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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7, No. 2,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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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주 영맛그림미술교육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에서 미술사, 미학, 예술경영을 배우고 오하이오 주립 대학(The Ohio State University) 에서 미술교육으로 석사(MA)를 받았다. 수년간 디자인 전문지 기자로 근무하면서 디자인과 예술에 관한 다양한 저술을 하였고,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인코리아 등 다수의 국제 디자인 전시를 기획, 연출하였다. 현재는 디자이너, 예술가, 그리고 미술교육에 대한 저술 활동 및 강연을 하며 ‘맛그림미술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예술은 가끔 우리를 속인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전부라고 믿고 즐기며 누리다가, 어느 순간, “미안, 사실 진실은 우물 속에 들어가 있단다”라며 한 번씩 우리의 뺨 을 후려치곤 한다.
미국 최대 미술 정보 웹사이트, “아티스티(Artsy)”의 미
술사 편집자, 줄리아 월코프(Julia Wolkoff)의 2018년10월 1일 자 칼럼 내용 일부를 편역하여 옮겨본다. 그녀의 칼럼 을 읽고 나니, 마치 이빨 사이에 껴서 안 빠지는 음식 찌꺼 기로 답답한 기분이다. 그리고 묻게 된다. 예술 작품을 만 드는 창작자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선(善)”해야 하는
Artist Essay 아티스트 에세이 (8) 드가의 발레리나, 그 추악한 진실
The Rehearsal of the Ballet Onstage, ca. 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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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CE, 제37권 제2호, 2019가? 결과물로서의 작품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창작자의
“의도”와 별개인가? 추함과 아름다움의 경계를 누가 정의 하는가? 진실은 늘 각자의 몫이라는 또 하나의 사실 앞에 서, 우리는 마른 목을 적셔줄 우물을 찾게 된다.
꽃 같은 튀튀(tutu) 복장의 어린 여성들을 주제로 약 1,500여 점의 회화, 판화, 드로잉 작품들을 남겼던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지금도 전 세계적인 사 랑을 받고 있는 프랑스 근대 화가들 중 하나다. 드가의 작 품 속 여인들은 마치 6살 아이의 첫 공연 무대와 같은 설렘 과 순수함으로 가득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그 의 작품들은 오늘날의 우리들로서는 충격적인 당시의 매 춘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발레 공연은 오페라 공연을 위한 서막 수준에 그쳤으며, 무용수의 노출된 각선미를 즐기러 온 관람객들 의 눈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눈요기 감이었다. 과거 엄격 했던 발레는 이제 뒤틀린 카바레가 되어 선정적인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매춘은 발 레리나들에게 현실이었다. 오페라하우스, 팔레 가르니에 (Palais Garnier)는 당시의 성 산업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 었을 정도다. 무대 뒤편에 자리한 무용연습실은 무용수들 이 공연 전 몸을 푸는 곳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일종의 남 성들의 사교 클럽의 장소이기도 했다. 돈 많은 남성 오페 라 후원자들은 이 곳에서 비즈니스 및 사교를 위한 모임을
열었다. 물론 발레리나들에게 모종의 제안을 하는 장소이 기도 했다
거기에는 뒤틀린 권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개는 빈곤 층 노무자들의 여식이었던 어린 소녀들이 아카데미를 찾 았다. 그렇게 발레단 소속이 된 어린 단원들은 “작은 생쥐 들(petits rats)”이라고 불렸다. 그들 대부분은 주 6일 발레 를 ‘노동’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갔다. 역사학자 로레 인 쿤스(Lorraine Coons)는 “예술가인가 요부인가?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작은 생쥐들 (Artiste or coquette? Les petits rats of the Paris Opera ballet)”이라는 에세이에서 당시 명성을 날렸던 무용수들 그 누구도 매춘 행위에서 자 유로울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드가가 남겼던 발레리나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회화가 아닌 조각상이다. 왁스(Wax, 밀납)라는 소재는 노 안이 시작된 40대 중반의 드가에게 적합한 소재였다. 실 물 크기의 ‘작은 생쥐(petit rat)’를 묘사한 “14세 소녀 무용 수(1878-81)”는 드가의 생애 중 단 한 번만 전시되었다. 이 조각상으로 드가는 큰 스캔들에 휘말렸으며 그 후 다시는 조각 작품을 선보이지 않았다.
“작은 생쥐”로서 이 조각상을 위해 포즈를 취했던 소녀
는 마리에 반 구뎀(Marie van Goethem)이라고 알려져 있
다. 그녀 또한 당시 발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 산업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조각상이 세상에 공개된 후 얼마지
The Dance Class, 1874. / Little Dancer Aged Fourteen, 1878-1881.연재기사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7, No. 2, 2019 …
261 않아 그녀는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결석이 많았다는 이
유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그녀를 제적시켰던 것이다. 아 마도 그녀는 빨래 근로자이자 매춘부였던 어머니, 그리고 역시나 같은 일을 했던 언니의 삶을 답습했을 것이다.
당시 프랑스 어린 발레리나들에게 삶은 잔인했다. 비 록 드가가 무용수들을 성적으로 취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 지만, 그의 무정함은 다른 면에서 드러났다. 드가는 무용 수들의 역동적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몇 시간씩 포즈를 취하게 했으며, 모델들은 뒤틀린 자세로 고통을 견뎌야 했 다. 그는 무용수들을 “작은 원숭이 여자애들”이라고 부르 며 “꺾인 관절”을 포착하려 했다. “내가 여자를 짐승으로
보는 경우가 너무 많기는 하지.” 그가 친구 화가 피에르 조 르주 잔니오(Pierre Georges Jeanniot)에게 남긴 말이라 고 한다.
드가는 자비심 없는 고약한 성정의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미소지니스트(misogynist)였으며, 그의 여성 에 대한 인식은 당대에 이미 악명이 높았다. 심지어 그의 동료들조차 그의 여성을 향한 적대감을 두려워할 정도였 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의 감상자들은 감성을 불러일으키 는 풍부한 드가의 스케치와 감각적인 색채에 찬사를 보낸 다. 예술 형식주의적 관점에서 드가의 무용수 작품들에 찬 미를 보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좁은 감상에 그치 면 고통과 학대를 받았던 소녀들이 보이지 않으리라. 조금 더 가까이 보라. 화가가 어떻게 발레의 저속한 책략을 잘 라내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던 날것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참고한 이야기
“The Sordid Truth behind Degas’s Ballet Dancers”
by Julia Wolkoff (Artsy’s Art History Editor)
원문 링크: https://www.artsy.net/article/artsy- editorial-sordid-truth-degass-ballet-dancers
에드가 드가의 1895년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