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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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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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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공주박물관대학

2014년 6월 13일(금) 15:00

~ 17:00

조선시대의 초상화

이 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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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초상화

이 수 미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관

초상화는 역사 속에 실존한 특정한 인물을 똑같은 모습으로 재현한 인물화이다. 따라서 제작방법에 있어 인물을 관찰하면서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우선적 으로 채택하였다. 그러나 고대 인물의 경우, 생존 당시의 초상화가 남아 있지 않은 만큼 인물의 특 징을 묘사한 단편적인 문헌기록이나 상상력에 의존하여 초상을 그릴 수밖에 없었 다. 또한 이미 고인이 된 인물을 그리는 경우에는 그 모습을 관찰하며 그리는 것 이 아니라 기록과 기억에 의존하여 추화追畵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초상 주인공의 상황에 따라 초상화의 제작 방법, 재현 정도와 사실성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으 나, 기본적으로 대상의 개별성과 인격성에 주목하여 인물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 고자 하는 목적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었던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화가들은 전형적인 인물의 모습을 유형화된 방식으로 그리는 일반적인 인물화와는 다르게 그리려고 하였고 초상화의 수요자 역시 특정한 자세나 화법, 형태 등을 요구하였 다. 초상화의 발달은 조상 숭배 사상과 깊은 관계가 있다. 죽은 조상의 육신을 정성 스럽게 후장厚葬하고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면 조상은 자손을 보살펴 주어, 후손 들이 대대로 장수와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효孝의 관념 하에 장 례와 제례에서 초상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어진과 공신상, 기로상 같은 국가 주도의 공적인 초상화는 충忠의 유교 이념을 객관화시키는 기능을 하 게 되었다. 이러한 기본 구도에서 사대부들이 사적으로 제작한 개인의 초상화는 자기 인식과 자기완성에 이르는 내성적 매체로 활용되었다. 특히 조선 중후기 이 래 성리학의 발달로 가묘와 서원이 보급되자 사대부들의 초상화가 활발하게 제작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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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상화에 대해서는 조선미 교수의 선구적인 연구 이후, 근래 국공립박물관 이나 기관, 문중과 개인 소장 초상화를 종합한 보고서가 발간되고 이들 초상화를 심도있게 고찰한 논저들이 출간되어 이에 대한 인식을 보다 다양화할 수 있는 환 경이 조성되었다1). 초상화 주인공의 성격에 따라 조선미 교수는 1) 왕의 초상인 어진御眞 2) 공신 상 3) 기로도상 4) 일반 사대부상 5) 여인의 초상화 6) 승상으로 분류하였다2). 이 러한 분류는 초상화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그렸는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 만큼 유효한 분류 기준이다. 본 강의에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분류를 염두에 두면서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초상화의 양상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기 준으로도 분류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주인공의 성격에 따른 구분

