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령의 도입과 수용에서 나타난 식민성
과 젠더 -
가족법을 중심으로
소현숙
(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
식민지 하에서 일상생활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
가 ?
일제에 의한 근대적 제도의 도입은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
여성들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 그들
은 희생자 혹은 낙오자였는가 ?
문제설정
가족은
역사 이해의 중요한 통로
가족은 사회제도 & 일상적 생활이 영위되는 공간 , 역사적 산물
한 사회의 작동원리를 가장 일상적 차원에서 가시화
가족법을 통한
가족사의 이해
법은 ‘정상 가족’의 규범과 경계를 가시화
소송에서 나타난 갈등은 일상에 묻힌 권력구조를 가시화
이혼법
의 역사
이혼의 법적 권리는 당대 사회의 차별구조를 반영
변화 과정을 통해 사회변화를 통찰
문제설정
조선민사령 (1912)
“ 능력 , 친족 및 상속에 관한 규정은 관습에 의한다”
1 차 개정 (1921) 능력 조항에 일본 민법 적용
2 차 개정 (1922) 혼인연령 ,
재판상 이혼
, 사생자
인지 등에 일본 민법 적용
3 차 개정 (1939) 서양자 제도 등 도입
식민지시기 조선민사령의 도입과 개정
식민지 시기
법적 근대화의 산물
1912 년 민사령 : 가족에 관해 관습주의를 채택
1922 년 민사령 개정 : 이혼에 관해서 일본민법 의용
근대법인 일본민법의 의용 , 여성이혼청구권이 최초로 법조문
화
☞ 질문 :
여성
이혼청구권
은 어떻게 도입되었는가 ?
그것은 단순히
식민권력의 정책적 산물
인가 ?
첫번째 변화 : 여성 이혼청구권의 도입
관습
왜곡
론
관습
론
창출
관습
론
변화
기존의 견해
기존 연구의 한계
관습 왜곡 / 창출론 : 정책을 중시 , 식민권력의 힘을 과대평가 , 조
선사회의 역동성 간과
관습변화론 : 조선사회의 변화 내용 미규명
이혼사례에 대한 실증 분석 부재 & 젠더 분석 결여
이혼통계와 소송사례 , 담론을 실증분석
정책사에 일상사적 시각 접합 . 제도와 일상의
상호작용
에 주목
젠더 분석을 통해 여성을 역사적 주체로 고려
사법관련 자료 , 재판기록 , 신문잡지 자료 활용
조선시대 이혼의 법과 관행
칠거지악을 이유로 한 기처 ( 棄妻 ) 와 강제의절 조항
조선후기로 갈수록 이혼이 억제
양반층은 억제 / 하층은 비교적 자유 ( 사정파의 , 할급휴서 )
☞ 남성에겐 허용
여성이혼요구는 배부 행위
관습법에서 근대법으로의 전환과
여성이혼청구권
조선민사령 (1912) 도입
가족에 관해 관습주의 채택
관습조사보고서 간행 : 조선의 구법 ( 舊法 ) 에 기반 . 기처
와 강제의절 , 이혼의 원인으로서 칠거지악 , 합의이혼 없
음 ,
여성 이혼청구권 부정
이혼이 극도로 억제됨으로써 실제적 효력이 없던 조선의 구
법 규정이 ‘관습’으로 확정
관습법에서 근대법으로의 전환과
여성이혼청구권
1908 년부터 합의 / 재판이혼 증가
보고된 관습과 현실의 괴리 관습이 무엇인가 논쟁
계속된 관습의 새로운 확정 총독부는 법개정 논의 시작
민사령 제 2 차개정 (1922)
이혼에 관해서 관습법 대신에 일본민법을 의용
여성의 이혼청구권을 법조문으로 확정
관습법에서 근대법으로의 전환과
여성이혼청구권
조선 舊法 일본민법 청구자 이혼원인 청구자 이혼원인 남편 칠거지악 배우자 쌍방 1. 중혼 2. 범죄로 인한 형사처벌 3. 처의 간통 4.남편의 간음죄 5.학대 모욕‧ 6.악의 유기 7.배우자의 직계존속으로부터의 학대 모욕‧ 8.배우자의 직계존속에 대한 학 대 모욕‧ 9. 생사불명 10.서양자의 이연 1. 무자 ( 無子 ) 2. 음일 ( 淫佚 ) 3. 다언 ( 多言 ) 4. 절도 ( 竊盜 ) 5. 투기 ( 妬忌 ) 6. 악질 ( 惡疾 ) 7. 불사고구 ( 不事姑舅 ) 국가 강제의절 중혼 , 사기결혼 , 동성혼 , 역 적죄 , 지나친 폭력 등 관행상 거의 적용되지 않음 실제적 법 적용 1912 년 민사령 하에서 ‘관습’으로 확 정 1922년 민사령 개정으로 도입
