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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문학적 물음2 : 인간은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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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 인간과 자유: 인간은 자유로운가, 결정되었는가?

2. 인문학적 물음2 : 인간은 자유로운가?

두 번째 인문학적 물음에서는 인간과 자유에 대해 다룰 것이다. 즉 인간은 자유로운가 아니면 결정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그 문제이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 인간과 그의 이성적 자아 발견과 더불어 계몽의식이 정치적 시민혁명을 통해 인권선언을 할 즈음에서 인간의 자유는 그 핵심적 화두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 한 자유의 문제와 그것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자유’ 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P. 엘뤼아르의 “자유”가 그것이다. “....나의 책상 위에/ .... 모레 위에 눈 위에/나는 쓴다 너의 이름을 ....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나는 쓴다 너의 이름을 ....”라고 읊어지는 시로 이러한 반복 어구를 길게 늘어놓고선, 끝에 가서 “....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자유여”라고 마친다. 사실 엘뤼아르는 자유를 위해 이런 피맺힌 시를 쓴 것이 아니라고도 하지만(애인을 위한 노래였다고 함), 그의 시는 자유를 위한 울부짖음으로 해석되어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도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80년대 운동권의 대표적 송이 된 이 노래가 P. 엘뤼 아르의 연애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언짢아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엘뤼아르의 시 가운데 아름다운 것으로는 “미소”라는 것이 있는데, 맨 마지막 구절이 특히 감동적이다.

“.... 슬픔의 끝에는/열려진 창이 있고/불켜진 창이 있다”(Au bout de chagrin/une fenêtre ouverte/une fenêtre eclairée)라는 구절이다. 인생은 곧 슬픔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인생의 슬픔 은 묘하게도 항상 그 끝에는 열려진 창과 불켜진 창이 있다는 것, 즉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의 미와 위로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슬픔이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더욱 큰 의미와 위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 니, 젊은이여 슬픔에 좌절하고 절망하지 말고 그것을 끝까지 추구하여 그 의미의 세계를 발견할지어다.