1) 어진御眞 어진御眞이란 왕의 초상화를 말하며 어용御容, 수용睟容, 진용眞容, 성용聖眞이라 고도 일컬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어진이 제작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통일신라시대에는 분명히 어진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도성 내에 경령전景靈殿을 두어 태조 및 역대 군왕의 어진을 5조祖씩 순환식으로 봉안 하고 도처에 각 왕 및 후비后妃의 원찰願刹을 두고 여기에 영전을 부설하여 진영 을 봉안케 하는 방식이 취해졌다. 조선시대에는 국초부터 태조 진전眞殿을 경기전 등 전국에 세우고, 역대 왕과 왕후의 수용은 한양의 선원전璿源殿에 봉안하는 등 어진 봉안의 체제를 갖추었다. 기록상으로는 태조의 초상화가 26축 이상이나 되며 다양한 복식과 자세로 그려졌 다고 하여 매우 많은 수량으로 역대 왕들의 초상이 제작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활발한 어진제작에도 불구하고 현재 온전하게 남아 있는 조선시대 어진 으로는 경기전의 태조어진과 영조어진 반신상 2점에 불과하다. 이밖에 영조 연잉 군 때의 초상 및 철종, 익종어진 등은 많은 부분이 손상되어 일부분만이 전한다. 2) 공신상功臣像 공신상은 나라에 공이 있는 인물들에게 공신호功臣號를 사여함과 동시에 입각도형 立閣圖形(각을 세우고 그 안에 초상화를 봉안)함으로써 해당 공신과 그 자손에겐 치하와 1) 중요 문헌으로는 맹인재 책임감수, 『人物畵』, 한국의 미 20, 중앙일보사, 1980; 趙善美, 『韓國의 肖像畵』, 悅話堂, 1983;『석지 채용신전』, 국립현대미술관, 2001; 『위대한 얼굴, 한․중․일 초상화대전』, 서울시립미술관, 2003; 문화 재청 편,『한국의 초상화 : 역사 속의 인물들과 조우하다』눌와, 2007. 국립고궁박물관,『화폭에 담긴 영혼-肖像』, 2007; 『흥선대원군과 운현궁 사람들』, 서울역사박물관, 2007;『초상, 영원을 그리다』, 경기도박물관, 2008, 『조 선시대 초상화』Ⅰ, Ⅱ, Ⅲ. 국립중앙박물관, 2007, 2008, 200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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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상을 하고, 다른 백성들에겐 귀함을 보여준다는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고려시대에 공신상 제작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조선왕조는 개국 초부터 각종 반정이나 내란 및 왜란, 호란을 거칠 때마다 공을 세운 사람을 공신으로 책록하고 충훈부忠勳府라는 관청을 두어 이를 총괄적으로 관장하도록 하고 그 안에 기공각 紀功閣을 두어 공신도상을 봉안하도록 하였다. 총 28종의 공신호가 책록되었으며, 공의 등급에 따라 상을 주고 공신상을 제작 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공신상은 조선시대 전반기 관복 초상화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양식의 변화와 이모본의 제작과 전승 등 초상화의 여러 양상을 전형적으 로 보여준다. 1728년 이후에는 공신 책록이 없었기 때문에 조선 후기에 제작된 관복 전신상 중 공신상으로 그려진 예는 드물다. 3) 기로도상耆老圖像 조선시대 초상화 가운데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공신도상과 함께 기념 초상화 의 성격이 강하다. 기는 60세, 로는 70세를 지칭하지만, 기로의 조선은 단순히 나 이든 노인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수壽, 귀貴, 덕德을 겸비한 이상적인 인물상이다. 고려시대의 기로모임은 친선도모의 성격이 강하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조 3 년(1394) 기로소라는 공적 기구가 설치되고, 임금은 60세가 넘으면 기사에 들어갔 으며 문신, 재신宰臣으로 종2품 실직에 있으면서 70세 이상인 자를 가려서 입사入 仕를 허락하였다. 현존하는 기로도상의 대부분은 조선 후기의 화첩 형태이며 일부 병풍이나 족자도 남아 있다. 4) 일반 사대부상 유교주의 관념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에는 사묘祠廟가 특히 발달하였다. 사묘란 선인의 신주나 영정을 봉안하고 일 년에 수차에 걸쳐 제향을 드리며 영혼을 위안 하는 곳인 사당묘우祠堂廟宇를 총칭한다. 이곳에서는 원칙적으로 신주를 받드는데 반하여 영정을 받들고 제향하는 사묘의 일종으로서 영당影堂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있다. 혈족관계가 아닌 위인이나 선현을 경모하는 일반 사우나 서원이 많이 세워 지면서 이를 위하여 초상화가 많이 제작되었다. 일반 사대부상들은 유복儒服 차림인 경우가 많지만 조선 후기 이후 정장관복본 을 착용한 초상화가 많이 봉안이 되었다. 이러한 일반 사대부 초상화는 대부분 첨 배나 향사용으로 제작되었지만 화가가 일종의 작가의식을 가지고 제작한 유형이 있는데 자화상이나 각종 전신화첩 같은 것이 이에 속한다. 5) 여인상 한국의 초상화 가운데 비중이 작은 것이 여인상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여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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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은 기록에 나타나지 않으며 고려시대에 들어오면 왕비의 초상 제작이 성행하 고 특히 노국공주상은 공민왕이 손수 그렸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조선시대에 오면 초기에는 왕비 초상이 어진과 함께 선원전에 봉안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 는 왕비의 초상제작 및 봉안에 대한 기록을 살필 수가 없다. 사대부가의 여인상 역시 조선 초기에는 부부상이 유행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 전해오는 부부상은 대개 이모본이다. 근대기 채용신에 의해서 몇 점의 여인상이 제작되었다. 6) 승상僧像 승상은 스님들의 초상화이다. 삼국시대의 승상 제작에 대한 예는 들 수 없으나 고려시대 기록에 삼국시대의 고승 초상를 배관했던 기록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에는 승상제작이 활발했음을 기록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선종 의 보급이 고승 초상 양식을 유행시켰으며 조선시대에 역시 승상 제작은 활발하 게 진행되었다. 현존 승상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의자에 앉은 전신상으로 발을 답대踏臺에 올려놓은 것과 의자 위에 결가부좌한 것으로 구분된 다. 둘째는 바닥에 돗자리를 깐 후 방석을 놓고 결가부좌한 자세이다. 이러한 승 상은 일반 초상화의 화법과 구별되면서 유형화, 과장이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인 다.

