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교사의 마음을 누일 곳이 필요할 때- ‘사랑이라는 청진기 하나로’를 읽고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교사의 마음을 누일 곳이 필요할 때- ‘사랑이라는 청진기 하나로’를 읽고"

Copied!
4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 139 - 특수교육논총

Journal of Special Education 2022, Vol. 38, No. 2, pp.139-142

<서평>

교사의 마음을 누일 곳이 필요할 때 - ‘사랑이라는 청진기 하나로’를 읽고

이 다 연 (김해은혜학교)

몇 해 전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근무했을 당시, 한 중학교에 순회수업을 간 적이 있다. 무엇 때 문인지 심통이 잔뜩 난 아이는 첫 날부터 순회수업을 거부했다. 초등학교까지 특수학급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아오던 아이는 특수학급이 없는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섞이려 무던히 노력하던 아이는 평소에는 친구들과 한 반에서 수업을 듣다가 순회수업을 받으러 따로 나 와야 했다. 그 순간이 부끄럽고 민망했을 것이다. 설득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엄포를 놓기도 하며 여러 차례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수학 문제를 풀다가 하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요. 특혜 같은 거 받기 싫다고요.”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만들기를 할 때는 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그 날 수학공부가 유난히도 하기 싫고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고집이 통하지 않자 심통이 나 꽤나 못된 소리도 했다.

“어차피 저는 안 된다고요! 이미 틀린 인생이라고요.”, “저는 이런 수업한다고 동의한 적 없다고 요. 교육청에서 하는 뭐 이런 것 필요 없다고요. 아 진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공부하는 시간을 멈추기 위한 억지이기도 하지만, 이 아이의 내면에 들어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어떻게 저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까. 교육청에서 온 순회교사에게 수업을 받는 것을 어떤 식으로 인식하고 있을까. 본인은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까. 참 어려웠다.

또 다른 고등학교 3학년의 학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해군에 가고 싶어요. 근데 애들이 도움반 애들은 군대 안가도 된데요. 그래서 저는 해군 못 간데요. 왜 못가요, 선생님?”

https://doi.org/10.31863/JSE.2022.05.38.2.139

(2)

특수교육논총

- 140 -

이처럼 경계에 있는 지적장애의 학생들에게 자신의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할까. 그때 경력 2년차였던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 어려웠다.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으 면서, 누구나 납득 가능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그 상황을 모면하고 달래기 위한 말이 아닌 정말로 이 아이들과 이 수업을 정의 할 수 있는 말은 없을까.

그때 내가 아직 경력과 노하우가 없는 교사라 그런 말을 찾을 수 없는 것이었으면 했다. 근무지 를 옮겨 특수학교에 근무할 때도, 다양한 아이들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보이지 않는 갈증을 느꼈다.

나는 정답을 찾고 싶었다. 여러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다른 선생님들의 모습을 관찰하기도 하고, 전공 서적을 찾아보기도 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답은 없었다. 경력 1년차부터 경력 20년차 선생님까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내가 상상한 경력이 많아질수 록 모든 학생과 교실을 여유롭게 이끄는 완벽한 교사는 없었다. 다만, 내가 상상한 모습에 가까운 선생님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수업 연구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 다 나와 같은 고민과 좌절을 계속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처음 특수교육에 관심을 가진 뒤,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 책 속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가슴 먹먹한 사연, 특수학급에서 느끼는 선생님의 외로움, 담담하면서도 헌신적인 선생 님의 교육관 등을 보며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많은 감동을 받았었다. 그리고 나도 특수교사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교사가 된 후 한동안 교육 에세이를 읽지 않았다. 가끔 서점에서 펼쳐보는 교육 에세이들 은 나에게 그다지 특별하지도,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도 않았다. 에세이 속 일화들은 당장 내 교실에서, 내 옆 교실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고, 새로울 것이 없어보였다. 또 그 일화들은 나 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도 못했다. 책 속의 선생님들도 학생들과의 갈등, 사건들을 멋지게 해결하기 보다는 그런 고민과 상처들을 토로하는 것에서 끝나는 듯 했다. 답답한 현실을 또 들여다 보는 것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듯 더 따갑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특수교사로서의 무력감과 답답함을 느끼던 중 도서관에서 이 책을 다시 보게 되 었다. 특수교육과로 진학을 마음먹게 했던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에세이는 나에게 특수 교육적 지식을 전달하기 위함도, 나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한 책도 아니었다. 읽는 동안 공감하고, 위로 받고, 나를 돌아보고, 내 주변을 살펴보고, 내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책이었다. 교육경력, 교육 환경, 나이 모든 것이 나와 다르지만, 같은 고민을 하는 선생님들의 고군분투를 들여다보았다. 그 고민을 읽고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된다. 교사의 ‘수업권’은 그 독자성으로 인해 수업을 교사 고유의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영역으로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공개수업, 동료장학 등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경우 다른 사람의 수업을 듣고 볼 수 없다. 교실에서 다른 선생님이 겪는 시간을 알 수가 없다. 학교에서는 교사들끼리 서로의 고충을 털어놓는 시간도 있지만, 그 교사 개인의 내면에 서 치밀하게 일어나는 수많은 고민과 내적 충돌을 알아주기란 쉽지 않다. 교사들은 교실 이야기만

(3)

이다연 / 교사의 마음을 누일 곳이 필요할 때 - ‘사랑이라는 청진기 하나로’를 읽고

- 141 -

큼이나 자기 학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토로하지 않는다. 그 학생으로 인해 무엇이 힘든지, 얼마나 힘든지 토로하기 바쁘다. 그러나 각자 자기 마음속에 모두 각각의 아이들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 고 있다. 우리 모두 저마다 가슴속에 학생 수 백 명의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교사 에세이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생 사연, 수업 일화 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 지만 펼쳐보면 그 교사 한 개인의 고민과 갈등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들여 다보는 계기가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공감하는 부분이 매번 달라졌다. 최근에 나는 이 구절에 많은 공감을 했다.

