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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의 SAC 개인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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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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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투고일_2018.08.10. 심사기간_2018.09.01-16. 게재확정일_2018.10.05. 박수근의 SAC 개인전 연구 Research on Park Soo-Keun's SAC Solo Exhibition 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Seo, Seongrok_Professor, Department of Fine Arts, Andong National University. 차례. 1. 서론 1.1. 연구 배경 1.2. 연구 방법 2. 개최장소 2.1. 박수근의 개인전 2.2. SAC 도서관의 소재 3. 전시내역 3.1. 리플렛에 소개된 박수근 3.2. 출품작의 규모 3.3. 전시리뷰 4. 출품작 4.1. 공개작과 미공개작 4.2. 주요 작품분석 4.3. 목록에 수록되지 않는 작품 5. 결론 참고문헌.

(2) 박수근의 SAC 개인전 연구 Research on Park Soo-Keun's SAC Solo Exhibition 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Seo, Seongrok_Professor, Department of Fine Arts, Andong National University. 요약 중심어 박수근 SAC 도서관 써니 머피 천승복. ABSTRACT Keyword Park SooKeun SAC Library S B. Murphy Chon Seungbok. 이 연구는 박수근의 SAC(Seoul Area Command) 개인전(1962년) 내역을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생전에 박수근은 일제강점기 춘천에서의 개인전과 한국전쟁 후 미군부대에서 열렸던 개인전 등 두 차례 개인전 을 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의 개인전은 사후 50년이 지났음에도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연구 자는 ‘박수근 카탈로그 레조네’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무엇보다 월남 후의 개인전에 주의를 기울였다. 논문의 연 구방법으로는 그의 개인전 때 발간된 리플렛과 미군 소식지에 발송한 보도 자료를 통해 개인전의 추진과정과 내역을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연구자는 그동안 막연했던 SAC 개인전의 개최장소, 출품작과 전시규모, 판매 작 품과 구입자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개인전이 개최된 곳은 ‘오산 주한미공군사령부’가 아니라 ‘용산 주한 미군사령부’ 영내 도서관이었으며, 써니 머피와 천승복이 개인전을 소개하거나 전시평을 썼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그때 최소 33점, 최대 49점의 작품을 발표했음을 알 수 있었고 본 연구에서는 주요 출품작을 분석 하였다. 연구자는 일차적으로 ‘개최장소의 문제’를 알아보고 이어 ‘리플렛 문건’, ‘출품작 리스트’, ‘공개작과 미 공개작’, ‘주요 작품의 분석’ 등을 차례대로 살펴보았다. 본 연구에 ‘박수근 카탈로그 레조네’ 연구 기 간중 발굴한 자료와 도상연구가 근간을 이루었으며, 특히 작가가 생전에 보관했던 사진을 스크랩한 유 족 소장 작품앨범과 이구열 작품카드가 본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 SAC 출품작중에는 유존 여부가 불분명한 미공개작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작품의 발굴과 연구와 조사가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다. The Solo exhibition of Park Soo-Keun, which was held informally at Seoul Area Command Library, had been cloaked even until recently for half a century after his passing. It was possible to determine where it was held, the exhibits and scale of exhibition, and the works sold and purchasers through newly discovered data. The exhibits mostly comprised Figure paintings and a few Landscape and Still Life paintings, and most figures depicted in figure paintings were people found in everyday living such as the old people talking to each other, mother and son, market scenes, and children in the alley. On the other hand, his paintings also depicted scenes from the edges of the city, the life of common people, peddlers,the unemployed hanging out on the streets, and working women as though they reflect straitened times.. 366.

(3) 1. 서론 1.1. 연구배경 ‘국민화가’라는 애칭을 받고 있는 박수근(1914-1965)은 명성에 비해 그에 관한 연구는 아직 미진한 편이다. 한 예로 그가 작고한 지 50년이 경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SAC 개인전’이 그 동안 밝혀지지 않은 것은 의외의 사실이다. 1965년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열린 <박수근 화백 유작전> 리플렛에도 그가 SAC 도서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는 기록이 누락되어 있고, 역시 1975년 문헌화랑에서 열린 10주기전 도록, 1985년의 20주기 도록에도 그 기록이 빠져 있다. 박수근이 1962년 말에 쓴 한 통의 자필 이력서가 남아 있는데 어찌된 이유인지 작가 스스로 개인전의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1) 여러 가지 이유로 그의 개인전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으로 부터 멀어져 갔다. 그런데 새로 발굴한 자료에 의하면, 박수근은 1962년 서울 주한미군 사령부 영내에서 1월31일 부터 2월4일까지 특별개인전을 가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실리아 짐머만(Celia Zimmerman) 과 마가렛 밀러(Margaret Miller) 등이 미국에서 그의 개인전을 적극 추진한 적이 있지만 그때 는 성사되지 못했기 때문에 SAC 개인전이 더욱 그의 화업에서 주요한 의미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2) 비록 미군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박수근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크게 고무되었을 것이다. 일부 연구가가 그의 개인전이 미군부대 영내에서 개최되었다는 사실을 밝혔으나, 그조차 오기 (誤記)로 밝혀졌고 개최지, 출품작, 전시규모, 판매 작품 등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각종 문헌 이나 도록에서 그의 개인전에 관한 기록은 한 두 줄 정도의 소개로 그쳐 베일에 가려져왔다. 연구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박수근 카탈로그 레조네 추진사업에 참여하면서 SAC 개인전의 개최지, 출품작과 전시규모, 판매 작품과 구입자 등을 밝혀낼 수 있었다.3) 전작도록 발간 지원사업은 2015년 11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연구사업을 실시하였 는데 박수근 전작도록 연구팀은 한국미술품감정협회와 박수근 미술관과 팀워크를 이루어 연 구기간중 박수근의 전시이력과 소장이력, 연보 등을 광범위하게 연구 조사하였다. 1차 년도에 는 박수근 작품관련자료 수집 및 문헌조사, 2차 년도에는 감정자문회의 및 주제 분류, 3차 년도에는 목록화된 자료를 바탕으로 작품년도와 재료확정, 연보작성 등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런 과정에서 새로 발굴된 자료를 통해 그의 SAC 개인전에 접근할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그의 예술세계가 개인전을 통해 어떻게 실제적으로 구체화되었고 이와 함께 전시 규모와 출품작의 면면을 중점적으로 고찰하였다. 특히 1962년은 그의 작품세계가 원숙 한 경지에 이른 시기여서 박수근의 작품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본격적으로 박수근 고유의 조형세계를 펼쳐가는 시점에 개최된 그의 개인전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2. 연구방법 연구방법은 첫째 기존 연구가들의 선행연구 검토, 둘째 새로 찾아낸 신문방송 보도자료, 셋째 유족 및 리움 소장 아카이브 등 문헌자료와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박수근의 SAC 개인전 개최사실은 1990년 이구열에 의해 처음 밝혀졌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무려 30년이 지났는데도 이 사실이 통용된 데에는 이것을 그대로 답습해온 이유가 크다. 박수근 전작도록 연구를 진행하면서 연구팀은 SAC 개인전에 관한 풍부한 자료를 발굴할 수 있었다. 연구과정에서 찾은 SAC 리플렛과 Stars and Stripes, Korean Republic, SAC Daily Bulletin,. KMAG Bulletin, Special Servis Daily Bulletin 등 신문과 보도 자료 등이 그러하다. 전시기획 자는 박수근의 개인전을 위해 보도자료 뿐만 아니라 리플렛을 발간하면서 개인전에 관한 구체 1) 자필이력서는 다음의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 󰡔박수근 1914-1965󰡕, 열화당, 1985, p.199 2) 박수근, 「친애하옵는 씨리아 짐머맨 귀하」(1958년경) 편지, 밀러부인이 추진하던 박수근 개인전에 관한 소식은 박수근, 「친애 하는 밀러부인」,󰡔새로 보는 박수근 : 박수근 100장면󰡕 (수류산방,2015,p.396)에 각각 수록되어 있다. 3) 박수근 카탈로그 레조네 연구에는 책임연구원 서성록, 연구원 윤세진, 김인아, 엄선미, 보조연구원으로 최승민, 이명선, 정경원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박수근과 관련한 전수조사, 전시이력과 소장이력, 작가연보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를 위해 연구 기간 중 작 품실사와 구장자 및 소장처 파악, 유족과 전문가 등 관계자 인터뷰를 각각 실시하였다.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367.

