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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영웅신화 전승의 세 가지 축과 북방 노마드의 신화 정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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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몽골 영웅신화 전승의 세 가지 축과 북방 노마드의 신화 정체성

‒ 몽골 영웅서사시 <장가르>의 ‘영웅’과 ‘이상국’ 인식을 중심으로 ‒*

101)

이 선 아**

❙국문초록❙

몽골 유목민은 북방 초원과 알타이 지역을 근거지로 하면서 광활한 유라시아 지역을 무대로 민족적 이합집 산을 거듭하여 왔다

.

이러한 이합집산의 역사적 과정에서

신화

역사

라는 반어적인 개념을 하나의 기억 속 에서 공유하면서 장대한 규모의 영웅서사시 장르를 발전시켜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전승하고 있다

.

신화와 역 사가 비교적 미분화된 몽골의 영웅 서사에는 북방 유목민의 역사적 이산과 연대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신화 적 원형을 토대로 장편의 장르로 유연하게 종합되고 정형화되어온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

특히 수시 로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도전을 받아온 북방 유목민들이 영웅신화의 전승 과정에서 오히려 범세계적이고 강 력한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격변하는 환경에서의 생존전략으로써 다채롭게 발전시켜온 전승의 양상이 특징적이 라고 할 수 있다

.

이 논문에서는 알타이 지역을 중심으로 북방 지역에서 격동의 이주사를 끊임없이 경험하였던

<

장가르

>

서 사시를 사례로 하여

,

오이라트 몽골의 영웅신화의 전승 과정에서 이러한 모습이 특징적으로 주목되는 신장 알 타이

,

칼미크

,

몽골 본토 등 지역을 세 가지의 축으로 나누어 비교적으로 고찰하였다

.

특히

<

장가르

>

에서 형상 화된

영웅 장가르

이상국 봄바국

의 신화적 의미와 관련지어 북방 유목민의 노마디즘의 원형과 신화정체성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

이러한 전통적인 노마드 정체성의 특징적 면모를 탐구함으로써 현대 지역문화 담론의 틀에서 새롭게 조명 되고 있는 동북아 지역 글로컬리즘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한다

.

즉 팬더믹 이후

,

격변의 국제 사회에서 지역 간 교류와 협력의 원리로서 세계성과 생명성을 지향하는

뉴노마디즘

이라는 새로운 문명 담론의 모델을 제안해 보고자 하였다

.

[

주제어

]

몽골 노마디즘

,

신화정체성

,

신화 전승의 세 가지 축

,

연대와 분리

,

생존전략

,

영웅서사시

,

영웅

,

이상국

,

장가르

,

글로컬리즘

,

세계성

,

뉴노마디즘

* 이 논문은 2020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0S1A5C2A01092498).

**단국대학교 아시아·중동학부(몽골학 전공) 조교수 / suna0209@hanmail.net

(2)

❘목 차❘

.

서 론

.

몽골 노마드 신화의 원형과 전승의 세 축

. <

장가르

>

서사시의

영웅

이상국

인식과 노마디즘 정체성

.

결론:

뉴노마디즘

’,

몽골 노마디즘 신화의 현대적 의의

Ⅰ. 서 론

몽골 유목민의 신화는 북방 노마디즘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격동의 역사 속에서 결정적인 시기마 다 영웅과 이상국이라는 신화적 이상향을 재현해 주면서 동시에 경계와 경계를 넘나들며 오늘날에 이르기까 지 끊임없이 시대적 생존전략을 제안해 왔다

.

이러한 몽골 노마드의 영웅서사시에서 형상화된 세계관을 통해 탈경계 시대의 교류와 협력의 원리로서 세계성과 생명성을 지향하는

뉴노마디즘

이라는 새로운 문명 담론의 모델을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 이 논문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

몽골 유목민은 북방 초원과 알타이 지역을 근거지로 하면서 광활한 유라시아 지역을 무대로 민족적 이합 집산을 거듭하여 왔다

.

이러한 과정에서 몽골 유목민의 서사는

신화

역사

라는 반어적인 개념으로 하나의 공유된 기억 속에서 역설적인 장르로 전승되어 왔다

.

그 대표적인 사례가 명실공히 몽골 문학의

3

대 정수로 주목받고 있는

<

몽골비사

>, <

장가르

>, <

게세르

>

이다

.

1)

이중

, <

몽골비사

>

는 몽골의 대표적인 역사서이자 문학작품으로 규정되어 있고 신화와 역사의 기술이 비교

적 수월하게 구분된다

.

한편

, <

장가르

>

<

게세르

>

는 대형의 영웅서사시 장르로서

,

상상의 구조물인 신화의 영역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적 개연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

,

이들 몽골문학은

역사적 신화

’, ‘

신화적 역 사

로서

신화

=

허구

,

상상

역사

=

사실

이라는 이항대립적인 구분법을 무력화하고 동시에 신화와 역사의 원 초적 상관성에 대해 각성하게 한다

.

이처럼 미분화된 몽골 영웅의 서사는 역사적 이산과 연대의 과정에서 그 신화적 원형을 토대로 장편의 장 르로 종합되고 정형화되었다

.

그러한 과정에서 수시로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도전을 받아온 몽골 유목민들을 결집하게 하여 보다 거대하고 강력한 정체성을 형성하게 하는 기능을 담당하여 왔다

.

이러한 이유로 장가르

,

게세르 등과 같은 북방 유목민의 영웅서사시의 연구에서 주요 쟁점이 되어왔던 것 이 신화인가

,

역사인가라는 원론적 질문에서부터 신화적 서사 안에 등장하는 영웅의 정체와 사건의 시간적

,

공간적 배경에 대한 문제였다

.

특히 장가르와 같이 알타이 지역을 중심으로 북방 지역에서 격동의 이주사를 끊임없이 경험하였던 오이라트 몽골의 영웅신화를 통해 복잡다단한 몽골 노마디즘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1) Д.Цэрэнсодном(2002), Монгол уран зохиолын товч түүх, ШУА, УБ, pp. 80~137, 149~186.

(3)

Ⅱ. 몽골 노마드 신화의 원형과 전승의 세 축

1. 몽골 노마디즘의 본질

몽골 유목민의 전통에서 민족의 이산

(

離散

)

을 의미하는 디아스포라

(diaspora)

2)는 몽골 유목사회 안에서 안정적으로 구조화된

유목

(nomad)’

과는 다른 별개의 개념으로 규정할 수 있다

.

,

몽골 유목 문화의 본질 을 내포하고 있는 몽골 신화의 서사에는

이주

로부터 시작되며

,

이러한

이주

의 개념에는 단순한

유랑

유 목

만을 내포하지는 않는 독특한

노마드

적 성향이 내포되어 있다

.

특히 오이라트 몽골 유목민의 영웅서사시 는 치열한 이주의 역사와 함께 이주에서 유목

,

디아스포라로 순환하는 구조를 태생적으로 경험해 왔다

.

몽골 디아스포라3) 서사의 특징은 오이라트 몽골 유목민이 경험한 비극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원향 의식의 차이에 서 기인한다

.

,

몽골 신화에서 유목은 고향

(nutag,

нутаг

)

에 안정되게 거주하고 있거나 주거지로서 귀향이 언제든 보장되는 것이지만 디아스포라는 낯선 외부의 공간에서 보다 강력한 권력과의 투쟁이 상주하는 상태 이다

.

따라서 몽골 오이라트 유목민의 신화는 현실 공간에서는 실현이 불가능한 원향 의식이 이상국과 같은 형태로 절실하게 묘사된다

.

앞서 언급하였듯이 몽골 유목민의 서사는 이주의 역사와 함께 사건의 발단으로서 주요하게 언급된다

.

이 에 대해서는

<

몽골비사

(Mongolyn nuuts tovchoo,

Монголын нууц товчоо

,

蒙古祕史

)>

의 첫 장면인

1

장 테무진의 근원과 어린 시절

(

Тэмүжиний уг гарал ба бага насны уе

)’

에서 명확하게 이야기된다

.

