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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범죄소설의 관점에서 본 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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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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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범죄소설의 관점에서 본 김용(金庸)의

소오강호(笑傲江湖)

안금영*1)

Ⅰ. 서론

Ⅱ. 스페인 범죄소설의 변화과정 1. 탐정소설

2. 탐정소설에서 노벨라 네그라

Ⅲ. 김용의 소오강호와 스페인 범죄소설 1. 탐정소설의 관점에서 본 소오강호

2. 노벨라 네그라의 관점에서 본 소오강호

Ⅳ. 결론

◁ 목차 ▷

* 선문대학교 외국어자율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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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Smiling, Proud Wanderer by Jin Yong Seen from the Perspectives of Spanish Crime

Novels

An, Gumyoung

The narrative structure of martial arts novels is characterized by a romance between man and woman entangled in the process of resentment and revenge. The process invariably encompasses supernatural martial arts as a key to resolving the issues in question, which is represented by violence, suspense, and mystery as driving forces behind the narrative. To the extent that the plot of a martial arts novel mainly begins with homicide and the rest is the process of getting out of the fear and tension, they are analogous to the crime stories of the West. The thesis is an attempt at comparative analysis on

The smiling, proud wanderer

by Jin Yong, a representative writer of Chinese martial arts novels from the perspectives of

El clavo

by Alarcón, considered to belong to the genre of a detective novel among the Spanish crime novels and

Los mares del sur

by Montalbán, a representative writer of novela negra. In the sense that

the smiling

proud wanderer

is more like a detective story characterized by sense of fear of the crime, mystery, logical resolution, and the recovery of peace after the resolution, but the violence and the resolution of the crime is used as tools to raise a new issue rather than the conclusion of the narrative, it is akin to novela neg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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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s

Jin Yong, The Smiling, Proud Wanderer, Spanish crime novel,Los mares del sur, Montalbán

I. 서론

홍콩 위지문(尉遲文)의 『검해고홍』(劍海孤鴻)을 김광주가 번역하여

『정협지』(情俠誌)라는 이름으로 1961년 6월 15일부터 경향신문에 연재 하면서 한국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된 중국 무협소설은 곧 동아일보, 조 선일보 등에서도 여러 작품들이 소개되면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조성면, 2009: 210). 이후 여러 작가들의 단행본들이 출간되면서 70년대 한국 대 중들의 일반 독서목록에 자리 잡았고, 김용(金庸)의 『사조영웅전』(射鵰 英雄傳)이 번역되어 『영웅문』(英雄門)으로 출간된 1986년 무렵에는 한 국의 오락적 대중문학의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홍콩과 대만에서 한국, 일본, 동남아 등지로 퍼져나간 이 무협소설은 당시 하나의 사회현상이었 는데, 철학, 종교, 한자 등을 수천 년 동안 공유해온 문화적 배경에서 호 환성을 보여주는 장르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서양 공통적으로 소설은 시문학에 비해 늦게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 았다. 서양에서 『돈키호테』 이전까지 소설은 하위 장르로서 품위 있는 문학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고, 중국에서는 ‘5.4 문화혁명’ 이후에서야 사 실적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 장르가 문학의 범주에 들게 되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소설은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의 하나로 여겨졌 으나 마을의 광장이나 시장에서 구두로 읊어지는 정도에 불과했으며, 의 미 있는 문학적 전통으로 이어오지 못했다. 기존의 소설조차도 격식 있 는 문학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역사적 현실 속에서, 1920년대 출발한 무 협소설은 ‘저속한’ 이야기로 평가받아 정식으로 소설 장르의 범주에도 들 지 못했다(유경철, 2008: 210).

그러나 1950년대 들어서자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 소위 신파 무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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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등장하여 탄탄한 소설 구성으로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였고, 중국에서도 무협소설이 인기를 끌자 1980년대에 정식으로 무협소설의 출 판이 허용되고, 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다. 그 중에서 김용 이 중심인물로 평가되었는데, 그것은 김용의 작품에서 중국적 개념의 고 급문화 요소들이라 할 수 있는 문화적 소양, 역사적 지식, 문학, 회화, 음 악, 서예 등의 예술적 지식이 배경으로 제시되었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 다(천핑위안, 2000). 그러나 문학 내재적인 연구나 특성에 대한 분석보다 는 기존의 오락소설이라는 불명예를 지워주고자 품위 있는 문화적 요소 가 있음을 설명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무협소설의 서사 구조는 살인이라는 사건으로 촉발된 원한과 복수의 과정에 동반된 남녀의 사랑이야기인데, 그 복수의 과정에서 초자연적 무 술이 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등장하고, 서사를 움직이는 동력으로서 제시 되는 폭력적 행동과 살인, 긴장, 미스터리 등이 주요 특징이다. 이미 서 구의 소설에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그 범인을 체포해가는 과정에서 선 과 악의 대립 과정을 이야기하는 범죄소설 장르가 폭넓게 발전되어 있었 다. 범죄소설 중에서도 대표적인 탐정소설의 탄생에는 그 이전의 많은 유사한 장르와 작품들이 영향을 주었고, 또한 탐정소설은 다른 유사한 장르의 탄생에 밑걸음이 되거나 다른 장르의 요소들을 흡수하여 새롭게 변형되어 발전을 거듭하여 첩보소설, 환상소설, 서스펜스소설, 하드보일 드 소설 등의 다양한 하위 장르 소설이 등장하였다.

