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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식론에서본지각의의미그미학적해석을위한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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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미학적 해석을 위한 시론 :

주 성 옥*

들어가는 말 .

인식구조의 분석 .

프라마나 개념의 이중성

1. (pramāṇa) 2. 인식대상

. 지각

지각의 정의 1.

환영의 문제 2.

남는 문제들 3.

불교인식론의 미학적 의미 .

들어가는 말

.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는 말은 지식의 발생에 있어 감

각적 지각이 개념보다 더 직접적이고 확실한 수단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감각적. 지각은 서양철학에서 바움가르텐(Baumgarten)에 의해 불완전하나마 철학의 대상 으로 인정받기 전까지 개념적 인식보다 열등한 것으로서 철학 연구에서 배제되었 던 반면 동양에서는 직관 또는 감각적 인식은 진리 인식에 특권적 수단으로 간, 주되었다.

1)

서울대학교 강사

*

(2)

그러나 아쉽게도 동양에서 이루어진 철학적 논의 가운데 직관에 대한 분석 을 찾기는 어렵다 그것은 무엇보다 분석을 배제하는 직관 자체의 특징에서 비롯. 되었지만 그 결과 그것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으로 이해되어 철학적 담론의 장, 에서 밀려나 과거지사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다른 한편 그것은 신비하고 막연. 한 숭배의 대상으로 승격되어 전혀 분석을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분석적 방법 에 따른 폐해를 치유하는 만병통치의 묘약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런 숭배는 일. 종의 오리엔탈리즘으로서 과거로의 동양으로의 회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이처럼 동양철학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인 태도는 동양철학을 위해서나 현 대철학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 동양철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고 동. 양철학의 현대적 지평을 확보하여 철학적 담론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지금 까지 막연하게 이해되었던 개념들에 대한 엄밀한 철학적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중 동양철학의 기초적 개념이며 그 고유한 인식 방법으로 알려진 직관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직관에. 대한 분석이 내적 한계를 가진다 할지라도 그것은 동양철학적 사유방식의 독자성 을 드러내며 현대의 여러 철학적 문제 특히 인식론과 존재론 문제에 대한 새로, 운 관점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

나아가 직관이 미적 인식의 중요한 방 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직관에 대한 논의를 검토하는 것은 동양미학에 대해서 도 풍요로운 결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1) 노자의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다 와 장자의 득의이망언 (得意而忘言)”, 장자와 혜자의 논쟁 맹자의 이의역지, (以意逆志)” 등은 중국철학의 이와 같은 특징을 잘 나 타내 준다 또한 위진남북조 시대의 언진의론. (言盡意論)’ ‘과 언부진의론(言不盡意論)’

은 개념적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였으며 선종은 일체의 개념적 지식을 허망한, 분별이라고 배척하였다 이처럼 직관이 중국철학의 중요한 개념이라는 사실에 대해. 이택후도 동일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택후 유강기. , , 중국미학사 , 북경 중국사: 회과학출판사, 1984, p. 17, p. 26

2) 이런 점에서 최근 유학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각 에 대한 논의는 주목할 만하다 . 이 논의는 주희의 격물치지 (格物致知)’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주희 지각론의, 목적이 유학의 인식론적 형이상학적 근거를 정초하여 선종을 논파하는 데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불교 지각론에 대한 연구는 유교와 불교 사이의 논쟁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3)

지각의 문제는 서양철학에 훨씬 앞서 인도철학에서 탐구되었으며 정통 인도 철학과 불교철학 사이의 논쟁을 통해 심화되었다 서양철학 전통에서 인식론은. 지식이론 즉 지식에 대한 주장의 신뢰가능성을 옹호하는 철학의 한 분과에 주어, 진 이름이다 그것은 지식이론이 기초하고 있는 것에 대한 증거와 추론 방법 기. , 준 등을 탐구하는데 인도철학 전통에서 프라마나 사스트라, (pramāṇa-śāstra)라고 불리는 분과와 거의 일치한다 마띠랄. (Matilal)은 디그나가에 의해 확립되고 다르 마끼르띠에 의해 집대성된 불교인식론

3)

을 중론 에 표명된 나가르주나의 회의주 의를 부정하려는 시도라고 보았다.

4)

나가르주나가 모든 지식을 부정했는지에 대 하여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마띠랄의 지적처럼 프라마나, (pramāṇa)이론은 지식이 불가능하다는 인도의 전통적인 종교적 회의주의에 대하여 진리의 인식 가능성을 탐색하는데 불교인식론은 불교의 철학적 입장을 충실하게 계승하여 지식의 대상, , 즉 지식의 발생 근거를 외계의 실재성에서 구하는 실재론을 거부하고 화해할 수, 없는 회의주의와 실재론의 틈 사이에서 현상세계에서의 지식의 성립 가능성을 탐

3) 중국을 비롯한 한문문화권에서는 인명학(因明學)이라고 번역한다 인. ( ) 에 대한 학문 즉 올바른 지식의 논리적 근거에 관한 가르침을 지칭한다 그 내용은 판단과 추

( ) .

론 삼단논법의 이론 및 개념론 등 논리학적 부분과 그 밖에 인식론의 부분 즉 지식, , 의 수단과 타당성에 관한 이론 감각들과 심상이 우리에게 알려지는 대로의 외부세계, 의 실재성에 관한 문제를 포괄한다 지각론을 중심으로 한 인식론과 논증법이 유기적. 으로 통일된 것은 디그나가로부터 시작되었다 현대 서양 불교학자들은 이 분과를 불. 교지식론 불교인식론 불교인식논리학 불교논리학 등으로 일컫고 있는데 본 논문에, , , , 는 불교인식론 으로 통일하겠다 .

4) Matilal, Perception: an essay on classical Indian theories of knowledge, Oxford:

마띠랄은 나가르주나의 철학을 산자야의 철학과 더불어 회의 Clarendon, 1986, p. 28.

