에야 정식 절차를 거쳐 수입해야만 했다. 인도의 포괄수입승인제도는 1988년에 비교적 완화되어 수출입금지, 승인, 수출입선 지정품목으로 분류되었다 가, 1992년 4월 다른 개혁조치들과 함께 비로소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Negative List System)으로 개정되었다.

이처럼 네루 사후 인도의 경제정책은 정권교체와 대내외 환경의 변화에 따라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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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와 자유화를 반복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자유화 조치들은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경제위기에 대응한 임시방편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80년대에 이르 기까지 인도의 경제구조는 기본적으로 혼합경제와 계획경제라는 네루 시대의 골격 을 유지하고 있었다. 인도의 자유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인도경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인식보다는 초기성장기와 같이 공공투자의 확대를 통해서 공업성장을 지속하는 것 이 이미 불가능하게 된 조건에서 자유화를 통해 민간부문을 활성화하지 않을 수 없 게 된 상황의 산물이라고 해야 옳다. 즉 민간부문의 활동영역은 확대되었지만 산업 정책의 규제적 측면은 여전히 남아 있은 데다가 자유화에 따르는 제도적 개혁과 경 쟁질서의 확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시장경쟁을 통한 산업합리화는 거 의 불가능하였다. 자유화 정책이 추진된 1980년대를 통하여 정부에 의한 공공투자 의 규모는 오히려 전례 없이 확대되어 결국 1990년의 외환위기를 초래하기에 이른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요컨대 외환위기 이후 라우 정부에 의해 신경 제정책이 추진될 때까지 인도의 경제정책은 적지 않은 굴곡을 거친 것이 사실이지 만, 그 저류에 놓인 인도경제의 구조적 특징과 문제점들은 네루 시대에 처음 형성 되고 고착화된 이후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거나 때로는 오히려 강화되어 왔다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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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Ⅳ- 1> 독립 이후 인도의 경제개발계획

기 간 주요목표 기간중 연평균 성장률

국민소득 공업 농업

제1차 1951/52 - 55/56 국민소득 증대, 생활수준의 향상 3.6 7.3 4.1 제2차 1956/57 - 60/61 국민소득 향상과 중화학공업 4.0 5.6 4,0 제3차 1961/62 - 65/66 자립경제 기반구축 2.3 2.0 1.4

계획휴일 1966/67 - 68/69

인도-파키스탄 분쟁, 통화불안, 가뭄 등으로 제4차계획 연기, 매년 임시계획

운용.

3.7 2.0 6.0

제4차 1969/70 - 73/74 농업생산량 안정, 경제력 집중 방지 3.3 4.7 2.9 제5차 1974/75 - 78/79 인플레이션 억제, 자립경제 확립과

빈곤계층의 소득확대 4.9 5.8 4.2

1개년계획 1979/80 제5차 계획의 종결 -6.0 -1.4 -15.2 제6차 1980/81 - 84/85 인프라 스트락쳐 확충, 빈곤 퇴치 5.6 6.6 3.5 제7차 1985/86 - 89/90 식량증산, 고용기회 확대 및 생산성

향상 5.8 6.5 3.4

임시계획 1990/91 - 91/92 정권교체와 경제위기로 임시계획 운용 3.1 4.3 0.9 제8차 1992/93 - 96/97 시장체제로의 전환과 국제경쟁력 강화 6.5 8.1 3.6 제9차 1997/98 - 01/02 경제위기 극복, 신경제계획 국민소득성장률 목표 7%

자료 : 정동현, 「인도의 외환위기와 경제개혁」, 부산대학교 국제지역문제연구소,

『국제지역문제연구』, 제19권 제2호, 2001, 253쪽.

독립 이후 경제개발계획 기간 동안 인도경제의 발전전략과 경제구조에서 나타나 는 기본적인 특징과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는 혼합경제 및 계획경제 체제이다. 지금까지 서술한 바와 같이 독립 이후 인도의 발전전략은 기본적으로는 혼합경제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사정에 따라 응급조치적으로 국유화와 자유화 조치 들을 되풀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과도한 규제, 공공부문의 비효율 등은 인 도경제가 정체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경제 전반에 걸친 광범한 통제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통제 자체도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사 실이다. 예를 들어 개별기업에 대한 통제의 측면에서 보면 생산능력에 대한 허가는 계획위원회에서 이루어졌다. 위원회는 상당히 복잡한 투입산출모델을 사용하여 계 획의 목표와 일치하도록 주요 생산물이나 생산물 범주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였다.

