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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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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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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의 탄생*

권 현 정**

< 차 례 >

1. 서 론

2. 연출이 탄생하는 미학적 배경

2.1. 중심 축의 전환 : 소리에서 이미지로 2.1.1. 제스처가 만드는 시각이미지 2.1.2. 미정스펙터클

2.2. 따블로tableau 또는 연결의식

3. 연출, 아르누보 art nouveau?

3.1. 낭만주의 무대와 연출 3.2. 연출에 대한 찬반론

3.3. 연출, ‘지금 막 탄생하는 예술 : 앙뚜안Antoine, 뤼네-뽀Lugné-Poe

4. 결론

1. 서론

연출(mise en scène)은 ‘지금 막 태어난 예술’이다.1) 현대연출의 대부로 불려지 는 앙드레 앙뚜안(André Antoine)이 1903년 「연출에 대한 한담Causerie sur la mise en scène」에 남긴 말이다. 미정센(mise en scène)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 면 무대에(en scène) 올리기(mise)이다. 텍스트에서 무대로 옮겨지면서 연극은 재 생을 거듭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총괄하는 ‘지휘자’가 있었던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지휘자가 오랜 기간동안 ‘연출가’로 불리지 않았을 뿐이다.2) 그런데 앙뚜안은 왜 지금 막 연출이 태어났다고 말했을까? 그의 발언은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한다. 과연 연출이 탄생한 시기를 말할 수 있을까? 그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연출의 기원은 ‘연출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앙뚜안의 발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어떤 개념으로서 연출의 탄생을 말하는 것일까?

앙뚜안의 표현에 의하면 연출은 ‘물질적’이면서 ‘비물질적’ 영역이다.3) 연기, 의상,

* 이 연구는 2002년도 UB재단 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이루어졌음.

** 서강대학교 프랑스문화과 교수

1) “[…] un art qui vient de naître ; et rien, absolument rien, avant le siècle dernier, avant le théâtre d’intrigue et de situations, n’avait déterminé son éclosion.” A. Antoine, “Causerie sur la mise en scène,” in Revue de Paris, premier avril, 1903, p. 599.

2) 고대 그리스에서는 디다스칼로스didascalos로 불렸고, 오랫동안 무대감독(régisseur)이 작 가를 도와서 공연 제반문제를 총괄했다. A. Veinstein, La Mise en scène théâtrale et sa condition esthétique, Flammarion, 1955, pp. 141-143 참조.

3) “Quand, pour la première fois, j’ai eu à mettre un ouvrage en scène j’ai clairement perçu que la besogne se divisait en deux parties distinctes : l’une, to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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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 조명, 음향 등, 여러 요소들로 텍스트에 시각적 입체감을 주고 듣게 하는 물질 적 영역이면서, 연출은 단순한 기술적 활동이 아니다. 즉, 무대요소들을 엮어내면서 작품의 흐름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지적이고 창조적 작업이다. 그렇다면 앙뚜안은 작 품을 해석하는 연출가의 주관적 개입의 정당성을 표명하면서, 흔히 일컬어지는 ‘창조 적 연출’의 개념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연출은 일반적으로 작가의 정신에 충실하는 ‘해석적 연출’과 연출가의 독창성이 두 드러지게 나타나는 ‘창조적 연출’로 분리된다. 루이 주베(Louis Jouvet)는 “연출한 다는 것은 결국 작가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충성으로 작가를 보좌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4) 그런데 1947년 그가 올린 몰리에르의 󰡔동 쥐 앙Dom Juan󰡕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까지 받아들여진 방탕한 자유사상가, 동 쥐앙이 아니라 신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모습에 연출의 초점을 맞췄 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으로 신랄한 비판을 받은 주베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구로 응수를 했다.

몰리에르에게 전화해봤어? Tu lui as téléphoné ?5)

작가에게 봉사하며 작품에 충실한다는 개념은 무엇일까? 특히 작품이 고전인 경 우,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진 견해를 존중하는 것이 충실한 것인가? ‘충실’이라는 개념 은 객관적으로 읽어낸다는 것인가? 그런데 어디까지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일 까? 텍스트를 왜곡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등장인물의 성격, 이야기의 구조 등, 텍스트의 물질적 특성을 파괴하면서 작가의 정신을 드러낼 경우, 창조적 연출인 가 아니면 해석적 연출인가? 이러한 일련의 질문에서 연출유형의 이분법적 분리의 도식성 및 그 경계의 모호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두 유형 에서 공통점이 나타난다. 바로 ‘연출은… 해석’이라는 사실이다. 연출은 작품을 어떻 게 읽어야 하는지, 또는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이러 한 방향이 텍스트에 내재되어 있다고 간주되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이든지, 주어진 텍스트에서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을 부각시키거나 전혀 다르게 변형해서 제시하든지, 모두 해석의 일환이다. 다만 연출가의 텍스트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있고, 이에 따라 해석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앙뚜안이 언급한 연출의 ‘비물질성’이란 바로 이러한 해석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연출가의 독창성 또는 작가의 ‘의

matérielle, c’est-à-dire la constitution du décor servant de milieu à l’action, le dessin et le groupement des personnages; l’autre immatérielle, c'est-à-dire l’interprétation et le mouvement du dialogue.” A. Antoine, op. cit., p. 560.

4) “Mettre en scène enfin, c’est servir auteur, l’assister par une totale, une aveugle dévotion […].” L. Jouvet, Réflexions du comédien, Librairie théâtrale, 1938, p. 188.

5) J.-J. Roubine, Introduction aux grandes théories du théâtre, Bordas, 1990, p.

133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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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드러내기’라는 문제를 떠나서, 앙뚜안이 말했듯이, 연출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너머 서는 영역으로, 즉 연출가의 미학적 판단으로 비로소 태어난다.

달리 말하면, 연극의 역사만큼 연출의 역사가 있었지만, 오랫동안 연출은 해석의 영역이 아니었다. 해석은 연출가의 주관적 개입을 전제로 하고, 주관성은 자율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연출이 해석이란 개념은 연출의 고유성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 된다. 그런데 연출이라는 용어가 비평계에 등장하는 19세기 이전까지 공연의 총지휘 자는 연출가로 불리지 않았고, 무대로의 이동작업이 연출로 일컬어지지 않았다. 이러 한 사실은 연출행위가 있었지만 이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적 어도 17세기까지 작품에 따른 개별적 무대가 부재한 점에서 연출에 대한 인식이 없 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중세․엘리자베스․고전주의 시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작품의 개별성에 상관없이 고정된 무대구조 속에서 공 연이 된 점이다. 스케네와 오케스트라의 기본 골격 안에서 4부작(théâtrologie)이 공연되었고, 맨션(mansion)에 의거한 병렬․원형구조에서 신비극이 공연되었다. 돌 출무대의 특성상 세익스피어의 모든 작품들은 거의 빈 무대에서 공연되었다면, 여러 등장인물들이 우연히 한 장소로 모이는 ‘임의의 궁전(palais à volonté)’, 또는 ‘교차 로(carrefour)’로 간주된 고전주의 무대에서도 특정 작품에 관계없이 거의 같은 의 상과 무대배경 속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관례에 의거해서 공연양식이 결정 되었던 시기에, 작품에 따라 무대를 차별화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을 수 없었고, 나아 가서 작품에 따른 개별적 연출이 부재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연출은 텍스트를 그 대로 무대에 옮기는 자동적 행위였다. 연출이 자동적 행위에 불과했던 것은 작가가 직접 공연을 지휘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스킬로스, 세익스피어, 몰리에르, 라신느 등, 주로 작가가 - 동시에 배우이기도 한 - 자신의 작품을 직접 무대에 올렸 는데, ‘무엇이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했겠는가? 해석 이전의 연출에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읽거나 작품의 의미를 변형하려는 의도 는 물론, ‘작품의 의도가 이렇다’라고 방향을 제시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수 없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해서 오랫동안 연출은 ‘무의식적 연출’, 즉 텍스트를 그대로 무대 에 옮기는 단순한 전이작업에 불과했다.