주의로 분류한다 그러나 나가르주나가 불교적 전통을 계승한 중요한 인물로 인정된. 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나가르주나의 중관 철학을 붓다가 부정한 산자야의 회의주 의와 동일시한 마띠랄의 견해에는 문제가 있다 중관철학이 세속제와 진실제라는 두. 가지 차원의 진리를 인정함으로써 진리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인식의 진리성을 부정하는 회의주의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중관철학과 불교인. 식론의 관계가 상호 대립적인가에 대한 판단은 학자에 따라 다르다 필자는 중관철학. 과 불교인식론은 서로 대립적이기 보다 오히려 불교 인식론의 문제의식이 중관철학의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에 관해서는 본 논문 후 반에 살펴보겠다.

(4)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불교인식론에서 다루는 지식은 지금까지 형이상학적 종교적 진리가 아니라 경험적이고 상대적 진리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종교적 구원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고 절대적 진리의 실현이나 자각 없이 일상 세계에 주어진 것들에만 만족하 며 오로지 논리적 논쟁만 일삼는다고 비판받아 왔다 .

5)

그러나 불교인식론이 세 속적 진리에만 종사한다고 보는 기존의 견해는 온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지식. 과 지식의 원천에 관한 논의는 불가피하게 실재성의 문제와 관련되며 형이상학과 존재론을 토론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일상적 삶의 모든 요소들이. 가상이라면 경험적 세계 속에 존재하는 불교에 따르면 경험적 세계만이 우리에 게 가능한 유일한 세계인데 우리에게 절대적 진리를 자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해탈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경험적 세계 안에 절대적 진리를. 실현하거나 그것으로 전이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불교. 인식론은 상대적 세계에서 지식의 가능성을 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지 식의 근거인 실재성에 대한 존재론적 논의를 통해 절대적 진리와 나아가 현상세 계에서의 구원가능성을 구하는 복합적이고 중첩된 문제 한 가운데 던져져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관점에서 불교인식론에서 지각의 의미와 진리 인식에 대 한 그 특권적 지위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나아가 지각의 미학적 의미를 검토함으. 로써 서양미학과 비교하여 단편적으로 개념을 정리하는 데 그쳤던 지금까지의 동 양미학 연구 경향에서 탈피하여 동양철학의 구성 속에서 미학의 의의와 가치를 모색해보겠다 본 논문의 논의 범위는 디그나가와 다르마끼르띠의 저작과 그에. 대한 주석서에 한정되며 다르마끼르띠의 사상을 디그나가 사상의 주석 및 발전, 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취했다.

5) 이런 입장을 견지하는 대표적인 학자로 체르바츠키와 에드워드 콘즈를 들 수 있다.

체르바츠키 임옥균 역, , 불교논리학 , 경서원, 1995, p. 22; Edward Conze, Buddhist Thought in India Vol. 1, New York: Dover, 1962, p. 265.

(5)

인식구조의 분석

.

프라마나 개념의 이중성

1. (pramāṇa)

불교는 무엇보다 경험에 관심을 가졌으며 경험을 가장 중요한 인식 원천으 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것은 서양철학적 의미의 경험주의와 다르다 왜냐하면 불. . 교는 경험에 의해 정신 외부의 실재가 정당화된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외부세계에 관한 객관적 지식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는 서양철학에서 칸트가 코, 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경험에 주어진 것이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에 나타나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객관적. 지식의 가능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경험의 주관적 구조를 탐구해야 한 .

6)

따라서 불교인식론의 기본 목표는 인식구조에 대한 분석을 통해 경험적 인 식의 진리성에 관한 근거를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인식론은 지식 대상의 존재가 지식수단(pramāṇa)을 통해서 확립 된다고 보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인식주관과 인식객관의 관계 구조는 프라마나. 이론에 의해 형성되는데 불교에 따르면 인식주관이 성립할 수 없기 때

(pramāṇa) ,

문에 그것은 다음 세 가지 계기로 나누어진다 첫째 지각 추론 비유 성언. , , , , (聖言) 등과 같은 지식수단이 있으며 그것은 지식을 제공한다 니야야학파에서는 지각. , 추론 비유 성언이 모두 지식수단, , (pramāṇa)으로서 인정되었지만 디그나가는 타당 한 인식수단으로 지각과 추론만 인정하였다.

7)

디그나가가 이처럼 비유와 성언을 타당한 인식수단에서 배제한 까닭은 그것들이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최종 적으로 지각과 추론으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유는 추론으로. , 환원될 수 있으며 심지어 성언량(聖言量)도 붓다의 직접적인 신비적 경험에 기( ) 초하고 있으므로 지각과 추론만 지식수단(pramāṇa)으로 인정될 수 있다 둘째 지. , 식의 대상은 인식 가능한 것 (prameya)’이라 불리며 인식에 외적인 질서를 구성한 6) 인식대상을 인식주관의 능력에서 도출하는 방식은 불교 특히 유식불교의 특징이며 이,

런 점에서 불교인식론은 유식학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된다.

7) M. Hottori, Dignāga, on Perception,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8, p.

24.

(6)

다 그것은 인식을 통해 드러나거나 파악될 수 있으며 지식수단은 그것에 대한. , 적합한 증거를 제공한다 셋째 지식의 정당한 수단에 따라 어떤 대상이 파악되는. , 인식활동은 인식결과(pramā)이다.

이 이론에 대한 치명적인 반론은 나가르주나가 지적한 대로 프라마나 가 어떻게 지식수단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느냐

(pramāṇa)

8)

이다 나가르주나의 반.

