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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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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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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승민*

목 차

1. 서론- 한국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흐름 2. 은폐된 역사를 향한 동시대의 다양한 미학적 실천

3. 맺음말- 역사와 예술의 접경지대로서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

<국문초록>

광주학살 비디오에서 촉발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는 태생에서부터 민주주의의 산물이자 동반자였다.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 역시 주류 역사에서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를 알려내고 바로잡는 역할로 출발해 각 시기별로 계몽적, 성찰적, 미학적 시기 를 통과하며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글은 2010년대 한국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드러나는 미학적 실천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 동시대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현주소 를 짚어보고자 한다. 특히 역사의 보조물로 혹은 소재와 주제 중심으로 역사 다큐멘 터리 영화를 접근하는 방식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를 역사쓰기 와 영상예술의 접경으로서 접근하고자 한다. 동시대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과거사 에 대한 자명한 지식으로서 역사에 머물지 않고, 왜곡된 역사를 폭로하는 것에서만 머물지 않고, 현재 역사 담론을 풍성하게 하고 인문학적 사유를 확대하고 공감하는 차원까지 확장하는 다양한 미학적 실천을 시도하고 있다. 이 글은 그 동시대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지는 현재성과 공간성에 보다 초점을 맞추면서, 시론적 연구의 한계를 각 양식을 대표하는 구체적 작품 분석을 통해 실증적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 양식에서 <자백>(최승호, 2016), 현장투쟁을 다룬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소성리>(박배일, 2017), 나를

* 용인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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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한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옵티그래프>(이원우, 2017)를 통해 역사쓰기 방식을 분석하면서 각 작품이, 각 양식이, 나아가 동시대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가 시도하는 미학적 실천을 살펴보고자 한다.

주제어 : 민주주의,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 은폐된 역사, 미학적 실천

1. 서론 - 한국의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흐름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들이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구전역사에서 문자 역사로, 문자역사에서 영상역사로의 역사 기록 방식의 변화는 단순히 서술 매체의 다변화로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기록 매체의 변화는 역사를 대하고 해석하는 시각과 태도와도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동시대 주요 매체인 영상 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종합예술인 영화라는 매체 답게, 구전역사나 문자역사의 기록 방식을 인터뷰 형식의 구술이나 자막 형 식의 텍스트 설명으로 포괄하는 동시에 영상기록이라는 구체성과 시간성 을 아우른다. 여기에는 기록 매체로서 기계 장치인 카메라에 대한 신뢰 역 시 간과할 수 없다.1) 무엇보다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기록은 대상에만 한정되지 않고, 기록하는 자와 기록되는 자, 그리고 이를 해석하는 시선의 상호관계 혹은 상호해석이 모두 기록가능하다. 기록 주체와 대상에 따라 역 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때때로 이중적 기능을 가진다. 권력을 가진 자의 입 장에서 역사를 기록하여 이를 주류 이데올로기로 설파하고 감각을 식민화

1) 카메라에 기록된 이미지는 대상을 외형적으로 유사하게 재현한다는 속성으로 인해, 인간의 개입없이 사실을 담지한다는 인지가 구축되었다. 다시 말해, 기계적이고 비인간적 장치인 카메라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인간의 심리적 믿음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 같은 믿음은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기록 이미지는 규정하고 증명할 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지적받고 도전받고 있다. 오히려 변용 가능한 이미지와 편집으로 인해 다양한 의미 생성과 구축이 가능하다는 인지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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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기능을 가지는 반면, 주류 역사에서 은폐되고 조작된 역사의 참상을 들추어 고발과 성찰을 촉발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기록은 현재와 미래를 통제하려는 권력의 수단이 될 수도 있고, 시민적 자유와 사회정의를 수호하 는 민주사회의 힘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의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 는 후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실천해왔다.

민주주의와 함께 태동한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의 자장 안에 놓인 한국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대안역사(counter-history)를 구축하는 정체 성을 강하게 가진다. 80년대 광주비디오 보급에서 출발한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독재 정권에 맞서 ‘영상을 통한 현실 참여’를 표방하면서 부조리한 사건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여 기록하고 폭로하는 사회운동이자 역사 기록 물로 기능했다. 또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생성 저변에는 국가 권력과 결탁한 당시 언론과 미디어의 대항마로서 역할이 존재했다. 역사 다큐멘터 리 영화는 국가 권력에 의해 은폐된 사건을 추적하고 폭로하면서, 주류 미 디어가 설파하는 일방향의 ‘국정 역사’에 균열을 내고 가려진 눈을 일깨우 는 각성의 매체로 기능했다. 이처럼 한국의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영상운 동과 대안언론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출발에서부터 민중의 시선을 대변하였다. 국가폭력에 침묵해야했던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한국 민주화의 동반자이자 산물로 지금까지도 그 역할을 지속해오고 있다.2)

한국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가 보다 본격적으로 제작된 시기는 과거사 진 상조사 작업과 맞물린다. 일제 강점기와 분단, 한국전쟁, 군사 독재정권, 그 리고 최근 국정논단에 이르기까지 은폐된 과거사 문제를 껴안고 현재에 이 른 한국사지만, 정작 과거사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1987년 6월 항 쟁 이후이다. 그 뒤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공적 영역에서 진상규명을 논

2) 이승민,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와 민주주의 연구 : 6월항쟁을 다룬 영화를 중심으 로」, 뺷기억과 전망뺸 37, 2017, 52~5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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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하게 되고,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설립되면서 과거 청산 작업이 이루 어지기 시작했다.3)이 시기 과거사 청산작업은 생존자와 경험자들의 기억 을 바탕으로 한 구술증언과 당시 자료들을 발굴해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었 고, 이를 기록하는 영상과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도 이 시기에 함께 제작되 었다. 다만 진상조사 관련 단체나 기관 의뢰로 제작된 영상기록물의 경우는 독립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라기보다는 역사기록의 보조물로 기능한 경우가 많았다.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이들 영상 기록물을 기초 자료로 대안적 인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를 꾸준히 제작해왔다. 과거청산의 궁극적인 목적 은 은폐된 과거를 알려내고 바로잡는 과거 청산만이 아니라 왜곡된 기억을 정정하고 잘못된 프레임을 교정하여 과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를 통한 새로운 정체성 수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초기 은폐 된 사실을 알려내는 설명적이고 고발적인 방식에서 점차 계몽과 성찰을 동 반한 방식, 나아가 소통을 통해 감각과 공감을 촉발하여 역사적 상상력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기억 투쟁을 지속해왔다.4)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흐름은 현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흐름 뿐 아니라 역사학의 흐름과도 맞물린다. 역사학은 과거 사건과 과거 시간 중심에서 점차 살아있는 인간과 역사적 지층을 가진 장소 중심으로 변화해왔

3) 이 시기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위위원회, 진실화해위원회 등의 과거사 진상규명 단체들은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2000), 진실화 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2003) 등을 제정하였다. 김무용, 「한국 과거청산의 제도화 와 국민통합 노선의 전망」, 뺷한국민족운동사연구뺸 53호, 2007, 285면.