<
표 1> 이혼법의 비교
<
통계 1> 1910 년대 이혼소송 추이 (1908~1916)
1908 1909 1910 1911 1912 1913 1914 1915 1916 0 50 100 150 200 250 300 350 400 이혼소송 건수<
통계 2> 원고별 이혼소송 추이
1908 1909 1910 1911 1912 1913 1914 1915 1916 0 50 100 150 200 250 300 350 아내청구이혼소송 (건수 ) 남편청구이혼소송 (건수 )< 자료 1> 여성의 이혼청구 현상에 대한 총독부 측의 염
려
사법부장관 고쿠부 미쓰이 (1915)
“ 인사에 관한 소송은 주로 이혼사건이고 그 다수는 처로부터 부에
대한 소송이다 . 해마다
비상한 세로서 증가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평안남도 풍속변천 상황 조사 (1916)
“ 여자 풍습의 변화로서 부녀자의 이혼자가 자주 나타나는 것이
가장
우려할만한 것이고
, 재혼을 천시하는 풍조는 점차 쇠퇴하고 있다”
보고된 관습과 현실 사이의 괴리
1908
년부터 이혼재판 증가
1910
년대 원고의 90%
는 여성
법에 의해 권리가 부정된
여성들의 지속적인 소송
제기
관습주의 자체 무력화 관습을 둘러싼 논쟁 야기
관습법으로부터 일본민법의용으로의 전환을 가속화
가족법 조항 중 이혼법이 가장 빨리 개정
이혼법 개정은 단순히 정책의 산물이 아님
이혼법 개정과 여성원고의 역할
원인 건수 (%) 원인 건수 (%) 학대모욕 1,188(44.83) 남편의 불구 또는 병 11(0.42) 악의 유기 ( 惡意 遺棄 ) 471(17.77) 나병 10(0.38) 파렴치죄 363(13.70) 도벽 6(0.23) 생사불명 253(9.55) 파렴치 이외의 범죄 6(0.23) 직계존속에 대한 학대모욕 103(3.89) 남편의 간통 5(0.19) 직계존속으로부터의 학대모 욕 41(1.55) 기질불합 ( 氣質不合 ) 4(0.15) 중혼 39(1.47) 남편이 형사피고인으로 구류됨 2(0.08) 교접불능 ( 交接不能 ) 39(1.47) 혼인신고를 제출하지 않음 2(0.08) 성행불량 ( 性行不良 ) 39(1.47) 남편의 벽지이주 ( 僻地移住 ) 동행 요구 1(0.04) 아내의 간통 37(1.40) 간통죄 징역 만기 출옥시 남편이 데리러 오지 않음 1(0.04) 빈곤 14(0.53) 아내의 딸과 간음 1(0.04) 정신병 13(0.49) 連子의 혼인을 남편이 돌아보지 않음 1(0.04) 合計 2,650(100)
<
통계 3> 이혼원인종별건수 (1908~1921)
남성들의 기처 관행 여전
‘ 버리면 그뿐 , 법원까지 갈 필요가 없다’
여성들의 청구이유 :
학대와 폭력이 절반이상
, 유기복역생사
불명에 따른 생활난으로 재혼을 위해
새로운 청구원인들도 등장
: 성불구 소송
여성들의 이혼청구 원인
< 소송사례 1> 성불구 관련 소송
한말 궁중 내시의 폐관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며 이혼을 요구
여성의 변화 반영
☞ 양원묵의 이혼소송 1910 년대 논란이 되었던 소송 “ 진기한 이혼소송 - 원고는 방년 이구 에 꽃나운 미인 , 청춘의 욕망을 달치 못함은 인생 일대의 비참사라고 진술 "
여성의 청구에 대한 일제의 대응
1910 년대 전반
다양한 이혼원인 인정
1910 년대 후반
판결에서 일본민법의 영향력이 점차 증대
일본민법의 이혼원인에 해당하지 않는 원인은 불인정
일본민법 쪽으로 여성들의 요구를 통제