전이개념으로서의 연출, 이는 연극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 후 거듭되는 시학의 변형이 적어도 17세기에서 19세기 극예술을 지배한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유추할 수 있을까? 20세기 이전에는 연출에 관한 자료는 말할 것도 없고, 무대건축과 무대미술에 관한 자료가 매우 드물다. 반면, 연기와 발성법에 관한 자료는 상대적으로 많은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연극이 시공간의 예술임에 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고 우열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건의 구조와 전개, 즉 플롯의 흐름에 중요성을 부여했기 때문에 이를 전달하는 언어가 강조된 반 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운명의 돌을 던졌듯이, 공간을 채우는 시각적 요소들은 중요하 게 간주되지 않았다.6) 그런데 연출가가 무엇인가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도

6) “Quant au spectacle, qui exerce la plus grande séduction, il est total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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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 필요하다. 문학의 장르를 공연예술로 창조하는 데 있어서, 언어이외의 감각적인 시청각적 요소들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사실인데, 프랑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텍스트 중심주의(texto-centrisme)에서, 문학적 연극에 가치를 둔 전통 속에서, 연 출에 대한 의식이 형성되기 어려웠다. 따라서 언어 중심의 연극에서 벗어나려는 시 도와 함께, 언어이외의 다른 요소들의 중요성이 거론되기 시작하는 18세기 중엽부터 연출에 대한 의식이 점진적으로 형성된다. 또한 연출 행위에 대한 의식이 심화되면 서, 연출은 텍스트에서 무대로 이동하는 단순한 기술적 개념이 아니라, ‘비물질 영역’

으로 거듭난다.

그렇다면 어떻게 단순한 이동작업에서 해석개념으로 거듭나는 것일까? 무대요 소에 대한 사고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는가? 미정센 용어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어떤 의미로 정의되는가? 본 논문은 18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엽 사이에 연출에 대한 의식이 프랑스에서 형성된 배경 및 현대적 의미의 연출, 즉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예술로 탄생하는 과정에 대한 연구이다. 아울러 무의 식적으로 받아들인 전이개념에서 해석의 개념으로 연출이 탄생하면서 나타나는 결과 적 현상 및 그 의의에 대해서 탐구하고자 한다.

2. 연출이 탄생하는 미학적 배경

앞서 연출은 글자그대로 ‘무대에 올리기’를 의미한다고 했다. ‘어떻게 무대에 올 릴 것인가’라는 문제는 연출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좌표이다. 그런데 해석 개념 으로 연출이 탄생하기 이전의 ‘연출’ 즉, 텍스트를 무대에 그대로 옮기는 전이개념의 연출에서도 무대화 작업에 대한 질문이 나타났을까? 연출이 자율적 예술로 거듭나기 이전에도 무대화에 대한 사고는 있었다. 다만, ‘어떻게’라는 방법론이 제한적이었다.

예를 들면 고전주의 연극에서는 하나의 요소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바로 배우의 발 화기술(technique de la déclamation)이다. 몰리에르는 󰡔베르사이유의 즉흥곡 L’Impromptu de Versailles󰡕에서 배우의 역할에 따른 발성법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라신이 여배우 샹슬레(la Champmeslé)에게 화법을 지도한 사실도 익히 알 려진 일이다. 대사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배우의 발성기술이 중요한 것은 언급할 필 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전주의에서 배우의 소리는 텍스트를 무대로 옮기게 하 는 핵심적인 매체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특별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배우의 움직임이나 공간 문제는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따라서 ‘무대에 올리기’는 배우의 목소리를 통해서 쓰여진 활자를 들리게 하는 ‘소리화 작업mise en voix’이었다. 이 러한 단계에서 미정센에 대한 의식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연출은 하나의

étranger à l’art et n’a rien à voir avec la poétique, car la tragédie réalise sa finalité même sans concours et sans acteurs.” Aristote, La Poétique, texte, traduction, notes par R. Dupont-Roc et J. Lallot, Le Seuil, 1980, p.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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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소에 대한 사고와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출에 대한 의식은 배우의 발화 중심 의 무대에서 다른 제반 요소의 중요성을 자각하면서 점차적으로 형성되는데, 18세기 에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다. 1769년에 출간된 비평서 󰡔연극예술 전반에 관하여De l’art du théâtre en général󰡕에서 누가레(Nougaret)는 연극에 대한 당시 관객의 기대치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아무리 숭고하고 감동적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장식 없는 작품은 관객을 확실 히 지겹게 할 것이고, 곧 잊혀지게 될 것이다. […] 장식이 다양할 경우, 이성과 사실임직함이 요구하는 장소의 단일화가 파괴되는 것은 사실이다. 연극의 반전이 너무 자주 있게 되면 작품을 아름답게 하는 단순함이 상실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러한 야릇한 방법을 꼬르네이유와 라신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비극은 오늘날 관객을 사상과 발성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여전히 매료시킨다. 그렇지만 시 대는 바뀌었다. 만약 꼬르네이유와 라신이 지금 살아 있다면, 오늘날 작가들처럼 창작할 것이다.7)

사고와 발성의 아름다음으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시대가 지났다는 지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고전주의 시대의 ‘사실임직함’의 잣대가 18세기 극작가 들에게 더 이상 사실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연예술의 한 체계가 더 이상 수용되지 않을 때, 그것은 결코 기술적인 원인이 아니다. 전 세기부 터 발달한 화려한 오페라에 익숙한 18세기 관객은 언어의 아름다움보다는 시각적이 고 감각적인 이미지에 더 민감했기 때문에, 언어에 의해서 사건이 묘사되고, 장소가 환기되는 추상적인 공간에서 벗어나서 생동감 있는 구체적인 무대를 요구한다. 관객 의 이러한 기대치를 수용하듯, 18세기 중엽에 등장하는 새로운 장르, 드라마(drame) 는 무대가 구체적인 표현의 장이 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는 “인간이 항상 고통 속에 또는 기쁨에 젖어 있는 것도 아니다”고 말하면서 희극과 비극 사이의 중간 장르(genre intermédiaire)의 필요성을 주장한다.8) 희극과 비극으로 양분되기보다는, 희비극이 섞여 있는 인간의

7) “Une pièce qui en seroit tout à fait dénuée ennuyeroit sûrement et tomberoit bientôt quoique touchante et sublime […]. Il est vrai que les décorations multipliées détruisent l’unité de lieu si recommandée par la raison et la vraisemblance. Il est vrai que les coups de théâtre trop fréquents ôtent aux drames la simplicité qui embellit. Corneille et Racine ne se sont point servi (sic) de ces moyens étrangers. Leurs tragédies charmoient pourtant toujours les spectateurs par la seule beauté de la diction et des pensées. Mais les temps sont changés. S’ils vivoient de nos jours, ils feroient comme les auteurs d’à présent.” M.-A. Allévy, La Mise en scène en France dans la première moitié du dix-neuvième siècle, Genève, Slatkine Reprints, 1976 [1938], p. 16 에서 재인용.