(4) 적인 정보를 실어 SAC 개인전의 성격과 규모를 짐작케 해주었다. 또한 당시의 영자신문. Korean Republic 에는 박수근 전시평이 실려 전시내역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유족이 소장한 사진첩과 리움 미술관 자료실의 이구열 아카이브를 통해 SAC 출품작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개인전 리플렛에 등장하는 작품목록에는 작품제목 만 기록되어 있어 어느 것이 출품 작품인지 알 수 없지만 두 자료를 하나씩 비교해가면서 해당 작품을 추려낼 수 있었다. 특히 이구열 아카이브에는 별도로 SAC 출품작 표시를 해두어 이것 을 영어작품제목과 맞추어보며 출품작을 골라낼 수 있었다. 그 외에 연구방법으로는 미술평론 가 이구열과 오광수, 재료분석가 김주삼, 감정전문가 송향선 등의 전문가 컨설팅, 박인숙과 박성남 등 유족의 인터뷰 등에 힘입어 SAC 개인전과 관련한 사항을 보완할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SAC 개인전에 초점을 맞추어 개최지, 리플렛의 분석, 출품작의 면면, 공개작과 미공개작, 주요 작품 등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2. 개최장소의 문제 2.1. 박수근의 개인전 박수근이 작고하자 매스컴에서는 ‘국내에서 개인전이나 동인전을 갖지 못한 화가’4) 라며 그의 죽음을 알렸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박수근이 박수근은 생전에 한 번도 개인전을 개최하지 못했다고 알고 있었으나, 자료에 따르면 적어도 두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5) 하나는 일제 강점기에 춘천에서 열린 전시회였고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주한미군사령부 SAC 도서관에서의 개인전인데 춘천 전시에 대해선 17세 때 개최되었다는 주장과 20대 초에 개최되었다는 주장이 있어 어느 것이 맞는지 불분명하다. 박수근과 교유했 던 시인 황금찬(1918-2017)은 박수근이 17세 때 강원도 춘천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가졌다 고 기술한 바 있는데 이 말은 박수근에게서 직접 들은 것이어서 신빙성이 높지만,6) 그의 나이 17세라면 박수근이 <봄이 오다>가 선전에 입선하기도 전의 일이다. 또 다른 기록은 아내 김복순(1922-1979)의 글에 나오는 것으로 강원도청 사회과장 미요시 (三吉岩吉) 의 주선으로 생애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는 주장이다.7) 박수근이 춘천에 머문 것은 1935년과 1939년 두 차례인데 전자는 집안의 파산으로 양구보통학교 은사이자 후견인 이었던 춘천의 오득영(1904-1991)선생을 찾아 온 시기였고,8) 1939년은 박수근이 조선미전 4회 연속입선을 한 후 25세 되던 해에 지인들이 있던 춘천을 다시 찾은 시기였다. 󰡔조선총독 부의 직원록󰡕에 의하면, 미요시과장은 그때 대구와 전라도 도청에 근무하던 시기로 1935년에 춘천에 부임하기 전이었으므로 1939년 설이 좀더 설득력을 지닌다.9) 평소 미술에 관심을 가 졌던 미요시가 그의 그림을 팔아주고 평안남도 도청으로 전근을 갈 때 박수근과 남동생을 데리 고 간 것 등 정황으로 볼때 김복순의 기록이 더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SAC 개인전 기록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이구열이 펴낸 󰡔한국근대회화선집 6 박수근󰡕(1990년) 에서이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한국화 13권, 서양화 14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발간한 작가 총서에 박수근의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 화집에서 SAC 개인전에 관한 기록은 ‘연보’에 등장한다. 박수근 연보에는 “2월에 SAC (주한미전략공군사령부) 도서관에서 ‘박수근작품’특 별 초대전을 꾸밈”10)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어 33점의 크고 작은 작품중 상당수가 외국인에게 팔려나갔으며 “홍콩의 인터내셔널 호텔의 인터하우스(Interhouse)에 보내져 또 한번 전시되 4) 「어느 예술가의 죽음」, 동아일보,1965.5.8 5) 강원도민일보에 의하면, 박수근은 ‘전쟁후 춘천 요선동 다방 등지에서 다섯 차례 가졌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이 개인전인지 단체전이 불분명하고 있었다고 해도 현재로서는 전시개최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다. 「박수근 화백 미공개 춘천 생활 추적기」, 강원도민일보, 2001.1.5 6) 황금찬, 「눈물의 화가」,󰡔문학세계󰡕, 2010년 4월호 7) 김복순, 󰡔박수근 아내의 일기󰡕, 현실문화,2015, p.44 8) 박수근 인터뷰, 「화가 박수근, 참은 자에게 복이 있다」, 󰡔학원󰡕, 1963.8월호, p.151 9) 미요시 아나키치(三吉岩吉)는 1936년 강원도청 내무부 지방과로 전근을 왔으며, 1938년 강원도 내무부의 사회과장을 지냈다. 󰡔조 선총독부의 직원록󰡕 홈페이지 참고할 것. 10) 󰡔한국근대회화선집 6 박수근󰡕,금성출판사,1990, p.141 368.

(5) 었다”고 기술하였다. 몇 년 후 발간된 󰡔자료로 본 우리의 화가 박수근󰡕(한국미술연구소편,1995)에도 “오산에 있던 주한미공군사령부(USAFK) 도서관에서 ‘박수근 특별초대전’ 마련”11)이라고 적고 있다. 여기 서는 ‘주한미전략공군사령부 도서관’에서 ‘오산 주한미공군사령부 도서관’으로 수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두 문헌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작품도판과 박수근의 생애를 어느 문헌보다 충실하 게 다룬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박수근의 연보를 구체적으로 다뤘다는 점이나 실제 적인 자료에 기초해 그의 생애를 기술한 점은 작가연구에 얼마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는지 보여준다. 그런 점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SAC 개인전’과 ‘인터내셔널 호텔의 전시’ 문제만큼은 연구의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2.2. SAC 도서관의 소재 많은 연구자들이 앞의 연보에 따라 박수근 개인전을 ‘오산 주한미공군사령부 도서관’ 또는 ‘주 한 미전략공군사령부 도서관’으로 적고 있으나, 자료를 검토한 결과 그의 개인전은 ‘오산’이 아닌 서울 용산의 ‘주한 미군 사령부’(SAC) 영내 도서관에서 열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시 발간한 리플렛 표지에는 개최지를 ‘SAC Library / USA SAC/APO 301’12)(그림 1)(그림 1-1)로 표시하였는데 여기서 SAC는 Seoul Area Command, 즉 ‘주한 미군사령부’를 지칭한 다. 이곳에서 전에도 강황섭 개인전이 열렸고,13) 미군을 상대로 독서회도 개최하는 등 다채로 운 이벤트를 펼쳤는데 이 도서관은 1953년 주한 미군과 각국의 외국인들을 위하여 세워졌고, 1956년과 1960년 두 차례의 증축을 거쳐 1971년 5월 중순 PX 빌딩을 개조한 신축 건물로 이전하였다.14) 그때의 출품작 <실직>(Jobless)과 <휴식>(Resting) 뒷면에 부착된 라벨에 는 “Exhibited : SAC Library, Feb. '62, Yongsan”(그림 2)이란 표시가 등장한다. 여기서 ‘Yongsan’은 주한미군 사령부가 위치한 ‘용산’을 표시한 것으로 당시 전시담당자가 육필로 기 록해놓은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로 볼때 ‘오산 미공군사령부’는 용산의 ‘주한 미군사령부’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림 1> SAC Library 개인전 리플렛. <그림 1-1> SAC Library 개인전 리플렛. 이같은 오류가 발생한 것은 SAC를 ‘주한 미전략 공군사령부’로 오인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15) 그 뒤에 나온 자료들은 󰡔한국근대회화선집󰡕을 기준으로 ‘오산 주한미공군사령부 도서관’의 표 기를 그대로 따랐다.16) 이를테면 한국미술연구소편 󰡔우리의 화가 박수근󰡕(1995), 삼성미술 관의 󰡔박수근󰡕(1999), 마로니에 북스의 󰡔박수근 1914-1965󰡕(2015), 󰡔새로 보는 박수근 : 박수근 100장면󰡕(2015) 등 거의 모든 카탈로그나 문헌이 ‘오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11) 󰡔자료로 본 우리의 화가 박수근󰡕,한국미술연구소편, 시공사,1995, p.275 12) Pak Soo Keun 개인전 리플렛, SAC Library, 1962.1.31-2.4 13) 강황섭의 개인전은 SAC도서관에서 1961년 5월에 개최되었다. http://soamuseum.com/220484343194 (방문일자 2016.12.5) 14) 「Survey of Libraries in Seoul」, 1971.4.25. 주한 미군 영내의 용산 라이브러리에서 보내준 자료. 15) 󰡔한국근대회화선집 양화 6 박수근󰡕,ibid., p.141; SAC를 ‘주한 미전략 공군사령부’로 기록한 것은 「경향신문」, 1962.10.25일자, 「동아일보」 1959.3.25일자, 「경향신문」,1962.4.2일자, 「경향신문」, 1973.12.8일자, 「동아일보」 1981.8.28일자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16) 한 예로 국내 미술가들의 인적사항을 조사한 󰡔한국근대미술사전편찬을 위한 조사연구󰡕 ‘박수근’ 란에는 SAC 전시자체가 누락되어 있다.󰡔한국근대미술사전편찬을 위한 조사연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1974, pp.342-343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369.