『돈키호테』를 탄생시킨 스페인 문학 또한 주변의 다양한 문화와 문 학 형태에 영향을 주고받았기에, 스페인에도 그러한 일련의 범죄소설들 이 나타났다. 그러나 포우의 영향을 직접 받은 알라르콘(Alarcón)이나 바 싼(Bazán)의 작품들은 스페인 독자들을 매료시키지 못했다. 1980년대에 소위 ‘노벨라 네그라’가 등장하여 큰 대중적 인기를 누렸는데, 이는 다름 아닌 탐정소설이 변화되어 형성된 하드보일드 소설의 영향을 받아 등장 한 새로운 범죄소설이었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유사한 문학적 특징을 많이 보이는 동서양의 소설 양식을 그 내재적 특성의 관점에서 비교해 본다면 두 사회의 문화적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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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이해하고 문학 이론의 토대를 깊게 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논문에 서는 김용의 『소오강호』(笑傲江湖)를 스페인의 초기 탐정소설의 대표 작인 알라르콘의 『못』 그리고 노벨라 네그라의 대표작인 몬탈반의

『남쪽 바다』를 중심으로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II. 스페인 범죄소설의 변화 과정 1. 탐정소설

범죄의 발생 그리고 지적 활동에 의한 범죄의 해결이라는 이야기 장르 는 그 기원이 오래되었다. 로마시대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Pollio)는 『건축술에 대하여』(

De Architectura

)에서 시라쿠사(Siracusa) 왕의 왕관에 사용된 금의 일부를 횡령한 세공인의 범죄를 논리적으로 해 결한 천재적 물리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깝게는 1747년 볼테르(Voltaire)가 펴낸 『자디그』(

Zadig, ou la Destinee

)에는 세렌딥(Serendip)의 세 왕자들의 모험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증거와 흔적 들을 근거로 논리적으로 유추하여 사건들을 해결한다. 영국에서 1764년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이 출간한 『오트란토의 성』(

The Castle

of Otranto

)은 최초의 괴기소설로 평가된다. 이야기에서 오트란토의 왕자 알폰소는 자신의 시종 리카르도에 의해 독살되는데, 이 시종은 거짓된 유언장으로 후계자로 자처하여 왕국을 가로챘다. 리카르도의 손자인 만 프레도는 마술 투구의 출현으로 인해 아들을 잃고 착각하여 딸을 살해한 다. 알폰소의 손자 테오도르는 조부의 환영이 펼친 초자연적 힘으로 왕 국을 되찾는다. 1828년에는 비독(Vidocq)의 『유진 프랑스와 비독의 추 억』(

Les Memoires de Eugène François Vidocq

)에는 수사 기법에 대 한 구체적 설명이 나오는데, 후일 포우는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음을 언 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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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전의 이야기들에서 제시된 기법과 특징들의 기반 위에서 에 드가 알랜 포우(Edgar Allen Poe)는 1841년 미국에서 『모르그 가의 살 인』(

The murders in the Rue Morgue

)을 발표한다. 닫쳐진 방에서 발 생한 살인 사건으로 야기된 공포감은 독자에게 죽음과 관련된 긴장감을 유발시켜 관심을 집중시킨다. 경찰이 해결하지 못하자 주인공 듀팡 (Dupin)이 주변 인물들의 진술과 범행 증거물을 취합하고 논리적 분석을 통해 살인범을 찾아낸다. 인간의 행동을 물리현상처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포우는 신비스러움은 단지 환상이고 논리로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듀팡은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을 표현하기보다는 논리적 추론 에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그 천재적 논리적 사유에 의해 밝혀지는 해결에서 독자는 전통적 괴기 소설에서 느끼던 공포감을 느끼게 되는데, 후일 보르헤스(Borges)는 ‘지적 환상주의’라고 평가한 바 있다(Borges, 1979: 73).

이후 코난 도일(Conan Doyle)의 탐정소설이 영국에서 크게 유행하였 는데 당시 산업혁명의 결과 산업사회가 도래하였고 ‘경쟁적 개인주의’가 일반화됨에 따라 탐정소설의 천재적 주인공의 출현을 수용할 수 있었다 (Palmer, 1983: 280). 19세기 영국에서 범죄행위에 대한 단죄는 매우 중 요했다. 대도시의 출현으로 산업과 상업이 번창하면서 범죄가 급격히 증 가했는데, 당시 체계를 갖춘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경찰 조직이 효율적이 지 못한 탓이었다.

포우의 작품은 스페인에 거의 즉각적으로 소개된 것으로 보인다. 포우 와 거의 동시대 작가인 페드로 안토니오 알라르콘(Pedro Antonio de Alarón)은 1858년 포우의 작품을 스페인에서 불어판으로 접했음을 언급 하기도 한다(Alarcón, 1900: 101-102). 그리고 알라르콘은 『모르그가의 살인』이 출간된 지 12년 후인 1853년 『못』(

El Clavo

)을 발표한다 (Alarcón, 1982). 작품은 화자이자 인물인 펠리페에 의해 서술되는데, 코 르도바 지방을 가기 위해 탔던 마차에서 신비한 분위기의 여자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코르도바에서 그라나다 대학교시절 동창생 인 호아킨 싸르코(Zarco)의 집에서 몇 주 머물며, 친구 싸르코가 최근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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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슬픈 이야기를 듣는다. 코르도바 지역의 판사인 싸르코는 세비야에 서 블랑카라는 과부를 알게 되었고 그 여인과 결혼하기로 했는데, 관할 지역의 급한 업무로 인해 2주 뒤에 만나기로 했었다. 그러나 갑자기 블 랑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리고 펠리페와 싸르코는 그 지 역의 공동묘지 주변에서 산책하던 중에 못이 박힌 두개골을 발견하게 되 고, 싸르코 판사는 수사를 지휘하여, 망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주변인의 진술을 토대로 사망자의 부인인 가브리엘라가 범인임을 밝혀낸다.