4)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고찰한다. 첫 번째 시기는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의 태동기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계몽적 시기‘이다.

두 번째 시기는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로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동반한

’성찰적 시기‘이다. 그리고 세 번째 시기인 2000년대 후반부터 지금에 이르러, 다큐멘터리 영화는 더 이상 객관적 기록물만이 아니라 감독 한 개인이 현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함께 기입하는 ’조립된 기록물‘임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일어난 ’미학적 시기‘이다. 이 글은 이 시기를 주목한다. 남인영, 이승민 외, 뺷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오늘- 장르, 역사, 매체뺸, 본북스, 2016, 7~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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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신문화사의 영역에 들어서면, 역사학은 존재론적 공간에 보다 주목하면서 사건 중심의 서사적 측면 보다는 공간 중심의 인식론으로 재편성되고 현재성 과 동시성의 감각에 주목한다.5)심지어 ‘기억의 공간’을 화두로 삼아 장소를 통한 역사쓰기도 새롭게 등장한다.6) 한국의 경우, 2000년대 후반에 들어 보수 정권의 등장으로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세월이 흐르면서 사건 당사자나 피해자들의 기억 증언이 불가한 상황에 이르렀다.

당사자의 기억과 공적 영역의 자료에 기대는 진상규명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 에서 새로운 역사쓰기 방식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시기는 신자유주 의의 전지구적 확산으로 시공간이 재편성되면서 선형적 시간 중심의 역사 인식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생겨난다. 이같이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역사학 은 신문화사를 기반으로 존재론적 공간에 주목하면서 사건 중심만이 아니라 사건의 공간에 시선을 두기 시작한다. 2010년도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공간에 주목한 역사학은 공간을 통해 기억과 역사를 형상화한다. 여기서 공간은 불변 하는 고정된 물리적 형상물이 아니라, 기억의 형상이자 흔적으로 다층적인 의미의 감정을 품은 탐색의 대상이다. ‘실존하는 공간’을 통해 변화하는 시간 속에 얽혀있는 ‘역사적 진실’과 마주하는 것이다. 2000년대 후반의 역사 다큐 멘터리 영화는 이러한 역사학의 ‘공간적 전환’이라는 흐름 속에서 섬세한 관찰이자 기록의 수집으로 새롭게 의미의 좌표를 설정한다.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와 역사학의 흐름에 맞물린, 동시대 역사 다큐멘 터리 영화의 현주소를 읽어내기 전에, 한국의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흐름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1990년대 후반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시간 중심적 사관 의 역사쓰기와 맞물려, 과거 일어난 사건을 연대기적이고 증거 중심의 논리로

5) 역사학자 산타 아리아스는 공간이 더 이상 지리학의 분과학문에 종속된 것이 아니리며 인문학 뿐 아니라 역사학에서도 공간을 성찰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고 주장한다.

- Santa Arias, “Rethinking space : an Outsider’s View of the Spatial Turn”, Giojournal 75, 2010, pp.29~35.

6) 피에르 노라, 뺷기억의 장소뺸, 김인중, 유희수 외 옮김, 나남, 2010, 3~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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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헤쳐 은폐된 과거사를 설명하고 고발한다. 이 시기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은폐된 과거사를 폭로하기 위해 사건 당사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재현 불 가한) 당시 사건을 재연하면서,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자료화면과 전문가의 증언을 동반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태생에서부터 주류 이데올로기와 그를 대변하는 주류 언론의 대항마로 정체성을 구축한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사실여부를 판별하며 ‘사건’을 보도하는 방송 다큐멘터리의 르포르타주 구성 을 차용하되, 역사 속에 존재한 ‘사람’을 통찰하는 방식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주로 사건의 당사자들과 장기간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사건의 주제를 심화 시키고 이를 연작의 형태로 제작한 작품들이 다수 제작된다. 대표적인 작품으 로는, 일본군 강제 위안부의 존재와 참상을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담아낸 <낮은 목소리>시리즈 (변영주, 1995, 1997, 1999), 전향을 거부한 장기수와 그 가족들과 함께 장기간 생활하면서 양심수의 실태 와 상황을 담아낸 <어머니의 보랏빛 수건>(김태일, 1995), <송환>(김동원, 2003) 등이 있다. 또한 제주 4.3사건을 당시 생존자의 증언과 미군정 보고서 자료들로 구성한 <레드헌트> 연작 (조성봉, 1997, 1999), 인혁당 사건의 진상 을 관련자와 가족들의 인터뷰를 통해 담아낸 <4월 9일>(김태일, 2000), 베트 남 전쟁 동안 한국군에게 희생당한 베트남 민간인들의 기억을 담은 <미친 시간>(이마리오, 2003), 의문사 사건을 당시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 성한 <진실의 문>(김희철, 2004), 광주민주화운동을 생존자와 경험자들을 중심으로 풀어낸 <오월애>(김태일, 2010) 등도 이 시기 제작되었다.

