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는 인도 현대사 최고의 영웅이다. 간디는 영국 식민통치에 대한 비 폭력 독립운동으로 불멸의 지도자가 됐다. 간디가 인도 현대사에 끼친 영향은 상상 을 초월한다. 간디가 남긴 자취는 요즘도 인도 사회 곳곳에 배어 있다. 그 자취는 많은 부분 긍정적이지만, 부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에게 간디는 뼈만 앙상한 몰골로 물레를 돌리는 모습으로 기억된다.
영화 ‘간디’의 한 장면이 겹쳐진 탓이기도 하지만, 실제 간디의 삶과 철학이 그랬다.
간디는 문명생활과 물질주의를 배격하고 도시 대신 농촌을 중시했으며, 자급자족하 는 삶을 주창했다. 물론 간디의 이런 삶의 철학과 자세는 그가 살았던 시대를 반영 한다.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반발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나 간디의 삶의 자세와 철학은 독립 이후에도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도의 경제발전 에 크나큰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간디 사상, 독립 이후 인도의 경제발전에 악영향
간디는 독립운동 기간 동안 산업화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반대했다. 간디가 산 업화에 반대한 이유는 인간의 이상적 삶의 형태가 목가적 시골생활에 있다고 판단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이상적 사회인 농촌의 파괴를 가져온 다고 믿었다. 게다가 당시 영국 식민정부는 인도를 산업화시키겠다고 선전했지만, 산업화의 이익은 대부분 영국 자본가들에게 돌아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를 직접 목격한 간디로선 산업화를 저지하고 반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간디의 산업화에 대한 회의(懷疑)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반대로 이어졌다. 여기서 테크놀로지란 서구 기술문명을 말한다. 그는 테크놀로지 발전에 대해 영국의 기계 파괴운동인 러다이트(Luddite) 같은 반응을 보였다. 즉 기술이 발전하면 필연적으 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게 된다는 논리였다. 또 산업화에 대한 반대는 도시화 에 대한 반감으로 발전했다. 간디에게 있어 인도의 정신과 영혼은 농촌 공동체에
간디 스와데시와 인도의 경제성장
오화석 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 인도경제연구소장
2011-02-10
있었다. 그는 “진정한 인도는 몇 안 되는 도시에서가 아니라 70만 개의 마을에서 발견될 수 있다. 마을이 붕괴한다면 인도도 붕괴할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간디는 영국 식민통치 하에서 발전한 인도 도시들이 농촌경제에 전혀 이득을 주 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인도의 사례는 도시화로 인해 농촌지역의 소득 증대와 삶의 질 향상을 가져온 영국이나 유럽 국가들과 달랐다. 간디는 인도 도시들이 농촌의 인재와 자본, 기타 여러 자원을 빼앗아가는 수탈자라고 여겼다. 도시 공장에서 만든 제품들은 인도 농촌으로 들어와 가내 수공업으로 먹고 살던 농촌사람들의 삶을 파 괴했다고 믿었다. 간디가 합성섬유를 거부하고 면화를 고집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산업화의 산물인 합성섬유가 인도의 강점인 면화산업을 피폐하게 만들 어 농촌을 파괴한다고 생각했다.
간디의 산업화, 도시화, 서구문물에 대한 반대가 종합적으로 나타난 산물이 유명 한 스와데시(Swadeshi) 운동이다. 스와데시는 힌디어로 ‘모국(母國)'을 뜻하는 말로 외래품, 특히 영국 상품을 배척하는 국산품 애용운동이다. 스와데시는 외부시장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피한다. 그러한 의존은 마을공동체를 취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간디에 따르면 당시 인도 농촌경제의 핵심은 농민들이 직접 손으로 만든 면직물 이었다. 그러나 영국에서 기계로 만들어진 값싸고 대량생산된 직물들이 인도에 홍 수처럼 들이닥치자 농촌 지역 직물장인들은 일자리를 잃고, 마을경제는 수렁에 빠 졌다. 간디는 농촌의 가내 직물업이 다시 소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영 국산 직물의 유입을 막기 위한 운동, 즉 스와데시를 대대적으로 벌였다.
