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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어의 활용

문서에서 이 용 악 시 연 구 (페이지 75-79)

김소월, 김영랑, 백석, 서정주는 모두 토속어를 훌륭히 살려 쓴 시를 남겼다. 그 시대에 동경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자 인문평론 지의 기 자였던 이용악의 경우도 토속어에 대한 애착과 의식이 강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러 시에서 자주 함경북도 토속어가 등장 하고 그것이 시에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속어의 사용으 로 이용악은 위의 네 시인들과 함께 우리말의 빛깔을 더욱 풍부하게 하 였으며 그 땅의 환경과 그 땅의 정서가 토속어와 만나 빚어지는 생명어 린 시의 울림을 창조하였다.68 )

이용악의 시에서 보이는 함경북도 토속어의 특징으로는 분철이 우세 하고,69 ) 중세국어에서 볼 수 있는 곡용 체언이 있다는 점,70) 표준어의

68) 유종호는 시와 토착어 지향 에서 많은 명시들이 모국어의 가장 기본적 인 단어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도 기본단어가 심층에의 호소력이 큰 것과 관련될 것이다. 기초적인 단어일수록 어려서 습득한 단어이고 따라서 그런 단어는 개개인의 의식 속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낱말이다. 그 기원은 이제는 심층 속으로 잠겨 들어간 아득한 어린날이다. 따라서 이런 낱말들로 구성된 시는 잃어버린 낙원의 심층부에 깊이 호소하는 힘을 가지 고 있고 따라서 향수자는 민감하게 정서적인 전염을 경험하게 된다. 고 하 였다. ( 동시대의 시와 진실 : 유종호 전집 2 , 민음사, 1995, 36쪽.) 지역적 인 토속어는 정서적 측면에서 더 강한 전염성을 갖는다. 또한 표준어가 갖 고 있지 못한 표현을 통해 모국어의 풍부한 언어적 자질을 드러내기도 한 다.

69) 재를 넘어 무곡을 단이던 당나귀 (< 낡은 집> )의 단이던 과 같은 분철이 이용악의 시에 많이 보인다.

70) 백년 기대리는 구렝이 숨었다는 버드 엔 (<버드나무> )의 에서 곡

사동선어말어미 - 이, - 리, - 우, - 히 외에 - 구 가 더 있다는 점,71) 파생 접사 - + 우 가 어간에 접미되는 현상이 보이는 점72) 등을 들 수 있으 며 그밖에도 함경북도에서만 쓰이는 어사들이 자주 보인다.

아래의 토속어 어휘는 국내외의 함북 방언 화자로부터 직접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곽충구의 해석73)을 따르기로 한다.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속을 달리는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 < 절라도 가시내> 부분

옹골찬 믿음의 불수레 굴러 조마스런 마암을 막아보렴 - < 등불이 보고싶다> 부분

불수레 와 같이 쓰인 불술기 는 함경북도에서 넓게 쓰였던 토속어로 불[火] 이 수레 의 함북 방언인 술기[車] 와 결합된 복합어이다. 기차가 불의 힘을 이용하여 달린다는 사실에 착안한 이 말은 개화기에 일본과 중국에서 각각 차용된 말인 汽車 와 火輪車 와 비교할 때 순수 고유어 만으로 만들어진 문명어로서 함경도 지방이 중국에 가까운 탓으로 중국 말인 火輪車 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며 시에 신선하면서고 토속적인 체취를 느끼게 해준다.

안악도 우두머리도 돌볼새 없이 갔단다 용체언을 볼 수 있다.

71) 가시내야 / 나는 발을 얼구며 /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 절라도 가시내> )에서 얼구- 는 얼리- 의 방언형이다.

72) 露嶺을 단이면서 지 / 애써 자래운 아들과 에게 (< 풀버렛소리 가득차 잇섯다> )의 자래운 은 자라- 에 + 우 가 결합된 것이다.

73) 곽충구, 李庸岳 詩의 詩語에 나타난 方言과 文法意識 , 김완진 외 문학 과 언어의 만남 , 1996, .