이어 조금씩 과거사에 초점을 맞춘 선형적 시간 구성에서 벗어나 현재의 시간을 기입하는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가 등장한다. 현재성의 징후는 <낮 은 목소리> 후속편에서도 이미 드러나고 있지만,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 보다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참사 이후 유가족의 355일 투쟁을 다룬 <떠나 지 못하는 사람들 - 끝나지 않은 이야기>(장호경, 2012)는 순차적 시간성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구성으로 사건과 기억을 배치한다. 용산 참사 당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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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건물의 그 시간에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두 개의 문>(김일 란, 홍지유, 2012)은 사건 직전과 직후를 나선형 구도로 맴돌면서 반복하며 퍼즐 맞추기를 시도한다. 이들 작품들은 사건 당시로 들어가기 전에, 사건 의 지금 현재를 액자구성으로 담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지금 현재, 이어 사건 당시로 들어가고, 다시 영화 시작보다 더 가까운 현재로 나오는 구성 은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 동시성을 일상화하는 시대감각을 영화적 흐름 속 에 담아내면서, 기존의 선형적이고 인과적인 흐름에서 벗어난다. 선형적 시 간 구성을 와해한 징후를 보다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으로는 <만신>(박찬 경, 2013)과 <미국의 바람과 불>(김경만, 2011)을 예를 들 수 있다. 김금화 만신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영화 <만신>은 인물의 생애사를 파편적인 복수의 시간성으로 겹쳐놓는가 하면, 한국 근현대사의 일련의 사건들을 과 거 자료화면으로 풀어낸 <미국의 바람과 불>은 자료를 선택, 배치, 나열하 여 데이터베이스적인 구성을 취한다.

이처럼 2000년대 후반 등장한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사건’보다는 ‘사 건의 공간’에 본격적으로 주목한다. 과거사에 대한 증거자료나 이를 겪은 인물의 경험담 중심이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났던 ‘현재/공간’을 포착하여 공간이 품고 있는 기억과 경험을 조우한다. 이때 공간은 역사적 시간의 주 름이 쌓인 지질학적 대상이기도 하고, 기록자가 조우한 정동적 대상으로 등 장하기도 한다. 또한 공간은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시간과 기억의 형상 물이기도 하다. 현재/공간에 대한 이같은 주목은 공적인 과거와 유기적 관 계가 상대적으로 적은, 일종의 “영구적 현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인의 감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7) 흥미롭게도 이 시기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포착한 역사의 공간은 기억이 가진 단편성과 파편성을 형상화하 여, 사건의 장소를 파편적이고 단편적으로 나열하고 배치해 드러낸다. 공간 이미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거나 공간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방식에서 벗

7) 에릭 홈스봄, 뺷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뺸, 까치, 1997, 13~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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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 사건의 장소를 (사건의 장소인지 판단이 불가할 정도로) 콜라쥬 형식 으로 파편화한다. 이들 파편적 공간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쉽게 보이기도 하지만 전혀 보이지 않고, 때론 보고 싶지 않지만 보아야만 하는 기억의 장소이자 역사의 장소다. 영상기록으로 포착된 혹은 재현된 역사적 공간은 수많은 기억과 경험을 품고, 세월을 내재한 채 침묵하고 있는 존재 이다. 이처럼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드러난 역사의 공간은 근대사의 폭 력을 치른 내부 형상으로 일종의 기억의 보고로 존재한다. 공간을 통해 과 거와 현재의 두 역사적 시간을 겹쳐내면서 정동적 대상으로 전환한다.

역사적 공간의 풍경을 역사의 공간이자 기억의 공간으로 담아낸 대표적 작품은 다음과 같다. <레드툼>(구자환, 2013)은 한국전쟁 직후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다루면서,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지 만 지속적으로 보도연맹 학살지인 창원, 밀양, 진주 등 경남 지역의 숲 속을 담고 있다. 지금은 과천으로 이전한 소격동 기무사(국군기무사령부) 건물 을 기록한 <기이한 춤 : 기무>(박동현, 2009)는 한발 더 나아가 군부 독재 시대를 상징하는 건물의 철거 직전 모습을 마치 공간의 증명사진을 찍듯이, 그러나 사운드를 통해 역사적 상상력을 추동하여 공간이 품은 과거사를 재 조명한다. 제주 4.3사건을 다룬 <비념>(임흥순, 2013) 또한 생존자들과 피 해 가족들의 증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영화는 그들의 모습과 말에 집중하 기 보다는 제주의 현재 풍경에 주목한다. 한라산, 제주해변, 감귤 농장 등과 더불어 제주 올레길을 4.3 사건 당시의 학살 장소로 표시된 지도와 겹쳐낸 다. <거미의 땅>(김동령, 박경태, 2012) 역시 미군기지 이전으로 사라져가 는 경기 북부지역 기지촌을 세 명의 기지촌 여성들의 기억과 경험을 중심 으로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그녀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동시에, 그녀들이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는 기지촌 공간의 현재를 담아내면서 인물의 기억과 공간을 연동시킨다. 숲, 비석, 폐가, 기지촌 마을 골목 등은 영화 속에서 서사로 편입되기 보다는 기억의 편린으로 형상화되어 기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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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자 역사의 공간으로 기록된다.

이처럼 역사를 기록하여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는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시기별로, 양식별로 다양한 실천들을 수행한다. 이 글은 2010년대 동시대 한국의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드러나는 미학적 실천을 양식별로 짚어보 면서,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를 소재와 주제 중심의 역사 보조물로 인지하는 제한적 접근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 한다.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을 영상을 통해 기록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역사와 예술의 접경 나아가 역사 그 자체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가 역사를 기록하는 다양한 방법은 역사 기록의 방법론에 머물지 않고 예술의 영역과 아우르는 미학적 실천으로 간주될 수 있다. 미학은 사회적으로 표준화된 것이라기보다 ‘감성적 인식’을 다루는 영역이다.8)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가 기록하고 해석하고 재현하는 역사는 과거에 대한 자명한 지식에 한정되지 않고, 현재의 역사 담론을 풍성 하게 하고 인문학적 사유를 확장시키는 차원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역사 다큐 멘터리 영화에서 드러나는 양식은 곧 미학적 실천과 연동된다.

