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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교육 연구에서 찾은 한국 교육의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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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교육 연구에서 찾은 한국 교육의 대안

- 교육에 미친 기독교 영향력과 기독교 학교를 중심으로

21000316 박한은, 21300588이지현

논문초록

본 논문은 네덜란드 교육 전반에 대한 탐구이며, 특별히 기독교 학교 교육에 초점을 맞 추어 향후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먼저 네덜란드 기독교 교육철학의 역사적 변화를 살펴본 후, 차례로 네덜란드 공교육 현황과 사례를 통해 본 특징, 네덜란드와 한국 기독교 학교를 비교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네덜란드 교육 속 기 업가 정신에 대해서 알아본다. 끝으로 앞선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 교육의 대안을 제시한 다.

Key Words: 네덜란드 기독교 교육, 칼빈주의, 가정·학교·교회, 네덜란드 사립학교 교 육, 한국 대안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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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이 연구의 목적은 네덜란드 교육 분야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제시하기 위해 쓰여졌다. 이를 위해 먼저 한국 교육의 현주 소를 진단할 필요가 있다. 간략하게 말해 한국 사회는 ‘교육의 바탕’이 무너져 있다.

이는 첫 째, 빠르게 성장한 물질적 변화 수준에 맞춰 변화하지 못한 정신적·관념적 고 착과 둘 째, 교육을 경제적 번영을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한국적 고정관념에서 비 롯된 사회적 분위기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형성의 기저에는 교육의 동력 을 교육 내부에서 찾는 것이 아닌 교육 밖에서 끌어오고자 하는 잘못된 암묵적 공적 동 의가 배경이라 할 수 있다.(손종현, 2015 pp.35-68) 즉 교육의 비본질적 요소가 마치 본 질인 것 마냥 차지하게 내버려 두는 사회적 분위기가 교육 발전에 있어서 정신적 지체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국 교육의 현 주소에 반하는 바른 교육의 바탕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 째, 교육을 통한 주제 몰입의 경험으로 인간은 발달한다는 믿음이다. 다시 말해 교육 의 수혜자가 그 과정을 통해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적 개발이 이루 어진다는 입장이다. 이는 교육이 단순히 사회의 경제적 번영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한 개인의 정신세계를 변화 시키고 성장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둘 째, 삶의 경험을 앎으로 귀결시키는 인간 능력에 대한 존중이다. 개인이 살 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경험을 단지 일개 개인의 경험으로 치부하여 끝내는 것이 아니 라 지식으로 정리하고 앎의 일환으로 삼고 다른 이에게 배포함을 통하여 개인의 경험을 공적 자산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인간 능력에 대한 신뢰 역시 교육의 바탕을 풍부하 게 하는 바라 할 수 있다. 셋 째, 교육현장의 참여자에게 자율을 허용하는 태도가 그것 이다. 이는 곧 교육이라는 서비스의 제공자에게 획일화된 교육 양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형태와 전달 방식 등에 있어 온전히 자유로운 재량권을 주는 것이다.(손종현, 2015 pp.35-68)1

위와 같은 교육의 바탕이 마련되어 있을 때 교육의 참 가치가 훼손되지 않고 교육 본연 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이후 진행될 전반부 내용 역시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네덜란드 교육의 역사와 제도, 현행 운영되는 학교들과 특징적인 교육 사 례(현실적 수학 교육, 실제적인 성교육)들을 살펴볼 것이다. 특별히 네덜란드의 건국 이 념이자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칼빈주의를 바탕으로 개혁주의 신앙이 기독교 교육에 미친 영향에 중점을 두어 살펴볼 것이다. 후반부에서는 기독교 교육으로서의 한 국교육의 대안을 찾아 보기 위해 본격적으로 네덜란드 기독교 사립 학교와 한국의 기독 교 대안학교2를 비교·분석 할 것이다. 이후 한국 교육에 대안으로는 이러한 대안학교가

1 ‘교육의 바탕’에서 시작한 것은 단순히 네덜란드와 한국 학교의 비교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교 육의 병폐와 네덜란드 식 교육의 관용과 자유의 정신을 비교하기 위함임을 밝힌다.

2 네덜란드와 달리 한국의 기독교 사립학교는 그 의미가 퇴색되어 일반 공립학교와 하등 차이가 없어 대안학교를 선정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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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레흐트 총회(1618-1619)

가지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일환이자 공교육에 새 바람을 일으킬 역량을 갖춘 협회 설립을 제안하고자 한다.

Ⅱ. 네덜란드 교육의 역사

1. 16 - 17C : 칼빈주의를 주축으로 한 교회 중심의 교육(Choi Yong Joon. 2015.)

네덜란드는 1568년 카톨릭 세력이었던 스페인에 대 항하여 독립전쟁을 수행한다. 이후 1588년 연합네덜 란드 공화국을 수립하게 되는데 이는 자연히 기존 카 톨릭 세력에 대한 독립운동 이었으므로 개신교도들이 주도권을 잡았으며 카톨릭세력은 분리된 그룹으로 존 재했다.(조성국, 2009, 21-52) 이후 칼빈의 영향을 받 은 개혁교회는 네덜란드 신앙고백(1561)과 하이델베 르크 교리문답(1563)을 차례로 받아들이게 된다.

(1618-1619) 학교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은 도르트레흐 트 총회(1618-1619)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총회의 골자 는 칼빈의 신학적 해석에 따른 교리를 정통 교리로 인정 하자는 것과 학교교육의 감독을 교회가 맡아 시행하자는 것이었다.(Coetzee, 1990,30)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참 종교의 기초를 배워 참된 경건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Krutihof, 1990, 34)는 주장을 바탕으로 교회와 교리는 2세기에 걸쳐 교육의 감독자이 자 기초 법 역할을 하게 된다.

총회 이후 학교에서는 주기도문과 성경 구절로 이루어진 학습서가 사용되었고 교리문답 교육을 실행하였다. 이후 푸시우스(Voerius)가 주창한 나더레 레포르 마치, 즉 “두 번 째의 종교개혁운동(Nadere Reformatie)”으로 이어지면서 영혼의 개혁과 일상생활의 경 건을 지향하는 실천적 경건이 강조된 형태로 교육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러한 네덜 란드 기독교 교육 역사에 대해 끄라우트호프(Kruithoif)는 자신의 논문에 네덜란드를

“목사의 나라(Domineesland)”로 표현할 정도로 당시 개혁교회의 영향은 막강했다.(조 성국, 2009 21-52) 이 뿐 아니라 당시 열렬한 칼빈주의자였던 팔코우흐(Valcooch)는 급

John Calvin(1509-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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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야 “학교에서 학생은 설교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교사는 학생이 교회 봉사를 하도록 이끌어 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동시에 칼빈주의자답게 죄의 본성을 강조하고 하나님 의 은혜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였다.(Kruithof, 1990, 30)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당시의 네덜란드 학교 교육은 철저히 개혁교회 중심이었으며 그 영향력이 가히 학교 본 연의 교육을 압도하는 수준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개혁교회의 영향력은 네덜란드 교육에 있어 학교 교육보다 더 큰 비중을 두었던 가정 교육에까지 미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시 가정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을 만나고 그를 예배하는 첫 번째 기관으로서의 역할이었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 역시 같은 맥락 아래 하 나님과 신자의 관계로 유비되었다. 이는 두 번째의 종교개혁 운동과 결부되어 내면적 경 건과 일상생활의 경건을 작은 규모의 교회인 가정으로 가져오기에 충분했고 자연히 가정 이 사회의 시금석이며 가정의 개혁이 사회의 개혁을 이루어진다고 간주했다.(조성국, 2009 21-52)

16-17C 이러한 가정 교육에서 있어 기독교 정신을 주창한 대표적 인물로는 요한네스 드 스바어프(J.de Swaef, 1594-1653)과 야코부스 쿨만(Jacobus Koelman, 1632-1695)이 있다.

