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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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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작동되는 이유란 간단하다. 개인의 이기심을100) 바탕으로 자유 시장을 통한 이윤이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시장의 존재가 없다 면 자본주의 체제는 존속할 수도 없다. 따라서 시장에서 유통되는 모든 것이 상품화

100) 여기서 개인의 이기심이란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결함된 의식의 저변에 자리 잡은 ‘공정성의 윤리’를 대신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하다. 자본주의의 개인주의란 내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생 각과 함께 남 또한 나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선에서 개인의 이윤추구가 정당화 된 수 있다는 세계관이다.

[도판-34] 서현호, 'Blood' 162.7 x 130.3 cm, oil on canvas, 2015.

된다. 결국 이들의 유통과 교환을 통한 이윤 창출 구조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자본주의 본질에 부합하는 원리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중세 봉건적 통제사회로부터 시민 사회의 개인적 자유 확대로 이어져 온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귀결은 점점 시장에 의존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시장만능주의가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 이는 형국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자본주의는 인간을 위한 시장이 아니다. 즉 사람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시장이 인간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 시장과 자본 이 인간을 지배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막강한 자본의 힘은 공동체 의 선보다는 개인주의의 보편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자본의 지배자가 쥔 권력의 형태 는 점점 더 교묘한 방식으로 인간을 수단화하거나 도구화 하는 방식으로 체제를 이끌 고 있다. 자본주의 초기의 유럽현실을 보자. 또한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자본의 논 리에 밀려 무참히 무너진 농촌공동체를 보자. 초기 자본의 축적을 위해서는 값싼 노동 력이 필요했다. 당시 대부분 농어에 종사하던 농민을 도시의 값싼 노동자로 대체하기 위한 농촌공동체의 파괴를 생각한다면, 현대인이 겪는 고독감과 무력감의 심리란 그 기원부터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알다시피 농촌 공동체

란 기본적으로 우애와 협동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사회다. 그러나 자본의 요구에 휘둘린 민중의 삶 이란 곧 대안 없이 무너진 농촌공동체의 급속한 파괴로 인한 소속감이나 안전감은 점점 무너지게 되었다. 결국 하나의 개인으로서 거대한 자본가의 힘과 맞서며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로 변하면 서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감은 시작되었는지 모른 다.

[도판-35]그림 ‘끌려가는 사람’은 바로 이러 한 현대인이 가진 내면의 불안과 공포감을 표현한 작품이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 혹은 무력감의 심리 저변에는 이처럼 초기 자본주의에서부터 시작된 공동체 의식의 붕괴 뿐 아니라 여러 복합적 현상의 결과였음은 당연한 일 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점점 발달하면서 독점자

[도판-35] 서현호, ‘끌려가는 사람’, 145.5 x 97 cm, oil on canvas, 2014.

본주의의 강화와 신자본주의 체계라는 극단의 경쟁사회로의 진입은 이러한 현대인의 심리구조를 보다 강화시켜 주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자본주의는 갈수록 치열한 자본경쟁을 통해 현실적으로는 물질적 번영을 가져온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반한 현대인들의 정신적 황폐화 속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개인 자유의 확대라는 시 민의 자유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의 합법적 권위에 의해 재편되었지만, 이 또한 자 세히 들여다보면 대개의 경우 독점자본가의 힘에 의해 유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 치 초대기업이나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에서처럼 겉보기엔 누구나 주식을 소유함으로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일반론과 달리, 실은 이들의 소유지배 구조는 철저히 특정 그룹이나 소수 대주주의 지배와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정치 또한 민주주의라는 대의민주주의에 따라 일정정도 국민의 주권과 권익이 보장되어 있는 것처럼 비치지만, 현실적으로 참여하는 지배층 대다수는 결국 자본과 결탁된 정책이나 주류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따라서 국민들 사이에는 이런 정치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지면서 정치적 무관심이 확산되게 된다. 결국 이러 한 사회현상은 다시 기득권에 대한 지배 강화를 재생산 해내는 방식으로 현대인을 점 점 무력화 해내는 시스템으로 작동해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불행을 맞을 수도 있는 것 이다.

여기서 다시 ‘끌려가는 사람’을 보자. 우선 화면에서 보여주는 인물의 형태는 크 게 왜곡되어져 보인다. 어쩌면 인간 내에서의 왜곡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왜곡의 범 위가 반인반수의 상태로 파악해도 좋을 만큼 일그러진 모습이다. 흡사 유인원이 아닌 가 할 정도로 왜곡된 형태는 무엇보다도 커다란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절규 같은 소리 를 통해서 극도의 공포감을 드러내보여 주는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몸의 해체는 현대인이 가진 물질풍요에 따른 세련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밀림의 숲 에서 무언가에 쫓기는 형상의 유인원처럼 비친다. 무언가 절박한 상황을 대변하는 모 습이지만, 그가 가진 상황이란 연대할 누군가의 부재와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의 부재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바로 이러한 이중적 모순의 표현이 왜곡된 인물 형상과 배경의 구성에 따라 증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비교적 잘 정리되어진 질서 있는 푸른 선과 직각으로 구분된 벽면의 처리는 현대 물질문명의 세련된 모습을 은유하고 있다.