특히, 이 글은 영상매체가 가지는 시청각적 이미지가 작동하는 다양한 방 식을 구체적 작품 분석을 통해 실질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최근 주목받은 세 작품을 중심으로 최근의 경향이자 미학적 실천을 살펴보는 이유는, 한편 으로는 현재 진행 중인 시론적 연구가 가지는 한계를 보완하고, 다른 한편 으로는 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을 통해 동시대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학적 실천을 직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 작품으로는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최승호, 2016)을 통해 서 간첩단이라는 왜곡된 역사를 추적하는 방식을, 현장투쟁을 다룬 액티비 즘 다큐멘터리 영화 <소성리>(박배일, 2017)을 통해 사드배치 공간인 소성 리 공간(현장)과 한국전쟁의 역사를 겹쳐내는 방식을, 사적 다큐멘터리 영

8) 하르트만, 김성윤 역, 뺷미학이란 무엇인가뺸, 동서문화사, 2012, 163~16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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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옵티그래프>(이원우, 2017)를 통해 ‘나’를 경유하는 역사쓰기 혹은 ‘내’

가 역사를 대면하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2. 은폐된 역사를 향한 다양한 미학적 실천

한국의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를 기록하고 알려 내는 한국 민주주의 의 ‘기록투쟁’의 장이다. 이때 기록은 증거이자 기억으 로, 왜곡된 사실에 대한 고발과 저항, 나아가 기억을 재구축하여 정의를 촉 발하고 응답하는 역할을 해왔다. 기록은 일방향의 시선이 아니라 다양한 사 회계층의 목소리를 수집․보존하여 그 기록들이 당대 사회를 대변하는 증 거기록이 되어, 인류의 기록할 권리, 기억될 권리, 알권리 등을 지켜내면서 기록유산으로 보존된다.9) 한국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기록투쟁은 초기 정보 중심의 설명적, 계몽적, 사건 중심에서, 성찰적이고 사유를 촉발하는 자기반영의 방식으로, 나아가 인물과 정서적 교감 뿐 아니라 지금/여기의 공간 중심으로 다양하게 실험되고 실천되어 왔다. 특히 과거사 자체를 조명 하기 위해 사건의 경험자와 생존자의 과거 사건의 기억 중심에서 현재 중 심으로 과거를 소환하고 나아가 과거와 현재를 접속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현재적으로 재구성하고 재맥락화한다. 다시 말해, 과거 역사 다큐멘터리 영 화가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다루며 역사를 기록했다면10)동시대 역사 다 큐멘터리 영화는 지금 현재 살아있는 인간의 시간과 장소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 과거와 현재의 접속을 새롭게 시도하고 있다.

기록과 기억투쟁을 전면화한 한국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 연구에서 매체

9) Randall C. Jimerson, Archives Power : Memory, Accountability, and Social Justice, Society of American Archivists, 2009, pp.35~42.

10) Philp J. Ethington, “Placing the Past ‘Groundwork’ for a Special Theory of History”,

Rethinking History, 2007,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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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차원은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21세기는 기록의 포화 상태에 이 르렀다. 기록은 인류의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항공 촬영이나 드론으로 찍은 시리아 폭격 현장에서부터 일상에 숨겨진 몰래 카메라까지 다양한 기 록 장치를 통해 제작 및 접속 가능하다. 역사 기록 역시 있는 그대로의 기록 이라는 순진한 믿음에 갇히지 않고, 선택과 배제가 일어나는 카메라의 속성 을 인지하고, 스마트폰과 SNS의 일상화로 인한 동시대인의 동시성과 현재 성의 감각이 반영된 기록 방식을 고려하고 짚어내야 한다. 역사적으로 봐서 도, 다큐멘터리 영화는 매체의 다변화 현상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발전한 장 르이다. 즉발적인 사건 현장을 기동력 있게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8mm 필름에서 시작해 비디오카메라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로 이어지는 일 련의 카메라 기기의 간편화와 대중화 흐름과 함께 발전해왔다. 촬영 기기의 간편화와 대중화로 인해 ‘기록에 대한 민주화’ 과정이 함께 일어난 것이다.

기술과 자본 나아가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록 매 체들의 등장과 대중화는 정보의 통제와 위계화에서 벗어나 누구나 기록하 고 기록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상영 방식 또한 프로젝터의 확산 으로 인해 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만이 아니라 다양한 열린 공간과 집단에 서 공동체 상영과 영화제 상영, 심지어 개인 기기에서도 관람이 가능해지면 서 ‘검열’이라는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소통가능한 대안적 담론을 구축가 능하게 하였다.11)이 글은 급변하는 시대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역사 다 큐멘터리 영화를 분석하고 분류하여, 동시대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학 적 실험과 실천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저널리즘, 액티비즘, 사적 다큐멘 터리 세 영역을 집중하여, 이를 대표하는 최근 개봉 및 영화제 작품들을 분 석하면서 동시대 대항 역사 기술의 방법과 실천을 짚어보고자 한다.

11) 매체 다변화 속에서 동시대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다양한 실천 사례 및 동시대적 의미는 별도의 지면을 활용해 논의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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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퍼즐 맞추기로서 역사 : <자백>

대항 역사이자 대안 언론으로 정체성을 구축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는 지난 10년 탄압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외연이 확장되고 다양해지는 상황을 맞았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저널리즘 양식의 다큐멘터리 영화의 성장이다.

블랙리스트 파동을 겪으며 공영 방송의 저널리즘 프로그램은 유명무실해 지고, 해당 프로그램의 제작 PD들은 검열과 탄압을 받으며 대량으로 해직 되는 상황을 겪었다. 이들 중 일부는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계로 유입되어 영화의 형식으로 저널리즘이 가진 사회에 대한 비판적 발화를 이어나갔다.

일명 무비저널리즘12)으로 호명되는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는 방송 기 반 PD/감독이 제작한 탐사보도 형식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다.

무비저널리즘은 기존의 방송 저널리즘 방식을 이어받아 이미 발생한 사 건의 새로운 진실을 찾아가는 구성을 갖는다. 은폐되거나 왜곡된 과거사의 진실 추적은 그 자체로 한국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자장 안에 놓인다. 주 로 사건의 흩어진 정보를 찾아다니고 취합하여 사건의 다른 면을 들추어 새롭게 진실에 접근하는 무비저널리즘은 고발과 추적의 구조를 기본 구성 으로 한다. 무비저널리즘은 이미 일어난 사건을 기반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가설과 추론이 전제된다. 영화는 이를 증빙할 수 있 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과거 사건 을 두고 고발과 추적, 가설과 추론의 구성을 가진 무비저널리즘은 동시대 인기 장르인 스릴러 영화와 유사하다. 일종의 지적게임이자 심리전을 통해, 무비저널리즘은 스릴러 장르가 가진 특유의 관객 몰입과 동참을 촉발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을 추적해 그 실체를 파헤

12) 무비저널리즘에 대한 학문적 정의는 아직 불완전하다. 비평적 용어라기보다는 현장 비평 속에 만들어진 조어로, 무비저널리즘은 방송 저널리즘 프로그램의 구성과 인력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이동하여 제작된 일련의 작품들을 일컫는다. 이상호 기자/감독의 <다 이빙벨>, <김광석>, <다이빙벨 그후>, 최승호 피디/감독의 <자백>, <공범자>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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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자백>(최승호, 2016),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다이빙 벨>

(이상호, 2014)과 <그날, 바다>(김지영, 2018),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 의문 을 품은 <더 플랜>(최진성, 2017) 등이 있다.