안정된 상황이 갈등이나 적의 공격으로 위기가 발생하고 다시 그 평화 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그려지는 서사구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많 이 보이는 형태인데, 탐정소설 또한 이 구도에서 크게 상이하지 않다. 단 지 범죄의 발생으로 출발하여 범죄가 해결된 다음 평온한 상태로 회복되 는 이야기로서 주로 그 범죄의 동기와 수사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 다. 살인사건으로 인한 긴장감, 탐정 역할을 하는 판사, 범인의 색출, 마 지막까지 유지된 신비감, 논리적 추론에 의한 수사 등이 전체적으로

『모르그가의 살인』과 비슷한 구조를 보인다. 그런데 이야기의 결말에 서 살인범 가브리엘라는 강제 결혼 당한 후 도망쳐 블랑카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중에 싸르코 판사를 알게 되고, 그들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싸 르코와 결혼하기 위해 남편을 살해했음이 화자에 의해 요약의 형태로 밝 혀진다. 그래서 범인의 체포라는 성공적 결말은 슬픈 이야기의 시작이 되어, 질서의 회복이라는 포우의 소설과 달리 독자들은 새로운 사랑이야 기에 고뇌하게 된다. 그리고 화자이자 인물인 펠리페는 그녀가 이야기 도입부의 마차에서 우연히 만났던 여자임을 알게 된다. 펠리페가 마차에 서 만났던 여자가 가브리엘라였고, 또 공동묘지에서 시체를 우연히 발견 했다는 점 등은 포우의 치밀하고 논리적인 소설과는 약간의 거리감을 준 다.

이후 스페인에서 탐정소설을 시도한 중량감 있는 작가는 에밀리아 파 르도 바싼(Emilia Pardo Bazán)이었다. 코난 도일을 지나치게 ‘물질주의 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는 바싼(Pardo Bazán, 1909: 122)은 1911년 심리 적인 요소를 범죄의 출발점으로 설정하여 핏방울(

La gota de sang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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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발표하였다. 범인으로 지목된 셀바(Selva)는 또한 심리적인 관점에서 범죄를 해결한다. 독창적인 서사구조였지만 탐정소설로서의 형식에는 모 자람이 있었다(Pardo Bazán, 1964).

이후 스페인에서 몇몇 탐정소설의 시도는 있었으나 독자들의 반응이 영국에서처럼 크지 않았고, 영어와 불어권의 번역된 탐정소설들이 중심 을 이루고 전체적으로 오락적 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페인 에서 알라르콘과 바싼 이후에 프랑코 시대까지 탐정소설의 의미 있는 시 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주로 외국 탐정소설의 번역이 주를 이루었 다. 스페인에 범죄소설의 배경이 되는 산업화된 거대도시가 없었다는 점 이 가장 큰 이유로 평가된다.

2. 탐정소설에서 노벨라 네그라

스페인 노벨라 네그라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소설 출발점이 미국의 하 드보일드 소설(hard-boiled novel)에 있다고 표명한 바 있다. 스페인어로 소설이라는 ‘노벨라’(novela)와 검다라는 뜻의 ‘네그라’(negra)라는 단어가 결합한 ’노벨라 네그라’는 미국의 1920년대 대중잡지 <블랙 마스 크>(

Black Mask)

에서 기원한다. 1945년 프랑스에서 듀하멜(Duhamel)이

<블랙 마스크>를 모방하여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의 범죄소설 시리 즈 출판을 기획하였는데, ‘세리 느와르’(Série Noire 검은 시리즈)라는 이 름을 붙이고 시리즈 책 표지를 검은색으로 통일하였다. 스페인에서도 70 년대 범죄소설 시리즈를 출판하면서 이를 모방하여 검은색 표지를 사용 하였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뿌리는 포우의 작품에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범죄 와 범인의 체포를 중심으로 지적 유희가 반복되는 초기 탐정소설이 독자 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되었다. 1860년에 뉴욕의 비들 앤 아담스(beadle

& Adams) 출판사가 ‘10센트 소설’(dime novels)을 선보였는데, 탐정소설 의 형태에 모험 소설적 요소가 가미된 서부 카우보이 소설이었다. 이 카 우보이들은 곧 산업화된 도시를 배경으로 폭력적 탐정으로 변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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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들어서자 다임 소설들은 펄프 잡지로 대체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에서 경제호황의 결과 자본주의가 가속화되고 대중문화가 확장되었다. 미국의 대중소설 독자들은 이제 도시의 폭력적 배경과 인간 감성을 대변해주는 인물들을 찾게 되었고, 이를 반영하여 <블랙 마스 크>는 1922년 거리의 거친 언어를 내뱉는 새로운 유형의 탐정들을 선보 이면서 하드보일드 소설이 탄생하였다. 하멧(Dashiell Hammet)은 1927년

<블랙마스크>에 발표했던 두 단편 이야기를 합판하여 『붉은 추수』

(

Red Harvest)

를 출간하여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후 레이몬 챈들러 (Raymond Chandler). 체스터 힘스(Chester Hims). 로스 멕도날드(Ross McDonald) 등의 작가들이 등장하여 하드보일드 소설을 유행시켰고, 후 일 이들의 작품은 영화와 되어 스페인에서도 크게 인기를 얻었다.

