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립 민간 싱크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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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화 이후 한국 시민사회 정책역량의 결집과 한계

① ʻ준싱크탱크ʼ로서의 시민단체

압도적인 국가 우위, 그리고 관료 주도로 이루어졌던 한국의 정책생산은 민주화(democra-tization)를 거치며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민주화운동은 1987년 이후 민중운동(peopleʼs movements)과 시민운동(citizenʼs movements)으로 분화하였고, 특히 시민운동은 대학교 수와 변호사 등 정책전문가들을 결집시키면서 정책과정에 대한 개입을 더욱 적극적으로 시도하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부패방지법 제정, 세법, 상법, 선거법, 정치자금법 개 정 등 수많은 정책 변화를 이끌어 낸 참여연대는 가장 전형적이고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1994년 창립한 참여연대에는 현재 40명이 넘는 상근 활동가와 수백 명에 달하는

16) 이 절은 주로 홍일표(2011a : 99-105)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교수, 변호사 등의 정책전문가들이 결합되어 있다. 상근 활동가들은 ‘활동기구(실행위원 회)’와 ‘사무처’의 이중으로 소속되고, 하나의 활동기구는 보통 2∼3명의 상근 활동가와 10여명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참여연대는 정부 정책에 대한 논평과 성명, 대안 보 고서, 입법청원안, 대안예산을 만들어 내는 가장 강력한 시민단체다. ‘사회운동을 통한 실질적 변화’를 목표로 삼으며, 운동의 가시적, 제도적 성과를 중시하기 때문에 입법운 동과 공익소송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90년대 한국 시민운동은 '시민단체'라는 조직 형태를 취하면서 다른 사회운동과 구 분되는 독특한 자원동원의 구조를 만들어 냈다. 조직 내부 상근 활동가와 조직 외부 전 문가를 안정적으로 결합시키고, 대학교수와 법률전문가를 적극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정 책대안을 만들어 내는 정책생산 메커니즘을 구축한 것이다(조희연·홍일표, 2004). 시민 단체는 ‘사회운동의 1차 분화’ 결과물(김정훈 2009)인 동시에 시민사회 정책역량의 ‘1차 구심적 결합’의 조직형태며, 일종의 ‘준싱크탱크’였다. 이는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 해 왔던 관료 주도 정책생산 메커니즘에 대한 도전이었다. 민주화 이후 분출하는 시민적 요구와 급속한 시대변화는 다양한 정책의제를 쏟아냈으나, 관료들은 그것을 정책화하는 데 능동적이지 않거나, 아예 그것에 반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책형성의 또 다른 제도적 주체인 의원과 정당의 정책역량은 여전히 취약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운동은 ‘개혁’과 ‘반개혁’, ‘부패/무능’과 ‘청렴/유능’의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 내며, 다양한 영역의 정책경쟁에 임하였다 (조희연, 2004). 2000년 낙선운동 이후 의원들 사이의 입법경쟁이 활발해졌고, 개별 의원 들에 대한 정당 지도부의 통제력은 약화되어 갔다. 개별 입법에 대한 의원 개인의 판단 이 중요해지면서, 이제 시민운동은 다수 의원들을 한꺼번에 설득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 었다(홍일표, 2006 : 101). 정책공간에서 다뤄지는 사안들이 더욱 세분화되고, 전문화되 었다. 시민단체의 정책역량에 대한 의심과 비판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운동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오히려 정책 역량이 약화되 었다는 (내부로부터의) 반성과 (외부로부터의)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시민단체 소속 으로 정책 대안을 제시했던 전문가들 중 일부는 정부에 직접 참여하였고, 그로 인해 시 민단체를 아예 떠나거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늘어났다. 반대로 새로운 전문가들 의 참여는 크게 늘지 않았다. 비단 전문가만이 아니라 상근 활동가들의 재생산 문제 역

시 컸다.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사람’의 적절한 역할과 ‘새로운 사람’의 충분한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 시민단체의 정책 생산은 (조직 외부) 전문가와 (조직 내부) 활동가의 협력(cooperation)과 조정(coordination) 메커니즘에 의해 이루어지 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상황은 정책역량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민주화 이후 정책과정의 개방으로 사회운동만이 아니라 재벌과 각종 이익집단 들의 정책개입도 크게 늘어났다. 민주화와 더불어 진행된 한국 사회의 급격한 ‘시장 화’(marketization)와 ‘지구화’(globalization)는 특히 재벌 기업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과거 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정책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으나, 이를 정치적으로 대변하고, 조정해야 할 정당의 발전은 더디게 이루 어졌다. 무엇보다 정당의 정책적 무능함이 계속 문제가 되었다. 정치인들은 ‘정책을 통 한 정치’에 무관심하였고, 정당은 스스로 정책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하였 다. 선거를 통해 집권에 성공한 민주세력조차 정책에 관해선 관료에 더욱 의존하였고, 세련된 보고서를 만들어 내는 기업연구소들의 제안에 귀를 기울일 따름이었다.

