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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

문서에서 이 용 악 시 연 구 (페이지 15-26)

이용악의 시사적 의미 중에는 한국현대시의 영역을 우리 나라 최북단 인 함경북도에까지 넓혔다는 점도 있지만 해방 이후 지금까지 통틀어 남성적인 시를 남긴 소수의 시인들 중 하나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것은 전쟁을 계기로 문단의 거두를 비롯한 역량 있는 숱한 문인들이 월・납북되어 북에서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제한되었던 가운데, 남쪽 에서 반쪽의 문학사를 지탱하던 젊은 시인들이 순수시와 모더니즘 계열 로 기울어지면서 종래 리얼리즘 계열에서 보여주었던 남성적 성향의 시 가 자취를 감추었고 비교적 여성성이 강한 시가 한국시사의 주류를 이 루게 되었던 것과 관련이 깊다.

시에서의 이용악의 남성성은 주로 그가 즐겨 쓰는 어휘와 어조, 시의 구조 및 전체적인 내용을 통해 나타난다.

㈀ 삽살개 소리 / 눈포래에 얼어붙는 섯달 그믐 - <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 눈포래를 뚫고 왔다 - < 절라 도 가시내>

㈁ 폭풍이어 일어서는 것 폭풍이어 폭풍이어 폭풍이어 불낄처럼 일어서는 것 - < 노한 눈들>

㈂ 몇 천년 지난 뒤 깨어났음이뇨 / 나의 밑 다시 나의 밑 잠자 는 혼을 밟고 / 새로히 어깨를 일으키는것 / 나요 / 불 길이 요 - < 벌판을 가는것>

당신께로의 불길이 / 나를 싸고 타올라도 / 나의 길은 / 캄캄 한 채로 닫힌 쌍바라지에 이르러 / 언제나 그림자도 없이 끝나 고 - < 당신의 소년은>

㈃ 바람이 이리처럼 날뛰는 강건너 벌판엔 / 나의 젊은 넋이 / 무엇인가 기대리는듯 얼어붙은 듯 섰으니 - < 두만강 너 우리 의 강아>

이제 벌판을 가는것 / 바람도 비도 눈보라도 지나가버린 벌판 을 / 이렇게 많은 단 하나에의 길을 가는것 - < 벌판을 가는 것>

㈀부터 ㈃까지 인용한 시들은 차례로 눈포래 , 폭풍 , 불 , 벌판 이 드 러난 부분으로 이들 어휘들은 모두 남성적인 이미지를 구성하는 소재들 이다.

<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의 우라지오 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으로 그 곳에서 멀지 않은 항구이니 겨울에는 당연히 추울 것이다. 그 추위를 개 짖는 소리조차 눈포래 에 얼어붙는다고 하였다. 눈포래 는 눈보라의 방언으로 이용악의 시에 자주 나타나 함경북도 지방의 거친 기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소재이다. < 절라도 가시내>에서는 시적 자 아가 그 거친 눈포래를 뚫고 왔다 고 말함으로써 남성성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 노한 눈들>의 폭풍 은 시적 자아의 내면 속에 솟구쳐 오른 분노를 표현한 것으로 감정이 가장 격해 있을 때 등장시키곤 하는 소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 도 같은 의미선상에 있다. < 벌판을 가는것>에서는 시적 자아 자체를 불 길 이라고 말함으로써 강렬한 의미를 불러일으키 고 있는데 여기에서 보이는 내면의 불길 은 타인에게 전이 가능한 것으 로도 보인다(< 당신의 소년은> ).

벌판 은 위의 세 소재들과 조금 다른 차원에 있다. 몰아닥치는 눈포 래 는 시적 자아가 마땅히 헤쳐나가야 할 대상이고 폭풍 과 불 이 시적 자아의 내면에 고통과 분노를 형상화하는 대상들이라면 벌판 은 시인이 싸워나가야 할 공간이다. 그 벌판 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젊은 넋 이 무엇인가 기대리는듯 서 있는 장소(< 절라도 가시내> )이고, 바람과 비 와 눈보라가 지나간 후에도 마음 속에 불길 을 안고 시인이 무언가를 선택하기 위해 걸어야 할 공간(< 벌판을 가는것> )이다. 이는 또 한 사람 의 남성적인 시인인 이육사의 < 曠野> 에서 보이는, 역사가 전개되는 현 장으로서의 광야 처럼 거창하지는 않지만 시인이 뚫고 나가야 할 현실 의 고난이 놓여 있는 장소이다. 이와 같이 눈포래 , 폭풍 , 불 , 벌판 은 시적 자아의 내면에 역동성을 부여하거나 요구하는 소재들이다.

이용악의 남성성은 어조에서도 드러난다. 명령, 청유, 돈호의 반복으 로 독자의 반응을 강하게 타진하는 한편 단정적 어조를 통해 시인의 단 호한 의지와 힘을 싣기도 하였다.