그러나 이는 허가의 결정에 도움을 줄 만큼 구체적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목표 의 결정은 객관적 사항들보다는 기존업자와 신규 진입자들 간의 이해관계의 상충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책임 있는 기관들은 정확한 최신의 정보를 필요한 만큼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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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얻지 못하였고, 통제체제의 구성요소들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일관되지도 못하 였다.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통제의 실패는 더욱 두드러진다. 정부는 수입, 자 본이동, 노동시장, 가격 등에 대해 통제를 실시해 왔다. 그러나 수입 통제는 생산과 자본투자를 저해시키고 경제의 탄력성을 상실케 했다. 자본이동에 대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불법해외자산의 보유가 이루어졌으며, 노동자의 해고를 엄격히 제 한한 노동시장 통제는 장기적으로 공업고용을 감소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인플레이 션을 저지하기 위한 가격통제는 물자부족과 배분의 비효율성을 가져왔으며 부적절 한 투자와 생산비의 상승을 가져왔다.

둘째는 폐쇄경제체제이다. 인도는 독립 이후 자급자족과 자립경제의 달성을 위 해 국내시장 중심의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한편 외국자본의 도입을 억제하는 폐쇄경 제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를 위해 인도정부는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하고 자립경제의 기반구축을 위한 농업부문과 기간산업 및 중화학공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반면 수 입에 대해서는 원유, 의약품, 플라스틱제품, 펄프 및 제지, 화학비료 등 국내생산 부 족분에 대해서만 엄격한 통제하에 허용해 왔으며, 수출에 대해서는 이러한 수입품 들을 구매하기 위한 외환조달의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폐쇄경제정책에 따라 인도경제의 무역의존도는 다른 개발도상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며 세계시장에 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40여년 동안 오히려 감소되어 왔다.

셋째는 이중적 경제구조와 소득불균형이다. 독립 이후 인도정부는 식량의 자급자 족과 자립경제를 위하여 막대한 재정자원을 통하여 관개시설의 개선, 화학비료 사 용의 확대, 농산물 가격보조금의 지급, 품종개량 등에 투자해 왔다. 그러나 아직 천 수답이 전체 농지의 70%에 이르고 영농기술의 낙후와 기계화의 부진 등 농업생산 성은 낮은 편이며, 특히 농산가공물은 전체 생산의 1%에 지나지 않아 농업부문은 인도의 가장 전근대적인 부문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근대적 농업부문과 달리 인도는 원자력, 인공위성, 해양탐사, 방위산업, 소프트웨어산업 등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기술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공업부문 내에서도 인도는 비교적 규모가 크고 발전된 공기업 즉 기간산업과 중화학공업을 가진 반면 영세하고 낙후 된 기술수준의 경공업이 공존하는 이중구조이다. 인도경제의 이러한 이중구조는 인 도사회에 고질적인 계층간, 도농간, 지역간 소득분배의 불균형의 주요한 원인 가운 데 하나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내수 중심의 개발정책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국내시 장을 협소화시켜 왔다.

넷째, 정부 및 공공부문의 비효율이다.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혼합경제체제와 계 획경제정책의 결과 인도의 공공부문은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해 왔다. 은행 을 포함한 산업에 대한 정부의 직접소유와 사적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 그리고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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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무역과 투자의 최저수준으로의 감축은 경제개발기간동안 인도의 경제체제를 지탱 해 온 세 개의 지주로 지적된다. 다만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독립 이후 계획경제체 제를 유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1970년대까지 인도경제에서 정부재정의 비중 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것은 인도정부가 인플레이션 저지선 내에서 재정을 운용 하는 등 비교적 보수적인 재정정책을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네루 총리 등 인 도의 경제발전전략을 수립한 인물들은 인플레이션이 빈민에게 해를 끼치며 경제에 대한 통제의 상실과 국가의 역할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인도에 서 재정적자가 본격적으로 누적되는 것은 1980년대 들어 자유화 정책과 함께 경제 성장을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전환하면서부터이다.

경제개혁 이전 인도의 재정 및 공공부문의 특징과 문제점을 좀 더 자세히 정리해 보면 첫째, 정부에 의한 통제가 경제의 전분야에 걸쳐 실시되어 왔다는 점이다. 먼 저 정부는 무역, 자본이동, 노동시장, 가격 등에 대해 통제를 실시해 왔다. 무역의 경우를 보면 정부는 수입과 외환지불뿐만 아니라 수출과 외국인투자의 유입에 대해 서까지 통제했다. 미시적 측면에서도 정부는 개별기업들의 생산능력을 통제해 왔다.

따라서 기업의 신증설과 입지는 모두 정부의 인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처럼 경제 전반에 걸친 광범한 통제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통제가 효율적이 지 못했다. 예를 들어 수입 통제는 생산과 자본투자를 저해시키고 경제의 탄력성을 상실케 했다. 자본이동에 대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불법해외자산의 보유가 이루어졌으며, 노동자의 해고를 엄격히 제한한 노동시장 통제는 장기적으로 공업고 용을 감소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인플레이션을 저지하기 위한 가격통제는 물자부족 과 배분의 비효율성을 가져왔으며 부적절한 투자와 생산비의 상승을 가져왔다.(권기 철, 1996, 35-36쪽.)