이혼원인 조선의 舊法 규정 일본민법 제813조 남편의 중혼 ○ ○ 남편이 아내의 직계존속 학대 또는 중대한 모욕을 가함 ○ ○ 남편의 학대 모욕 ○ ○ 남편의 3 년이상 생사불명 ○ ○ 남편이 처의 실모와 간음 ○ △ 남편의 강도 , 절도 , 횡령죄로복역 X ○ 남편의 악의 유기 X ○ 남편의 직계존속의 학대 또는 중대한 모욕 X ○ 처를 첩이나 창기로 매매하거나 매매할 우려가 있는 경우 ○ X 남편이 연령 , 나병 , 간질 , 정신병을 속이고 결혼 ○ X
<
표 2> 1910 년대 전반 승소한 여성청구이혼원인
(1908~1916)
조선구법에만 해당하는 이혼원인 , 일본민법에만 해당하는 이혼원인이 뒤섞여 있음
1916 년까지 이혼원인으로 인정된 악질은 1920 년 악질은
관습적 이혼원인이 아니라고 부정
“
부부 일방이
나병 등 악질이 있거나 생식기 불구인 경우에 이를
이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관습은 없다 .
이를
속이고 결혼해
도 혼인은 무효가 아니다
” ( 정무총감 )
관습상 허용되어 온 악질을 이유로 한 남편 측의 이혼
청구권도 부정 . 일본민법상 이혼원인이 아니기 때문
< 소송 사례 2>
1910 년대 후반 악질 ( 惡疾 ) 관련 소송
양원묵의 재판 : 1 심 패소
재판부의 기각 이유
“ 내관 되는 불구자도 인간이오”
“ 이를 허락하면 사회의 기강이 문란해진다”
양원묵은 항소 2 심에서 학대모욕을 이혼사유로 첨가 , 결국 승소
재판제도를 활용하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한
적극적 여성들
‘ 역사적 행위자’로서 조선 여성
조선후기의 변동과 연속선상에서 이해
조선후기 정소에 대한 연구
여성에 의한 정소가 조선후기 전반적으로 위축
하층 부녀자들에 의한 정소는 비교적 활발
서학의 적극적 수용
18~19 세기 서학의 수용 . 절반 이상이 여성들 . 양반가 여성들
도 포함
한말의 기록들
이혼과 재혼에 관한 하층 여성들의 적극적 태도
‘ 역사적 행위자’로서 조선 여성
< 자료 2> 한말 외국인 기록 - 하층 여성의 역
동성
새비지 랜도어 : “ 하류계층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 이 계층의 여성들은 20 명의 남편과 사별할지라도 결코 자신의 목숨을 끊는 생각을 잠시라 도 하지 않고 곧바로 21 번째 결혼생활에 들어갈 것” 호머 헐버트 : “ 양반층에서는 이혼이 어렵고 남편이 이혼을 요구할 때는 명백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아내의 친정세력의 견제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 이에 비해 평민 사회에서는 이혼은 보다 흔하고 쉬운 일이었 다 . 그러나 일단 칠거지악으로 아내가 내쫓겼을 때 , 양반의 딸일 경우 에는 남편 측의 주장이 옳건 그르건 간에 절대로 권리 구제를 할 수 없지 만 그 아내가 평민일 경우에는 자기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한 그 여인 은 한성부윤이나 지방의 道伯에게 제소하여 남편의 횡포를 처벌토록 할 수가 있었다
식민지시기
여성이혼청구권의 도입은
재판제도를 활용한 여
성들의 적극적 행위와 그것에 대응한 일제의 정책적 노력이
개입된
‘상호작용’
의 산물
1910 년대
여성들은
침묵하는 존재가 아닌 자기 삶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
역사적 행위자
”
일상에 대한 식민권력의 지배는 일방적일 수 없었음 .
일상은
식민지배정책과 조선인들의 욕망이 경합하는 장
, 그 상호작
용 속에서 식민지 가족법이 변화
소결
- 0.10 0.20 0.30 0.40 0.50 0.60 0.70 이혼율 추이(인구 천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