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고등학교 오인석 1 -1. 전체줄거리(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참고) 나는 이틀간의 휴가를 간신히 얻어 음력 섣달 열여드레인 할아버지 제삿날에 때를 맞춰 8년만에 고향을 방문한다. 김포공항에서 제주까지 오십 분만에 훌쩍 날아왔다. 8년 만의 귀향을 오십 분에 끝내다니, 어리둥절하고 낭패스러웠 다. 내게 고향이란 무엇이었나, 나에게 깊은 우울증과 찌든 가난밖에 남겨준 것이 없는 곳이었다. 나의 향리 서촌 (西村)은, 삼십 년 전 군 소개작전에 따라 소각된 잿더미 모습 그대로 머리에 떠오른다. 서촌을 경유하는 버스를 탔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고향 사투리가 정겹다. 내 머릿속은 고향의 풍물과 사투리로 그들먹해졌다. 집에 도착하여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인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순이(順伊)삼 촌(이웃집 아주머니) 생각이 나 묻자 모두 입을 다문다. 삼촌은 일 년 가까이 서울 우리집에 올라와 밥을 해주며 고생하다가 불과 두 달 전에 내려왔는데, 며칠 전에 죽었 다고 한다. 큰아버지에 의하면 집을 나가 밭에서 약을 먹고 자살했다 한다. 정신이 잘못되어 죽었다는 큰아버지의 판단이 옳을 것이다. 순이삼촌이 우리집에 와있던 지난 일 년은 모두가 불편스럽고 원만치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우리집에 온 지 열흘 이 못되어 삼촌보고 '밥 많이 먹는 식모'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격분했고 아내는 억울해 한다. 어느 날 삼촌과 아내 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쌀이 떨어져서 사와야 한다는 말에 "쌀이 벌써 떨어졌어요?" 하고 예사로 한 말을 "쌀이 벌써 다 떨어질 리가 있나요?" 하는 반문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우리 내외는 오해를 풀어 안심시켜 드리려고 애를 썼으나, 아무 소용없음이 그 뒤부터 노출된 삼촌의 야릇한 결벽증으로 판명되었다. 사위가 찾아와서야 오해가 풀렸 다. 순이삼촌은 신경쇠약 환자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환청증세까지 있어 가끔 한 적이 없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는 것이다. 1949년에 있었던 마을 소각 때 입은 정신적 상처 때문이라 한다. 자정이 넘자 이 집 저 집에서 곡성이 터져 나왔다. 음력 섣달 열 여드렛날 5백위가 넘는 귀신들이 강신하는 한밤 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우리는 소각 당시의 그 비참한 이야기도 싫었다. 하도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힌 이야기. 큰 당숙어른의 목소리가 들 려왔다. 순이삼촌은 죽어도 벌써 죽을 사람이라는 것이다. 밭을 에워싸고 벼락같이 총질하는 속에서 시체 더미에 깔 려 살아났으며, 그 때 이미 정신이 어긋났으리라는 것이다. 고향 사람들은 그 때의 일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제삿 날 모여 이렇게 이야기를 하며 명심해 두는 것이다. 제주 4·3 민중항쟁 당시의 양민 학살 과정이 드러난다. 당시 내 나이 일곱 살이었다. 연설 들으러 나오라는 군인들 의 말에 모두 초등 학교 운동장으로 모였다. 군인 가족, 경찰 가족, 공무원 가족 등을 가려내자 군중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지체없이 총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제주 읍으로 소개시킨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군인들의 눈치를 살폈 다. 사람들이 교문을 향해 늘어서기 시작했을 때, 별안간 "군인들이 우리를 죽이레 데려감져" 하는 말이 전류처럼 군중 속을 꿰뚫었다. 일주도로에 내몰린 사람들은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군인들은 총구로 찌르고 개머리판을 사정없이 휘둘렀 다. 