먼저 스바어프는 그의 저서 [가정교육지침서]를 통해 경건을 곧 하나님의 계명에 맞추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자녀들이 경건하게 성장하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 다. 더불어 경건의 조기 교육을 통해 자녀들의 내면에 선을 심어주어야 하는데 이 때 충 고와 훈계, 때로는 징계를 통해서라도 자녀들이 죄악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쿨만 역시 일찍부터 자기 부인과 순종, 절제를 가르치기를 주장했는데 이는 어린이도 본성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이며 동시에 당시 어린이 사망률이 높았던 것을 감안 하여 그들의 영혼구원을 위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그의 저서 [부모의 의 무](1679)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개혁교회의 위상이 비단 학교 뿐 아니라 가정 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주장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학생의 모습 을 상상해본다면 아침에 일어나 등교 전 말씀 묵상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학교에서 교 리와 기도, 말씀을 배우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확인 받고 저녁에 잠들기 전 가정예 배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만큼 당시 개혁교회는 네덜란드 교육 전반을 주도하고 있 었고 그 결과 라이덴(1575), 그로닝겐(1614), 암스테르담(1632), 위트레흐트(1636)주립 대학과 같은 주요 대학을 설립하게 되었고 16세기 이후 높은 식자율을 유지하면서 네덜 란드 황금기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정리하자면 기독교 정신의 바탕 위에 찾아온 교육의 번영기 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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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물론 칼빈주의의 지배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처 음부터 그에 대한 진보적 성향을 드러내며 저 항 아닌 저항을 시도한 기독교인들도 있었다.

먼저 디르크 코른헤르트는(D. V. Coornhert, 1522-1590)는 본인보다 전세기에 활동했던 에 라스무스(1466-1536)의 주장과 같이 인간의 완 전한 성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낙관적인 인 문주의적 태도를 띠었다. 그와 함께 17세기에 는 야콥 카츠(1577-1662)가 르네상스와 인문주 의적 이상을 지지하면서 칼빈주의의 엄격한 경 건주의에 대해 반하는 입장을 보였다. 동시에 아동을 본성적으로 죄를 가지고 있는 악한 존 재로 보기보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호기심을

옹호하고 아동교육에 있어서 온화함과 사랑 질서가 기초적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일갈했 다.(Kruithof, 1990, 38)

2. 18 - 19C : 계몽주의와 국가 주도의 교육, 그리고 기독교 사립학교운동(School Struggling)

18-19C 네덜란드 교육계 지각변동의 시작은 프랑스 혁명에서 비롯된다. 1789-1794년까지 18C 후반을 흔들었던 다음의 사건은 네덜란드 교육에서 계몽주의가 대두되게 하는 핵심 이유가 된다. 사실 혁명 전에도 이미 계몽주의가 꽃 피울 수 있는 역사적 배경은 마련되 는 중이었다. 영국에게 해상 무역로를 빼앗기면서 황금기를 잃어 버린 것이 그 첫 번째 요인이며 두 번째 요인은 당시 잦은 홍수로 인해 제방이 무너지고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등 환경으로 인한 국가 내부의 위기 발생, 셋 째로는 나폴레옹 집권 이후 프랑스와의 전 쟁으로 인한 국력 소진이었다. 이러한 사회 불안 요소들은 네덜란드가 강력한 칼빈주의 배경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을 서서히 축소되게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앞서 언급했던 프랑스혁명은 신학자나 목사와 같이 교회의 장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 사이에서 도 교리적 정통성을 벗어난 해석을 불러일으키게 된다.(조성국, 2009 21-52) 대표적으로 마르티네트(J. F. Martinet, 1729-1795)는 그의 저서 [자연의 교리문답]을 통해 학문과 신앙 사이에 대립은 없으며 자연에 대한 교육 역시 종교교육만큼 중요하다고 밝히며 전 통적 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과의 대비를 강변했다. 또 과거 칼빈주의에 대해 진보적 입장 을 밝혔던 야콥 카츠와 유사하게 아동의 본성을 밝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았다. 이에 교 육의 방법 역시 과거의 구원 중심적 교육에서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Kruithof, 1990, 49-50)

이처럼 계몽주의가 강조된 18세기 말의 네덜란드의 국력은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었고 그 로 인해 기독교 교육가들 역시 어떻게 하면 쇠퇴기에 있는 국가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지에 대해 골몰하게 되었다. 그 일환으로 1784년 얀 뉴웬하우젠 목사가 교회와 무관한 사회적 결성 단체인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학회(de Maatchappii tot Nut van’t Algemeen)를 설립한다. 구체적인 활동으로는 당시 네덜란드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의미에 서 애국심과 기독교 정신에 따른 경건과 도덕을 강조하였으며 도덕성 회복을 종교의 존

Jacob Cats(1577-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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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이유라고 설파하였다. 즉 기독교가 가지는 구원 그 자체 보다는 기독교 정신이 가지 고 있는 이점을 이용하여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고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론으로 사용했 다고 평가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도 가정교육을 강조하는 대목이 나온다는 점 이다. 사회적 악은 가난과 무지에서 초래되는 것인데 이러한 가난과 무지는 곧 가정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가정의 회복이 곧 사회의 회복과 연결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가정교육을 강조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이 학회에 글을 게재한 비헤리 (J. Wigeri)목사는 도덕적 성품 형성을 위해 교우 관계에서 악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의 를 주어야 하며 가정 내 사적인 담화에서도 무익한 시간을 흘려 보내길 즐기는 것을 경 계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보건 교육을 언급하는데 이는 자연히 순결 의식의 강조로 연결되었다. 건전한 결혼관계가 국가 발전의 기초석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서 비 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국민 교육에 대한 강한 열망은 특별히 가난한 계층에 집 중되었고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네덜란드 사회에 영향을 끼쳤다.(조성국, 2009 21-52)

1795년, 네덜란드는 나폴레옹 군대에 점령되 어 프랑스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제 공식적으로 연합네덜란드 공화국(1568-1648) 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프랑 스 점령 이후 종교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꼽 는다면 단연 교회와 국가의 분리가 법제화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네덜란드 정복 이후 결성된 의회는 3차(1801, 1803, 1806) 에 걸쳐 학교 법을 제정하여 학교를 교회로 부터 독립시킴과 동시에 국가 통제 하에 두 었다. 주목할 점은 이를 주도한 사람들이 바 로 앞서 언급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학 회”의 회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노력 에 산물로 국가가 관장하는 공립학교가 생기 면서 네덜란드 초등학교 체제는 공립학교 (openbaar school)과 사립학교(bijzonder school)로 나뉘어지게 된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

