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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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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논문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 시간․공간․지식의 구조화

School as Em bodiment of Modernity:

Focusing on Time, Space and Knowledge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교 육 사 회 전 공

구 수 경

2007년 2월

(3)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 시간․공간․지식의 구조화

School as Em bodiment of Modernity:

Focusing on Time, Space and Knowledge

지도교수 손 준 종

이 논문을 교육학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함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교 육 사 회 전 공

구 수 경

2007년 2월

(4)

구수경의

교육학 박사학위 논문을 인준함

심사위원장 인 심 사 위 원 인 심 사 위 원 인 심 사 위 원 인 심 사 위 원 인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07년 2월

(5)

목 차

표 목 차 ··· ⅳ 그림목차 ··· ⅴ 논문요약 ··· ⅵ

Ⅰ. 서론

··· 1

1. 문제제기··· 1

2. 연구목적과 연구문제··· 6

3. 분석틀과 연구방법··· 8

가. 분석틀 ··· 8

나. 연구방법 ··· 9

다. 연구범위··· 11

Ⅱ. 근대 교육공간으로서 학교 출현의 의미

··· 13

1. 근대의 의미: 시간․공간․지식··· 13

가. 근대와 시간 ··· 14

나. 근대와 공간··· 20

다. 근대와 지식 ··· 26

라. 시․공간, 지식의 재구성과 그 의미 ··· 32

2. 근대 학교의 출현: 계몽, 산업화, 국민국가, 제도화··· 40

가. 계몽, 시민혁명과 교육에 대한 열망··· 40

나. 산업화와 교육에 대한 요구 ··· 48

다. 국민국가의 형성과 교육에 대한 필요··· 54

라. 학교의 제도화: 근대교육체제··· 62

(6)

Ⅲ. 근대 학교와 시간의 의미

··· 68

1. 근대와 산업주의··· 68

가. 산업화와 진보․발전의 시간관념 ··· 68

나. 테일러주의와 표준화 ··· 79

2. 산업주의와 시간의 의미··· 85

가. 시간과 규칙: 엄수와 정확 ··· 85

나. 시간과 화폐: 근면과 계산··· 89

다. 시간과 진보: 발전과 직선 ··· 93

3. 산업주의와 학교의 시간··· 96

가. 학교-시간-기계: 아동기와 규율의 탄생 ··· 96

나. 학교공간의 시간분할 ··· 103

다. 실용적․합리적 인간의 탄생 ··· 109

Ⅳ. 근대 학교와 공간의 의미

··· 114

1. 근대와 규율주의 ··· 114

가. 근대적 공간의 형성 ··· 114

나. 학교공간의 분화․균질화: 학급의 탄생 ··· 126

2. 규율주의와 공간의 의미 ··· 130

가. 공간과 시설: 물리적 구성과 배치 ··· 130

나. 공간과 규율: 일망감시시설 ··· 138

3. 규율주의와 학교의 공간 ··· 140

가. 학교-공간-기계: 구획화와 배치 ··· 140

나. 주체형성 공간의 변화: 기능의 변화와 이동 ··· 154

다. 규율적 인간의 탄생 ··· 156

Ⅴ. 근대 학교와 지식의 의미

··· 160

1. 근대와 과학주의 ··· 161

가. 문명 개화와 과학화 ··· 161

(7)

나. 과학적․기계론적 세계관 ··· 166

2. 과학주의와 지식의 의미 ··· 169

가. 근대 지식과 근대적 신체 ··· 169

나. 양육의 과학화․제도화 ··· 175

3. 과학주의와 학교의 지식 ··· 180

가. 학교-지식-기계: 학교의 지식 선택 ··· 180

나. 과학적․서구적 지식: 지식 규율 ··· 186

다. 과학적 인간의 탄생: 근대적 시․공간의 내면화 ··· 189

Ⅵ. 논의 : 근대 학교와 시간․공간․지식의 구조화

··· 192

1. 시간과 교육 ··· 192

2. 공간과 교육 ··· 200

3. 지식과 교육 ··· 205

Ⅶ. 결론

··· 214

1. 요약과 결론 ··· 214

2. 제언 ··· 218

참 고 문 헌 ··· 220

ABSTRACT ··· 232

(8)

표 목 차

〈표 1〉근대사회의 특징적 변화들 ··· 36

〈표 2〉1677년과 1692년 콜레주 학생들의 연령 비교··· 103

〈표 3〉배재학당의 신입생 입학 상황(1918) ···104

〈표 4〉르페브르와 하비의 공간 이해 ···116

〈표 5〉1920년대 유아사망률 ···175

〈표 6〉만 10세 아동의 발육표준표 ···175

〈표 7〉1~4개월 아동의 생활기준표 ···176

〈표 8〉1920~30년대의 ‘아동’ 교육 담론의 특징 ··· 178

(9)

그 림 목 차

〔그림 1〕연구문제의 개념도 ··· 7

〔그림 2〕연구의 분석과정 ··· 8

〔그림 3〕노동과 시간관념의 변화 ··· 19

〔그림 4〕시장, 균질공간의 탄생 ··· 25

〔그림 5〕근대교육의 제도화 과정··· 67

〔그림 6〕‘근대화’되기 이전의 학교내부(1672년) ···105

〔그림 7〕17세기 프랑스의 어느 초등학교 ··· 105

〔그림 8〕1830년경의 서민학교(프랑스) ···106

〔그림 9〕‘근대화’된 문법학교의 내부(1860년경) ···106

〔그림 10〕근대적 인간의 탄생과정 ···113

〔그림 11〕권력의 시선과 개인․가족의 관계 ···123

〔그림 12〕콜레주의 변천 ···127

〔그림 13〕원형감시시설(Panopticon) 설계도와 그 실제 ···139

〔그림 14〕‘근대화’되기 이전의 영국학교 ···142

〔그림 15〕‘근대화’되어 학급으로 분할된 이후의 학교 ··· 142

〔그림 16〕1900년대 서당 풍경 ···143

〔그림 17〕1910년대의 소학교 수업모습 ··· 143

〔그림 18〕학습보조용 기구-똑바로 앉기 홀더와 헤드 홀더 ··· 147

〔그림 19〕규율적 인간의 탄생과정 ···159

〔그림 20〕과학적 인간의 탄생과정 ···190

〔그림 21〕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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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문 요 약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 : 시간 ․ 공간 ․ 지식의 구조화 구 수 경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교육사회 전공 (지도교수 손 준 종)

이 연구는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에 근대의 시간․공간․지식이 반영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근대적 시간․공간․지식이 학교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서구에서 논의된 연구결과를 개관하고, 우리사회에서의 작동방식과 교육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연구의 수행은 관련 문 헌들과 자료들의 분석을 위주로 하였으며,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정된 연 구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근대적 교육공간으로서 학교를 가능하게 했던 근대의 의미를 시간, 공 간, 지식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학교공간으로 교육 기능이 이전․집중된 배경을 분석하였다.

둘째, 근대적 시간관념이 학교의 시간과 시간배치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는지 그 교육적 의미를 분석하였다.

셋째, 근대적 공간관념이 학교의 물리적 공간배치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는지 그 교육적 의미를 분석하였다.

넷째, 근대적 지식과 근대적 시․공간의 원리는 어떻게 상호 작용했으며, 학 교공간에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그 교육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위의 내용에 관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근대사회는 이전사회와는 다른 특징을 지닌 사회로, 표준화․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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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화․집중화․극대화․중앙집권화를 그 특징적 규범으로 갖는다. 이러한 특 징은 대중적 교육의 필요성과 출현을 내포하고 있는 바, 근대적 교육공간으로서 학교가 독점적 지위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근대국가의 공교육제 도는 시민, 아동, 국민, 노동자 ‘만들기’라는 사회․문화적 동기와 정치․경제적 동기에 의해 촉발되었다. 근대사회를 열었던 이념과 필요들이 대중화, 보편화, 세속화, 실용화한 근대교육제도를 낳았다. 이에 근대교육은 국가가 주도하는 대 중교육, 제도화된 표준교육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복합적이고 다양한 세력의 바람과 이념들이 함축된 학교교육은 근대적 교육공간으로서 독점적 지위를 누 리게 되었다.