군인들이 이렇게 사람들을 끌고 우리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나면 얼마 없어 일제사격 총소리가 콩 볶듯이 일어 나곤 했다. 우익인사 가족들도 넋놓고 엉엉 울고 있었다. "그때 혼자 살아난 순이삼촌 허는 말을 들으란, 군인들이 일주도로변 옴팡진 밭에다가 사름들을 밀어붙였는디 사름마다 밭이 안 들어가젠 밭담 우엔 엎디어젼 이마빡을 쪼사 피를 찰찰 흘리멍 살려달렌 하던 모양입디다" 길수형이 말했다. 오백 내지 육백 여명이 사살된 이 사건은 옥석을 가 리지 않은 무차별 사격이었음을 의미했다. 고모부의 말에 의하면 그때의 소개 작전은 중대장이 작전명령을 잘못 해석하였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길수형은 책임 회피라며 그 주장에 반대했다. 당시 남정네들은 공비에게도 쫓기고 군경에게도 쫓겨 할 수 없이 피해 도망 다니는 도피자일 따름이었다. 군경 측
순이 삼촌
/ 현기영 현대산문 > 1970년대 출전 : 《창작과 비평》(1978)정명고등학교 오인석 2 -에서 도피자를 공비와 동일시한 이유는 5·10선거를 보이코트한 사건이 화근이 된 것이었다. 길수형은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인, 경찰, 서청원들의 만행이 하나하나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또한 살아남은 자들의 생활도 비참함 그 자체였 다. 그들은 성을 쌓아 전략촌 생활을 계속하면서 공비의 습격에 대비했지만, 한번도 공비의 습격은 없었다. 부락민 들은 무용지물된 성을 다시 허물고 제각기 제 집터로 돌아갔다. 성을 허문 돌을 날라 다시 울담과 벽을 쌓고 새로 집을 지었다. 순이삼촌은 사건 날 오누이를 한꺼번에 잃어 뱃속에 있는 아기가 유일한 씨앗이었다. 순이삼촌의 그 옴팡 밭의 고 구마 농사는 풍년이었다. 더운 여름날 당신은 고구마 밭의 김을 매었다. 돌담 그늘에는 구덕에 아기가 자고 있었다. 호미 끝에는 때때로 흰 잔뼈가 튕겨 나오고 녹슨 납탄환이 부딪혔다. 조용한 대낮일수록 콩 볶는 듯한 총소리의 환 청은 자주 일어났다. 순이삼촌은 흰 뼈와 총알이 출토되는 그 옴팡밭에 발이 묶여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서울 우리집에 온 것도 그 옴팡밭을 팽개쳐 보려는 마지막 안간힘이 아니었을까? 나는 순이삼촌의 죽음은 한 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죽음이라 생각한다. 다만 총알이 30년의 우여 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다. 고샅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기척이 들려왔 다. 아마 두어 집째 제사를 끝내고 마지막 집으로 옮아가는 사람들이리라. 2. 핵심 정리 • 갈래 : 중편 소설 • 성격 : 사회 고발적, 사실적 • 배경 : 제주도, 1948년 음력 12월, 현재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주제 : 제주도 4·3 사건의 참상과 후유증에 대한 고발 • 특징 : ① 사투리를 사용하여 사실성을 확보함. ② 4.3 사건을 사실적으로 다루면서, 잘못된 역사에 대한 고발정신이 반영됨. ③ 내용상 액자소설로, 내부 액자와 외부 액자의 교차로 구성됨. 3. 작품 해설 1 ‘순이 삼촌’은 1948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사건을 형상화한 최초의 작품으로, 그해 음력 12월 19일 북제주군 조 천면 북촌리에서 벌어진 양민 학살 사건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순이 삼촌의 삶을 통해 과거의 그 사건이 현재까지 살아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즉,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이 죽음보다 못한 삶이었을 뿐이며 이들이 존 재하는 한 그 사건을 망각하거나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모든 행위들은 가장이고 위선일 따름임을 고발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제주 4.3사건을 민중적 시각에서 조명함으로써 역사적 사실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 보이고 자 하는 작가 정신을 보여 준다. - 천재교육, 해법문학 참고 4. 