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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과 분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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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보이는 불안한 눈빛과 표정은 연구자가 제일 먼저 떠올린 세월호 사건에 대한 가 공 이전의 이미지였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는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 또한 이와 유사한 것이었다. 세월호가 갖는 배후의 모든 부조리나 문제투성이의 제도적 시 스템에 대한 날선 인식을 기반으로 한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인 확실성을 담보하며 그리 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판단 이전, 죽음을 앞두고 벌여야 하는 보편적 인간 의 실존적 감정을 진솔하게 내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작품의 생산에서 형상성의 추구는 단순히 어떤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고 그걸 통해 무언가 사회적 인간적 각성을 이룰 수 있다고 믿기보다는, 오히려 실존적 삶에서 겪는 개인적 감정을 날것 그대로 보여줌으로서 인간이 갖는 보편적 감정의 끈과 연결되는 이러한 소통의 종류 또한 연 구자가 추구하는 예술의 세계와 가깝다고 여겨진다. 달리 말해 ‘삶과 현실이 밀착된 형상언어’로서 예술. 이데올로기 이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무엇이 연구자가 생각하는 예술의 본질과도 맥이 닿는다고 생각한다. 하여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이념 적 대립을 극한까지 몰고 가거나, 역사인식에 대한 획일적 강요를 선동하는 듯한 이데 올로기로부터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을 때, 오히려 예술은 더 사람의 마 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지 않을까 생각한다.

2. 현대인과 분열증

본 논문 제2장에서 연구자는 현재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사회문화적 제 문제들을 인간의 욕망 문제와 함께 다룬 바 있다.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자본주의에서 돈이란 우리 사회에서의 모든 질적인 가치를 해체하면서 오직 자본주의가 구축해 놓은 시장과 경제에 의해 인간의 욕망이 작동 되도록 관리 통제함으로서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다. 연구자는 이러한 자본주의가 갖는 숨겨진 속성을 가장 예민하게 분석한 사람 중 한 명이 들뢰즈라고 생각한다. 들뢰즈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속성을 편집증과 분열증사 이를 요동하는 시스템으로 압축해 표현한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는 구조는 자본주의가 갖는 한계이자 바로 이러한 욕망의 분열적 증상이 또 다른 체제 ‘혁 명적 대안’의 힘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강조 한 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욕망의 분열적 흐름’

에 가장 적합한 자본주의에 대한 진전 이전의 자 본주의 모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대인의 실존 에 닥친 제 문제들을 그동안 연구자의 작품과 연 계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신자본주의체제가 더욱 공고히 구축된 현실에서 인간 주체의 욕망은 이미 자본의 욕망으로 치환 된지 오래라 생각한다. 이 러한 결과 현대인의 삶 자체는 목적이 아닌 수단 화로 전락되고, 이 과정에서 겪는 분열증적 여러 심리현상은 고스란히 우리 내면을 지배하게 되었 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연구자는 인간의 소외와 고 독, 그리고 존재의 부정적 평가로부터 오는 무력 감과 우울을 소재로 한 작품에 대해 분석 또한 이 장에서 이뤄지리라 본다.

그럼 여기서 연구자의 작품[도판-29]‘깨진 가면을 든 자화상’을 통해 분석해보 도록 하자. 우선 이 작품은 연구자가 자신이 처한 동시대적 감성을 자신의 특별한 처 지에서 경험하고, 이를 다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자와 소통하는 방식의 작품 군 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자기 체험적 일상의 감정 상태를 보편적 사회현상과 견주어 표현한 작품 중 하나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림에 나타난 자화상은 개인의 개성적 성격 을 표현이나 특징적인 형상에 대한 주목으로부터 멀어져 보인다. 대신 그림은 자화상 이지만 그 속에는 개별적 감정의 흐름 돋보이게 표현하려는 의도보다는 오히려 주인공 이 속한 외부 상황에 대한 내면화된 이해를 통해 외부와 소통하려는 의도가 앞선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불안. 조각난 꿈. 불확실성으로부 터 오는 두려움에서부터 현대인이 흔히 느끼는 고독감까지. 그림에서는 이러한 복합적 인 감정을 자화상이라는 형상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도판-29] 서현호, ‘깨진 가면을 든 자화상’, 145.5cm X 97.0cm, oil on canvas, 2014.