둘째, 정부 및 공공부문의 높은 비중과 비효율이다.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혼합경 제체제와 계획경제정책의 결과 인도의 공공부문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비중을 차 지해 왔다. 은행을 포함한 산업에 대한 정부의 직접소유와 사적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 그리고 국제무역과 투자의 최저수준으로의 감축은 경제개발기간동안 인도의 경제체제를 지탱해 온 세 개의 지주로 지적된다.(Rohwer, 1995, p.177.) 문제는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공공부문이 그 만큼의 효율성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이다. 한 예로 외환위기가 일어난 1990년의 경우 국내총고정자본형성 가운데 40.5%가 공기업부문에 집중되었지만, 국내총생산에서 공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6.4%에 그치고 있다. 정부 및 공공부문의 비효율 특히 공기업의 막대한 적자는 인도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재정압박에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인도 공기업 의 총적자규모는 10조$를 넘는데, 1990년의 외환위기를 초래한 가장 직접적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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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러한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보조였음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 뿐만 아니라 인도의 경우 주요한 기간산업 및 전략산업들이 대부분 공공부문 에 의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공공부문의 비효율로 인한 생산물의 높은 가격, 조 악한 품질, 빈약한 서비스 등은 경제의 다른 부문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 다. 따라서 외환위기 이후 공공부문의 개혁이 인도의 경제개혁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지적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조준현, 2002.)

이밖에도 인도경제의 주요한 구조적 문제점으로는 낮은 농업생산력, 사회간접자 본의 미비, 국내저축능력의 지속적인 위축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이처럼 인도경제의 특징과 문제점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독립 이후 인도경제 가 계획경제체제 및 폐쇄경제체제를 유지해 왔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통제경제 체제는 인도경제를 대내외적으로 경쟁질서로부터 고립시킴으로써 합리화와 효율성 의 제고를 불가능하게 만든 가장 주요한 원인이 되어 왔다. 외환위기 이후 인도의 경제개혁을 체제전환의 관점에서 러시아나 중국의 경우와 비교하는 것도 이러한 이 유에서이다.

2. 외환위기와 경제개혁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독립 이후 인도경제는 한동안 의회제 민주주의와 계획경제 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모델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물론 인도의 경제발전과 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일찍부터 인도는 중국과 비교될 만한 잠재력을 지 닌 나라로 꼽혀 왔고, 특히 1980년대 들어오면서는 연평균 6%의 고도성장을 이루 면서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1980/81년부터 1989/90년 사이 인도의 연평균 성장 률은 5.9%였다. 이 기간중 성장률이 가장 높은 해는 1988/89년의 10.6%였으며, 가장 낮은 것은 1982/83년의 3.1%이다. 물론 이러한 고도성장의 이면에서는 많은 모순과 문제점들이 누적되고 심화되고 있었기도 하지만,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인도경제에서 심각한 위기의 징후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로 들어오면서 인도경제는 갑작스러운 정치경제적 위기와 함께 특히 심각한 외환부족 사태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외환위기에 직면하게 되 었다. 그렇다면 인도경제가 이토록 급격히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단기적인 원인에서 보면 인도의 외환위기를 가져온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걸프전의 발발이라고 할 수 있다.

걸프전의 발발로 야기된 유가상승과 중동 진출 근로자의 외환송금 중단은 인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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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보유고 격감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유가상승으로 1989/90년 총수입(약 213 억 달러)의 약 17.7%인 37억 7,000만 달러였던 인도의 원유수입은 1990/91년에는 총수입(약 241억 달러)의 약 25%인 60억 달러로 대폭 상승하였다.1) 또한 옛 소련 및 동유럽의 사회주의 붕괴로 수출시장이 축소되어 1980년 총수출의 약 22.1%를 차지하고 있던 이들 지역에 대한 수출 비중이 1990년에는 17.9%, 1991년에는 10.9%로 낮아졌다. 그 결과 1990년 무역수지 적자는 약 59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반면에 1989년 약 13억 달러에 달하던 해외거주 인도인(Non-Resident Indians : NRI)의 외화예금도 1990년에는 2억 2,900만 달러로 대폭 감소되었다.2) 이에 따라 인도의 외환보유고는 1991년 6월 약 11억 달러로 하락하였으며, 대외신용의 악화 는 중장기 외채 도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한 예로 1990년 상반기에는 약 3억 4,100만 달러를 도입하였던 상업차관도 하반기에는 단지 1,500만 달러밖에 조달되 지 않았다. 여기에 해외거주 인도인들의 외화유출 사태까지 겹치면서 인도경제는 극도의 외환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한편 1980년대 후반의 정치적 혼란도 인도의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 1917~1984) 총리를 뒤이은 집권 국민회의당 의 라지브 간디(Rajiv Gandhi, 1944~1991) 정부는 1984년 12월 총선에서 사상 최대의 의석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총선 직후부터 연이은 정치 스캔들 과 당내 내분으로 라지브 총리는 1989년 총선에서 과반의석의 확보에 실패하고 정 권을 자나타달당(Janata Dal Party)의 씽(Vishwanath Pratap Singh, 1931~2008) 총리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러나 씽 총리는 수권능력 부족과 힌두교 지상주의 운동 의 지원을 받는 인도인민당(Bharatiya Janata Party)과의 반목으로 외환위기가 발 생하기 직전인 1990년 11월 사임하였고, 뒤이어 당내 라이벌인 세카르(Chandra Shekhar Singh, 1927~2007)가 국민회의당의 지원을 받아 총리에 취임하였으나 그 역시 대규모 학생시위와 종교분쟁 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4개월만에 사임하고 말았다. 그 후 1991년 5월 총선 도중 라지브 간디 전총리가 암살되는 등 인도정국 은 1991년 6월 라우(Pamulaparti Venkata Narasimha Rao, 1921~2004) 총리가 집권할 때까지 인도 정국은 극도의 혼란 속에 있었고 임박한 경제위기에도 신속하 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1) 인도의 회계년도는 4월에서 익년 3월까지이다. 연도 표기를 1951/52년, 1990/91년 등 으로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서술의 편리를 위하여 앞으로는 혼동의 여지가 없는 한 1951/52년은 1951년으로, 1990/91년은 1990년으로 표기하기로 한다.

