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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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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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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인삼의 계절이다. 인삼 수확이 시작되는 9,10월이면 주산지인 홍천, 파주, 풍기, 금산, 증평, 서산 등지에서 인삼 축제가 열린다. 땅속에서 4~6년 을 자라 대지의 기운을 송두리째 안고 밖으로 나오는 신비의 식물에 대한 감사제이자 풍년을 바라는 기원 제이다. 하지만 각 지역의 인삼 축제는 판매 장터만 활발할 뿐 전통과 역사, 감성과 흥미를 주는 요소는 빈약하다. 축제로서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스토리, 즉 인삼의 유래, 인삼과 지역의 관계, 기원제의 전통 과 설화 등 많은 이야기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고려인삼의 역사

옥순종 한국인삼공사 홍보실장

제2권 3호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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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고려인삼의 역사

매년 8월 마지막 주 수요일,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리는 토마토 축제는 1944년 토마토 값 폭락에 분노한 농부들이 시의원들에게 토마토를 던진 것에서 유래했다는 기원을 가지고 있듯 세계의 각 축제는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인삼 종주국임을 자부하면 서도 인삼의 기원과 전통,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가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기록유산으로 지정되고, 강강술래와 남사 당놀이 등도 세계문화유산 무형문화재 목록에 올랐다. 우리의 전통 의학 서적과 놀이가 세계 적으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에 고무된 인삼학계와 업계 일각에서는 고려인삼 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삼이 세계 유산으로 인정받으려면 인삼의 효능이외에도 인삼의 인문학적 의미와 한반도가 종주국임을 증명하는 역사적 고증, 인삼의 문화적 가치 등을 입증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인삼 재배의 기원은 물론, 인삼의 어원과 경제적 가치 등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다.

조선 시대 우리나라에서 인삼의 종자를 받아가 재배를 시도한 일본의 경우, 『인삼보』(1726 년), 『인삼변』(1728년), 『화한인삼고』(1746년), 『인삼경작기』(1747년) 등 인삼 재배와 관련한 전문 서적을 이미 18세기에 간행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언제, 어디에서 재배하기 시작했고, 재배법은 어떻게 변천되었는지에 대한 정설(定說)을 찾을 수가 없다. 이런 실정에서 고려인삼의 세계 유산을 주장하긴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인삼의 인문학 적 연구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1. 인삼의 어원

인삼(人蔘)은 우리 고유어로‘심’이다. 한자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에서는‘參’으로 표기하 고 우리나라는‘人蔘’으로 표기한다. 중국 문헌에 최초로 삼이 소개된 것을 근거로 중국을 인 삼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인삼의 자생지가 한반도와 만주 일대인 점을 감안할 때 중국 기원설은 많은 허점을 안고 있다. 중국 문헌에 인삼 자생지로 기록된 중국 산시 성 타 이항 산맥의 상당 지방은 기후와 지질학적으로 인삼의 자생지로 내세우기에는 무리다.

한반도에서 오래전부터 인삼이 발견되고 이용해오고 있지만 세종대왕 이전에는 문자가 없 어 인삼을 우리식으로 표기할 수 없었다. 중국 문헌에 최초로 인삼이 등장한 것은 전한 시대 의 사유가 저술한『급취장』으로‘參’으로 표기되었다. 전한 시대는 한사군이 설치된 시기로 중국과의 문물 교류가 활발하던 시기였다. 이때 한반도의 인삼이 중국으로 전해져 인삼의 효 능이 알려지고, 귀한 약재로 다루어져 인삼이 문헌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한다.

어떤 사물이 외부에서 유입될 때는 명칭도 함께 들어오게 마련이다. 담배가 타바코에서, 남 포가 램프에서 유래된 것처럼. 인삼 또한 중국에 전해지면서 고유어인‘심’이란 명칭까지 따 라갔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처음 들어온 문물에‘심’을 표기할 한자가 필요했을 것이고,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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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권 3호 61

의 발음과 유사한 [sim]에 해당하는 한자로 參₩蔘₩浸₩侵₩ 가 있는데 중국 고대 문헌에서 인 삼을 나타내는 한자로 이들 문자를 이용한 듯하다.

‘심’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우리 문헌은 성종 20년(1489년)에 편찬한『구급간이방언해(救 急簡易方諺解)』이다. 이 문헌에서는‘人蔘’이라 쓰고, 언해할 때는‘심’으로 번역해 기록했 다. ‘심’의 명칭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민족 대대로 내려오는 고유어로 인삼을 지칭해왔음을 알 수 있다. 즉‘심’이 중국으로 건너가 현재의 한자어‘蔘’으로 변천했을 것으 로 본다.