1.

칭기스칸

(

Чингис хаан

)

의 근원

,

위 하늘에서 운명적으로 태어난 버르테 ‒ 치노

(

Бөртэ

-

чино

)

와 부인 고아 ‒ 마랄

(

Гуа

-

Марал

)

은 함께 텡게스 달라이

(

тэнгис далай

,

大洋

)

을 건너와 어넌

(

Онон

)

강의 원천 보르칸 칼둔

(

Бурхан халдун

)

산에 정착하여 바트차간

(

Батцагаан

)

이라는 한 아들을 낳았다

. <

몽 골비사

, 1

1

>4)

2)디아스포라(그리스어:διασπορά[*])는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특정 민족이 자의적 이든지 타의적이든지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한자어로는 파종(播種) 또는 이산(離 散)이라고도 한다. 유목과는 다르며, 난민 집단 형성과는 관련되어 있다.

디아스포라, https://ko.wikipedia.org/wiki/%EB%94%94%EC%95%84%EC%8A%A4%ED%8F%AC%EB%9D%BC (검색일:2021.01.16.).

하지만 현대 문명 담론에서 주요 이론과 개념으로서 확대되어 거론되고 있는 ‘디아스포라’의 개념은 ‘노마디즘’ 혹은 ‘뉴노마 디즘’이라는 보다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개념망 안에서 발전적으로 재고찰될 필요가 있다.

3)현재 우리의 디아스포라 연구는 식민 폭력 희생자들의 강제이주 차원을 지나 ‘초국적’, ‘재소속화’ 문제에 도달해 있다. 디아스 포라 개념의 이론적 잠재력은 우리가 공간, 장소, 문화의 동형성(isomorphism)과 포스트모던적 삶의 뿌리없음 양자에 맞서 는 동시에, 사회적 소속의 문제를 귀속성과 이동성 모두의 관점에서 다룰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데 있다(제1부 디아스포라 개념의 이론적 잠재력) [임경규 외, 󰡔디아스포라 지형학󰡕, 앨피, 2016].

4) Ш.Гаадамба, Монголын нууц товчоо, УБ., 1990, p. 25.

<Тэмүжиний уг гарал ба бага насны уе>

“1. Чингис хааны язгуур, дээр тэнгэрээс заяат төрсөн Бөртэ-чино, гэргий Гуа-Маралын хамт тэнгис далайг гэтэлж ирээд Онон мөрний эх Бурхан халдун ууланд нутаглаж Батцагаан гэдэг нэгэн хөвүүнийг төрүүлжээ.”

(4)

칭기스칸의 시조인 버르테 ‒ 치노

(

Бөртэ

-

чино

)

와 그 부인 고아 ‒ 마랄

(

Гуа

-

Марал

)

은 함께 대양

(

大洋

,

тэнгис далай

)

건너와

(

이주

)’,

오논

(

Онон

)

강의 원류 보르칸 칼둔

(

Бурхан халдун

)

산에

정착

하였다

.

이 성산

(

聖山

)

은 이주 후의 새로운 고향으로서 이주 이후

,

몽골 유목민의 정체성이 성립되는 명분이 되어준다

.

이후 부터 이곳은 버르테 ‒ 치노와 고아 ‒ 마랄의 아들 바트차간

(

Батцагаан

)

의 출생이 이어지면서 대대로 후세에 까지 몽골 유목민의 정체성을 표상하는 고향으로서의 인식이 지속된다

.

이처럼

<

몽골비사

>

에서의 첫

이주

는 대양을 건너온 이주로서

,

여기서 대양은 몽골 신화의 서사에서

사해

(

四海

)’

세계

(

世界

)’

를 의미하는 신화적 공식구로서

세계성

(

世界性

)’

을 지향한다

.

이는

<

몽골비사

>

형성 당대의 유력 신화로 부상한 텡게르

(

тэнгэр

,

천신

(

天神

))

신화를 전면에 표방함으로써 이미 복선되고 있다

.

몽 골 유목민의 씨족이나 부족

,

국가의 연대 과정에서

대양

(

大洋

)’

,

몽골어로

텡기스

(

тэнгис

)’, ‘

달라이

(

далай

)’

라는 용어는

칭기스

(

Чингис

=

тэнгис

)

– 칸

(

хаан

, qa’an)’, ‘

달라이

(

далай

)

– 라마

(

лам

, lama)’

등 유목민 집단 의 정치적

,

종교적 절대권력자의 칭호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빈번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

한편 몽골비사 제

1

9

절에는 또 다른 양상의 이주의 서사가 소개된다

.

연대의 대상이 되는 제

2

세력의 이주가 바로 그것이다

.

9.

코릴라르다이 메르겡

(

Хорилардай мэргэн

)

은 코리 투메트

(

хорь түмэд

)

부족의 땅에서 담비

,

다 람쥐 등의 사냥이 금지되어 다투다가 서로 사이가 나빠져 헤어졌고 코릴라르

(

хорилар

)

씨족으로 독립 하여 보르칸 칼둔

(

Бурхан халдун

)

산에 사냥감이 풍부하다고 듣고서 보르칸 칼둔의 산신을 세워 모시 는 신치 바얀

(

Шинч баян

)

오리양하이

(

урианхай

)

와 만나려고 이주해 왔다

.

이러한 호리 투메트의 귀 족 코릴라르다이 메르겡의 딸

,

아릭 오스

(

Ариг ус

-

)

에서 태어난 알롱고아

(

Алун

-

гуа

)

를 청하여 도보 메르겐

(

Добу мэргэн

)

의 부인으로 삼은 연유가 그러하였다

. <

몽골비사

, 1

9

>5)

여기에는 칭기스칸의 시조모 알롱고아

(

Алун

-

гуа

)

의 아버지 코릴라르다이 메르겡

(

Хорилардай мэргэн

)

이 출신 부족인 코리 투메트

(

хорь түмэд

)

의 땅에서 사냥이 금지되자 풍부한 사냥감을 찾아 보르칸 칼둔

(

Бурхан халдун

)

산으로 이주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

이는 아직 몽골 부족 사회가 유목으로 분화되기 이전인

사냥 시대의 이주

서사에 해당된다

.

이들의 이주의 과정에서 아릭 ‒ 오스

(

Ариг ус

, arig-

)

태생이자 코릴라르

(

хорилар

)

씨족장 코릴라르다이 메르겡의 딸 알롱고아는 몽골 칭기스칸의

10

대조 도보메르겐

(

Добу мэргэн

)

의 부인이 된다

.

,

9

절의 서사는 외래 씨족으로서 유입되어 혼인관계를 통해 기존의 유력 씨족과 결합함으 로써 연대하는 신화이다

.

또한 몽골 신화의 두 번째 이주의 주체인 코릴라르다이 메르겡은 본래 보르항 할둔 산신을 모시던 신치 5) Ш.Гаадамба,

ibid,

УБ., 1990, p. 26.

<Тэмүжиний уг гарал ба бага насны уе>

“9. Хорилардай мэргэн, хорь түмдийн газарт булга, хэрэм зэрэг ан гөрөөс агнахаа хориглон булаалдаж харилцан муудалцаад салж, хорилар овогтон болоод Бурхан халдун ууланд ан гөрөөс элбэг гэж сонсож, Бурхан халдуны эзэн бурхан босгосон Шинч баян урианхайтай уулзахаар нүүж ирсэн ажээ. Энэхүү хорь түмдийн ноён Хорилардай мэргэний охин, Ариг уснаа төрсөн Алун-гуаг гуйж, Добу мэргэний гэргий болгосон ёс тийм ажээ.”

(5)

바얀

(

Шинч баян

)

오리양하이

(

урианхай

)

를 만나기 위해 온 것이었다

.

신치 바얀은 몽골 역사에서 가장 먼 저 등장하는 오리양하이 출신으로서 오이라트

(oirad, oirat)

와 관련되며 칭기스칸의 시조 신화에서 부계 조 상

,

모계 조상에 이어 성산 보르항 할둔 산을 관장하는 토착신이자 제

3

의 세력으로서 언급되고 있다

.