2) 해외거주 인도인의 규모는 2,5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인도경제에서 NRI의 해외송금 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데, 특히 중동 특수가 높았던 80년대 초반의 경 우 중동 지역 NRI의 송금은 인도 총수출의 1/4, 수입의 1/6에까지 이르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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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와 같은 대외경제환경의 악화나 정치적 혼란만으로 인도의 외환위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인도경제 내부에 서 찾아지지 않으면 안된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1990년 인도의 외환위기는 80년 대 인도경제의 고도성장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1980년대 들어 인도는 제6차(1980~84) 및 제7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85~89) 을 통해 연평균 6%의 고도성장을 달성했지만, 이 과정에서 인도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은 오히려 심화되어 왔다. 독립 이후 계획경제체제를 유지해 왔음에도 불 구하고 사실 1970년대까지 인도경제에서 정부재정의 비중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것은 인도정부가 인플레이션 저지선 내에서 재정을 운용하는 등 비교적 보수적인 재정정책을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네루 총리 등 인도의 경제발전전략을 수립 한 인물들은 인플레이션이 빈민에게 해를 끼치며 경제에 대한 통제의 상실과 국가 의 역할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인도에서 재정적자가 본격적으로 누적되는 것은 1980년대 들어 자유화 정책과 함께 경제성장을 위해 확장적 재정정 책으로 전환하면서부터이다. 인디라 간디 정부와 라지브 간디 정부는 총수요확대를 통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하여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중단기 외자조달을 통해 막대 한 자금을 자생력이 없는 공기업에 집중 투자하였다. 이에 따라 재정적자와 외채가 급증하게 되었고, 전체 GDP 생산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던 공기업의 부실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한편 막대한 투자로 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는 70년대의 약 4% 수준에서 6차 계획기간에는 약 6.3%, 7차 계획기간에는 약 8.2%로 증가하였다. 재정압박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정부 보조금이었다.1993년 정부보조금 규모는 중앙정부가 약 1,300 억 루피, 지방정부들이 84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85%가 식량에 지출되었 다. 이러한 인도의 정부보조금 규모는 정부지출의 10%, 경상지출의 20%에 해당되 는 것이었다.(Rohwer, 1995, p.190.) 이러한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인도정부는 외채도입에 의존하게 되었고, 그 결과 1970년대까지는 약 200억 달러에 불과하였 던 외채 규모가 1990년에는 약 840억 달러로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1980년도에 는 9.2%에 불과했던 인도의 외채부담률이 1989년에는 상환불능 수준인 30%를 훨 씬 넘는 34.3%까지 기록하게 되었다. 외채를 포함한 총공공부채의 규모는 70년대 GDP 대비 40%에서 80년대에는 60%로 대폭 확대됨으로써 인도경제의 구조적 위 기요인은 더욱 심화되었다. 반면 외환보유액은 1986년의 45억 달러에서 1989년에 는 35억 달러로 급감하였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외환위기의 주요한 원인은 재정적자와 국제수지적자이 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도의 외환위기는 남미 국가들의 그것과 유사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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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도는 비교적 거시경제적 안정이라는 점에서 극한적인 위기의 양상을 보인 남미 국가들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또 국가의 규제가 광범하고 강력하게 나타나 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발달한 민간부문과 금융부문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에서 동구권의 사회주의 국가들과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인도가 남미에 비해 낮은 사회적 비용으로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거시경제 문제에 대한 낮은 관심은 오히려 재정부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는 장애가 되기도 하였다. 1990년 3월 씽 정 부가 내놓은 예산안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재정적자를 줄이고 국제수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를 담고 있었다. 실제로 동년 8월까지 인도의 경제상황은 어느 정도 개선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1990년 8월 걸프전이 발발하고 국내 정치가 혼란을 거듭하면서 결국 인도경제는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게 된 것이었 다.