스와데시 운동의 결과 수많은 인도인들이 신분을 초월하여 영국이나 도시로부터 수입된 공장제품 옷을 배격하는 데 동참했다. 그리고 간디처럼 스스로 실을 잣고 옷을 짜 입는 법을 배웠다. 간디가 돌린 물레는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독립의 상징 이 되었다.
간디의 반(反) 산업화, 반 테크놀로지, 반 도시화, 반 외국상품 운동은 인도인들 을 자각시키고, 독립을 달성하는 큰 힘이 되었다. 이 점에서 간디가 인도 독립에 기 여한 업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이런 인식과 철학이 독립 이 후에도 계속됐고, 그 강도는 낮아졌지만 아직도 여전히 계속된다는 데 있다.
산업화는 가난한 인도가 시급히 달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인도의 가난은 끔찍하다. 하루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살아가는 극빈 인구가 자그마치 수억 명이나
된다. 이들이 의식주를 해결하고 교육을 받게 해 인간적인 삶을 영위토록 하기 위 해선 산업화가 절실하다. 산업화가 이루어져야 수천 년간 내려온 신분제도인 카스 트도 해체될 수 있다.
그런데 산업화는 어떻게 달성되는가? 앞선 기술이 바탕이 돼야 하고, 도시화가 진전되어야 하며, 자급자족경제를 넘어 상품과 서비스의 교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그러나 간디가 인도인들의 마음속에 뿌리 깊게 박은 신념과 철학은 안 타깝게도 이와는 정반대의 길이었다. 산업화, 도시화를 반대하고 농촌을 중시해야 한다는 간디의 철학은 카스트제도 등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층에게 강력한 이론적 무 기가 되었다.
스와데시를 통해 자립경제를 달성하려던 간디의 철학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 다. 자립경제 모델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간디의 철학을 이어받은 자와할랄 네루 (Jawaharlal Nehru) 초대 총리가 죽은 지 몇 년 후 바로 드러났다. 1966년 인도는 제1차 외환위기를 겪는다. 주요 원인은 1950년대 이후 무역과 재정에서의 ‘쌍둥이 적자'가 지속적으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무역적자는 위기를 초래할 수준인 국내총생 산(GDP)의 5% 수준에 달했고, 재정적자는 GDP의 25%나 됐다. 게다가 인플레이 션이 높아 무역적자를 계속 확대시켰다.
위기에 처한 인도 정부는 결국 루피화에 대한 가치를 떨어뜨리는 평가절하를 단 행했고,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원을 요청했다. 루피화에 대한 평가절하는 곧 스와 데시의 패배를 의미했다. 스와데시는 자립경제를 목표로 추구한 정책이었으나 루피 화 평가절하는 IMF, 즉 외국세력에의 굴복을 뜻하였기 때문이다. 제1차 외환위기로 인해 인도가 국제적 모멸을 받는 시간은 수년간 이어졌다. 영양부족에 시달리던 빈 민들은 곡식을 싣고 온 미국 식량원조 선단(船團)에 의존해 살았다.
두 차례 위기 겪고 개방 시장경제로 대전환
인도 정부의 스와데시 정책은 제1차 외환위기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1991년 제2차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치명적 타격을 받는다. 1991년 위기는 네루 이후 수십 년간 계속됐던 자립경제 모델에 대한 강한 거부였다. 당시 재정, 무역, 자본 등 ‘트 리플 적자'에 빠져 있던 인도는 옛 소련의 붕괴, 걸프전쟁 발발로 인한 국제유가 급 등, 해외 인도인 교포들의 국내 투자자금 회수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외환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두 차례에 걸쳐 루피화를 평가절하했고, 다시금 IMF에 도움을 요청했다. 자
립경제란 자존심은 만신창이가 됐다. 제2차 외환위기를 계기로 인도는 자립경제정 책을 벗어던지고 개방적 시장경제로 대전환을 시도한다. 독립 이후 40년간 이어져 온 스와데시와의 결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