둘째, 근대적 시간은 시계시간의 도입으로 시작되었으며, 산업주의 (Industrialism)를 작동원리로 하였다. 학교의 시간도 근대적 시간의 원리에 의 해 기획․구현되었다. 근대적 시간은 학교공간의 시간분할을 가져오는데, 아동 기라는 시기의 탄생과 그에 터해 아동규율의 필요성이 야기되면서 학교의 시간 을 분할했다. 근대의 학교에서 점차적으로 강화되는 것이 시간적 강제와 시간엄 수였다. 그것은 교육의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특화시키고 구별지으며, 단 계적으로 심화되는 계획표와 교육과정 그리고 단계별 시험을 통해 계열을 만들 고 자격을 부여하였다. 근대계몽기의 문명된 삶이란 곧 과학과 기술을 통한 근 대화였으며, 학교교육의 주된 목적 또한 근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되 었다. 이처럼 근대인은 인간으로 태어났다기보다는 인간이 되어가는, 만들어지 는 과정과 시간 속에 존재해왔다. 근대 학교에서 학생은 규율적 인간으로 만들 어졌으며, 산업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합리적 인간이 되었다.

셋째, 근대적 공간의 특징은 기능적 분화와 구획화에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공간에서 새롭게 길들여지며, 이에 따라 전에 없던 육체적 취향, 특징, 능력들을 가지게 되면서 새로운 인간형으로 바뀌어갔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의 공간적 특 징을 규율주의(Disciplinism)라고 하였다. 근대적 교육방식이 체계화된 것은 학 교가 점차 독자적인 공간으로 구획되기 시작하면서였다. 시간-기계로서 시간표 의 발전과 학급이라는 새로운 분할 방식을 통해서였다. 학교공간은 규율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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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규율의 내면화과정은 처벌을 통한 직접적 강제와 제재로부터 시작하여 반 복적 훈련과 집단적 활동을 통하여, 그리고 나아가 권위와 규제를 기본원리로 하는 학교의 공간적 배치에 의해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우리에게

‘근대 주체’의 생산과정은 적극적, 소극적 저항을 동시에 수반하는 것이다. 근대 적 규율에 대한 저항은 일제의 지배라는 식민지상황과 맞물려 진행되었으며, 이 에 따라 ‘근대적 주체’의 형성은 보다 복잡하고 중층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규 율주의(Disciplinism)는 일망감시(Panopticism)화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넷째, 근대적 시간과 공간이 근대적 주체를 호명하며, 근대사회를 구성해갔다.

아울러 근대적 시․공간에는 근대적 지식이 내포되어 있으며, 시․공간과 지식 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근대사회를 구성해갔다. 전근대와 다른 근대적 지식 의 가장 큰 특징은 학문의 과학화와 서구학문의 보편화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과학주의(Scientism)라고 하였다. 근대적 공간에서 근대적 시간에 익숙해지려면 우선 개인의 신체가 근대적 신체로 거듭나야 했다. 근대의 기획에는 개인의 ‘신 체’를 어떻게 문명화된, 계몽된 신체로 만들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 다. 수량화․수치화된 표준적 지식체계가 도입되고, 이러한 근대의 학문체계는 근대 인쇄매체를 통해 보급․확산되고 학교교육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근대적 학교는 근대적 시․공간의 의미와 작동방식을 내면화한 과학적․규율적 신체를 탄생시키는 장소였다.

※ 이 논문은 2007년 2월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위원회에 제출된 교육학 박사학위 논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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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1. 문제제기

교육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의 삶 가까이에 늘 있어 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정, 일터, 공동체, 교회와 사원의 여러 장소에서 교육이 진행되어 왔다.

그러다가 점차 학교가 교육공간으로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학교가 교육공 간1)으로 보편화․독점화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일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보통․의무교육이 출현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보통․의무교육 기관으로서 학교는 어느 국가에서나 영향력을 행사하여 왔으며, 학교를 통한 근대인 의 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근대사회로의 전환과 학교교육의 발전은 그 궤적을 같이 해왔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교육의 독점적 발달과 함께 그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도 점증해왔다.2) 대다수의 나라에서 제도교육은 사회통합과 질서유지의 기둥 1) 공간은 교육을 가능하게 해 주는 한 여건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교육의 한 요소가 된다.

공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장소를 의미한다. 근대사회에서는 학교를 교육공간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인 관념이다. 일반적으로 학교는 구성원들이 물 리적 공간을 공유하면서 비교적 동질적인 교육과정과 경험을 나누는 성격을 지닌 교육공간 이다. 이 연구에서는 근대사회의 형성과 함께 보편적인 사람들이 공유하는 삶의 영역이며, 공식적․의례적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란 의미에서 교육공간(educational space)을 사용한 다. 아울러 교육공간은 물리적․건축적 공간의 의미를 넘어, 실존적 의미와 규율적 의미 등 다양한 의미와 성격을 지닌 공간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공간성(spatiality)이라는 측면에서 살 펴보아도 교육공간은 여러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공간성은 사회적으로 생성된 공간, 즉 특 정한 사회적 내용을 지닌 공간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공간이란 사회적으로 인간 형성을 부여받은, 특정한 목적에 따라 특정한 내용을 가르치고 배우는, 수많은 이념들이 대 결하는 문화 투쟁의 장소라고 정의할 수 있다.

2) 학교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알뛰세르(Althusser)에게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딱 지를 얻기도 하고, 사회학자인 부르디외(Bourdieu)에게는 ‘계급 재생산의 공간’으로 지목되기 도 했다. 겉보기에 사회적으로 중립적인 과학지식을 전수하는 곳으로 비치는 학교는 기존 질서에 의해 정당하다고 판단된 특별한 문화를 전수하는 곳, 문화적 전횡의 공간이라는 것 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일리히(Illich)는 아예 ‘탈학교사회’를 전망하고 있다. 일리히가 보기 에 교육과 과학기술, 종교를 포함한 모든 제도는 인간소외를 낳기 때문이다. 굳이 외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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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을 한다. 학교교육의 비판담론이나 학교의 위기현상들은 단지 교육의 위기를 보 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의 이념, 인력 양성제도 및 지배질서 전반의 위기를 보 여주는 징후일 수 있다. 위기현상은 한 순간 수면에 등장하지만,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부분, 오늘의 교육위기는 한국의 근대가 배태한 문제들 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 ‘교육=학교태’라고 하는 상식적이고 제도적인 관념은 강력하다(장상호, 2005).3) 이는 교육공간이 일상적인 삶의 터전(공간)과 동일했던 산업화이전의 사회에 서 교육공간이 분리되고, 학교공간으로 교육 기능이 이전․집중된 이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학교가 교육의 중심 공간이 되었을까? 그 연원은 18세기의 여러 혁명들과 그에 터한 사회제도와 조직의 변화와 관련된다. 산업혁명과 산업화, 그것 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혁명과 과학기술의 발달, 그리고 시민혁명과 자유화, 근대국 민국가의 형성과 국가주의의 확산 등에 의해 사회전반에 걸친 변화가 새로운 교육 을 요구하였다. 특히 18~19세기의 국가주의의 출현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민족주의 사상에 입각한 국가적 필요에 의해 자국의 국민의식을 높이고, 영토분쟁과 식민전쟁 등의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교육제도를 도입하였다. 그 주된 기능의 하나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력자원과 시민들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었다. 산업화가 시작된 당시 ‘공장’이라는 공간에서 물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했던 시대사조가 인간의 생산에까지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국 가정책은 대개 ‘평등한 교육기회의 제공’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되었다.