엘뤼아르의 “자유”와는 정반대의 시로 한용운의 “복종”을 들어 보았다. 복종은 아무래도 자유의 반대이 다. 그러나 한용운의 시를 읽어가다 보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 하지만은/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아름다운 자유보다 달콤합니다/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라는 구절이 나온 다. 여기서 말하는 복종은 자유의 반대라기보다는 자유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최고 의 복종은 곧 자유라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복종은 자유에 반대되는 구속이지만, 복종하고 싶어서 하는 최고의 복종은 곧 자유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두 모순이 하나로 통합되는 정신의 영역에 서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만끽한다는 것을 시인은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에는 자유공원이 여럿 있다. 올 가을 여행을 가지 못한 사람을 위해 자유공원을 소개할까 한 다. 대표적인 두 곳으로 한 곳은 인천에 있다. 인천에 있는 자유공원은 1888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라고 한다. 서울의 파고다 공원보다 9년 일찍 세워진 공원으로, 제국주의 열강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제물포항을 개방하면서 중국이 차이나타운을 건설하면서 조계지라는 형식으로 치외법권이 적용 되는 지역에 세운 공원, 즉 자유무역의 상징으로 자유공원이다. 중간에 보이는 동상은 6·25전쟁 이후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한 후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다. 봄이 되면 여의도에 못지않게 벚꽃이 아름다워 벚꽃축제 가 벌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광주에 가면 5·18 자유공원이 있다. 인천의 자유공원이 경제적 자유 혹은 무 역의 자유를 상징하는 공원이라면 광주의 자유공원은 말 그대로 정치적-사회적 자유를 부르짖던 5·18의 정신을 기려 세운 공원이다. 광주의 번화가인 상무지구에 있는 상무역에 내리면 5·18기념공원과 함께 김대 중 컨벤션 센터가 있는데, 거기에 있는 것이 자유공원이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공원문패와 더불어 시 탑이 있다. 이 시 탑에는 5·18의 피맺힌 울부짖음이 시로 노래되어 있는데, 아직도 광주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 런 울분과 한이 서려 있는 것 같다. 공원 내로 들어가면 자유관이 있어서 5·18관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 고, 그 안쪽에는 당시의 군사재판과 영창을 재현하는 건물들과 모형들이 있다. 5·18이 되면 여기서 영창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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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6개의 영창이 있다고 함). 그 다음에 보이는 그림은, 인천 차이나 타운에서 자유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이 입구를 지나면 이렇게 공원 안뜰이 나오고, 올 가을 놀러가지 못한 사람 들 보시라, 이 공원이 제법 괜찮다. 그리고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탑도 있고, 공원을 나오는 마당에는 아미가 라는 예쁜 커피숍이 있는데, 혹시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할 사람들은 기억해 둘 만할 듯 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자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특히 밀그램 실험이라는 심리학의 실험을 가지고 자유의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서구의 전통은 자유를 자유의지에서 찾았다. 사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자유의지이고, 자유는 우리가 확보해 나가야 할 권리인 것이다. 이러한 자유의지를 서구는 전통적으로 신의 목소리 혹은 양심이라고 하면서 매우 신성한 것으로 바라보았다. 즉 자유 및 자유의지는 대단히 긍정적이고 절대적인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서구는 근대의 시민혁명과 계몽주의에서 보듯이 이러한 자유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고 인권선언과 더불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투쟁하였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의 대변자 가 곧 칸트이다. 칸트는 자유를 선의지, 즉 도덕적 의지에서 찾고 도덕은 그것이 자유에 존재론적이고 인 식론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신성한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선한 존재 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면 서구의 전통은 비판되고 검토되기 시작한다. 물리학에서부터 수학에서 시작된 이 러한 비판과 검토는 나아가 사회학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종래에 절대적으로까지 추앙되던 자유는 더 이상 그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특히 과학의 세례를 받은 심리학에 서 심리적 실험을 통해 증명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유명한 실험이 “밀그램 실험”이다. 이 실험은 자유의 지가 권위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인간의 자유가 얼마나 허약한가를 반증하고 있 다. 이에 따라 인간은 과연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선한 존재인가 하는 회의가 잇따르고, 여기에 일침을 놓는 것이 로렌츠의 『공격성에 관하여』라는 책이다. 즉 그는 인간이 더 이상 자유를 추구하는 도덕적 존재 가 아니라 공격성과 같은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동물실험을 통해 경험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Obedience to Authority”라는 제목은 밀그램 실험을 기록한 책 제목이다. 이 책은 자유냐 아니면 권 위냐 하는 문제를 내걸고,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이지만 그 자유는 권위 앞에 무력하다는 것을 말한 다. 실험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이 실험을 통제할 감독관이 있고,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선생과 학생 이 앉는다. 선생은 학생에게 문제를 내고 학생이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을 가한다. 이때 전기충격은 15볼트 로부터 시작해서 450볼트까지 올리도록 되어 있는데, 450볼트는 사람에게 치명적일 정도로 심한 전기충격 이다. (물론 이 실험은 실제상황이 아니라 학생의 연기에 의해 전기충격을 받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 그리 고 감독관은 끊임없이 더 높은 전압을 올리도록 선생을 자극한다.) 당초 실험을 시작할 때 밀그램은 인간 은 자유를 추구하는 선한 존재이므로 50볼트 이상 전압을 올려야 되는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 험을 거부하고 0.1퍼센트 정도가 450볼트에 이르도록 전기충격을 가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무려 65%의 사람들이 450볼트까지 전기충격을 가했던 것이다. 그리고 인문학을 하며 인간의 자 유에 대해 확신을 한다는 사람들조차도 30%정도가 450볼트까지 전기충격을 가했다.

