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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울 시 정 개 발 연 구 원

SEOUL DEVELOPMENT INSTITUTE

Working Paper

2011-WP-18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생산과 싱크탱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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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

연구책임 홍일표 ∙ (전)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이 보고서의 내용은 연구진의 견해로서 서울특별시의 정책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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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약

이 보고서는 더 나은 지역정책의 생산을 위해서는 지역 정책지식 생태계의 균형 있는 발전이 필요하며, 특히 광역시도연구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 싱크 탱크의 역사와 현황, 특징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헤리티지재단과 커먼윌연구소 등은 개별 연구소의 경계를 넘어 다른 싱크탱크들에 대한 지원과 협력, 조정에 많은 역량을 투입함 으로써 싱크탱크 생태계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돕고 있다. 특히 지역에서는 주정책네트워 크와 전미입법교환협의회 등이 지역 싱크탱크들 사이의 ‘횡적 연결’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국책연구소, 광역시도연구원, 기업연구소, 정당연구소, 독립 민간연구소 등 다양한 싱크탱크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상호 협력과 지원, 검증 메커니즘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자원은 불균형하게 배분되고 의견전달을 위한 통로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광역시 도 연구원은 지역 정책지식 생태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지위를 차 지하고 있으나, 앞서 미국 싱크탱크 사례에서 확인되는 지원과 협력, 조정을 이끄는 역 할을 아직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시민의 참여’를 기반으로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연구 성과 도

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역의 정책지

식 생태계를 균형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복합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헤리티지재

단과 같은 자원의 배분과 지원자 역할 및 커먼윌연구소와 같은 ‘네트워크 코디네이터’의

역할, 주정책네트워크의 ‘횡적 연결’ 주도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이는 매우

전략적인 기획과 접근을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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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 들어가며 ···1

Ⅱ . 미국 싱크탱크의 역사와 특징 ···5

1. 미국 싱크탱크의 역사와 현황 ···5

2. 미국 싱크탱크의 전통적 역할 ···9

3. 미국 싱크탱크의 새로운 역할 : ʻ헤리티지 모델ʼ의 분화와 진보 싱크탱크의 역할 확장 ···14

Ⅲ . 한국 싱크탱크의 역사와 특징 ···21

1. 한국 싱크탱크의 역사와 현황 ···21

2. 한국의 독립 민간 싱크탱크 ···28

3. 한국 독립 민간 싱크탱크의 현황과 특징 ···34

Ⅳ . 지역의 정책역량과 광역시도연구원 ···51

1. 광역시도연구원 현황 ···52

2. 진보개혁진영의 광역시도연구원 비판 : ʻ독립성ʼ·ʻ독창성ʼ·ʻ현장성ʼ의 부족 ···54

3. 진보개혁진영의 광역시도연구원 운영 : 경남발전연구원의 사례 ···57

Ⅴ . 맺으며 ···61

1. 미국 주정책네트워크(State Policy Network) 및 전미입법교환협의회 (American Legislative Exchange Council)와 지역 싱크탱크의 ʻ횡적 연결ʼ ···61

2. 정책지식 생태계의 균형과 독립 민간 싱크탱크의 성장 ···64

3. 지역 정책지식 생태계의 활성화와 서울시정개발연구원 ···70

참고문헌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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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며

2012 년의 한국 사회는 수많은 정책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이명박 정부가 무리하게 추 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해군기지 건설, 감세정책의 유 효성,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비전과 경로,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 등 어느 하나 간단치 않은 쟁 점들이다. 비단 ‘국가적 차원’의 문제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초자치단체로부터 서울 시와 같은 메가시티에 이르기까지 지방자치단체들 역시 결코 쉽지 않은 문제들의 해법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서울과 수도권의 ‘뉴타운’ 문제일 것이며, 골목시장을 살리는 것에서부터 지역 일자리 창출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간단하지 않다.