외환위기가 진행되던 1991년 6월 집권한 라우 정부는 1990년 12월 IMF가 제시 했던 재정적자 축소를 조건으로 한 차관의 재개 및 경제개혁안을 수용하여 우선 단 기적으로 총수요억제를 통한 경제안정화 조치를 실시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대 내지향적 경제구조를 개편하고 국제경쟁력의 제고를 위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등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개혁정책들을 점진적으로 도입하게 되었다. 이 개혁 정책들의 목표는 크게 국내시장에서 규제의 축소와 경쟁의 확대, 세계경제에의 통 합, 정부 역할의 축소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개혁의 목표들은 인도의 경제개혁이 단순한 외환위기에의 대응을 넘어서 독립 이후 지속되어 온 발전전략과 경제구조 전반에 대한 반성에 기초한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외환위기 이후 인도의 개혁정책들은 크게 대내부문(산업 및 경쟁정책)개혁과 대외 부문(무역 및 외환정책)개혁 및 거시경제(재정, 금융 및 공공부문)개혁 등으로 나누 어 볼 수 있다. 먼저 대내부문 개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치는 1991년 7월에 발표된 <신산업정책(New Industrial Policy)>이다. 인도는 1951년 제정된 <산업개 발규제법>에 따라 모든 기업의 신증설, 산업입지 등을 정부가 사전 인가하는 산업 인허가제도(Industrial Licensing)를 실시함으로써 산업간, 기업간 경쟁을 통한 발전 을 억제해 왔다. 그러나 신산업정책에 따라 6개 공공부문, 사회안전과 환경관련산 업 및 소비재산업 16개 부문(1993년 4월 자동차와 백색가전 부문이 추가로 제외 됨), 소규모산업(Small Scale Industry Sector)으로 유보된 807개 품목, 인구 100 만명 이상의 대도시로부터 25km 이내에 입지할 기업을 제외하고는 모든 산업의 신 증설 및 입지에 대한 사전인허가가 폐지되었다. 특히 공공 부문의 경우 안보 및 전 략적 이유로 진입을 금지시켰던 18개 부문을 6개 부문(군수산업, 원자력, 석탄,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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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철도, 운수)으로 대폭 축소하고 그 중에서 함정 및 전투기 등 군수산업을 제외 한 모든 부문에 민간 및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였다. 한편 경제력 집중 및 불공정거 래 방지를 목적으로 제정된 독점제한적 거래관행법의 적용을 완화하여 국내시장의 25% 이상 점유시에만 적용되도록 하고, 대기업의 신규사업 개시 및 기존사업의 확 장, 통합, 합작, 인수 등에 대한 정부의 사전규제를 완화하여 대기업의 자구 노력 확대 및 경영자율권을 신장하였다. 특히 정부의 대기업에 대한 경영간섭의 반대급 부로 행해져 왔던 정부보조금 지원은 재정적자 확대의 주요원인이 되어 왔을 뿐 아 니라 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와 부실화의 원인으로 지적됨에 따라 점차 축소되었 다.

신산업정책은 국내기업들뿐만 아니라 해외자본에 대해서도 적용되었다. 독립 이 후 외환위기까지 인도정부는 해외자본의 유입에 대하여 폐쇄적인 정책을 유지해 왔 으나, 신산업정책은 외자유치와 경쟁의 확대를 위해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를 대폭 축소하였다. 먼저 수출업체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다수 지분을 허용해 주던 지분 제한을 철폐하여 호텔관광업, 컴퓨터 소프트웨어산업, TV 브라운관 등 36개 외국 인투자 우대업종에 대해서는 외자비율을 40%에서 51%로 상향하였으며, 특히 해외 거주 인도인에 대해서는 100%의 투자참가가 허용되었다.3) 이와 함께 전력사업 및 천연가스 탐사 및 개발 사업 등이 외국자본에 개방되었다. 또한 신속한 투자승인과 승인절차의 간소화를 위해 외국인투자촉진위원회(Foreign Investment Promotion Board), 외국인투자각료위원회(Cabinet Committee of Foreign InvestmentI)와 같 은 특별기구를 신설하여 외국인투자에 대해 5-6주 이내에 승인이 이루어지도록 했 으며, 특히 외국인투자 우대업종에 대해서는 인도중앙은행이 2주 내에 승인해 주는 자동승인제를 도입하였다. 그 외 외국 브랜드의 도입 허용, 합작사명의 외국-인도

3) 외국인 우대업종은 이후 51개로 확대되었다. 51개 투자우대산업은 다음과 같다. 1.야금, 2.보일러, 3.동력관련기기, 4.전기기기, 5.운송수단, 6.산업기계, 7.공작기계, 8.농기계, 9.

건설기계, 10.산업장비, 11.과학 및 전자의료장비 및 실험기기, 13.화학제품, 14.약품, 15.