론에 대하여 마띠랄은 프라마나(pramāṇa)의 이중적 성격 즉 프라마나, (pramāṇa) 가 인식의 원인(cause)과 이유(because)를 통합한 개념이라는 해석을 통해 무한순 환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9)

그의 이론에 따르면 프라마나 는 어떤 인식을 참된 인식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증거 또는 정당화를 (pramāṇa)

제공하는 동시에 그 지식을 야기하는 인과적인 원인이다 예를 들어 지금 나는. 내 앞에 있는 탁자를 보고 있다면 이때 그것을 보는 수단 이 경우 감각적 지각, ( , ) 은 내가 탁자가 거기에 있다고 보는 것에 대한 프라마나(pramāṇa)이다 또한 그. 것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내가 안다는 사실의 증거이다 그것은 내가 본 것에. 관한 나의 단언의 기초적 증거이다 그것은 내가 본 것을 증명하는 방식이며 이. 때 프라마나(pramāṇa)는 증거라는 의미를 갖는다 마찬가지로 추론에 의해 산 너. 머 불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나의 추론은 산 너머에서 솟아오르는 연기에, 대한 나의 앎에 의해 야기(caused)된다 또한 산 너머 불이 있다는 앎에 대한 나. 의 증거는 연기가 솟아나는 데 대한 나의 앎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프라마나. 는 지식을 얻게 되는 수단인 동시에 그 지식에 대한 가장 신뢰할 만한 (pramāṇa)

증거이다 그러므로 지식수단과 그것에 의해 얻게 되는 지식은 본질적으로 동일. 하다 이처럼 프라마나. (pramāṇa) ‘는 참된 지식수단 이라는 의미와 참된 지식 이라 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8) 용수 김성철 역주 회쟁론, , vigrahavyavartani , 경서원, 1999, 31 . “ 만약 네가 척도를 수단으로 해서 측량되는 것을 확립하는 것처럼 지식수단, (pramāṇa)이 다양한 대상, 즉 프라메이아(prameya)를 확립한다고 생각한다면 지각 추론 비교 성언량 과 같은, ( , , ) 지식의 다양한 네 가지 수단은 어떻게 확립될 수 있는가?” 여기서 나가르주나가 염두 에 두고 있는 논적은 니야야학파이지만 불교인식론에 대해서도 동일한 반론이 가능하 .

9) Matilal, Perception, pp. 35-37.

(7)

프라사드(C. R. Prasad)는 마띠랄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프라마나(pramāṇa) 개념이 지시체(reference)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어떤 판단을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에 관한 초월론적 논의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인식수. 단이 어떻게 경험 속에 분명히 표상되는 주관 객관의 관계를 지지하는가에 대한- 검증이 인도철학의 형이상학적 과제라고 보았다 실재론은 인식주관이 어떤 판단. 에 대하여 인과적으로 관련된 지시체에 의해 그 판단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한에서만 그 판단을 참된 지식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프라마나. (pramāṇa) 이론 에 따르면 인식주관의 범위와 그 대상의 관계는 인식수단(pramāṇa)에 의해 구조 지어진다 이 입장에서 볼 때 프라마나. (pramāṇa)는 내적으로 관련된 두 문제의 핵심이 된다 즉 프라마나. (pramāṇa)는 정당화 과정 이유( because)의 일관성과 그 정당화의 타당성(pramātva)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 원인( cause)가 된다.

어떠한 인식활동이 경험에서 발생하고 경험으로 귀결되는가에 대한 검증은 곧 저 활동 속에서 지식의 주장에 이용된 정당화에 대한 검증이다. 그리고 만약 그 정당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된다면 그 성공은 저 지식이 작용하였다 는 사실을 즉 사실상 우리가 우리의 인식활동의 대 , 상에 접근하였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그 의미는 사태의 어떤 상태든지. 그것을 타당하게 하는 수단의 파악을 통해서만 지식으로 확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리의 획득은 그 판단을 위한 정당화 조건의 파악 이외 다른 것이. 라고 상상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저 판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사태의 그 상, 태가 판단이 그것을 그렇다고 간주하는 바로 그런 상태인 경우이기 때문이 .10)

프라마나(pramāṇa) 이론가들은 만약 그 조건들이 알려진다면 즉 인식수단, 들이 확실성(nirnaya)을 전하는 것으로서 확립된다면 인식 자료의 진리는 확립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지식은 대상으로부. 터 인식으로의 인과적 연쇄의 요소들을 구성하는 일련의 요소들을 파악하는 데

10) Chakravarthi Ram Prasad, “Dream and Reality: the Sankarite Critique of Vijnanavada,” in: Philosophy East and West, Vol. 43, No. 3(1993), Hawaii: the University of Hawaii Press, pp. 405-455, p. 407.

(8)

있다 그러므로 프라마나. (pramāṇa)는 정당화의 과정일 뿐 아니라 지식의 주장들 을 타당화하기 위하여 정당화하는 과정과 인과적 연쇄를 연결하는 방법이기도 하 다 그것은 정당화가 어떤 판단이 그 판단의 사태로부터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그 판단으로부터 그 사태가 야기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 라마나(pramāṇa)의 수단성의 확립은 프라마나(pramāṇa)의 정당한 근원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인식수단의 확립은 이 수단의 사용자들에게는 지식의 원인이. 된다.

