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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물의 비유성과 상징성

문서에서 이 용 악 시 연 구 (페이지 111-136)

이용악의 시에는 자연물이 주로 vehicle로 사용되었다. 그가 태어나 자란 함경북도 경성군 경성읍에서의 자연 체험이 큰 영향을 끼쳤겠지만 시인의 내면이나 시의 내용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내기에는 자연 물의 활용이 긴요하였을 것이다.98 )

季節鳥처럼 포로로오 날아 온 옛생각을 보듬고

- < 葡萄園> 부분

바람은 병든 암사슴의 숨결인양 풀이 죽고 - < 嶺> 부분

나는 죄인처럼 숙으리고 나는 코끼리처럼 말이 없다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너의 언덕을 달리는 찻간에

조고마한 자랑도 자유도 없이 앉았다

- <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부분

v ehicle을 이루는 자연물 가운데에는 동물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 였다. < 葡萄園> 에서는 포로로오 날아온 새가 훨씬 활기차게 읽혀져서

98) 동식물이 나타난 부분만 살피더라도 식물과 동물이 각각 47편의 작품에서 103회, 43편의 작품에서 86회씩 쓰이고 있다. 식물은 시적 자아의 심리를 표상하는 데에, 동물은 시적 배경을 형성하는 데에 나타나고 있다. (한상철, 앞의 글, 23- 25쪽.)

옛생각 과 어울리지 않을 지경이다. < 嶺> 에서는 사그러드는 바람을 병 든 암사슴의 숨결 에 비유하였는데 비교적 신선하게 읽힌다. 여기서 바 람 이 숨결 과 만나지기까지 독자는 시인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야 한다.

숨결 을 가라앉히기 위해 시인은 병든 과 암- 으로 사슴을 꾸며 놓았기 때문이다.

季節鳥 와 사슴, 그리고 얼어죽은 山톡기처럼 집웅 집웅은 말이 업 고 (< 國境>에서)의 山톡기 , 집웅이 독수리처럼 날아가고 (< 暴風>에서) 의 독수리 가 한국의 북방 산간에서 쉽게 체험할 수 있었던 동물들이라 면 <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에 보이는 코끼리 는 아주 이색적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나라를 빼앗긴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부끄럽고 죄스러운 심정을 조고마한 자랑도 자유도 없이 수그리고 앉은 죄인 에, 말이 없 는 모습을 코끼리 에 비유하였다. 여기서는 죄인 이 가진 의미가 훨씬 크기 때문에 다음 행에 코끼리 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코끼리 만 을 두고 볼 때 이 낯설고 짧막한 비유는 시인의 모습이 드러난 다른 시 와는 달리 자신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 시대적 고통을 그대로 둘러지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99 )

인용한 시들은 모두 직유에 의해 동물을 vehicle로 활용하면서 시행에 부분적인 표현을 주지만 어떤 시들은 동물이 전면에 부상하여 시를 이 끌고 있다.

산과 들이

99) 시인의 실제 모습은 사진(《한겨레신문》, 앞의 글.)과 유정의 회고를 통해 알 수 있는데 - 흰 이를 반쯤 드러내고, 소리없이 웃는 웃음, 누구한테나 보여주 는 히히 웃는 듯한 그 표정은 그가 늘 그러는 버릇이었다. (…) 머리칼은 푸석 푸석한 게 기름기가 없고, 안경알도 뿌연 게 돗수가 꽤 있는 것 같았다. (…) 몸매는 약간 여윈 편, 통 모양낼 줄 몰랐다. 생겨먹은 대로, 아무렇게나 움직거 리면 그만이 아니냐 하는 투였다 (유정, 앞의 글, 191- 192쪽.) - 이로 미루어 보 아 코끼리 의 비유를 통해 시적 의도 외에도 나름대로의 시인의 모습이 자연스 레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늙은 풍경에서 앙상한 季節을 시름할 나는 흙을 지고 들어왓다

차군 달빗츨 피해 둥글소의 압발을 피해

나는 깁히 속으로 들어왓다

멀어진 太陽은

아직 머첩첩한 疑惑의 길을 더듬고 지금 태풍이 미처 날 다

얼어 진 혼백들이 地溫을 불러 곡성이 놉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의 體溫에 실망한 적이 업다

온갓 어둠과의 접촉에서도

생명은 빗츨 더부러 思索이 너그럽고 가즌 학대를 체험한 나는

날카로운 무기를 장만하리라

풀풀의 물색으로 平和의 衣裝도 민다

어름 풀린

냇가에 버들이 휘늘어지고

어린 종다리 파아란 航空을 시험할 면 나는 봄볏 듯한 위에 나서리라 죽은 듯 눈감은 명상—

나의 冬眠은 위대한 躍動의 前提다

- < 冬眠하는 昆 의 노래> 전문

이 시는 시적 자아가 곤충이 되어 시를 이끌어 가고 있다. 자연물에

대한 활유법이나 의인법이 빈번히 사용되던 이용악의 시들 가운데에서 도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알레고리를 이루 고 있으며 선명하고 단순하게 대비되는 언어의 구조로 짜여 있다. 계절 의 순환을 바탕으로 昆 과 둥글소 , 앙상한 季節 과 어름 풀린 / 냇 가에 버들이 휘늘어지고 / 어린 종다리 파아란 航空을 시험할 , 속 과 봄볏 듯한 위 , 冬眠 과 躍動 등의 대비를 통해 현재 시인의 상황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바뀌리라는 희망과 의지를 형상화하였다.

< 雙頭馬車>에서와 같이 청년의 의지가 다분히 관념적으로 표명된 시이 지만 이렇게 다져진 의지는 심화된 의식과 고양된 정신으로 변모해 나 가게 된다.