종이 및 펄프, 16.고무 및 플라스틱, 17.판유리, 18.요업제품, 19.시멘트제품, 20.복사기, 21.탄소 및 탄소제품, 22.RCC파이프, 23.고무제조용 기계류, 24.인쇄용 기계류, 25.용접 봉, 26.산업용 인조 다이아몬드, 27.생명공학 분야, 28.희소 유류의 추출 및 고품질화, 29.건설용 조립자재, 30.대두제품, 31.고수확용 종자 및 식물, 32.유제품, 발효식품, 식품 가공, 33.식품포장, 34.호텔 및 관광관련산업, 35.컴퓨터 소프트웨어, 36.철광석 채굴, 37.

철광석 이외의 광물 채굴, 38. 기타 비금속 광물의 채굴, 39.식품제조, 40.면직물제조, 41. 모, 견 및 합성섬유 제조, 42.섬유제품제조, 43.기초화학물 및 화학품 제조, 44.고무, 플라스틱, 석유 및 석탄제품 제조, 45.금속제품 및 부품 제조, 46.기계류 및 장비생산, 47.육상운송 지원서비스, 48.해상운송 지원서비스관련, 49.기타 운송관련 서비스, 50.기타 대여서비스, 51.기타 서비스.(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인도편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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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혼용 폐지, 현지조달의무 폐지, 과실송금 보장 등 외국인투자환경은 대폭 개선되 었다. 자본도입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엄격한 심사에 의해 제한되어 온 외국기술의 도입에 대해서도 자동승인제가 도입되어 기술대가료가 일시불인 경우에는 1000만 루피 이하인 경우, 분할불인 경우에는 내수판매액의 5% 이하, 수출액의 8% 이내이 며 합작일로부터 10년, 영업개시일로부터 7년까지 총판매액의 8%를 초과하지 않는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승인되게 하였다.

둘째, 대외부문 개혁이다. 이미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외환위기 이전까지 인도 정부는 국내산업의 보호라는 명목으로 소비재는 물론 자본재와 중간재에 대해서도 높은 관세와 함께 포괄적 수출입승인제도, 등록수출업자제도 등을 통해 엄격한 통 제를 실시해 왔다. 그러나 인도경제의 경쟁력 약화에 가장 중요한 원인이 대내적 규제 및 경쟁제한정책과 함께 대외적으로 세계경제로부터 고립과 국내산업에 대한 보호라는 인식은 대외경제 부문에 대해서도 대폭적인 개혁을 요구하였다. 먼저 무 역정책에서 보면 인도정부는 국제경쟁력 강화와 국제수지의 개선을 위해 1991년 6 월 「1992/93-1996/97년 수출입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존의 Positive List System 을 Negative List System으로 전환하고, 일부 소비재 완제품 등 18개 품목을 제외 한 모든 품목의 수입규제를 완화하였다. 이와 함께 수출기업의 수입한도를 총수출 액의 5%에서 30%로 인상하고, 최고관세율을 150%에서 85%로, 자본재 수입에 대 해서는 80%에서 55%로, 특히 수출용 자본재 수입에 대해서는 25%로 관세율을 인 하하였다. 한편 수출촉진을 위해서도 자본재수출촉진제도, 사전승인제도, 특별수입 허가제도 등이 확대 실시되었다. 한편 「1992/93-1996/97년 수출입계획」이 끝나는 1997년 3월 31일 인도정부는 1997/98회계년도부터 2001/02년까지의 무역정책 전 반을 규정하는 적용되는 신수출입정책을 발표하였다. 이 정책은 종래의 수출진흥제 도를 재구성한 것으로, 수입수량제한 완화, 수출입절차의 간소화, 다양한 수출촉진 책의 통합, 농업 및 식품가공부문, 컴퓨터 소프트웨어, 전자 하드웨어, 보석류 등에 대한 특별 인센티브 부여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무역제도의 개혁과 함께 환율제도의 개혁도 이루어졌다. 1991년 7월 인도정부는 루피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해 미 달러화에 대해서는 23.1%, 일본의 엔화에 대해서 는 24.1% 평가절하하였다. 또 1992년 3월에는 시장환율을 부분적으로 적용하는 이중환율제를 도입함으로써 루피화의 태환성을 부분적으로 회복하였다. 이 이중환 율제는 공식환율과 시장환율을 일정 비율에 따라 적용하는 것으로, 수출로 벌어들 인 외화 중 40%는 공식환율로 60%는 보다 환율이 높은 시장환율로 매각할 수 잇 게 한 것이다. 이렇게 매입된 외환 중 40%는 원유, 비료, 군수장비, 의약품 수입시 사용되었고, 나머지 60%는 다시 시장환율로 매각되어 상품 및 용역 수입과 배당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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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 등에 사용되었다. 이 조치는 1993년 3월부터 전면적인 시장환율제가 도입됨 으로써 자동적으로 폐지되었다. 한편 1994년 4월부터는 수출입업자들에게만 한정 허용되었던 루피화의 태환화를 모든 기업은 물론 무역외수지부문, 즉 해외여행, 유 학 등에 대해서도 허용하였고 기업의 외환보유비율을 15%에서 25%까지 인상하였 으며, 특히 수출위주업체, 수출가공구, 전자기술단지, 소프트웨어 기술단지 입주업체 에 대해서는 50%까지 확대 허용하였다.