하지만 앞에 소개한 몽골비사의 서사 맥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

칭기스칸의 시조가 이주해와 정착한 보르항 할 둔 산신을 모시는 오리양하이족 신치바얀이야말로 본래 이 지역의 토착세력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다

.

몽골의 신화 전승 영역에서 오이라트 오리양하이 몽골의 영향력이 강하게 나타나는 양상 역시 이러한 맥락에 서 이해될 만하다

.

이처럼 몽골의 신화에서는 이주의 서사로 시작되지만 성산에서의 정착과 또 다른 이주 세력과의 결혼을 통해 연대함으로써 보다 새롭고 강력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을 공식구처럼 제시한다

.

이러한 세 층 위의 세력이 각자의 사정으로 풀어나가는 서사는 북방 유목민 신화 전승의 특징을 보여주는 요인이 되어준다 고할 수 있다

.

이들이 연대하는 서사는 신화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북방 유목민 국가의 역사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

2. 연대와 분리의 생존전략과 신화 전승의 세 가지 축

몽골

(

Монгол

, Mongol)’

이라는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가설의 차원에서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을 뿐

,

그 명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

몽골비사의 서사에 의하면

, ‘

몽골

이라 는 명칭은 칭기스칸의

их Монгол улс

,

이흐 몽골 올로스

(

대몽골제국

)’

를 비롯하여 글로벌리즘

(globalism)

을 표방하는 이상국

(

理想國

)

의 역사적 실체라고 할 수 있다

.

이처럼 몽골 제민족은 몽골이라는 이름으로 성 공적인 연대를 이루기도 하였지만

,

반면 외부 세력과의 투쟁

,

내부 갈등 등으로 분열의 비극을 수시로 겪어 왔다

.

이중

,

오리양하이와 같이 용맹한 바아타르

(

баатар

, ba’atar,

英雄

)

로서 이름을 떨쳤던 오이라트 몽골은 지속적인 이합과 집산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정체성의 위협을 받아왔다

.

6) 이러한 역사적 고난은 오히려

<

장가르

>

영웅서사시와 같은 영웅 신화의 전승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몽골 유목민 중에서 영 웅서사시 장르를 활발하게 전승하고 있는 지역은 크게 다음 세 지역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

1>

볼가강

(volga R.,

ижил мөрөн

)

강 인근의 칼미크

(Kalmyk)

몽골

2>

이르쿠츠크 주

(Irkutsk oblast,

эрхүү муж

,

에르쿠 모즈

)

지역 바이칼호

(Baikal

)

유역의 부랴 트

(Buryat)

몽골

6)전설적인 용맹함으로 명성이 높았던 오이라트의 전사 부족 ‘오리양하이(урианхай, 兀良哈, 올량합, <페르시아어> ﺖﻘﻜﻧﺎﻳﺭﻭﺍ, Ūriyānkqat)’는 하나의 민족의 명칭으로서 10세기부터 중국 문헌에 언급되고 있다. 이후, 한국(조선)을 비롯한 동북아 역사 속에서 어느 순간 ‘오랑캐’라는 이름은 북방 야인, 여진족의 일파 등 북방의 이민족을 비하하는 명칭으로 불려지기도 함. (Crossley, Pamela Kyle, “An Introduction to the Qing Foundation Myth”,

Late Imperial China 6(2)

: 1985, pp.

13~24; C. P. Atwood,

Encyclopedia of Mongolia,

p. 9.; 태조실록 1권, 총서 126번째기사 / 올량합과 알타리가 조회와 서 다투다가 화해하다. 태조가 집에서 이들을 대접하다.)

(6)

3>

서몽골 오이라트

(Oirat,

Ойрад

)

칼미크

(Kalmyk)

몽골

,

부랴트

(Buryat)

몽골

,

오이라트

(Oirat)

몽골

,

세 지역 중에서 이들 중앙에 위치해 있는 서북 몽골의 대부분의 오이라트 부족에는 영웅서사시가 널리 분포되어 있다

.

특히

,

옵스

(Ovs)

호수 인 근의 바야드

(Bayad)

,

더르버드

(Do’rbod)

족과 볼가 강을 따라 거주하고 있는 오리양하이

(Uriyankai,

урианхай

)

족과 토르고오트

(Torgu’ud)

족 사이에는 더욱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

7)

일례로

<

장가르

(Jangar,

Жангар

)>

서사시는 알타이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오이라트 몽골족의 이야기이 지만 이주와 회귀의 과정에서 광범위한 지역에 다양한 이본으로 분포하게 된다

.

장가르는 칼미크

,

알타이

,

부 랴트

,

토바 등의 러시아 연방국과 키르키즈스탄

,

사르트 칼미크

,

몽골국

,

중국 등 유라시아 지역 국경을 넘나 드는 여러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다

.

언어학적으로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알타이 제어인 몽골어와 투르크어를 가로지르는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

8)

몽골 영웅서사시 중에서

<

장가르

>

서사시가 활발하게 전승되는 오이라트는 다시 세 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1>

신장

(

新疆

)

오이라트 ‒

98

2>

칼미크

(Kalmyk)

오이라트 ‒

26

3>

몽골

(Mongolia)

오이라트 ‒

26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정리된 장가르 서사시 이본은 신장 지역

10

권의 총

98

장과 칼미크 지역

26

,

몽골국

26

장이다

.

9) 장가르 서사시의 이본들은 이 세 지역의 축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이본을 통해 자 신들의 이주사

(

移住史

)

를 투영하며 각각 특징적인 모습으로 전승되고 있다

.

신장

(

新疆

)

오이라트의 호복사이르

(

和布克赛尔蒙古自治县

)

등지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알타이 일대의 장가르 서사시

는 오이라트 몽골 유목민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주의 과정에서 각자의 역사적 사정에 따라 크게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전승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

첫 번째 축은 하르오스 등지에서 전승되고 있는 장가르 서사시

,

회귀하여 돌아온 자의 장가르

이고

,

두 번째 축으로는 이주지 칼미크

(Kalmyk, <

>

Халимаг

(

할리막

))

지역에 남아 발전된 장가르 서사시

,

남겨진 자의 장가르

이며

,

마지막 세 번째 축은 현재 몽골국 각지에 단편의 설화나 민요

,

제문

(

祭文

)

등으로 각편화되어 대중화된 장

7) Б.Катуу, Монгол туулийн дүрийн тогтолцоо, Мөнхийн үсэг, УБ., 2004, pp. 42~43.

8)Д.Таяа, Жангар

, LXIII:

Аман уламжлалын буурал доройтлын учир

(

Хүр хар усны Жангарын уламжлалын судлал

)

, Соёмбо Пресс хэвлэлийн газар, 2016, pp. 21~26.

이선아, 「몽골 영웅서사시의 신화정체성과 탈경계적 변이 양상 ‒<장가르>, <게세르칸> 스토리의 전승과 현대적 활용 사례를 중심으로 –」, 󰡔인문논총󰡕76-4,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9, 121~161쪽.

9)Д.Таяа, Дундад улсын Жангарын эх баялгийг нээн ашиглалтын асуудал

,

BIBLIOTHECA OIRATIA LXIV, Жангар судлал, 2016, p. 10.

(7)

가르 서사시

,

몽골 본토의 파편화된 장가르

라 할 수 있다

.

<첫 번째 축 – 하르오스: 회귀하여 돌아온 자의 장가르>

신장 오이라트 지역의 경우

,

호복사이르 등

장가르 서사시의 고향

으로 가장 많이 일컬어 지고 있다

.

천산

(

天山

)

북부의 하르 오스

(hur har us,

Хүр Хар Ус

,

库尔喀喇乌苏

)

지역의 장가르는 볼가강으로 떠났다가 다시 회귀하여 돌아오는 등

,

오이라트 몽골 여러 부족들의 이주의 역사와 관련지어 살펴볼 수 있다

.