이 모든 사안들을 행정부(의 관료)가 다 알아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 은 더 이상 없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올바른 정책결 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식, 정보, 조정, 합의 등을 행정부 관료가 독점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이 어려운 시대적 과제들에 대한 올바른 정책대안 을 내놓을 수 있는가? 이는 정책지식의 생산구조와 그러한 지식의 활용, 그리고 민주적 이면서도 효율적인 정책결정 과정 등 여러 질문에 대한 해답을 동시에 요구하는 질문이 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 즈음하여 최근 한국에서도 ‘싱크탱크’(Think Tank)에 대한 관심이 높아

지고 있고, 실제 스스로 싱크탱크를 표방하는 조직들 역시 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주

로 시민단체 또는 NGO라는 이름의 조직형태(organizational form)를 통해 정책과정에 개

입하고자 했던 것과 비교할 때 달라진 양상이다. 브루킹스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 미국

진보센터와 같은 미국 싱크탱크들에 대한 연구와 검토가 계속되고 중국이나 일본 등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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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 다른 나라 싱크탱크들의 현황과 특징을 파악하려는 시도도 조금씩 늘고 있다. 그동 안 대학교수나 관료가 중심이 되었던 정책지식 생태계에서 ‘싱크탱크’의 존재가 부상하 고 있으며, 특히 국책연구소나 기업연구소 등과 전혀 다른 종류의 싱크탱크들이 나타나 고 있는 것이다.

싱크탱크가 생산하는 정책지식은 이론적 지식이기보다 경험적 지식이며, 기초나 기반 지식이 아닌 응용지식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정책지식은 그것의 실천과 실행 결과에 따 라 적합성이 검증되고, 보다 높은 적합성이 있는 것으로 검증된 지식이 생태계 차원에서 선호된다(유영만, 2005). 그동안 국가적 수준에서 정책지식이 어떤 순환과정을 거쳐 생 산되고, 유통되는가에 관한 생태학적 연구는 수행된 바 있지만(김선빈 외, 2007)

1)

, 지역 수준에서 정책지식이 어떻게 생산되고 활용되고 있는가를 다룬 연구는 그리 많지 않았 다. 지역의 정책지식 생태계는 해당 지역 공무원, 대학교수, 시민사회단체뿐만 아니라, 중앙부처 공무원이나 국책연구소까지 포함된다. 이처럼 더욱 복잡한 정책지식 생태계 구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정책생산 주체와 구조, 역량에 대한 학술적 관심은 크지 않았던 것이다.

이 보고서는 대안적인 지역정책 생산에 대한 요구는 빠르게 증대되고 있음에도, 이를 충족시킬 지역의 정책지식 생태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정책지식 생태계를 구성하는 여러 주체들 가운데 이른바

‘ 싱크탱크’라 불리는 집단에 대한 종합적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나라는 싱크탱크의 숫자 나 영향력 자체가 아직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관한 연구는 더욱 부족한 상태이다.

이 보고서는 싱크탱크에 관한 필자의 기존 연구들을 중심으로 국내외, 특히 미국과 한국 싱크탱크 생태계의 역사와 구성, 특징을 살피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이를 기반으로 지 역정책을 생산하는 정책지식 생태계의 구성 요소 가운데 광역시도연구원의 현황과 역할

1) 정책지식 생태계에 대한 연구는 자연스레 싱크탱크에 관한 연구와 연결된다. 세계적인 싱크탱크 연구자 인 제임스 맥갠은 싱크탱크를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책 지향의 연구와 분석, 조언을 새안하는 조직으로, 정책결정자와 대중들이 공공정책 이슈들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고 정의하고 있다(McGann and Sabatini, 2011). 미국 싱크탱크의 역사, 구조, 동학(dynamics)에 관한 연구성 과는 상당한 수준으로 축적되었고(Abelson, 2002 ; Abelson, 2006 ; Rich, 2004 ; McGann, 2010), 세계 싱크탱크들에 대한 비교연구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Stone, Denham and Garnett(ed.), 1998 ; McGann and Wever(ed.), 2005(2000) ; Stone and Denham(ed.), 2004 : McGann 2011). 그러나 미국과 해외 싱크탱 크에 관한 국내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이다(강원택․박인휘․장훈, 2006 ; 최형두, 2007 ; 홍일표, 2008).

