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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에 의한 리듬의 형성

문서에서 이 용 악 시 연 구 (페이지 81-99)

1- 1) 구조적 반복

너는 나를 밋고 나도 너를 미드나

嶺은 놉다 구름보다도 嶺은 놉다

바람은 병든 암사슴의 숨결인양 풀이 죽고 太陽이 보이느냐

이제 숩속은 치떨리는 神話를 불으려니 왼몸에 쏘다지는 찬

마음은 空虛와의 지경을 맴돈다

…중략…

위와 같이 도치된 문장으로 3・4・5연에서도 각각 노란 꽃을 받으세요 ,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 믿으세요 가 반복되었다. 황동규는 이 시에서의 반복이 <풀>에서와 같이 주술적 효과를 위해 사용되었다고 하였 는데, 꽃을 주세요 를 강조할 필요가 있는 명제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라 고 하였다. (황동규, 사랑의 뿌리 , 문학과지성사, 1976, 98쪽.) 그러나 진 정한 주술적 의미를 가지려면 반복되는 시행이 시 속에서 좀 더 명확한 의 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아무 의미도 품지 않고서는 주술이 불가능하기 때 문이다.

나는 너를 밋고 너도 나를 미드나

嶺은 놉다 구름보다도 嶺은 놉다

- < 嶺> 1・2・끝연

해당화 정답게 핀 바닷가

너의묻엄 작은 묻엄앞에 머리 숙이고 숙아

쉽사리 돌아서지 못하는 마음에 검은 구름이 모혀든다

네 애비 흘러간 뒤

소식 없던 나날이 무거웠다 너를 두고 네어미 도망한 밤 흐린 하늘은 죄로운 꿈을 먹음었고 숙아

너를 보듬고 새우던 새벽

매운 바람이 어설궂게 회오리쳤다

…중략…

해당화 고운 꽃을 꺾어 너의묻엄 작은 묻엄앞에 놓고 숙아

살포시 웃는 너의 얼골을 꽃속에서 찾어볼려는 마음에 검은 구름이 모혀든다

- < 검은 구름이모혀든다> 1・2・끝연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 손손에 물려줄

은 동곳도 산호 관자도 갖지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단이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시리에 늙은 둥굴소 모두 없어진지 오랜

외양깐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곳은 아모도 몰은다

…중략…

지금은 아무도 살지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린 살구

살구나무도 굴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 < 낡은 집> 1・2・끝연

이용악은 수미상관의 구조를 통해 리듬을 살려내는 기법을 빈번히 사 용하였다.78 ) < 嶺>에서는 너 와 나 의 믿음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현실 의 상황을 구름보다 높은 嶺 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1연과 끝연을 똑같

이 호응시킴으로써 채워지지 않은 애매한 내용과 미숙한 표현을 구조로

조는 시를 순환적으로 읽히게 하고 완결적인 균형을 주지만 위의 시 <

嶺>을 포함한 이용악의 미숙한 몇몇 시처럼 내용이 채워지지 못한 채 수미상관을 쓰였을 때 시는 단조롭거나 닫힌 구조가 되어 버리는 경향 이 있다.

수미상관 외에도 동일한 단어나 구절, 시행이 구조적으로 배치되어 시 전체에 리듬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것은 현대시의 자율적이 고 유기적인 리듬 형성 기법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서, 오히려 근대시 에 남아있는 규칙적인 리듬 형성 기법에 가깝다.

A . 냇물이 맑으면 맑은 물밑엔 조약돌도 디려다보이리라 아이야

나를 딸아 돌다리 위로 가자

B . 멀구광주리의 풍속을 사랑하는 북쪽나라 말다른 우리고향

달맞이노래를 들려주마

- < 아이야 돌다리위로 가자> 1・2연

고향을 소재로 한 이 시는 모두 8연으로 구성되었는데 짝을 이룬 A - B형 의 두 연이 네 번 반복되었다. A는 아이야 / —(하)자 라는 구 절이 반복되고 B는 들여쓰기가 반복되는 연이다. 서로 다른 A와 B의 어조는 호응 관계를 이루고 있다. 윗시에서와 같이 이용악은 다른 시에 서도 들여쓰기를 곧잘 활용하였는데 < 나를 만나거던>이나 < 고향아 꽃 은 피지못했다>는 들여쓰기를 한 시행 또는 연과, 그렇지 않은 시행 또 는 연이 어조를 통해 호응관계를 이루고 있고 그것이 구조적인 리듬을 형성시키기도 하였다.

어디서 고양이래두 울어준다면 밤

온갖 별이 눈감은 이 외롬에서 삼가 머리를들고

나는 마음을 불러 나의샘터로 돌아가지않겠나 나를 반듯이 눕힌 벌판을 허비다도

배와 두 다리에

징글스럽게 감긴 누덕이를 쥐어뜯다도 밤

뛰여 뛰여 높은 재를 넘은 어린 사슴처럼 오솝소리 맥을 버리고

가벼이 볼을 맍이는 야윈 속 손도 얼골도 끔쯕히 축했으리라만 놀라지 말자

곁에 잠든

수염이 길어 흉한 사내는

가을과 겨울 그리고 풀빛 기름진 봄을 이 굴에서 즘생처럼 살아왔단다 밤

들리지 않는 소리에

오히려 나의 귀는 벽과 천정이 두렵다 - < 밤> 전문

앞의 두 시보다 불규칙하지만 < 밤>에서, 인접한 시행의 통사적 의미 와 아무 상관없이 중간 중간에 끼어든 밤 은 이 시의 호흡을 조절하는

가장 큰 요소로 구조적 리듬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밤 의 어둡고 우울 한 의미는 울림소리 이 내는 여운과 어울려 이 시의 지배적인 색조 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총 5연으로 구성된 < 검은 구름이모혀든다>의 숙아 가 매 연 중간 시행에 삽입됨으로써, 총 9연으로 된 < 고향아 꽃은 피지못했다