이라면 공립학교의 경우 국가로부터 모든 재정을 지원 받는 반면 사립학교는 특정 단체 나 학부모들의 지원금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18C말과 19C초에는 본격적으로 학교 교육에 대한 국가의 제도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의 일차적 요인은 전방위적 국민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연유에 교육 속 기독교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었 고 과거 16-17세기 학교에서 칼빈주의에 대해 설파했던 것과는 달리 도덕성 위주의 교육 으로 변모되었다. 더불어 목사의 교육 참여 여지 역시 축소되게 되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교사 수의 급증으로 이어지게 된다. 1842년 교사들의 연합체가 결성되고 1850년 5410명 이었던 교사들의 수가 1900년 20,635로 급격하게 증가하는 수치가 그것을 입증한 다.(Knippenberg, 1986, 68, 247-248) 교육의 주체가 교회에서 국가로 이전하게 된 것이 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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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흐름은 1816년 법제화 된 국가 교회(Netherlands Hervormde Kerk)와 탈 종교적 근대 사상의 형성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에 교육은 통일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형성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변화는 칼빈주의를 토대로 교육의 이념을 상 정한 도르트레흐트 총회의 결정을 무시한 결과가 되어 버렸다. 마침내 이에 반대하는 움 직임이 일어나게 되는데 1834년 정통적 칼빈주의 경건을 회복하겠다는 명분으로 일어난 분리 운동(De Afscheiding)이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드콕(H. de Cock)과 스콜터(H.

P. Scholte)목사가 이끈 이 운동은 국가 교회로부터 칼빈주의의 경건을 회복하자는 주장 을 토대로 새로운 교단(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을 만들기에 이른다. 교육분야 에서는 과거 가정교육을 되살려 엄격한 신앙교육을 강조할 뿐 아니라 공립학교의 교육은 하나님의 말씀과 대비되니 학교에 보내지 말 것을 권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이후 기독교 학교 투쟁의 시금석 역할을 하게 된다. 정리하면 현 사회 체제에 대해 강력 하게 반대하며 극단적인 긴장상태를 불러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일어난 것이 부흥운동(Revil, 1826-1854)이다.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네덜 란드의 재복음화와 사회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대표적 인물로 헬드링은 “기독교 친구 (Christelike Vrienden)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노예 해방과 빈민층 구제, 교육의 중요성 을 설파하였고 또한 정통 칼빈주의가 기초가 된 학교 설립 운동을 위해 힘썼다. 실제로 시골 지역에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아동과 여성을 가르치고 가정에서의 경건 교육이 단순 한 도덕적 의미로서의 기독교가 아니라 회개로 이어지는 교육이 되어야 함을 설파했다.

이는 분리 운동이 공립학교 출석에 반대하거나 아예 국가 교육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함 을 말하며 극단적인 긴장상태를 일으키는 것과 달리 실제적인 사회 개혁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조성국, 2009 21-52)

분리 운동, 부흥 운동이 기독교 전체에 대한 거 시적 입장에서의 움직임이었다면 이어서는 이와 맥을 같이 하면서 좀 더 교육 쪽에 초점을 맞춘 학교 투쟁(School Struggling)의 인물들을 알아 보도록 하자. 첫 번째 인물은 의회의원이자 기독 교사회개혁가 였던 흐룬 반 프린스턴(Groen van Prinsterer, 1801-1876)이다. 그는 사립 기독교 학교의 설립 권리와 교육의 자유 개념을 확립하 기 위해 노력한 1세대 학교 투쟁가로서 1857년 의회가 학교법을 통해 초등학교에서의 종교 교육 의 중립성을 법제화 했을 때 이에 반대하는 학교 투쟁을 펼쳤다. 그 영향으로 분리 운동가들과 여 타 정통 칼빈주의자들이 의기투합하여 기독교 초등 학교들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에 힘입어 프린스턴은 “기독교 국립학교 진흥연합 (Vereeniging ter bevordering van Christelijke National Schoolonderwijs)”를 결성하 여 과거 정통 칼빈주의가 주축을 이루었던 공교육 시스템을 만들고자 시도하였다. 실제 로 이러한 움직임에 동의하여 기독교학교를 지원하는 단체들도 등장하기 시작하였다.(조 성국, 2009 21-52)

흐룬 반 프린스턴(1801-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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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학교 투쟁가로 얀 드 리프더(Jan de Liefde)목사가 있다. 그는 학교 교육의 종 교적 중립성에 반대하며 학생들이 어린 시절부터 종교를 수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 아동교육잡지활동을 하였으며 부모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인식시키기 위해 노 력하였다. 또한 1855년 “국민 구원을 위한 연합(Vereeniging tot Heil des Volks)라는 단체를 결성,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학회에 직접적으로 반대하며 교육이 유익에서 그치 는 것이 아니라 구원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조성국, 2009 21-52)

이처럼 18-19C는 본격적인 국가 주도의 교육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그에 반하는 운동이 함께 일어난 격동의 시기의 전초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후 20C의 분파주의와 맞 물려 더욱 격렬한 투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3. 20세기 전후 : 분파주의와 신칼빈주의, 그리고 학교 투쟁의 성과

19C말의 네덜란드에는 가톨릭과 함께 다양한 개신교 집단이 분파 별로 형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분파주의(Verzuiling)는 계몽주의의 확산으로 인한 다양성에 대한 인정에서 비롯 된 것으로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다양한 세계관에 대한 인정3은 자연스레 국가 주도의 교육에 반하는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으며 과거 칼빈 주의의 이념을 원하는 사회적 요구도 고개를 들게 된다. 정통 칼빈주의를 계승하는 신칼 빈주의자들 역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등장하게 되는 데 대표적으로 카이퍼(A. Kuyper), 바빙크(H. Bavinck), 볼쩌(J. Woltier), 바터링크(J. Waterink)가 있다.

먼저 신칼빈주의 대표선수 격인 아브라함 카이퍼 (Abraham Kuyper, 1837-1920)는 1869년 기독교 주간 신문(De Heraut)의 편집인으로 활약하는가 하면 프랑 스혁명 정치사상과 근대적 세계관에 반대하는 기독교 정당인 “반혁명당”(Antirevolutionaire Partij)을 결성하여 1889년 기독교 연정 내각에 참여하였다. 그 결과 카이퍼는 1901-1905년 동안 네덜란드의 수상이 되어 네덜란드 정통 칼빈주의를 기초한 국정운영을 주도하게 된다. 교육 면에서 그의 투쟁은 더욱 두드 러지는 데 1880년 신칼빈주의 정신으로 사회변혁을 주도할 자유 대학교(Vrije Universiteit)를 설립하는 한편 반혁명당 활동을 통해 기독교 학교 설립을 독려 하고 학생들이 기독교 학교를 다니는 것으로 향후 사 회 진출에 있어 어떤 차별도 받지 않도록 학교 법 을 수정하는 작업을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가톨릭 정당과 연대하여 초등학교 교육 법안(1889)

3 아직 다원주의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양한 세계관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분파의 큰 범주는 개신교와 가톨릭에 한정된 편이었고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인식은 이른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Abraham Kuyper(1837-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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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제출하여 사립학교도 정부보조금을 받을 수 있고 법적 평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만

들었다. 이러한 카이퍼의 행동은 획일적인 국가주의 교육에 대한 실천적 비판이었으며 동

시에 기독교적 삶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사회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다른 사상가들의 주장처럼 가정을 사회의 모든 관계에 반영되는 기초로 보고 부모와 자녀간의 바른 교육 관계 형성을 주장하였으며 부모를 자녀 교육에 대한 권리와 권위를 가진 존재로 서 위상을 바로 할 것을 언급하였다.(조성국, 2009 21-52) 그를 뒤 이어 등장하는 헤르만 바빙크(H. Bavinck)는 반혁명당의 의원으로서 의회의 교육위원장 을 역임(1919)역임하고 1920년 마침내 사립학교와 공립학교를 헌법적으로 동등한 입지에 올림과 함께 동일한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일조하였다.