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한국교육 역시 많은 문제를 노정시키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부터는 ‘교실붕괴’, ‘학교붕괴’ 현상은 ‘교육위기’론을 확산시켰고, ‘조기유학’, ‘교육이민’ 현상 은 공교육체제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위기는 실제 학교현장에 서 선행학습과 교육격차에 따른 불평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학교폭력과 왕따, 학업스트레스 와 자살, 학교부적응 등 인성교육 측면에서도 많은 문제들을 노출시키고 있다. 아울러 학교 제도와 학교가 수행해 온 기능에 대한 문제제기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도 최근 들어 제기되 고 있다.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거하여 교육에 대한 국가독점 의 비효율성을 공격하고 있고, 평생학습 분야에서는 학교의 교육 기능의 독점이 정보사회, 지식기반사회에서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음을 비판하고 있다.

3) 장상호는 ‘학교에서 일어난 사태(schooling)’을 학교 혹은 학교태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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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회는 왜 학교라는 공간에 주목하게 되었을까? 근대이전 사회와는 다른 사 회변화들을 수용해야 했으며, 근대사회의 특성과 원리들에 의해 근대사회를 재구성 할 필요가 있었다. 즉, 근대사회는 그 유지․존속과 발전을 위해 개인을 일상적 수 준에서 근대 주체로 길들이는 과정을 고안해야 했다. 근대사회에 속한 자들은 누구 나 가정, 학교, 공장을 거치게 되는데, 가정은 사적인 삶을 유지하게 하고, 공장은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며, 학교는 교육과 훈육의 공간이 된다. 가정․학교․공장은 특정한 힘의 행사를 통해 개인이 근대적인 방식으로 생활하고 행동하도록 만든다(이 진경, 1997; 1998; 2000). 특히 근대사회에서 학교공간은 인간의 사회화를 담당하는 중요한 공간, 필수적 공간으로 주목된다. 학교는 시․공간의 배치를 통해 학생 개개 인이 갖고 있는 이질성을 줄임으로써, 분업과 전문화로 지칭되는 근대 산업구조에 걸맞은 인간을 효율적으로 길러낼 수 있다. 즉 학교는 연령과 능력별 등급화에 따른

‘공간의 분할’과 시간표에 의한 ‘시간의 선분화’에 따라 학생을 분할 배치하여 효율 적으로 통제․관리하고 이렇게 길러진 개인은 근대적 사회질서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근대의 교육공간으로서 학교에는 근대사회의 논리들, 근대성(modernity)4) 이 기획․구현되어 있다. 버만(Berman)은 모더니티를 ‘특정한 시․공간 경험의 양 식’이라고 정의했다. 모든 계몽주의 프로젝트는 시간과 공간이 무엇이며 그것들의 합리적 배열이 왜 중요한지에 관해 상대적으로 통일된 상식을 공유하고 있다. 계몽 은 근대화 기획의 필수 요소였으며, 근대화 기획은 공간정복과 합리적 배열/배치로 드러난다. 시간과 공간이 중세와 달리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식 과 의지로 무장한 자유롭고 활동적인 개인으로서 인간의 해방을 촉진하고 이를 축

4) 근대성, 모더니티란 사회적 삶의 독특한 형태로서 근대사회의 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기든스는 모더니티를 “대략 17세기경부터 유럽에서 시작되어 점차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 대하고 있는 사회생활이나 조직양식”(Giddens, 1991a)으로 규정한다. 모더니티의 형성은 근 대사회의 성립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여 출현하는 동적인 시대의식 이다. 근대성, 모더니티는 17세기 이후 서구사회를 풍미하고 20세기의 진입과 함께 전 지구 적으로 확산된 생활양식을 의미하며, 이 연구에서는 시간․공간․지식의 측면에서 근대사회 의 특성, 사회적 삶의 독특한 형태를 분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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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하기 위해 조직된다(Harvey, 1994). 이성과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에게 공간 확 장과 함께 공간 압축을 가져다주었으며, 시계장치의 보급과 표준시간의 도입은 미래 에 대한 통제가능성을 높여주었다. 전근대와 다른 근대의 특징을 ‘시․공간의 압축 (compression)’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시․공간의 압축은 근대인의 삶과 생활방식을 새롭게 재편했으며, 그 새롭고도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은 곳이 교육공간으로서의 학 교였다.

근대사회의 학교는 교육공간으로서 독점적 특권을 누리면서, 국가와 사회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동․청소년들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 을 교육의 이름으로 학교공간에서 보낸다.5) 학교공간에서의 삶이 학교 밖 공간에까 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그들의 일상적 행위를 지배할 가능 성이 커진다. 그런데 현재의 학교공간은 효율성과 입시경쟁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 어, 인간을 황폐화시키고 사회를 각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학교교육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학교공간은 그리 크게 변 화하고 않다. 어쩌면 우리는 근대, 서양에게서 그 긍정적인 측면, 즉 객관성․합리 성․공정성을 배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식민교육이라는 ‘이중적 근대’의 왜곡 때문 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학교공간이 어떤 작용을 했는지, 어떻게 왜곡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근대교육, 특히 학교교육에 대한 비판담론은 많으나 교육공간으로서 학교는 여전 히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6) 우리에게 교육은 곧 학교를 의미하듯, 교육공 5)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공간은 학교(42.8%), 집(33.8%), 공공장소

(14.6%), 학원(9.3%) 순이었다(최인수 외, 2003를 송현저․김병욱, 2005: 4 재인용).

6) 홀(Hall, 1999)은 이를 교육의 기반을 이루는 ‘타성적인 안정성’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식민 지로 통째로 수출된 제국의 교육제도는 독립이후에도 개혁이 불가능하거나 어렵다. 일단 정 착하여 기능하기 시작한 제도들은 매우 안정되어 개혁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김기석(1999) 은 이를 교육의 ‘자기보존 활동’이라고 말한다. 문명발달 이후 나타난 교육은 한번 완성되면 그 자체를 유지 존속하려는 관성을 갖게 된다. 형식과 내용상에 특질을 획득한 교육체제가 그 자체를 유지한다는 것은 곧 교육이 그것을 만든 사회질서와 제도를 다시 유지 존속시킨 다는 것을 뜻한다. 이 관성 때문에, 한번 획득된 특질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문명이 소멸된 연후에도, 새로 나타나는 문명에 잔존하게 되거나 또는 새롭게 변형되어 진화한다. 만일, 교 육이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정 정도 역사적 연속성을 유지한다면, 그것은 교육체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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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으로서 학교 역시 교육의 기본범주로 인식되어 그 의미에 대해 거의 논의되지 않 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다. 무엇보다 어떤 건물이 무엇을 위해 지어졌느냐가 아니 라, 어떤 의미를 갖는 것으로 체험되는가를 살필 때 비로소 그 공간에 내재하는 의 미가 드러날 수 있다. 교도소는 교화, 병원은 치료, 학교는 교육의 목적으로 지어졌 으나, 그 공간에서 교화, 치료, 교육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학교=교 육의 공간’이라는 익숙한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왜 학교라는 공간으로 교육 의 기능이 이전․집중되었는지, 근대적 교육공간으로서 학교가 어떻게 독점적 지위 를 누리게 되었는지를 살피는 것은 교육공간으로서 학교가 가지는 문제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의 출현이 갖는 사회적 배경과 논리, 그 논리들의 학교에서의 구체화과정을 추적해보고자 한 다.