(8)

을 살펴본다. 필자가 미리 살펴 본 바에 따르면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을 포함한 광역시도

연구원의 지역 정책지식 생태계 내에서의 위상은 이중적이다. 스스로 독립적이고 독창

적인 연구성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독자적인 싱크탱크인 동시에, 자신이 가진 자원과

지위를 활용하여 지역 정책지식 생태계 전체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

문이다. 이 보고서는 후자에 초점을 맞춰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발전 전망을 논해 보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9)

Ⅱ 미국 싱크탱크의 역사와 특징

1. 미국 싱크탱크의 역사와 현황

2)

앤드류 리치는 “싱크탱크란 ‘독립적이고, 이해관계에 기반하지 않은 비영리 조직으로, 정책형성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문가의 식견과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곳”이 라고 설명한다(Rich, 2004). 세계 싱크탱크 비교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제임스 맥갠 등은 싱크탱크를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책 지향의 연구와 분석, 조언을 생산하는 조직으로, 정책결정자와 대중들이 공공정책 이슈들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갖고 결정을 내릴 수 있 도록 돕는다. 이들은 학술 이론과 과학 패러다임을 정책과 관련된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기관”이라고 정의한다(McGann and Sabatini, 2011 : 14).

그러나 “싱크탱크에 관한 논의는 ‘싱크탱크란 무엇인가’라는 성가신 질문에 완전히 발목이 잡혀 버렸다.”는 사이몬 제임스(James, 1998 : 409-410)의 지적은 여전히 옳아 보 인다. 세계 싱크탱크의 표준처럼 논해지는 ‘미국식’ 싱크탱크라는 개념조차 단일한 것은 아니다. ‘학생 없는 대학’(1세대 : 1832~1945), ‘정부 계약의 수행자’(2세대 : 1946~1970),

‘ 정치적 주창자’(3세대 : 1971-1994), ‘정치인 장식품’(4세대 : 1995~현재) 등 다양한 유 형과 개념으로 미국 싱크탱크도 변해 왔기 때문이다(Weaver, 1989 ; Abelson, 2006). 제 임스 맥갠은 싱크탱크를 부설기관 여부에 따라 훨씬 다양하게 분류해 본다(McGann, 2007 : 11-20).

2) 이 절은 홍일표(2011a : 95-96), 홍일표(2009a : 286-288)의 내용을 주로 재구성한 것이다.

(10)

<표 1> 싱크탱크의 유형별 분류(McGann, 2007 : 11-20을 재구성)

기본성격

부설기관 여부

독립(independent) 싱크탱크 부설(affiliated) 싱크탱크 전통적 싱크탱크

(a traditional think tank)

학술적-종합형/

학술적-부문형 정당 부설

싱크 앤 두 탱크

(a think-and-do tank) 계약연구조직 정부 후원

두 탱크(do thanks)

주창형 민간, 영리

정책 기업 대학 부설

복합

맥갠 등은 미국 싱크탱크들에서 ‘독립 싱크탱크’가 많다고 하면서도, 하나의 싱크탱크 가 하나의 유형에만 속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McGann and Sabatini, 2011 : 22).

따라서 싱크탱크라는 하나의 조직 또는 제도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등장 과 성장에 대한 역사적 이해, 역할과 기능에 대한 종합적 분석, 이를 위한 적절한 이론적 시각을 동시에 요구한다

3)

. 따라서 싱크탱크에 대한 이해는 보다 역사적으로 이뤄질 필 요가 있다. 특정 국가의 싱크탱크가 단일한 속성을 갖는 것은 결코 아니며, 시대적 요구 에 대응하며 다양한 형태와 역할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는 ‘싱크탱크의 나라’라 불리 는 미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국에는 현재 1,500~1,600개 정도의 싱크탱크들이 활동 중이며, 이 가운데 300개 가량이 워싱턴DC에 모여 있다. 미국 싱크탱크들의 유형은 대체로 역사적 시기 구분을 통해 설명된다(Abelson, 2006). ‘학생 없는 대학’으로 불리는 정책연구기관으로서의 싱 크탱크 1세대(1832~1945년)에는 브루킹스연구소, 국제평화를 위한 카네기기금, 외교관 계평의회 등이 만들어진다. 다음으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히 늘어난 미국 정부의