장가르 서사시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는

하르 오스 산

은 옛 흉노와 돌궐

(

투르크

)

의 영토였다가 칭기스칸의 서방 원정 시기에 몽골 제국의 휘하로 들어갔다고 한다

.

칭기스칸의 자녀들이 영지를 분봉할 때

,

이 지역은 차가타이와 어거데이의 분봉지 사이에 걸쳐 있다가 나중에 차가타이 칸국의 영지로 포함되었으며

,

명대에는 오이라트 몽골의 호쇼트

(hushuud)

귀족들의 목영지였다고 한다

.

준가르

(Jungar)

제국의 영토에 속하였다가 청대에는 토르고오트 귀족들의 목영지가 되었다

.

10)

17

세기

,

오이라트

4

부의 주요 구성원 중 하나로 가장 강력한 부

(

Аймаг

)

로 인정을 받았던 토르고오트는

1630

,

당시 수장인 허 어를럭

(

Хо

-

Урлюк

)

11)의 시기 고향인 준가르 지역에서 서쪽 볼가강으로 이주하게 된다

.

이 시기 관련 신화들을 보면

,

허 어를럭 장군과 장가르 서사시의 기원 및 전승의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 주는 내용들이 소개된다

.

이 전설에 의하면 허 어를럭의 시기 토르고오트 장가르치에 의해 장가르 서사시가 불려졌고 허 어를럭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고 전해진다

.

12)

이 지역의 복잡다단한 이주사와 투쟁사는 지금 현재 전승되고 채록되는 장가르의 이본의 양적 규모와 직 결되며

,

장가르 전승 지역 중에서 분량상으로 가장 많은 장인 총

10

98

장의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

이 지 역의 신화는 장가르의 기원 전설과 회귀된 이후의 장가르 서사시와 공존하면서 신앙

,

민속

,

전통예술 등의 신화성과 역사적 인물

,

지명

,

사건 등의 역사성 역시 강렬한 모습을 보이며 전승되고 있다

.

<두 번째 축 – 남겨진 자의 서사시>

허 어를럭이 토르고오트 속민들을 이끌고 이찔강으로 이주할 때에 장가르 서사시 역시 그들과 함께였음을 알 수 있다

.

장가르 서사시는 이후 슈헤르 다이친

(Shuher daychin,

Шүхэр дайчин

)

시기

,

토르고오트 제국 을 건설하고 아유크 칸

(Ayuqa, qa’an,

Аюука

(

Аюуш

)

хаан

)

13) 시기에 우랄강에서 볼가강

,

돈강까지 넓은 영토 점유한 강력한 제국으로 발전할 때에도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대시키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 였을 것으로 보인다

.

18

세기 후반

,

내홍과 제정러시아의 압력으로 인하여

1771

년 어브쉬 한

(Uvsh qan,

Увш хан

)

의 영도로 토르고오트

(Torguut)

족 일부가 고향인 동쪽 준가르 지역으로 복귀할 때 일부는 볼가강 주변에 남게 되는데

10) Д.Таяа,

ibid.,

2016, pp. 27~29.

11) 허 어를럭(Хо Өрлөг, (1609(1633)~1644))

12) 이선아, 앞의 논문, 2019. 논문 중, 4장 유목민의 이합집산과 공유된 기억 서사의 내용 참조. 13) 아유크 칸(Аюука(Аюуш) хаан), 1672~1724년 시기, 칼미크의 위대한 지도자.

(8)

이들이 바로 몽골어로

남겨진 자

라는 뜻을 가진

할리막

’(

Халимаг

)

,

오늘날의 칼미크

(Kalmyk)

이다

.

14) 당시 칼미크 인구 조사 기록 내용을 살펴보면 칼미크 장가르 서사시의 강화는 러시아의 국가 건설 과정에 서 적어도 세 가지의 주요 잔혹 행위와 관련지어 볼 수 있다

.

그 첫째가

1771

년 칼미크 칸국의 폐지

,

둘째는

1897~1926

년 유목민의 정주화

,

셋째

1942-1957

년 시베리아 추방 등이다

.

이 시기 인구통계를 분석하여 보 면

,

칼미크 오이라트는

1771

년과

1942

년 두 차례 국가의 물리적 파괴를 경험하게 되었다

.

<표 1> 칼미크 칸국의 인구 변동, 1618~195915)

민족/연도

1618 1890 1926 1939 1959

칼미크인

200,000 (n/a)

190,648 (n/a)

107,026 (76%)

107,315 (49%)

64,882 (35%)

러시아인

n/a

(n/a)

n/a (n/a)

15,212 (11%)

100,814 (46%)

103,349 (56%)

이들

남겨진 자

의 장가르 서사시는 분열과 파괴의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생존전략으로 연대의 신화로서 현재 전해지고 있는 칼미크 장가르 이본을 형성하고 발전시켜 온 것으로 보인다

.

이처럼 몽골 노마드의 공간에서 유목 정체성을 키워왔던 신장이나 칼미크 지역의 장가르에는 특정 시기를 중심으로 서사시가 통합되어 장별 구조가 체계적으로 재편되는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다

.

<세 번째 축 – 본토의 파편화된 서사시>

한편 신장

,

칼미크

,

외몽골 지역의 장가르 이본 중에서 특징적인 전승의 양상을 보이는 곳이 외몽골 지역이 다

.

신장이나 칼미크 지역의 장가르는 특정 시기 장가르 서사시가 통합되어 특정의 장별 구조가 체계화된 반 면

,

외몽골 지역의 장가르 서사시는 구비 전승의 채록본과 함께 필사본의 형태 등 다양한 양상의 자료들이 조사되기도 하였다

.

16)특히 장편의 영웅서사시 장가르가 이 지역에서는 단편의 설화 형태로 축약되거나 다양 한 민속 장르로 파편화되어 민간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

더르버드

(Dörböd)

몽골과 할하

(Khalkha)

몽골의 일부 아이막

(aimag,

)

에서 일부 장들이 파편화되어 전승되고 있다

.

호리

(khori)

부랴트에서도 장가르 이본이 발굴되었는데 단잔

(Danzan)

이 만진 도가르

(Manjin dugar)

라는 노인 울게르치

(ülgerchi,

이야기꾼

)

에게서 채록한 채록본이 몽골국립도서관에 보관중이 다

.

17) 이를 통해 볼 때 장가르 서사시가 몽골에서 광범위하게 분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처럼 몽골 본

14) Д.Таяа,

ibid.,

2016, pp. 27~29. 준가르 지역으로 복귀한 토르고오트족 왕족들은 청 건륭제에 의해 작위와 영지를 얻게 된다.(밤바르(Bambar) → 준왕, 헤브텐(Jun wan, Hevten) → 이트겔 베이스, 타이지(Itgel beys, 1등급 Taij 등).

15) Saglar Bougdaeva, Rico Issacs,

Nomads under arrest: The nation-building and nation-destroying of Kalmyk nomads in Russia,

Communist and Post-Communist Studies 51(4), 2018, pp. 375~385.

16) У.Загдсүрэн, Жангарын түүльс, УБ., 1968, pp. 21~24.

17) Б.Катуу,

ibid.,

2004, p. 34.

(9)

토에서 전승되는 장가르와의 비교를 통해 장가르의 기원 문제와 몽골 전체의 서사시로 보편화 되는 양상에 대한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

두게르수렝

(Dugersuren)

18)

,

작드수렝

(Zagdsuren)

19)20) 등이 할하를 비롯한 몽골 본토에서 채록한 장가 르의 장들을 정리하면

,

한두 편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① 고비알타이

(Gobi-altai)

통힐솜

(tonhil sum),

② 고비알타이

(Gobi-altai)

나랑솜

(naran sum),

③ 옵스 아이막

(Uvs aimag)

주웅고비솜

(zuun gobi sum),

④ 옵스 아이막

(Uvs aimag)

테스솜

(tes sum),

⑤ 옵스아이막

(Uvs aimag),

⑥ 초이발산 아이막

(Choibalsan aimag)

마타드솜

(Matad sum)

등 지역적으로는 그 전승범위가 상당히 넓은 편이다

.