물론 그동안 학교공간에 대한 논의들은 주로 교육시설행정과 학교건축학에서 다 루어졌다. 이 관점은 학교공간을 교육시설에 한정시켜서 학습활동을 효과적으로 지 원하는 수단적․매개적․보조적인 한 요소로 간주하며, 인체공학, 관련법규, 표준설 계도 등에 근거하여 계획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유향산, 1992). 하지만 이러 한 관점은 학교공간을 시설과 시설의 기능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어 교육공간에 대한 총체적 연구라고 볼 수 없으며, 무엇보다 이미 생산성과 효율성의 극대화라는 목적이 전제되어 있다. 물론 우리사회에서도 교육공간, 학교공간에 대한 인간학적․

철학적 접근이 부족하나마 논의되어 왔으나(이은미, 1994; 박민정, 1997, 윤재홍 1998; 김지원; 2000; 송순재, 2005), 사회사적․사회학적 논의는 거의 없었다. 90년대 이후 열린 교육의 실천과 교실공간 배치의 변화, 학교건축의 다양화와 미적 추구, 학교시설의 현대화와 정보화 등 여러 각도의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추구되기에 앞서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관련하여 공간 이 갖는 교육적․사회적 의미에 대한 탐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학교공간 에 대한 인식은 긴 호흡으로 본다면 교육으로 어떤 인간, 어떤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추구이기 때문이다.

에 깊숙이 자리 잡은 관성 때문일 것이다. 이는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나 새로운 정책의 도 입이 조심스러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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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구목적과 연구문제

이 연구의 목적은 근대적 시간․공간․지식의 원리가 근대성의 구현체로서의 학 교를 기획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시간과 공간은 인간의 기본범주로 근대사회를 이전 사회와 다르게 규정짓는 근대적 경험의 양식들이며, 시․공간과 지식은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근대사회는 그 유지․존속과 발전을 위해 개인 을 일상적 수준에서 근대 주체로 길들이는 과정을 고안해왔으며, 특히 학교는 근대 인의 사회화를 담당하는 중요한, 필수적 공간으로 주목된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근대적 시간․공간․지식의 원리가 근대성의 구현체인 학교에 어떻게 반영, 구현, 작동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 의 성격과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교육공간 모색을 위한 기초 작업을 모색 하고자 한다.

현재의 학교위기와 교육문제는 근대적 기획으로서의 학교에서 기인하다는 전제 하에 근대적 교육공간으로서 학교의 출현에 관한 역사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하였다.

근대성의 구현체인 학교는 어떤 논리에 의해 기획되었으며, 근대라는 시대의 어떤 특징들을 담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서구와는 다른 근대 화의 특수성7)이 있는 바, 특히 식민지 근대화를 중심으로 근대기획이 학교공간에서

7) 근대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 와그너(Wagner)는 근대사회가 자유(liberty)와 규 율(discipline)이라는 상호대립적인 두 차원이 교차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의 분석에 따르면 18세기 후반에 서구사회는 크게 두 차례의 전환을 겪었다는 것이다. 먼저 19세기에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일부 집단이 근대의 기본속성인 자유(restricted liberal modernity)를 향유했다. 그러나 이것이 20세기 초반에 체계가 강화되면서 개인의 해방과 대 립되는 규율화(organized modernity) 담론이 지배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며, 20세기 후반 에 와서는 근대의 속성인 자유와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삶의 양식(life style)이 급변하는 등 다원주의가 지배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Wagner, 1994). 근대와 근대성(modern, modernity)에 대한 서구사회의 담론은 대체로 계몽이 담고 있는 빛과 그림자의 양면으로 나 누어진다. 한국의 경우, 이러한 이중적 성격에 ‘식민지’ 근대의 이중적 성격이 더해져 보다 복합적인 양상으로 재현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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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관철되고 계승되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럼으로써, 현재의 학교공간이 담 고 있는 의미와 논리를 분석하고, 새로운 학교공간의 구상을 위한 단초를 마련하고 자 한다.

연구의 목적에 따라 살펴보고자 하는 연구문제는 다음과 같으며, [그림 1]은 연구 문제의 개념도이다.

첫째, 근대적 교육공간으로서 학교를 가능하게 했던 근대의 시간, 공간, 지식은 어 떤 의미가 있는가? 학교공간으로 교육의 기능이 이전․집중된 배경과 전개과정은 무엇인가?

둘째, 학교에서의 시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근대적 시간관념이 학교의 시간과 시 지식

▪과학기술주의

▪기계적 세계관

▪국가주의, 민족주의

학교:

근대성(modernity) 의 구현체

근 대

시간

▪진보, 발전, 표준화

▪테일러주의, 포드주의

▪근대화

공간

▪균질화

▪규율, 훈련, 관리

▪물리적 시설과 배치

담론구성과 시대적 특성화

규정

〔그림 1〕연구문제의 개념도 (반영과

내재화)

(학교지식 으로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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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배치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게 했는가?

셋째, 학교공간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근대적 공간개념이 학교의 공간과 공간배 치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게 했는가?

넷째, 근대적 지식8)은 근대적 시․공간의 원리와 어떻게 상호 작용했으며, 학교공 간에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

3. 분석틀과 연구방법

가. 분석틀

이 연구의 분석은 크게 다음과 같은 단계로 수행되었다. 첫째, 근대사회의 이념들 을 추출하고 둘째, 근대적 교육공간으로서의 학교의 이념들을 밝혀내며, 셋째, 근대 성의 구현체인 학교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다.

〔그림 2〕는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의 성격에 관한 연구의 전체 진행과정을 모형화한 것이다. 우선 시간, 공간, 지식의 측면에서 근대사회의 이념들을 밝히고, 그에 터해 근대사회의 주요 작동원리를 추출하고, 그 원리들이 학교의 성격을 어떻 게 규명하고 어떤 인간형을 양성했는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의 성격에 대해 고찰하면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식에 주목하는 이유는 인간에게 시간과 공간은 기본범주로 존재구속적 의 8) 지식의 범주와 성격은 광범위하다. 이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지식은 주로 근대적 시․공

간과 관련된 범주로 국한하였다.

근대사회의 이념추출

근대성의 시간․공간․지식

근대적 교육공간으로서 학교의 이념들

근대교육제도의 출현

근대성의 구현체:

학교의 성격 규명 시간․공간․지식의 구조화: 근대인 양성

〔그림 2〕연구의 분석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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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통적으로 시간과 공간은 사회분석의 주변영 역으로 간주되어 왔다.9) 물론 시․공간과 지식을 같은 범주로 취급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시․공간이 인간 존재를 구속한다면, 한 시대의 시간과 공간관은 그 시대의 지식(담론)과 상호영향을 주고받는다고 판단하여 주제로 선정하였다. 이 연 구에서 시간과 공간, 지식은 교육의 기본범주이다.

나. 연구방법

이 연구는 문헌을 이용하여 교육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검증하고 분석하는 역 사적 연구방법을 사용하였다. 문헌에 기초를 둔 연구방법으로는 통합적인 방법 (integrated method), 철학적인 방법(philosophical method), 역사적인 방법(historical method)이 있다(김종서, 1980).

모든 사회학적 연구는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누군가 100년 전의 역사적 현상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한다면, 그 이유는 오늘날의 문제가 100년 전 의 사회적 조건에서 유래되었고 그것이 현재를 구속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 이다. 그런데 교육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한다고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교육 사회학에서 한국의 교육문제들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체계적으로 시도한 연구는 별 로 많지 않은 실정이다(강순원, 1991; 이해성, 1998). 오늘 우리 교육의 문제는 오늘 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근대화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문제들이다. 이에 한국의 근대가 배태한 여러 가지 교육현상과 문제들을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에 초점 을 두고 역사사회학적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한다.10)

9) 특히 각각 하나의 학문 유형으로 분리되어 지리학이 공간에 관한 독특한 관심에서 그의 독 자성을 찾는 반면, 역사학은 시간의 영역을 그의 특수한 분야로 삼아왔다(Giddens, 1991b).