최승호 감독의 <자백>은 2016년 하반기 국정농단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 작한 직후 개봉된 작품이다. MBC PD 수첩에서 해직된 후, 탐사저널리즘 뉴스타파 앵커이자 기자로 활동하던 최승호 PD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 건에 관심을 가지고 추적을 시작한다. 영화는 40여개월간 추적 끝에 간첩조 작사건과 그 배후의 국정원의 실체를 파헤쳐내고, 한국의 레드 콤플렉스의 설계와 실체에 드러낸다. 다시 말해 <자백>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수많은 간첩단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는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 자장 안에 위치 지을 수 있다. 이처럼 간첩단 진실을 파헤쳐가는 <자백>은 ‘미스터리 액션 추적극’이라는 홍보 문구에서부터 스릴러 구성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다. 영화는 유호성이 간첩으로 지목된 증거가 여동생의 자백이라는 국정원 의 주장에 이어 그 자백이 강압에 의한 자백이었다는 여동생의 인터뷰 장 면에서 시작된다. 이 장면은 실제로 감독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 기이자 확신이다.13) 이 후, 영화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집요하게 추 적해 들어가면서, 간첩으로 몰린 유호성의 알리바이와 유사 사건 관련자들 과 사례를 찾아 종횡무진 한다. 영화는 마침내 국정원의 조작 증거를 찾아 내고 사건을 무죄로 되돌려 놓으면서 간첩조작사건의 배후인 국가정보원 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영화는 객관의 탈을 쓴 방송 저널리즘과 달리, 감독이 전면에 등장하여 추적 과정의 지난함과 좌충우돌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감독은 원세훈 전 국 정원장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거침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간 첩조작사건에 대해 인터뷰를 시도하고, 적극적으로 사건에 대한 새로운 증 거를 찾아 사건의 핵심과 주변을 파헤친다. 그리고 마침내 조작의 결정적인

13) 2017. 4. 20. 경기필름페스티발. 최승호 감독과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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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적 증거를 찾아낸다. <자백>에서 감독의 존재는 스릴러 영화에서 화자 이자 추적자인 탐정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진실을 향해 거침없이 파고드는 저널리즘의 태도를 형상화한다. 감독은 굴하지 않고 진실을 찾아 헤매는 저널리즘의 바른상을 현실 속에서 보여주는 동시에 진실 추적 과정 을 통해 영화적 몰입을 불러오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의 힘은 사 건 추적 과정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 제시에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을 시작 기점으로 놓고 출발하는 영화는 간첩 사건이 조작이라는 가설을 통해 추론을 시작해야 한다. 가설과 추론은 (알 수 없는) 과거와 미래 양방 향으로 사건과 현상을 분석하고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영화는 객관과 주 관, 지성과 반지성의 위태로운 줄타기가 일어난다. 만약 추론과 가설이 명 확한 증거 기반의 진실로 향하지 못할 경우, 혹은 가설을 위한 증거로 편향 적으로 구성될 경우, 영화는 극영화의 스릴러 장르에서 손쉽게 취하는 음모 론의 ‘배후조정 서사’나 확증편향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자백>은 앞 서 언급했듯이 국정원의 결정적 증거인 여동생의 자백이 강압적 거짓이라는 여동생의 양심선언과 인터뷰에서 시작한다. 가설과 의심 을 시작할 물적 토대 아래, 영화는 간첩단 조작에 대한 가설과 추론 그리고 검증을 반복한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 대한 제보에서 출발한 영화는 먼저 해당 인물을 만나 제보의 실체와 진실을 확인한 후, 간첩 사건이 조작이 라는 가설을 설정하고, 그 증거를 찾아 긴 추적의 여정을 떠난다. 증거와 증거의 맥락을 제시하면서 영화는 음모론으로 향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한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자신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전면화하여 과정의 지난 함과 마주하는 심적 고민을 솔직하게 기입한다. <자백>은 국정원의 음모론 을 다루면서, 영화가 음모론으로 향하지 않기 위해 집요한 추적과정과 조작의 증거를 확인하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영화는 국정원 의 (종북) 음모론의 실체를 드러내고, 간첩조작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 따라 서 <자백>은 진실을 찾아가는 자로 감독의 모습을 증거 확보 과정이자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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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로 기입하여 왜곡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 나아가 현재 수사권과 정보 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국정원의 모순적 실상까지 고발해내면서 저널리즘 적 태도도 견지한다. <자백>은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과 추적자의 존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가설과 추론에 대한 증거를 보다 설득력있게 구성하 기 위한 영화적 장치이다. 반면, 일부 무비저널리즘의 경우, 명확한 증거제시 를 향하는 과정에서 음모론과 확증편향, 나아가 추적과정에 대한 혹은 추적자 에 대한 영화로 머무는 경향이 드러난다. 무비저널리즘은 가설과 추론은 반드 시 증거와 맞물려야 진실로 향할 수 있는 것이다. 가설 자체에 대한 다방면의 시선과 반복된 검증 또한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백>은 과거를 애써 재현하지 않고, 현재의 시점에서 철저히 과거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방식을 택한다. 현재 남아있는 과거 흔적을 찾아 올바른 증거인지를 반복해서 의심하 고 검증하는 과정을 드러낸다.14)

2.2. 현장이 품은 역사적 공간의 목소리 - <소성리>

역사성은 최근 현장투쟁을 담는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도 등장 한다. 2010년 이후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영화는 투쟁 이슈에만 집중하지 않 고, 투쟁 공간의 과거 역사와 접속을 시도한다. 이 때 투쟁 이슈를 투쟁 공 간의 역사로 확장하는 것은 투쟁 당사자들의 구술이다. 사회적 약자들인 개 인의 기억을 동반한 구술은 현재(인물)와 과거(기억)를 엮어내면서 과거사 에 대한 증언이자 영화 장치로 기능한다. 은폐된 역사의 경험자이자 현재 투쟁 당사자이기도 한 이들의 목소리는 공적이고 지배적인 기억에 맞서 왜 곡되고 생략된 사건과 역사를 채우는 보철로서 역사쓰기를 가능하게 한다.