(6) <그림 2> <실직> 뒷면. <그림 2-1> <실직> 뒷면의 캡션. <그림 3>호텔용지에 기록한 구입자 목록. 이와 함께 이 작품들이 홍콩의 인터내셔널 호텔의 인터하우스(Interhouse)에 보내져 또 한차 례 전시회를 가졌다는 것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17) SAC 개인전의 작가 소개 글에도 홍콩 전시회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올해 개최될 ‘제15회 필리핀 미술협회 전시회(Philippine Arts Association Exhibition)에 출품할 예정이다’18)는 구절만 나올 따름이다. 만일 전시가 예정되 어 있었더라면 전시기획자로서 최소한 전시계획에 대해 귀띔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SAC 와 관련한 자료에는 그런 사실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연보 작성자의 단순한 착오로 판단된다. 문제의 발단은 구매자 이름과 작품번호, 가격을 타이핑한 서류 상단에 Interhouse Hotel 로고(그림 3)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을 보고 홍콩에서 전람회가 또 한차례 열렸을 것이라고 추정한 데서 연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이 문건에 적힌 것은 출품작이 아니라 SAC 개인전에서 작품을 구입한 사람들의 이름과 작품번호, 그리고 가격이다. “no.7, no.49는 알래스카 대학에 보내질 예정이고 no.11과 no. 47은 알래스카 페이뱅크에 소재한 성 매튜교 회에 보낼 예정이다”고 적혀 있다. 연구자는 대구의 인당미술관에서 no.11 작품 <The Jobless>를 실견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이 작품 뒷면(그림 2)에 알래스카대학 미술관 소장 표식이 붙어 있어 이 기록이 인터하우스 호텔전시에 관한 서류가 아니라 SAC 개인전 구입자 리스트임을 확인하였다. 지금까지 작가가 홍콩에서 어떤 유형이든 전시를 열었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최열 (2011)이 “홍콩 인터내셔널호텔 인터하우스에서 몇 작품을 추가해 박수근 작품전을 열었 다”19)고 주장하였으나 이것은 이구열(1990)의 주장을 그대로 원용한 것으로 불확실하다. 이 같은 설명은 전시담당자가 판매작품을 호텔용지에 적은 것을 나중에 그곳에서 전시를 연 것으 로 오인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3. 전시내역 3.1. 리플렛에 소개된 박수근 SAC 개인전 내역을 뒷받침하는 자료 중의 하나는 전시 때 발간한 리플렛이다. 전시 담당자는 간단한 리플렛을 발행하여 전시에 관한 정보를 실었다. 리플렛에 의하면, 작가는 1914년 2월 21일 강원도에서 태어나 밀레와 루오, 피카소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인상 주의, 특히 점묘 수법에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후 사회 한국인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 그렇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확고한 태도와 의연함을 나타내는 한국인의 기개를 표현하고 있다. 그의 회화의 텍스추어는 한국사찰에서 발견되는 동물형상이나 꽃무늬가 새겨진 마모된 화강암 조각의 분위기를 간직한다”20)고 소개하였다. 긴 시간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전시담당 자가 글을 썼고 그에 대한 주된 관심이 무엇인지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박수근은 전후 한국인의 모습, 즉 전후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지니면서도 굳은 17) 󰡔한국근대회화선집 6 박수근󰡕, ibid.,p.141 18) Pak Soo Keun 개인전 리플렛, SAC Library, 1962.1.31-2.4 19) 최열, 󰡔박수근 평전, 시대공감󰡕, 마로니에 북스, 2011, p.264 20) Pak Soo Keun 개인전 리플렛, SAC Library, 1962.1.31-2.4 370.

(7) 의지와 의연한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한국인의 정신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박수근 작품에서는 한국의 사찰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동물 형상이나 꽃무늬로 장식한 화강암 조각의 질감이 연상된다. 박수근은 건성유를 왕겨(Rice Chaff)와 같은 마른 재료와 섞어 붓이나 주걱 (spatula)으로 보드판 위에 바르는 작업 방식을 사용한다. 이 기법을 활용하면 모자이크 방식 과 같은 효과도 낼 수 있다. 그의 작품 색채는 검은색과 흰색을 주된 색조로 하고, 분홍색과 노란색을 군데군데 가미하여 혼합하기도 한다. 박수근은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처음 작품을 전시했다. 최근 그의 작품은 대한민국미술전 람회에 출품된 바 있으며, 마닐라에서 1962년 2월 22일에 개최될 제15회 필리핀 미술협회전 시회(Philippine Arts Association Exhibition)에서도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21) 전시의 담당자는 써니 B. 머피(Sunny B. Murphy,1918-1991)였으므로 이 글의 작성자도 동일인물로 생각할 수 있다. 참고로 도서관 사서였던 써니 B. 머피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릭스빌 출생으로 Lenoir Rhyne 컬리지를 졸업하고 North Carolina 대학 대학원에서 도서관학 을 전공한 뒤 한국에 근무하였다. 그녀가 󰡔코리아나 콜렉션󰡕(Koreana Collection)을 1960년 부터 집필하기 시작하였다는 언급으로 볼때 머피는 이미 50년대부터 한국에 체류한 것으로 짐작된다.22) 그녀의 에세이는 <디자이너 웨스트>(Designer West)에 실린 마가렛 밀러의 작가론과 함께 외국인이 박수근 작품을 어떻게 보았는지 인식하는데 도움을 준다.23) 박수근의 개인전 전시소식은 주로 미군 신문이나 TV에 보도되었다. Stars and Stripes,. Korean Republic, SAC Daily Bulletin, KMAG Bulletin, Special Servis Daily Bulletin, Embassy Bulletin, 그리고 AFKN-TV와 AFKN- Radio 등등. AFKN-TV와 AFKN - Radio 보도자료에는 “박수근의 전시가 1월 31일부터 2월 4일까지 SAC 도서관에서 개최되며 이번 전시는 박수근의 ‘동양적인 유화’(Oriental Oil Painting)를 선보이는 전시”24)라는 표현이 나온 다. 한편 영자일간지인 Korean Republic에는 “이번 전시회에는 전통적인 한국의상인 흰옷을 입은 여인을 비롯하여 도시 행상, 변두리 마을, 아이 업은 소녀 등 45점의 유화가 발표될 예정 이다”25)(그림 4)고 보도했다. Pacific Stars & Stripes(그림 5)에도 전시기사가 실렸는데 박 수근의 드로잉이 UN 산하 기관에 선정되어 세계 각국에 배급되었다는 문장이 눈에 띈다.26) 그의 작품이 UN 기관이 선정한 한국 홍보 작품이 되었음을 전해주고 있다.. <그림 4> Pacific Stars & Stripes. <그림 5> Korean Republic. <그림 6> 천승복 전시평. 3.2. 출품작의 규모 전시에 출품한 작품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SAC 도서관 리플렛에는 33점이 기록되 21) Pak Soo Keun 개인전 리플렛,SAC Library, 1962.1.31-2.4 22) Sunny Murphy, Yi, Myung-Hui, Koreana Collection, Seoul : Youngsan Library, 1982 23) Margaret Miller, 「Park Soo Keun : Artist in the Land of Morning Calm」, Designer West, 1965.2 24) S. B. Murphy, 「Request Spot Announcement: Programs at SAC Library」, 28 Jan.1962 25) 「SAC Library to Hold Showing of Korean Oils」, Korean Republic, Jan 27, 1962 26) 「45 Paintings By ROK Artist To be Shown」, Pacific Stars & Stripes, Jan 30, 1962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371.