10) 밀즈(Mills, 1984)는 사회학이라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역사사회학’이라고 하면서, 역사학과 사회학의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역사에 관한 지식이 필요불가결하며, 무(無)역사적인 연구는 한정된 상황에 대한 정태적이고 단기적인 연 구가 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스카치폴(Skocpol, 1986: 8) 역시 진정으로 역사성 있 는 사회학적 연구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일정한 시간과 공간이라는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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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회학적 관점을 교육에 적용한 교육역사사회학의 주된 탐구 대상은 어떤 사 회적 힘이 작용하여, 한편에서 개인의 심리적 특질이 형성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교 육체제의 특질이 형성되는가를 설명하는 일이다. 교육역사사회학은 “교육의 특질이 무엇이며, 어떻게 왜 그러한 특징을 갖게 되었는가?”를 핵심 질문으로 삼고 있다.

이 두 질문은, 분석 수준을 달리할 뿐, 실은 같은 질문이다(김기석, 1999: 14~16). 이 연구가 밝히고자 하는 근대사회의 형성․변동과정에서 생겨난 교육의 문제를 근대 성의 구현체로서 학교의 출현과 의미에 관한 역사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문헌연구의 자료로는 그 시기의 1차 자료와 연구 대상 시기를 분석하고 있는 각종 2차 자료를 수집․이용할 것이다. 『독립신문』의 논설과 잡보, 『매일신보』

의 기사, 『동아일보』의 사설과 기사, 그리고 『별건곤』 등의 각종 잡지와 같이 근대계몽기의 담론을 형성․주도했던 인쇄매체를 분석하였고, 그동안 축적된 교육사 와 사회사 분야의 연구 성과도 참고하였다.11)

체적 상황 속에서 사회구조나 과정을 파악한다. 둘째, 역사의 결과를 설명함에 있어서 시간 경과에 따른 과정과 시간적인 전후관계를 보여준다. 셋째, 개인의 삶과 사회의 변동과정에서 나타나는 의도된 결과뿐만 아니라 의도되지 않은 결과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행위와 구조적 맥락 사이의 상호작용에 주목한다. 넷째, 특정한 사회구조와 그것의 변화유형이 지니 는 특수하고도 다양한 속성들을 강조한다. 한편 아브람즈(Abrams, 1986)의 역사사회학은 종 래의 역사학의 무과학성과 사회학의 무역사성을 비판하고 ‘과정’과 ‘형성’에 관심을 집중하여 인간과 사회의 동시적인 주체적 파악을 추구한다. 그는 마르크스, 뒤르케임, 베버를 역사사 회학자로 설명하면서 역사와 사회변동에 있어서의 인간과 개인의 역할과 같은 사회과학의 핵심 주제들을 고찰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 구조와 변화, 개인과 사회들의 얽힘 속에서 인간의 주체적 위치를 파악하고 공동체적 삶을 향해 미래의 역사와 사회구조를 창조 해나가는 원리를 모색하고 있다. 이렇듯 사회학 연구는 본래 철저히 ‘역사적’이었다. 교육역 사사회학적 연구방법은 우리의 교육역사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그 안에 내재한 교육원리와 유형, 이론을 탐구하는 교육사회학 본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11) 서구의 분석은 주로 2차 자료에 의해, 우리의 분석은 1차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이 연구 에서 사용하고 있는 핵심 개념들이 이미 서구사회의 연구 성과물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는 서구에서 이루어진 사회사 분야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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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연구범위

이 연구에서는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의 출현과 그 성격에 관해 분석하고자 하므로 연구의 범위는 ‘근대의 학교’이다. 그런데 한국 근대의 시작을 어디로 할 것 인가에 관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근대의 기점(起點)은 학자들에 따라 조금씩 다른 입장을 보여주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개항(1876년) 이후부터를 근대라고 하 고, 교육사에서는 갑오개혁(1894년) 이후부터 근대교육체제가 성립되었다고 한다.

한국 근대의 시기 구분 문제는 역사학계에서도 합의된 인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 는 쟁점이다. 1860년대, 1876년 개항, 1894년 갑오개혁, 1910년 조선총독부의 등장, 1930년 자본제적 생산양식의 성립 등이 근대의 기점으로 주장되었다. 이 외에 18세 기 후반 영/정조 시대, 1884년 갑신정변 등도 근대의 기점으로 논의되었다. 한편 사 회학계에서는 근대화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의 시기로 지연 된다는 신용하(1980)의 논지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는다. 이는 근대화가 그 이념형 으로 보아 민족이라는 동일체감을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조성하는 것이라면, 우리 의 근대화는 그 출발에서부터 국민주권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일제 식 민지 공간은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2)

이 연구에서 관심 있게 보려고 하는 것은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의 출현을 가 능하게 했던 배경과 논리들이며, 그것이 학교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였는가에 있 다. 따라서 근대 기점 자체는 이 연구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아울러 이 연구에 서는 근대화(modernization)를 ‘장기적인 사회변동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시 기들이 포괄적으로 포섭된다. 서구에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1880~1910년대) 가 근대성이 구현되고 세계로 확산되는 결정적 시기였다. 아울러 우리에게 긍정적이 든 부정적이든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일본의 개항은 1853년이었다. 이후 메이지원년

12) 최근에도 재현되었던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재인식’간의 논쟁도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 지 근대화론’의 논쟁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연구에서는 근대화라는 것을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장기적인 사회변동의 과정으로 파악하며, 개항 이후 분단시대부터 이루어진 이식된 근대의 시발에서 한국의 발전과 저발전이 지니는 도전과 좌절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파악하 는 것이 오히려 근대사회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에 유용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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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1868년에 시작되었으며, 1890년에 교육칙어가 발표되어 학교교육의 근간을 이루 게 되었다. 1910년에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고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 게 되며, 한국의 근대교육 형성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이 연구에서는 근 대교육은 ‘실현되어야 할 긍정적인 것’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근대나 근대성에 부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긍정적인 의미의 근대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에서 출 발하고자 한다. 근대화과정에서 왜곡되었다면 어떤 점이, 구현되었다는 어떤 점이 실현되었는가를 밝혀서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의 성격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는 근대화를 장기적인 사회변동과정이자 유럽 근대의 세계화․보편화 라는 관점을 포괄하여 한국에서 근대, 근대성 담론이 형성되던 시기를 분석하고자 한다.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시기는 개항(1876년)을 전후로 하는 1880년부터 1920․

30년대까지이다. 분석시기의 전반부는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전환이 추진되 는 변혁기였으며, 분석시기의 후반부는 근대담론이 일반인의 삶에도 영향력을 발휘 하는 형성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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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근대 교육공간으로서 학교 출현의 의미

이 장에서는 근대적 교육공간으로서 학교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던 근대의 의미와 특징들을 이전 시대와 비교하여 살펴보고, 그에 터해 근대사회의 이념과 작동원리를 밝히고자 한다. 아울러 근대에 이르러 사회의 교육적 기능이 학교라는 공간으로 집 중된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고, 근대교육제도를 구상할 수 있도록 했던 이념과 시대 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1. 근대의 의미 : 시간․공간․지식

인간의 모든 경험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범주는 광 범위한 문화적 발전 양상들을 담아낼 수 있는 포괄적인 틀을 제공해준다. 시대와 장 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상이한 시간적․공간적 경험을 하며, 무의식적인 것 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관념을 갖게 마련이다. 이와 함께 17세기의 과학혁명은 지 식체계의 변화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근대적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식은 상 호영향을 주고받으며 근대사회를 재편하기 시작한다. 이 절에서 살펴보려는 것은 근 대의 의미인데, 근대가 그 이전 시대와 어떻게 다른 것이었는지를 시간과 공간, 그 리고 지식의 관점에서 살피고자 한다.13)

이처럼 근대의 의미를 이전 시대와의 비교를 통해 밝혀보려는 까닭은 근대사회는 이전 사회와는 다른 사회문화적 변화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며, 이전 사회와는 다른 사회조직과 인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라는 특정한 공간을 교육의 장 13) 1880년경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과학기술과 문화에는 엄청난 변화의 물결 이 있었다. 그로 인해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방식에도 일대 전환이 초래되었다.