작품 해설 2 순이 삼촌은 ‘나’의 서울 집에 와 부엌일을 하다가 두 달 전 고향인 제주로 돌아간 친척 아주머니이다. ‘나’는 할아 버지의 제사 때문에 8년 만에 제주를 방문하였다가 순이 삼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계기로 30여 년 전의 일을 떠올린다. 30여 년 전 공비들을 토벌하기 위해 군경 측에서 무리하게 작전을 벌인 결과로 마을 사람 오 륙백 명이 참살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순이 삼촌 역시 참살의 현장에 있었으나 혼자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남편 으로 인해 경찰로부터 고문을 당했던 순이 삼촌은 경찰에 대한 기피증이 생기고 환청 증세까지 보이게 된다. 그때 로부터 30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날의 사건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 ‘나’는 순이 삼촌이 한 달 전에 죽은 것이 아 니라 이미 30년 전에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명고등학교 오인석 3 - 수능특강 해설 참고 5. 심화 내용 연구 1. 등장인물 소개 - 나 : 아픈 기억으로 인해 고향을 오면하고 살다가 8년 만에 귀향하는 인물. 제주의 비극에 대한 진상 규명의 필 요성을 느끼게 된다. 30대 후반. - 순이삼촌 : 1949년 초 마을 소개 작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여자. 그때의 충격으로 정신 질환을 앓다 결국 이 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이 일구던 밭에서 자살한다. 56세. - 고모부 : 평안도 출신으로 서북 청년단에 소속되어 제주도 공비 토벌군으로 활동한 인물. 군경의 처사를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옹호하며 과거를 덮어 두자고 주장한다. 지금 도청 주사로 근무하며 넓은 밀감 밭을 소유하고 있 다. 50대 초반. - 길수형 : 어린시절, '나'와 함께 비극의 현장을 목격.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한다. - 큰당숙 : 고모부처럼, 과거를 덮어 두자는 입장이지만 고모부의 '어쩔 수 없었다'는 판단에는 반감을 보인다. 2. 이야기 구조와 시간적 배경(수능특강 사용설명서 참고) ○ 현재 : 서울 큰 회사의 부장인 ‘나’는 할아버지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8년 만에 고향인 제주를 찾음. ○ 현재 : 친척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두 달 전까지 1년 동안 ‘나’의 집에서 지내던 순이 삼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됨. ● 과거 : ‘나’의 집에 있을 적에 기묘한 결벽증으로 인해 아내와 마찰을 일으키곤 했던 순이 삼촌에게 신경 장애가 있음을 알게 되고, 그것이 과거 사건과 관련되어 있음을 깨달음. ○ 현재 : 순이 삼촌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던 제삿날의 친척 어른들이 30여년 전의 사건을 풀어 놓음. ● 과거 : 군경의 작전으로 수백 명이 죽고 순이 삼촌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음. 살육의 현장에서 두 아이를 잃고 남 편으로 인해 고문까지 당한 삼촌은 경찰에 대한 기피증이 생기고 환청 증세까지 보임. ○ 현재 : ‘나’는 순이 삼촌이 한 달 전에 죽은 것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에 죽은 것이라고 생각함. 3. ‘순이 삼촌’ - 작가의 말 ‘몽둥이와 군화발이 내 전신을 난타했다’ 1979년 11월 중순경 나의 첫 창작집 『순이 삼촌』이 출간되었는데, 그 후 얼마 안 지난 11월 24일(土)오후에 난 명동 YWCA 정치집회에 고향의 후배들과 함께 참석했다. 그 후배들은 대게 나보다 10살 아래쪽으로 학생운동에 참 여하다 옥살이를 했거나 또는 그런 성향을 가진 20대 후반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날의 집회에서 한 후배가 체포, 연행되었는데 그 후배가 체포됨으로써 나를 중심으로 한 친목회가 문제시되었다. 