『붉은 추수』는 퍼슨빌이라는 도시의 범죄 이야기이다(Hammett, 1985). 도시의 최고 재력가이며 광산주인 엘리우 윌슨(Elihu Willson)은 1921년 파업을 일삼는 강력한 노동조합을 제거하기 위해 총잡이들을 고 용하였는데, 총잡이들은 이를 해결한 후 도시에 머물며 여러 조직을 만 들어 불법 주류 판매를 장악한다. 이 무렵 지역 유력 신문사의 도날드 윌슨은 샌프란시스코의 탐정을 고용하는데, 탐정이 퍼슨빌에 도착한 날 도날드가 살해당한다. 그러자 도날드의 아버지 엘리우는 범죄자들을 모 두 제거하고자 탐정을 고용한다. 탐정은 범죄 조직 간의 갈등을 이용하 여 유혈 투쟁을 유도하고 조직의 우두머리들과, 조직과 연루된 지역 경 찰서장을 제거하여 퍼슨빌에 평화를 회복시킨다.

스페인에서는 프랑코 통치 기간 언론통제로 인하여 문학 활동이 억압 받아 자국의 독자들마저도 외국의 소설을 더 읽는 상황이었고, 영어권과 불어권의 범죄소설이 번역되어 많이 읽히는 과정에서 이 새로운 미국식 하드보일드 소설의 독자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었다. 1960년대 스페인 은 산업화에 성공하여 산업 도시가 등장하게 되고, 그 결과 급격한 사회 변화와 갈등 양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하자 기존의 보수적 사회 분위기가 약화되었다. 위선과 도덕규범에 억눌렸던 욕망이 표현되는 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자연적으로 그러한 문화를 담아내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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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활동이 증가하였고, 문학에서는 과거 탐정소설에서 발전된 새로운 형 태의 범죄소설인 노벨라 네그라가 그러한 사회반영에 앞장섰다.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Manuel Vázquez Montalbán)은 1972년 내가 케네디를 죽였다(

Yo maté a Kennedy

)로 문단에 등장하여, 1974년 문 신(

Tatuaje

)으로 스페인식 하드보일드 소설을 선보였다. 프랑코 사망 (1975) 직전 발표된 이 작품들은 산업 자본주의 도시의 어두운 면을 반 영하였으나, 아직 언론 검열이 만연하던 상황이었기에 부정적인 배경을 일부 외국에 설정해야 했다. 이후 카르발로는 시리즈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1979년 발표된 남쪽 바다(

Los mares del sur

)에서는 스페인 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게 되었다(Montalbán, 1993).

남쪽 바다는 1년 반 전에 실종되었던 사업가가 바르셀로나 도심의 재건축 공사장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스튜 어트 페드렐은 바르셀로나에서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고 특히 건축분야에 서 큰 성공을 거둔 거대 재벌이었는데, 남쪽 바다로 여행 하겠다며 사라 졌었다. 경찰의 수사가 진전을 보이지 않게 되자, 사망자의 가족은 카르 발로에게 사망자의 지난 과거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다. 카르발로는 실마 리를 얻기 위해 페드렐의 사업 동업자들과 주변 인물들을 면담하여, 페 드렐 자신이 바르셀로나 외곽에 건설했던 신도시 산마힌의 빈민가에서 가명으로 회계사로 일했으며, 운동권 정치활동을 하던 아나라는 여자와 동거했음을 밝혀낸다. 화자는 아나가 살고 있는 위성도시의 모습과 페드 렐을 죽음에 이르게 한 아나 주변 인물들의 삶을 그려낸다.

노벨라 네그라는 사회 환경을, 현대 도시 삶의 어두운 면을 가장 잘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도시 삶을 형성하는 자본주의의 상류층과 그 도 심의 뒷골목이 배경으로 제시되는데, 모두가 탐욕을 향한 어두운 세계로 나타난다. 탐정소설은 영국에서 재산과 신변의 안전을 추구하는 상류사 회의 가치기준에 상응하여 출발하였다. 주인공인 탐정은 실패를 모르는 천재적인 인물이고 이야기의 결말은 정의의 회복으로 안정을 되찾는 사 회로 그려진다. 반면 노벨라 네그라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인 탐정은 주변 사회 현실과 연계되어 사회 현실의 한 부분으로 등장한다. 『남쪽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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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의 카르발로 또한 지적 추리 능력을 보여주지만 문제의 해결 과정에 서 육체적 능력과 폭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개인의 부도덕함이나 잘못 된 인성으로 평가되던 범죄는 이제 자본주의 사회의 질병으로 변화되어 나타난다. 범인이 악의 상징이 아니듯 경찰도 선을 대변하지 못한다. 탐 정소설에서 범인의 체포가 핵심이었다면 이제 자본주의의 모순과 가난 등이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다. 그래서 주인공의 승리는 정의의 회복이라 기보다는 인간성 회복을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되기에 이른다.