이러한 학교 투쟁은 신칼빈주의자들 스스로 지칭하는 것처럼 “두 번째의 80년(1840- 1920)전쟁”4 (Roling, 1994, 76)이라고 부를 정도의 끈질긴 투쟁의 산물이었다. 이렇게 긴 학교 투쟁을 단계별로 정리하자면 1단계에서 기독교 학교의 권리 자체에 대한 주장 (1806-1848)으로 기독교 학교 설립의 자유에서부터 출발하여 2단계에서는 기독교 학교의 차별화 문제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졌고(1848-1857), 3단계에서는 그에서 좀 더 세분화하 여 재정적 지원과 법적 정당성의 확보를 위한 투쟁이 이루어졌다.(1857-1920) 이러한 80 년 동안의 School Struggling를 통해 그들이 얻은 것은 단지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동 등한 지위나 재정적 지원만이 아니다. 이 투쟁은 곧 교육을 주관하는 진짜 주체가 국가 나 학교가 아니라 아이의 가장 첫 번째 선생님인 부모이며 첫 번째 교실인 가정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것이며 그 권리를 보장 받기 위한 실천적 사회운동이었다는 것이 진 정한 의의라 할 수 있다.5 이러한 확고한 교육의 뿌리에 대한 신념이 학교 투쟁을 성공 으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고 하겠다.

4. 20C 후반 : 교육에 스며든 다원주의, 다원화? 세속화!

학교 투쟁을 통해 얻어진 소기의 성과를 누리는 것도 잠시, 20세기 후반 기독교 학교의 흐름에 대격변을 가져오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전 유럽을 휩쓴 충격과 공포, 피로 얼룩진 대지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계관에 변화를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여기에 더 해 1953년의 역사적 대홍수 사건은 이런 변화에 마침표를 찍어버리게 만든다. 이는 사회 변화가 곧 세계관의 변화로 이어지는 좋은 예시가 됨에 동시에 이후 네덜란드 사회에 다 원적 자유주의가 확대되는 배경이 된다. 무신론적 자연주의와 사회저항운동의 가치를 수 용하고 마약, 동성애 등의 문제에도 관용을 보이는 흐름이 주를 이루자 당연히 그에 반 하는 가르침을 주장하는 기독교에 대한 이탈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구체적으 로 1958년 17-30세 교회 출석 인구가 80%에 달했던 반면 1991년에는 28%만이 남게 되었 고(Golverdingen, 1995, 16) 해외 인구 유입 중 무슬림 인구의 증가로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적극적 관용 역시 이루어지게 된다.

4 80년전쟁: 1572-1648년 스페인-네덜란드 간의 독립전쟁

5 신칼빈주의자에서 언급했던 헤르만 바빙크와 얀 바터링크 역시 아동의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 한 기관을 가정으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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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학교 역시 이러한 흐름을 빗겨 나갈 수는 없게 되는데 신칼빈주의자 아브라함 카 이퍼가 설립한 자유대학교와 신칼빈주의 학교를 대표했던 개혁교회학교연맹 (Gereformeerde Schoolverband)역시 1960년 이후 네덜란드 사회의 다원화 흐름에 동화 (Rosendaal, 2006, 280)되어 1971년 이후에는 진리에 대한 범주를 세계교회합동 운동(에 큐메니칼)의 범위로 확대하기로 선포하고 2005년 이후에는 이슬람에게 까지 개방하는 다 원주의적 상호인생관을 정체성으로 삼기에 이른다.(Miedema, 2006, 20)

기독교학교교육의 관심 역시 신칼빈주의에서 에큐메니칼의 범위로 확장되게 되는데 콘스 탐(P. A. Kohnstamm)은 아동을 단순히 어린아이가 아닌 동료인간으로 보았고 랑어펠트 (M. J. Langeveld)는 인간의 생의 확신에 대한 선택과 책임은 자기 결정에 의한다는 개 념을 대두시켜 종교의 해석적 여지를 확장시켰으며 자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종교성 개념과 상호인생관적 인성 형성의 다원적 접근을 시도하는 미드마(S. Miedema)의 연구는 현재 네덜란드의 기독교 교육의 위치가 어디에 향해있는 지 예측하게 해준다.(Praamsma, 2006)

기독교 학교 구성원 역시 과거에 비해 많은 변화를 보이는데 드 볼프(De wolff, 2000, 258, 326)의 연구에 의하면 기독교 학교의 교사 약 80%만이 개혁교회 신자이며 학생들의 경우 무교 63.4%, 이슬람 22.6%, 카톨릭 8.7%, 개신교 4.4%, 힌두교 0.8%로 구성된 학교 가 있을 정도로 네덜란드 내 기독교 학교는 다원화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칼빈주 의를 바탕으로 세워진 기독교 학교로 하여금 세속화 단계를 밟게 하기에 충분한 배경을 제공하게 되었다. 더 이상 칼빈주의의 가치만이 옳은 것이 아니기에 사용할 수 있는 많 은 사상들과 가치들을 가지고 와 사용한 후 해석적 여지를 두어 맞추면 되는 것이고 또 는 아예 관용과 자유라는 명목 하에 모든 가치를 비교 불가하게 만들 수도 있게 된 것이 다.

이런 국면에 놓인 네덜란드 기독교 학교 교육은 사실상 위기라 할 수 있으며 21C를 거치 며 그 정도는 심화되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렇기에 뒤에 살펴볼 오늘날 네덜란 드의 기독교 사립학교가 어떤 방법으로 이런 환경적 요인을 타개하고 있는지가 향후 네 덜란드의 기독교 교육의 존폐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이라 유추해볼 수 있다.