월요일 날 학교 수업 중에 중부경찰서에 연행되었는데 실내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수배자 명단에 후배들 이름이 네 명이나 끼어 있어서 친목회를 문제삼으려는 것이 분명하다고 느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지하층 보호실에 대기중 이다가 합동수사본부 요원에게 인계되어 검정색 승용차를 타고 남산을 넘어갔다. 그곳에서 군복으로 옷이 갈아 입혀 진 나는 2박 3일간 고된 육체적 고문을 당해야 했다. 친목회의 성격을 따지다가 그들은 본격적으로 『순이 삼촌』을 문제삼았다. 첫날은 몽둥이로 전신을 난타 당하고 이튿날은 그 멍들고 부은 몸뚱이 위 군복을 벗기고서 내복 위로 싸릿대가지를 후려치면서 내 몸 마디마디를 자근자근 후려갈겼다. 싸릿대로 손등을 맞기도 했는데 손톱이 터져 끈끈 한 피가 엉겨붙기도 했다. 셋째 날은 어느 방에 불려가 다수의 수사요원들로부터 구둣발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러 고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남부경찰서 유치장에 20일간 처넣어졌다. 그리고 이듬해 광주의 5월 이후 꽁꽁 얼어붙은 정국이 여름이 되어서도 풀릴 줄 몰라 냉해의 파도가 논밭을 덮고 있던 8월 21일 나는 또다시 학교 수업중에 연행되어갔다. 이번엔 모 경찰서 대공과였다. 연행되기 20일 전쯤부터 나는 내 자신이 뒷조사를 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요 행히 들려온 정보가 아니라 출판사에서나 고향에서 그 사실을 알려올 정도로 반공개적이었다. 나는 20일 가까이 도
정명고등학교 오인석 4 -마 위에 오른 고기가 되어 잡으러 오는 날이 이젠가 저젠가 기다리느라고 체중이 급격히 떨어져서 연행되어 갈 때 는 몸이 야위어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것은 고문이나 진배없는 고통이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경찰의 계략이었던 것 같다. 기소하면 법정시비가 될 뻔한 그 사건을 기소 앓고 처리하는 방법은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4박 5일 동안 수사관에게 시달리며 조서작성에 응하고 풀려났는데 거기에서는 다행이 육체적 고문은 당하지 않았다. 그 직후 『순이 삼촌』은 경찰의 요청으로 판금되었다. 4. 소설 「순이삼촌」의 의의와 평가(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 「순이삼촌」은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자신이 일구던 밭에서 생을 마감한 ‘순이 삼촌’의 자살 원인을 찾아 나아가 는 ‘의문-추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형식은 어둠 속에 묻혔던 제주도 4.3 항쟁의 실상에 대한 객관적 탐구의 첫 걸음인 이 작품의 의의를 집약한다. 이 형식은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인 금제에 막혀 왜곡되고 은폐되었던 우리 근현대사의 안쪽에 대한 객관적 탐구를, 나아가서는 금기를 뚫고 진실의 규명에 나아가려는 모든 지향을 추동하는 실천의 형식이다. 「순이삼촌」의 이 의문-추적의 형식은 지난 8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과거 탐구의 작업과 금기 의 해체 작업을 앞서 이끄는 사상사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순이삼촌」은 현기영 소설의 문체 변화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현기영 초기 소설의 문체는 현 기영 문학에 대한 일반적 통념과는 다르게 대단히 화려한데 이 같은 문체적 특성은 「순이삼촌」을 경계로 현저하게 약화되고 대상의 사실적 재현에 주력하는 절제된 건조체가 지배적인 문체로 자리 잡는다. 이 또한 숨겨지거나 왜곡 된 진실을 탐구해 드러내어야 한다는 작가정신의 소산일 것이다. 6. 작가 소개 현기영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4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60XX69700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