마띠랄과 프라사드의 해석은 무한순환의 오류라는 나가르주나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줄 뿐 아니라 프라마나(pramāṇa)이론의 형이상학 적 성격을 밝혀주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그것은 첫째 인식의 근거로서. , 요구되는 인식능력 외부의 실재성에 대한 존재론적 추구와 둘째 인식적 질서와, , 인식된 대상의 질서 사이의 형이상학적 관계 즉 주관 객관의 관계에 대한 초월, - 론적 탐구라고 이해될 수 있다 지각 추론과 같은 인식수단을 통해 어떤 인식이. , 발생했을 때 논리적으로 그 발생의 당연한 결과인 지식의 주장을 타당화하는 과, 정은 지각에서부터 그 대상으로의 정당화의 연쇄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를 결정하는 것이다 바른 인식의 경우 정당화 연쇄의 요소들의 배열은 인식과. , 관련된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인과적 연쇄의 요소들의 배열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다 오류인식의 경우 사실상 그런 인과적 연쇄 또는 그런 대상이 없을 때 정당화. 연쇄의 요소들의 배열이 존재한다고 주장될 뿐이다 이것은 칸트의 코페르니쿠스. 적 전환과 같이 주관의 인식능력에 대한 비판을 통해 철학을 구성하려는 시도이 며 인식론과 형이상학을 통일하려는 논의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식적 경험을. 규칙화하는 것은 프라마나(pramāṇa)이다 그 체계적 본질은 적어도 경험된 질서. 의 체계적 배열과 공존하며 연속적이라고 주장된다 따라서 형이상학의 과제는. 이 공존을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된다.

2. 인식대상

불교는 경험적 삶이 원인과 정당화의 연쇄가 구분되는 질서들 속에서 행해

(9)

지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질서 속에서 행해지며 인식 활동은 인식 내용을 구성하 는 것을 지칭할 수 있다는 것만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인과 연쇄는 대상에서 인. 식으로 향하고 정당화의 연쇄는 인식에서 대상으로 향한다 만약 이 연쇄들이 동, . 일한 질서 속에서 행해진다면 인식대상은 그것을 표상하는 인식 활동과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상과 인식의 동시발생 은 그들 사이에 어떤 존재론적 구. 분도 없다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다.

이 입장에 따르면 인식에 드러나는 것 즉 인식대상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의 형상이다 대상의 형상은 대상 자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에 속한다. . 예를 들어 이것은 푸르다 라는 인식에서 인식은 푸름이란 형상 을 가지고 있다 . 즉 푸름 형상 은 우리가 푸름의 인식이라고 지칭하는 것의 변별적 형태이다 가 - . 장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푸름 형상 이다 불교 내부에서도 대상의 - . 형상의 존재론적 지위에 관한 이견이 존재하는데 경량부는 그것을 대상과 인과, 적으로 관련된다고 추론한다 그런데 이 추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외부. 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대상과 인식된 대상의 형상 사이의 인과적 상호 관계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대상에 속한다면 대상이 있을 때 의식은 대상. 의 형상을 가져야 하고 대상이 없으면 의식은 대상의 형상을 가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없으며 오히려 꿈이나 의사지각의 경우처. 럼 실제 대상이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대상의 형상이 의식에 현상할 수 있다 따. 라서 대상의 형상은 대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의식에 속한다고 간주되 어야 한다 또 대상의 형상이 없는 인식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상의 형상을 인. 식의 필수적 특징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 디그나가로 대표되는 이 입장을 유형상. 유식론 이라고 일컫는데 그에 따르면 인식은 자신의 형상 즉 그것을 다른 인식과 , , 구분하는 대상 형상 을 가진다 - .

위의 예에서 이것이 푸르다 는 인식이 가지고 있는 푸름 형상 은 이것이 - ’ ‘ 노랗다 라는 인식이 가지고 있는 노랑 형상 과 구별되는 그 인식의 고유한 변별 - 적 특징이다 그런데 각각의 인식이 자신의 형상을 가지고 생기한다면 어떻게 그. 형상들의 차이가 발생하는가 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즉 어떻게 동일한 주관 . 에서 다양한 형상이 발생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이 이론에 대한 가장 치명적

(10)

인 반론인데 본 논문에서는 자세한 논의를 생략하겠다, .

유형상유식론자는 이런저런 근거로 그 반론에 대응하면서 일단 대상 형상이- 의식에 속하며 각 의식에 변별적 특징을 부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의식에 대 상의 형식을 부여하는 그런 대상의 존재를 상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의식에 의해 투사된 대상 형상 뒤에 외적 세계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그- 것을 알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의식의 대상 형상을 위해 객관 세계가 배제될 수. - 있다 현상을 넘어갈 필요가 없다 는 표현은 의식에서 대상 형상을 넘어 갈 필요. ‘ - 가 없다 는 것으로 다시 그 본질적 성질이 객관 형식을 갖는 의식을 넘어갈 필 , - 요가 없다 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이제 지식과 알려진 것 사이의 구분이 사라지 . 며 그 결과 인식결과는 지각이나 추리라는 인식수단과 본질적으로 조금도 다르지 않게 된다.

디그나가의 독창성은 다른 학파에서 개별적 실체로 간주된 인식의 각 요소 들이 인식의 통합적이고 논리적 계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힌 데 있다 대상인. 식이란 지각이 대상 형상을 갖고 생기하는 것 즉 대상과 유사한 것으로 생기하- , 며 그것과 별도로 인식수단과 동일하다고 결정하는 독립된 인식작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11)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을 때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다 라고 하듯이 대상, ‘ 인식에 대상 형상을 취한다는 작용을 가정하여 인식수단 이라는 이름을 비유적으- 로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존재하는 것은 대상인식이라는 단 하나의 사. 실이며 인식수단이나 인식결과는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 .

12)

11) Hottori, Dignāga, On Perception, p. 29.

12) 이 문제에 관한 더 자세한 국내 연구논문으로 전영훈의 인식수단 (pramāṇa)과 인식결 (pramāṇaphala)同一說연구( 불교학연구 12 (2005. 12)) 가 있다 전영훈은 정. 리일적소(正理一滴疏) 의 인식수단과 인식결과의 동일설(同一說)을 인식수단과 인식결 과가 하나의 지식에서 동시에 성립하는 것으로 해석한 토사키 히로마사(戶崎宏正) 프라발 쿠마르 센(Prabal Kumar Sen)의 동시발생이론과 양자가 계기적으로 성립한다 고 해석한 헬무트 크라서(Helmut Krasser)의 계기적 발생 이론 중 동시발생이론을 지지하면서 그 전거를 제공하였다 필자 역시 이 해석에 동의하며 동시에 이 이론의. 의미는 본고에서도 지적했듯이 불교인식론이 실재론이 아니 현상론임을 표시하는 중 요한 관건이 된다 그런데 전영훈은 인식대상이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의 루파.

