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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대응

문서에서 이 용 악 시 연 구 (페이지 50-72)

이용악의 시 정신은 시인의 현실과의 끝없는 대응과 긴장 관계 속에 서 구축되었다. 현실을 회피하거나 현실에 함몰되지 않고, 암담한 현실 속에서 지속적인 자기성찰을 통해 다졌던 대결의지52)는 이용악의 시인 됨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온몸으 로 헤쳐나가야 했던 한 시인이 현실과의 대응 속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시 정신을 구현해 나가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1- 1) 자아의 반영과 성찰

51) 나라 라는 말이 이용악의 시에서는 별다르게 쓰여 낯선 느낌을 준다.

그 북쪽은 女人이 팔려간 나라 - < 北쪽>

멀구광주리의 풍속을 사랑하는 북쪽나라 - < 아이야 돌다리위로 가자>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 가거라

-< 절라도 가시내>

이는 풍속과 언어와 현실적 상황이 다른 북쪽의 독자성을 강조한 말이다.

52) 윤석영, 앞의 글, 60쪽

현실의 반영과 대결, 현실에서의 퇴행을 고찰하기에 앞서 여기서는 시인이 자아를 밝혀나가려는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아래의 시는 分 水嶺 에 수록된 이용악의 초기시로 학비 조달을 위해 노동 현장을 전전 하며 자신을 들여다 보려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을 허물어

바위를 더 길을 내고 길을 아 집터를 닥는다 쓸어 지는 동무

피투성이 된 頭蓋骨을 건치에 싸서 눈물 업시 무더야한다

그리고 보오얀 黃昏의 歸路

손바닥을 거울인양 듸려다보고 버릇처럼 장알을 헨다

누우런 이 을 내민채

말러빠진 즘생처럼 방바닥에 늘어진다

어제와 갓흔 필림을 풀러

오늘도 어제와 갓흔 이길을 걸어가는 倦怠—

작돌을 쓸어너흔듯 흐리터분한 머리에 새벽은 한업시 스산하고

가슴엔 무륵 무륵 자라나는 불만

- < 오늘도 이길을> 부분

들여쓰기한 3연은 시적 자아가 노동 중에 사망한 동무의 시체를 묻는 장면이다. 그 아래 4・5연은 시적 자아가 방에 돌아와 피로한 채로 손 바닥의 굳은살을 세다 방바닥에 늘어지는 묘사 부분이고, 나머지 연들 은 시적 자아의 마음 속에 솟아나는 권태로움과 불만을 나타내며 현실 이 개선되지 않을 것임을 말하는 구절이다. 그러나 현재형으로 표현된, 동무의 죽음을 드러낸 3연은 나머지 연들과 같은 단위로 통용될 수 없 는 부분이다. 동무를 눈물 없이 묻어야 할만큼 상황이 어렵고 각박하더 라도 피투성이 된 頭蓋骨을 건치에 싸서 묻어야 한다는 말이 곧바로 倦怠 로 이어지는 것은 시의 통일성이 훼손되는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이는 위의 두 가지 상황이 감정의 단위나 사건의 단위에 있어서 심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는 다만 극도의 피로에 지친 시적 자 아가 나타나 있으며 압도적인 현실에 대해 자신의 과거와 현재, 내면의 정황을 들여다보려는 시적 자아의 모습이 엿보인다.

밤이라면 별모래 골고루 숨쉴 하눌 생각은 노새를 타고

갈꽃을 헤치며 오막사리로 돌아가는 날 두 셋 잠자리

대일랑 말랑 물머리를 간지리고 연못 잔잔한 가슴엔 내만 아는 근심이 소스라처 붐비다

깊이 물밑에 자리잡은 푸른 하눌 얼골은 어제보담 히고

어쩐지 어쩐지 못미더운 날

- < 연못> 전문

이 시에는 연못의 풍경과 시적 자아의 내면 정황이 대비되어 나타나 있다. 외견상 연못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거느리고 있다. 잠자리 두엇이 잔잔한 연못의 수면을 건드리며 날고, 연못에 비친 하늘은 밤이 면 별들이 무수히 빛날 만큼 맑고 깊다. 그에 반해서 시적 자아의 내면 은 근심으로 소스라쳐 붐비 고 있는데 그 근심은 2연의 수면에 비추어 본 자신의 흰 얼굴이 못 미더운 마음과 연관되어 있다. 자신에 대한 불 신이 < 오늘도 이길을> 에서 보이는 현실적 불만과 젊은 날의 정신적인 방황에서 연원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시를 통해 추측 가능한 부분이 다. 자신이 지향하는 것과의 괴리에서 오는 고뇌와는 반대로 자아에 대 한 굳은 의지가 드러나는 시는 훨씬 많다. 그 가운데 < 港口>에서 보이 는 지난 날의 회상에서는 비교적 단정한 성찰의 자세가 드러난다.

물위를 도롬도롬 헤야단이던 마음

흐터젓다도 다시 작대기처럼 해지던 마음 나는 날마다 바다의 을 엇다

나를 밋고저 햇섯다

- < 港口> 부분

청소년 시절 나진(羅津)의 항구에서 모진 노동을 하면서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던 지난 날의 체험을 떠올리면서 시적 자아는 현실의 고 난을 타개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항구와 대비되는 드넓은 바다를 꿈 꾸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던 시적 자아의 순수한 의지에 비해 < 길>에 나타난 자아 성찰은 소시민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 으며 시대 상황에 비추어볼 때 친일시의 혐의까지 띠고 있다.