반면에 그것과 대비된 인물의 형상은 정리되어지지 않은 채 해체되어 있다. 더욱이나

그 실루엣이 반인반수의 모습을 띠어 마치 동물원에 갇힌 유인원과 흡사한 모습을 취 한다. 바로 이러한 과장된 대비는 그만큼 현실에서 겪는 불안과 공포감을 강화해 준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인간은 스스로를 합리적 주체로 인식하며 그가 속한 세 계를 객관적으로 이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과학적 사고를 통해 이를 뒷받침 할 수 있으리라는 인간의 이성을 신뢰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오늘의 현실이란 어떠한 가. 어느 시대보다 자본의 흐름은 유연하고 그만큼 자본끼리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그 리고 이러한 극도의 경쟁은 무한경쟁으로까지 내몰며 승자독식의 세상을 합법적 미덕 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형국이다. 무한경쟁으로 비롯된 승자독식의 사회는 당연 히 우리를 삶의 여유와 행복으로부터 추방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치열한 경쟁 시스템에 적응하는 사람은 적응하는 사람대로 계속된 진보의 프레임으로부터 헤어 나 올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무엇이든 경쟁으로 환원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소외와 고독감으로 인한 정신적 피폐함. 그리고 그 그룹으로부터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 이러한 현대인의 내면 심리가 어쩌면 오늘날 현대 인이 갖는 보편적 인간 심리는 아닐까. 바로 이러한 현대인의 내면에 잠재된 감정의 분열현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 연구자의 ‘끌려가는 사람’이라 할 것이 다.

에히리 프롬 (Erich Fromm)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정서적 감 정으로 고립감과 무력감과 함께 권태감을 들었다. 물론 이러한 부정적 정서의 출발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에 내포된 자본의 속성에서부터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자본 주의에서 겉으로는 개인 자유의지에 따라 시장이라는 장을 통해 얼마든지 이득을 취하 는 것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문제는 돈의 권위가 공공연하게 최고의 권위 로 취급돼 현대인을 사로잡고 있다는데 있다. 그리고 여기에 현대 시장 흐름의 복잡한 흐름은 그 자체로 강력한 권위를 발휘해 전문가들마저 한정된 분야만을 이해할 수 있 을 정도로 이끌어간다. 따라서 대중들은 오히려 중대한 문제 앞에 직면했을 때, 자신 의 사고에 대한 확신과 해결에서 자신감을 상실하고 만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는 이 전의 봉건적 경제구조나 초기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처럼 자신을 둘러 싼 억압이나 통제에 대한 대상의 파악이 불분명하다. 그 뿐 아니라 심지어 “대중은 명확한 권위가

존재하지 않고 또 복종하도록 강요당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있으며 오직 합리적인 권위만을 따르고 있 다는 착각에 빠진다.”101) 고도화된 자본주 의의 시스템은 이러한 이유들로 스스로를 존재의 무가치함으로 이끌기 쉬운 토양을 만들어 준다. 인간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 는 자기감정 중 빠질 수 없는 감정이 바로 자존감일 것이다. 자존감이란 오직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만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것 이다. 이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자신의 기여에 대한 판단에 근거하는 감정이기 때 문이다. 물론 이것은 구체적인 물적 경제적 기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세 상 모두는 본질적으로 소중한 존재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낭만적인 해석일지 모르지 만 세상에 아무리 하찮은 풀포기 하나라도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인간이란 더욱. 그러나 현대 자본주 의 사회에서의 이러한 자존적 가치는 바로 시장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평가받느냐의 문 제로 왜곡되고 만다. 모든 사회적 가치를 오직 시장의 원리에 따라 환원되고 마는 시 스템 속에서 인간이란 고유한 인간 본성에 따라 행동하기 쉽지 않다. 이렇게 시장의 횡포는 인간성의 피폐화를 촉진하며 현대인에게 지독한 무력감과 회의감에 빠져들게 하는 힘으로 작동된다.

현대인은 지독한 회의감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현대인은 홀로 고립되어 있어서 극히 무력하며, 비 판적 사고 능력이 마비되어 지적인 무력감에도 젖어 있다. 그 결과 세계란 무엇인지, 또 인생은 무 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끝없이 방황한다. 자신의 모든 열정, 나아가 한 생을 다 바쳐서 헌신할 만한 가치 있는 일도, 인생의 목적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인 이상 그에게는 해답이 필요하다. 세계란 무엇이고 사람은 어떤 존재이며, 인생은 어

101) 앞의 책, ‘가치, 심리학과 인간존재‘ p.31 재인용

[도판-36] 서현호, ‘Fighter’, 145.5 x 97 cm, oil on canva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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