(8) 어 있다. 공식적인 기록으로 33점이 맞는 것으로 보이나, 그러나 지금까지 자료를 살펴볼 때 리플렛에 실린 33점 외에도 더 많은 작품이 출품되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Korean Repubic (그림 6)에는 “이번 전시회에는 전통적인 한국의상인 흰옷을 입은 여인을 비롯하여 도시 행상, 변두리 마을, 아이 업은 소녀 등 45점의 유화가 걸릴 예정이다”27)라고 했다. Pacific Stars & Stripes에서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전시를 가진 바 있는 박수근이 45점 의 대표작을 갖고 Seoul Area Command 도서관에서 수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작품전을 갖는 다”28)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 이와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더욱이 작품판매 리스트에는 No.47, No.49까지 있어 49점 이상이 출품되었을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것은 이 전시에 상당량의 작품이 전시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볼품없게 진열’하였다는 천승복의 기사에서 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개최장소가 전용 전시장이 아닌 관계로 간이벽을 세워 작품을 위아래로 촘촘히 붙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때 리플렛에 기재된 작품보다 많은 양이 출품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지만 작품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본 연구에선 리플렛에 등장하는 작품타이틀을 바탕으 로 출품작을 리움 미술관에 보관된 이구열 아카이브와 유족 앨범 가운데서 나오는 작품사진을 하나씩 대조해가며 찾아갔다. 다행이 이구열 아카이브에는 SAC 출품작 표시를 해놓거나 유족 사진앨범에는 사진 뒷면에 영어타이틀이 있어 해당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을 선별해갈 수 있었다. SAC 개인전 리플렛에는 33점의 작품마다 제목을 붙여놓았는데 출품작은 다음과 같다.29) 1. Market Place, 2. Tree and Passers-by, 3. Playing Children, 4. Chats of Old People, 5. Sketching, 6. A Man, 7. The Jobless, 8.Mother and Son, 9. A Village, 10. A Street, 11. A Scene, 12. On the Road, 13. Playing Children, 14. Playing at Dibs 15. Under Tree, 16. Mother and Daughter of a Farmhouse, 17. On the Road, 18. Swallows, 19. Maghbias, 20. Tree and Passers-by, 21. Still Life, 22. Spring Season, 23. A Scene, 24. A Mountain, 25. Peddler, 26. Spring Scene, 27. House-made of Wodden Boards, 28. Still Life, 29. Mother and Daughter, 30. Chatting Boys and a Cow, 31. Woman Milling Corn, 32. Flowering Season, 33. Farm House 이구열이 ‘상당수의 작품이 외국인에게 판매되었다’30)고 말한 것처럼 전시결과는 괜찮았던 것같다. 머피가 작성한 자료를 보면, 전시 기간중 모두 16점이 판매되었는데 No. 7번 작품 (The Jobless)과 No. 49번 작품은 알래스카 대학으로 우송하였으며, No. 11번 작품(A Scene)과 역시 이미지를 알 수 없는 No. 47번 작품은 알래스카 페이뱅크에 소재한 성 매튜 교회(St. Mathew Church)에 보낼 예정이라고 기록하였다.31) 이 작품들은 모두 도널드 엔닉 (Donald Eynick)이라는 인물이 일괄로 구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외에도 출품작은 James E. Shiflet 병장(No.2, Tree and Passers-by), Jerry Martz 이등 병(No,20,Tree and Passers-by), Bayonet Chorale 이등병(No.3, Playing Children), Louise Antol, Jr 중령(No.15,Under Trees), Robert H. Persillin 대령(No.26, Spring Season), McCarthy 대령(No.48), Wayne Diller 소령(No.9, A Village) 등 주로 미군 장교 및 병사가 구입하였고, 민간인 (Sunny Murphy No.18, Swallows ; Pate, No.21, Still Life), 영국 대사 Godfrey(No.36), 타일랜드왕실 대나무 밴드(Royal Thailand Bamboo Band)(No.16, Mother 27) 「SAC Library to Hold Showing of Korean Oils」, Korean Republic, Jan 27, 1962 28) 「45 Paintings By ROK Artist To be Shown」, Pacific Stars & Stripes, Jan 30, 1962 29) 이상 작품제목은 SAC 개인전 리플렛에 표기된 방식이며 본 연구에서는 번역 없이 그대로 옮겨놓았다. 리플렛 사진은 그림) 1-1 을 참조할 것. 30) 󰡔한국근대회화선집 6 박수근󰡕, ibid., p.141 31) 이 자료는 평론가 이구열이 리움미술관에 기증한 것으로 박수근화백 사망후 김복순 여사가 박수근화집 제작용으로 제공했다고 한 다. 이 인터뷰는 한국근대미술연구소에서 2017년 4월 11에 진행되었다. 372.

(9) and Daughter of a Farmhouse)에서도 한 점 씩 구입하였다. 작품 가격은 대체로 2, 3만환에서 5만환 사이가 가장 많으며, <Mother and Son>, <Maghbias>, <Tree and Passers-by>가 각각 7만환, <Still Life>이 13만환, <Flowering Season>이 60만환, <Woman Milling Corn>이 50만환, <Chatting Boys and a Cow>가 45 만환으로 되어 있다. 3.3. 전시 리뷰 박수근의 개인전은 국내 어느 신문이나 저널에도 소개되지 않았으나 유일하게 「코리안 리퍼블 릭」(그림 6)에 전시평이 실렸다. 기자이자 평론가였던 천승복이 쓴 “한국의 고요한 현실을 반영하는 박수근의 유화”(Pak's Oils Reflect Calm Reality of Korea)32)에서 개인전이 어떠했 는지 가늠케 해준다. 천승복은 “SAC 도서관(Seoul Area Command Library)에서 내일까지 개최되는 박수근의 개인전은 언뜻 이질적인 표현의 낯선 작품들을 볼품없게 진열하여 그다지 주목할 필요가 없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실은 매우 눈여겨 볼 전시이다. 최근까지 이같이 압도 적인 전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33)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도서관에서 열린 전시였으므 로 환경이 열악했고 조명이나 벽면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어수선했으나 작품만큼은 압권 이었음을 이 기사는 말해주고 있다. “박수근의 작품주제는 철저하게 한국적이다. 아기를 등에 업은 여인들과 소녀들, 거리의 행상 들, 뒷골목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노동자들, 그리고 나무 아래 있는 사람들이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색채는 흰색과 노란색, 그리고 은은한 분홍색과 초록색으로 한정된다. 여기에는 그의 현실에 대한 믿음, 즉 현실의 당면한 문제들을 적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현실을 이해하려는 그의 믿음이 반영된 것이다.”34) 천승복은 “박수근의 그림은 창문 용지로 사용되는 까칠한 한지, 즉 창호지와 같은 질감을 낸다. 그의 더 커다란 화폭들도 역시 화강암으로 만든 조각의 우둘두툴한 표면과 유사한 효과를 자아 낸다. 그의 작업 기법이 무엇이든지 간에 박수근의 그림에는 언제나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한국적 정서가 담겨 있다.”며 “박수근의 예술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가 온화한 성품을 지닌 한편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노력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여전히 삶이 간직한 온기를 소중히 여긴다”35)며 글을 맺었다. 비록 개인전이 좋은 환경에서 열린 것은 아니 었으나 그의 전시가 호평을 얻었다는 증거는 14점이나 되는 작품판매와 「코리안 리퍼블릭」에 게재된 천승복의 전시평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4. 출품작 4.1. 공개작과 미공개작 SAC 개인전 출품작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최소 33점에서 최대 49점까지 편차가 있어 출품 작수를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다. 새로 발굴한 자료를 통해 지금까지 밝혀진 SAC 개인전 출품작(총 33점 중 21점)으로 추정되는 작품의 정보와 출처는 다음과 같다.. 32) Synboc Chon, 「Pak's Oils Reflect Calm Reality of Korea」, Korean Republic,1962.2.3. 전시평을 쓴 천승복은 「코 리안 리퍼블릭」의 문화부장과 「코리아헤럴드」의 문화부장을 거쳐 영문월간지 「디플로머시」의 편집고문을 역임하였으며, 미국 스톤 프레스에서 발간된 󰡔신세계 미술백과사전󰡕 한국편에 주요 작가를 소개하기도 했다. (「미(美) 미술백과사전에 한 국항목 천승복씨 필집과 고미술소개」, 「동아일보」, 1971.4.5일) 또한 그는 1958년 발족된 한국미술평론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33) Synboc Chon, ibid., 1962.2.3 34) Synboc Chon, ibid., 1962.2.3 35) Synboc Chon, ibid., 1962.2.3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373.