실험을 주관한 밀그램은 당초 인간은 선한 존재이고 그의 자유의지를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실험은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 주고 있고, 실험에 참여했던 어떤 선생은 “선생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 다”는 말을 남기며 나왔다고 한다. 이 실험결과는 다음과 같은 의문에 해답을 준다고 밀그램은 본다. 즉 나치시절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유태인들의 학살에 대해 왜 침묵하고 유태인의 감시자 역할을 했는가, 그리 고 광주사태에서 계엄군은 동족이나 마찬가지인 항쟁민들을 왜 무참히 학살했는가, 대부분의 한국인은 왜 광주의 일에 침묵했는가에 대해 답을 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유는 권위 앞에서, 특히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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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자비하게 강력할 때에는 자유의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그런 자유라는 것이다. 이는 먼저 있던 사람이 나주에 들어온 사람은 괴롭히는 것과 같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처럼 인간에게는 어떤 공격성 이 내재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철학자 아도르노는 그의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에 서 인간의 이성이 시민혁명을 비롯한 근대의 여러 혁명을 통해 자신을 구하는 해방의 열쇠였으면서 어째 서 나치와 같은 야만상태에 빠질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과연 인간은 자유로운가,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그의 자유는 무력하기 짝이 없고 오히려 인간은 그런 이중적 속성 속에서 타인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공격성을 내재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 K.로렌츠는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K. Lorenz는 동물행동학 혹은 비교행동학의 권위자로 그는 주로 오리나 거위와 목욕하는 사진으로 유 명하다(새들은 알을 까고 나온 후 처음 본 사람을 어미로 인식한다고 한다. 그래서 로렌츠를 어미로 인식 하는 새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어려서부터 집에 동물이 많고 특히 갈가마귀와 친밀하게 지내던 그 의 취미가 이후 동물행동학이라는 새로운 연구분야를 탄생시키는 인연을 낳았다. 그는 독일의 막스 프랑크 연구소에서 행동생리학 부분 소장을 담당했다. 그 연구성과로 비교행동학 성립에 선구적 역할을 했고, 이 러한 것이 인정되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1973년). 그의 이러한 동물비교행동학은 이후 심리학에서 심리세계를 보이지 않는 정신적 실체로부터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부터 연구할 수 있는 터닝 포 인트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로는 『솔로몬 왕의 반지』가 있는데, 이 책 동물행 동학에 대해 보여 주는 아름다운 명문으로 유명하다. 솔로몬 왕은 신비스러운 마법의 반지를 가지고 있었 다. 그는 지혜의 왕 혹은 솔로몬의 영화를 이끌었던 왕이었으나 그의 방탕한 생활은 그의 사후 이스라엘을 분열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 마법의 반지로 동물과 말을 나눌 수 있었는데 어느 날 꾀꼬리로부터 그의 9백 99명의 아내 중 한 사람이 젊은 사내와 통정을 한다는 것을 밀고 받고는 분노하여 그 반지를 집 어던져 버렸다. 그래서 그 이후론 동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고 하는데, 로렌츠는 그런 마법의 반지 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동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하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존재 는 그 자체로 마법이고 신비이므로 그러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동물행동을 관찰하고서 느낀 점을 보여 주는데, 그것이 특히 인간의 윤리적 문제를 상 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그 가운데 문화적 상징을 분석하는 대목이 있다. 늑대와 비둘기가 그것 이다. 우리는 곧잘 늑대를 악한 것으로 사악한 육식동물은 살인자로 묘사하곤 한다. 그 반면에 비둘기를 평화의 새라고 해서 올림픽이나 매스게임의 개막식에서 비둘기를 날려 보내곤 한다. 그러나 로렌츠의 동물 행동 관찰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문화적 상징이라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의 영향으로 노아의 방주 때부터 비둘기는 평화의 새이고 까마귀는 욕망과 타락의 새로 이야기된 데서 그러한 상징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물행동을 관찰해 보면 그와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즉 늑대는 개싸움을 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개싸움이 시작될 때 둘은 상대편의 기선을 잡기 위해 울음을 지르거나 이상한 으르렁거림을 하고 또한 상 대의 뒤편의 냄새를 맡기도 한다. 그러한 순간 순식간에 싸움이 붙고 상대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될 때 진 쪽은 자신의 가장 치명적인 급소를 상대에게 내민다. 이때 그러한 급소를 물어서 진 상대를 죽이는 경우는 결코 없다고 한다. 이미 졌다고 항복한 편에 대해서는 공격을 자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신사적인 행동, 사 회적 절제력이 개나 늑대의 싸움에서는 아주 흔하게 관찰되는 경우라고 한다. 무리를 지어서 사회적 행동 을 하는 개나 늑대의 경우에는 그러한 사회적 절제력 혹은 윤리성이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지만 체득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로렌츠는 묻는다. 인간은 어떤가 하고. 호머의 서사시에 나오는 영웅들은 이런 행동에 별다른 마음의 동요가 없었고, 그런 점에서 그들은 늑대만도 자비심이 없었다. 항복한 자를 보호한 다는 결투의 윤리가 정립된 건 음유시인 시대의 기사도에 이르러서였다. 기독교적 기도사도에 이르러서야 늑대에서는 자연적 충동의 자제력에 해당하는 윤리가 정립된 것이다. “나는 그 늑대가 상대를 물지 않은 것이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가 그를 신뢰했다는 것은 더욱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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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물이 다른 동물의 기사도적 품격에 자기의 생명을 맡기다니!”12)

