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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싱크탱크의 역사와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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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책지식 생태계의 외형과 규모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결코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다양하다. 전형적인 관료 주도의 개발독재국가였던 한국에서 관료들의 정책생산을 지원하기 위한 ‘국책연구소’가 일찌감치 만들어졌다. 민주화 이후 에도 이들의 규모는 오히려 더 커졌고, 엄청난 자원을 여전히 동원하고 있다. 재벌들 역 시 자신들의 기업 활동에 직접적 도움을 제공하는 ‘기업연구소’들을 1980년대 중반 이 후 만들기 시작하였고, 이중 일부는 개별 기업 수준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정당의 국고보조 금 가운데 30%를 정책연구소 설치와 운영에 쓰도록 법률로 강제하도록 만들었다. 미국 의회의 입법지원기구를 본 딴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가 설립되었고, 빠르게 그 역할 을 키워 나가고 있다. 비상근 전문가들과의 협력에 의존하던 시민단체들과 달리, 정책 대안의 생산만을 주된 목적으로 삼으며 상근 정책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 민간 싱크탱 크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이 절에서는 독립 민간 싱크탱크를 제외한 여타 싱크탱크들의 역사와 현황을 개괄적으로 살펴본다.

1) 국책연구소 : 풍부한 자원, 취약한 독립성

1971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설립을 시작으로 정부출연 연구기관(이하 국책연구 소)들의 설립이 이어졌다. 박정희 정권은 제한된 자원을 집중적,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국가 두뇌’들을 결집시켰고, 1970년대 중반에는 산업연구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국토연구원 등 경제부처 산하 국책연구소들이 잇따라 설립되었다. 이후 1990년대에 통 일연구, 한국여성개발연구원, 한국행정연구원 등 비경제부처 산하 연구소들이 만들어졌 고,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부산발전연구원 등 광역시연구원들도 같은 시기에 문을 열 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관료 주도의 정책생산 구조의 근본적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관료의 정책생산을 지원하기 위한 국책연구소들이 계속 만들어졌던 것이다. 가장 큰 비 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과학기술 분야였지만, 경제, 사회, 인문 분야 국책연구소들의 규모 또한 작지 않았다.

부처 산하의 국책연구소가 난립하면서 부처이기주의와 비효율적 중복연구, 중장기적 전략 연구 부족 등이 계속 문제가 되었고, 1999년 독일의 막스 프랑크 연구회 체제를 모델로 한 ‘연구회 시스템’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국무총리실 산하 5개 연구회 소속으로 국책연구소들이 분산, 배치되었고, 2005년 경제·인문사회 연구회로 통합을 거쳐 2010년 현재 기초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3개 연구회 체제로 운영 되고 있다.

현재 국책연구소들은 개발독재 시기 한국개발연구원과 같은 지위와 영향력을 더 이 상 갖진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막대한 자원을 운용하며 정책 수립에 필요한 기초자료 생산, 과학적 분석, 현실적 대안 제시를 계속하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23개 국책연구소들은 2009년 기준으로 4,000명에 가까운 연구 인력(박사급 1,400여명)과 6,000억원이 넘는 한해 예산을 사용하고 있고, 15개 광역시연구원들 역시 한해 1,000 억원이 넘는 예산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관련 부처나 해당 지자체로부터 ‘독 립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연구방향과 내용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조차 정권에 따라 반대의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하고, 자료 왜곡, 결 과 은폐 의혹도 이어진다. 국가 전체의 발전을 꾀하는 중장기적 비전(vision)과 정책 개 발보다 개별 부처 수준의 연구에 매몰되고 있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이러한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회 체제가 도입되었지만,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연구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표 5>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국책연구소 현황

<표 6> 15개 광역시도연구원 현황

구분(설립연도) 재정운영(단위 : 억원)

예산 지자체 보조 기금

서울시정개발연구원(1992) 207.9 124.7(60%) 110

부산발전연구원(1992) 85.5 60.9(71%) 111.6

대구경북연구원(1991) 87.2 54(62%) 97.2

인천발전연구원(1995) 64.6 44.6(69%) 107

광주발전연구원(2007) 7* 2.6(37%)* 81

대전발전연구원(2001) 31.1* 19.5(63%)* 9

울산발전연구원(2000) 61.2 21.9(36%) 19.4

경기개발연구원(1995) 160 99(56%)* 272

강원발전연구원(1994) 83.3 25(30%) 201

충북개발연구원(1990) 59 13(24%)* 90

충남발전연구원(1995) 67.9 25(37%) 125

전북발전연구원(2005) 42.9 25(58%) 9.2

전남발전연구원(1991) 15* 0* 157

경남발전연구원(1992) 134.7* 19.4(14%)* 95.5

제주발전연구원(1997) 21.7* 13(60%)* 50

자료: 각 기관 홈페이지(2010년 4월 검색, *와 기금은 2007년말 기준)

