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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문서에서 연출의 탄생* (페이지 32-40)

연출이라는 용어는 오늘날 익숙한 개념이다. ‘봄꽃 연출 레슨’, ‘헤어 메이크업 연 출’, ‘나만의 미정센’ 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연극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서 자주 사용되는데, 모두 개성과 독창성을 함축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연출은 개별 적인 창조적 행위가 아니었다. 연극의 시작과 더불어 연출의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연출예술의 역사는, 자율적 의미로 연출이 거듭난 것은 불과 100여 년 남짓하다.

연출예술의 역사가 짧은 점을 통해서 언어와 이미지의 오랜 갈등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시청각 요소의 총체적 작업인 연출이 하나의 예술로서 자리잡기까지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고, 쉽게 연극제반을 지배하지 못했다. 무대보다는 쓰여진 작품 자 체에 우위를 두었던 프랑스 문화풍토에서 무대화 작업에 대한 의식은 점진적으로 형 성될 수밖에 없었고, 천박하고 불필요하다고 간주된 스펙터클-시각요소에 던져진 운 명의 장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8세기에 고전주의에 대한 회의와 더불 어, 무대의 구체성을 통해서, 배우의 제스처를 통해서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없었다면, 낭만주의와 더불어 시각이미지가 발달하지 않았다면, 미정센에 대 한 의식은 19세기 초에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시각이미지, 특히 무대장식의 역할상승과 연출의 탄생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820년대 연출과 거의 같은 개념으로 간주된 무대장식은 19세기 내내 많은 발전을 한다. 단지 기술적인 발달만이 아니라, 낭만주의에서 극 행위를 받쳐주는 증인의 역

outrecuidance du cabotin, le jeu en profondeur, au-dessus des mots et au-dessus du texte, il a mis en place les sentiments et les idées.” M.

Surel-Tupin, Charles Dullin, Louvain-la Neuve, Cahiers Théâtre Louvain, 1985, p. 123에서 재인용.

할, 자연주의에서는 인간의 성격과 행동을 결정시키는 환경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 렇게 장식이 기술적․미학적 측면에서 발달하면서, 그 동안 지배적이었던 대사 중심 의 연극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무대장식에 부여된 역할상승과 함께 태어나는 연 출… 이는 연출이 공간예술이라는 점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그런데 연출은 여러 번 거듭 났다. 오랫동안 무의식적 연출이 있었는가 하면, 미 정센 용어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예술로 태어나고, 다시 앙뚜안과 함께 해석개념으로 재탄생한다. 연출의 거듭나기는 연결의식에서 비롯된다. 판토마임 개념을 통해 나타 나는 제스처와 말의 보완관계, 무대요소들의 연결에 대한 사고인 따블로 개념, 사건 과 행위 및 장소와 등장인물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인식, 나아가 환경과 보이지 않 는 등장인물의 심리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자각과 함께, 연출은 탄생과 재탄생을 거 듭한다. 언어와 이미지, 청각과 시각의 연결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 에 대한 사고로 발전하면서, 연출은 쓰여진 작품을 그대로 무대에 이동시키는 개념 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해석의 개념으로 발돋음한다. 20세기가 ‘연출가의 시대’가 된 것은 아마도 오랫동안 뜸을 들이면서 연출이 자율적 예술로 탄생했기 때 문일 것이다.

연출의 거듭나기는 18세기 중엽 이후 환영을 창조하려는 경향이 가속화되는 연극 미학의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 무대와 현실의 격차를 최대한 줄이고, 무대 위에 현실 을 ‘그대로’ 담으려고 한 점진적인 시도에서 무대는 보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채 워지고, 이러한 모든 요소들을 총괄하는 작업이 필요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자 연주의에 이르러 연출이 물질영역이면서 ‘비물질’ 영역으로 간주되고, 작가와 독립된 연출가가 등장한 것은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한편, 해석개념으로 거듭 난 연출은 연 출사의 관점에서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연주의 연출이 무대의 구체적이고 사 실적인 물질성을 통해서 해석을 유도한다면, 뤼네-뽀는 암시와 모호함을 통해서 무 대의 물질성을 가능한 희석시키면서 상징성을 부각시킨다. 흥미로운 사실은 19세기 말에 공존한 대립적인 연출문법이 20세기 내내 발전한 사실이다. 한쪽에서는 사실성 을, 다른 한쪽에서는 상징성을 극대화하면서, 그 사이의 여러 흐름이 20세기에 심화 된 것은 연출의 탄생과 더불어 예고된 사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앙뚜안의 충만한 무대와 뤼네-뽀의 헐벗은 무대가 서로 대립적인 방향이기 는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연출에 대한 의식이 없었던 시절, 미정센은 소리로 무대를 채우는 작업이었다. 연출용어가 등장하면서 연출이 시각화를 의미했다면, 19세기 말 에 연출은 의미를 올리는 작업으로 다시 태어난다. 단지 텍스트를 무대로 옮기는 작 업이 아니라, 관객이 의미를 파악하도록 유도하는 창조적이고 개인적인 해석으로 거 듭난다. 메이어홀드(Meyerhold)가 사실주의를 비판하면서 관객을 ‘제 4의 창조자 quatrième créateur’로 간주해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 사실주의 무대는 상징주의와 마찬가지로 관객이 해석하도록 유도한다.88) 20세기에 이르러서 관객의 위상에 대한

88) 앙뚜안은 ‘쏟아진 커피잔’ 같이 작은 소품이 소품으로 그치지 않고 관객에게 읽을 거리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Un crayon retourné, une tasse renversée seront aussi