② 시민단체 정책역량의 한계

2001년 4월 ‘비전한국’이라는 중도·보수 성향 지식인 집단의 창립을 필두로 ‘침묵하 던 다수의 지식인’ 담론이 유포되었고, 시민단체로부터 보수 성향 지식인 집단의 이탈이 본격화되었다. 이들은 시민운동을 ‘무오류성의 신화’에 빠져 있는 집단으로 비판하였고, 보수 지식인들을 결집하였다(김만흠 외, 2003 : 82-89). 참여정부 출범 이후엔 ‘무능한 진보’라는 담론이 확산되었다. 특히 ‘뉴라이트’ 집단은 ‘이념’과 ‘정책’을 결합하고, ‘운 동’과 ‘정치’를 연결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2006년 한해 바른정책포럼, 뉴라이트재단, 한반도선진화재단 등이 만들어 졌다.

김대중 정부 시기부터 이미 ‘관료에 포획된 민주정부’에 대한 우려와 비판은 계속되 었다(최장집, 2002). IMF 경제위기 이후 관료들은 ‘미국’과 ‘시장’을 앞세우며 새로운 권 력으로 부활했다. 경제(통상) 관료들과 권력기관 관료들은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포위했 고, 자신들의 이해와 가치에 부합하는 정책들을 양산해 냈다.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와 각종 정부 부처에 포진하였던 진보 성향의 대학교수, 시민단체 지도자들은 (경제)관료들 과의 주도권 다툼을 이겨내지 못하였다(안창현, 2006). 관료가 아니면서 정책을 만들고

다룰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인물과 집단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한편 싱크탱크에 대한 진보개혁진영의 관심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더욱 커졌다. 특히 참여정부와 삼성의 유착 관계는 계속 논란이 되었고, 삼성경제연구소 는 논란의 가운데에 계속 등장하였다(한광덕, 2009). 삼성경제연구소의 의제설정·대중소 통·인물공급 능력과 막강한 자원은 ‘두려움’과 동시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처럼 보수 지식인들의 결집, 관료의 전횡, 삼성경제연구소의 위력을 목도하며, 진보 개혁진영 내부에서는 집권 이후를 채워낼 정책 콘텐츠의 준비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인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손석춘, 2006). 대학교수·지식인 집단 주도로 시민단체와 구별되는 별도의 조직 형태, 즉 ‘싱크탱 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2005년에 코리아연구원이, 2006년에 좋은정책포럼, 희망제작 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등이 연이어 설립되었다. 시민사회 정책역량의 ‘2차 구심적 결합’을 위한 시도가 ‘독립 민간 싱크탱크’의 설립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17).

‘관료와 재벌’ 사이에 새로운 정책동맹이 형성되고, 훨씬 더 세련된 방식의 ‘정경유착 (政經癒着)’이 문제시되면서, 시민사회의 정책생산 능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사회적으로 깊어졌다. 그리고 이는 ‘싱크탱크’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레 연결되 었다. 참여정부에 대해 막강한 정책적 영향력을 발휘한 삼성경제연구소에 대한 학습효 과 역시 작지 않았다. 2004년 5월 민주사회정책연구원과 학술단체협의회가 개최한 <개 혁, 진보, 정책>이라는 토론회에서 발표자들은 진보개혁세력의 정책연구소 설립이 시급 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신문은 2006년 7월부터 2007년 2월까지 20회에 걸쳐 ‘세계의 싱크탱크’ 시리즈를 내 보냈다. 그리고 한겨레신문은 2008년 9월부터 3개월간 미국과 독일, 영국, 일본, 호주, 한국의 싱크탱크를 분석하는 기획을 다시 진행하였다. 2009년 10월에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진보싱크탱크’를 기획 시리즈로 다뤘다.

이처럼 언론을 중심으로 ‘싱크탱크’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커진 시점과 동시에, 코리 아연구원, 희망제작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한국미래발전연구원, 뉴라이트재단, 한

17) 김정훈(2009)은 이 시기에 이루어진 사회운동의 ‘2차 분화’―더 다양한 영역과 지역으로의 분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정책역량 강화의 중요성을 제안하고 있지만, 이 논문에서는 이 시기에 정책역량 강화 를 위한 ‘조직형태’상의 분화와 ‘2차 구심적 결합’이 ‘독립 민간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이미 시작되었다 는 점에 주목한다.

반도선진화재단 등 진보와 보수 성향 독립 민간 싱크탱크들이 앞다투어 설립되었다. 싱 크탱크는 이제 단순히 신문이나 학술논문 등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담론’ 차원의 것이 아니라,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고, 활발하게 작동하는 존재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2) 시민사회 정책역량 재강화를 위한 세 가지 길

① 시민단체로의 재결집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기간 동안 진보진영의 지식인, 시민단체 출신 인물들 다수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기간 동안 진보진영의 지식인, 시민단체 출신 인물들 다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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