도래샘도 띠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쫒겨 갔단다 - < 오랑캐꽃> 부분

다시 만나면 알아못볼 사람들 끼리

비웃이 타는데서 타래곱과 도루모기와

피 터진 닭의볏 찌르르 타는 아스라한 연기 속에서

- < 슬픈 사람들끼리> 부분

< 오랑캐꽃>의 도래샘 은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 을 뜻하는데 동사 돌다 에 명사파생접사 애 가 붙어 파생된 명사에 샘 이 결합된 말이다.

< 오랑캐꽃>은 시인의 북방정서를 드러낸 시로 변방의 민중들을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시인은 변방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시의 현장성을 더욱 강하게 드러나게 하였다. 이를 통해 시의 내용, 구조에 어울리는 소재와 언어를 채택하려는 이용악의 자연스런 표현 기법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토속어에는 지방 풍물을 드러낸 것도 많이 나타난다. < 슬픈 사람들끼리>에서 보면 생경한 타래곱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타래 는 실・새끼・노끈 따위를 사려서 뭉쳐 놓은 것 이고, 곱 은 동물, 특히 돼 지의 창자에 붙은 누런 기름 으로, 이것을 뭉쳐 놓은 타래곱 은 어둠을 밝히는 도구이다. 타래 도 도래 와 마찬가지로 동사 타다 에 명사파생접 사 애 가 붙어 된 명사이다. 또 도루모기 는 도루묵 을 뜻한다. 풍물 이 미지를 불러일으키는 토속어는 이 외에도 들창을 열면 물구지떡 내음 새 내달았다 (< 두메산곬1> )의 물구지떡 과 장군의 전설을 가진 조고 마한 늡 (< 도망하는밤> )의 장군의 전설 과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풍물적 소재들은 백석의 < 古夜>나 < 여우난골族>에서 등장하는

소재들과는 차이가 있다. 백석이 풍물적 소재를 민속적 세계의 풍요로 움과 긍정성을 형상화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사용하였다면 이용악은 단 지 그것을 고향을 환기시키는 소재로 썼으며 시의 내용과 어울리는 토 속적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사용하였다.

용언으로 쓰인 토속어로 시각을 옮기면 문법규칙은 훨씬 복잡해진다.

위의 < 슬픈 사람들끼리> 와 < 晩秋>에서 각각 보이는 다시 만나면 알 아못볼 과 기름진 밧고랑을 가져못본 의 뒤바뀐 어순은 이색적이다. 중 부지방에서라면 가져보지 못한 , 알아보지 못할 또는 못 가져 본 , 못 알아 볼 로 쓰이겠지만 본동사와 보조용언 사이에 이렇게 부정소 못 이 나 아니 가 개입되는 통사구조는 함경도 토속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 이다.

물위를 도롬도롬 헤야단이던 마음 - < 港口>

폭풍이 헤여드는 내 눈 압헤서 - < 病>

물풀 새이 새이 헤여가는 휘황한 꿈에도 - < 푸른 한나절>

밑줄 친 세 단어는 헤- [泳] 를 선행으로 하는 복합동사인데 헤- 는 본디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다 라는 뜻이 물위에서 팔다리를 움직 이다 로 굳어졌다고 생각되는 어사이다. 이 동사 어간을 어기로 해서 파 생된 명사가 헤엄 이고 여기서 다시 파생된 것이 헤엄치- 이다. 윗시에 쓰인 헤야단이던 은 헤엄쳐 다니던 으로, 헤여드는 은 무엇이 움직여 들어오는 으로, 헤여가는 은 팔다리를 움직이며 헤쳐 가는 의 뜻으로 풀 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용악에 시에 사용한 용언의 특징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해독에 크게 문제가 없으면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지방색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용악 시의 토속어는 북방정서를 형상화하는 데 일 조하고 있는데 이는 각각의 시에 어울리는 언어를 이루면서 낯설고 독

특한 리듬을 형성시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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