2. 제작 과정과 작품 형식, 양식에 따른 구분

1) 정본正本과 초본草本 먼저 제작단계 상의 측면에서 정본正本과 초본草本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 다. 초본은 초상화의 시작 단계에서 처음으로 인물을 묘사하는 밑그림을 말한다3). 이에 반하여 정본은 초본 제작의 단계에서 수정과 보완을 거친 후, 완성된 초상화 를 일컫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초상화라 할 때는 정본 초상화를 말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다량의 초본 초상화가 소장되어 있어 초상화의 제작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높은 수준을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정본은 견본에, 초본은 지본에 그려진 것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지 본에 그려졌음에도 완성도가 높은 초상화들이 있다. 2) 관복본冠服本과 야복본野服本 초상화는 착용한 복장의 성격에 따라 정장 관복을 입은 관복본과 평상복 차림 인 야복본으로 나눌 수 있다. 관복 초상화는 관리로서 나라에 봉직한 모습을 전하여 그 자손 및 백성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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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감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그 종류는 흉배胸背를 단 흑단 령黑團領을 입고 사모관대紗帽冠帶를 갖춘 경우가 가장 많으며, 흉배 없는 담홍포淡 紅袍 차림의 시복時服, 예복禮服인 금관조복金冠朝服, 군복인 융복戎服 등을 착용한 예가 있다. 관복 차림은 품계品階에 따라 흉배의 무늬와 대의 종류를 달리 하였다. 보통 문관은 조선 중기에 공작孔雀, 운안雲雁, 백한白鷳 무늬, 조선 후기에 운학雲鶴이나 백한白鷳 무늬를 주로 달았으며, 무관은 호랑이나 표범 무늬의 흉배를 주로 사용 하였다. 대의 경우 일품은 물소뿔로 만든 서대犀帶, 정이품은 삽금대鈒金帶, 학정금 대鶴頂金帶, 정삼품은 삽은대鈒銀帶 등으로 구별하였다. 야복 조상화는 연거복燕居服 초상화라고도 하는데, 인물은 주로 복건幅巾이나 동파 관東坡冠,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심의深衣나 도포道袍를 입고 있다. 야복이라는 말에는 원래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선비들의 복장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이러한 야 복 초상화는 성리학자들의 검박한 미감이나 단아한 모습을 담기에 적절하여 주고 성 리학을 신봉하는 산림학자山林學者들에게 애호되었다. 조선사회에 유교적 가치관이 정착하면서 이러한 차림이 더욱 유행하게 되었으 며, 조선 후기에는 관직에 몸담고 있는 관리들도 관복과 야복 초상을 함께 그리곤 하였다. 3) 초상 범위, 얼굴 모습, 자세 주인공의 초상 범위에 따라 인물의 전체 모습을 그린 전신상全身像과 상반신을 그린 반신상半身像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얼굴의 방향에 따라 정면正面, 좌안左顔, 우안右顔으로 나누고 자세에 따라 의자상椅子像, 교의상交椅像, 부좌상趺坐像, 궤좌상跪坐像, 입상立像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4) 장황粧䌙 형태 초상화가 장황되어 있는 형태에 따라 족자본, 화첩본, 편화본片畵本으로 크게 구분된다. 5) 화법 채용신(1850~1941)은 조선말기에서 일제강점기에 걸쳐 활약한 화가로서 전통초 상화의 기법적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서양화법西洋畵法과 근대 사진기술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화풍을 개척하였다. 초상화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한 채용신은 왕이나 고관, 우국지사들뿐만 아니라 신흥부자나 노부인 등 여러 신분의 인물들을 그려 내어 초상화법뿐만 아니라 그 대상에 있어서도 근대 초상화의 새로운 양상을 보 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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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초상화라 하면 특정 인물의 개별성을 부각시키는 화법으로 제작된 다. 따라서 불특정한 인물을 대상으로 유형화된 화법으로 그리는 풍속화나 고사인 물화의 예와 구별되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중에는 자세, 배치 등에서 초상화의 형식을 따랐지만 대상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양식상으로 민화풍으로 그린 예가 있다. 또한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을 그리기는 했으나 개별성이 약해진 가운데 유형화된 화법을 보이는 이상화된 초상화의 예가 있다. 6) 화가의 국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초상화 중에는 화가의 국적 문제가 중요한 예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초상이라 할 때는 한국 사람이 그린 특정 인물의 초상을 가리키 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중에는 한국인이 그린 중국인의 초상화, 중국인이나 일 본인이 그린 한국인의 초상화가 있어 특별한 분류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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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공주박물관대학】