5. 네덜란드 교육의 역사가 한국 교육에 주는 의미

살펴보았 듯이 네덜란드 교육의 역사에 있어 기독교6는 빠질 수 없다. 네덜란드가 기독 교 교육에 대한 자유를 쟁취하기까지의 과정은 오늘날 한국 교육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 다. 첫 째로는 네덜란드 기독교 학교 운동이 인본주의적, 국가주의적 세계관 형성에 대 한 우려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교육의 주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서 출발한 이 우려 는 오늘날 한국 학교의 교육 이념이 어디서부터 형성되어 있는지를 비추어 볼 때 충분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특별히 이를 한국 내 기독교 학교 교육과 연결시키 면 그 문제는 더욱 깊어진다. 물론 한국의 역사의 기저에는 유교 사상이 깊이 뿌리 내려

66 정확히는 칼빈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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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고 이와 달리 처음부터 칼빈주의 사상이 주된 흐름이었던 네덜란드는 분명 다른 배 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학교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사립학교 설립을 한 주축에는 선교사들이 있었고 이는 학교의 정통성이 기독교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 나 이후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기독교 학교는 미미한 입지를 가지 게 되었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변혁을 꾀하며 사회적 연대를 이룬 실천적 행동 이 없었다는 점은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둘 째는 네덜란드 기독교 학교 운동의 역사가 적극적인 교육권 행사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시대 불문, 학자를 불문하고 가정 교육의 중요성은 강조되어 왔 다. 그렇기에 가정 내 교육에 있어 책임을 맡은 부모의 역할은 그 누구보다 중요해지는 데 이를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긴 부모들이 있었기에 기독교학교운동이 성공 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겠다. 이에 비해 안타깝게도 한국의 대다수 부모들은 애당초 본 인들의 교육권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 단지 자식이 학교에 잘 다니면서 학원이나 보내 서 성적만 잘 받아오면 잘 키우고 있는 것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니면 오히 려 너무 극성인 부모의 형태가 있는데 이는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왜곡된 허영이 투영되 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음으로 이 역시 올바른 교육권 행사의 형태라 보기 어렵다. 되려 교육을 취직을 위한 수단이나 사회적 영달을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하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다. 부모들이 자녀의 교육권에 대한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행사할 때에 네덜란드 와 같은 긍정적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두 번째 의미와 결부되어 네덜란드 기독교 학교의 자유와 권리는 기독교적 사회 운동과 정치적 참여를 통해 획득되었다는 점이다. 제2의 80년 전쟁이라고 일컬을 만큼 긴 학교 투쟁의 역사가 있었기에 기독교 학교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 다. 이에 비견 될만한 한국의 역사로는 민주화 운동이 있다. 선진들의 피로 일구어낸 값 진 성과이며 이 과정에서 교육 분야 역시 민주화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측 가능하다.

고로 이 부분만큼은 네덜란드와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처절한 역사였다고 말 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사회 전 분야에 걸친 탄압이 있었던 시기라 교육 분야만의 구체적 인 정치적 참여를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Ⅱ장을 정리하면서 서론에서 언급한 교육의 바탕 세 가지와 네덜란드 교육의 역사를 연 결시켜 해석 해보자면 첫 째, 인간이 교육 속 주제 몰입을 통해 변화한다는 믿음이 있었 기에 인본주의, 국가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그 영향력에 대해 반문을 표했 고, 둘 째, 삶의 경험을 앎으로 갈무리하는 인간 능력에 대한 존중이 있었기에 기독교적 사회운동과 정치적 참여를 실천하였으며, 셋 째, 교육현장의 참여자에게는 자율을 허용 하는 태도는 교육현장의 참여자가 비단 학교의 선생님이 아니라 부모에서 출발하다는 의 식 아래 국가주의적 세계관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고 분리 운동과 부흥 운동을 통해 적극적인 교육권을 행사했다. 이는 부모라는 교육현장의 참여자에게 자율을 허한 행동이 라 볼 수 있다. 학교 투쟁과는 별개이지만 이후 찾아오는 다원화 과정을 무작정 거부하 지 않고 관용의 이름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점 역시 자율을 인정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네덜란드 교육의 역사는 교육의 바탕이 되는 토양을 잘 다져놓은 좋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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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할 수 있겠다. 이어질 네덜란드 공교육과 특징에서는 위의 언급한 네덜란드 교육의 역사가 어떻게 현대의 공교육에 반영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Ⅲ. 네덜란드 공교육

1. 네덜란드 교육부와 목표 이념

본격적으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네덜 란드의 공교육 제도를 알아보기에 앞 서 네덜란드 교육의 국가적 총 책임을 맡고 있는 네덜란드 교육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정식명칭은 Ministry of Education, culture and science으로 교육문화과학부(이하 교 육부)라 할 수 있겠다. 교육과 문화, 과학을 한 부서에 넣고 통합 출범한 교육부는 2016년 현재 Jet Bussemaker 장관과 Sander Dekker 차관의 지휘아래 운영되고 있다.

간략하게 교육부의 목표를 살펴 보자면 ‘첫 째, 모든 이가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한 다’‘둘 째, 모든 이가 자립심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한다’‘셋 째, 모든 이 가 문화를 즐기고 경험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넷 째, 교육자와 예술가,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위 네 가지 이념은 네덜란드 교육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 이고 그들의 교육의 방점이 어디에 찍혀 있는 지 예상 가능하게 한다. 교육에 있어 제공자 와 수혜자 모두 각자의 자유를 보장하되 교육 그 자체는 인간을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믿음 하에 만들어진 이념 임을 느낄 수 있다. 대학 을 창조 경제의 중심으로 규정한 한국 교육부 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는 교육의 참 의 미를 교육 그 자체에서 찾기보다는 향후 경제 성장 수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혹은 실업 률을 어떻게 줄일지 등과 같은 외부 평가 요 소에 더 많은 관심이 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 은 아닌지 반성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물론 네덜란드 역시 순수 인문계 진학 비율보다 직 업 전문학교로 가는 학생들이 많지만 이는 경 제 성장에 역점을 둔 것이 아닌 교육을 받는 학생들 개개인의 역량에 초점을 두어 거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을 받는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네덜란

Ministry of Education, culture and science

한국 교육부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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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의 교육 이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에 더해 네덜란드 의 교육체계는 헌법 제 23조에 의해 교육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자신들의 교육 이념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김규환, 2008) 구체적으로 학교의 설립과 교수(teaching)활동, 학교운영 원칙을 결정함에 있어 자유를 허락함으로써 공립 뿐 아니라 사립학교에서도 양 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정 해놓았다.

이러한 교육부의 활동은 결코 이념 제정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재정 지원에까지 이어 진다. 교육하면 단순히 기회의 평등만 주어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애당 초 능력이 다르고 성장한 배경이 차이 나는 학생들에게 동등한 기회만 주는 것은 계층 구조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에 네덜란드의 초등학교에서는 부모의 교육수준에 따라 교육비를 차등 지급한다. 예를 들면 부모의 교육수준이 낮은 가정의 자 녀에게는 평균의 1.25배, 선원의 자녀는 1.4배, 부랑민의 자녀는 1.7배, 소수인종의 자 녀는 1.9배를 지급하는 등 단순한 기회균등이 아니라 실질 가치를 고려한 차등적 기회균 등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이병곤, 2003, 53-60)

이 뿐 아니라 뒤에서 다룰 직업 교육에 대해서도 네덜란드 교육부는 일반적 사고와는 상 이한 입장을 견지한다. 일반적으로 직업교육하면 공부를 못해서 가게 되는 것으로 치부 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교육부의 재정 지원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네덜란드의 경우는 다르다. 일례로 네덜란드 중등학교에서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 에게는 2,537길더(146만원) 지원하지만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764길더를 지 원할 뿐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실습 교육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명분보다 는 실리를 추구하고 그러면서도 교육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교육부의 노력이 빛나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 성장의 수치나 성과율이 아니 라 교육에 포함되는 사람들 그 자체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정책이었다고 사료 해볼 수 있다.