그러한 방향의 전환에는 전화, 무선, 엑스레이(x-ray), 영화, 자전거, 자동차, 그리고 비행기 등 다방면에 걸친 과학기술상의 혁신이 물질적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한편 의식의 흐름 기 법을 활용한 소설, 정신분석, 입체파, 상대성 이론 등 이 시대에 전개된 다양한 문화 현상들 은 사람들의 시간관과 공간관을 직접적으로 바꾸어놓았다. 그 결과 생활면에서나 사고면에 서 모두 이전 시대와는 차원이 달라져버렸다(Kern, 200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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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 주목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란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이에 본 절에서는 근 대적 시․공간과 지식이 근대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규명했으며, 근대인의 삶을 어떻 게 변화시켰는지를 ‘기차와 시계’라는 근대적 표상을 통해 살피고자 한다.

가. 근대와 시간

⑴ 근대의 표상: 시계―시간의 압축

근대가 시작될 무렵의 상황을 상상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념 축을 마련할 수 있 다. 여기에서는 근대이전의 시간과 근대의 시간의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근대 이전 사람들의 시간관은 그 이후 사람들의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아우구스 티누스(Augustinus)는 ‘아무도 내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알고 있 다. 하지만 물어오는 사람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고 말했다(Kern, 2006: 99). 카프카(Kafka) 역시 시간이 무엇이건 간에 분 명한 것은 시간이 우리의 생활리듬을 결정하는 주요한 변인이라도 했다. 공적 시간 과 사적 시간의 불일치가 얼마나 사람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하는지 다음 인용문에 서 잘 드러난다.

… 그건 그렇다 치고, 자아, 지금은 일어나야만 돼. 기차는 5시에 출발하니까. 그리고 그는 옷장 위에서 째깍거리는 자명종 시계를 쳐다보았다. 큰일 났다! 시계는 6시 반이었 다. 시계 바늘은 30분을 이미 지나, 거의 45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종이 울리지 않았 던가. 정각 4시에 울리도록 맞추어 놓은 것은 침대에서 보아도 알 수 있다. 틀림없이 울 리기는 울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안 가득히 울리는 종소리에도 눈을 뜨지 않고 편안 히 잠을 잤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러나 그는 밤새도록 편안하게 잘 잔 것만 은 아니었다. 편안히 자지 못했기 때문에 시계가 울린 뒤에 더욱 정신없이 곯아떨어졌 는지도 모른다. ‘그러나저러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지? 다음 기차는 7시에 있으니, 그 기차시간에 맞추려면 미친 듯이 서둘러야만 할 텐데(Kafka, 1989: 86~87).

뒤르켐(Durkheim)의 지적처럼 시간이라는 범주의 바탕에는 사회생활의 리듬이 존 재한다.14) 시간이란 우리의 생활리듬을 측정하고 구획하기 위한 것이다. 기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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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ddens, 1991c)도 시간이 과거→현재→미래의 연속선상에서의 사물의 위치를 가르 친다는 칸트적인 인식을 비판한다. 시간은 단순한 사건의 순서가 아니라, 일상생활 의 지속, 제도의 지속으로 설명되는 것으로 역사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카프 카(Kafka)의 소설 『변신The metamorphosis』에서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는 잠에 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거대한 해충으로 변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괴로움은 기차시간을 놓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을 때 더욱 가중된다. 해충으로 변신했음 에도 그는 아직 시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시간을 정하고 기록하는 일은 지도자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였으며, 그런 까닭에 시간을 기록하기 위한 시계의 역사는 길다. 시계의 역사는 기원전 4천 년 바빌로니아 해시계에서 시작되었다. 그 다음 물시계가 개발되었고, 모래시계도 만들어졌다. 중세시대에는 초를 태워서 시간을 알리는 초시계도 생겼다. 기계시계가 만들어진 것은 대략 13세기의 일이다. 기계시계의 개발에는 탈진기(escapement)15)라 는 기어의 회전을 일정하게 하는 장치가 필수적이었다. 그렇지만 당시의 시계들은 정확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몇 세기에 걸쳐 수많은 과학자들의 시행착오를 거쳐 오 늘날의 디지털시계로까지 발전했다. 따라서 시계의 역사는 시간을 좀더 정확하게 측 정하기 위한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계장치의 발달과 시계의 발달은 함께 해왔는데, 근대이전의 기계는 기계 가 아니라 도구였다. 도구는 인간의 손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기계는 14) 뒤르켐은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The elementary forms of the religions life』에서 시간

은 사회조직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며, 사적인 시간과 사회적 기원을 갖는 ‘일반적인 시간 (time in general)’을 구분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루, 한 주, 한 달, 한 해 등의 분할 은 제의, 축제 그리고 공동 행사의 주기적 순환과 일치한다.” 모든 사회는 시간 속에서 생활 을 조직하고 리듬을 정립한다. 이 리듬이 시간 활동을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단일한 틀이 된 다. 이러한 의미에서 “달력은 집단 활동의 리듬을 표현하는 동시에 집단 활동의 규칙성을 보장하는 기능을 한다.”(Durkheim, 1992: 22~32).

15) 탈진기란 시계의 움직이는 부분에 추의 힘을 번갈아가며 억제했다가 다시 풀어놓는 지동 장치(止動裝置)를 말한다. 탈진기에 의해 떨어지는 추는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시계를 움직 일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계식 시계는 태양이나 행성운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되 었다. 시계의 움직임은 끝없이 계속되는 균일한 시간의 단위를 제공해주었다. 이 탈진기야말 로 근대와 현대의 모든 시계를 가능하게 한 기초적 발명품이었다(김현일,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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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손과 두뇌의 생산물이지만, 인간으로부터 일정한 독립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특징이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제작이 본격화되는 17세기의 자동기계인 시계의 출현은 근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이자 우리의 삶의 리듬을 바꾸는 계기였으며, 철 도와 기차, 무선통신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시계가 확산되면서 생긴 가장 중요한 변화는 사람들이 시간에 맞추어 생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이전의 시계 는 사람들의 삶의 리듬을 규정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연의 순환리듬에 맞추어 생 활했다. 따라서 시계는 근대의 정신과 경험을 가장 잘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의 가장 중요한 특질을 밝혀낼 수 있는 발명품이다.

시계장치로 시간을 기록하는 것은 사상과 행동에 대한 의미에 있어서 대단히 총체적 이었다. 시간의 화살은 점차 추의 진동에 의하여 고정된 기계적 구분으로 기록되면서 전후방으로 단선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를 통해 단선적으 로 연결되는 과거와 미래 개념은 모든 방식의 과학적․역사적 개념들을 번성하게 하였 다. 그러한 시간적 도식 위에서 회상과 예언을 대칭적 명제로 보는 것과 미래의 통제가 능성에 대한 강력한 정식화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시간척도는 시간을 보는 방식으로서 시계장치를 도입했던 바로 그때 이미 암시되어 있었다(Harvey, 1994: 295).