한편 작품의 형태적으로 봤을 때, 이 작품은 재현에 충실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정의 전달에 충실한 태도를 취한다. 이는 예술의 기본 목적을 ‘재현’으로 보는 것을 거부 하고,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합리주의와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반발과 함께 인간의 내 면세계를 표출 하고자 하였던 표현주의의 기본 목적과도 합치한다.96) 여기서 또 하 나 그림에서 중요하게 구별되는 형상의 특징들을 찾아낼 수 있다. 그 하나는 깨어진 가면을 들고 있는 양 팔이 실제로 보이는 얼굴로부터, 뻗은 어깨 근육으로부터 분리된 채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점은 실존으로서의 얼굴과 깨진 하얀색으로 표현되는 가면의 페르소나와 서로 구별되는 것과 어울려져 보다 내면적인 분열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화면 속의 인물이 아직 거울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몸을 분열된 것으로 인식한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지점은 바로 라캉의 상징계 이론에서 거론된 욕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라캉에 의하면 인 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사람, 즉 어머니와의 일체감을 이루며 어머니의 욕망을 자 신의 욕망과 동일시하는 과정을 거친다. 일단 태어난 아이는 처음에는 자신의 몸과 어 머니의 몸이 하나라고 상상하는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다. 바로 이때는 아이가 자기 스 스로의 욕망을 찾지 못한 채 어머니와 동일시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어머니의 그것과 동일화를 이루려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아버지의 등장으로(여기서 아버지는 자 본주의가 품고 있는 거대한 힘으로 이해해도 좋다) 이러한 동일화가 새로운 과정을 만 나면서 아이는 자신의 상상과 자아를 분리 인식하면서 비로소 자신을 욕망의 주체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즉 이러한 과정을 순조롭게 극복함으로서 자아는 주체 로서 거듭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깨진 가면을 든 자화상‘에서는 아직 자아 가 주체로서 서지 못한 듯 자신의 몸을 분리된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듯 보인다. 바로 이 점이 현대인들이 겪을 수 있는 정신분열적 요소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는 역설을 형 상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니면 달리 거울 단계의 상상계를 벗어난 자아이지만, 결국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아버지를 만나 순응하고 순치된 자아로서 잘 적응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하는, 현대인의 자아가 얼마나 허술한 기반 위에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

96) 구교수, ‘독일 표현주의에 관한 연구’ 경기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11. p.2 참조.

서현호 작가의 그림에서 우리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표정을 본다. 세상에 대한 ‘불신’과 두려운

‘이 가득 찬 눈빛, 분노는 거기서 시작되는 것일까. 여기, 깨어진 가치를 들고 있는 남자가 있다.

우리들의 깨어진 자화상인가, 아니면 가면인가. 이 알 수 없는 가치는 우리의 본 모습에서 분리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가면 속의 모습이 손에 들고 있는 얼굴과 완전히 다른, 분노에 찬 표정이라는 것 이다. 현대사회의 불평등과 모순 속에서 상처 받은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까. 작가는 이런 표 정들을 통해 현대사회에 ’화‘ 혹은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그림자가 검은색이 아닌 파란계열이라는 점에서도 우리의 ’사라져 가는 자화상‘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여백을 통해 탈출구를 만들어줌으로써 희망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현실로부터 탈피와 현실에서의 안주를 거듭하면서 오늘도 출근 도장을 찍는다.97)

언급한 것처럼 여기서 자화상은 연구자 자신의 자 화상인 동시에 오늘날 보편적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내면, 혹은 무의식적 자기인식과 궤를 같이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작가의 자기체험을 통해 보편적 인 미학으로의 전이를 이룬 유형의 작품으로 설명 될 수 있겠다.

연구자의 다른 작품[도판-30]‘빈 의자가 있는 자화상’ 역시 현대인이 갖는 내면의 고독감과 외로 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 또한 얼굴 형태의 왜 곡과 현실 재현으로부터는 동떨어진 색상의 선택, 강 한 대비를 통한 불균형적인 화면의 구성 등 표현주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연구자의 자화상에서 자 주 볼 수 있는 점은 이러한 자화상을 통해 인간 존재 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짐과 동시에, 가공되지 않은 사적 정서를 타자와 교감함으로서 공 동체적 존재로서의 위로와 연대를 이루고자 하는 입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상의 삶 에서 느낄 수 있는 진솔한 개인감정의 흐름을 형상화함에 있어서, 그리고 내면에 잠재 된 무의식의 공간을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연구자가 자주 쓰는 형식적 특

97) 이송희, 서현호 개인전 도록, ‘인간과 표현’ 인용 글, 자미갤러리, 2014.

[도판-30] 서현호, ‘빈 의자가 있 는 자화상’, 162x130.3cm, oil on canva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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