8) “[…] l’homme n’est pas toujours dans la douleur ou dans la joie. Il y a donc un point qui sépare la distance du genre comique du genre tragique.”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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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려는 의도에서 드라마가 출현한다.9)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들’을 다루고자 한 드라마는 더 이상 ‘한 독재자의 유명한 죽음 이나, 로마나 아테네의 신전에 받쳐지는 어린아이의 희생’같은 희귀한 사건들을 다루 지 않는다. 또한 ‘웃음을 유발하는 우스꽝스러움이나 전율을 일으키는 위험’한 이야기 를 다루지 않는다. 먼 나라의 이야기, 왕족이나 신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연극은 주 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평범하지만 ‘진지한 문제들’10), 예를 들면 아버지의 의무, 상 황의 갑작스런 변화, 불명예에 대한 두려움,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열정 같은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11) 또한 문인, 철학가, 상인, 변호사 등,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상태des hommes de tous les états’를12) 희곡이 그리고자 하면서 무대 도 구체적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이제는 재현 가능한 현실, 평범한 사 람들을 연극이 다루고자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웅변적인 어조가 아닌 자연스런 어 조, 부동자세로 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제스처의 사용, 그리고 시대 와 장소 개념이 반영된 의상과 무대장면으로 관객이 보다 ‘사실적’으로 주어진 상황 을 믿을 수 있도록 무대를 구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시된다.

Diderot, Entretiens sur le Fils naturel, in M. Borie, M. de Rougemont, J.

Scherer, Esthétique théâtrale, SEDES, 1986. p. 99.

9) 디드로는 본래 모든 희곡작품을 일컫는 ‘드라마drame’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이전에 ‘진지한 희극’이나 ‘가정비극’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노그레트Naugrette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Le mot drame, qui jusqu’alors n’est pas spécifié et renvoie indifféremment à toute pièce de théâtre, deveint progressivement au fil des écrits de Diderot la dénomination générique des pièces du troisième genre. Entre les Entretiens sur le Fils naturel et le Discours sur la poésie dramatique, la terminologie se fixe ainsi autour du mot drame, qui remplace les autres expressions, plus ambigus et moins neuves, de comédie(sérieuse) et de tragédie(domestique), et qui témoigne d’une rationalisation des conceptions dramaturgiques de Diderot, encore floues et en dialogue dans les Entretiens, plus nettes et systématisées dans le Discours.” C. Naugrette, L’esthétique théâtrale, Nathan, 2000, pp.

147-148.

10) “[…] il y en aura, sans ridicule qui fasse rire, sans danger qui fasse frémir, dans toute composition dramatique où le sujet sera important, où le poète prendra le ton que nous avons dans les affaires sérieuses, et où l’action s’avancera par la perplexité et par l’embarras. Or, il me semble que ces actions étant les plus communes de la vie, le genre qui les aura pour objet doit être le plus utile et le plus étendu. J’appellerai ce genre le genre sérieux.” D. Diderot, Entretiens sur le Fils naturel, in M. Borie, M. de Rougemont, J. Scherer, op. cit., p. 100.

11) “Un renversement de fortune, la crainte de l’ignominie, les suites de la misère, une passion qui conduit l’homme à sa ruine, de sa ruine au désespoir, du désespoir à une mort volonté, ne sont pas des événements rares

; et vous croyez qu’ils ne vous affecteraient pas autant que la mort fabuleuse d’un tyran, ou le sacrifice d’un enfant aux autels des dieux d’Athènes ou de Rome?” Ibid., p. 102.

12) Ibid., p. 104.

(7)

대사를 만들고 작품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희곡 글쓰기가 사실적이기를 원하시 나요? 배우들이 자연스런 연기를 하고, 현실에서처럼 말하기를 원하시나요? [그 렇다면] 목소리를 높여서, 재현하고자 하는 장면을 무대가 그대로 보여줄 수 있도 록 요구하세요. Voulez-vous rapprocher vos poètes du vrai, et dans la conduite de leurs pièces, et dans leur dialogue, vos acteurs du jeu naturel et de la déclamation réelle ? Elevez la voix, demandez seulement qu’on vous montre le lieu de la scène tel qu’il doit être.13)

무대에 구현된 환영, 이는 관객이 무대에 재현된 허구를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이 고, 스스로를 반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진짜 옷을 입고, 무대행위와 관련된 말을 하고, 평범한 행위들이지만, 당신의 부모, 친구, 당신 자신을 위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위험을 내포하는 사건들로 구성된 사실적인 무대가 당신에게 초래할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습니까?

Vous ne concevez pas l’effet que produiraient sur vous une scène réelle, des habits vrais, des discours proportionnés aux actions, des actions simples, des dangers dont il est impossible que vous n’ayez tremblé pour vos parents, vos amis, pour vous-même?14)

보마르쉐(Beaumarchais)도 “영웅비극은 왕들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을 묘사하면서 신중한 장르에 가까워질 때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15) 계몽 주의 시대에 연극에 부여한 도덕적 효과에 따라 보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무대가 요구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연출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디드로의 발언이 매 우 예시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행위에 걸맞는 의상, 언어에 걸맞는 동작 등, 요소들 의 ‘연결’에 대한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훗날 탄생하게 될 연출의 핵심 문제이기 때문이다. 18세기에 나타난 고전주의에 대한 전반적의 회의, 시각 이미지

13) D. Dierot, Discours sur la poésie dramatique, in Diderot et le théâtre, Pocket, 1995, p. 232. 디드로는 고전주의 원칙에 순응하려고 하기 때문에 공연의 사실임직함이 파괴되었다고 지적하면서, 15년간 극장에 10번 가지 않았는데 그것은 무대 위의 거짓이 자신을 절망시켰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Le problème majeur d’une soumission totale à des principes ethétiques et dramaturgiques hérités du théâtre clasique est bien d’avoir détruit la vraisemblance de la représentation, partant l’illusion théatrale et le plaisir du spectateur : <Tenez, mon âme, je n’ai pas été dix fois au spectacle depuis quinze ans. Le faux de tout ce qui s’y fait me tue>.” C. Naugrette, op. cit., p. 133.

14) D. Diderot, Entretiens sur le Fils naturel, in M. Borie, M. de Rougemont, J.

Scherer, op. cit., p. 102.

15) “Il reste donc pour constant que la Tragédie héroïque ne nous touche que par le point où elle se rapproche du genre sérieux, en nous peignant des hommes, et non des Rois […].” Beaumarchais, Essai sur le genre dramatique sérieux, Ibid., p.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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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관객의 선호, 새로운 장르인 드라마의 출현 등은 언어 중심의 추상적 무대 에서 구체적 이미지로 연극의 중심 축이 전환하는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고, 연출을 탄생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그 구체적 양상에 대해서 살펴보자.

2.1. 중심 축의 전환 : 소리에서 이미지로

잘 알려진 볼테르의 유명한 문구, ‘샹들리에 아래에서의 대화conversation sous un lustre’의 단조로움에서, 메르시에(Mercier)가 말했듯이 무대가 ‘응접실parloir’

로 축소되는 현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속에서, 연극의 중심 축은 언어에서 이미지 로 점차적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누가레(Nougaret)는 다음과 같이 지 적한다.

근대 드라마는 작가보다는 장식가에 달려 있고, 공연되는 행위나 문체의 우아 함보다는 배우의 연기에 의해 중요성이 결정되는 것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이 러한 사실에 대해서 사람들은 무시하지만, 무대는 화려한 장식과 하기 어려운 판 토마임으로 채워진다. On a beau dire que le mérite des drames modernes dépend plutôt du Décorateur que du Poète, plutôt du jeu du Comédien que de l’élégance du style et de l’action représentée : on se moque de pareils discours et l’on ne charge pas moins la scène de décorations éclatantes et d’une pantomime difficile à bien exécuter.”16)

화려한 장식과 판토마임이 한 작품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무대를 보다 시각적으로 생동감 있게 구성하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무대장식과 배우의 제스처 영역으로 집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언 어에서 배우의 제스처가 만드는 이미지와 무대의 시각적 장치가 만드는 이미지로 어 떻게 연극의 중심 축이 전환되는지, 어떻게 무대를 생동감 있게 활성화하려는 시도 가 전개되고, 연출 행위를 인식하게 하는 발판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2.1.1. 제스처가 만드는 시각이미지

“우리 연극에 말이 너무 많아서 결과적으로 배우들이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고 디드로는 비판했다.17) 그런데 대사가 많으면 배우가 왜 연기를 못하는 것인가?