이용악의 두 번째 시집 낡은 집 에 같이 실린 < 앵무새> , < 금붕어> ,

< 두더지> 는 모두 동물을 소재와 제목으로 택한 시들이지만 대상에 대 한 시인의 입장이나 상징성의 농도는 조금씩 다르다.

청포도 익은 알만 쪼아 먹고 잘았나냐 네 목청이 제법 이그러지다

거짓을 별처럼 사랑는 노란 주둥이 있기에 곱게 늙는 발톱이 한뉘 흙을 긁어보지못한다

네 헛된 꿈을 섬기어 무서운 낭에 떨어질텐데 그래도 너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만 있다

- < 앵무새> 전문

유리 항아리 동글한 품에 견디질못해 삼삼 맴돌아도

날마다 저녁마다 너의 푸른 소원은 저물어간다

숨결이 도롬도롬 방울저 공허르웁다

하얗게 미치고야말 바탕이 진정 슬푸다 바로 눈 앞에서 오랑캐꽃은 피여도 꽃수염 간지럽게 하늘거려도

반츨한 돌기둥이 안개에 감기듯 아물아물 살아질 때면

요사스런 웃음이 배암처럼 기어들것만 같애 싸늘한 마음에 너는 오시러운 피를 흘린다

- < 금붕어> 전문

숨맥히는 어둠에 벙어리 되어 떨어진 가난한 마음아

일곱 색 무지개가 서도 사라져도

태양을 우러러 웃음을 갖지 않을 네건만

때로 불타는 한 줄 빛으로서

내 맘은 아프고 이지러짐이 또한 크다

- < 두더지> 전문

나머지 두 대상들에 비해 시인의 앵무새 에 대한 입장은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다. 청포도 익은 알만 쪼아 먹고 잘았나냐 는 시행은 알룩조개 에 입맞추며 자랐나 (< 전라도 가시내> )를 연상시킬 만큼 유사한, 대상 의 과거 행적을 느닷없이 불러 세우는 시의 초입부이지만 현실에 상관 없이 호의호식하는 앵무새로 상징된 무리에 대한 꾸짖음으로 들린다.

그 앵무새의 노란 주둥이는 거짓말을 일삼아 남들을 속였음을, 한뉘 흙 을 긁어보지못 한 곱게 늙은 발톱 은 그들이 평생동안 가치 있는 어떤 노동도 행하지 않았음을 뜻하는데 여기서 흙 은 시인이 고귀하게 생각 하는 생활의 터전에 대한 환유(換喩)의 성격도 띠고 있다.100 ) 이렇게 헛 된 꿈을 섬기 는 무리들의 종말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것, 즉 무 서운 파멸인데도 그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눈만 뜨고 있다. 구체 적으로 그들이 어떤 무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의 음성을 흉내내는 화려한 외양의 앵무새를 v ehicle로 삼아 시인의 당시의 부정한 무리들을 비판하고 있다.

< 앵무새> 가 강하게 상징성을 띠고 있다면 < 금붕어>는 상징성이 후 퇴하여 순수한 자연 대상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시인의 모 습이 드러난 객관적 상관물이다. 금붕어가 사는 공간은 유리 항아리이 고 금붕어와 세계는 유리벽으로 단절되어 있다. 유리벽의 속성은 바로 눈 앞에서 꽃이 피는 것을 지켜볼 수 있지만 꽃에게로 다가갈 수 없게 한다는 데에 있다. 이런 이유로 푸른 소원 을 지닌 금붕어는 자신이 살 아가는 공간을 견디질못 해 하얗게 미치고야말 만큼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숨결이 도롬도롬 방울저 공허로웁다 , 하얗게 미치고야말 바탕이 진정 슬푸다 와 같이 시인은 자신의 정서를 금붕어를 통해 거의 직접적 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그 공허로움과 슬픔은 3연에서 극단적인 불안으

100) 농경민적 친화 대상인 흙 을 통해 이용악은 대체로 건강한 생활력을 표 상하였다. <港口>에서는 埠頭의 인부 들은 / 흙을 씹고 자라난 듯 머 틱틱햇고 처럼 흙 을 통해 가난하고 불행했던 성장기(成長期)를 환기시키 며 그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어두운 안색을 그려내게 했다면 <다시 항 구에와서> 의 차라리 누구의 아들도 아닌 나는 어찌하야 / 검붉은 흙이 자 꾸만 씹고 싶습니까 에서는 검붉은 흙 을 통해 열렬한 생활의 의욕을 드러 내었다. 1949년에 간행된 네 번째 시집 이용악집 에 실린 <흙> 은 이질적 인 2연이 1・3연과 융화되지 못해 전체적인 의미 형상화에 실패하였지만 이 시에 등장하는 종・소・수레바퀴 그리고 흙을 통해 이용악은 자신의 계 급의식을 미약하게 나타내었다.

로 변용된다. 고향 이탈 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이용악의 시를 볼 때 금

뛰여 뛰여 높은 재를 넘은 어린 사슴처럼 오솝소리 맥을 버리고

가벼이 볼을 맍이는 야윈 손 손도 얼굴도 끔쯕히 축했으리라만 놀라지 말자

곁에 잠든

수염이 길어 흉한 사내는

가을과 겨울 그리고 풀빛 기름진 봄을 이 굴에서 즘생처럼 살아왔단다 생각이 자꼬 자꼬만 몰라들어간다 밤

들리지 않는 소리에

오히려 나의 귀는 벽과 천장이 두렵다

오히려 나의 귀는 벽과 천장이 두렵다

문서에서 이 용 악 시 연 구 (페이지 11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