나는 항상 나를 冒險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天性을 슬퍼도 하지안코 期約업는 旅路를

疑心하지 안는다

- < 雙頭馬車> 부분

애비도 종 할애비도 종 한뉘 허리 굽히고 드나들던 토막 흙벽 에 쫑구리고 기대앉은 저 아이는 발가숭이 발가숭이 아이의 살

결은 흙인듯 검붉다

…중략…

잠 자듯 어슴푸레히 저놈의 소가 항시 바라보는 것은 하늘이 높디 높다란 하늘이 아니라 번질러 놓은 수레바퀴가 아니라 흙 이다 검붉은 흙이다

- < 흙> 부분

폐인인양 씨드러져 턱을 고이고 안즌 나를

어둑한 廢家의 廻廊에서 만나거든 울지말라

웃지도 말라

너는 平凡한 表情을 힘써 직혀야겟고 내가 자살하지 안는 리유를

그 리유를 물 지 말어다오

- < 나를 만나거던> 부분

바람이 이리저리 날뛰는 강건너 벌판엔 나의 젊은 넋이

무엇인가 기대리는듯 얼어붙은듯 섰으니 욕된 운명은 밤 우에 밤을 마련할뿐

잠들지말라 우리의 강아 오늘밤도

너의 가슴을 밟는 뭇 슬픔이 목말으고 얼음길은 거츨다 길은 멀다

- <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부분

평서형의 단정적 어조는 시인의 신념에서 비롯되기도 하는데 초기시

< 雙頭馬車>는 현실의 체험이 묻어나지 않고 다소 맹목적인 의지로 읽 히는 데 반해 < 흙> 에는 어느 정도의 현실 인식이 엿보인다.29) 전근대 적 신분제도에 기인한 궁핍은 흙벽 기울어진 토막으로 나타나고, 종이 었던 애비와 할애비가 그 토막을 일평생 허리 굽혀 드나들었다는 말은 또 다르게 그들의 굴종이 일평생 계속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흙벽에 기 대앉은 발가숭이 아이의 흙인듯 검붉 은 살결은 3연에서 높다란 푸른 하늘 , 수레바퀴 와 대비되는 검붉은 흙 으로 전환되어 단정적으로 강조 된다. 높다란 푸른 하늘 이 밝은 미래,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라면 수레바퀴 는 끝없이 세습될 억압을 뜻한다고 할 수 있는데 특이한 것은 그 흙을 소가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가 바라보는 태도는 잠 자듯 어슴프레히 이다. 소의 태도를 문제 삼는다면 시의 의미가 훨씬 약 화되겠지만 그것을 소에 대한 평범한 묘사로 본다면 흙 은 시적 자아가 어떻게든 일구어야 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될 것이다. < 흙>에서는 거듭되는 부정( 높다란 하늘이 아니라 번질러 놓은 수레바퀴가 아니라 ) 뒤에 시인의 단정적인 말이 흙이다 검붉은 흙이다 로 반복되어 강조되 어 있다.

29 ) 주제와 그 표현이 다르지만 1941년 서정주의 花蛇集 에 실린 < 自畵像>

1연에는 1949년 李庸岳集 에 실린 < 흙> 의 1연과 흡사한 구도와 소재들이 나타난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 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 들.

< 自畵像> 이란 제목에도 불구하고 실제 서정주의 아버지는 종이 아니었 다. 허구적으로라도 아버지를 종으로 설정한 것은 시인이 당대 현실 상황 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시인의 폐쇄성과 감상성이 엿보이는 시 < 나를 만나거던>에서도 시의 열도는 명령형을 통해 드러난다. 모두 3연으로 된 시에서 각 연마다 규 칙적으로 들여쓰기를 통해 강조한 시행에는 내 손을 쥐지 말라 (1연), 먹었느냐고 물 지말라 (2연), 웃지말라 / 울지도 말라 (3연)고 하는 간 절한 명령형의 언어가 쓰였다. 이 명령형은 해라체에서, 항상 마지막 행 에는 그 리유를 물 지 말어다오 처럼 하오체로 바뀌어서 완곡하게 돌 아서는 느낌을 주는데 그것은 이 시에서 명령형이 규칙적으로 너무 자 주 반복되어 힘이 무뎌지는 것과 결부되어, 시를 다 읽고 난 후에는 그 의미가 반어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자신의 고통에 대해 진실로 묻 지 않길 원하는 사람이 물 지 말러다오 라고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명 령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열정으로 가득 찬 20대 초반의 시인에게는 단지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든 표출하는 것만이 중요했을 것이다.

<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에서의 남성적인 열정은 시인의 의식과 정 신에 의해서 적절하게 열처리되어 있다. 바람이 이리처럼 날뛰는 강건 너 벌판 에 무엇인가 기대리는듯 서 있는 시인의 젊은 넋 은 욕된 운 명 을 넘어서려는 정신의 또 다른 표상으로서 시인은 두만강을 부르며 잠들지 말라 고 외친다. 아직도 현실의 폭압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고 ( 너의 가슴을 밟는 뭇 슬픔이 목마르고 ) 시인이 그들과 함께 헤쳐 가 야할 길이 험난하고 길기( 얼음길은 거츨다 길은 멀다 ) 때문이다. 여기 서는 결국 두만강에 대한 부름과 명령이 시인 자신에게로 뒤바뀌어 있 음을 보게 되는데, 시인의 열정과 의지가 뼈아픈 현실 인식을 통해 정 신적 경지로 상승하는 광경의 일단을 위의 인용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 다.

이용악의 남성성을 장르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 레스 이래, 문학의 양식은 대개 전통적인 문예학적 관점에서 E. 슈타이

거가 정리한 것과 같이 서정적인 것, 서사적인 것, 극적인 것의 삼분법 으로 규정되어 왔는데,30 ) 그보다 더 근원적인 개념에 입각하여 인간존 재의 능력과 양태 속에서 장르를 분류할 때 그것은 남성적인 것과 여성

거가 정리한 것과 같이 서정적인 것, 서사적인 것, 극적인 것의 삼분법 으로 규정되어 왔는데,30 ) 그보다 더 근원적인 개념에 입각하여 인간존 재의 능력과 양태 속에서 장르를 분류할 때 그것은 남성적인 것과 여성

문서에서 이 용 악 시 연 구 (페이지 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