로렌츠는 아프리카 산 비둘기와 염주 비둘기를 키웠는데, 이들 암수 한 쌍을 넓직한 새장에 넣어 두었 다. 미래의 부부가 다투는 싸움을 하찮게 생각했고, 사랑과 온화함의 상징인 비둘기가 상대에게 해를 줄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며 빈으로 외출을 나갔다. 그런데 다음 날 돌아와서 보니 무서운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염주비둘기는 새장 구석에 엎어져 있었고, 뒷머리, 목 뒷부분, 등 전체와 꼬리까지 털이 빠져 있을 뿐 아니라 껍질까지 벗겨져 상처가 완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이 상처의 한가운데를 먹이를 낙아챈 독수리 처럼 아프리카 산 비둘기가 누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끄는 명상에 잠긴 듯한 얼굴 표 정을 하고 이 놈은 끊임없이 밑에 있는 놈의 상처를 쪼고 있었다. 도망가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일어 서면 그 놈은 금방 뒤따라가서 도망가는 놈을 날개로 쳐서 쓰러뜨리고선, 자신은 피로해서 눈을 감으면서 도 그 무자비한 살인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로렌츠는 묻는다. 몇몇 물고기를 제외하고 자기 종족에게 이렇게 처참한 상처를 내는 척추동물을 그는 본 적이 없다고.

이렇게 늑대에게서 윤리를, 비둘기에게서 공격성을 보게 되는 데서 우리의 문화적 상징이 우리의 전통 에 의해 얼마나 심하게 조작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기독교를 위시한 문화적 전통은 정치적으로 기득권 층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우리의 문화의 주축을 형성한다. 이를 정치철학적은 용어로 “Mirand Credenda"라고 부른다. Credenda는 ‘신조’라는 뜻이고 Miranda는 ‘미끼’라는 의미이다. 즉 신조를 위한 미끼라는 의미인데, 이는 기득권층이 피지배민을 정치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그들의 믿음을 조작하고 그러 기 위해서 상징을 조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지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있는 많은 나라들이 기독교국가인 것을 보면 그들이 유럽의 식민지였다는 것 이외에도 그들은 같은 아프리카 국가끼리는 싸우 면서도 유럽인에 대해서는 같은 동지라고 느끼는데, 그것은 기독교에 의해 그들의 믿음이 조작되었기 때문 이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 및 그것이 품고 있는 상징들에 대해서도 정치적 조작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로렌츠는 그의『공격성에 관하여』에서 “왜 동물들은 싸우며 인간마저도 그 짓을 할까? 정말로 삶의 본 능과 죽음의 본능이라는 게 있는가”라고 묻는다. 종래의 프로이드 류의 심리학은 인간에게 생명과 사랑 등 유기체를 존속시키려는 삶의 본능(Eros)과 증오와 공격 등 유기체를 파괴시키는 죽음의 본능(Thantos)이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죽음의 본능으로서의 그런 공격적 본능이라는 게 있는가? 이것은 로렌 츠가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밀그램 실험에서 인간의 이중성이 드러났고, 인간의 자유의지가 그처럼 허약 한 것이라면 그에게는 공격적 본능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렌츠는 그런 건 없다고 말한다. 물고기의 색깔이 그를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새의 목소리나 포유류의 냄새가 그들의 영역을 표 시하는 기능을 하는 것은 어떤 타고난 선천적 본능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있는 공격성 또한 자신을 보존하는 데서 형성된 경험적 산물, 즉 유전적인 진화의 산물이지 어떤 선천적인 요소 가 아닌 것이다. 공격은 생명보존의 원리로서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된 생득적 양식이며 진화의 산물이지 선 천적인 본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로렌츠는 동물이나 인간에게 공격성이 있는 게 사실이고, 특히 인 간에게는 그의 자유의지만큼이나 공격성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것은 죽음의 본능과 같은 선천적 요소가 아니라 경험적이고 진화론적인 생명보존의 원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번 물어보자. 인간에게 자유는 어떤 방식으로 주어져 있는가? 인간의 자유는 크게 생물학적 제한과 환경적 제한 속에 주어져 있다. 생물학적 제한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심장이 뛰고 소화를 하는 불수의근의 작용으로부터 생체리듬의 갖가지 요소들인데, 그러한 것은 운명적 조건으로서 어 쩔 수 없는 것들이다. 아마 과학이 발달하면 이러한 생물학적 제한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지는 몰라 도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절대적인, 벗어날 수 없는 제한조건인지도 모른다. 다른 한 12) K. Lorenz,『솔로몬왕의 반지』. 김천혜 역, 문장, 1998, 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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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환경적 제한은 사회-제도적 제한 속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가 하면, 정신-문화 적 제한 속에서 역사나 도덕 그리고 편견을 가지고 살도록 되어 있다. 이 두 가지 환경적 제한 가운데 전 자는 우리가 임의로 방기할 수 없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를 강하게 제약하는 제한이다. 그러나 후자는 우리 가 그 속에서 살고 있지만 어느 정도는 그것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능 한 자유를 말한다면, 인간에게 확보가능한 자유의 영역은 바로 정신-문화적 영역이고, 그러한 제한으로부 터의 자유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정신-문화적 제한으로부터의 자유는 곧 자기다움의 정립에서 확보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자기 다움의 정립이라는 것은 곧 인문정신이 아닐까? 인간의 자유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한되어 있고, 그 러한 제한 속에서 그 자유의지마저도 밀그램의 실험에서 보듯이 허약하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이고 자유에서만이 진리 속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한 인간의 운명적 지향이 자유라 면, 그러한 자유는 곧 정신문화적 제한으로부터 해방되는 데서, 즉 자기다움의 정립에서 비로소 조금이나 마 확보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자기다움은 곧 인문정신이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그들의 자유로 살 다가 간 사람이라고 말하는 자유인들이 있다. 고흐가 그 대표자가 아닐까. 고흐의 이 그림은 귀를 자른 뒤 에 정신분열증을 겪고 나서 그린 그의 자화상이다. 고흐는 고갱을 만난 뒤 그를 스승으로 모시다가 고갱의 그림에는 인간에 대한 ‘공감’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의 그림이 단지 그림으로 된 증권투자라고 비난 한 후 결별한다. 그리고 나서 심한 정신적 충격을 겪는데, 그 때 유곽에서 만난 까무잡잡하고 작은 여자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귀를 한쪽 잘라달라고 말하는데, 심한 정신적 충격이 발작으로 이어져 그는 실제로 귀 를 잘라 그녀에게 준다. 그 선물을 받고 난 후 그녀 또한 발작을 일으키는데, 아무튼 고흐의 이러한 이상 한 행각은 그의 영혼이 예술에 의해 지피면서 그 충격이 병적 징후로 발휘된 것이다. 실제 그의 삶은 동생 테오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받으면서 궁핍하게 이어져 나갔지만 그 자신이 믿는 예술혼을 위해 사회적 제 약이나 문화적 제약을 벗어나 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한편 원효가 그러한 자유인이 아닐까 한다. 원효는 신라의 대승으로 충남에 있는 태고사를 창건했 다고 하는데,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을 가던 중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아(心外無法) 불교의 대중화에 힘 썼다고 한다(정토종). 의상은 당나라 유학 후 천태종을 창건했지만, 그는 당시 불교의 선종과 교종의 대립 을 화해시켜서 한국적 상황에 맞는 불교를 수립하고자 했다. 일심(一心)과 화쟁(華爭) 사상을 가지고 선종 과 교종, 중론과 유식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했고, 대중으로 나아가 불교의 교리를 노래로 만들어 전하며 본래의 마음을 깨달으면 정토(淨土)를 이룰 수 있고 성불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신라 백성들이 부처의 이름을 알고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게 되었다고 한다.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난 설총 이후에 스스로를 소성 거사(小性居士)라고 부르며 불교대중화에 힘썼고, 불교를 널리 보급함은 물론 불교경전 연구에도 힘써서