2. 네덜란드 교육 제도

다음으로는 살펴볼 것은 네덜란드 교육 제도이다. 네덜란드 공교육은 크게 초등 8년, 중등 4~6년, 이후 고등/성인교육으로 이루어진다. 학 년 별 교육 과정을 알아보면 초등교 육(Basisonderwijs)은 5~12세까지로 유치원 과정2년(Groep1,2)를 포함하 고 있다. 글자를 배우거나 숫자를 익히는 교육은 Groep3에서 이루어 지며 그 전의 과정에서는 이미지를 통해 공감하고 공동체 생활을 원활 히 하는 데에 치중하고 있다. 본격 적으로 초등학교 교육에 들어가게 되면 한 학년 4차례 성적표를 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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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성적표 배부 전 반드시 학부모 면담을 하게 된다. 이 면담 과정을 통해서 학부모들 은 자녀가 학교 수업에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고 어느 수준에 있는지 최소 1년에 4번 정 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학교에 학부모가 자주 찾아오는 학생은 불량 학생이 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자녀에 대한 교육권이 학부모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기나긴 교육의 역사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후 학년 말 평균이 6.0이하이거나 학업 태도가 불량일 경우 가차없이 유급하여 온전히 해당 학년 의 교과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중학교 입학 시험인 시토 (CITO, Citotets)를 치르고 이 결과에 따라 VWO, HAVO, VMBO로 진학하게 된다. (김규환, 2008)

네덜란드의 중등 교육은 대학준비교육(VWO, voorbereidend wetenschappelijk onderwijs), 일반중등교육(HAVO, hoger algemeen voortgezet onderwijs), 직업준비중등교육(VMBO, voorbereidend middelbaar beroepsonderwijs) 총 세 갈래로 나뉘어 진다. 먼저 VMBO는 4 년과정의 직업준비교육으로 2년간의 공통 교과목 이수(VO) 후 각각, 이론중심, 이론과 실무 결합, 기술직업과정, 단순직업과정의 4가지 세분화된 교육과정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일반 중등 교육인 HAVO는 5년과정으로 2개의 제2외국어를 필수로 이수해야 하며 향후 고등 전문 교육 과정인 HBO(Hoger beroepsonderwijs)에서 배울 경제학, 보건위생, 농학, 공학, 예술 등의 쓰일 학문의 기초를 배운다.

끝으로 대학준비교육 과정인 VWO는 총 6년과정으로 문과의 경우 문화와 정치(C&M), 경제 와 경영(E&M)을 이과는 자연과 건강(N&G), 자연과 기술(N&T)분야를 심도 있게 배우게 된 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학제가 계층이나 계급을 만들어 내지 못하도록 향후 고등교육 진학 시 다른 편제로 귀속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놓았다는 점이다. 한 번의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직업 준비 중등 교육(VMBO)을 받으면서도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고등전문교육(HBO)로 들어갈 수 있고 대학교육(WO)을 받고 싶다 면 대학준비교육(VWO)에서 별도의 교육을 더 받고 들어갈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열어 놓았다.

네덜란드의 고등교육이자 대학교육은 중등교육의 연장선으로서 구직 시장으로 진입하기 전 학생들의 마지막 교육 단계를 담당한다. 눈에 뛰는 점으로는 네덜란드의 대학교육 (WO, wetenschappelijk onderwijs)의 학과는 중고등학교의 프로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이는 네덜란드 연구 중심의 대학 16개 중 13개 대학이 세계 200대 대학에 포함 될 수 있는 전문성의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최윤정, 20009)

3. 네덜란드 교육의 특징 및 사례

앞서 네덜란드 교육 제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어서 네덜란드의 현실적 수학교육을 통해 교육의 실용적 측면을 강조하는 네덜란드의 정신을, 네덜란드의 성교육 과정을 통 해 교육에 있어 Entrepreneur정신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 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네덜란드의 현실적 수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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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세계를 불문하고 많은 학생에게 난해한 주제인 듯하다. 네덜란드 학생들 역시 이 를 피해가지는 못했는데 그래서 나온 것이 현실적 수학교육이다. 여기서 ‘현실적’이란 Van den Brink(1991, p, 80)의 표현대로 “아동들이 그 상황을 상상하고, 자신의 아이디 어, 경험, 환상을 구현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고로 네덜란드 수학교 육의 개혁에서 ‘현실적’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현실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말 이라기 보다는 아동들의 마음에 문제상황들을 구현화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 이다. 즉 수학을 인간의 활동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지가 핵심적인 주제가 되는 것이다.

(정영옥, 2000, 283-310)

이러한 현실적 수학교육을 위해 Treffers(1987)는 구체적인 원리 다섯 가지를 제안한다.

첫 째는 현상학적 탐구로 구체적인 문맥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문맥이란 “어떤 구체적 인 수업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열려 있는, 수학화되어야 할 현실의 영역”(Freudenthal, 1991, p.73)을 의미한다. 이 단계에서는 수학화를 염두에 두고 현실 상황을 탐구하게 된 다. 다음으로는 수직적 도구에 의한 연결로 여러가지 자료, 화살표와 같은 기호, 다이어 그램, 도식 등을 통해 추상적 지식인 수학을 구체화할 구체물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학생들 자신의 구성과 산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으로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고안 하거나 기호를 도입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교과서 저자로서의 아동’(Van den Brink, 1987)이 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상호 작용 수업으로 학생들간의 아이디어를 교 환하면서 다양한 기법들을 개발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와 갈등상황을 대면함으로서 자신의 문제해결 방법론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끝으로는 학습 영역의 연결이라는 이름의 원리로 수학을 단편적인 지식에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기능이 하나로 구조화된 전체로 조직하는 방법을 사고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구학을 좀 더 복 합적인 상황에서 응용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된다.(정영옥, 2000, 283-310)

위의 현실적 수학교육의 원리를 바탕으로 네덜란드의 초등 수학교육과정 개혁(Wiskobas 프로젝트)과 중등 수학교육과정 개혁(Hewet 프로젝트)이 일어나게 된다. Wiskobas 프로 젝트의 골자는 초등 수학교육 교과서를 현실적 수학교육의 이론적 틀에 맞추어 교육과정 을 개편하는 것이고 Hewet 프로젝트의 경우 불필요하게 어려운 수학 교육을 덜어내는 갷 편 작업이었다.