2. 진셍(ginseng)의 어원

사물의 이름은 그 특성과 기원을 규정지으며 역사와 사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 하다. 인삼의 국제어인 진셍(ginseng)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진셍은 인삼의 일본식 발음에서 파생된 것으로‘인삼’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 다. 그러나 일본에서 인삼은‘고라이닌징(こうらい にんじん)’으로 부른다. 본래‘닌징(にん じん)’은 당근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려를 뜻하는‘고라이(こうらい)’를 앞에 붙여 표기한 것 이다. 중국에서는 인삼을 베이징식 발음으로‘런션(renschen)’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볼 때 진셍의 어원은 일본도 중국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앞서‘蔘’이‘심’에서 유래했듯 진셍도 근 원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삼의 공식 학명인 진셍은 러시아 학자 메이어(Carl Anton von Meyer)가 1843년 세계식 물학회에‘Panax ginseng C. A Meyer’로 등록하면서 공식화되었다. 여기서‘Panax’는 그 리스어로 모든 것을 뜻하는‘Pan’과 의약을 뜻하는‘Axos’가 결합된 것으로 만병통치약을 의미한다. 메이어에 앞서 1754년 식물학자 칼 폰 린네는 인삼을 만병통치약이란 뜻으로

‘Panax’라 불렀다. 그는 Panax 뒤에 잎이 다섯이라는 의미로 라틴어의 Quinque(다섯)와 Folium(잎)을 붙여 캐나다 남부에서 자란 서양삼을‘Panax Quinquefolium’으로 명명했다.

그 후 독일 학자 네스(Nees von Esenbeck)가 1833년 그의 저서『Icoves Plantarum Medicinalium』에서 고려인삼을‘Panax shinseng var. coraiensis Nees’라고 기술했다. 네 스는 아시아에서 자라나는 인삼을 북미에서 자라는 서양삼과는 다른 새로운 종으로 보고

‘Panax shinseng’으로 명명하고, 고려를 의미하는‘coraiensis’를 뒤에 붙였다.

‘Shinseng’은 인삼의 중국 고명(古名)인 상삼(祥蔘)의 발음[Xiangshen]에서 연유한 것으 로 서양으로 건너가 점차 발음이 변해 shinseng을 거쳐 ginseng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인삼 학술 용어가 중국 발음에서 유래한 것은 인삼이 중국을 통해 서양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어원학적으로 보면 인삼을 가리키는 고유어인‘심’이 대륙을 거쳐 진셍으로 변천 된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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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삼 재배의 기원

한반도에서 인삼 재배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를 밝힐 수 있는 기록을 찾기는 힘들다. 여말 선초설, 조선 중기설이 있고 풍문으로 금산, 풍기, 화순이 재배 시원지라 는 설이 있다. 대표적인 설이 여말 선초설인데, 원나라의 인삼 조공 요구가 극심해지면서 산 삼을 남획하는 바람에 산삼이 귀해지자 민가에서 산삼의 씨앗을 받아 산속에서 키우는 산양 삼 재배가 시도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명나라 이시진(1518~1593년)이 저술한『본초강 목』에 인삼을 소개하면서“자숙(子熟)할 때 수취(收取)하고 시월에 하종(下種)한다”라는 기록 이 나온다. 수취와 하종은 재배와 관련한 농사 용어다. 조선의 인삼 재배 기술이 일반화되어 중국에 알려지기까지는 최소 100~20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1400년 전후 에 인공 재배가 암암리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또 1542년 경상도 풍기에서 주세붕이 인삼 재배를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다. 풍기군수로 부 임한 주세붕이 인삼 때문에 도탄에 빠진 농민을 구제하기 위해 재배법을 개발해 농민에게 전 수했다는 주장이다. 10년 후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해 그곳에서도 인삼을 재배한 것으로 전해 지지만, 구전일 뿐 기록은 없다.

개성 출신 학자 김택영(1830~1927년)의 문집『소호당집』과 장지연의『위암문고』에는 전라 도 화순군 동복면의 인삼 재배가 기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소호당집』에는“숙종 (1674~1720년) 때 전라도 동복현의 한 여인이 산삼 씨를 받아 재배에 성공해 그것을 최 모가 전수해 재배했는데, 최 모는 개성인이라고 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문헌비고』(1770 년)에는 전라도 동북면 최씨라는 사람이 파종해 가삼(家蔘)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김택영의 주장은 이를 근거로 한다.

인삼 재배와 관련한 설은 많은데, 정확한 기록이 없어 각 지역마다 시배지임을 내세우며 경 쟁하고 있다. 인삼 재배에 대한 기록을 찾기 힘든 것은 예로부터 산삼만 삼으로 인정하고 재 배삼인 가삼은 하등급으로 취급해 조공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암암리에 재배한 것으로 추정한 다. 『정조실록』에 보면 우의정 김종수가 왕에게 인삼과 관련한 소청을 하며“가삼을 진상하다 계속 퇴짜를 맞는다는 목격담과 함께 독점 상인들을 처벌해달라”는 기록이 나온다. 재배 인삼 이 진상품으로서 퇴짜를 맞다 보니 농민들이 비밀리에 재배하고 이를 전수했을 것으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인삼 재배 기록을 남기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인삼 종주국임 을 자부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인삼에 대한 광범위한 기록 찾기와 인삼과 관련한 각지 의 유적에 대한 복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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