『대승기신론 소』등을 썼다. 이렇게 원효는 기존의 인습이나 전통에 구애되지 않고 새로운 대중적 불교를 진작하는 데 기여한 자유인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고흐의 그림 가운데 “슬픔”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초기 고흐의 그림으로, 전도사가 되는 데 실패한 후 그림에 몰두하여 스승인 마우베와 결별한 후 만난 시앵이라는 창녀를 그린 것이다. 시앵은 젊지 않은 창녀로 아이가 하나 있었으며 또한 임신중이었고 그녀와 같은 어머니가 있었다. 고흐는 이렇게 버려진 사람에게 동지로서의 공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나중에 그녀와의 결혼까지 가는 인연이 된다.

이 그림에는 보잘 것 없는 여인이 그려져 있는데 이 여인의 웅크린 동작과 젖꼭지에 말하지 않아도 그녀 의 슬픔이 얼마나 처절한가, 잔인한가 하는 것이 들어 있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 고흐는 미슐레의 말 “어 떻게 이 지상에서 한 여자가 홀로 버림받아야 하나?”라고 적어 놓는다. 이렇게 예술은 나의 슬픔을 통해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타인의 슬픔을 통해 내 슬픔이 이해받아 결국 인간에 대한 궁극적 사랑의 정신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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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러분도 어떻게 하면 나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는지, 그리고 확장시킬 수 있는지, 나의 나다 움을 정립하는 데 나의 자유가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그렇게 하는 길인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종이 나누어 준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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