문제가 거론되고, 관객을 참여시키는 많은 유형의 연극공연이 있었는데, 이는 미정센 (mise en scene)이 해석개념으로 거듭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연출의 탄생과 함께 나타난 화두는 텍스트와 무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 다. 앙뚜안느가 연출이 ‘비물질’ 영역이라고 했을 때 텍스트를 임의로 수정해야 한다 는 언급은 없었다. 또한 전혀 생각 밖의 일이었을 것이다. 19세기 말 연출이 해석의 영역으로 거듭나면서, 연출가에 따라서 텍스트가 시청각적 이미지로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텍스트 자체의 의미를 변형,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19세기에 연출을 반대하는 이들은 무대의 장식적 요소가 작품을 듣는 것을 방해한다고 생각했지, 작품의 의미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생각은 하지 못 했다.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예술로 연출이 태어나면서 텍스트에 쓰여진 것을 연출가 의 해석으로 무대화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적어도 앙뚜안과 뤼네-뽀에 있어 서 연출가는 관객이 텍스트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연 출은 당연히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지, 텍스트에 대립에서 새로운 무엇을 보 여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텍스트는 어떤 고정불변의 진실을 가지 고 있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모든 연극 테스트는 위베르스펠트(Ubersfled)의 표현 처럼 ‘구멍난 텍스트texte troué’이고89), 이 뚫린 여백을 연출가의 시선에 따라 ‘다 르게’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이 언어와 논리성에 대한 불신과 함께 이차세계대전 이후 나타나면서, 해석 연출은 또 한번 변신하기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작품의 의미가 연출가에 따라서 아주 다르게 읽힐 수 있고, 텍스트 자체가 해체될 수 있다 는 가능성이 인식된다.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잘 알려진 연출의 두 가지 대립적 입 장이 나타난다. 한편에서는 ‘연극의 스승이 작가’라고 말하면서,90) 연출가들은 작가 의 시녀라고 자칭하고, 한편에서는 연출의 완전한 자율성을 주장한다. 장-루이 바로 (Jean-Louis Barrault)가 “비극을 무대 위에 생생하게 표현해야 하는 자들은 판사 도, 증인도, 비평가도 아니고, 봉사자이다. 필요한 경우 변호사이기도 하다”라고91) 언급한 데에 맞서, 로제 플랑숑(Roger Planchon)은 “우리는 변호사이고 작품의 봉 사자이지만, 동시에 판사이고, 증인이고 비평가이다”라고 말했다.92) 즉 무대예술의

significatifs, d’un effet aussi certain sur l’esprit du spectateur que les exagérations grandiloquentes du théâtre romantique.” J. de Jomaron (sous la direction de), Le Théâtre en France, vol. 2, op. cit., p. 202에서 재인용.

89) A. Ubersfeld, L’Ecole du spectateur (Lire le théâtre II), Editions Belin, 1996 [1981], pp. 10-18 참조.

90) “Le maître du théâtre, c’est l’auteur. Tous les autres rouages ne sont là qu’en fonction de cette force créatrice.” Ch. Dullin, Ce sont les dieux qu’il nous faut, Paris, Gallimard, 1969, p. 39.

91) “Ceux qui sur une scène sont chargés de faire vivre la tragédie ne sont ni juges, ni témoins, ni critiques mais serviteurs et dans le cas échéant, avocats.” E. Copfermann Théâtres de Roger Planchon, Paris, UGE, 10/18, 1977, p. 360에서 재인용.

92) “C’est exact, nous sommes avocats et serviteurs des oeuvres mais tout en étant, et dans le même temps, et juges, et témoins et critiques.” E. Copfermann,

자율성을 주장한다.

희곡이 무대에 오르게 될 때, 작가의 임무는 끝나고 다른 사람에 의해서 스펙 터클로 변할 것이다. 내가 작가의 위치를 축소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무대예술의 절대적인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다. Mais lorsqu’elle arrive sur le plateau, la mission de l’écrivain est terminée, c’est par un autre que la pièce se transformera en spectacle. […] Je ne diminue pas la place de l’auteur, je défends seulement l’indépendance absolue de l’art scénique.93)

연출의 자율성을 주장하면서 나타난 ‘창조적 연출’과, 작가정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과 더불어 형성된 ‘해석적 연출’ ….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창조적 연출과 해석적 연출의 구분은 매우 인위적이지만, 이러한 갈래가 형성된 배경은 주목할 만하다. 오 랜 뜸을 들이면서, 성장한 연출이 해석의 영역으로 들어서면서, 빠른 속도로 텍스트 자체에 있어서 독립성을 획득하고자 한 움직임의 결과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한편, 전이개념에서 해석개념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연출은 텍스트와 무대, 작가와 연출가 의 역동적인 갈등 속에서 성장한다. 등장인물과 배우, 텍스트와 무대, 문학과 예술, 허구와 사실 등, 이중성에 바탕을 주고 있는 연극의 정체성이 연출의 탄생과 더불어 인식된 점은 커다란 의의일 것이다. 텍스트에서 무대로 ‘그대로’ 이동되는 무의식적인 전이개념에서, 텍스트와 무대 사이의 간격을 인식하면서 성장한 연출, 쓰여진 활자를 들리게 하는데서 20세기에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리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 게 하는 비물질적 영역으로 거듭난 연출… 그런데 연출의 탄생과 재탄생 속에서 발 견되는 현대연출의 개념은 무엇일까? 해석에서 해체로, 해체에서 다시 해석으로 돌 아오는 등, 텍스트와 무대의 관계가 유동적이고, 텍스트의 위상이 오늘날 매우 축소 된 것이 사실이지만, 연출은 여전히 ‘물질과 비물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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