대사를 잘 전달하는 것은 배우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배우는 단지 목소리로 텍스트 를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디드로는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시각에서 볼 때

16) M.-A. Allévy, op. cit., p. 16에서 재인용.

17) “Nous parlons trop dans nos drames et, conséquemment, nos acteurs n’y jouent pas assez.” D. Diderot, Discours sur la poésie dramatique. Entretiens sur le Fils naturel, op. cit., p.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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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론의 여지가 없지만, 18세기에 이러한 지적은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배우가 언어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텍스트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각성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고전주의에서 억제되었던 배우의 ‘몸’에 대해 비로소 의식하고, 배우의 움직임과 제스처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움직임과 제스처, 디드로는 이것을 ‘판 토마임pantomime’이라고 일컫는다. 본래 판토마임은 고대 로마인들이 대중연설에서 말 대신에 제스처로 청중을 설득하기 위해서 사용된 과장된 양식의 제스처였다. 그 러나 18세기 초부터 장터극(théâtres de la foire)에서 성행한 무언극에서 영감을 받은 디드로가 제안한 판토마임은 삶을 ‘보다 자연스럽게plus naturel’ 표현하는 제 스처이다.18) 즉,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된 각각의 제스처가 화폭을 연상시킬 만큼, 회화적 가치가 있는 몸의 표현력에 중요성을 두는데, 이는 볼테르의 관심이기도 했 다. 그는 󰡔세미라미스Sémiramis󰡕(1748) 공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예전에는 배우들이 정확하게 시구를 낭독할 줄만 알았다. 마치 음악의 거장들 이 정확하게 노래하는 것을 배웠듯이. 클레롱이 나타나기 이전에, 󰡔오레스트󰡕에서 유골단지 장면을 연기한 그녀처럼 누가 감히 연기할 수 있었을까? 누가 그렇게 인간의 본성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한 손으로 유골단지 를 들고, 다른 손은 힘없이 부동자세로 몸에 늘어뜨린 상태로, 기절하면서 넘어지 는 연기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세미라미스를 연기한 훌륭한 여배우가 무덤의 계 단에서 죽어가면서 기어가는 동안, 남자 배우 르카인이 팔이 피범벅이 된 채 니뉘 스의 무덤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러한 […] 기술의 예기치 않은 완벽성에 놀란 지 식인들은 미켈란젤로의 그림이라고 했다. 바로 여기에 진정한 연극행위가 있다.

그 이외의 것은 때로는 흥미로운 것이었을지라도 대사에 지나지 않았다. […] 있 는 그대로를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을 두렵게 할 수 있지만, 본성을 거스르는 것도 아니고, 혐오감을 주는 것도 아니다.19)

미켈란젤로의 화폭에 등장할법한 피범벅이 된 팔, 바닥에 기는 자세 등, 당시 유

18) Ibid., p. 237.

19) “On ne savait auparavant que réciter proprement des couplets, comme nos maîtres de musique apprenaient à chanter proprement. Qui aurait osé avant Mme Clairon jouer dans Oreste la scène de l’urne comme elle l’a jouée? Qui aurait imaginé de peindre ainsi la nature, de tomber évanouie tenant l’urne d’une main, en laissant descendre l’autre immobile et sans vie? Qui aurait osé, comme M. Lekain, sortir les bras ensanglantés du tombeau de Ninus, tandis que l’admirable actrice qui représentait Sémiramis, se traînait mourante sur les marches du tombeau même? Voilà ce que […] les connaisseurs étonnées de la perfection inattendue de l’art ont appelé des tableaux de Michel-Ange. C’est là en effet la véritable action théatrale. Le reste était une conversation, quelquefois passionnée. […] On peut effrayer la nature, mais non pas la révolter et la dégoûter.” P. Frantz, L’esthétique du tableau dans le théâtre du XVIIIème siècle, Puf, 1998, p.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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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배우였던 르카인(Lekain)과 클레롱(Clairon)의 과감한 제스처 묘사에서, 볼테르 가 추구한 ‘진정한 연극행위는’ 배우 몸의 표현력 자체에 있음을 엿볼 수 있다.20) 클 레롱처럼 여배우가 바닥에 기는 동작은 당시에는 무척 생소했지만, 이러한 제스처가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자연에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서, 18세기 관객이 기대한 연극에서 언어는 더 이상 충분한 소통체계가 아님을 생생 하게 표현하고 있다. 배우가 단지 등장인물의 ‘가면’을 쓰고 말을 하는 자가 아니라, 움직이는 몸이라는 인식은 커다란 변화이다. ‘지금까지 간과되었던 다른 차원의 연극 언어, 몸의 언어, 제스처, 표정, 판토마임’을21)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분절음이 아닌 언어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어떤 대단한 열정에 사로잡힌 인간을 그려내는 스펙터클에서 우리를 감동시키 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담화일까? 때로는 그렇다. 그러나 항상 우리를 감동시키 는 것은 외침, 발음이 분명치 않은 단어들, 지친 목소리, 가끔씩 새어 나가는 몇 개의 단음절들, 목구멍에서 치아 사이로 새어 나오는 무엇인지 모르는 중얼거림이 다. Qu’est-ce qui vous affecte dans le spectacle de l’homme animé de quelque grande passion? Sont-ce ses discours? Quelquefois. Mais ce qui émeut toujours, ce sont des cris, des mots inarticulés, des voix rompues, quelques monosyllabes qui s’échappent par intervalles, je ne sais quel murmure dans la gorge, entre les dents.22)

다양함 음색, 나아가 알 수 없는 소리가 전달하는 의미에 중요성이 부여되면서 배 우의 표현 영역이 확장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말 자체가 간과된 것은 아니다. 볼테르 가 제스처를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말의 비중을 줄이고자 했듯이, 디드로도 말의 비중을 상대적으로 줄이는 대신 배우의 표현력을 증가시키고 텍스트 에 무언의 연기를 첨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판토마임을 제안한다.23) 단적으로

20) 인간의 본성을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배우의 제스처에 대한 인식은 당시 성행했던 장터극에서 펼쳐졌던 무언극과 영국배우들의 사실적 연기에서 영향을 받는다.

1763년 이후 유럽을 순회 공연한 개릭Garrick의 연기, 특히 리어왕의 광기를 대사를 통 해서만이 아니라 제스처로 열연한 것에 대해서 뮈르피 Murphy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En ce moment ses regards pleins d’égarement et d’horreur, sa voix entrecoupée, ses cris épouvantables troublèrent tous les spectateurs. Des pleurs coulaient de tous les yeux, et Mademoiselle Clairon n’hésita pas à déclarer qu’avec un tel acteur, le théâtre anglais était celui où l’on devait ressentir avec le plus de force les impressions de la terreur et celles de la pitié.” A. Murphy, Mémoires sur Garrick et sur Mecklin, trad., Ponthieu, 1822, p. 170.

21) “[…] une autre dimension du langage théâtral, jusqu’alors ignorée des théoriciens de l’art dramatique : le langage du corps, le geste, la mimique, la pantomime.” C. Naugrette, op. cit., p. 149.

