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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논리 (Francis Bacon )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70-90)

들뢰즈가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자신의 존재론과의 정합적인 관계를 다루 며 쓴 ‘감각의 논리’를 보면 단순히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연구자의 그것 과 매우 닮았음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일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현대미 술에서의 형식적 차용이 용인된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훌륭한 작품이란 바로 그 내용 과 형식의 조합이 후대에 강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 기도 하다. 아무튼 연구자의 적지 않은 작품들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인간 존재의 사회적 모순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 무의식에 내포된 욕망과 이들이 생성할 수 있는 잠재된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민한 흔적을 발견 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을 억압과 순응으로서가 아닌 들뢰즈 사유의 방식에 기대어

생성의 동력으로 이해 하고자 하는 연구자의 생각 또한 이러한 태도와 관련이 있을 것 이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연구자가 왜 들뢰즈의 존재론 부분을 강조했는가에 대한 의도 또한 짐작 할 수 있으리라 본다.

또한 이 장에서는 들뢰즈가 화가 베이컨의 작품과 비교분석하며 썼던 ‘감각의 논 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아무튼 연구자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베이컨의 몸 표현에 대해 살피면서 동시에 이들과 연구자 작품이 갖는 공통점과 차이 점 등을 비교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예술이란 감각의 구현을 말한다. 따라서 예술가는 감각을 발현시키 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평면들을 건설함으로서, 그리고 여기서 발생한 질료를 입힌 예술 작품을 창조함으로서, 궁극적으로 세계를 구현(복원)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다. 즉 무한한 카오스의 세계를 유한한 예술작품으로 복원해 내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감각의 평면을 통해 사유하며 작품을 창조하는 주체는 선험적 주체가 된다. 이때 주체란 아직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의 주체. 즉 선험적 주체로 서 이 단계에서는 주체와 객체 자체를 구분할 수 없기에 결국 세계(카오스인 세계)를 재현해낼 수 없는 비재현적 주체이자 중립적 주체가 된다. 그리고 한마디로 이때의 주 체는 비인격적 주체로서, 오직 이러한 주체만이 카오스의 세계를 온전히 구현할 수 있 는 조건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바로 이러한 점은 들뢰즈가 그의 존재론에서 주장하 는 ‘존재는 다양한 양태들 사이에서 내재하고 존재자 역시 그 존재를 통해 잠재적이 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 할 것이다. 들뢰즈는 또한 예술에 있어서도 이와 대응되는 개념으로 풀어가려 한다. 들뢰즈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세계를 단지 수동적으 로 파악해 재현하지 않는다. 그가 말한 예술가란 세계 속에 잠재된 사건들이나 가능성 을 받아들여 감각을 구현하는 일, 또는 존재를 구현하는 일을 하며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들뢰즈 존재론을 예술작품으로 가장 잘 구현해낸 작가 로 베이컨을 지목한다. 특히 베이컨의 고유한 그리기 방식을 예로 든 셈이다. 아무튼 여기서 들뢰즈가 이토록 예술과 자신의 생각을 동형관계로 설명하려 했는지에 대해 살 펴본다면, 이 장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연구자의 의도가 보다 명확해 질 것이라 믿는 다.

들뢰즈는 베이컨의 작품과 자신의 존재론과의 관계를 밝히면서 베이컨 그림에서 중 심을 이루는 세 요소를 들어 자신의 존재론과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있다. 들뢰즈가 본 베이컨 그림에는 형상(Figure), 윤곽(Contour), 아폴라(Aplat) 세 요소로 이루어졌다 고 본다.

베이컨 회화의 세 요소를 살펴보자. 공간화 시키는 물질적 구조인 거대한 아폴라들 형상과 형상들 그리고 그들의 사실 장소, 즉 형상과 아폴라의 공통의 경계인 동그라미, 트랙 혹은 윤곽. 윤곽능 둥 글거나 타원형으로 매우 단순해 보인다. 차라리 문제를 제기하게 하는 것은 윤곽의 색이다. 윤곽의 색은 이중적인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포착되기 때문이다. 사실 윤곽은 장소로서 물질적 구조에서 형 상으로, 형상에서 아폴라로라는 두 방향으로서 교환 장소이다. 윤곽은 일종의 이중적 교환이 일어나 는 동식물의 막과 같은 것이다. 이 방향에서 저 방향으로 무언가가 통과한다. 회화가 서술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여도, 회화가 말할 스토리는 아무것도 없다 하여도, 그래도 회화의 기능을 정의할 무언가가 발생한다.72)

72) 들뢰즈 지음, <감각의 논리>, 하태환 옮김, 민음사, 1995, p.22.

[도판-10] 프란시스 베이컨, ‘누어있는 인물’

198 x 147.5 cm, oil on canvas, 1969.

[도판-9] 서현호, ‘Sosiety of the Spectacle 3’, 162.2 x 130.3 cm, oil on canvas, 2017.

들뢰즈는 베이컨 그림에서 중요한 세 요소를 밝히고 있다. 들뢰즈 표현에 의하면 먼 저 재현 이전의 감각의 상태다. 즉 선험적 주체, 잠재적 주체가 내재된 감각을 통해 이끌어 낸 형태, 즉 재현을 벗어나 있는 감각적 형상으로서의 형태를 예로 든다.