과거­현재­미래가 가지는 동질적이고 보편적인 시간개념은 이윤율이나 이자율, 시 간당 임금, 기타 자본주의적 의사결정에 있어 핵심적인 양적 개념들보다 훨씬 더 중 요했다. 미래의 통제가능성은 근대인의 삶과 생활양식 전반을 규정하게 되었기 때문 이다. 전통적 순환시간에는 미래가 없다. 조상이 만든 가치체계를 흠내지 않고 보존 하는 것으로 공동체가 유지되었고 고대로부터 중세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미래의 통제가능성, 미래의식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미래에 대한 시간은 관념적 시간이다.

관념적 시간은 어떻게 구체화되어 일상 속에 뿌리내리게 되었을까? 이제, 시계적 시 간이 등장한다. 지금도 전 세계의 시간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세계표준시로 통 일되어 있다. 세계시간을 최초로 수립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철도회사들이었다. 물 론 과학적 관점에서나 군사적 관점에서 세계시간의 도입을 주장하는 논의들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철도회사의 필요성이 보다 컸다. 미국처럼 넓은 지역, 아니 유럽의 여러 나라를 지나는 기차를 생각해보면, 지역을 지날 때마다 시계를 새로 맞추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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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시간의 불일치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관용이 존재했을 것이다.

세계표준시의 도입을 주도한 세력은 정확하고 표준화된 시간의 편이성에 주목하 였다. 철도회사에게는 정확한 시간엄수를 통한 ‘효율적 관리’의 매력이, 산업자본가 들에게 사업 확장을 통한 ‘생산성 증대’의 매력이 있었다. 이처럼 세계표준시간의 도 입은 편이성과 실용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 체계가 실용적이라는 점은 명 백했지만, 세계적으로 그것이 채택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무선전신은 모 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마침내 1913년 7월 1일 아침 정각 10시, 에펠탑은 전 세계 를 향해 최초의 시보를 발신했다. 일단 전 지구적 전신망이 구축되자, 지역시간의 독립성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지역시간의 매력이 한때 아무리 강력했다 해도, 이제 세계는 빛의 속도로 지구를 질주하는 임펄스(impulse)의 버저소리, 벨소리에 눈을 뜰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이했던 것이다(Kern, 2004: 44~48). 세계표준시의 도입으 로 인해 세계인은 하나의, 균질한 시간으로 편입되었다.

⑵ 근대적 시간: 시계적 시간

세계표준시의 확립과 시계의 대중화는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어갔다. ‘시계시간’은 공장의 기계가 시계에 맞추어 돌아가고, 인간의 노동이 기계의 시간에 맞추어지면서 노동은 시간단위로 쪼개졌다. 작업장에서 노동자들과 관리자들은 시간을 놓고 싸우 기 시작했다. 엄격한 시간관념과 노동시간을 기록하는 현상이 이때 처음 생겨난 것 은 아니지만, 전기(電氣)의 시대만큼 널리 퍼져 있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새벽에 시작해서 저녁에 끝나는 노동은 농업공동체에서는 ‘자연적인 강제’였다. 고용에 의해 일하던 초창기에도 노동은 부과된 과업을 각자가 알아서 완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 었다.”(Thompson, 1967: 60~61). 이를 톰슨은 ‘과업지향(task-orientation)’이라 부르 는데, 이는 자연적인 리듬, 전통적인 순환시간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자신의 노동생 활을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사람들의 생활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노는 것의 반 복이었다. 시간화된 노동보다 훨씬 인간적인 감각이 있었고, 노동과 생활의 분리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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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8세기 말이 되면서 자본가들은 삶의 방식 자체의 전환을 직접적으로 요 구하게 된다. 이제 노동의 ‘시간적 강제’가 중요해진다. 톰슨은 1790년경 과업노동 (task-work)에 대한 마틴(Martin) 경의 비판을 인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동의하듯 과업노동은 노동자를 감시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 도입된다. 그 결과 일은 제대로 되지 않고 노동자들은 자기가 ‘벽에 기댄 채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맥주 집에 앉아 우쭐거린다. 그 결과 많지 않은 임금 앞에 불만을 드러낸다 (Thompson, 1967: 78).

이제 시간은 나태함, 빈둥거림을 제거하고 노동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노동자가 속도를 조절할 수 없는 새로운 기계 없이도 시간을 축으로 한 새로운 규 율이 도입되어 성공을 거두게 된다. 공장주는 공장의 감독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 고 있다.

제시간에 맞춰 규칙적으로 일찍 출근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을 드 러내고 격려한다. 그리고 계속 그들을 칭찬하여 다른 노동자와 구별한다. 정해진 시간보 다 늦게 오는 사람들, 계속되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면 늦는 만큼 임금을 주지 말아야 한다(Thompson, 1967: 82).

감독관은 시계의 분침에 추를 달아서 30분의 휴식시간을 27분으로 줄이는 방법을 개발했고,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다시 9시간으로 줄이기 위해서 투쟁 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금이자 돈이 되었으며, 상품이 되었다. 1분1초는 이제 아껴 써야 할 것이 되었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죄악시되었다. 소중한 시간이 휴식에 낭비되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잠이 많은 것도 나태하고 게으른 자의 행동이었다.

출퇴근시간기록용지, 시간기록기(time-keeper), 감시원(정보원), 벌금제 등은 이미 1700년대에 나타나고 있었으며,16) 18세기 말이 되면서 방적공장에 본격적으로 도입 16) 톰슨(1967)의 연구에 의하면 시간표와 시간관리인 등은 감시원이나 벌금과 더불어 1700년 대에 나타난 현상이다. 마르크스(1989)의 연구에서도 사람들의 일관성 없는 작업습관을 폐기 하고 그들 자신을 복잡한 불변적 규칙성에 일치시키도록 훈련시키기 위해 시간표와 벌금제 가 이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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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당시 작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출근시간을 찍어주는 기계, 펀치카드로 출퇴근 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톰슨은 사회적 분업을 통해, 노동자의 잉여노동시간(이윤의 기초) 추출을 극대화하려는 압력 아래에서 새로운 노동습관들이 형성되었으며, 새로 운 시간규율이 부여되었다고 역설한다.

자연적 리듬의 순환시간에 따르던 근대이전 사회에서 노동은 자연적인 강제에 의 해 이루어졌다. 그러다 시계시간이 도입되면서 점차 시간적 강제는 노동시간을 규정 한다. 이제 과업지향의 노동에서 엄격한 시간엄수라는 새로운 시간규율이 도입된다.

이 같은 시간관념의 변화는 사회조직의 작동원리가 되었고, 이를 일상화한 새로운 인간을 필요로 하게 된다. 우선적으로 시간규율이 강제적으로 적용된 곳이 공장(일 터)이었다. 엄격한 시간관리와 시간노동은 임금이라는 보상과 결합되었고, 노동자들 은 ‘시간은 돈’이라는 교훈을 더 없이 잘 배워간다.

물론 시간에 대한 자기통제권을 잃어버리고 외부시간에 자기를 맞추어가야 하는 것에 대해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정확한 시간에 대한 다수의 비판론자들과 근대적 시간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도 존재했다. 시계의 정확성과 손목 시계의 대중화가 신경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사적 시간의 현 실성을 버리고 공적 시간의 현실성을 승인할 것, 나아가 시간의 성질을 균질적으로 파악할 것, 이것은 시대적 요청이었다. 공장감독자(혹은 자본가)의 엄격한 시간엄수 와 규율부과를 모든 노동자들이 일시에 받아들인 것인 아니었지만, 세계 공통의 시 간이 보편적으로 부과되자 사적 시간에 있어서의 독특한 사적 경험이 침식되기 시 작했다.