2) 기업연구소 : 막강한 영향력, 극심한 불균형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급속한 시장화를 동반하였다. IMF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전면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경제위기를 몰고 온 주범으로 몰리던 재벌 들은 역설적으로 위기 탈출 과정의 최고 수혜자가 되었다. 특히 ‘1위 기업’으로서의 삼 성의 힘은 이미 사회 전체를 장악한 것으로 비판받을 정도이다. 흔히 세리(SERI)로 불리 는 삼성경제연구소 역시 마찬가지다. 1981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 설립된 이후 1984년 대우경제연구소, 1986년 삼성경제연구소, 현대경제연구원, LG경제 연구원 등이 잇따라 설립되었다. 이들은 개별 기업들의 경영자문과 조사기능을 주로 담 당하지만, 거시경제 동향 및 경제·사회 환경 변화 분석, 기업경영 및 시장 활성화에 필 요한 정책 제언 역할도 수행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다른 기업연구소들과 달리 훨씬 적극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제

100명이 넘는 석·박사급 연구자를 두고, 1년 영업수익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삼성경제 연구소만이 아니라, 다른 기업연구소들 역시 수십명의 박사급 전문연구인력을 두고 다 양한 연구조사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의 한국경제연구원도 십수 명의 전문연구자들이 ‘친기업, 친시장’의 정책이 만들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반면 ‘친 노동’ 싱크탱크들의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사실상 ‘활동중 단’ 상태이며, 주요 산별노조 정책연구소들의 상근 연구자들은 모두 합해도 10명을 겨우 넘는다. ‘자본’과 ‘노동’의 정책 역량의 심각한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욱 확대 되는 양상이다. 그동안 노동 관련 정책 생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던 한국노동연 구원(국책) 또한 현 정부 들어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표 8> 노동조합 부설 싱크탱크 현황 (단위 : 명)

연구소 설립연도 상근연구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1995 6

전국공공서비스노조 사회공공연구소 2008 5

금융산업노조 금융경제연구소 2004 3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2008 3

전국공무원노조 정책연구원 2005 3

전국교직원노조 참교육연구소 2000 0

자료 : 한겨레경제연구소 자체조사(2010)

3) 정당연구소 : 부족한 역량, 중요한 위상

국책연구소의 독립성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자본’과 ‘노동’의 정책 역량 불균형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정당의 역할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선 정당의 정치 역량과 정책 역량 제고가 동시에 필요하다. ‘정책정당’에 대한 시민사회로부터의 오랜 요구가 정치적으로 수용되면서 중요한 제도변화도 이루어졌다. 2004년 정당법과 정치자 금법 개정으로 정당 국고보조금의 30%는 정책연구소 설립과 운영, 사업 예산으로 사용 하도록 의무화된 것이다. 이로써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한해 약 70억 원,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은 40억원가량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교섭단체와 비교섭

단체 사이의 지나친 격차가 문제로 지적되지만, 적지 않은 국가예산이 정당의 정책 생산

의원들의 의정·입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국회 입법지원기구가 별도로 설립된 것도 중요한 변화이다. 미국의 의회예산국(CBO)과 입법조사국(CRS)을 본뜬 국회 예산정책 처와 입법조사처가 그것이다. 해당 분야 박사학위 소지자나 입법고시 출신자들로 구성 된 이 두 기관은 빠른 속도로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이 두 기관으로 인해 의원과 행정부 관료 사이의 정책경쟁이 최소한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평가가 늘고 있다.

<표 10> 국회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

기관명(설립연도) 인원(단위: 명) 예산(단위: 억원)

정원 현원(박사/조사관) 2009년 2010년

국회입법조사처(2007) 101 87(41 / 57) 77.9 100.7 국회예산정책처(2003) 116 102(39 / 71) 113 127

합계 217 189(80/128) 190.9 227.7

자료 : 인원(각 기관 「업무현황」, 2010.6), 예산(각 기관 「2010년도 성과계획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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