셋째, 인도의 거시경제개혁은 크게 재정 및 조세제도개혁, 금융개혁, 공공부문 개 혁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조세 및 재정개혁에 대해서 보면 인도의 복잡 하고 전근대적인 조세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라우 정부는 조세개혁위원회(Tax Reform Committee)를 구성하여 장기적인 조세제도개혁에 착수했다. 조세개혁위원 회는 조세개혁의 기본방향으로 직․간접세간의 세율조정과 세율구조의 단순화, 면세 범위의 축소, 새로운 세원 발굴, 각종 간접세의 부가가치세로의 통합, 관세인하 등 을 제시하였으며, 이에 따라 인도정부는 우선 각종 세율을 지속적으로 인하하였다.

특히 그때까지 법인세율은 공공성이 강한 기업 51.75%, 사유성이 강한 기업은 57.5%로 분리 과세되었으나, 94년부터 모두 46%로 통합 인하되었으며, 외국인기 업에 대한 세율도 65%에서 55%로 인하되었다. 개인소득세는 56%에서 40%로 인 하되었으며, 면세점도 22,000루피에서 40,000루피로 높아졌다. 한편 세율의 인하와 함께 세제개혁도 함께 추진되었는데, 물품세를 종량세로 전환하는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사회간접자본에 대해서는 5년간의 과세유예기간이 인정되었다. 관세개혁 에 대해서는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다. 이러한 세제개혁의 결과 인도의 국내총생산 에서 차지하는 직접세의 비중은 1990년의 2.1%에서 1995년에는 2.9%로, 중앙정 부의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동안 19%에서 29%로 증가했다. 반면 간 접세 중에서 특히 관세의 비중은 3.8%에서 2.8%로 감소되었다.

재정지출 부문의 개혁에 대해서도 라우 정부는 적자재정 및 무역적자를 보전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구조조정정책을 수행하였다. 재정개혁의 초점은 거시경제적 균형 을 위한 긴축정책에 모아졌는데, 그 결과 인도의 공공지출 증가율은 1990년 이후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공공지출 감소의 가장 큰 부분은 개발지출 (development outray)과 사회보장 부문이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인도 재정적자 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 공공투자와 보조금이었던 점에서 이러한 인도정부의 개혁방 향은 올바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인도의 재정적자는 매우 큰 규모 로서 정부의 개혁추진에 중대한 압박으로 남아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 사회보장지 출의 감소는 빈곤계층에 대한 공공서비스의 감소 등의 문제를 새롭게 낳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향후 개혁의 과제로서 적극적인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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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둘째, 금융부문개혁을 보면, 인도의 금융체제는 사실상의 국영기관체제로서 정부 의 경제개발정책에 따라 개발자금을 배분하는 기능을 주로 수행해 왔다고 할 수 있 다. 특히 1969년 인디라 간디 정부에 의해 시작된 상업은행들의 국유화 조치로 탄 생한 인도의 국영은행들은 개발 초기에는 농촌지역으로의 금융망 확대와 여수신의 증대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 대신 낮은 수익성과 효율성, 고객 서비스의 질적 저 하 등 국유화에 따른 부작용도 노정시켜 왔다. 금융개혁이 시작된 1992년 당시 인 도의 은행 수는 모두 275개인데, 이 가운데 224개가 인도국립은행계 은행이며 나 머지 51개 은행은 24개의 외국계 은행을 포함한 소규모 민간은행들이었다. 이 중 에서 인도국립은행계 상위 28개 은행이 전체 수신고의 90% 이상을 차지하였으며, 인도산업개발은행 등과 같은 특수은행이나 보험회사 등도 모두 국영기관으로 운영 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높은 현금보유비율 유지와 시장금리 이하의 대출 요구 등으로 국영은행들의 경영 및 재무구조는 극도로 취약해, 같은 해 전체 국영은행의 순손실 규모는 336억 루피에 달했다.