14) 이 지점이 바로 극영화의 스릴러 장르와 무비저널리즘을 가르는 태도이자 윤리이다.

극영화의 스릴러 장르는 극적 장치로 추론과 증거를 창조하고 배치 가능하지만, 실제 사건을 다루는 무비저널리즘은 다방면의 검증없이 부분적인 정보로 편향적으로 진실을 재구축하는 것은 위험하다. 역사를 다루는 무비저널리즘이 스릴러 장르와 달리, 음모론 을 견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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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투쟁 당사자의 구술은 현장 투쟁에 역사성을 부여하여 기존 해석에 도전할 뿐 아니라 주류 역사에 급진적 메시지를 던진다. 따라서 최근 액티 비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투쟁 당사자이자 역사의 피해자인 인물의 기억 과 경험담은 영화를 이슈 투쟁이나 개인의 인물사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거주하는 과거와 현재 공간의 기억이 되어 새로운 방식의 역사쓰기를 시도 한다. 이들 영화는 사회문제를 단독 사건으로만 인지하지 않고 근현대사의 역사를 품은 사건으로 인지한다. 현장 이슈를 현장 공간과 인물 나아가 역 사와 겹쳐놓으면서 현장 투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고 있다.

2010년 중반에 들어서,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미지와 말을 불화를 통해, 현재의 정적인 풍경 위에 과거의 기억을 덧입혀낸다. 말로 과거의 기억을 재현하는 동시에 이미지로 구술자의 현재 모습과 공간을 담아 현재와 과거를 겹쳐내는 방식은 재현불가능한 과거 사건과 트라우마를 현재적 관점에서 새롭게 체현하도록 한다. 이때 구술은 정보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날 것으로 마주하게 한다. 신체성을 동반한 구술은 정보보다 생생한 체험을 불러온다. 역사성을 겸한 최근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작품으로는 미군기지 이전으로 사라져가는 경기 북부 기지촌을 다룬 <거미의 땅>(김동령, 박경태, 2013), 밀양 송전탑 투쟁을 다룬 <말해의 사계절>(허철녕, 2017), 소성리 사 드배치 투쟁을 다룬 <소성리>(박배일, 2017) 등이 있다. 이들 영화는 투쟁의 공간과 역사의 공간을 이어내면서, 사회 이슈와 투쟁 당사자들의 트라우마를 겹쳐낸다. 동시에 현재의 현장과 과거의 역사를 이어내면서, 국가폭력으로 얼룩진 땅과 나이들어 마모된 신체를 연결한다. 이같은 액티비즘 다큐멘터리 영화의 새로운 기록 방식 저변에는 장기간 현장 투쟁의 경험 속에서 사회 문제가 단절적인 사건들이 아니라 연속되고 지속되고 반복된다는 역사적 깨달음이 전제하기 때문이다.

<소성리>는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대상 비프메세나 상을 받은 작품으로,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다룬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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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드배치 장소로 확정된 소성리 마을 이야기이다. 영화는 소성리에 사드배치 반대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들어간 미디어 활동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사드배치 반대투쟁 당사자인 주민들의 반대 이면에 놓인 공포와 과거 트라우마를 읽어내면서 진행된 작품이다. 평 화롭게 살고 있는 소성리에 평화를 위해 무기 배치를 하겠다는 역설적 상황 으로 인해 마을의 평화도 한반도의 평화도 모두 위협을 받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영화는 다루고 있다. 여기서 영화는 한층 더 들어가, 사드배치를 결사 반대하는 할머니들의 기억 속에 한국전쟁이 내재해 있음을 마주한다.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은 투쟁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경험과 기억, 소성리의 역사를 한 궤로 이어내면서 새로운 투쟁기 뿐 아니라 새로운 역사쓰기를 시도한다.

영화는 영화의 삼분의 일 시간 동안 소성리의 현재 일상과 풍경을 가만히 담고 있다. 깨를 심고, 감자를 캐고, 풀을 베고, 중참을 먹고, 회관에서 함께 농작물을 다듬는 소성리 마을 일상은 평화롭다. 현재 일상의 풍경 위에 할머 니들의 말이 조금씩 풀려나온다. 소성리로 시집온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들이 죽었을 때, 남편이 죽었을 때의 기억이 현재 일상과 풍경 위로 겹쳐진다. 그녀들의 과거사는 점차 개인의 기억에만 멈추지 않고 공간의 기 억으로 치환된다. 말은 과거로 향하지 않고 현재 풍경과 일상 위로 풀려나오 면서 과거와 현재를 포개놓는다. 말과 풍경의 시차는 현재를 재맥락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역사쓰기를 시도한다. 현재 속 과거, 과거를 품은 현재는 역사 의 형상을 새롭게 드러내면서 투쟁의 현장에 역사성을 가미한다. 전쟁 세대 들의 트라우마와 소성리 사드배치 반대 투쟁을 이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영화 초반 소성리의 평온함은 표면의 잔잔한 이면에 내재된 대풍랑 을 감각하게 한다. 혹은 대풍랑을 겪은 이들의 현재의 고요함을 가시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식 역사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전쟁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소성리의 사드배치를 통해 풀어내는 동시에 이어내고 있는 것이 다. 그러나 영화 <소성리>는 공간이 가진 역사를 설명하거나 알려내는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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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현장으로서 현재 공간에 철저히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길”을 통해 이를 가시화한다. 영화는 할머니들이 쉬어가는 길, 오가는 길,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는 마을의 평화로운 일상적 길에서 시작한다. 그 길 위에 시집 왔을 때 처음 들어선 낯선 마을 길, 아버지 죽음 다음날 오른 피난길,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있던 길을 겹쳐낸다. 그녀들의 말로 풀어낸 과거 경험과 기억은