> 다섯 연의 중간 시행에 고향아 가 삽입됨으로써 시에 구조적인 리듬 을 형성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 2) 단어 및 구절의 부분 반복

우리집도 안이고 일갓집도 안인 집

고향은 더욱 안인 곳에서

아버지의 寢床 업는 최후 最後의 밤은 풀버렛소리 가득차 잇섯다

- < 풀버렛소리 가득차잇섯다> 부분

국제철교를 넘나드는 武裝列車가

너의 흘음을 타고 하늘을 듯 고동이 놉흜 언덕에 자리 잡은 砲臺가 호령을 내려 너의 흘음에 선지피를 흘릴

너는 焦燥에 너는 恐怖에

너는 부질업는 전율박게 가져본 다른 動作이 업고 너의 은 을 이어 흘은다

- < 天痴의 江아> 부분

폭풍이어 일어서는 것 폭풍이어 폭풍이어 폭풍이어 불낄처럼 일어서는 것

・・ ・・ ・・ ・・

구보랑 회남이랑 홍구랑 영석이랑 우리 그대들과 함께 정들인 낡은 걸상이며 책상을 둘러메고 지나간 데모에 휘날리던 깃발까・・

지도 소중히 감아 들고 지금 저무는 서울 거리에 갈 곳 없이 나 서련다

- < 노한 눈들> 부분

소곰토리 지웃거리며 돌아 오는가

열두 고개 타박 타박 당나귀는 돌아 오는가 방울소리 방울소리 말방울소리 방울소리

- < 두메산곬(4 )>

< 풀버렛소리 가득차잇섯다>의 1연에서 세 행의 안이고 , 안인 집 , 안인 곳 의 유사 단어 반복은 초반부에 시를 읽도록 끌어들이는 리듬을 주면서 의미상 아니다 를 4행의 (寢床이) 없다 에 결부시켜 부정을 통 한 상실의 시공간인 밤80 )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 4행에서 는 아버지의 寢床 업는 최후 와 最後의 밤은 사이에 자연스럽게 휴지 (休止)를 두어 읽게 되는데, 최후 와 最後 가 부딪혀서 울리는 리듬은 아버지가 운명하는 밤을 강렬하고 절박한 시간으로 만들어, 담담한 호 흡으로 맺어지는 5행 풀버렛소리 가득차 잇엇다 와의 효과적인 대비를 가능하게 하였다.8 1)

80) 밤 은 시간의 개념이지만 寢床 업는 (…) 밤 의 寢床 은 그것이 놓이는 공간을 상정하고 다음 행 풀버렛소리 가득차 잇엇다 의 가득 찬다 는 말 또한 공간을 전제로 한 의미이기 때문에 밤 은 자연스럽게 시간과 공간으 로 통합된다.

이용악이 리듬을 의식한 흔적은 많은 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리 듬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론 시인의 정서적 특징 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소 거친 듯한 시 속에서 시인 본래의 열정적 기질을 느낄 수 있는데 그 때에는 반복에 의한 리듬이 쓰여졌 다. < 天痴의 江아>에서는 고난의 현실과 상관없이 냉정한 듯 차게 흘 으는 강에 대한 답답함과 원망이 너의 또는 너는 으로 시작하는 짧은 구문의 반복으로 강렬하게 표현되었다. 또한 시인의 체험에서 우러난, 여과 없이 분노에 가득 찬 리듬은 < 노한 눈들>에서 폭풍이어 일어서 는 것 폭풍이어 폭풍이어 폭풍이어 불낄처럼 일어서는 것 같이 거듭되 는 반복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였다. 그 격정의 리듬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구보랑 회남이랑 홍구랑 영석이랑 과 같이 구체적인 인물들을 거 침없이 열거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윗시에서 반복의 리듬이 다른 시에서도 두루 쓰이는 것과 같이 의미 강화에 일조하였다면 이용악의 시들 중에 또 다른 특색을 보여주는 연 작시 < 두메산곬(4)>의 리듬은 회감(回感)작용에 기여한 특이한 예이다.

이 시에서는 두메산골의 정경과 소재로 시인의 정서가 은연중에 드러나 고 있다. 1・2연에서는 돌아 오는가 라고 반복해서 묻는 어조로 시인이 당나귀를 보지 않은 채 방울소리 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 사와 동사를 생략하여 표현한 열두 고개 타박타박 당나귀 를 보면 당나 귀의 위치가 어디인지 석연치 않은데 그 때문에 이 방울소리 는 실제의 소리라기보다 시인의 쓸쓸한 내면에 울리는 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반 복되는 방울소리 방울소리 말방울소리 방울소리 에서의 세 번째 반복 말방울소리 는 단조로움을 깨면서 호흡의 길이를 조절해주는 기능을 하

81)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적 인상은 상당 부분 차갑고 담담한 어조

81)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적 인상은 상당 부분 차갑고 담담한 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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