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706
… NICE, 제36권 제6호, 2018출신학과
여 상 도
경북대학교 화학공학과 [email protected]
무슨 학과 출신인가요.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 변을 하는 순간, 그 사람은 한 특정 학과의 전공 분야 를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알아 남다른 전문성을 가 진 사람으로 인식된다. 나 자신도 화학공학과를 나 왔기 때문에 화학과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내 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보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훨씬 많아 당혹스러운 경우가 흔하게 있다.
대학의 학과는 학교에서 학생을 모집하는 기본단 위이며, 학생이 사회에 진출해 종사할 수 있는 특정
직업에 필요한 지식, 기술 등을 분류해 놓은 독립된 소집단이다. 대학에는 대학이 태동할 때부터 있었 던 아주 오래된 학과가 있는 반면, 사회의 요구와 기 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 생겨나는 신생학과들도 다수 존재한다.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존에 있었던 학과의 명칭을 새로 변경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세 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말이 대학의 학과에도 그 대로 적용되는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든다.
입시 철이 되면 친지, 친구들로부터 대학입시에 대한 상담 질문을 가끔 받게 되는데, 어떤 학과에 입 학하면 제일 좋은가 하는 질문이 대부분이다. 난 그 럴 때마다 주저 없이 학과 명칭의 역사가 오래된 학 과에 입학하라고 권한다. 오랫동안 존속되어 없어지 지 않은 사실만 보더라도 그 쓸모를 짐작할 수 있으 니깐 말이다. 대학에서는 시대적 수요에 부응하여 우수한 학생의 모집이 용이한 새로운 학과명을 가 진 모집단위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시대 적 수요라는 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기 때문에, 입시 생들은 사회의 급박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 리를 지키는 대학의 전통학과들에 더욱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대학의 출신 학과는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본인의 인생을 요약한 짧은 이력서의 맨 첫 줄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출신 학과이다. 당신의 원
*본 내용은 도서 “우리들의 영원한 대학”에서 발췌하였습니다.
특별기고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6, No. 6, 2018 …
707
래 전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대학에서 다녔던 출신 학과의 전공명칭을 댈 것이다. 대학을 졸 업한 후의 취업 자리도 전공을 살리는 곳을 가장 선 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람들은 이와 같이 대학 을 다니면서 1학년의 교양과정을 제외하고, 인간 수 명에 비하면 극도로 짧은 약 3년 동안 배운 내용을 자기의 평생 전공으로 간주해 버리고, 그 테두리 안 에 자신 스스로를 가두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좀 아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의 출신 학과는 많은 사람들의 직업을 결정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사회에 첫발을 딛는 졸업생 들은 본인의 출신 학과에 따라 취업하는 곳이 달라 질 것이고, 그렇게 선택하게 된 직장이 그 사람의 남 은 수십 년의 인생을 좌우하게 되는 것은 분명한 사 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가 나온 출신 학과의 영 향을 받아 선택한 직장과 직업에 완전한 만족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보 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순간적으로 선택한 대 학의 학과라는 것이 인생의 첫 선택이 되는 셈인데, 이 선택을 정확히 그리고 후회 없이 했다고 만족하 며 사는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 될까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숱한 회한을 품은 채 일생을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은 자기 앞에 놓 인 여러 갈래의 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사 실 인간에게 주어진 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야말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임과 동시에 미련을 불러 일으키는 짐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만족하기보다 오히려 선택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적지 않게 가지게 되 고, 그에 따른 후회나 회한의 감정을 항상 가까이 두 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출신 학과는 자신이 가진 이러한 값비싼 선택권 중 일부분을 포기하고 얻어진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항상 본인의 직업에 충실하면 서 살아가지만, 한편으론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늘 간직하게 된다. 밟아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누 구나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항상 가보지 못한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길들이 사라 지지 않고 계속 놓여 있게 된다.
이제나저제나 주인이 한 번은 걸어가 주길 바라 면서 말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내에는 쓰레기 중에 재활용할 수 있는 물건을 모아두는 장소가 있다. 거기에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제 기능을 완전히 소진하지 않아 멀쩡한 상태로 버려지는 물건들이 꽤 있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 다. 이 세상에 는 자기 안에 들어있는 길을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 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참으로 아깝고도 아쉬운 생각이 든다. 자신이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에게 는 그 어떤 것보다도 곱고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었 을 그 꽃길에 대한 회한을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나는 강의실의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이 젊은이들 이 지금 현재 진정으로 자신들에게 적합한 자리에 와 있을까 하는 의심을 해 본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지고 태어난 저마다의 소질을 백 퍼센트 개발하여 화려한 꽃을 피우게 해주는 일 은 정말이지 어렵고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학생들의 인생 속에 어떤 다른 종류 의 길이 잠재되어 있는가를 나는 알 수가 없으며, 이 학생들이 선택한 단 한 가지의 길인 이들의 출신 학 과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내가 전혀 관여할 수가 없 기 때문에, 난 완벽한 교육자가 되기 힘들겠다는 생 각도 한다.
사람이 가진 뇌의 활용도가 일평생 불과 몇 퍼센
특별기고
708
… NICE, 제36권 제6호, 2018트밖에 되지 않는 다는 말이 있다. 나머지는 사용되 지도 않고 그냥 버려진다는 얘기인데, 아마 이런 사 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후회와 미련을 가 진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용되지 않는 나의 뇌에 대한 미련 말이다. 과거에 대한 아쉬움은 사람이라면 비켜 갈 수 없는 것이겠지만, 우리는 현 재의 삶에 집중함으로써 이런 불편한 감정들을 어느 정도는 최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과거에 의 존하면 우울해지고 미래에 의존하면 불안해진다는 말은, 살면서 지난 일에 대한 과도한 후회와 다가올 일에 대한 지나친 기대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일 것이다.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학창 시 절에 멋모르게 선택했던 대학의 출신 학과와 그것 이 이유가 되어 들어섰던 직업을 떠나, 전혀 다른 길 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 직장을 다닐 수 있는 정년을 넘긴 사람들도 있고, 때로는 젊은 나 이에 과감히 자신이 항해하는 항로를 바꾸는 사람들 도 있다. 이들은 시행착오에 따른 손실감도 느끼겠 지만, 적지 않은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재 선 택한 그 길이 보다 많은 삶의 즐거움과 보람을 안겨 다 주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대학입시가 아닌 사회 입시의 경험을 거친 후 입학한 제2의 출신 학과가 진 정한 인생의 전공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