“역사의 주름”인 셈이다. 이어 영화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처음의 평화로운 길 위에 다른 현실의 길을 겹쳐낸다. 사드배치를 위해 탱크가 들어오는 길, 서북청년단이 들어와 현격히 분리된 양측 집회 사이 길, 찬반 플랭카드가 난무한 길, 사드배치를 공중으로 실어 나르는 하늘의 길이 비춰진다. 영화는 다시 남편이 죽고 정신없이 일만하던 시절을 논하며 걷는 순분 할머니의 집으로 가는 길, 숲 속을 정신없이 헤매며 올라가던 꿈의 길로 엉켜 들어가면 서 그녀들의 불안을 담아낸다. 이처럼, 영화는 인물과 공간, 말과 풍경, 현재와 과거를 길이라는 공간이미지를 통해 보여주고 들려준다. 동시에 거주하는 마을, 투쟁하는 공간 그리고 역사의 공간을 이어낸다. 실제로 마을 사람들이 쉬는 공간과 사드배치를 위해 트럭이 들어오는 공간, 서북청년단과 대치하는 길과 꿈 속에서 찾아 헤매는 길들이 다른 길이 아니다. 이 모두가 소성리가 품고 있는 소성리인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투쟁 현장의 공간 위에 한국 근대 사를 살아낸 나이든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용히 담아내, 마치 공간이 발화하는 것처럼 사람의 기억과 공간의 기억을 겹쳐내고, 과거 트라우마와 현실의 문제 를 이어낸다.15)이때 역사는 기록으로 재현되는 것이라기보다 섬세한 관찰과 수집 속에서 발생하는 그 무엇으로 드러나고 체험된다.

15) 이미지와 소리의 엇나감 혹은 불화로 인해 새로운 역사쓰기를 담아내는 작품의 사례는 다음 책을 참조할 수 있다. 이승민, 뺷영화와 공간: 동시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학 적 실천뺸, 갈무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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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나를 경유하는 역사 - <옵티그래프>16)

일인칭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2000년대 중 반 이후이다. 1980년대 거시사와 집단 중심에서 배재되었던 개인과 일상이 전면화된 1990년대 후반, 일명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로 호명되는 다수의 작 품들이 등장하면서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설파한다.17) 일인칭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감독이 화면 내 일인칭의 목소리와 육체를 가지고 등장 하고 나아가 감독 자신이 독자적 인격과 주체성을 가지고 서사를 촉발한다.

(이후 감독이 화면 속 일인칭으로 등장하는 방식을 ‘감독-나’로 축약하겠 다) ‘감독-나’는 제작과정에서 우연히 포착된 듯 모습을 드러내지만, 영화 속에 자신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배치해 자신의 시선과 위치를 사건과 상황 에 기입하고 개입한다. 역사쓰기에서 일인칭은 기록되는 대상에 주목하는 방식과 사뭇 다르게, 기록하는 자의 시선과 위치를 전면화한다. 일인칭 시 점이 가지는 내밀한 말걸기/말하기 방식은 전통적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에 서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거나 개인적 입장과 시선을 드러내는데 유 연하다. 특히 ‘감독-나’는 사적이고 고백적인 어조로 자신의 경험과 자의식 을 드러내어, 때때로 공적 역사에 대해 질문하고, 이 속에서 마주하는 자신 의 혼돈과 갈등 노출을 가능하게 한다. ‘감독-나’의 존재는 화면 밖에서 안 의 상황을 설명하는 전지적 방식이 아니라, 화면 안과 밖을 넘나들면서 성 찰과 말걸기를 시도한다. 다시 말해, ‘감독-나’는 화면 속 대상을 관찰하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작품 속에서 대상과 같이 현실을 경험하고 해석하는 자

16) 이 글은 다큐멘터리 매거진 Docking에 발표한 글 「‘역사와 나’ - <버블패밀리>와 <옵 티그래프>를 중심으로」(2017. 12. 25)를 발췌․보완하고 있다.

http://dockingmagazine.com/contents/9/50/?bk=menu&cc=&stype=&stext=&npg=1.

17)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는 일인칭 다큐멘터리, 자전적 다큐멘터리, 에세이 필름, 자기반 영적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명칭이 혼합되고 분리되어 사용되곤 한다. 여기서 일인칭 혹은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는 거시적이고 공적 혹은 다수 집단 차원에서 누락된 다양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개인의 시선으로 읽어내고 담아내는 대안적 차원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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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도 하다. 일인칭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개인의 기억과 공적 역사 간 의 변증법적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18)

2010년대 들어서, 일인칭으로 역사를 기술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공간 중심 으로 역사를 새롭게 기술한다. 일인칭의 나의 시선으로 사적 기억과 공적 역사를 넘나들면서, 사건이 아닌 사건 발생 공간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작품들 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용산 참사 이후 국가 폭력에 대한 사적 기억과 고백을 다루며 6월 항쟁을 소환한 <용산>(문정현, 2010), 1990년대 부동산 호황기를 거쳐 중산층 대열에 합류했다 몰락한 나의 가족을 다룬 <버블패밀리>(마민지, 2017), 외할아버지의 삶을 추적하면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살아가는 나를 담은 성찰적 영화 <옵티그래프>(이원우, 2017), 그리고 유기견 백구의 역사를 파헤쳐가면서 내가 만난 이웃들의 삶을 풀어가 는 <개의 역사>(김보람, 2017)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주로 가족이나 이웃으 로 인해 우연히 관심을 가지게 된 과거사를, 나의 시점으로 이해하고 성찰하 는 과정을 담는다. 그러나 여정은 진행 중이거나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 는 애초에 과거사를 객관적으로 설명해내려 하거나 판단하거나 혹은 이해하 는 대상이 아니라 현상 그대로를 마주하는 태도를 취한다.

이원우 감독의 <옵티그래프>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생전 부탁이던 자서전을 뒤늦게 이행하기 위해 외할아버지의 삶을 추적해가는 ‘감독-나’

의 이야기이다. 손녀인 내가 바라본 외할아버지는 자상하고 검소하고 성평 등한 어른이었지만, 돌아가신 후 공적 기록에 담긴 외할아버지 장석윤은 일 제 강점기에 CIA의 전신인 O.S.S 첩보요원이었고, 한국 전쟁 발발 초기 대 한민국 치안 국장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외할아버지의 공적 삶을 추적해 그 의 삶을 재구성하는 방식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다. 대신 영화는 할아버지 에 관한 자신의 사적 기억과 공적 기록을 비교하면서 자신만의 ‘옵티그래프

18) 김선아, 「나의 작품도 초점을 잃고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야 했다 : 한국 독립 다큐멘터 리의 정체성, 역사, 기억을 중심으로」, 뺷영상예술연구뺸 12, 2008, 40~4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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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학적 자서전)’를 만든다. 낯선 조합의 제목처럼, 영화 역시 기억과 기록 을, 사운드와 이미지를 낯설게 조합해 새로운 역사쓰기를 시도한다. 영화는 자료를 찾아나선 ‘감독-나’의 좌충우돌 여정에 초점을 맞추고, 그 과정에서 만난 나의 사적 경험과 성찰에 의거해 진행된다. 종종 역사적 대상으로 외 할아버지는 사라지고, 오히려 나의 여정에서 촉발된 낯선 이미지와 물음들 이 영화를 가득 메운다.