(11)

디그나가의 분석에 따르면 지식은 세 가지 측면들을 갖는데 하나는 대상, - 형상으로 주어지고 다른 것은 인식 자체의 형상 으로 주어지며 세 번째는 자기, , 인식(sva-saṁvedana)이라고 불리는 것에 의해 주어진다 이처럼 인식의 객관적. 계기인 대상 형상과 주관적 계기 그리고 자기인식이라는 세 가지로 인식요소- ,

13)

를 구분한 것은 인식론에 대한 디그나가의 가장 중요한 기여이다 특히 자기인식. 은 유형상유식론의 가장 중심적인 부분으로서 앞으로의 논의를 통해 그 중요한 의미가 밝혀질 것이다 디그나가와 다르마끼르띠에 따르면 이 대상 형상은 알려. , - 진 대상을 위한 증거적 기초와 결과 즉 푸름의 지각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지, 식을 위한 인과적 기초를 둘 다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세 요소는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동일한 것의 논리적 계기에 불과하다.

지각

.

디그나가에 따르면 인식대상이 대상 형상이기 때문에 그것은 무엇보다 지각- 속에서 드러난다

(pratyakṣa) .

14)

지각은 디그나가에 의하여 인정된 프라마나 임을 지적하면서도 루파 를 본질 로 번역함으로써 불교가 피하고자 했던 본질

(rūpa)

주의 또는 실재론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다 현장. (玄奘) ‘ ( )’이 색 이라고 번역한 까닭 도 이와 같은 본질주의적 함정에 빠지지 않고 불교의 현상주의적 특징을 드러내기 위 해서였다 본고에서는 그것을 형상 이라고 번역하였다. .

13)Hottori, 앞의 책, pp. 29-31.한역본에서는 상분(相分),견분(見分),자증분(自證分)으로 번역한다.

14) 산스크리트어 프라탹사(pratyakṣa)는 일반적으로 지각이라 번역되며 한역으로 현량(現 이라고 번역되는데 한역의 현 은 나타나는 대로 또는 직접적 이란 의미를 가

) , ‘ ( )’ ‘

진다 어원적으로 악샤. (akṣa)는 감각 능력이나 감각 기관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프라탹 샤는 감각 또는 감각적 경험이라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섯 가지 외적 감각. 능력 외에 보통 의‘ ( )’ 라고 불리는 내적 능력도 그 직접성 때문에 악샤의 목록에 첨 가되며 더구나 프라탹샤는 자기 인식과 쾌 등의 경험 참선자의 인식 증지, ( (證知))까지 포괄하기 때문에 감각 이라는 번역어는 적합하지 않다 인식의 직접성을 강조하기 위 . 해 직관 이나 현량 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좋겠지만 본고에서는 서양어 번역을 따라 ,

지각 이라고 번역하겠다

.

(12)

가운데 추론보다 지식 획득에 더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인식수

(pramāṇa) .

단이나 지각의 본질에 대한 인도철학 학파의 견해는 다르지만 지각을 가장 기본 적이고 중요한 인식수단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서. 양철학에서 경험론은 실재론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며 본유관념을 인정하는 합리 론은 유명론 또는 관념론과 결부되는데 반해 인도철학은 관념론이든 실재론이든, 모두 지각에 우선적 중요성을 부여하여 지각을 인식의 근원이며 진리의 최종적 결재자로 간주하며 다른 인식 방법도 궁극적으로 지각에 의존한다고 믿는다.

지각의 정의 1.

그렇다면 지각은 왜 추론보다 더 중요한 인식수단인가 디그나가의 정의에? 따르면 지각은 어떤 개념적 구성(vikalpa)도 가지지 않는다.

15)

일반적으로 지각은 감각기관에 의해서 또는 대상에 의해 감각기관에 가해진 자극에 의해 발생한 인 식으로 정의되는데 반해 디그나가의 정의는 인식의 또 다른 수단인 추론과의 배, 타적 관계로부터 즉 부정적인 정의로서 주어진다, .

16)

지각이 개념적 구성을 가지 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것이 추론 곧 간접적 지식이 아니라 직접적 지식이라는, 의미이다 지각은 직접적으로 분명하다. .

그런데 인식 속에 순수한 지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 까 순수한 지각은 경험적 인식 속에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현존하지만 그? , 증거는 순수한 관조 상태에서의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주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푸른 나뭇잎을 응시하는 사람이 다른 모든 생각을 끊고 산란한 마음을 그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을 때 그는 푸른색을 지각하지만 그 것이 푸른색 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 지각의 상태에서 대상은 순수한 소여 .

15)Hottori, 앞의 책, p. 25.가장 먼저 지각을 비칼파(vikalpa)또는 칼파나(kalpanā)가 없 는 것이라고 본 사람은 디그나가의 스승은 바수반두(Vasubandhu)이다 디그나가의. 공헌은 스바락사나(svalakṣaṇa)와 사마냐락사나(sāmānyalakṣaṇa)의 구분을 통하여 이 개념에 논리적 기초를 제공한 것이다.