[도판-9]‘Sosiety of the Spectacle 1’ 그림에서 보자면 형태는 두 사람이 엉켜있 는 상태의 인물로서 아직 완전하게 파악하기 이전의 상태처럼 보인다. 바로 이렇게 뒤 틀리고 심하게 일그러져 보이는 인물들은 들뢰즈가 자신의 존재론과 견주어 베이컨의 그림을 분석할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형상(Figure)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마 찬가지로 베이컨의 그림에 나타난 많은 초상화의 머리들이 이에 해당한다. 들뢰즈는 바로 베이컨의 형상에 나타난 왜곡과 일그러진 모습에 주목한다. 이는 이성적인 시각 으로 본다면 동물에 가까운 모습으로 끔찍하게 보일 텐데, 굳이 베이컨은 왜 이렇게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인물을 표현하는가에 대해 주목한다. 물론 여기서 말한 비이성적 비합리적 형상의 선호는 연구자의 작품에서도 그 유사성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형상의 표현은 단순히 작가적 취향이라거나 개성 표현 모색 에 대한 결과로 간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들뢰즈는 보다 깊은 존재론의 차원까지 끌 어올려 사유한다. 들뢰즈가 내재성의 평면 위에 그어진 무수한 선들의 발생을 사건으 로 파악했다는 점은 이전 들뢰즈의 존재론을 거론하면서 밝힌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 로 감각 또한 감각들의 평면 위에 무수한 선들이 그어지면서 발생한 감각을 고스란히 형태화 한 것을 형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감각의 줄들이 평면 위에 그어지 는 순간의 감각이란 아직 선험적인, 경험 이전의 감각이다. 즉 이때 감각의 줄들이란 어떤 주체적 판단이 개입하기 이전의 이성으로 가공되지 않은 상태의 순간을 말한다.

따라서 순간의 감각이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인격적인 감각이라 할 수 있다.

바로 베이컨과 연구자의 그림 속에 표현된 형상이란 이처럼 존재 자체에 아직 아무런 인격적 이성적 판단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의 감각을 형태화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물의 표현이란 곧 데카르트가 말했던 이성적 주체, 즉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체로 상정하는 근대적 주체와 분명히 차별화 된다.

도판에 나타난 두 그림에서 드러난 형상을 봤을 때, 자의식 아래 자기 인격이라는 입장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인식하고 재단하는, 즉 보편성을 강조한 지식 체계를 앞세워 재현을 통한 사유를 강조하는 데카르트적 코기토(정신)와는 차이를 보

인다. 짐작하다시피 근대적 주체가 다루는 형상이란 주체와 대상이 분리된 재현이다.

즉 이때 분리된 주체는 분리된 대상을 상대로 특권을 행사하는 주체가 된다. 근대적 주체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을 가진 인격적 주체로서 자신의 모든 행위, 행위의 대상, 행위의 결과를 자기의식 아래 인식하고 판단” 한다.73) 바로 예시된 그림에서 보여준 형태란 이렇듯 애초 소묘하는 주체와 객체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며 재현이 가지는 객체에 대한 이성적 질서에 따른 모습 그대로의 형태를 거부한다. 바로 이러한 형상의 선택은 선경험적 감각을 형태화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베이컨 그림이 가지는 두 번째 그림 요소를 살펴보자. 이는 바로 ‘윤곽’인데 그림 에서는 둥근 원이나 원반으로 처리된 부분에 해당한다. 여기서 이러한 윤곽이 하는 기 능은 바로 이미 언급했던 ‘형상’에 대한 완전한 고립을 목적으로 한다. 들뢰즈가 말 한 형상이란 재현과는 다르다고 이미 이야기 했다. 재현이란 객체로부터 분리된 주체 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을 통해 질서 지어진 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을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반대로 형상의 활동이란 이러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질서에서 벗어나 보편성으로부터 해방된 차이를 생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에 맞는 형상을 창조하기 위한 전제로서 형상이 곧 그 자체로 재현으로부터 벗어나 순수한 감각의 형 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 한편 여기서 재현에 대해 살펴보면 재현에는 두 가지 재현이 있다. 재현은 예시적 재현과 서사적 재현으로 나눌 수 있다. 예시적 재현이란 그림 속 에 묘사된 인물과 실제 인물 사이의 관계에서 예시적으로 나타난 경우를 말한다. 서사 적 재현이란 그림 속에 예시된 사건이 실제로도 존재한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방 식이다. 따라서 그림에서 형태가 재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존재 이전 상태, 즉 선 경험적 감각의 표현으로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두 종류의 재현으로부터 다 벗어나야 한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실현을 위해 추상으로 밀고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 이컨은 그림이 재현으로부터 해방되는 방식으로, 즉 형상이 가지는 재현적 이미지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동그라미나 혹은 트랙 같은 윤곽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들뢰즈가 확인할 수 있는 윤곽이란 그의 존재론에 등장하는 ‘수축 운동’과 ‘용해 운동’이 교차하는 막으로서의 기능이다. “실제로 장소로서의 윤곽이란 물질적 구조로부터 형

73) 클레어 콜브록, 앞의 책, p.13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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