속도의 증가에 따르는 각종 우울증, 신경증, 부적응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현대의 자연적 리듬,

전통적인 순환시간

노동: 자연적인 강제

시계시간 도입

과업지향 (task-orientation)

노동: 과업노동

시간적 강제

시간노동

▪엄격한 시간엄수

▪새로운 규율:

시간규율

〔그림 3〕노동과 시간관념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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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비효율적인’ 생산의 시대를 좋았던 옛날이라며 너무도 쉽사리 그리워하 는 것도 과학적 효율성이 초래한 폐해에 고통을 겪은 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 근대는 광범위한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보편시간’과 ‘엄밀한 시간관념’을 받아들인다.

나. 근대와 공간

⑴ 근대의 표상: 기차와 철도―공간의 확장

근대가 시작될 무렵의 상황을 상상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념 축을 마련할 수 있 다. 여기에서는 근대이전의 공간과 근대의 공간의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근대 이전 사람들의 공간관은 그 이후 사람들의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이를 잘 보 여주고 있는 것은 1873년 출판된 쥘 베른(Jules Verne)의 고전 『80일간의 세계일주 Around the world in eighty days』이다. 제목처럼 80일간의 세계일주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철도의 발달로 공간이동이 자유로웠으며, 세계표준 시의 도입으로 시간표 짜기가 쉬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베른의 소설에는 ‘거리의 소 멸과 공간의 확장’이라는 세계 통일의 감각이 반영되어 있다. 이 감각은 철도, 전화,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 영화 등의 기술이 발달하고 보편화되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분명해져 인간과 세계의 거리감각에도 변화를 초래한다.

독일의 시인 하이네(Heine)는 1843년 파리에서 루앙과 오를레앙으로 가는 철도노 선이 개통되었을 때, “무시무시한 전율, 결과를 예상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 또는 전례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느끼는 그러한 무시무시한 느 낌”을 언급하면서 철도를 화약과 인쇄술 이래로 “인류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삶의 색채와 형태를 바꾸어놓은 숙명적인 사건”이라고 경탄했다(Schivelbusch, 1999:

53). 이는 전통적인 공간-시간-의식의 혼란을 말해주는데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본적 인 개념들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철도에 의해 ‘공간’은 살해당했고, 언제나 같은 ‘시 간’ 내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열차의 평균속도는 32내지 48킬로 미터였으며, 이는 그때까지 우편마차들이 도달할 수 있는 속도의 약 3배였다. 동일 한 시간에 과거의 몇 배에 달하는 공간상의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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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공간의 ‘축소’, ‘압축’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19세기 초의 철도와 전신, 19세기 말의 전화는 범위, 이동성, 메시지가 닿 을 수 있는 송수신처를 엄청난 거리로 팽창시키면서 수백만의 사람들을 즉각적으로 통신이 가능한 그물망 속으로 끌어들었다. ‘거리의 소멸’은 점차 삶의 현실이 되었 다. 자전거는 사회의 반경을 2~3마일에서 10~20마일로 확장시켰고, 자동차는 그보 다 더 먼 거리로의 이동을 가능하게 했다. 전화는 ‘지구촌’ 반대편에 있는 상대와 방 금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었다. 기차는 발레리(Valery)의 말처럼 ‘늘 있어왔던, 물질도, 공간도,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근대의 산 물이다. 기차로 하여 근대인은 ‘공간과 시간의 확장과 소멸’을 경험하게 된다. 무엇 보다 철도를 통해 사람과 상품의 교류와 이동뿐만 아니라 지식과 정보의 교류와 소 통가능성이 증대된다. 사람, 상품, 지식, 정보의 공간적 이동의 용이성은 전 지구적 공간의 균질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공간이 수동적 환경이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의 틀을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고 했던 기든스의 주장과 상통한다. 예를 들면 공간분화는 계급 분화의 주요양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계급은 지역적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 는데, 이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다양한 지역적 계급 분화의 침전 작용 때문이다. 자 본주의사회에서 도시 근린의 격리현상은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주택시장 에서 나타나는 계급투쟁의 결과이다(Giddens, 1991c). 짐멜(Simmel) 또한 사회적 상 호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공간의 특성을 배타성, 분할, 고정화, 근접성, 이동성으로 설명하고 있는데(국토연구원, 2005),17) 사회조직이 공간의 조직화를 수반한다는 의미 이다.

17) 공간의 배타성, 사회적 구성물이 특정 공간과 얼마만큼 배타적인 관계를 갖는지에 따라서 사회적 구성물의 성격이 영향을 받는다. 공간의 분할, 공간을 분할하여 경계를 구분함으로 써, 내부적으로 하나의 단위로 간주하여 사회집단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공간의 고 정화, 공간이 얼마나 고정되느냐에 따라 공간의 내용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간의 근접 성,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거리의 정도에 따라 사회적 상호작용의 성 격이 영향을 받는다. 공간적 이동, 공간을 가로지는 이동의 정도가 사회적 의의를 가질 수 있다(국토연구원, 2005: 45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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⑵ 근대적 공간: 균질적 공간

1900년에 『대도시와 정신생활The metropolis and mental life』이라는 에세이에 서 짐멜은 현대생활이 가속화되고 인간관계는 물론 상업상의 거래에 있어서도 시간 엄수 관념, 신뢰성, 정확성을 주입시키는 데 있어서 ‘회중시계의 보편적 보급’18)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Kern, 2004: 280). 아울러 공간과 사회조직의 연관 성을 대도시에 대한 논의에서 구체화시키고 있다. 그에게 대도시는 근대성이 분명히 나타나는 장소이다. 이러한 인식은 대도시를 시장생산과 화폐경제의 본거지로 규정 하는 것에서 드러난다.19) 화폐경제의 계산적 본질은 정확성, 확실성, 계약의 명확성 의 지배를 가져오는데, 이러한 특성의 원인이자 결과인 것이 대도시의 조건들이다.

대도시에서는 모든 활동과 상호작용이 확고하고 초주관적인 시간의 도식을 아주 정 확히 따르지 않고서는 도저히 성립될 수 없게 되는데, 이런 점에서 대도시는 근대성 의 핵심을 잘 드러내는 공간이다.

근대인의 새로운 거리감각과 공간감각은 과학기술이 창조하고 도시화와 국제주의

18) 시계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 된 것은, 한편으로는 시계 제작기술의 발 전과 더불어 공장과 산업에서의 사회적 필요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1790년대 이래 시계보급은 빠르게 확산되어 1800년대가 되면 그 숫자가 크게 증가하고, 18세기 중반 이 되면 장인들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대개 은시계를 갖고 있었다. 이로 인해 179 1~1798년 사이에 시계에 과세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다. 문제는 시계가 사치품인가 필수품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장관들은 그것이 사치품이라고 주장했다. 하 지만 시계에 사치세를 부과하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왜냐하면 1790년대 이후에는 오 두막에 사는 사람들도 시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Thompson, 1967: 68~70).

19) 대도시를 화폐경제의 본거지로 인식한다는 사실은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에서 화폐경제의 주요 기능들이 대도시에 소재해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본질적으로 대도시가 화폐경제와 문화적 특징들을 공유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든스는 도시는 총체적 사회와 분 리되어 이해될 수 없다고 했다. “계급분할사회에서 도시는 국가의 ‘권력저장소’였으며 도시/

시골 간 관계는 이들 사회특성의 기본적 형태였다. 자본주의적 도시화는 단지 시골사회 생 활의 희생에 의한 도시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새로운 총체적 사회형태로서 의 자본주의에 의해 야기된 구조적 전환과 결부된다. 자본주의적 도시화는 계급분할문명의 구조적 기반이었던 도시와 시골 간의 분화를 불식시킨다. 대신 현대적 도시생활의 ‘창출된 공간(created space)’이 발달한다.”(Giddens, 1991b: 32~3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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