<후회 없이 사랑하는 일, 어려워라>

기덕이 엄마는 내가 챙겨준 두툼한 학습결과물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꺼내지 못하고 한동안 눈시울을 붉혔다. “저는 학교에서도 기덕이가 집에서처럼 혼만 나고 푸대접받는 줄 알았는데 언 제 이렇게 많은 공부를 하였지요?” 그 억양이 너무 처량하여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말없이 웃 었다.

아이가 내 곁을 떠난다니 그간에 정성을 다하지 못하였던 순간들이 마음에 걸렸다. 후회 없 이 사랑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또다시 체험하게 된 것이다. 기덕이가 전학을 간 후로는 우리 반 아이들도 다시는 그 신비한 시계그림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성가시게 일을 저 지르는 아이였지만 저희들끼리는 정이 깊었는지 귀찮은 내색 한번 안 하고 잘 지낸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기덕이가 떠나고 나니 며칠은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불안한 이상 행동들은 가파른 생명에의 표현 욕구였을까. 기덕이가 없으니 조용해진 교실 분위기가 가문 날 의 배추잎마냥 뒤로 처지는 듯했다.

[사랑이라는 청진기 하나로, 116쪽]

우리는 아이들과 1년이라는 예정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런 이별을 하기 도 한다.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것이다. 학생인 너는 교사인 나를 믿고, 교사인 나는 학 생인 너를 사랑한다. 그 교감이 형성 될 때 우리에게는 평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 믿음과 평화는 항상 1년이 끝나갈 즘에야, 이별이 다가오고서야 형성된다. 다음 해가 되고, 다른 선생님과 학생을 각각 만나게 된 뒤에야, 우리가 얼마나 교감한 사이였는지 깨닫게 된다. 아이들과 우리는 같은 공 간, 같은 시간에 있을 때는 모른다. 서로 치열한 시간을 보내느라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소중히 여 겼는지, 우리가 얼마나 진한 사이었는지를 모른다. 작년 우리 반 학생이 스승의 날에 만들어온 편 지에 더 충분히 고마워해주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쉽다.

자주 하는 단순한 소근육 활동이지만 만들어진 것에 이름을 붙여 준 순간 아이들의 눈이 반 짝거린다. 오색으로 꿴 구슬끈을 쥐고 교실을 제 맘대로 돌아다니게 했더니 무척 즐거워한다.

(4)

특수교육논총

- 142 -

사소한 것이라도 제 수준에 알맞은 성취감을 맛보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교사와 아동의 마음이 마주치는 순간에 일어나는 생명의 불꽃 같은 것-아주 미세한 교감의 극치를 나누어 가 진 순간, 교육은 성공한 것이다.

교육이론들이 추구하는 학습자의 절정체험을 위해 온갖 학습법이 개발되고 연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특별한 체험이 시간마다 빈번히 일어날 수는 없겠지만 아이의 성격 과 수준을 최대한 파악한 상태에서 성취한 학습효과는 아이들에게 보약과 같은 효과가 있다.

[사랑이라는 청진기 하나로, 144쪽]

교사와 아동이 마주하는 그 교감은 어떠한 문서에도 남지 않고, 누구도 증명해 주지 않는다. 개 별화교육계획에도 충분히 기록되기 힘들고, 어느 동료와 관리자도 알아줄 수 없는 영역이다. 오로 지 나와 아동의 가슴 속에서 느껴지고 기억되는 순간이다. 이 책을 읽으면 나도 그 순간을 느껴 볼 수 있었다. 교육 에세이를 읽으면 수많은 ‘교감’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오늘도 일상이 되어버린 학교에서 지친 선생님들이 함께 그 ‘순간’을 마주하기를 바란다.

이제는 정말 ‘사랑’이라는 청진기 하나 가지고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청진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이 책은 선생님들의 가슴 속에 있는 ‘사랑’을 다 시 한번 꺼내어 주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를 소개하며, 시에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 같은 ‘교 실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는 선생님’이 누구인지 살펴 그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다.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 이 되라고. 겨울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 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마종하, 활주로가 있는 밤(문학동네:1999)]

참조

관련 문서

그리고 학교 에서 공부 외에도 우리 삶에 필요한 소중한 덕목을 가르치 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①은 사람의 감정을 감탄하는 말을 통해

03 언어마다 똑같은 의미의 표현을 다르게 말하는 것을 통해 언어의 자의성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언어의 말소리와 의미 의

개념과

10 주인 영감에게는 돈을 손해 보는 일이 가장 속상한 일이므 로 수남이가 고지식하게 돈을 물어내지 않고 도망쳐 나온 것이 기특한 일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11 수남이는 도둑질을

어떤 자연수의 약수의 개수는 하나로 정해지기

[r]

하지만, 연구는 이러한 새로운 학습 방법에 도 결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의 한 이유는 학생들이 인쇄된 자료를 사용할 때 다시 읽고

결론적으로 신석기시대 화북 지역을 야생 닭 가금화가 최초로 발생한 지역의 하나로 보는 주장은 처음 제 시되었을 때 상당한 학계의 반향이 있었지만 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