장르상으로도

하일라흐

(khailah)’

라는 서사시 고유의 창법만 고수하지 않고 산문형의 설화21)나 민요22)등 장르 상의 제약을 벗어남

으로써 장가르 서사시가 전체 몽골 유목민의 서사시로 보편화 되는 것에 기여하였다

.

몽골 본토의 장가르 서사시는 지역별로 나름의 변이형의 명칭을 공유하며 전승의 과정에서 하나로 통합되 는 강력한 형태로의 체계화가 없이 지역별로 장가르 서사에 대한 기억을 각자 나름대로 공유하며 토착화되어 왔다

.

Ⅲ. <장가르> 서사시의 ‘영웅’과 ‘이상국’ 인식과 노마디즘 정체성

몽골 유목민의 영웅서사시 전승의 문제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북방 노마드의 정체성에 대한 재구와 확 립이다

.

민족의 이합집산이 빈번했던 몽골 유목민의 오랜 디아스포라 과정에서 영웅서사시

<

장가르

>

<

세르칸

>

서사시 등은 그들 나름의 정체성을 견고히 해주는 신화로서 강력하게 기능하여 왔다

.

이들 영웅서사

시는 당대 민중들이 열망했던 가장 이상적인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북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대중과 지속적으로 소통하였다

.

23)특히 장가르와 같은 영웅서사시에서 주인공 장가르의 정체를 규 명하는 것이야말로 유목 정체성을 규정하는 길이 되고 몽골 신화의 핵심 맥락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

또한 이주가 전제된 유목민 신화 정체성에서 주인공 영웅에 대한 의미와 함께 봄바국과 같은 장소 개념에 대한 해석 역시 필수적이다

.

여기서는 몽골 영웅서사시 장가르에 등장하는 영웅 장가르의 정체와 주인공 장가르의 고향이자 서사시의 이상국인 봄바국의 의미를 고찰하기로 한다

.

특히 이들 개념에 내포된 반어와 역설의 수사법에 주목하면서 몽골 노마드 신화 전승에 있어서 생존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

.

18) Т.Дүгэрсүрэн, Жангар, Сүхбаатарын нэрэмжит Хэвлэлийн газар, УБ., 1963, pp. 4~5.

19) У.Загдсүрэн,

ibid.,

1968, pp. 29~178.

20) Б.Катуу,

ibid.,

2004, p. 23.

21) <Ноён жанрвай хаан, Жангар богдын үлгэр>

22) <Долдой зээрд дуу>

23) 이선아, 앞의 논문, 2019, 121~161쪽.

(10)

1. 북방 노마디즘의 원형 탐구 사례1:영웅 장가르는 누구인가.

영웅 장가르의 정체에 대한 탐구는 몽골 유목민의 신화 전승에서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하는 자아에 대한 문제부터 시작하여 지극히 근원적이고 인문학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

.

이는 오늘날 북방 노마드의 생존 전 략과 경계와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인의 정체성 문제와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

최원오는 장가르에 등장하 는

영웅의 코드

에 주목하면서 영웅의

행위 패턴

이 국가와 개인에 중첩되어서 작동되며 단일한 관계가 아니 라 수직관계

,

수평관계

,

순환관계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두루 작동되어 나타난다고 분석하기도 하였다

.

24) 우선

,

장가르 연구에서

장가르

(Jangar,

Жангар

)’

의 명칭에 대한 주제는 핵심 주제에 해당되며

,

오랜 장가 르 연구사에서 여러 학자들에 의해 이에 대한 문제가 주요하게 다루어졌다

.

25)장가르 명칭에 대해서 몽골어 인가

,

외래어인가 하는 문제

,

외래어라면 어느 언어에 해당하는가 하는 문제 등이 그것이다

.

장가르의 이름과 관련된 논의에서 장가르 서사시 전승 특징을 보여주기도 한다

.

,

몽골 본토에서의 장가 르 전승 과정에서 민간의 자연스러운 전승의 흔적을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가 장가르 서사시의 주인공 이름 이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진다는 것이다

.

, ‘

장가르

’(Jangar,

Жангар

)

외에

장가라이

’(Jangarai,

Жангарай

),

잔르와이

’(Janrway,

Жанрвай

), ‘

존가아르

’(Jungaar,

Жунгаар

), ‘

존느라

’(Junpaa,

Жунраа

)

등 유사한 명칭 으로 다양하게 불려지고 있다

.

26)

타야는 장가르 서사시를 몽골계 언어와 투르크계 언어가 장가르의 의미를 알타이 지역의 신앙 및 노래와 춤 등 알타이 지역 몽골 전통문화의 맥락에서 상세하게 살펴보았다

.

이중 가장 흥미로는 내용은 이바노비치

(

Вербицкий Василий Иванович

(1827~1890))

가 알타이 무속의 기원에 대한 전설을 소개할 때

(1854

년 조 사

, 1893

년 간행

)

장가르가 창세 시기 창세신 울리헨

(Ülgen,

울겐

)

에 의해 바릴크스와 함께 인간 세상을 구 원하기 위해 파견된 천사

(

수호신

)

로 소개하였다고 한다

.

,

알타이 신화에서 장가르는 최초의 무당으로 인 간을 수호하는 전형적인 영웅신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

한편 장가르 서사시에는 불교적 요소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는데 장가르 영웅을 불교의

13

분노존으로 묘 사하는 경우도 있다

.

예를 들면

,

어서르

(Z.Osor,

З

.

Осор

)

는 장가르를 하르 ‒ 마하칼라

(

大黑天

)

로서 묘사하여 이야기하였다

.

또한 블라디미르초프가 소개한 일부 장가르 간행본

(1926

)

에서는 장가르가 불교 신격인 야 만닥 게겡

(Yamandag gegen)

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

27) 이처럼 장가르는 몽골 유목민의 서사시 전승의 현 장에서 대중적 수요에 따라

최초의 무당

이거나

불교적 신격

으로 유연하게 변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

또한

,

알타이 지역민들은

12

월을

장가르 사르

(sar,

)’

라고 명명하고 장가르를

12

월의 수호신으로 인식 하기도 한다

. “

장가라이

(Jangarai)”

라는 명칭의 경우는 몽골 작명의 전통에 의거하여

“12

월에 태어난 아이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

28)

24) 최원오, 「몽골 영웅서사시 <장가르>에서의 ‘영웅의 코드’와 ‘행위패턴’」, 󰡔인문논총󰡕 76-4,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2019, 43~89쪽.

25) Д.Цэрэнсодном,

ibid

., 2002, p. 107.

26) У.Загдсүрэн,

ibid.,

1968, pp. 21~24.

27) У.Загдсүрэн,

ibid.,

1968, p. 23.

(11)

키치코프

(1967)

는 장가르라는 명칭에 대한 선행 학자들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알타이 지역의 또 다른 언어 인 투르크어 단어와의 비교에 주목하였다

.

여기에서

장가르

고아

라는 투르크어 단어와 관련지어 풀이하 였다

.

그럼에도 키치코프

(1962

)

와 자야투예프

(1970)

는 장가르 이름의 기원과 의미는 몽골어에서 찾는 것 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

키치코프는 몽골 일부 지역

(

홉드아이막

,

에르덴부렌

,

아르항가이아이막 어기노오르

,

얼지트 솜

)

어얼드족 사이에서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

Би чамдаа жангар

.(

나는 너에게 최고의 사내이 다

.)”, “

Миний хүү адуундаа жангар

.(

내 아들은 말

(

)

로는 최고이다

.(

~!!))”

등을 그 활용 사례로 소개 하고 있다

.

29)

동시에 체렌소드넘은 몽골어와 같은 알타이어 계통의 주변 언어와 비교할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만주 함리 간 언어 계열의 오로춘 어에

지도자

,

심판자

,

우두머리

,

귀족

이라는 의미의

장기

,

장가라

”(

핀치오스

, 1975)

를 그 예로 들었다

.