22) D. Diderot, Entretiens sur le Fils naturel, in M. Borie, M. de Rougemont, J.

Scherer, op. cit., p.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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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드로는 감정을 고백하는 경우를 예로 든다.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표현이 감동을 주는 것은 말 자체라기보다는, 목소리의 떨림과 상대방에 대한 시선, 그리고 고백할 때 흐르는 눈물 때문이라고 말한다.24) 이미지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관객들도 공감 할 수 있는 전위적인 사고가 18세기에 제안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때로는 말을 동 반하면서, 때로는 독자적인 언어로, 때로는 침묵을 채우거나 말을 이어가면서 판토마 임, 즉 배우의 움직임과 제스처는 더욱 사실적이고 풍부하게 감정과 의사를 전달하 는 수단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배우의 ‘몸’ 자체에 대한 중요성 인식이 어떻게 연출에 대한 의식을 초래 하는 것일까? 사랑 고백에 대한 인용문을 다시 예로 들어보자. 디드로는 눈물과 시 선이라는 들리지 않는 영역과 당신을 사랑한다는 대사를 연결시키고 있다. 제스처를 사용함으로써 의사표현에 분명함을 실어준다. 피에르 프란츠(Pierre Frantz)가 언 급한 것처럼, 디드로가 부여한 “배우의 모든 역할은 대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언어 요소를 너머 전체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다.”25) 달리 말하면, 제스처와 대사, 이미 지와 소리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인식이다. 그런데 연출은 바로 이러한 ‘연결’에 대한 사고가 아닌가? 배우가 단지 텍스트를 전달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몸’이라는 각성은 연출을 탄생시키는 촉매역할을 한다. 제스처가 만드는 시각이미지에 대한 중요성 및 시각과 청각의 긴밀한 연결에 대해서 인식하게 하기 때문이다. 비록 18세기에는 디 드로나 볼테르의 혁신적 사고가 무대양식을 개혁시키지는 못했지만, 다음 세기 ‘새로 운 예술’로 연출을 탄생시키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2.1.2. 미정스펙터클mise en spectacle

무대를 보다 생동감 있게 시각적으로 구성하려는 18세기 전반적인 경향 속에서, 한편에서는 배우의 몸을 중심으로 개혁의 시도가 있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스펙터 클에 대한 요구가 나타난다. 라모트 우다르(Lamotte-Houdar)는 “작가가 무대 장 소를 변화시키고 이야기를 행위로, 즉 스펙터클로 대체할 것을 권고한다.”26) 스펙터 클이란 어원적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스펙터클이 행위,

23) “[…] quand Diderot invite les comédiens de son temps à se faire pantomimes, c’est pour qu’ils ajoutent le jeu muet à la déclamation, pour qu’ils libèrent leur expressivité.” P. Frantz, op. cit., p. 131.

24) “[…] c’est le tremblement de voix avec lequel il fut prononcé ; les larmes, les regard qui l’accompagnèrent.” D. Diderot, Entretiens sur le Fils naturel, in M. Borie, M. de Rougemont, J. Scherer, op. cit., p. 97.

25) “Et ce rôle n’est pas tout entier dans le dialogue. Il est dans une image globale qui excède les éléments verbaux.” P. Frantz, op. cit., p. 135.

26) “Dès 1722, en effet, Lamotte-Houdar dans son Discours à l’occasion de la tragédie des Macchabées, exhortera les auteurs à changer le lieu de la scène et à remplacer les récits par l’action, c'est-à-dire, par le spectacle.” M-A.

Allévy, op. cit., pp.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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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움직임과 동일개념으로 사용된 이유가 무엇일까? 무대에서 움직이는 요소, 특히 무대장식의 시각적 변화가 있는 연극이 스펙터클한 연극이란 뜻일까? 연극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고전주의를 비판할 때 흔히 사용되는 ‘담화’ 중심의 연극은 후에 텍스트 연극이라고 불리는 문학극으로 간주되었다면, 무대의 시각적 변화가 허용되 었던 17세기에 성행한 발레극, 기계극(théâtre à machines), 그리고 18세기 관객 을 사로잡았던 오페라는 스펙터클한 극으로 불려졌다. 한쪽에서는 유흥거리로서 대 중이 즐기는 유형의 연극이 있었다면, 적어도 18세기 중엽까지 위대한 연극은 문학 이었다. ‘말하는 것이 행동하는 것이다Parler c’est Agir’라고27) 주장한 도비냑 (d’Aubignac)의 사고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시각적 변화가 허 용되지 않았던 문학극에 있어서도 스펙터클한 요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18세기 초 부터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단순히 오락적인 볼거리에 대한 요구는 아니었다.

미정스펙터클(mise en spectacle) 즉, 시각장치를 무대에 올리려는 욕구는 무대 장면의 변화에 대한 필요성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필요성은 배우의 제스처 영역의 중요성이 거론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루이 15세에 발달한 화려하고 감각적인 문화에 익숙한 관객, 영국에서 영향을 받은 복스홀(Wauxhall)같은28) 뮤 지컬에 민감했던 관객은 무대에 사건이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위로 보여지는 연극을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치는 영국연극이 프랑스에 알려지면서 가중 된다. 라플라스(La Place)가 1745-1748 사이에 번역한 󰡔영국연극Theatre Anglois󰡕은 고전주의에 대항하는 결정적인 선언문으로 간주되는데, 그는 파리에서 오페라 작품을 공연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장식의 변화가 런던에서 비극을 공연할 때 나타난다고 지적하면서, 영국에서처럼 자유로운 장소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한다.29)

그런데 18세기 프랑스에서 무대장식이 발달하기에는 고전주의 유산이외에도 실제 적인 장애가 있었다. 바로 무대에 앉아서 관람했던 관객들의 존재이다. 그런데 1759 년에 로라개(Lauraguais) 백작이 자신의 비극, 󰡔클뤼타임네스트Clytemnestre󰡕을 공연하려고 무대 좌석을 전부 사면서 무대는 비로소 배우의 공간으로 되돌아간다.

18세기 중엽의 이러한 변화는 중요한 연극사건이다. 스펙터클에 대한 요구가 실현될

27) H. d’Aubignac, La pratique du théâtre, in M. Borie, M. de Rougemont, J.

Scherer, op. cit., p. 66.

28) “Après 1760, là se trouve une des motivations essentielles et du public et du pouvoir. Le gouvernement favorise non seulement l’implantation des petits théâtres aux boulevards et au Palais-Royal, mais aussi le développement de vastes lieux de plaisir du type Wauxhall.” H. Lagrave, “Privilèges et libertés,”

in Le Théâtre en France, vol. 1., op. cit., p. 245.