III. 김용의 『소오강호』와 스페인 범죄소설 1. 탐정소설의 관점에서 본 『소오강호』

중국 무협소설은 모험소설의 형태를 갖던 당대(唐代)의 협객(俠客)소 설이 청대(淸代)의 ‘공안(公案), 애정(愛情), 검선(劍仙)’ 등의 소재와 결합 하여 1920년대에 출발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데, 협객에서 비롯된 정의 실천적 요소, 공안에서 비롯된 범죄적 요소, 그리고 애정, 검선 등의 소 재에서 비롯된 초현실적이고 주술적인 초능력 등의 특성을 지니게 되었 다(김현우, 2005: 21-36). 1923년 평강불초생(平江不肖生, 向愷然)의 강호 기협전(江湖奇俠傳)과 1932년 환주루주(還珠樓主, 李壽民)의 촉산검협 전(蜀山劍俠傳)등이 발표되면서 이 동양적 오락소설은 대륙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 무렵 형성된 무협소설의 기본 틀은 영웅에 의한 복수, 음모와 해소, 고난과 승리의 과정이고, 동양적 가치관인 의리, 명예 등이 작품의 윤리적 배경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단순하게 오락적 측면에 치중하고, 색정적 내용이 많다는 이유 로 인해서 1949년 중국에 공산정권 수립이후 이 구파 무협소설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1950년 이후에는 대륙에서 무협소설이 금지당해 무협작 가들은 홍콩과 대만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들은 작품의 질을 높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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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노력을 하였고, 1954년 홍콩에서 용호두경화(龍虎斗京華)를 발표 한 양우생을 비롯하여 고룡, 와룡생, 김용 등이 탐정소설적 추리기법, 역 사적 배경, 전통 문화, 그리고 현대적 소설기법 등을 도입하여 새로운 무 협소설을 유행시켜 신파 무협소설이라 평가받게 되었다(왕천균, 2015).

구파 무협소설과 신파 무협소설 사이에 근본적인 틀의 변화는 없다.

하지만 단순 도식적 이야기 구조, 비현실성, 사실주의 결여, 더 나아가 황당무계함 등을 보이는 기존의 무협소설과 다르게 수준 있는 문화적 배 경에서 성장한 신파 무협소설 작가들이 교양과 지식을 갖추고 좀 더 품 위 있는 작품을 시도한 것이었다. 홍콩이 영국정부 즉 서구사회의 정치 적 범주에서 자유로운 문화정책 하에 있었고, 동서양 문화의 교류가 가 능했기 때문에 동양적 교육의 배경에서 자란 이들이 서구적 시각을 적용 하게 되었다고 말 할 수 있겠다.

홍콩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사량용(査良鏞)은 김용이라는 필명으로 1955년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을 집필한 이후 1972년까지 15편의 무 협소설을 발표하였는데, 그중에서도 1967년 홍콩의 <명보>(明報)에 연재 를 시작한 소오강호는 작가의 창의력에 의한 새로운 무협소설의 양태 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된다(김용, 2003). 3인칭 화자는 주로 주인공 영호 충의 시각에서 인물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살인과 복수의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을 엮어 놓았다. 화산파의 내부에 존재하는 기종과 검종 사이의 대결, 화산파가 속한 오악검파 내부의 주도권 장악을 둘러싼 욕망의 갈 등, 강호의 중심세력이 되고자 하는 오악검파와 일월신교의 충돌 등과 연계된 대립적 인간관계가 얽혀 서사구조를 형성한다.

범죄와 범인의 색출이라는 서구 탐정소설의 구도는, 주로 그 범죄가 살인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범인의 색출이 기능적으로 복수와 연계된다는 점에서, 원한과 복수의 서사 구조를 가진 무협소설과 많이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무협소설에서 복수는 문제의 해결을 피해자나 그 주 변인이 주로 초자연적 무술을 통해 실행한다는 것이 크게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두 경우 모두 사회의 공권력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공 통적이나 탐정소설에서는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천재가 개입하고,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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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소설에서는 해결자가 복수를 위해 초자연적 무술을 습득하여 승부를 벌인다는 차이점을 보인다. 이로서 문제해결의 수단이 되는 초자연적 무 술비기의 제시에서 무협소설의 기본적 개념이 정립되고, 복수의 실행자 인 주인공에 의해 그 무술 비기를 습득하여 복수하는 과정에서 무협소설 의 틀이 완성된다. 이는 탐정소설에서 주로 증거수집과 추론, 개입된 인 물들의 심리 등을 분석하는 작업과 유사하다고 말 할 수 있겠다.