16) 이 이론은 아포하(apoha)이론이라고 부른다 디그나가에 따르면 모든 정의는 그것의 부. 정의 부정으로서만 주어질 수 있다. aa의 부정으로서만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13)

로서 주어지며 대상의 규정 즉 개념의 개입이 없다 초기 아비달마 경전에서 말, . 해진 것처럼 푸름을 보는 사람은 이것이 푸르다 는 것을 알지 못한다 .” 만약 우 리가 그 상태로부터 깨어나 다시 사유작용을 시작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푸른 나 뭇잎에 대한 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지만 우리가 그 상태에 있었을 때에는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없다 개념의 개입이 없는 직접성은 그 지각. 에 의해 자명하게 직접적으로 알려진다 그러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지각은 판단. 이나 명제가 될 수 없다 이것이 지각이 비개념적 비구성적인 것으로서 정의된. , 이유이다.

개념적 구성 이라고 번역된 산스크리트어 비칼파 또는 칼파나

(vikalpa),

이라고 한역 되는데 그것은 순수 소여에 대한 주관적 (kalpanā) ‘虛妄分別 (漢譯) ,

작용 즉 상상력 을 의미한다, .

17)

칸트의 경우 상상력은 두 차원에서 작용하는 결 합하거나 통일하는 힘 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마당에서 움직이고 있는 물체를 지 . 각했을 때 나는 그 지각을 개 라는 개념과 일치시킨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것을‘ ’ . 다른 장소인 길거리에서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이전의 지각 내용과 동일하다는 것 즉 동일한 개임을 인식한다 상상력은 바로 지각과 개념을 연결 짓지만 불교, . 는 그것을 순수 소여를 증폭시키는 강박적 경향이라고 해석한다 불교는 이것이. 일체의 개념적 지식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보는데 자아 전체성과 같은 개념도, , 주관의 개념적 구성이라고 본다 불교는 일체의 주관적 작용을 주관의 의지와 욕. 망에 의해 오염된 것이라고 간주한다 따라서 불교는 형이상학적 논의가 무용지. 물이거나 미망에 빠지게 한다고 생각한다 지각은 개념적 구성을 갖지 않는다 는. ‘ 디그나가의 정의는 곧 이 인식이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대상 자체에 대한 인식이 라는 의미이므로 그것은 인식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다르마끼르띠는 디그나가의 정의를 더 엄격하게 적용하여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어린아이나 벙어리조차 이와 같은 개념적 사유에 속박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불교는 개념적 구성 을 발화된 언어행위뿐 아니라 일체의 사유와 무의식 17) 반면 중관철학자들은 모든 경험이 개념적 구성 에 의해 물들어 있다고 파악하기 때문 에 일상의 경험적 세계는 사실상 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중관철학의 불교. 인식론에 대한 비판은 지각이 과연 참된 인식수단이 될 수 있는가 참된 인식수단이, 라는 개념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가라는 점에 비판이 집중되고 있다.

(14)

적 행위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18)

만약 일체의 오염의 근거인 개념적 구 성 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욕망이 없고 자비로 가득 찬 명징한 지혜의 순 수한 상태에 머물 수 있다 불교인식론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순수한 지각의 상. 태에서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이론에 대해 논리적 논쟁만 일삼는다는 비난은 정. 당하지 못하다 오히려 이 이론의 배후에는 현상세계에서의 구원 가능성을 모색. 하려는 구원론적 관심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념적 구성 은 왜 문제가 되는가 불교의 언어이론에 따르면 언 ? 어는 한 언어 공동체에서 공통적으로 이해되는 개념의 도움으로 세계를 기술한다. 이름은 그것을 나머지와 구분시킴으로써 한 대상을 동일화한다 개념들은 관례적. 인 허구이며 의사소통과 교류의 목적을 위해 사람들에 의해 관례적으로 수용된 것에 불과하다.

19)

그런데 개념에 의한 구성은 항상 욕망과 즐거움의 추구에 의해 추진되기 때문에 소여의 순수성은 개념에 의해 오염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실제.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고의적으로 그러기를 바라는 대로 실재를 구성한다 따. 라서 모든 개념적 구성은 허망분별 이라는 한역 (漢譯)에 분명히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정의상 오류이며 실재의 왜곡이다 현상학과 달리 불교는 모든 구성이 우. 리의 정신적 경향이나 기질 또는 무시이래의 구성적 기억의 창고 에서 발생한다, 고 설명한다 더 정확히 이 경향이나 기질은 지각한 바로 다음 순간에 정신적 구. 성을 강요한다 이런 식으로 개념적 구성 은 인식 과정에서 오류가 개입되는 지점. 으로서 암시된다.

개념적 구성 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해석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그 배후에

있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불교의 관점이다 불교는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현상적. 특수자(svalakṣaṇa)라고 본다 디그나가에 따르면 특수자. (svalakṣaṇa)는 개념이나 18) Dharmakirti, Nyayabindu , Bananas: Chowkhamba, l954. , 5. “abhilāpa-saṃsarga-

말에 결합될 수 있는 표상적 인식이 개념인데 yogya-pratibhāsā pratītiḥ kalpanā( ).”

19) 만약 언어 즉 이름과 개념이 없다면 우리는 감각 소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을 것, , - 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일종의 필요악이며 그것들이 우리의 목적 달성에 유용한 경우. , 에 한하여 부분적으로 진리임을 인정할 수 있다 다르마끼르띠에 따르면 만약 일부. 추론은 우리의 실제적 행위 또는 행동을 수행한다면 지식을 산출할 수 있다 따라서. 추론은 지식의 간접적 수단에 불과하지만 불교지식론을 완성시키기 위해 필요불가결 한 요소가 된다.

(15)

그 어떤 보편적 진리에 대한 선행적 의지 없이 알려진 순수한 특수자 이다 .

20)

약 이 배타적 특수자들이 색과 같은 외적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을 포괄한다고 인 정된다면 그것들은 비추론적 지식 다시 말해 지각에 표상되기 적합한 그런 종류, , 의 것이며 소여의 일종으로 간주될 수 있다 디그나가는 특수자. (svalakṣaṇa)가 다 른 어떤 것에 의해 산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그것들은 스스로 지각 , 의 직접적 대상이며 오직 지각만 변별적 속성들을 분별할 뿐이며 그와 관련된 개 념적 활동이 없다.