29) “La préface consacrée par P. A. de La Place à la traduction de son Théâtre Anglois (1745-1748), se révélera alors comme un manifeste décisif contre les prescriptions classiques. […] Et La Place insistera vivement sur l’utilité de fréquents changements de décorations, à la manière anglaise. Il faut, écrira-t-il, plus de décorations différentes pour jouer certaines tragédies à Londres qu’il n’en faut à Paris pour jouer certains opéras.” M-A. Allévy, La Mise en scène en France…, op. cit., pp.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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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비로소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스스로를 드러냈던 또 다른 ‘배우들’, 관객들의 출현으로 인해 초래된 악영향을 로라개 백작에게 보내는 볼테르의 감사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극은 대부분 5막으로 된 긴 대사였다. 화려한 스펙터클은 잘 설정만 된다면 비극의 가장 큰 원동력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위대하고 공포를 주는 행위들, 자 극적인 장면들을 어떻게 감히 시도할 수 있을까? 어떻게 무대로 피 흘리는 세자 르의 몸을 가져올 수 있을까? 어떻게 이성을 잃은 여왕이 남편이 있는 무덤으로 들어갔다가, 아들의 손에 이끌린 채 죽어 가는 상태로 무덤에서 나오게 할 수 있 을까? 무대에 앉아 있는 관객들이 이 모자(母子)와 무덤을 가리고 있어서 스펙터 클의 공포를 우스꽝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끔찍한 결점에서 무대가 정화되 었는데, 그것은 당신의 유일한 선행덕분이다.30)

넓어진 무대로 자유로운 배우의 움직임은 물론 다양한 장치의 변화가 가능하게 된 다. 무대 위의 관객 출현이 끼친 악영향은 무엇보다도 배우의 제스처와 무대장치를 우스꽝스럽게 만든 점에 있다. 스펙터클에 대한 요구는 관객이 무대의 사건을 믿고 몰입할 수 있는 환영에 대한 요구이다. 볼테르의 󰡔비극론Dissertation sur la tragédie󰡕에서 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내가 연극의 행위에 대해서 말할 때, 장치기구, 의식, 관객들의 모임, 극 행위에 필요한 사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화려하기보다는 유치하고 덧없는 스 펙터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과 청각에 감동을 줄 수 없을 때, 시각 적으로 즐기게 하고 작가의 비창조성을 보충하는 무대장식가의 표현수단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Au reste, quand je parle d’une action théâtrale, je parle d’un appareil, d’une cérémonie, d’une assemblée, d’un événement nécessaire à la pièce, et non pas de ces vains spectacles plus puérils que pompeux, de ces ressources du décorateur qui suppléent à la stérilité du poète, et qui amusent les yeux quand on ne sait pas parler à l’oreille et à l’âme.31)

30) “[…] Les tragédies étaient souvent de longues conversations en cinq actes.

Comment hasarder ces spectacles pompeux, ces tableaux frappants, ces actions grandes et terribles, qui, bien ménagées, sont un des plus grands ressorts de la tragédie ; comment apporter le corps de César sanglant sur la scène ; comment faire descendre une reine éperdue dans le tombeau de son époux, et l’en faire sortir mourante de la main de son fils, au milieu d’une foule qui cache et le tombeau, et le fils, et la mère, et qui énerve la terreur du spectacle par le contraste du ridicule? C’est de ce défaut monstrueux que vos seuls bienfaits ont purgé la scène […].” P. Frantz, op. cit., p. 47.

31) P. Peyronnet, La Mise en scène au XVIIIème siècle, Librairie A.-G. Nizet, 1974, pp. 98-99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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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볼테르는 작품의 품격을 받쳐줄 수 있는 시각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시각에 호소하는 것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적절한 시각장치로 부추겨주면, 더 감동적이고 숭고하게 표현되리라고 확신한다. 감히 말 하자면, 영혼과 눈을 동시에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Je sais bien que ce n’est pas un grand mérite de parler aux yeux ; mais j’ose être sûr que le sublime et le touchant portent un coup sensible quand ils sont soutenus d’un appareil convenable et qu’il faut frapper l’âme et les yeux à la fois.32)

앞서 디드로의 제스처 이론에서 살펴보았듯이, 영혼과 시선을 동시에 자극하는 것, 청각과 시각을 조화시키는 것은 18세기에 제시된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시각 에 호소하는 것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는 고백을 통해서 당시 팽배해 있던 시각에 대한 관례적인 경계를 읽을 수 있다.

화려한 무대요소로 시각을 자극하고자 할수록 훌륭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필요 성이 가중된다. 그렇지 않다면 비극작가가 아니라 단지 무대장식가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Plus on veut frapper les yeux par un appareil éclatant, plus on s’impose la nécessité de dire de grandes choses ; autrement on ne serait qu’un décorateur, et non un poète tragique.33)

대사 위주의 단조로운 극에서 벗어나고자 하면서 스펙터클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볼거리에 의해 단순한 오락거리로 연극이 ‘전락’하는 것을 두려워 한 볼테르의 이중 적 입장에서 시각에 던져진 경계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연출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연극의 중심 축이 이동해야 했고, 그 러기 위해서는 이미지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어야 했다. 오랫동안 무시되었던 스펙 터클의 중요성 및 언어와 이미지의 상호보완관계가 거론된 18세기, 전통과 개혁 사 이에 위치한 18세기는 시각장치가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하는 19세기로 이어지는 중 요한 건널목의 역할을 한다.

2.2. 따블로tableau 또는 연결의식

무대 위의 등장인물들의 배치가 매우 자연스럽고 사실적이어서 화폭에 그대로 옮겼을 때 회화적 가치가 있는 장면이 따블로이다. Une disposition de ces

32) J. de Jomaron (sous la direction de), Le Théâtre en France, vol. 1., op. cit., p. 385에서 재인용.

33) Voltaire, Discours sur la tragédie, in M. Borie, M. de Rougemont, J. Scherer, op. cit., p.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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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nags sur la scène, si naturelle et si vraie, que rendue fidèlement par une peinture, elle me plairait sur la toile, est un tableau.34)

미술비평가로 활동한 디드로는 회화의 용어를 빌어서 연극개념을 만든다. 본래 미 술, 묘사, 화폭을 의미하는 따블로는, 디드로의 정의에 의하면, 무대의 장면이 화폭 에 옮겨졌을 때 ‘회화적 가치가 있는 장면’을 말한다. 그런데 어떤 기준으로 회화적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위의 정의에서 판단의 잣대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매우 자연스럽고 매우 사실적인si naturelle et si vraie’ 배치이다. 여기서 두 가 지 중요한 사실이 나타나는데, 삶을 무대에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와, 이 러한 의도에 걸 맞는 등장인물들의 ‘배치’, 즉 연결에 대한 의식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보다 자연스럽게 무대를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1750 년대 유행한 화폭의 경향, 미카엘 프리드(Michael Fried)가 일컬은 ‘흡수미학 esthétique de l’absorbement’에 영향을 받는다.35) 대표적 화가 그뢰즈(Greuze, 1725-1805)의 󰡔벌받은 아들Le Fils puni󰡕은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시선 처리와 표현적인 자세가 특징으로, 보는 이는 화폭 속으로 빨려든다. 디드로가 무대에 그려 내고자 했던 것은 관객을 무대의 세계로 흡수시킬 만큼 사실적이고 강렬한 무대 구 성이다.

드라마의 서술적 구조의 한 순간, 등장인물들의 감정상태가 강렬하게 표현되어 서 매우 사실적이고,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세상이 화폭 위에 만들어진다.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세계 속으로 관객은 스스로를 잊고 완전히 빠져든다. […] en ce que l’intensité des états émotionnels des personnages, exprimée dans l’instantanéité d’une structure narrative dramatique, conduit à la constitution sur la toile d’un monde tellement vrai, indépendant et autonome que le spectateur s’oublie lui-même pour s’immerger totalemnt dans l’univers des personnages.36)

‘드라마의 서술적 구조’의 한 순간 만들어지는 따블로… 무대에 전개되는 한 장면 을 관객이 포착해서 그것을 화폭에 옮겼을 때 가치 있는 장면, 따블로는 순간의 미 학이다. 잘 배치되고 감동을 주는 장면을 마치 오늘날 카메라가 포착하듯이, 무대는 매 순간 강렬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따블로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고 디드로는 주장하 고 있다. 이러한 따블로에서 핵심요소는 배우의 제스처, 각 등장인물이 만드는 복합 장면(scènes composées)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말을 하고 있을 때, 경청하고 있는 인물들을 보여준다든지, 누군가가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을 때, 같은 장소에서

34) D. Diderot, Discours sur la poésie dramatique. Entretiens sur le Fils naturel, op. cit., p. 69.

