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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3월에는 향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백 남준의 유해가 49재를 지나고 고국으로 돌아오 는 것을 기념하여 다채로운 행사가 국내외에서 준비될 예정이다.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 ‘현 대미술의 세계적인 거장’등 생전에도 이미 그
는 이 시대 최고의 예술가로 인정을 받았다. 비록 그가 일찍이 조국을 떠나 외국에서 활동을 해왔지만 그 사이에 그의 조국은 세계 최고의 IT 강국으로 거듭났으니 첨단산업 발전국가와 첨단 미술가는 썩 잘 어울 린다고 할 수 있겠다.
장례식 후에 그의 유골은 뉴욕, 베를린, 한국 등에 분산하여 안치된다고 한다. 그러니 이 달에 돌아오는 그의 유해는 일부인 셈이다. 아무리 제멋대로의 파격이 관행인 예술계라지만, 유골을 분산 배치하는 것은 망자에 대한 심각한 무례처럼 느껴진다. 백남준이 세계적인 작가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초다. 이미 백 남준은 생전에 5월 9일 착공 예정인 경기도 소재의 백남준미술관에 그의 유택을 안치하기로 동의하였다.
뉴욕은 그가 1960년대 말 독일에서 건너와서 지금까지 줄곧 활동했던 창작의 산실이고, 독일은 그가 존 케 이지, 요셉 보이스 등과 함께 플럭서스 운동을 함께 하면서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리기 시작한 곳이다.
그러니 유해에 대한 이들의 권리 주장에도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유해를 유치하기 위한 신경전은 바로 문화 비즈니스를 선점하려는 경쟁이 표면화된 것이다. 세 계적인 거장을 기리는 박물관에 관람객들이 줄을 이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그 수는 곧 관광수입으로 직 결되기 때문이다. 올해로 탄생 250주년 기념을 맞아 모차르트의 기념 축제를 개최한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 시 잘츠부르그에는 7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렸다고 한다. 한 명의 세계적인 예술가가 어떻게 그 나라의 국 익에 도움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실례다.
백남준을 추모하는 모든 전시와 기념회는 끊임없이 반복되어 그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그가 불멸의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은 또한, 죽은 백남준이 살아 있는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백남준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사람들, 미술관 종사자들, 전시기획자, 백남준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 들, 기념품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 그의 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자신의 작품에 차용하는 젊은 미술가 등 향후 에 그가 먹여 살릴 사람들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의 불멸은 이렇게 경제적인 가 치에서도 증명될 것이다.
이진숙|미술평론가 짧 은 글 긴 생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