탐정소설이나 무협소설에서 주인공은 다른 인물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지적 또는 초자연적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거 전통 소설의 영웅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탐정소설에서 탐정의 지적 능력은 문제 해결 즉 서 사 진행의 핵심이듯이 무협소설에서 주인공의 무술 능력이 서사진행의 중심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주인공과 무술비기의 역할이 크다. 특히

『소오강호』에서 무술 비기의 근본 원리로서 음양오행론이 제시되는데, 화자는 “한의학적 경락경혈 이론을 이용하여 무술 이론이 의학적 지식과 도가적 수련과정에서 보이는 철학적 사고”와 동일하다는 논리를 암시한 다(안금영, 2018: 95). 그래서 동양의 의학, 종교, 철학적 지식이 복합적으 로 작용한 창조적 결합체로 등장하고, 주인공이 그러한 무술을 습득하고 그 무술로 적을 제압하고 살해하는 과정에서 독자는 초자연적이고 환상 적인 경이감에 도달하게 된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는 이야기 진행임에도 불구하 고 큰 줄기에 다다르는 각각의 작은 이야기는 인물의 행동에 타당성을 주기 위한 과거의 삶을 제시하는데 활용된다. 그중에서도 소설의 결말 가까이 도달할 무렵까지 주인공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인물인 악불군의 행 동은 단조로울 수 있는 무협소설의 서사구조에 반전을 보여주는 이야기 줄기이다. 전체적으로 주인공의 관점을 따르는 작가는 소설의 말미에 가 장 큰 악의 상징으로 변모하는 악불군의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 금 악불군이 위선적 행동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유추하도록 유도한다.

과거 오악검파의 우두머리였던 화산파는 기종과 검종으로 양분되어 서로 결투를 벌여 대부분의 고수들이 사라지자 오악검파의 중심은 좌랭선의 숭산파가 되었고, 악불군 자신과 부인만이 생존하여 여러 제자들을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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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켜 과거의 세력을 회복하고자 하나, 자신의 무술 실력이나 화산파의 세력은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절세의 무술비급 벽사검법은 자신을 월등한 고수로 단숨에 성장시켜 줄 비기였을 것이다. 자신의 제자 영호 충이 비급을 원주인에게 돌려주려하자 영호충을 암습하여 비급을 손에 넣고 영호충에게 누명을 씌우고 오악검파의 합병에 반대하는 항산파의 장문인을 비밀리에 살해한다. 은밀하게 벽사검법을 수련하여 합병대회에 서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좌랭선을 패배시키고 오악검파의 우두머 리가 되어 자신의 욕망을 달성한다.

화자는 이야기의 종반에서 돌이켜볼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요소들을 다른 이야기의 줄거리에 혼합시켜 넣어서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새롭 게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주인공이 가장 신뢰하는 스승이자 선의 상징인 인물이 이야기에서 가장 큰 악의 상징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충격과 동 시에 반전을 보여준다. 알라콘의 못에서 범죄와 범인이 밝혀진 후, 가 브리엘라가 남편을 살해하게 된 이유가 화자의 요약적 설명으로 서술된 것과 달리 소오강호는 서사의 커다란 부분이 한 인간이 변화하게 된 과정을 인물의 행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결국, 이야기는 인간 내면의 탐욕과 인물의 행동을 설명해주는 과정이 됨으로써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위선적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렇게 인물의 내면을 조명시 키는 과거 회귀적 시각은 탐정소설에서 범인 색출을 위해 과거 사실을 재현해 내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그 차이점이라면 『소 오강호』에서는 과거 재현에 화자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오로지 독자의 내면에서 암시적으로 그리고 다양하게 해석되도록 유도했다는 것 이다.

하지만 문제해결에 있어서 탐정소설과 달리 무협소설이 지나치게 우연 에 의지한다는 허점도 보인다. 그래서 무협소설을 부정적으로 보는 비평 가의 시각으로부터 “모순을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극한까지 몰고 가서 는 결국 마지막에 ‘우연’이라는 방식을 동원”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유경철, 2008: 212). 주인공 영호충이 사과애에서 화산파의 전설적 고수 인 풍청양을 만나서 최고의 검법을 배우게 되는 과정이 대표적인 경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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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행운의 만남은 무협소설에서 기연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무협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 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처음 무협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는 인위적이고 지 나치게 허구적으로 보일 수 있다. 주인공이 기연을 만나는 과정은 무협 소설만의 특수한 장치이기도 한데, 화자는 주인공에게 좋은 심성이나 가 치관을 제시하여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을 부여하거나, 전통 윤리기준과 가치관을 가진 독자로 하여금 그 필요성에 공감을 느끼도록 유도하여 도 덕적 정당성을 갖게 한다.

김용의 소오강호는 무협소설의 도식성, 우연에 의한 문제 해결 등의 근본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탐정소설적 구도를 통해 인물 내면의 재해 석을 유도하여 인물 개성의 내면화, 복합적 인물의 형상화에 성공함으로 써 독창적인 글쓰기에서 성공했다고 평가된다.

2. 노벨라 네그라의 관점에서 본 『소오강호』

범죄소설과 무협소설의 서사는 모두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출발한다.

그런데 노벨라 네그라는 주인공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주인공의 뛰어난 능력이 미스터리 해결의 전부가 아니고 이야기를 진행 또는 촉발시키는 역할에 머물기도 한다. 반면 무협소설은 탐정소설만큼 이나 뛰어난 주인공을 필요로 한다. 단지 탐정소설에서 지적 능력이 우 선이라면 무협소설에서는 초능력적 무술이 더 중요하다.