35) C. Naugrette, op. cit., p. 157 참조.

36)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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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을 하고 있거나, 다른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무대가 담아내야 한다고 말한다.37) 이처럼 동시에 발생하는 장면들을 포착하려는 의도는 삶 의 복잡한 양상을 보다 잘 표현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바로 이러한 의도에서 ‘제 4 의 벽’ 개념이 앙뚜안보다 150여 년 앞서 제시된 점은 놀라운 일이다.38) 한편, 무 대에 사실적인 장소 재현의 중요성을 피력하면서, 디드로는 다시 한번 회화와 비교 한다. 화폭에는 우리와 친근한 일상의 장면, 예를 들면 그뢰즈가 즐겨 그렸듯이 농부 들이 일하는 장면이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그릴 수 있고 이에 대해서 어느 누 구도 반기를 들지 않는데, 무대에서는 왜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제 시한다.

누가 감히 무대 위에 짚을 깔고 신생아를 내보이려 하겠습니까? 작가가 무대에 요람을 놔두면, 일반석의 어떤 경솔한 이는 때를 놓치지 않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흉내낼 것입니다. 그러면 특별석에서는 웃음이 터지고, 작품은 실패로 끝납니다.

오 즐겁고, 가벼운 민중이여! 그대들은 예술에 어떤 경계를 그려 놓습니까! 예술 가들에게 어떤 제약을 가합니까! 섬세함 때문에 얼마나 큰 즐거움을 빼앗기고 있 습니까! 무대 위에서 기쁨을 주고, 회화에서 감동을 주는 유일한 것들에 휘파람을 불어 야유를 보낼 것입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을 스펙터클로 만들고자 하지만, 당신들의 편견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불행합 니다!39)

무대를 일상으로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현실과 연극의 거리를 줄이고자 하는 의도 이다. 또한 한 화가의 화폭이 색깔, 크기, 배치 등 여러 요소의 구성에 의해 만들어

37) “J’appelle des scènes composées où plusieurs personnes sont occupées à une chose, tandis que d’autres personnes sont à une chose différente ou la même chose, mais à part.” D. Dideort, Discours sur la poésie dramatique, op. cit., p. 219.

38) “Soit donc que vous composiez, soit que vous jouiez, ne pensez non plus au spectateur qu’il n'existait pas. Imaginez sur le bord du théâtre un grand mur qui vous sépare du parterre. Jouez comme si la toile ne se levait pas.” Ibid., p. 201.

39) “Qui oserait, parmi nous, étendre de la paille sur la scène, et y exposer un enfant nouveau-né ? Si le poète y plaçait un berceau, quelque étourdi du parterre ne manquerait pas de contrefaire les cris de l’enfant ; les loges et l’amphithéâtre de rire, et la pièce de tomber. O peuple plaisant et léger!

Quelles bornes vous donnez à l’art! Quelle contrainte vous imposez à vos artistes et de quels plaisirs votre délicatesse vous prive! A tout moment vous siffleriez sur la scène les seuls choses qui vous plairaient, qui vous toucheraient en peinture. Malheur à l’homme né avec du génie, qui tentera quelque spectacle qui est dans la nature, mais qui n’est pas dans vos préjugés!” D. Diderot, Entretiens sur le Fils naturel, in M. Borie, M. de Rougemont, J. Scherer, op. cit., pp. 1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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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듯이, 무대의 따블로 개념은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제스처의 배치뿐만 아니라 짚이 나 요람처럼 구체적 오브제, 자연스런 어법 등 모든 무대요소의 연결에 대한 의식에 서 비롯된다.

의식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발견했을 때 주목하게 되는 일종의 통일성을 우리는 모색한다. 통일성에 의해서 의상, 어조, 제스처, 조화가 형성된다. Il y a une sorte d’unité qu’on cherche sans s’en apercevoir et à laquelle on se fixe, quand on l’a trouvée. Cette unité ordonne des vêtements, du ton, du geste, de la convenance.40)

배우가 만드는 시각이미지와 무대장면의 다양성에 대한 주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소리와 이미지의 연결의식은, 18세기 사람들이 아직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현대 연출의 중요 문제이다. 또한 무대요소들의 조화로 만들어지는 따블로 개념은 무대화 의 핵심 문제이다. 물론 디드로는 연출이라는 용어로 사고를 전개하지 않았다. 그러 나 동시적인 복합장면에서 나타나야 하는 통일성을 강조함으로써 19세기 말 앙뚜안 에 의해 주장되는 앙상블 개념을 이미 언급하고 있다. 다만, ‘의상, 어조, 제스처’의 통일성을 언급한 사실에서 엿볼 수 있듯이, 연극공간보다는 배우/등장인물이 만들어 내는 통일성을 상대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한 실제무대 개혁까지 미치지 못하고 이 론적인 제안으로 그친 한계가 있다. 그러나 18세기에 배우의 몸이 만드는 시각이미 지, 다양한 무대장면의 필요성, 대사와 이미지의 연결의식 및 관객을 무대에 흡수시 키고,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배우의 제스처를 중심으로 다른 요소들이 서로 연결된 ‘따블로’를 창조해야 한다는 의식이 나타난 의의이다. 바로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서 19세기에 마침내 ‘새로운 예술’, 연출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3. 연출, 아르 누보art nouveau?

19세기 연극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 사건을 알레비는 연출과 연출가, 새로운 예술과 새로운 기능의 탄생으로 보고 있다.41) 그렇다면 연출이 ‘아르 누보’로 등장하 는데 낭만주의는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1820년대 관객을 사로잡았던 연출은 진정 새로운 예술이었을까? 아니, 어떤 점에서 새로운 예술이었을까? 베르나르 도르트는

「연출, 아르 누보? La mise en scène, art nouveau?」에서 근대 연출가의 대부인 앙뚜안 이전의 연출을 ‘연출’이라고 하는 것은 ‘용어의 남용abus de langage’이라고

40) Diderot, Entretiens sur le Fils naturel, op. cit., p. 100.

41) “C’est d’une part, la naissance de ce nouvel art qui, peu à peu, a conquis une place dans le monde théâtral et une désignation dans le langage : la mise en scène ; d’autre part, la création d’une nouvelle fonction dans l’art dramatique : celle du metteur en scène.” M.-A. Allévy, op. cit., p. 175.

(18)

지적하고 있다.42) “연출은 지금 막 탄생하였다”고 한 앙뚜안의 발언을 상기시키는 주 장이다. 알레비는 연출가의 기능이 연출의 등장과 함께 나타났다고 보았지만, 도르트 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프랑스에서 연출가의 공식적 등장을 19세기 후반, 앙뚜안에서부터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충되는 관점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연출의 탄생 이후 연출가가 등장하는가? 아니면 연출가의 독립된 역할에 의해 서 연출은 비로소 새로운 예술로 탄생하는가? 그런데 과연 ‘언제, 누구에 의해 연출 이 탄생하였는가’라는 문제가 중요할까? 연극의 역사만큼 무대의 역사가 있었고, 이 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무대화 작업’은 늘 있어왔다. 따라서 중요한 문제는 어떤 개념 으로, 어떤 상황에서 연출이 ‘새롭게’ 탄생하였는지에 대한 분석일 것이다. 낭만주의 에서 자연주의로 흐르는 미학의 흐름 속에서, 연출은 어떻게 인식되고 또 재인식되 는지, 탄생과 재탄생 속에서 발견되는 연출의 개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3.1. 낭만주의 무대와 연출

코메디 프랑세즈를 55일간 열광과 논쟁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에르나니Hernani󰡕

(1830) 공연에 대해서 반대․찬성파 모두 한결같이 인정하는 요소는 연출이었다.43) 18세기에 연출에 대한 의식 없이 연출의 중요문제가 다루어졌다면, 19세기에 오늘 날 익숙한 ‘미정센’ 용어가 등장하고, 비평의 잣대로 사용된다. 그런데 연출용어의 등 장은 낭만주의 미학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크롬웰 서문Préface de Cromwell󰡕(1827)의 유명한 문구를 인용해보자.