인도정부는 이와 같이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의 추진으로 야기된 국영금융기관 중 심의 발달, 금융산업의 낙후, 효율성 및 경쟁력의 저하를 개선하기 위해 금융부문의 구조적 개혁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금융산업의 낙후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인도정부 는 점진적으로 금융자율화를 도입하고 신규 민간상업은행의 설립을 허용하였다. 또 국영은행의 민영화를 위해 총지분의 49%를 우선적으로 매각한다는 계획을 추진하 였다. 이에 따라 은행의 법정유동성비율을 38.5%에서 25%로 낮추었으며, 현금보유 비율도 10%로 낮추었다. 또한 은행 재무구조의 건전화를 위하여 국제결제은행 (BIS)이 정한 가중위험자산에 대한 자기자본비율 8%를 엄격히 준수하도록 감독하 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금융기관들간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금융산업에 대 한 민간 및 외국인투자를 개방하였다. 또 자본시장에 대한 외국인투자의 개방조치 로 1992년 9월에는 외국기관투자자의 해외증권 발행 및 유통시장 참여가 허용되었 는데, 종목당 투자한도는 5%, 종목당 총외국인투자한도는 24%로 각각 설정되었 다.(조충제, 1994, 33쪽.)

마지막으로 공공부문개혁을 보면, 이미 지적한 것처럼 혼합경제체제를 지향해 온 결과 인도에서는 공공부문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면서도 그 효율성은 결코 높지 못 하였다. 이 때문에 인도의 경제개혁에서 공공부문의 개혁은 가장 중요한 부문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공부문 개혁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추진되고 있는데, 하나는 공기업이 담당해 온 영역을 축소해 민간 및 외국인투자에 대해서 개방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기존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것이다.4) 공공부문의 축소를 위하여 정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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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으로 유보된 산업을 제외하고는 공기업의 신설 및 증설을 지양하고 민간 및 외국인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또한 부실공기업을 심사하여 폐쇄하거나 민 영화시키고, 정부보조금 및 금융지원을 축소시키는 대신 기업의 경영자율권을 확대 하였다. 이러한 인도정부의 노력으로 특히 항공, 정유, 통신 부문 등에서는 민간 및 외국인투자가 활발하게 확대되고 있다. 또한 인도 정부는 노동조합이나 야당의 반 발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공기업의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인도정 부는 1992년 2월 국민재활기금(National Renewal Fund)을 설립하여 공기업의 민 영화로 인한 실직 노동자들의 직업훈련, 취업알선, 취업상담 등을 위해 지출하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인도준비은행(Reserve Bank of India)의 총재인 랑가라얀(C.

Rangarayan)을 위원장으로 하는 특별위원회가 설립되었는데, 이 위원회는 우선 중 단기적으로 공기업의 매각지분을 49%로 하고 매각대금 중 10%를 공기업의 설비현 대화 등 산업합리화 자금으로 사용하도록 권고하였다.(조충제, 1994, 31-32쪽.)

4) 인도에서는 ‘민영화’를 가리키는 말로 ‘privatization’보다 ‘disinvestment’라는 표현이 일 반적이다. 여기서도 정부 중심적, 공기업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나타나 있는 듯하다. 즉 민 영화란 국가가 투자를 철회한 것이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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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Ⅳ-2> 인도 경제개혁의 주요 내용

개혁 이전의 정책 개혁의 주요 내용

경제정책의 기조 - 자급자족, 대내지향 - 자유화, 개방화

산업정책

- 기업 신증설 허가제 - 공공부문 확대(18개 부문) - 독점제한적 규제 강화

- 기업 신증설 및 입지 자유화

- 공공부문 축소(6개 부문) 및 공기업 민영화 - 독점제한적 거래관행법 적용 완화

외국인투자정책

- 32개 업종에 대해서만 40% 이내 에서 외국자본의 출자 허용 - 외국기술의 도입에 엄격한 심사 - 외국기업의 지점설치 불가 - 외국기업의 부동산 취득 불가 - 외국 브랜드의 사용금지 및 합작 사명의 외국-인도명 혼용

- 생산개시 후 5년 이내 80% 이상 의 현지조달의무

- 배당금 및 과실송금 제한

- 51개 우대업종에 대해 51%까지 외국자본 출자를 자동승인

- 일정조건 충족시 자동승인

- 제조업, 무역업에 대해 지점 설치 가능 - 취득 가능. 매각에 따른 이익송금만 금지.

- 폐지

- 폐지

- 폐지

무역 및 외환정책

- Positive List System - 고관세정책

- 공식환율제, 이중환율제 - 제한적 태환화

- Negative List System - 저관세정책

- 시장환율제

- 태환화 대상의 확대

조세 및 재정정책

- 복잡하고 전근대적인 세율구조 - 간접세의 높은 비중

- 과다한 공공투자 및 보조금으로 재정압박

- 세율인하, 세율구조의 간소화 및 근대화 - 간접세 비중을 축소하고 직접세를 확대 - 긴축정책 추진

금융정책

-금융기관의 국유화 - 금융산업 미개방 - 경영자율권의 제약 - 자본시장 미개방

- 민영화 추진

- 민간 및 외국자본에 금융산업 개방 - 경영자율권의 확대

- 자본시장 개방, 해외증권 발행 확대 및 규 제완화

자료 : 정동현, 「인도의 외환위기와 경제개혁」, 부산대학교 국제지역문제연구소,

『국제지역문제연구』, 제19권 제2호, 2001, 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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