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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원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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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란 시각적 주요 요소로서 회화에서 그 역할과 비중은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색이란 빛에 노출된 물체가 어떤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가 아니면 반사하는가 에 따라 그 표면에 나타나는 특유한 빛의 현상을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빛의 분산과 정에 나타난 현상을 시지각을 통해 색을 식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기에 나름대 로의 의미를 더해 받아들이기도 한다. 특히 미술에서 표현되는 색들의 선택과 배치는 전체 작품 흐름에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그렇다고 색에 대한 인식을 체계적인 과학적 연구나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다 밝힌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색에 대한 감정은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기 때문이다.

본 장에서 다뤄보려는 색채는 색채론이나 색채심리학과 같은 과학적 접근 태도와는 거리를 둔다. 오히려 인간의 감정과 연관된 일종의 감정 표현으로서의 색에 대한 태도 에 가깝다. 즉 연구자 작품에 나타난 색채의 특징을 알아봄으로서 작품에서 발산되는 고유한 색의 표현성에 대해 개괄해보려는 것이다. 또한 색이 캔버스 안에서 형상과 함 께 조합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비가시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함께 검토해보고자 한다. 따라서 본 장에서 주로 논의 될 색의 문제는 과학적 접근 태도와는 달리 연구자 작업과정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인 관점임을 밝힌다.

회화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대개 자기가 선호하는 색채군을 가진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회화의 중요 요소로서 색이 가진 비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작품에서 작가의 감 정을 투영하기에 가장 적합한 요소가 색이라는 점 또한 있다고 본다. 즉 색이란 바로 인간의 정서와 감정의 심리적 영향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무튼 작업과정에서 연구자의 색의 선택은 거의 대부분 심리적 현상에 기댄 바 크 다. 그리고 이러한 비합리적 색의 선택과정은 때로 연구자가 어떤 감정 상태에서 선택 했는가 조차 판단할 수 없는, 판단 이전의 감각적 선택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같은 색의 사용에 있어서도 각 작품에 따라 색채에 대한 반응이나 영향이란 그때마다 강도 를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다. 즉 같은 색의 선택이었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들 서로 상 충된 정서로 다가오는 때도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관람자 입장에서도 그렇다고 본다. 작가의 색채감각에 담긴 심리적 주관적 입장이 작품을 수용하는 수용자에게 고 스란히 전해질 가능성이란 어렵다고 본다. 이 또한 색이란 무엇보다도 감정의 문제와 연결되었다는 점을 말해주는 예시일 것이다.

개인적 성향이겠지만 연구자는 붉은 색 계열의 채도 높은 색을 선호한다. 이는 단순 히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선택했다기보다는 즉각적으로 떠오른 색을 선택하다보니 그 러한 결과로 표출된 것뿐이다. 그러나 어떠한 순간의 감정과 정서가 즉각적으로 떠오 른 것이 그렇게 나타났다 하더라도 이는 작품에 내포된 어떤 메시지와 분명 상관관계 가 있을 것이란 것이 연구자의 생각이다. 즉 아무리 작품 제작의 형식적 과정에서 색 의 선택이 즉흥적이고, 작품에 내포된 메시지와 별개 항으로 작동된 것처럼 보일지 모 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게 연구자 생각이다. 정확한 채색의 타당성을 고려하기보 다는 대체로 즉흥적 판단이나 순간의 감성적 접근에 의해 결정되는 색이라 하지만, 이

는 우리 무의식 속 내재된 평면 위에 무수히 그어진 감각의 선들이 이러한 양태로 나 타났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를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에서 펼치는 논리대로 옮 긴다면 회화란 일종의 감각 존재여서 ‘감각은 특정한 순간에 본능을 결정짓는 것이 다.’89) 그리고 감각이란 이성적 합리적 판단 이전 선경험적으로 와 닿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연구자의 이러한 색채의 선택 또한 이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연 구자의 채도가 높고 원시성이 돋보인 색의 선택이란 본능적 감각에 의존한다는 것이 다.

그러면 여기서 연구자의 작품 [도판-18]‘무위의 춤’을 보기로 하자. 이 작품은 인간에게 내면화된 욕망의 분출을 인간 본성이 요구하는 힘의 흐름에 맡기며 춤을 추 는 군중을 표현한 그림이다. 인간의 본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들뢰즈가 강조한

‘생성하는 욕망’의 분출을 연구자의 ‘감각의 구현’을 통해 표현한 작품이라 할 것 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각 존재자들의 형상은 각각 ‘감각의 평면’위에 ‘감각의 줄’들을 긋는 것과 같은 순간의 몸이 가진 에너지를 오로지 몸을 통해 표출하고 있 다. 물론 여기서 순간의 감각이란 당연히 선경험적 감각으로서 주체적 이성판단이 개 입하기 이전의 상태를 떠올려도 좋을 듯하다. 아무튼 작품에서의 벌거벗은 인물들은

89) 질 들뢰즈, <감각의 논리> 하태환 역, p.53

[도판-18] 서현호, ‘무위의 춤’, 390.9. x 162.2 cm, oil on canvas, 2018.

‘홈 파인 공간적 질서’를 벗어난 채 무질서한 채로 차이를 형성하는 몸의 향연으로 느껴진다. 마치 디오니소스적 축제로 분리될 듯한 이러한 군무는 강렬한 원시성 짙은 색채와 어울려 보다 비이성적인 감각의 세계로 초대하는 듯하다. 즉 정형화 되지 않은 동작들로 이뤄진 개별 춤사위들과 이들 간에 혼재해 있는 카오스적 세계는 마치 들뢰 즈 존재론의 다른 포착으로 읽혀진다. 따라서 이와 같은 형상들이 뿜어내는 카오스적 에너지와 붉은 색채가 주는 원시성이 결합해 보다 강렬한 탈주의 힘을 상징하는 것처 럼 느껴진다.

한편 연구자 작품이 갖는 색채의 특징을 밝히는데 표현주의와의 연관성 또한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연구자의 많은 회화적 특징들은 표현주의자들의 그것과 많은 연관성을 가진다. 잘 알려졌다시피 서구 미술사에서 표현주의는 인간본성 에 대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믿음에 대한 회의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 게 합리적 미의식에 대한 거부와 원시성에서 느껴지는 역동성의 강조로 이어진다. 이 는 다시 강렬한 색채의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애초 표현주의 자들이 미술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던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도 그 맥이 통한다. 이러한 표현주의의 주요 특징에서 볼 수 있듯이 연구자 역시 보이지 않 은 인간 내면의 원시적 힘에 대한 찬미가 이러한 색채의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시한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연구자의 색의 선택은 단지 즉흥적인 본능에 의존해서이지만, 결국 이는 발언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갖는 본능적 힘의 강조, 즉 들 뢰즈식으로 표현하자면 생성하는 욕망의 표현으로서 자연스럽게 구축된 감각의 색이라 는 점이다.

아무튼 정리해 말한다면 연구자 색채의 특징이란 이러한 표현주의적 전통에 따른 표 현적 요소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도 없지 않다. 하지만 더 깊은 연관성이란 들뢰즈가 강조했던 ‘존재의 힘’을 발현시키고자 하는 연구자의 무의식적 선택에서 비롯된 점 이 더 크다고 보아진다. 바로 이 지점은 본 논문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해왔던 비이성적 비합리적 비인칭적 ‘되기 Becoming)’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창조해 나가기를 바라는‘생성 존재론’과 괘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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