안해가 우리의 첫애길 보듬고

먼 길 돌아 오면

내사 고흔 꿈 따라 횃불 밝힐까

이 조그마한 방에 푸르른 난초랑 옮겨놓고 나라에 지극히 복된 기별 있어 찬란한 밤마다 숫한 별 우러러 어찌야 즐거운 백성 아니리

꽃닢 헤칠싸록 깊어만지는 거울 호올로 차지하기엔 너무나 큰 거울을 언제나 똑바루 앞으로만 대하는것은 나의 웃음 속에

우리 애기의 길이 티어 있기에

- < 길> 2・3연

3연에서 시적 자아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듯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 다. 그 거울이 홀로 차지하기에 너무나 큰 것은 자신이 최소한으로 줄 어들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당시의 폭압적 현실과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현실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던 시인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다만 시적 자아의 눈길이 가족에게로만 향해 있는 것을 목 격할 수 있다. 2연의 이 조그마한 방 은 왜소해진 시적 자아가 새벽마 다 뉘우치며 깨는 (1연) 방으로 그 방에 푸르른 난초를 옮겨놓 는 행위 도 이 시 전체적인 의미와 합치시켜 볼 때 소시민적 행위라고 할 수 있 다. 문제는 그 다음 두 행이다. 나라에 지극히 복된 기별 이라든지 찬 란한 밤 은 당시 시대상황으로 볼 때 납득이 가지 않는 말들이다. 다음 행 숱한 별 우러러 어찌야 즐거운 백성이 아니리 는 결정적으로 친일시 의 혐의가 증폭되는 부분이다. 이 시가 1942년 3월 일제의 침략체제 선 전을 일삼았던 《國民文學》53)에 실렸다는 사실이 그것을 대변해 주기

53 ) 《國民文學》은 최재서가 편집 겸 발행인이었던 잡지로 그 편집 요강을

도 한다. 이 시는 임종국이 친일시로 분류한 < 불> , < 눈나리는 거리에 서>과 같이54 ) 관념적이고 구호가 나타나는 시는 아니지만 세 편 모두 표현 기교만 두드러지고 시에 생명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 다.

광복 후에 쓰여진 < 오월에의 노래> 는 시인에게 벅차게 다가오는 현 실감과 이념의 물결 속에서 소시민적 자아를 발견하게 하고 스스로의 결단을 촉구하는 시이다. 거울속 에 너 로 불려지는 시적 자아와 함께 있는 불 살러도 좋은 몇 권의 책 과 독한 약봉지 , 한 자루의 칼 이 정 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소시민성 과 같은 버려야 할 것과, 현실에의 동참을 뜻하는 메에데에의 노래 와 같은 되찾아야 할 것 앞에서 시인은 무언가를 결정하려고 성찰하며 서 있는 것이다.

잇발 자욱 하얗게 흠 간 빨부리와 담뱃재 소복한 왜접시와 인 젠 불 살러도 좋은 몇 권의 책이 놓여 있는 거울속에 너는 있어 라

성미 어진 나의 친구는 고오고리를 좋아 하는 소설가 몹시도・・・・

・・・・

시장하고 눈은 내리던 밤 서로 웃으며 고오고리의 나라를 이야 기하면서 소시민 소시민이라고 써 놓은 얼룩진 벽에 벗어버린 검은 모자와 귀걸이가 걸려 있는 거울 속에 너는 있어라

보면 종래의 불철저한 태도를 일척(一擲)하고 적극적으로 시간(時艱) 극복 에 정신(挺身)한다. 특히 당국이 수립한 문학정책에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지지 협력하고, (…) 내선일체의 실질적 내용이어야 할 내선문화의 종합과 신문화의 창조를 향해서 모든 지능을 총동원한다 고 하여 일제 식민정책을 앞장서서 선도하는 친일 잡지임을 알 수 있다. (임종국, 앞의 책, 61- 62쪽.) 54 ) 임종국, 위의 책, 476쪽.

그리웠던 그리웠던 구름 속 푸른 하늘은 우리 것이라 그리웠던 그리웠던 메에데에의 노래는 우리 것이라・・・・

어느 동무들이 희망과 초조와 떨리는 손으로 주워 모은 활자들 이냐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신문지 우에 독한 약봉지와 한 자루 칼이 놓여 있는 거울 속에 너는 있어라

- < 오월에의 노래> 전문

1- 2) 현실의 반영과 대결

이용악의 현실 의식은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는, 현실이 바뀔 것이라 는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시에서 표출될 때 현실의 반영으로, 또 는 시를 통한 현실과의 대결 양상으로 드러났다.

하눌

하눌을 쳐다보는 늙은이 腦裡에는 얼어죽은 친지 그 그리운 모습이

렷하게 피여 올은다고 길다란 담뱃대의 입 연기를 하소에 돌린다

돌개바람이 멀지안어 어린것들이

털 고운 톡기 질을 벳겨 귀걸개를 준비할

기름진 밧고랑을 가져못본

部落民 사이엔

지난해처럼 그전해처럼

소름 친 對話가 오도도오 다

- < 晩秋> 3・4・5연

이 시는 늦가을의 가난한 부락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데 3연에서는

이 시는 늦가을의 가난한 부락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데 3연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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