시스템, 시학, 이론을 깨뜨리자. 예술의 벽을 가리는 낡은 석고를 허물자. 규 칙도 모델도 없다. Mettons le marteau dans les théories, les poétiques et les systèmes. Jetons bas ce vieux plâtrage qui masque la façade de l’art ! Il n’y a ni règles ni modèles.44)

낭만주의는 규칙과 시스템에 반대하는 예술의 자유이다. […] c’est la liberté de l’art contre le despotisme des systèmes, des cordes et des règles.45)

고전주의가 시간과 장소의 일치로 작품의 틀을 규정했다면, 낭만주의는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고자 한다. “24시간 안에, 그리고 한 대기실 안에 강제로 사건의 진 행을 끼워 맞추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라고 위고는 비판한다.46) 그렇다면 이

42) B. Dort, Théâtre public. Essais de critique 1953-1966, Paris, Le Seuil, 1967, pp. 280-281 참조.

43) “Si le nouveau drame devait être decrié du point de vue litteraire, la mise en scène fut louée de tous et partout.” M.-A. Allévy, op. cit., p. 96.

44) V. Hugo, “Préface de Cromwell,” in Cromwell, Garnier-Flammarion, 1968, p.

88.

45) Ibid., p. 98.

46) “L’action, encadrée de force dans les vingt-quatre heures, est aussi ridicule

(19)

러한 인위적 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한 궁극적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보다 자연 스럽고, 보다 사실적으로 ‘자연의 보편적 법칙’, 즉 인간본성의 정수를 그려내기 위해 서이다.47) 보다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인간을 그려내기 위해서 당연히 요구되는 것 은 등장인물이 위치한 시대와 장소의 구체성 및 그 변화의 자유이다. 특히 19세기 나타나는 역사의식에 의해서, 연극은 역사적 현실 속의 인간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혁명이후 등장한 자아의 권리문제는 낭만주의에서 ‘사실임직함’과 ‘예법bienséance’에 의해 통제 받지 않는 자아, 감정표현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자아로 나타난다. 따라서 알렉상드르 시구에서 자유로워지고, 일상을 환기시키는 단어의 사용 등, 보다 자연스 러운 표현어법이 희곡에 사용된다. 텍스트의 무대화 작업 또한 사실적이고 구체적으 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고전주의를 비판하면서 위고는 “움직이는 손은 다른 곳에 있는데, 팔꿈치만 무대가 더 이상 보여줄 수는 없다”는 유명한 문구를 남겼다.48) 움 직이는 대로 따라오는 팔꿈치, 즉 행위의 결과만 이야기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움 직이는 손, 즉 행위 그 자체를 연극이 전부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야기로만 사건의 진행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전개되는 시공간의 변화 및 의상의 사실성 등이 구체적으로 무대에 ‘묘사’되어야 한다. “자연과 진실의 이름으로 모든 방법들을 동원해서 무대의 환영을 최대로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49)

낭만주의의 핵심 개념인 자유는 고전주의 양식을 벗어나서, 무대가 환영을 창출하 는 공간으로 전환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임의의 궁전’처럼 중성적인 빈 공 간이 아니라, 무대를 채우고자 하는 욕구와 함께, 알레비가 지적한 것처럼, “낭만주 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차적으로 무대작업 그 자체가 주목받을만한 독립된 예술로 간주된다.”50) 따라서 19세기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기술영역이 연극사의 중요한 장으로 떠오르게 되는데, 이러한 역사적인 전환점에서 미정센에 대한 의식이 촉구되 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연출은 ‘구체적인 도구’로 무대에 형상화되는 작업이기

qu’encadrée dans un vestibule.” Ibid., p. 83.

47) “모든 예술을 지배하는 자연의 보편적 법칙이외의 다른 규칙은 없다(Il n’y a d’autres règles que les lois générales de la nautre, qui planent sur l’art tout entier)고 위고는 표명했다.(Ibid, p. 88) 낭만주의자들의 영감을 받은 작가 중에서 세익스피어는 자유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위고는 세익스피어가 프랑스 세 명의 위대한 작가-꼬르네이유, 몰리에르, 보마르쉐-를 합친 것과 같다고 말한다. “[…] Shakespeare, ce dieu du théâtre, en qui semblent réunis comme une trinité, les trois grands génies caractéristiques de notre scène : Corneille, Molière, Beaumarchais.” Ibid, p.

81.

48) “Nous ne voyons en quelque sorte sur le théâtre que les coudes de l’action ; ses mains sont ailleurs.” V. Hugo, “Preface de Cromwell,” op. cit., p. 82.

49) “Au nom de la nature et de la vérité : tous les moyens doivent être mis en oeuvre pour atteindre le maximum d’illusion scénique.” M.-A. Allévy, op. cit., p. 82.

50) […] les temps romantiques nous ont appris à considérer peu à peu l’exécution scénique comme un art en soi, méritant une attention particulière”. Ibid., p.

176.

(20)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출은 어떤 개념으로 정의되었을까? 1835년 󰡔연극세계le Monde dramatique󰡕에 실린 다음 글을 인용해보자.

극장에서 우리가 연습을 시작할 때부터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연출이다. 연 출은 상연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관객은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 겪어 야 하는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연출은 하나의 직업이고, 따라서 진정 한 예술, 매우 어려운 예술이다. Dès que l’on va répéter sur le théâtre, la première besogne est la mise en scène. La mise en scène est la partie la plus délicate de la représentation. Le public ne peut se rendre compte des difficultés qu’il a fallu surmonter pour mettre une pièce en scène, C’est un métier, c’est un art que cela et c’est un art très difficile.51)

실제적 활동이면서 “어려운 예술… 당시에 모든 사람들은 연출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지만 정의를 명확히 내리지 않았다.”52) 그런데 야릇하게도 장식과 의상의 총 체개념으로 연출이 간주되기도 한다. 󰡔에르나니󰡕공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평을 쉽 게 읽을 수 있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연출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장식과 의상만으로도 충분하다. Décorations, costumes, ce qu’on appelle la mise en scène, suffiraient pour piquer la curiosité publique. (Le Courrier Français, 1/3/1830)53)

연출의 정의가 명확히 내려지지 않았던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만큼 연 출이 ‘아르 누보’로 비춰졌기 때문일 것일까? 특히 장식과 의상이 시각적 충격을 주 었기 때문에, 이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된 것일까? 적어도 유추할 수 있는 점은 19 세기에 무대의 시각요소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사실이다. 그런데 단지 기술적인 성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낭만주의가 추구한 ‘정확한 지역색’ 개념의 결과적 현상이 기 때문이다.54)

자연과 진실의 이름으로 무대장식은 이제부터 지역색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했

51) Ibid., p. 137에서 재인용.

52) “Ainsi, le terme ‘mise en scène’ […] était un ‘art difficile’ dont tout le monde commencait à parler, sans nettement le définir.” M.-A. Allévy, op. cit., p.

137.

53) Ibid., p. 96에서 재인용.

54) “On commence à comprendre de nos jours que la localité exacte est un des premiers éléments de la réalité.” V. Hugo, op. cit., p.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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