30)

포페

(1977)

는 몽골 장가르의 독일어 번역서 서문에서 칼미크 장가르와 몽골 장가르에 자주 등장하는 티베

트어

,

산스크리트어 등 외래어 단어들을 분석하였다

.

이중 장가르 명칭에 대해서는 발음이 유사한 외래어 중 에서 크게 두 가지의 단어와 관련지어 소개하고 있다

.

첫 번째는 티베트어로

가운데 눈

(

혜안

(

慧眼

),

천리안

, melmiy)

이 있는 얼굴

이라는 의미의

장 라이

(jan ray)”

와 두 번째는 페르시아어로

세상의 지배자

라는 의 미의

자한기르

(jehangir<Jahangir)”

가 그것이다

.

31)

몽골 유목민의 칭호에서 세상의 지배자라는 의미를 가진 칭호의 사례는 빈번하게 나타난다

.

구르칸

,

칭기 스칸

,

달라이 라마 등은

사해

(

四海

)

의 왕

혹은

세상의 지배자

”, “

우주의 지배자

이라는 의미로 공통적으로 세계성을 지향하는 칭호이다

.

이와 관련하여 실제 몽골 유목 제국의 역사에서 구르칸

(Guru Qan, Gurkhan,

古兒罕

,

古兒罕

)

과 칭기스 칸

(Chingis Qa’an,

成吉思可汗

)

의 명칭이 한 장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

신원사

(

新元史

)

의 열전

(

列傳

)

허허추

(

闊闊出

)

관련 기사에서

,

케레이트의 수장 옹칸

(

王罕

)

을 멸한 테무진

(

帖木真

)

이 제사장 허허추

(

闊闊出

)

에 의 해 천하의 지배자로 추대되는데 이때 자무카

(

札木合

)

가 사용하였던 구르칸

(

古兒罕

)

이라는 칭호는 뜻을 이루 지 못하고 실패하여 불길하다며 폐지하고 대신 칭기스칸

(

成吉思可汗

)

이라는 칭호를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

新元史

/

卷一百二十五

·

列傳第二十二……闊闊出……

32)

태조

(

太祖

)

가 옹칸

(

王罕

)

을 멸

(

)

하였는데

,

허허추

(

闊闊出

)

가 즉

(

)

부명

(

符命

)

의 설

(

)

로써 진

(

)

하여 위

(

)

하길

,

「천언

(

天語

)

을 문

(

)

하니

,

장차

(

)

테무진

(

帖木真

)

에게 천하

(

天下

)

를 비

(

)

28) D.Taya, “The Jangar Epos of the Altai People”, Johannes Reckel, Merle Schatz,

Oirat and Kalmyk Identity in the 20th and 21st Century,

Universitätsverlag Göttingen, 2020, pp. 441~448.

29) У.Загдсүрэн,

ibid.,

1968, p. 13.

30) Д.Цэрэнсодном,

ibid

., 2002, p. 107.

31) Б.Катуу,

ibid.,

2004, p. 46.

32) 闊闊出復譖之曰:「長生天有命, 帖木真、合撒兒迭爲百姓主, 不除合撒兒,事未可知。」 太祖感其言, 欲殺之, 以太后救之獲免, 事具 ≪合撒兒傳≫。其後有九種言語之人,從闊闊出,聚於太祖羣牧場。帖木格斡赤斤屬人亦有往者。斡赤斤使部將莎豁兒往索 逃人,反爲闊闊出所歐,且縛馬鞍於背,驅歸以辱之。(新元史/卷一百二十五·列傳第二十二 …闊闊出…)

(12)

노니

,

부르기를

(

號曰

)

칭기스

(

成吉思

)

라 하느니라

!

병인년

(

丙寅

)

,

군신

(

羣臣

)

이 상

(

)

의 존호

(

尊號

)

를 의

(

)

하였는데

자무카

(

札木合

)

가 구르칸

(

古 兒罕

)

을 칭

(

)

하였다가

 

유시

(

逾時

)

하지 못하고 패

(

)

한 것을 생각하니

불상

(

不祥

,

불길함

)

하였고

,

폐지

(

廢之

)

하여 미호

(

美號

)

 

별택

(

別擇

)

하고자 하였다

.

허허추

(

闊闊出

)

의 전설

(

前說

)

한 것을 용

(

)

하 길 유청

(

有請

)

하였는데

마침내 상

(

)

의 존호

(

尊號

)

를 칭기스카한

(

成吉思可汗

)

이라 하였다

.

여기서 먼저 언급되는 구르칸이라는 칭호는 케레이트

(Khereid)

부 수장의 왕호이면서 테무진이 제 몽골족 을 완전하게 통일하기 이전에 그의 의형제이자 라이벌인 자무카가 각 부족 수장들의 회합에 의해 몽골족 연 맹의 왕으로 추대되면서 쓰게 된 칭호이다

.

구르

(guru(

гүрү

), guren(

гүр

(

эн

)))

거대한 나라

,

제국

이라는 단어이고 칸

(qan,

хан

)

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

구르칸이라는 칭호는 이후 몽골 제국에서는 폐지되기는 하였지만 몽골 투르크계인 티무르 왕조와 같이 칭기스칸의 후예 왕조를 표방하는 칭호로서 그 자부심을 계승 하는 칭호로 계속 활용되기도 하였다

.

33) 이는 티무르 왕조와 같은 몽골 ‒ 투르크계 왕조에서 칭기스칸 가계 의 사위 쿠르겐

(qurgen,

хүргэн

)’

으로서 북방 노마드 몽골 혈통에 대한 계승의식이 반영된 어휘라고 설명되 기도 한다

.

한편

,

구르칸이라는 칭호는 알타이 영웅 신화의 서사적 맥락과 함께 이주된 지역의 고고학적 유적

,

유물을 통해 그 의미가 확장되고 변이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

실제 장가르 서사시가 전승되는 볼가강 유역의 무덤 유적에서는 칭기스칸의 장남 조치

(

주치

)

의 후예들의 무덤으로 알려진 중세 봉분들이 당대 화려한 유물 과 함께 발굴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

이 지역에 성립된 후계 칸국인 조치 올로스

(Zuchi ulus, 1243~1502,

킵차크 칸국

)

의 시작은 칭기스칸의 장남 조치가 이르티쉬 강 서쪽 초원을 분봉받은 것에서 시작된다

.

조치의 장남인 오르다의 올로스

(Orda ulus)

는 지금의 카자흐 지역에

,

넷째 아들인 사이반의 올로스

(Shayban ulus)

는 우랄 동부 지역에

,

볼가강 유역 사라이

(Sarai)

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는 바토 올로스라

(Batu ulus)

3

대 거대 유목집단으로 출발하였 다

.

이중 볼가 강변을 분봉받은 바토 올로스와 함께 쿠빌라이 시대 인물인 베르케가 건립한 알탄 오르도

(Altan ordo)

가 조치 올로스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

조치 올로스는 톡타

(Togta, 1290~1312

재위

)

와 그 후계 자 우즈베크

(Üzbeg, 1312~1340

재위

)

시대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는데 이 당시 조치 올로스는 동서 및 남북 무역을 관장하면서 러시아와 볼가강 초원 지대를 통합경제문화권으로 만들어 나갔다

.

이후 조치 올로스가 후 계자 선출 문제와 티무르의 일격으로 급격히 쇠퇴해지고 이 틈을 타서 러시아의 공국들과 각지의 몽골 세력 들과의 이합집산을 거듭하였다

.

급기야 조치 올로스는 돌궐 이슬람화

,

러시아화 하면서 크림칸국

,

우즈베크 칸국

,

카잔칸국

,

아스트라칸칸국

,

노가이칸국 등 군소 집단으로 분할되었다고 한다

.