디그나가의 정의에 따르면 특수자(svalakṣaṇa)는 지각에 의해 마주친 유일 한 특수자이며 그것들의 정의불가능성 에 의해서만 특징지어진다 .

21)

이 정의불가 능성은 배타적 특수자의 환원 불가능한 유일성을 강조하는데 다르마끼르띠는 그, 것을 찰나성 이론으로 해석하였다.

22)

배타적 특수자의 정의불가능성 의 관념은 지각의 비언어적 특징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에 따르면 지각만 유일. 하게 해석되지 않은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자료는 그 자체로 알려. 지기 때문에 다른 모든 지식에 대한 유일하게 확실한 토대로서 단지 앎에 주어 져 있는 소여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지각의 비개념적 특징에 대한 디그나가의 . 고집은 우리가 우연적으로 오염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어떤 것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중요한 통찰을 제 시한다.

보편자에 의한 추론은 명제적 지식에 없어서는 안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 고 개념적 구성에 의한 인식적이고 구원론적 오염들은 기본적인 인식 능력들에는 우연적이며 그래서 이런 오염들의 제거를 통해 지각을 자유롭게 하여 사물들이 실제로 그런 것과 같이 사물들을 인식할 수 있다 만약 기본적 지각표상들의 추. 론적 정교화가 명제적 지식을 산출하는 데 필수적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은 또한, 정확하게 이런 저런 형식으로 불교적 실천에 의해 극복되어야 할 문제일 뿐이다. 20) Hottori, 앞의 책, pp. 89-90.

21) Hottori, 앞의 책, p. 27, p. 67.

22) Georges B. J. Dreyfus, Recognizing Reality: Dharmakīrti’s Philosophy and Its Tibetan Interpretations,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7, pp.

63-65.

(16)

불교인식론에서 지각은 궁극적 실재인 배타적 특수자와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하며 특권적인 방법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불교인식론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상대적. 진리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진리와의 매개와 구원의 가능성을 구하는 시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환영의 문제 2.

지각은 올바른 지식의 수단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환영도 포함하지 않는 다는 두 번째 특징이 부가된다 지각은 오직 감각에 의해 산출된 지식이 감각기. 관의 환영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서만 믿을만한 지식수단으로 간주된다. 다르마끼르띠는 디그나가의 지각에 대한 정의에 무오류적 이라는 특징을 덧붙임 으로써 앞에서 언급한 디그나가의 통찰을 더 분명히 하였지만 환영의 본질 문제, 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은 다르다.

디그나가에게 프라탁사(pratyakṣa)의 본질은 개념적 구성의 배제이므로 그것 은 항상 참이다 디그나가는 환영의 대상이 지성에 의해 구성된다고 생각했다 순. . 수한 감각적 지각은 어떤 개념적 판단도 포함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비구, 성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환영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디그. . 나가에게 두 번째 특징은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디그나가는 환영은 해석상의 오. 류이며 지각 자체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사막에서 신기. 루를 보았을 때 신기루에 대한 지각은 의식에 현상한 그 자체로 참이다 디그나. 가에 따르면 오류란 신기루라는 감각 지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마름 때문 에 그것을 물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발생한다 디그나가는 환영은 다른 모든 직접. 적 지각과 마찬가지로 참이며 오류는 개념적 구성에 속하며 잘못된 판단에 의해 야기된다고 보았다.

23)

순수한 지각이 직접적이라는 말은 그것이 비구성적이며 수동적이라는 의미 를 내포한다 그런데 이 정의에 내포되어 있는 것은 비록 대상 자체에 대해 우리. , 가 알 수 없다고 할지라도 지각의 대상으로 표상되는 대상 형상은 주관적 구성이- 23) Hattori, 앞의 책, p. 28.

(17)

아니라 어떤 실재성에 근거하는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점에서. 디그나가는 인식론과 형이상학에 대하여 대단히 중요한 관점을 제시하였다 디그. 나가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 인식론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설정 함으로써 바수반두의 유식이론이 모든 현상적 인식을 환영으로 치부한 것으로부 터 그 진리성을 회복시키고자 하였다 지넨드라부티는 디그나가의 이런 태도에. 대하여 비록 그 실재적 본질에 있어서 외적 대상을 인식할 가능성이 없다고 확 신했을지라도 디그나가는 인식 과정에서의 결론 단계의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를 이렇게 공식화함으로써 외적 세계의 존재를 옹호하는 실재론자와 그것을 부정하 는 관념론자들을 모두 만족시키기를 원했다 라고 해석하였다 .

24)

이 때문에 디그 나가의 인식론은 관념론의 범위를 벗어난다.

25)

여기서 디그나가가 비환영성을 포함시키기를 거부한 또 다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다름 아니라 그것은 디그나가의 인식론 체계에 근본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의 인식론 체계는 지식의 두 가지 배타적인 근원들의 구별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지각은 판단을 할 수 없다 만약 환영이. . 나 오류가 지각의 영역에 포함된다면 그것들은 판단의 영역에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두 가지 지식의 근원 사이의 배타적 구별이라는 원칙에 모순된다 수. 동적 지각에 표상되는 것은 지금 여기라는 순간성이다 그러므로 모든 공간적 연, . 장과 시간적 지속도 환영이며 예를 들어 멀리서 숲을 지각할 때 나무를 지각하, 지 않고 어두운 덩어리를 지각하는 것도 환영이라고 해야 한다 디그나가는 묻는. . “그렇다면 이중의 달과 빙빙 돌리는 횃불의 원 배 위에서 바라본 움직이는, 나무와 달리 그것이 환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디그나가는 경험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것이 순수한 감각적 지각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에 의한 구성 때문이라고 보 았다 그러므로 그는 오류지각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첫째 신기루와 같은. . , 환영들인데 그것은 경험적 환영으로서 지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성에 의해 산, 24) 체르바츠키 앞의 책, , p. 250.