이러한 현실적 수학 교육은 네덜란드 초등 학교에서 실제로 프로젝트 형식으로 이루어지 고 있는데 일례로 ‘수중나라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도시계획 프로젝트는 총 6주간의 시간에 걸쳐 초등 1학년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거리를 비교하고 건물의 구조를 분석하면서 자연스레 수학을 체험하게 된다. 수학이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현실적이고 실용적이지 못한 교육이 계속되 어서는 안된다는 네덜란드 교육 철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음지의 주제를 양지로 이끌어 내다 : 네덜란드의 성교육

한국에서 성교육은 민감한 주제이다. 정답이 없다 보니 가정에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넘어가기 일쑤고 학교에서도 천편일률적인 생물 시간 같은 성교육이 이루어질 뿐이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다르다. 나이 만4세부터 토론식으로 이루어지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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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1970년대 이후부터 실시한 질 높은 성교육을 통해 10대 청소년에게 학교의 정규 성교육 커리큘럼을 실시하여 개방적 자세로 학생들이 정확한 성 지식을 갖게 하는 것이 다. 그 결과 첫 경험 연령이 1970년대에 12.4세에서 2000년대 18세까지로 높아졌고 성경 험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의 93%가 피임을 하며, 10대 임신·낙태 비율은 세계 최저인 국가가 되었다.7

이 뿐 아니라 네덜란드 성 교육 정책의 일환으로 RAP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RAP 정책이 란 청소년은 섹스할 권리(Right)를 가지며, 사람들은 이를 용인(Accept)해야 하고, 청소 년들이 참여(Participate)하고 발언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8 유교권 문 화의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정책이겠지만 네덜란드는 이를 덮어두고 쉬쉬할 문제로 보지 않고 섹스를 일상의 한 부분이며 청소년들 역시 그 일상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 존 재로 본 것이다. 핵심은 청소년들에게 섹스를 장려 하자는 데에 있지 않다. 다루기 어렵 고 꺼려하는 문제를 문제로 내버려 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나섰다는 점에서 이 야말로 교육 분야에서 Entrepreneur로서의 역량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3) 네덜란드 교육의 특징에서 본 기업가 정신

네덜란드의 수학교육과 성교육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들은 실용과 자유를 추구하면서 눈 앞에 보이는 문제보다 그 안에 본질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중 점을 두고 문제를 직면했다. 특별히 성교육의 경우 기독교 정신에서 시작한 네덜란드 교 육이라 믿기 어렵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악용될 수 있는 부분을 끄집어 내어 국가 적 차원에서 다루고 가정에서도 이들을 같이 풀어나가야 할 문제로 여기는 것은 무조건 안된다 식으로 함구해 버리는 기독교가 맞는지 반문을 던진다. 어떤 문제이든지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소통하고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네덜란드 교육이야말로 Entrepreneur정신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네덜란드 공교육과 그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어지는 내용은 네덜란드 사립학 교, 그 중에서도 기독교학교를 살펴보고 한국 기독교 대안학교와 비교함으로서 한국 교 육에 줄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7 성교육 강사 이석원(http://blog.naver.com/sexpert88/220678173435)

8 RAP 정책(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4043&section=sc5&sect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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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교육의 역사와 기독교 정신, 공교육 제도들을 살펴보았다. 네덜란드의 기독교 사립 학교들은 어떤 교육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있는지, 어떠한 특징이 있는지 살펴 볼 것이다. 각 학교의 특징들을 살펴보기 전에 대부분의 학교 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대부분 말씀을 중심으로 QT 를 진행하며 인성교육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학생이든, 믿지 않는 학생이든 간에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말씀이 스며들 수 있게 하였다. 기독교 사립학교들이 세워진 배경에는 부모님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아이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교육을 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연합 단체나 학교를 만든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여하였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방면에서 적극적인 참여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공교육이나 학교 시스템에 관여하기 보다는 사교육 시장에 초점을 맞추어 아이들을 교육시키지만, 네덜란드 부모님은 교육의 시작되는 가정에서부터 학교 교육까지 관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이것이 교육의 핵심에 관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네덜란드 부모님의 주체적인 역할을 보면서 어떤 것이 진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부모님의 역할 못지않게 선생님의 역할 또한 학교에서 강조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관찰 한 것을 바탕으로 아이의 미래를 결정할 때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에게 바른 기독교적 세계관과 통찰력, 학문의 탁월성이 요구된다. 학부모님들과 이야기를 통해서 종합적으로 아이들의 재능과 특성, 가치관이 무엇인지 파악 할 수 있게 한다. 네덜란드 교육에서는 아이들을 다방면적으로 관리하며 공부를 할 아이들은 공부를 시키고,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고 그것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기술을 고등학생때부터 배우게 한다.

무조건 공부만 잘 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자신이 잘 하는 것을 허용하게 함으로써 아이들이 자아정체성을 빨리 찾아 결국은 나라 발전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네덜란드 학교들의 기본적인 특징은 학부모와 선생님, 학생이 함께 교육을 만들어간다. 이제 각 사립학교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Ⅳ. 네덜란드 기독교 학교 vs 한국 기독교 학교와 그 부속 체계 1. 네덜란드 기독교 학교

1) Gereformeerde Scholengemeenschap Randstad School (GSR primary school)

http://www.gsr.nl/rot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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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초등학교는 가정, 교회뿐만이 아니라 교육에서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가르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의 어떤 학위를 받는 것 보다 사회에서 어떠한 인격을 가진 존재가 되는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서 모든 교사가 함께 책임감 의식을 가지고 학교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학생들을 위해서 고민한다. 학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교육의

질을 유지하고 위해서 노력한다. 정말 학생이 어떻게 자라나는 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은 전반적인 분위기부터 다르다고 생각한다. 학교 전체의 방향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에도 명확한 목표의식은 아이들이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학생들은 환경적인 측면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어떤 환경에서 공부를 하는지, 누구에게 배우는 지에 따라서 가치관이 재정립 되는 시기라 생각한다. GSR 같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운다면 정말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해서 알아가고,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알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 할 수 있다. 초등학생때부터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 할 수 있는 학교라 생각한다.

2) High school Christelijk Lyceum Delft(CLD) https://chrlyceumdelft.mwp.nl/

이 학교는 인문계 중고등학교이다. 대부분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한다. “Faith for in young people, Faith for the future”-젊은이들에 대한 믿음, 미래에 대한 신념을 기반으로 학교가 설립되었다.

학업과 함께 실제적인 공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외부와 연계하여 학생들이 회사에서는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배운 공부를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네덜란드의 실용적인 측면을 잘 보여주는 학교이다. 실제 현장 프로젝트와 연계하여 학생들은 실무에서 어떤 능력과 자질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책상에 앉아서 탁상공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부딪히며 진짜 필요한 능력을 키우게 된다. 이것이 진짜 공부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또한 학교에서도 학생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즉 신뢰를 바탕으로 학생과 선생님과의 공부가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교권이 무너지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선생님은 학생을 믿지 못하고, 학생은 선생님을 존경하지 못하게 되었다 델프트 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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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 우리나라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 지기 위해서는 학교와 학생, 선생님에 대한 신뢰 회복이 절실히 필요하다.

3) ZwolleGreujdanus high school http://www.greijdanus.nl/

쯔볼레흐레이다누스 고등학교는 기독교 교육의 국제화와 네트워킹을 강조하며,

“Sparkling in his light”의 문구를 기반으로 교육을 한다. 국제화의 중요성을 가르칠 때에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함과 섬김, 책임의식이 함께 함양 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꼭 나이가 아니더라도 수준에 맞는 학습을 배울 수 있으며(Jena Plan), 예체능과 같은 다양한 특기적성 프로그램은 큰 장점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국제화 교육을 강조하는 만큼 네덜란드 외에서도 배울 수 있는 교환학생, 교환 교수프로그램도 체계가 잘 잡혀 있다.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말씀을 배우면서 그것에 걸맞는 실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국제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학교측에서 학생들의 영성과 실력을 위해서 많은 고민들을 했기에 이런 프로그램들을 체계적으로 준비했다고 생각한다. 공부만이 아니라 예체능적 능력도 강조하며 삶을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학교에서 도와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성장하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성적에만 맞추어 공부 잘하는 순서대로 줄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모두 잘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책임지고 할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을 많이 느낀다.