34)

이처럼 볼가강 유역에는 산당한 기간 동안 칭기스칸의 장남인 조치를 계승하는 후계 의식이 관련 유적 및

33)

Timurid dynasty

, 2021, https://en.wikipedia.org/wiki/Timurid_dynasty(검색일:2021.08.26.).

34) 단국대학교 몽골연구소(편), 󰡔몽골과 한국 ‒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 방향󰡕(박원길, 「몽골 역사」), 단국대학교 출판부, 2012, 307~309쪽.

(13)

신화와 함께 강렬하게 전승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이에 대해서는 볼가강 유역의 중세 시스코카서스

(Ciscaucasia,

북 카프카즈

)

지배 계층 고분 유적과 유물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

일례로 이 지역 고분 유적 중 하나인 주치타

-2(Dzhukhta-2,

Джухта

-2)

고분 유적에는 그곳에서 발굴된 왕실 비단 의상 등을 통 해 중세 몽골계 후계 왕조의 지배 계급 전사들이 매장되어 있는 곳으로 밝혀지고 있다

.

여기서

주치타

(Dzhukhta,

Джухта

)’

라는 지명은 몽골어로

조치

(

주치

)

가 있는

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

이 지역 유적지에는

쓴 물이 있는

이라는 의미의

가숑 ‒ 오스타

(Gashun-Usta)’

라는 몽골어 지명 등이 종종 발견된다

.

주치타

-2(Dzhukhta-2,

Джухта

-2)

고분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에서

,

도데

(Z.Dode)

는 이곳에 매장된 중세 지배 계급들이 칼미크 지역 전승의 몽골 영웅서사시 장가르에 묘사되고 있는 바아타르 전사의 모습과 같은 의상을 입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

이 연구에서 장가르 서사시의 관련 구절과 함께 소개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35)

그들이 신은 장화의 목은 일만 명의 처녀들이 꿰맸고

,

그 뒤축은

백 명의 소녀들이 꿰맸네

.

그 발자국을 본 사람은 천 냥을 내줄 태세고

,

그를 직접 본 사람은 만 냥을 내줄 태세네

.

그는 멋들어진 에르뱅을 입고

,

값진 솜 외투를 세 개를 입고

,

전투복 삼 종을 입고

,

70

마리 값에 달하는

철제 허리띠 루당을 둘렀네

.[

장가르

(1990)]36)

이러한 모습을 토대로 그림으로 복원한 것 중의 하나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몽골의 신화 인식에서 자연물인 산과 강 등이 자연물이자 신격으로서의 의미로 자연스럽게 인식되듯이 위 대한 왕의 무덤이 신성한 권위를 가진 왕 자체로 모셔지는 경우로

,

몽골 신화 특유의 상징과 비유의 화법으

35) З.В.Доде, “Средневековый костюм народов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Очерки истории

,

Институтом востоковедения РА Н, 2001, p. 71.

36) Обул он мягкие красные сапоги, /Их голенища /Десять тысяч девиц /сшили, Их задники /Сто девиц выстрочили. Кто увидит /след от тех [сапог], Готов отдать /тысячу [монет], Кто увидит его /самого, Десять тысяч отдать готов. /Нарядную эрвенг он надел, Три /драгоценных бешмета надел, Трое /ратных лат надел, Железным /поясом Луданг Ценой в семьдесят /коней, опоясался [Джангар, 1990, с.213-214].

* 전성희 교수(경희대) 번역 (2021.02.09)

(14)

<그림 1> 주치타-2(Dzhukhta-2, Джухта-2) 지배 계층 고분 유적에 매장된 전사의 의상

복원도

로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

일례로 장가르 서사시의 경 우

,

봄바

(Bumba)

라는 어휘의 경우 역시 이런 화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봄바는 주인공 장가르의 조부

탄삭 봄바

(Tansag Bumba)’

37)의 이름이기도 하고 장가르 서사시의 고향 봄바국이기도 하다

.

,

봄바는 왕의 이름

(

왕의 혈 통

)

이면서 지역의 명칭

(

고향

)

이며 이상국의 이름

(

이념 ‒ 생 명

,

영원성

)

이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

주인공 장가르의 정체성을 특정해 주는 상징어라고 할 수 있다

.

앞에서 살펴본 쿠르간의 실제 주인이 장가르 서사시의 주인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앞에 소개한 몇 가지 사 례를 통해 보더라도 쿠르간의 주인인 유력자 계층이 전속 장가르치

(

전속 магтаалч

,

ерөөлч

,

сөнч

)

를 곁에 두고 의 전관과 같은 신분적인 보장과 함께 안정적인 보상을 하는 등 장가르 전승의 패트론

(Patron,

후원자

)

으로서 영향을 끼쳤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

일례로

,

호복사이르 출신 유명한 장가르치 조나이

(Zunai, 1926

년생

)

의 할아버지 에르흐투

(Erhtu)

와 아버지 자바

(Zava)

는 그 지역민의 존경을 받는 유명한 가수였고 아버 지 자바는 왕자의 전속 의전 가수

(toaster, sönchi(

сөнч

))

신분이었다

.

이런 환경에서 장가르의 일부 이야기는 그의 아버지와 지역 장가르치 홀바르 바야르

,

시라나손의 구술본을 직접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

이 외에도 아버 지 자바가 왕자의 전속 가수였기 때문에 글공부도 할 수 있었고 왕자의 서기 얼지투

(Ölziytu)

를 통해 장가르 필사본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한다

.

38) 장가르 전승에 있어 명망있는 장가르치의 등장과 활약에는 지역 민 중들의 호응과 더불어 지역 유력자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장가르의 정체는 몽골 유목민 신화의 전통적 상징성을 내포하면서 때로는 제왕으로

,

때로는 전사로

,

때로 는 민중으로 몽골 노마디즘의 역사 속에서 다소 이질적인 민족의 자부심과 세계적 연대에 대한 이상을 동시 에 표방한다

.

장가르는 다채로운 형상의 신화 영웅으로서 수시로 등장하여 몽골 유목민의 정체성을 규합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

37) Т.Дүгэрсүрэн(1963),

ibid

., p.11.

38) Chao Gejin, “The Oirat Epic Cycle of Jangar”,

Oral Tradition, 16/2,

Center for Studies in Oral Tradition, 2001, pp. 408~409.

(15)

2. 북방 노마디즘의 원형 탐구 사례2:이상국 봄바국은 어디인가.

장가르의 이상국 봄바국은 경계와 경계를 넘나드는 탈경계의 노마디즘 세계에서 지향하는 이상국의 형상 과 관련되며 현대적 의미의 탈경계 시대 국제 사회가 지향해야하는 글로컬리즘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핵심어 가 된다

.

장가르 서사시에 등장하는 봄바국

(Bumba oron,

Бумба орон

)

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지명은 아 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바국의 실체를 추적하는 연구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

조현설은 정주사회와는 다른 유목사회의 불안정한 리더십과 불안정한 이상국의 모습이 투영된 공간으로서 의 유목적 유토피아

봄바국

의 구조에 대해 조망하기도 하였다

.

39)

페를레

(

.

페를레

, 1975)

장가르의 고장은 어디인가

?’

라는 소고에서 몽골 오이라트의 서사시로서 장가 르를 소개하면서 봄바국의 위치를 추정해 보기도 하였다

.

40) 그는 몽골국립중앙역사아카이브 소장 중인

<

자삭 트 한

(Zasagt han)

아이막의 역사

>

라는 필사본의

할하 몽골의 서쪽 만주 청 시기 개설된 역참

에 대한 기술 에서 장가르의 고장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 19

세기 할하 몽골 자삭트 한

(Zasagt han)

아이막

(aimag)

에서 장가르라는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은 두 가지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이러한 기록은 첫째

,

서몽골에서 만주에 저항하여 봉기한 장가르라는 사람의 투쟁과 관련되거 나 둘째

,

서몽골에서 발생한 서사시가 전체 몽골에 전파된 것과 관련지어 볼 수 있다고 보았다

.

포페

(1977)

는 봄바라는 지명에 대해 티베트어로

경이로운 나라

라는 의미의

봄파

(bum-pa)”

와 관련지어 그 의미를 풀이하기도 하였다

.