인문학과 함께 떠나는 특별전시 산책

● 기 간: 2014.02.21. ~ 11.21. 격주 금요일(총15회)/15:00~17:00 ● 장 소: 국립공주박물관 세미나실 ● 강의 일정 및 내용 연차 일자 강의 주제(안) 강사 전시기간 1 02.21 특별전시 해설 및 큐레이터와의 대화 김진경(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찰나 속에 흐르는 삼천년 의 혼,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01.28. ~ 03.30.) 2 02.28 고인돌 조현종(국립광주박물관장) 3 03.14 한국의 전통마을 김봉건(한국전통문화대학교총장) 4 03.28 종묘와 궁궐 남호현(국립순천대학교 건축학부교수) 5 04.25 특별전시 해설 및 큐레이터와의 대화 김미경(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하늘이 내린 살기좋 은 고장, 天下大安 (04.22. ~ 06.29.) 6 05.09 청동기시대 마을 배진성(부산대학교 고고학과교수) 7 05.23 고려시대 석조미술 소재구(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 8 06.13 조선시대 초상화 이수미(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9 07.25 특별전시 해설 및 큐레이터와의 대화 김진경(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여인의 숨결이 담긴 색 실공예, 刺繡자수 (07.21. ~ 09.10.) 10 08.08 특별전시 전시연계 강좌 2 미 정 11 08.22 특별전시 연계 강좌 3 미 정 12 10.10 특별전시 해설 및 큐레이터와의 대화 최장열(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무령왕릉과 백제의 대외교류 (09.25. ~ 11.23.) 13 10.24 특별전시 연계 강좌2 미 정 14 11.07 특별전시 연계 강좌3 미 정 15 11.21 특별전시 연계 강좌4 미 정 * 상기 일정 및 강의 내용은 박물관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본 강의의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다음과 같이 진행하오니, 아래의 사항을 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강의는 정시에 시작되오니 강의 5분전 까지 강의실 입실을 완료해 주시기 바랍니다. 2. 강의 중에는 휴대폰을 꺼주시 바랍니다. 3. 추가로 교재가 필요하신 분은 홈페이지→학술․교육․행사→교육자료에서 교재파일을 다운받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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