(10) 4.1.1. SAC 개인전 리플렛 목록에 있는 작품 <표 1> SAC 출품작 목록. 도판. 참고자료. 영어제목 no.2. Tree and Passers-by. 한글제목 나무와 행인. no.4 The chats of old. 노인들의 대화. people no.6 A Man. no.7 The Jobless. no.8 Mother and Son. no.10 A Street. no.11 A Scene. 리퍼블릭. 1960년대. 이구열 아카이브,. 초반. 유족앨범. 실직. 1961년. 모자. 1961년. 거리. 1961년. 귀로. 1959년. 공기놀이하는 소녀들. no.15. 코리안. 후반. 1961년. no.14. 나무 밑. 1962년. On the Road no.18 Swallows no.19 Maghbias(Magnobias) no.20 Tree and Passers-by no.23 A Scene. 노상. 1962년. 제비. 1960년. 목련. 1960년. 판잣집. no.29. 모녀. 이구열 아카이브, 유족앨범. 이구열 아카이브, 유족앨범 이구열 아카이브, 유족앨범. 이구열 아카이브, 유족앨범 이구열 아카이브, 유족앨범 유족앨범. 이구열 아카이브, 유족앨범 이구열. 후반. 아카이브. 1960년대. 이구열 아카이브,. 초반. 가족사진. 1961년. Wodden Boards. Mother and Daughter. 유족앨범. 1950년대. no.27 House-made of. 이구열 아카이브,. 유족앨범. 1961년. 풍경. 유족앨범. 이구열 아카이브,. 곡식담는 모녀. 나무와 행인. 이구열 아카이브,. 초반. of a Farmhouse no.17. 이구열 아카이브. 1960년대. no.16 Mother and Daughter. 출처. 1950년대. 남자. Playing at Dibs. Under Tree. 제작년도. 박수근 전작도록 홈페이지. 1950년대. 이구열. 후반. 아카이브. 374.

(11) 도판. 참고자료. 영어제목. 한글제목. 제작년도. 소와 유동. 1962년. no.31. 절구질하는. 1960년대. Woman Milling Corn. 여인. 초반. 꽃피는 시절. 1961년. no.30 Chatting Boy and a Cow. no.32 Flowering Season no.33. 농가. Farmhouse. 출처 이구열 아카이브, 유족앨범. 유족앨범. 이구열 아카이브, 유족앨범. 1960년대. 이구열 아카이브,. 초반. 유족앨범. 4.1.2. SAC 개인전 리플렛 목록에 없는 작품 SAC 리플렛 작품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작품으로 <노인>(1961), Resting,<휴식>(1961), Silent <졸음>(1961), <노상에서>(1960년대 초반) 등 4점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중 <Resting>은 <실직>과 마찬가지로 작품 뒤에 라벨(제목, 로케이션, 작가명, 전시기간)이 붙어있고 작가의 친필 서명을 쓴 것이 특징적이다. <표 2> SAC 리플렛에 미수록된 작품. 도판. 참고자료. 영어제목. 한글제목. 제작년도. 출처. 노인. 1961. 이구열 아카이브. Resting. 휴식. 1961. 이구열 아카이브. Silent. 졸음. 1961. 노상에서. 60년대 초반. 유족앨범, 이구열 아카이브. 이구열 아카이브. <표 1>과 <표 2>에서 본 바와 같이 SAC 개인전 목록에 기재된 작품이 21점, 그 외 작품이 4점으로 모두 25점의 작품 이미지를 확인하였다. 이구열 아카이브가 미망인 김복순여사의 협 조로 작성된 것인만큼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보이며 리플렛 목록과 유족앨범에 표시된 영어타 이틀의 일치성, 그리고 당시 출품작을 증명해주는 표시, 그리고 당시 전시평에 실린 사진 등이 출품작의 추정에 바탕이 되었다. SAC 개인전의 출품작 실물 사진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과거 자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출품작을 추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의 작품에는 겹치는 제목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중에서 62년 이전 것을 우선적으로 했다는 것과, 같은 제목 이더라도 무리하게 연구자의 주관에 근거해서 선별하는 일이 없도록 유의했다. 이중에서 유존작품은 <Resting>, <The Jobless>, <Mother and Son>, <A Scene>, <House-made of Wodden Boards>, <Flowering Season>, <Chatting Boy and a Cow>, <Swallows>, <Tree and Passers-by>, <Maghbias(Magnobias)>, <Resting>, <노인> 등이다. 그리고 리플렛에 실리지 않은 <Resting>, <Silent>, <노인>, <노상에서> 등은 실 무자의 실수라기보다는 전시가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자 작가에게 요청하여 작품을 더 내걸면 서 리플렛에 싣지 못했을 것이다. 추가로 작품을 전시할 경우 리플렛을 따로 만들지 않고 기존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375.

(12) 리플렛을 그대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출품목록에서 빠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4.2. 주요 작품의 분석 SAC 개인전을 개최할 무렵 박수근은 작가로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었다. 1957년 샌프 란시스코 미술관의 <동서미술전>과 1958년 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의 <한국현대회화전> 참여, 1959년 <현대작가초대미전>, 그리고 1962년 국전 초대작가로 선정되는가 하면 <앉아 있는 여인>이 한국을 홍보하는 미술품으로 선정되는 영예도 누렸다.36) 양구, 평양, 금성, 서울 등 거주지에 따라 약간의 변화를 보여온 그의 작품흐름으로 볼 때 이때의 작품은 전성기의 그의 화풍을 보여준다. SAC 개인전에 출품된 몇몇 작품을 살펴보면, 먼저 No.30 <소와 유동>(Chatting Boy and a Cow)(그림 7)은 “향토적인 삼베냄새와 흙냄새가 풍기는 소박한 바탕에의 새로운 구도의 시험”37)을 꾀한 작품으로 박수근 유작전(1978년), 20주기, 30주기, 45주기, 50주기전에 출품 되었던 그의 대표작중 하나이다. 유족소장 흑백사진 뒷면에 작가의 친필로 작품제목(소와 유 동), 제작년도(1962), 작품크기(116.8x 72.3cm),작품가격($ 500)이 표시되어 있다. 이구열 카드목록에도 ‘SAC展 출품작’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리플렛 목록에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2단 구도로 된 <소와 유동>의 하단에는 천진한 어린 아이들이 둘러앉아 놀이를 하고 있고 상단에는 한 마리 농우(農牛)가 아이들을 응시하는 구도로 되어 있는데 박수근은 이 작품을 제11회 국전의 추천작가 및 서양화부 심사위원 자격으로 출품하였다. 특별히 이 작품은 이미 지와 바탕이 흡수되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데 이것을 필두로 <농 악>(1964),<행인>(1964),<할아버지와 손자>(1964),<비둘기>(1964) 등에서 발견되듯 이 바탕과 이미지의 침투현상은 이미지와 바탕이 균질한 관계를 추구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예이다.38). <그림 7> <소와 유동>. <그림 8> <목련>. No.19 <목련>(Maghbias - Magnolias의 오기)(1960)(그림 8)은 유족 소장 앨범의 흑백사 진 뒷면에 작가가 기록한 작품제목(Magnobias), 작품크기(41x53cm), 작품가격($100),air mail 표기가 되어 있다. 제작년도는 캔버스 뒷면에 연필로 ‘1960’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수근 은 전시담당자가 쓴 Maghbias를 Magnobias로 캔버스 뒷면과 흑백사진 뒤에 똑같이 적었다. 목련(Magnolias)이라는 테마와 관련하여 박수근은 모두 5점의 유화를 남겼는데 년대 순으로 보면 1960년에 제작한 것이 두 점, 63년, 64년, 65년에 각각 한 점씩을 제작하여 이 소재에 지속적인 관심을 나타냈다. No.19가 비교적 목련의 풍성하고 화사한 측면을 묘출한 것이라면 60년작은 나무의 선적인 측면을 강조하였고, 63년작은 No.19와 표현이 거의 비슷하고, 64년 36) 1957년 공보처 홍보국이 작성한 자료(관리번호 CET 0053196)의하면, <앉아있는 여인>(1957년,하드보드에 유채)가 ‘국제조형미 술품-해외선전용품 16’으로 선정되었다. <앉아있는 여인>은 같은 테마로 박수근이 자주 그렸던 소재였다. 이외에도 유사한 구도의 유화로 1956년작, 50년대 후반, 1961년작, 1963년 작이 있다. 37) 이경성, 「제11회 국전의 수확」, 󰡔신사조󰡕,1962.11월호, p.248 38) 오광수, 「박수근의 소재의식과 기법의 독창성」, 2014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춘계 정기세미나 : 박수근 예술세계의 재조명, 2014, pp.16-17 376.