노벨라 네그라에서 미스터리는 상상불가의 수준은 아니고 누가 살해했 는가의 의문은 어렵지 않게 해소된다. 남쪽 바다에서 실종된 재벌의 과거를 밝혀달라는 의뢰를 받아 수사를 진행하는 카르발로는 페드렐의 과거뿐만 아니라 화자와 내재적 독자의 시각으로 주변 인물들의 삶과 내 면까지 재조명해낸다. 그러나 페드렐의 삶을 규명하고자 하는 의도는 점 차 힘을 잃어가고, 사망자의 주변인들과 범인의 주변인들의 사회적 환경 이 대립적으로 충돌하며 그 갈등 양상이 독자의 현재 시각에서 진행된 다. 그래서 독자의 관심은 이제 선과 악의 대결 즉 범인이 누구냐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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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스터리에서 멀어져 화자가 제시한 새로운 인물들의 삶으로 옮겨간 다. 주변 인물들의 삶은 주로 도시 산업사회의 이면이 중심 배경이 되고 이 배경은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을 결정짓는 요소로 강력하게 작동하여 그 인물들이 도시 산업사회에서 고통 받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본주의 적 삶의 부정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남쪽 바다에서 엄청나게 많이 가진 자들과 너무나 가진 것이 없는 자들 사이의 극단적 대비가 전체적인 배경으로 제시된다. 악으로 평가받 던 기존의 윤리적 부도덕함은 삶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위선적이고 외형적 삶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이익과 탐욕의 세계에서 살아가도록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욕망의 동물이 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 주변 인물들 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속고 속 이는 관계를 설정하여 인간의 본성과 내면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이야기 구조를 보인다. 즉 노벨라 네그라의 주인공이 작품의 마지막에 밝혀내는 것은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도시 삶의 삭막함과 인간 내면의 무한한 탐욕 이다.

남쪽바다의 카르발로와 마찬가지로 소오강호의 영호충 또한 사회 의 대립적 갈등 상황에서 생존하고자 투쟁하는 인물이다. 영호충은 처음 부터 초자연적 또는 영웅적 능력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단지 생존에 대 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 주인공의 행동이 독자의 시각에서 동시적으로 진 행된다. 독자들의 관심은 주인공의 생존이고, 그 생사의 위기에서 벗어나 과거의 안정된 사회로의 회귀에 주어진다. 그래서 이야기는 선과 악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이탈된 공간에서 일상적 사회공간으로 돌아오고자 하 는 생존의 투쟁에서 벌어지는 모험이 중심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갈등은 주인공과 적 사이의 투쟁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야기 초반에서 영호충의 주된 적은 항산파의 여승을 탐하는 전백광이고, 전백광의 무술을 극복한 단계에서는 오악검파를 장악하려는 숭산파의 좌랭선이 최대의 적이고, 그 다음에는 좌랭선을 패배시키고 강호를 재패히고자 하는 스승이었던 악불군이 악의 대변자이고, 마지막으로 강호와 세상을 지배하려는 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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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은 최후의 적이 된다. 그러한 죽음의 공포에 대항하여 몸부림치는 과 정에서 무술비기를 터득하여 생존에 성공하면서 새로운 영웅으로 등장한 다. 독자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주인공의 연속된 모험에서 긴장 감과 안도감을 느낀다.

일반 무협소설의 서사구조에서 최대 단점은 선악의 도식적 구조이다.

선악의 대립은 서사에 박진감을 주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무협소설에서 유사한 형태로 반복되어 소설의 질을 크게 떨어트리는 요소이다. 그런데 김용은 반전을 이루는 창조적 이야기 형태를 통해 그러한 근본적 취약점 을 해소하고자 한다. 소오강호에서 주인공의 모험과 생존에는 주변의 많은 인물들이 관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형성된 다. 무협소설의 특성상 그 진영의 권력적 대립에는 무술의 강자가 중심 이고, 그 권력자를 지탱해주는 힘은 신비한 무술 비기에서 나온다. 이야 기의 초반부에서 복위표국의 임평지 가족이 살해당하는 것은 그의 조부 임원도가 남긴 벽사(僻邪)검법의 비급 때문인데, 이것은 과거에 임원도가 화산파가 보관하던 규화보전을 읽고 검술로 변화시킨 무술비급이다. 임 원도는 과거 정파의 최고 고수였고 검법의 이름 그대로 사파를 물리치는 정파의 상징이었다. 반면 사파 일월신교의 새로운 교주 동방불패는 전임 교주 임아행, 영호충, 상문천 등 여러 인물이 합세해야 상대가 가능한 절 대 고수인데, 그는 과거 일월신교가 화산파에서 탈취해 간 규화보전을 수련하여 고수가 되었다. 일반 무협소설의 정신세계에서 정파와 사파는 적대적 관계이고 또한 그들의 무술은 근본적으로 다른 성질의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화자는 정파와 사파가 이름만 다른 동일한 무술을 공유한 다는 서사 구조를 설정하여 독자의 뇌리에서 정과 사가 근본적 차이가 없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었다. 그럼으로써 선악의 이분법적 대립이 희 석되는 효과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선악에 대한 상대적 개념은 대립적 관계에 처한 인물들의 역할 이 변화하는 모습에서도 재현된다. 내상으로 인해 곧 죽음을 피할 수 없 던 영호충은 사파(邪派) 일월신교의 상문천을 구해주고, 그와 함께 일월 신교의 과거 교주였던 임아행을 구하게 된다. 정파에게 공포의 상징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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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임아행을 구해준 영호충은 임아행 대신 지하 동굴에 감금되는 순간 그들에게 속았다고 분개하나 곧 임아행이 남긴 흡성대법을 수련하여 죽 음을 면하게 된다. 타인의 진기를 모두 흡수하여 죽게 만드는 공포의 사 파 무술이 영호충의 생명을 구하는 역할로 바뀐다. 그리고 영호충은 과 거 강호를 피로 물들였던 임아행을 도와 동방불패와 결전을 벌인다. 화 자와 내재적 독자의 시각에서 주인공의 동지인 임아행은 선의 동반자적 위치를 갖는다. 그러나 다시 일월신교를 차지한 임아행은 주인공에게 정 파와 결별을 요구하며 주인공을 핍박하는 악인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반 면 사파와 대립하던 정파의 악불군은 선의 대변자였으나 좌랭선을 패배 시키고 무림의 패자가 되고자하는 욕심을 내는 순간 또 다른 악의 화신 으로 변모한다. 이렇게 이야기에서 악과 선을 구분 짓는 것은 근본적인 성질이 아니라 인물들의 주어진 처지와 욕망의 상관관계에 따른 상대적 개념으로 변모한다.