41) 작드수렝은 봄바국은 본래 부처

(

бурхан

),

무덤

(

булш

),

비석

(

хөшөө

),

불상

(

동상

,

баримал дүр

)

등을 내포하는 티베트어라고 소개하였다

.

42) 봄바라는 공간이 지명으로서의 의미 이외 에도 장가르 서사시에서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듯이 당대 절실하게 갈망하는 몽골 유목민의 이상국과 관련 된 세계관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 봄바국은 장가르 뿐만 아니라 게세르 서사시에도 등장한다

.

스테인이

1959

년 파리에서 간행한 티베트 게사르 연구에서 게세르의 형 자차 ‒ 샬가르

(

차스 ‒ 쉬헤르

)

를 봄바의 자차 샬가르라고 수차례 언급하였다

.

올란바타르에서

1959

년 간행한 몽골 링 게세르 토오쯔

(tuuj,

)

에서 역시 게세르의 형을

봄바의 자차

(13

)’, ‘

봄바의 대 귀족 바타르 자차 사가르

(20

)’

라고 언급하고 있다

.

한편

,

이 외에도 봄바국은 샤라이골의 영역 안에 존재하는

봄바의

9

개 소국

(

муж улс

, 13

)’

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

,

게세르에 등장하는 봄바국 은 동북 암도 티베트의 속지이자 몽골 유목민의 부족 국가명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

이처럼 장가르 서사시와 게세르 서사시에 등장하는 봄바국은 서로 연관성이 있으며 동북 티베트 혹은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몽골 민 족의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

43)

봄바국의 의미와 관련하여 다시 원론적인 접근으로 돌아온다면 그 언어학적 의미에 대한 검토가 우선되어

39) 조현설, 「유목적 유토피아의 구조와 그 영웅들」, 󰡔인문논총󰡕 76-4,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2019, 13~41쪽. 40) Б.Катуу,

ibid.,

2004, pp. 34~35.

41) Б.Катуу,

ibid.,

2004, p. 46.

42) У.Загдсүрэн,

ibid.,

1968, p. 12.

43) Т.Дүгэрсүрэн,

ibid

., 1963, pp. 5~6.

(16)

야 할 것이다

.

사실 봄바국으로서의 지명을 현재 실재하고 있지는 않지만 봄바라는 단어는 현대 몽골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

몽골어 사전에서 풀이하고 있는 봄바

(Bumba,

Бумба

)

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크 게 세 가지이다

.

44)

1>

불교

8

보 중의 하나인 보병

2>

부황

(

치료용

)

3>

봉분이 있는 큰 무덤

첫 번째

,

생명수

(

聖水

,

아라샹

(

рашаан

))

가 담긴

불교

8

(

八寶

)

의 보병

(

寶甁

)’

이라는 의미의 봄바는 중세 몽골 유목민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던 불교문화의 세계관과 함께 봄바국이라는 신화적 이상향이 구상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관련지어 살펴볼 수 있다

.

두 번째

,

몽골 전통의학에서 봄바는 전통 치료를 위한 시술에서 사용되는 도구인 부황을 의미한다

.

고대 원시 사회에서부터 생명을 다루는 치료전통은 대중으로부터 종교적

,

정치적 권위를 확보하는 주요한 요건이 자 지도자의 자질과 직결된다

.

Elite burials of the 13th and 14th centuries in Central Ciscaucasia. a

towns: 1

Madjar; 2

Lower Djulat;

3

Upper Djulat; b

elite burials: 1

Gashun-Usta; 2

Raguli; 3

Dzhukhta 2; 4

Vozdvizhenskoye;

5

Kievka; 6

“Semenovod”; 7

Novopavlovsk.

<그림 2> 중세 중앙 시스코카서스(Ciscaucasia, 북카프카즈) 지배 계층 고분 유적의 위치도(13~14세기)]

45)

44) Л.Болд, Монгол хэлний дэлгэрэнгүй тайлбар толь

,

1권, ШУА., УБ., 2008, p. 361.

45) В. А. Бабенко, “ЛокализациякомплексаизурочищаГашун-Уста(Ставропольскаягуберния, 1890 г.) ивыделениезолот

(17)

세 번째

,

봄바는

봉분이 있는 무덤

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왕릉과 같이 규모가 상당한 지배 계층의 무덤 양 식을 의미한다

.

이는 앞에서 살펴본 고대 알타이 무덤 문화인 구르칸의 무덤과 함께 중세 볼가강 유역 중앙 시스코카서스

(Ciscaucasia,

북 카프카즈

)

지배계층의 고분 유적

,

유물의 사례와 관련지어 볼 수 있다

.

오이라트 민중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알타이 영웅서사시의 이상국인 봄바국이 정작 죽음과 관련된 무덤의 양식과 관련지어 살펴보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다

.

하지만 몽골 디아스포라와 같은 상황에 서 현실적으로는 실현불가능한 이상국을 죽음 이후의 영원한 생명의 세계

,

봄바국의 존재를 통해서라도 자신 들의 정체성을 규합하고 위안이 되는 안식처로 삼고자 하는 역설적 인식은 몽골 디아스포라 신화의 생존전략 으로서 오히려 현실보다 강력한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을 한 셈이다

.

몽골계 후계 왕국의 지배자 영웅과 볼가강 유역 지배 계급 무덤 유적의 영향 관계는 중세 시기

,

몽골 노마 드 문화와 시스코카서스 문화의 교류와 융합의 양상에 대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

장가르 서사시와 같은 다양한 알타이 영웅서사 문학과 관련 유적

,

유물과의 유의미한 관련성을 보 여주는 최근의 발굴 성과는 고고학적으로 내포하는 신화적 상징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함을 각성하게 하는 중 요한 계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

,

사해

(

四海

)

의 지배자를 지향하는 영웅이 영웅성과 신화성이 강화된 무덤 문화를 통해 이상국 봄바국을 재현하는 양상은 북방 유목민의 영웅서사시가 고유의 신화적 원형을 고수하면 서도 세계성을 지향하며 연대를 도모하는 전략의 본질을 시사하고 있음을 보다 현장감 있게 확인할 수 있다

.

Ⅳ. 결론:‘뉴노마디즘’, 몽골 노마디즘 신화의 현대적 의의

이 논문에서는 알타이 지역을 중심으로 북방 지역에서 격동의 이주사를 끊임없이 경험하였던

<

장가르

>

서사시를 사례로 하여

,

오이라트 몽골의 영웅신화의 전승 과정에서 이러한 모습이 특징적으로 주목되는 신장 알타이

,

칼미크

,

몽골 본토 등 지역을 세 가지의 축으로 나누어 비교적으로 고찰하였다

.

특히

<

장가르

>

에서 형상화된

영웅 장가르

이상국 봄바국

의 신화적 의미와 관련지어 북방 유목민의 노마디즘의 원형과 신화 정체성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

이러한 전통적인 노마드 정체성의 특징적 면모를 탐구함으로써 팬더믹 이 후

,

격변의 국제 사회에서 지역간 교류와 협력의 원리로서 세계성과 생명성을 지향하는

뉴노마디즘

이라는 새로운 문명 담론의 모델을 제안해 보고자 하였다

.

몽골 영웅서사시는 근대 비교신화학의 연구에서 지역문화론의 원형 탐구에서부터 주요한 연구 대상이었으 며 근대라는 격동기에도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 각 민족의 정체성 재구와 확립을 위한 노력에서 비교 연 구의 대상으로 주목되는 이웃 민족의 신화로 이해되었다

.

이처럼 몽골 노마드의 신화의 연구는 몽골 신화가

оордынскихвладенийв Центральном Предкавказье, «Диалог городской и степной культур на Евразийском пространстве.”

Историческая география Золотой Орды

»,

Издание подготовлено при финансовой поддержке Российского фонда фундаментальных исследований и Академии наук Республики Татарстан, 2016, pp. 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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