4) Jacobus Fruytier High School(JFSG) http://www.jfsg.nl/

이 학교는 교회의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3 년간 교회사 교육을 정규과정에서 배울 수 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의 모델을 지향하기 때문에 순교자의 삶, 성령과 기도를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이 학교도 국제화 교육을 강조하며 중국, 캐나다, 인도 등에서 교환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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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교회에서 교회사에 대해서 잘 가르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지, 종교 개혁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말씀을 읽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 개념 조차 없다면 쉽게 흔들리고 타협하기 쉽다. 하나님 안에서의 올바른 비전과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있어야 한다. JFSG 학교에서 이 세상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분명하게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좁은 길을 선택한 것이지만 세상을 따르는 것이다. 진리를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5) De Meerwaarde

http://www.demeerwaarde.nl/

이 학교는 직업전문 학교로, 교사의

자질은 긍정적인 마음과 친밀함과 긍휼함을 갖추어야 함을 강조한다. 장애가 있는 학생도 함께 공부를 배우고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학생들도 입학을 하지만 매일 아침 나눔 시간과 수업시간과 선생님을 통해 배우는 창조와 진화, 종교수업을 통해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인성교육을 강조하며 선생님들은 가정을 방문한다.

선생님들은 함께 학생들에게 더 좋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고민하고 교습법을 나누고 삶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학부모들도 학교가 추구하는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학생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따라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세상이 보기에는 미련한 것이고 어리석게 보일 지라도 결국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은연중에 우리는 진리에 반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 말씀을 중심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삶, 베풀고 나누는 삶이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삶이다.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혼란스러워 질수록 사람들은 누군가 잘못 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를 기대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리를 추구하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진짜를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을 할 것이다.

2. 네덜란드 교육 협회

1) Verus_베루스 기독교 교육 협회 http://www.verus.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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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루스 기독교 교육 협회는 학부모를 중심으로 학교에서도 기독교 교육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한 학교투쟁(school struggling)를 시작으로 150 년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근 가톨릭과도 연합하여 규모가 커졌다. 네덜란드의 다원주의와 불가지론 지지 쪽으로 분위기가 변화되고 있어서 이에 대응하여 기독교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약 4000 개의 학교가 협회에 속해 있으며, 협회는 사립학교의 권리와 기독교 교육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대내외적으로 노력한다. 기독교적 가치를 가르치기 위해, 신앙과 삶을 연결 하고, 학생-학부모-교사의 연결 고리를 만들며, 책임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뜻 맞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다.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정체성이 희미해지거나 뜻을 하나로 모으기 힘들 수 있다.

정치적이라는 것이 어떻게 본다면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는 것이고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활동 할 수도 있기 떄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만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사립학교 또한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학생들이 무상으로 교육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여 주고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교사들이 노력하고 바른 학생들을 배출하기위해 학교가 노력한다. 이기적인 이익이 아닌 학생을 살리기 위한 나라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 나라를 바로 세워 가기 위한 노력으로 지금까지 협회가 유지되어 온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며 올바른 가치를 사수 하기 위해서 타협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균형과 방향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협회의 학교끼리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교육 계발을 위해 연구하며, 협회를 이끌고 가는 리더들에 대해서도 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본질을 흐리지 않고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면 교육 협회를 브랜드화 하고 제대로 된 핵심 가치 교육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단체에서 체계적으로 연구 할 수 있는 과정들을 만들고 정부와 문화, 재정, 법률, 학부모 참여등을 지원하여 네트워킹을 잘 구축하는 것도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2) LVGS(Landelijk Berband van Gereformeerde Schoolverenig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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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Union of reformed schools_http://www.lvgs.nl/

이 교육 협회는 개혁주의 학교들의 모임이다. 다소 보수주의적으로 신념을 지키고 타협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교육의 자유를 추구함과 동시에 세계적 수준의 개혁 교육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와 함께 가정과 학교, 교회 간의 연결을 강조하며 120 여 개 초등하교, 4 개의 중등학교, 2 개의 직업 중등 학교, 1 개의 대학교가 속해 있다.

네덜란드 학부모님들은 정말 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가치관을 배울 수 있도록 아이들을 위해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에 따른 희생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일 높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교육 시스템은 판에 짜인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정체되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 해 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학부모님들은 마땅히 자식들을 위해서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가정에서부터 자연스럽게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정교육이 중요한 것은 충분히 이해를 한다. 하지만 가정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부모님 밑에서 자리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규과정인 학교에서 선생님을 통해서 충분히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이 중심이 되고 부모님의 역할과 교회의 역할은 그것을 충분히 지지하는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3) GPO-WN(Gereformeerd Primair Onderwijs West- Nederland) http://gpown.nl/

서쪽 네덜란드 지역의 25 개 기독교 초등학교 연합 단체이다. 아이들이 성장 할 수 있도록 돕지만 그 기반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 말씀을 바탕으로 연합하고 있다.

2014-2018 년 교육의 목표로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교육 문화의 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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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하고 확산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혁신을 추구하고 재정적으로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

3. 네덜란드 현 교육의 시사점

네덜란드 교육을 통해서 어떻게 교육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1. 교육의 자유를 위해서 투쟁을 통해서 권리를 획득한다.

2. 가정-학교-교회의 연합을 강조한다.

3.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비전을 품고,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4. 인성, 인품 교육이 기본이다

5. 세계를 바라보며 국제적 인재로 키우기 위해 국제화 교육 체계가 잘 잡혀 있다.

6.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교사의 중요성이 크다.

7. 학교는 좋은 대학교를 보내기 위해 있는 곳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성과 가치관을 잘 형성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위의 7 가지는 모든 학교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시사점이다. 부모님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만큼 관심이 많고 바른 교육을 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정교육에서부터 교육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가정과 학교, 교회의 연결 구조는 마치 세발 자전거나 의자의 구조 안정성처럼 학생들을 안전하고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은 단순히 앉아서 배우는 것 이상으로 직접 연계된 사업체에 가서 배우기도 하고, 가상 회사를 차려 직접 가상 거래를 하며 회사를 운영한다. 학생들은 현장에 나아가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이 해야 할 것을 찾아 나선다. 살아 움직이는 교육을 하고 있었다. 그 날개를 달아 주기 위해 국제화 교육의 체제도 잘 구축되어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네덜란드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는다고 한다. 세상을 품으며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의 인품과 인성 교육을 통해서 예의 바르고 사람다운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 뮤지컬, 학교 행사들을 통해서 학생들이 성경 말씀의 내용들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게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공동체 안에서 배려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선생님은 누구보다 아이들을 위한 마음을 가지고 옆에서 지켜본다. 삶을 통해서 교육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리고 학생의 한 명 한 명의 인생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에 부모님과 상담하며 아이들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학생에게 끼치는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학생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학생의 영혼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기도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다. 네덜란드 사립학교와 협회는 끝임없이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방향성과 가치관을 포기하지 않았다.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지킴으로써 아이들에게 엄청난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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