25) 이 때문에 이 입장이 관소연연론 에 표명된 그의 관념론적 입장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디그나가 철학체계를 일관적으로 구성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18)

출된다 다시 말해 사막에서 목마름 때문에 지성에 의해 헛것을 본 것이다 둘째. . , 인식대상을 외적 실재라고 판단하는 선험적 환영으로서 이는 모든 경험적 지각, 에 해당한다 셋째 모든 추론과 그 결과를 마치 감각적 지각인양 다루는 것들인. , 데 예를 들어 이것은 연기인데 불의 증거이다 라고 할 때 마치 불을 보고 있는, , 것처럼 판단하지만 그것은 기억에 의존해 있다 넷째 모든 기억과 희망처럼 과거. , 의 경험으로부터 불러일으켜졌지만 마치 감각적 지각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디그. 나가는 환영의 개념을 일반화시키고 신기루와 같은 경험적 환영과 선험적 환영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감각적 지각을 모든 기억의 요소를 배제한 순수. 한 감각으로 보았다.

반면 다르마끼르띠는 감각적 환영과 지성에 의한 환영을 구분해야 한다고 보았다.

26)

예를 들어 새끼줄을 뱀이라고 잘못 보았을 때 이 환영은 지각에 표상, 된 경험 자료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뱀이. 아니라 새끼줄이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오류는 사라진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청록색맹인 사람은 장미덩쿨과 장미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에게 그것들은 모두. 청색으로 표상되기 때문에 그의 지각에 표상되는 것은 오직 장미덩쿨뿐이며 장, 미덩쿨 사이에 장미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후에도 그의 청색의 지각에는 변 함이 없다 오히려 이때 장미꽃에 대한 지식은 그에게 개념적인 것이다 또한 생. . 생하게 느껴지는 환영이나 꿈은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도 발생한다 그것들은 개. 념적 구성이 없기 때문에 다른 것을 잘못 보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따라서 환영 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만약 개념적 구성 때문에 환영이 발생한다고 주장. 한다면 개념적 구성이 없는 모든 환상이나 꿈도 올바른 지각이라는 결론에 도달 하게 된다 이런 치명적 결론을 피하기 위해 다르마끼르띠는 감각적 지각의 특징. 으로 비환영성이라는 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감각적 지각이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정상적인 감각기관이 판단에 영향을 미쳐 오류지각이 이 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르모따라는 다르마끼르띠가 순수 감각 속에서 그 대상의 결과를 만들어

26) Dharmakirti, 앞의 책, , 4. “tatra pratyakṣaṃ kalpanā apoḍham abhrāntam( 그 중에 서 현량은 개념을 떠난 것으로 환각이 아니다).”

(19)

내는 대상 자체의 자성적 본질과 접촉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 비환영성이란 특징을 도입하였다고 주장했다.

27)

여기서 대상 자체의 본질 은 대상의 기능과의 ’ ‘ 일치 즉 인과적 작용성’, arthakriy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땅바닥에 있. 는 씨앗을 지각하고 그것을 줍기 위해 달려갔을 때 그것이 진짜인 경우 나의 노 력은 성공하겠지만 그것이 오류지각이라면 나는 결코 씨앗을 주울 수 없을 것이 다 전자의 경우 대상의 기능과의 일치가 있지만 후자의 경우 일치는 없다 대상. . ‘ 의 기능과의 일치 는 곧 기대된 행동과 기대된 것과의 일치를 의미하는데 이로부 , 터 행위가 지식의 진리성을 구성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니야야빈두 의 서두에 서 다르마끼르띠는 올바른 인식은 인간 목적의 성공에 선행한다고 단정하였다.

28)

다르모따라는 선행한다 는 의미를 야기한다 라고 해석함으로써 성공적 인간행동 , 을 위해 올바른 인식을 필수조건은 아닐지라도 충분조건으로 인정하였다 그렇다. 면 어떻게 성공적인 인간행동은 올바른 인식에 근거하는가 토끼 뿔이나 하늘 꽃? 처럼 비실제적인 것은 그 관념이 인식에 떠오를지라도 비실제적인 것에 대한 성 공적인 인간 행동은 없다 실재만 올바른 인식을 야기할 수 있다. .

다르마끼르띠의 환영이론이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의미는 그가 지식의 성격 으로 꼽은 무모순성이란 원리가 사실상 사물의 인과적 작용력을 의미한다는 사실 이다 다르마끼르띠는 지각에 무모순성의 원리를 도입하여 기대되는 대상이 유효. , 한 능력을 가진다면 그것은 무모순적이고 따라서 참으로 확정할 수 있다고 보았 다 그러므로 감각 기관의 결함에서 오는 직접지는 오류로 간주된다 다르마끼르. . 띠는 한밤중에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했을 경우 오류는 새끼줄의 지각을 뱀이라고 해석한 것에 달려 있기 때문에 개념적 오류이지만 안질 때문에 달이 둘로 보일, 경우 그것은 해석상의 문제가 아니라 시각 기관의 병 때문에 발생하였기 때문에, 감각적 오류라고 인정하여 지각의 범주에서 배제한다 따라서 경험적 인식은 전. 적으로 허구가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27) 다르모따라, Nyayabindutika p. 7.

28) Dharmakirti,앞의 책 , 1. “samyag-jñāna-pūrvikā sarva-puruṣa-artha-siddhir iti 올바른 인식이 선행되어야 인간의 모든 목적이 성취되기 때문에 그 tad vyutpādyate(

것이 상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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