(13) 작은 이미지와 바탕의 혼융이 진행되어가는 과정을, 65년작은 이미지가 거의 추상화되는 단계 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박수근의 작품에서 흔히 목격되는 인물이나 풍경이 일체 배제되 고 세 그루의 목련만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림 9> 나무와 행인. <그림 10> 판잣집. <그림 10-1> 판잣집 소묘. No.2 <나무와 행인>(Tree and Passers-by)(50년대 후반)(그림 9)은 「코리안 리퍼블릭」 전시 리뷰에 등장하는 그림이다. 기사 속 작품 사진 밑에 친절하게 ‘Tree and Passers-by by Sookeun Pak’(그림. 6)으로 소개하고 있다. SAC 개인전에는 두 점의 <Tree and. Passers-by>가 출품되었는데 리플렛에 No.2는 3만환, No.20은 7만환으로 되어 있다. No.2 의 사이즈가 3호 (27.6 x 21.8cm)인 것으로 미루어 폭이 넓은 No. 20보다 작은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와 행인>과 동일 구도의 작품으로는 1962년작 <나무(고목과 여인)>를 들 수 있다. <나무와 행인>이 등장인물을 바닥에 닿게 배치한 것에 비해 <나무(고목과 여인)>는 적당한 공간으로 안정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표면의 텍스추어도 훨씬 고르게 균질화되어 있다. <나무와 행인>은 한때 최명윤이 <고목과 여인>으로 부르며 위작으로 주장하였으나,39) 실 은 SAC 개인전 출품작이며, 「코리안 리퍼블릭」에 소개되었던 그림이다. 만일 출처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면 위작 의심을 받을 뻔했던 작품이다. 감정가의 부정확한 판단으로 한 작품을 영원히 사장시켜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위험천만한 사례였다. 이 작품에 대해 천승복 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세 명의 마을 여인들과 예스러운 분위기의 앙상한 겨울나무 를 주제로 다루었”으며 박수근은 자신의 감정을 고유의 색조로 진솔하게 표현하여 “오늘날 한국의 가장 독창적인 작가의 한명으로 평가”40)받는 이유로 손꼽았다. 본 연구를 통해 작품제 목을 <고목과 여인>이 아닌 <나무와 행인>(Tree and Passers-by)으로 바로 잡는다. No.27. <판잣집>(1961)(그림 10)은 청계천에 들어찬 가건물들을 재현한 것이다. 50년대 이후 청계천에는 전란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가게도 차리 고 주막이나 식당을 열기도 했는데 이 그림은 바로 그러한 전후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화면 은 상하로 이등분되어 있는데 아래층에는 가게를 열고 장사를 하고 위층에는 주거공간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가설무대’41)처럼 설정되어 있다. 이 작품의 밑바탕이 된 소묘 <판잣 집>(1956)(그림 10-1)은 구도가 거의 동일하고 우측 하단의 인물이 어린이가 아닌 주모(酒 母)임을 알려준다. 도시풍경을 그렸으나 그속에는 도시서민의 생활상을 묘출하려는 화의(畫 意)가 깃들어 있다. 박수근은 기름장수, 시장 풍경,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 노상의 실직자들, 행상 등을 즐겨 그림으로써 동시대인과의 유대감을 한층 강화하려고 했다. 작가는 ‘자아의 내 면’ 또는 ‘예술의 미로’에 고립된 것이 아니라 과감히 이웃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음을 볼 수 있다.. 39) 「빨래터 과학감정 논란 새국면 맞나」, 연합신문, 2008.7.22 40) Synboc Chon, ibid., 1962.2.3 41) 오광수, 「작품해설」, 󰡔박수근 1914-1965󰡕, 열화당, 1985, p.132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377.

(14) <그림 11> 실직 흑백사진. <그림 11-1>. <그림 12> <꽃피는 시절>. 실직 뒷면. 흑백사진. <그림 12-1> <꽃피는 시절> 도판. No.7 <실직>(1961)(the Jobless)(그림 11)은 일자리를 잃고 실의에 빠진 두 명의 남성을 그린 것이다. 한명은 누구를 기다리는 듯 모자를 쓰고 한쪽 방향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모습이 고 다른 한명은 바닥에 누어 있는 모습이다. 황갈색의 두터운 질감표현은 고단한 삶이 더해지 는 듯한데 “물감을 겹쳐 발라 생겨나는 화면의 깊이는 작품의 주제를 한층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42) 유족앨범의 흑백사진 뒷면에는 작가가 기록한 작품제목과 크기, 가격(The Jobless, 41 x 21.5cm, $80)이 표기되어 있으며 작품 뒷면에 SAC展 작가소개서, 출품라벨, 그리고 University of Alaska 소장이력 관련 자료가 붙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소장이력을 추적해보 면 SAC 도서관 개인전에서 판매된 16점 중 No.7 <실직>과 No.49를 알래스카 대학으로 우송 하였는데 이중 <실직>이 1999년 미국 옥션하우스에 나왔다가 국내에 반입되어 대구 보건대 학 인당박물관이 소장하게 되었다. 개인전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이 이처럼 알래스카대학 에 있다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국내로 들어오게 된 셈이다. 작품 뒷면의 SAC展 작가소개서, 라벨, 알래스카대학 소장 기록, 그리고 국내외 옥션하우스의 기록, 연구팀의 실견을 통해 전시 이력과 소장이력이 꼼꼼히 적혀 있는 매우 드문 케이스이다. No.22 <꽃피는 시절>(Spring Season, Flowering Season?)(그림 12)은 유족 소장앨범 사진 에 작품제목(Spring Season), 제작년도(1961), 작품크기(95.0x130.0cm), 작품가격($ 450) 이 각각 표시되어 있다. 작가는 화면 가운데 큰 나목을 배치하고 그 주위에 작은 나무를 배치 하여 추운 겨울을 통과하여 이제 막 춘색이 드리운 야산의 풍경을 그려냈다. 이 작품은 작가가 <Spring Season>으로 직접 사진 뒷면에 적었고 1961년 개최된 <5.16 백일잔치 겸 8.15 광복 16주년 기념시화전>에 출품한 바 있다.43) 리플렛에 No.22 <Spring Season>이란 작품 이 있으나 가격이 2만환이어서 이 작품과 맞지 않고, 60만환으로 표시된 No.32 <Flowering Season>이 맞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1961년 <5.16 백일잔치 겸 8.15 광복 16주년 기념시화전>에 출품한 작품과 동일작이기 때문이다.44) 이 자료를 근거로 문헌화랑에서 개최 된 10주기 기념 <박수근>전에도 이 작품을 <꽃피는 시절>로 표기되었다.45) 그런데 이구열 (1990)은 <봄>으로 불렀고, 2009년 유작전 도록에도 <봄>으로 표기하였다.46) 전시 때마 다 이 작품을 다르게 불러왔으나 타이틀을 영어로 적는 과정에서 ‘Flowering Season’을 ‘Spring Season’으로 적어 실수가 생겼을 것으로 짐작된다. 작가의 착오가 있었거나 이경성의 기록이 틀리든지 둘 중 하나일 텐데 작품리스트에 50호 사이즈의 <소와 유동>이 45만환인데 60호의 <꽃피는 시절>이 60만환인 것으로 미루어 전자의 가능성이 높다.. 42) Indang's Possesions Ⅱ Remember to Forget, 대구보건대학 인당박물관, 2008, p.16 43) 이경성, 「1961년의 미술 전환하는 한국현대미술」, 󰡔사상계󰡕 9권 12호 통권 102호 (1961년12월), p.373. 44) 이경성, ibid.,p.373. 45) <문헌화랑 개관 1주년기념전 박수근>,문헌화랑 전시 도록, 1975, 10.10-25. p.1 46) <박수근 화백 유작전>(2009)은 1965년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열린 <박수근 유작전>을 리바이벌한 전시로 당시 출품된 79점 가운 데서 20여점을 빌려 개최한 박수근 오마쥬 행사였다. 1965년 팜플렛에 실린 흑백도판과 리스트를 기초로 칼라 도록을 발간하였 다. 이 전시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주최로 갤러리현대 두가헌에서 2009년 10.17일부터 10월 30일까지 개최되었다. 378.