영화는 중심축이 공적 역사도 대상도 아닌, 대상을 찾아나서는 혹은 역사 를 대면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재 나’이다. 당대 경험을 이전 세대들의 경험과 연결시키는 사회적 매커니즘의 파괴, “과거의 파괴” 현상 자체를 담 아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19)이는 동시대인들이 그들이 사는 시대의 공 적 과거와 밀접한 유기적 관계를 가지지 않는 일종의 “영구적 현재” 속에서 성장한 세대들의 역사 감각이기도 하다. 영화는 또한 ‘감독-나’의 기억과 감 각을 공간을 경유해 풀고 있다. 외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미국, 버마, 한국, 중국을 다니면서 마주한 낯설음과 좌충우돌, 그러나 그 공간들은 무엇도 알 려주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거시사의 통합된 서사 대신 파편화되고 흩어진 정보와 단상들이 이어져 새로운 방식의 아카이브이자 몽타주를 형성한다.

이렇게 새롭게 배열된 기억과 경험의 이미지는 더 이상 기록으로서가 아니 라 이 자체로 살아있는 역사로 기능한다. 현재화된 새로운 역사 쓰기의 주 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감독-나이고, 감독은 역사적 대상보다 역사에 접 근하는 나의 모습에 주목하면서, 동시대에 역사를 마주하는 파편적 감각을 보다 전면화한다. 영화는 일인칭의 나를 경유해, 한국사를 읽는 외양을 취 하고 있지만, 인물을 통해 대안적 역사를 쓴다거나 사회적 메시지를 강제한 다거나 혹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판단하거나 대변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 는다. 증언과 자료에 기대지 않고, 역사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역사 를 접하고 읽고 마주하는 방식과 실천에 대해 고민한 흔적으로서 작품이다.

19) 에릭 홈스봄, 뺷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뺸, 까치, 199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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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나를 경유한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현재 나 역시 역사의 일부로 두고, 역사와 새롭게 대화를 시도한다.

3. 맺음말 - 역사와 예술의 접경지대로서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

지금까지 동시대 한국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은폐된 혹은 왜곡된 역 사적 사건을 현재로 불러와 성찰하는 다양한 방식의 영화들을 살펴보았다.

무비저널리즘이 가진 과거사의 진실을 추적하는 탐사 방식, 액티비즘 다큐 멘터리 영화가 투쟁현장과 역사를 이어내는 방식,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를 경유해 역사를 대면하는 방식을 살펴보았다. 태생에서부터 사회운동 과 대항언론의 역할로 출발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의 자장 안에 역사 다 큐멘터리 영화는 대안-역사를 구축해왔고, 이를 위해 다양한 미학적 실험 과 실천을 시도해왔다. 특히, 동시대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경우는 역사 와 예술이 위계를 가지지 않고, 서로를 보완하고 견제하면서 새로운 방식으 로 새롭게 역사쓰기를 꾸준히 실험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를 역사적 쟁점이나 이슈로만 소구하고 연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글은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에 서 영상기록이 가지는 다양한 방법이 새로운 역사쓰기와 어떻게 조우하는 지, 그 실례를 미학적 실천으로 읽고 이를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살펴보 았다. 이를 통해 이미지와 사운드가 어떻게 재조립되어 시간을 부여하고, 역사를 다시 구성하는지, 기록자의 존재 방식과 진실 구축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관찰과 수집을 통해 발생하는 체험 가능한 역사는 어떻게 시도되는 지, 나아가 영화라는 매체 혹은 제도가 역사 기록을 어떻게 능동적으로 독해 하는 지를 짚어보았다. 다만, 동시대 진행 중인 현상을 연구하는 시론 연구의 한계로 인해 섣부른 주장보다는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결론보다는 제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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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의 현주소를 짚어보았다.

동시대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는 지금까지 다룬 세 가지 양식 속 미학적 실천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역사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미술(관)과 영화 (관)를 넘나들면서 영상으로 역사쓰기를 시도하는 예술가 다큐멘터리 영화, 과거의 아카이브 영상을 재활용하고 재해석하는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영 화 등도 당대 새로운 역사 쓰기 혹은 대안적 역사 쓰기를 적극적으로 실천 하고 있는 미학적 현상이다. 이는 추후 연구 과제로 남겨놓고자 한다. 끝으 로, 이 글은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역사 기록이 단순히 과거사를 기록 이라는 측면에 갇히지 않고, 인간의 보편타당한 기록할 권리, 기억할 권리, 기억될 권리 그리고 알 권리를 실현시키는 능동적인 지향과 실천을 가진 예술임을 기억하는 기록으로 남길 바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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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Korean Historical Documentary Films in Today

20)Lee, Seung-min*

This paper exams the contemporary Korean historical documentary films in terms of aesthetic practices. Korean documentary film were born into the struggle of Korean Democracy and had followed the flow of Korean Democratic history. This paper focused on three films of three modal categories: journalistic documentary, activism documentary, and personal documentary that investigates the historical causes and contexts giving birth to those documentary modes, and examines the effects of their modes of address. Since 2010, Korean historical documentary has constructed counter-memory through ‘presence’ and ‘space’. Also historical documentary film with personal memory and experience has been mobilized to challenge official history. Today’s Korean historical documentary approached the affect instead of historical information and accusation.

Key Words : korean historical documentary, counter-memory, journalistic documentary, activism documentary, personal documentary

<필자소개>

이름 : 이승민 소속 : 용인대학교

전자우편 : maya-deren1@daum.net

논문투고일 : 2018년 07월 15일 심사완료일 : 2018년 08월 06일 게재확정일 : 2018년 08월 20일

* YongIn University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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