작가는 중국의 전통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에 근거를 둔 음양의 상대 적 개념을 적용시켜 인물이 처한 상황에 따라 선악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선과 악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 다. 소설의 결말 또한 여타 무협소설의 사필귀정의 과정이 아니라 두 세 력의 공존으로 매듭지어진다. 즉 음과 양이 한 인체에 공존하듯이 선과 악이 서로 다름이 아니라 욕망에 의해 공전하는 감정의 다양한 그림자라 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IV. 결론

태생적으로 소설은 고정된 문학 장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중국의 무협소설은 중국 전통의 이야기 구조에서 명, 청대를 거지며 원수와 복수라는 특수한 형태의 이야기 틀을 완성했 다. 이 통속소설은 1950년대 김용의 등장과 함께 소설 장르 내에서 품위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단순한 오락거리 문학 형태에 김용은 서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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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방식과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녹여 중국의 전통문화와 가치관을 반영하는 새로운 문학의 영역을 창조하였다.

이 무협소설 장르는 그 내재적 문학 요소들을 분석해 볼 때 서구의 범 죄소설과 유사한 특성을 보인다. 주로 살인이라는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공포와 긴장의 본능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서구의 범죄소설과 동일하다. 범죄소설 가운데 탐정소설의 관점에서 본다면 논 리적 해결은 소오강호에서 신비한 무술비법이라는 초자연적 수단으로 대체되고, 노벨라 네그라의 관점에서 본다면 폭력성을 동반한 모험의 연 속으로 그려진다. 이야기의 결말에서 탐정소설은 범죄의 해결과 함께 긍 정적 결말에 이르는 반면, 노벨라 네그라는 범인이 밝혀져도 다음 단계 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이 새로운 2차적 이야기기는 주로 인간 내면의 나 약함과 현대사회의 부조리 등으로 이어져 어둡고 부정적인 종결로 나타 난다. 소오강호의 주인공이 전통적 가치관 속에서 행운을 얻고 그에 합당한 노력을 통해 영웅으로 성장하여 적을 물리치는 모습은 전통적 탐 정소설에 더 가까운 결말이다. 그러나 갈등 해결 과정에서 폭력성에 의 지하고, 범죄의 해결이 이야기의 결론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이나 문제를 제기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에 있어서 노벨라 네그라에 더 가깝다.  소오강호는 미스터리와 초자연적 요소에 의존하는 면이 많다는 점에서 탐정소설에 더 가깝고, 연속적인 모험과 폭력적 행동이 서사의 중심이라 는 점에서 노벨라 네그라에 더 가깝다고 평가된다. 전체적으로 소설 내 재적 특징으로 볼 때 노벨라 네그라와 탐정소설 사이에 위치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문제 해결에서 우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선악의 도식적 구조에 의지 하는 여타 무협소설과 달리 김용의 소오강호는 도덕적 의미부여를 통 해 우연의 폐해를 부분적으로 상쇄하고 단순한 선악의 대립을 음양오행 론적 상대적 개념으로 변화시켜, 서사에 문화적 깊이를 더하고 독자를 사색으로 유도하는 힘을 보여주었다. 인물의 다중적인 내면, 정과 사의 공존, 절대적 선의 부재 등은 과거의 여타 무협소설이 가지지 못한 진보 된 소설 구조이다. 이것은 무협소설의 단점으로 평가되는 공식화, 개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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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틀에서 벗어나 기존 무협소설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평가된다.

사회를 바라보는 이러한 상대적 개념은 선과 악의 명확한 대립에서 출발 한 탐정소설이 변화하여 자본주의의 폐해를 그려내는 노벨라 네그라로 변화된 과정과 유사하게 보인다.

무협소설 소오강호나 스페인 범죄소설 남쪽 바다가 서로 다른 시 대의, 지구 반대편 다른 종족의 이야기임에도 공통적인 내용이 인간 내 면의 모호함, 탐욕과 갈등으로 얼룩진 인간의 삶이라는 점에서 소설의 기능과 본질을 이해할 수 있었고 또 앞으로 변해갈 소설의 방향을 짐작 할 수 있겠다.

주요어

김용, 소오강호, 스페인 범죄소설, 남쪽 바다, 몬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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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 2019/11/15 심사일 2019/12/20 게재확정일 2019/12/24

Name An, Gumyoung

Belong Dept. of Spanish, SunMoon University E-mail mor99@hanmail.net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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