(15) <그림 13> <모녀>. <그림 14> <절구질하는 여인>. <그림 14-1> <농가의 여인>. No.29 <모녀>(Mother and Daughter)(1950년대 후반)(그림 13)의 경우, 이구열 카드목록 에는 ‘1962 SAC展 출품작’(1975.9월 작성)으로 표기되어 있다. 박수근은 SAC 특별전에 아이 를 업은 여인, 젖먹이는 여인, 아이를 업고 절구질하는 여인 등 가사나 육아를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했기 때문에 채소를 다듬는 모녀 작품 역시 그의 작품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먹거리를 손질하는 모녀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가사 일을 하는 모녀 를 소재로 한 작품은 No.16 <곡식을 담는 모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창신동 마당에서 집안일을 하는 아내 김복순과 딸 박인숙을 그렸을 개연성도 충분하지만 속단하기는 힘들다. 이 모티브의 유화는 이것 한 점뿐으로 그 외 드로잉과 혼합재료로 된 작품이 각각 1점씩 있으 나 유화작품은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 No.31 <절구질 하는 여인>(Woman Milling Corn) (그림 14)은 유족앨범에 수록된 작품으로 SAC 개인전 출품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특히 박 수근은 이 소재에 애착을 가졌는데 이 작품은 1936년 선전에 출품한 <일하는 여인> (1936) 이래 <농가의 여인>(1938), 이연호 소장의 1952년작, 국전에 출품된 <절구> (1954), <농 가의 여인(절구질하는 여인>(1957) 등의 버전으로 제작되어왔다. 이 도상과 유사한 것으로 는 1957년작이 있는데 타이틀이 ‘농가의 여인’으로 되어 있어 ‘절구질하는 여인’과 차이가 있 음을 보여준다. 물론 단순히 그림을 보고 ‘농가의 여인’을 ‘절구질하는 여인’으로 번역했을 수 도 있겠지만 사진뒷면에 동일한 이름을 기록한 것은 이 그림뿐이다. 물론 1960년대에 제작한 <농가의 여인>(절구질하는 여인)이 있으나 6호(42.0 x 31.0cm) 사이즈의 소품이어서 해당 되지 않는다. 전시평에서 이 작품에 대해 ‘아이를 등에 업고 옥수수를 가는 여인을 묘사한 박수 근의 대형유화작품’47)으로 기술되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이 작품은 상대적으로 큰 사이즈였 을 것으로 짐작된다. 50호 사이즈의 <소와 유동>이 45만환이었는데 60호의 <꽃피는 시절> 이 60만환인 것으로 미루어 50만환의 <절구질하는 여인>의 사이즈는 50호와 60호의 중간 정도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유족앨범에 수록된 이 작품은 기존 절구와는 달리, 양식적으로 간결과 명료성을 지닌다. 이전 작품에 비해 형태가 단순화해졌고 면 처리도 훨씬 명증해졌다. 여인의 고된 가사노동을 보여주 는 이 작품은 천승복으로부터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이라도 작품을 통해 심금을 울리 는 절실한 감동을 전달받을 것”48)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림 15> <졸음>. <그림 16> <휴식>. <그림 17> <노인>. <그림 18> <노상에서>. 47) Synboc Chon, ibid., 1962.2.3 48) Synboc Chon, ibid., 1962.2.3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379.

(16) 4.3. 목록에 표시되지 않은 작품 목록에 미수록된 작품으로는 <졸음>과 <휴식>, <노인>, <노상에서> 등 4점이 있다. <졸 음>(a Silent)(그림 15)은 유족앨범과 리움미술관 소장 자료에 모두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구 열이 작성한 카드에 의하면, 이 작품은 1962년 용산의 SAC 개인전에 출품했던 작품으로 박인 숙이 여동생 박인애(1956-1967)를 다독이며 재우는 모습을 담고 있다고 적고 있다. 한편 유족앨범에는 자세한 내역, 즉 작품제목(a Silent), 작품크기(80 x 45cm), 가격($ 250), ‘Air Mail’이 표기되어 있다. 박수근은 박인숙이 몽땅 연필을 쥐고 숙제를 하거나 가사를 돕거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화폭 에 담았는데 이 역시 딸의 모습을 소재로 한 것이다. 대체로 어머니 대신 어린 딸을 돌보는 것은 방과 후 큰 딸의 몫이었는데 그런 광경을 흔히 아이를 업은 소녀에서 볼 수 있는 것에 반해 이 그림처럼 동생을 안고 있는 포즈는 흔치 않다. 이 작품의 밑그림으로 추측되는 1954년 작 드로잉 <졸음>은 유화작품이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비해 드로잉은 인물과 배경을 함께 그렸다는 점, 소녀의 동세를 약간 기울게 해 실재감을 살렸다는 점, 손과 머리의 디테일 등 약간의 차이점이 발견되지만 거의 유사한 구도로 되어 있다. <휴식>(Resting)(그림 16)은 특이하게도 노상의 사람들을 제각각 네 방향으로 배치시킨 그 림이다. 카드목록에도 나와 있지만, 실물이 남아 있어 카드목록이 팩트에 기초하여 작성된 것임을 알게 된 그림이다. 목록에는 ‘1962 SAC展 出品作’ 표시만 되어 있는데 반해 원작의 뒷면에 붙은 라벨에는 작품제목, 장소, 아티스트, 작품제작년도, 전시기간 등을 상세히 적어놓 았다. ‘1961년 가을’로 제작년도를 기록해놓아 시기를 확실히 밝혔다. ‘휴식’이라고 했지만 그 림을 보면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들을 제외하면 휴식을 취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이 주제는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있는 여인들을 그린 동명의 작품인 <휴식>(1960년 대)이 제목에 가깝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작가는 아마 한담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싶어했던 것같다. 중절모를 쓴 노인들이 모여 있는 장면은 <노인들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 던 이미지로서 이와 유사한 도상으로는 <근대 유화 명작전>(호암미술관,1990)과 추모 20 주기전, 30 주기전에 출품된 <노상의 사람들>(1960년대)이 있다. 마지막으로 <노인>(그림 17)은 이구열 카드목록에 등장하는 이미지로 노상에서 검은 우산을 쓰고 장죽을 입에 물고 있는 노인을 소재로 한 것이다. ‘노상’, ‘점보는 노인’, ‘우산 쓴 노인’으 로도 불리는 이 작품과 유사한 작품으로는 1960년작 <노인>이 있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 만 거리에서 사주나 점을 보아주던 모습은 5,60년대에는 퍽 익숙한 풍경이었다. 비슷한 구도 의 작품으로 1962년작 <노인>이 있는데 장죽을 입에 물고 있다는 점은 똑같으나 우산을 쓰지 않았다는 점과 턱을 괴고 있다는 점이 약간 다르다. 작가는 이처럼 사주 관상 보는 사람을 테마로 한 일종의 변주(變奏)로 비슷한 작품을 두 점 더 제작했는데 노인 이미지만을 오롯이 강조함으로써 우리들의 뇌리 속에 아물거리는 옛 추억을 환기시킨다.49) 이 작품은 현재 이미 지만 남아있으며 현존 여부를 알 수 없다.. <그림 18> 머피가 작성한 보도자료. <그림19> 전시 안내기사. 49) 오광수, 「작품해설」, 󰡔박수근 1914-1965󰡕, 열화당, 1985, p.146 380.

(17) 5. 결론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연구자는 본 논문에서 SAC 개인전의 진행과 출품작 등 세부내역을 살펴보았다. 써니 머피의 치밀한 전시준비와 홍보, 16점의 크고 작은 작품판매 기록과 <소와 유동>, <목련>, <꽃피는 시절>, <실직> 등 유존작품들이 전시 때의 일을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이를 통해 연구자는 그동안 막연하게 알려졌던 SAC 개인전의 개최장소, 출품작과 전시 규모, 판매 작품과 구입자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본 연구를 통해 박수근이 최소 33점, 최대 49점의 작품을 가지고 개인전을 열었다는 사실과 리플렛에 수록된 작가소개, 천승복의 전시평을 통해 박수근 개인전을 밝혀낼 수 있었다. 전시 실무는 써니 머피의 책임 하에 진행되었으며, 당시 미군부대의 여러 부속 기관에 전시회 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그들에게 생소한 박수근 화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써니 머피는 박수근의 회화에 ‘동양적인 유화’(Oriental Oil Painting)50)(그림 18,19)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이는 마가렛 밀러(Margaret Miller)가 ‘한국문화의 진정한 감각을 포착하려는 화가’51)로 부르거나 마리아 핸더슨(Maria Henderson)이 ‘한국의 자기를 연상시키는 백색과 회색의 톤’52)이라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 연구를 통해 연구자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 것은 전시장소의 문제였다. 지금까지 그의 개인전이 개최된 장소는 ‘오산 주한미공군사령부’로 알려져 왔다. 거의 모든 연구가 이것을 기정사실화해왔다. 그러나 자료로 확인한 결과 개최지는 ‘용산 주한미군사령부’ 영내 도서관이 었다는 것을 여러 신문과 보도자료, 리플렛, 출품 표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더욱이 항간에 알려진 바와 같이 미 공군 대위가 전시를 주선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하고 당시 SAC 도서관의 사서로 재직하였던 써니 머피가 전시를 총괄했다는 것도 새로이 밝혀냈다. 써니 머피는 치밀한 전시준비와 아울러 전시소식을 주한미군과 주재원들을 대상으로 한 신문 이나 TV에 알렸고, 한편 평론가이자 기자로 활약했던 천승복이 그때의 개인전을 영자지 「코리 안 리퍼블릭」에 비중있게 다루었다는 사실을 각각 확인하였다. 써니 머피의 글과 천승복의 글은 마가렛 밀러가 「디자인 웨스트」에 쓴 “박수근: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미술가”(1965) 이전 에 나온 글로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다만 이 글들은 그간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사후 반세기를 지나 전시장소와 기간, 출품작, 전시반응, 작품 구입자 등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출품작의 성격과 연관해서는 현재 확인된 SAC展 출품작 중에서 풍경과 정물은 일부에 그치고 대체로 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인물상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인물상 중에서도 대화하는 노인들, 어린 동생을 재우는 언니, 모녀나 모자, 거리의 행상, 골목의 아이들처럼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구한 것이 많았고,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하듯 서민들의 생활상, 실직자와 노동자, 뒷골목의 아이들, 일하는 여성 등이 자주 등장하였다. 이처럼 농촌생활의 모티브를 줄거리로 삼았던 초기에 비해 중년을 넘긴 후에는 도시와 변두리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물론 그가 풍경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지만 작가는 자신의 회화의 중심을 이웃의 삶을 비추는 데에 두었다. 작가는 전후의 엄혹한 시대상을 감내하며 주어진 삶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인물들을 보여주었다. 그의 평소 작품 기조인 ‘애린 사상’을 SAC 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출품작의 작품수법도 주목할 만하다. 1962년은 ‘돌기(突起)’ 패턴의 균질화 현상이 무르익어 가던 무렵인데 그 같은 특징을 <목련>(1960년), <소와 유동>(1962), <절구질하는 여 인>(1960년대 초반) 등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이 작품들은 작고하기 직전에 발표한 일련의 작품들보다는 덜하지만 선적인 요소가 평면에 침잠되어가고 요철현상이 화면을 뒤덮고 있다. 형태가 질료에 덮이기도 하고 아예 덮여 사라지기도 하며 때로는 새로 그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모습은 그가 얼마나 하나의 선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도 심혈을 기울였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여전히 형태를 지탱하는 윤곽선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전면회화를 방불케 하는 말년의 추상화 된 화풍보다는 형태적 구조의 화풍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출품작이 이런 특징 50) S. B. Murphy, Request Spot Announcement: Programs at SAC Library, 28 Jan.1962 51) M. Miller, “Park Soo Keun: Artist in the land of Morning Calm,” Designer West (1965. 2), pp.29-30. 52) 마리아 핸더슨, 「현대미술의 대표적 단면 (상)제3회 현대미술전을 보고」, 조선일보, 1959. 5. 11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381.

(18) 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들은 물감을 바르고 채 마르기전에 덧칠하여 레이어 효과 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작품들이 섞여 있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제작하는 그의 평소 모습으 로 볼 때 이것은 그의 개인전이 서둘러 개최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끝으로 SAC 개인전에 출품된 상당수의 작품이 아직 한번도 공개되지 않은 관계로 이를 연구 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며, 따라서 이 논문은 미공개작 연구를 위한 예비조사의 성격 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이 작품들이 공개된다면 정확한 내용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 다. 원화가 남아있는 작품에 대해서는 실견을 통해 좀더 자세한 도상연구, SAC 출품 라벨 여부, 그외 관련 자료 발굴, 그간의 소장이력 등을 추가적으로 조사함으로써 SAC 개인전의 실체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학계에서는 그 동안 박수근을 논의할 때 SAC 개인전에 대해 경미하게 취급해왔으나 구체적인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보다 객관적 수준에서 개인전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전시는 그의 작품이 무르익은 시점에 개최되어 결코 가볍게만 볼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소와 유동>, <절구질하는 여인>, <꽃피는 시절>, <모자> 등을 출품한 것으로 미루어 그가 이 전시에 얼마나 중요성을 두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집약하는 표면의 균질화 현상을 출품작에서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즐겨 다룬 가족과 이웃의 일상을 비롯하여 노상과 귀로, 가족, 일상풍경 등이 망라되어 있어 SAC 개인전은 그의 후기 예술세계를 헤아려볼 수 있는 전시였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김복순, 󰡔박수근 아내의 일기󰡕, 현실문화, 2015. 삼성미술관, 󰡔박수근 1914-1965󰡕, 삼성미술관, 1999. 서울디자인재단, 중앙일보 편, 󰡔박수근 50주기 기념특별전: 국민화가 박수근』, 서울디자인재단, 2015. 오광수, 󰡔박수근󰡕, 시공사, 2002. 이경성, 󰡔근대한국미술가논총󰡕, 일지사, 1974. 이구열, 󰡔나의 미술기자 시절󰡕, 돌베개, 2014. 이대원, 󰡔한국근대미술사전편찬을 위한 조사연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1974. 최순우, 󰡔최순우 전집 제4권 우리미술 우리문화󰡕, 학고재, 1992. 최열, 󰡔박수근 평전, 시대공감󰡕, 마로니에 북스, 2011. 한국미술연구소편, 󰡔자료로 본 우리의 화가 박수근󰡕, 시공사, 1995. 󰡔문헌화랑 개관 1주년기념전 박수근󰡕, 문헌화랑 전시 도록, 1975. 󰡔박수근 1914-1965󰡕, 열화당, 1985. 󰡔한국근대회화선집 6 박수근󰡕, 금성출판사, 1990. 박수근미술관 편, 󰡔새로 보는 박수근 : 박수근 100장면󰡕, 수류산방, 2015. 박수근 인터뷰, 「화가 박수근, 참은 자에게 복이 있다」, 󰡔학원󰡕, 1963.8. 김주삼, 허우령, 「박수근 회화의 제작기법」, 󰡔호암미술관 연구논문집󰡕 제5호, 2000. 오광수, 「박수근의 소재의식과 기법의 독창성」, 󰡔2014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춘계정기세미나 : 박수근 예술세계의 재조명󰡕(박수근미술관, 2014). 이경성, 「1961년의 미술 전환하는 한국현대미술」, 󰡔사상계󰡕 9권 12호 통권 102호(1961.12.). 이시나, 「박수근 작품의 양식계보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01. 황금찬, 「눈물의 화가」, 󰡔문학세계󰡕, 2010.4월호. 정현아, 「모티브가 갖는 친밀감의 형성원류로서 평양시대」, 󰡔미술평단󰡕, 한국미술평론가협회, 2014. 여름호. 이경성, 「제11회 국전의 수확」, 󰡔신사조󰡕, 1962.11월호. Pak Soo Keun 개인전 리플렛, SAC Library, 1962. 1.31-2.4. Indang's Possesions Ⅱ Remember to Forget, 대구보건대학 인당박물관, 2008. Sunny Murphy, Yi, Myung-Hui, Koreana Collection, Seoul : Youngsan Library,1982. Margaret Miller, 「Park Soo Keun : Artist in the Land of Morning Calm」, Designer West, 1965.2. 「SAC Library to Hold Showing of Korean Oils」, Korean Republic, Jan 27,1962. 「45 Paintings By ROK Artist To be Shown」, Pacific Stars & Stripes, Jan 30,1962. 동아일보, 경향신문, 조선일보, 강원도민일보.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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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그림
그림    으로  소개하고  있다 개인전에는  두  점의
그림  실직  흑백사진&lt;11&gt;  &lt; 그림  11-1&gt;  실직  뒷면 그림  꽃피는  시절&lt;12&gt;  &lt; &gt; 흑백사진 그림  꽃피는  시절 도판&lt;12-1&gt;  &lt;&gt;  실직 그림  은 일자리를 잃고 실의에 빠진 두 명의 남성을
그림  모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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