3) 이런 맥락에서 세계 각국의 싱크탱크들에 대한 조사와 비교연구 작업들은 싱크탱크를 입체적으로 이해 하는데 상당히 유용한 도움을 준다(Stone, Denham and Garnett(eds.), 1998 ; McGann and Wever(eds.), 2005(2000) ; Stone and Denham(eds.), 2004 : McGann and Sabatini, 2011 ; McGann, 2011).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싱크탱크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미국 중심적이다. 예를 들어 제임스 맥갠이 주도하는 세계 싱크탱크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2010년 현재 한국의 싱크탱크 숫자는 35개로 보고 되고 있다(McGann, 2011).

(11)

정책수요에 부응한 정부계약 수행자로서의 싱크탱크 2세대(1946~1970년)에는 랜드연 구소와 도시연구소 등이 설립되었다. 소위 ‘싱크탱크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큰 변화를 이끈 헤리티지재단이 등장하고, 정치적 주창조직으로서의 싱크탱크들이 급증한 제3세 대(1971~1994년)에는 헤리티지재단 외에도 케이토연구소, 진보정책연구소 등 보수와 진보의 이념 지향이 뚜렷한 싱크탱크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개별 정치인들의 장식품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며, 전직 대통령이나 현역 정치인 개인을 위한 싱크탱크들이 많이 늘어났고, 이 시기를 미국 싱크탱크 제4세대로 부른다. 이러한 싱크 탱크들의 역사적 유형은 현재 ‘단절’보다 ‘연속’, ‘대체’보다 ‘중첩’의 개념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헌재 미국 전역에 걸쳐 다양한 유형의 싱크탱크들이 ‘공존’하고 있다(홍 일표, 2008 : 38).

미국 싱크탱크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싱크탱크들의 평균 인적 규모(스 탭과 연구원)는 50명 정도이며, 1년 예산은 50만~70만 달러 정도이다(Rich, 2004 : 13~28).

이는 싱크탱크 세계의 ‘양극화’가 반영된 결과이다. 예를 들어 랜드연구소는 2004년 말 기준으로 한해 예산이 2억 2천 7백만 달러를 넘고, 스텝과 연구원이 1,600명을 넘는다.

브루킹스연구소 4천 7백 7십만 달러, 헤리티지재단 3천 7백 6십만 달러 등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싱크탱크들이 있는 반면, 10명도 채 안 되는 연구원과 스텝, 20~30만 달러의 1 년 예산으로 운용되는 싱크탱크들도 적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Abelson, 2006 : 238).

규모의 차이는 싱크탱크의 ‘영향력 차이’를 의미하기도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보수적 싱크탱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으며, 중도적 성향의 싱크탱크들이 그들과 경합을 벌여 왔다. 그러나 진보적 싱크탱크들은 정치적 영향력이나 언론인용 빈도 등에서 확연히 낮 았다고 분석된다(홍일표, 2008 : 44~46). 1970년대 이후 계속되어 온 미국 정치의 양극 화는 미국 싱크탱크들의 이념적 분화와 양극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또한 1970 년대 이후 미국 싱크탱크의 숫자가 급증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 역시 주로 보수적 싱 크탱크들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McGann, 2006).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싱크탱크는 미국의 정치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더불어 지난 삼사십여 년 간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들은 보수적 가치를 담은 정책을 만들고, 그것이 현실의 정치를 통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 전쟁(war of idea)’

에서 우위를 점해 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수적 싱크탱크들은 다양한 이슈를

(12)

다루는 ‘종합형’ 싱크탱크가 많은 반면, 진보적 싱크탱크들은 여성, 환경, 시민권, 평화 등 단일 이슈를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은 특징을 보인다(Rich, 2004 : 13~

28). 그리고 헤리티지재단으로 대표되는 보수적 싱크탱크들이 ‘정치적 동원자’의 역할을 협력적으로 수행해 왔던 것과 달리, 지난 수십 년간 진보적 사회운동과 싱크탱크들의 활동은 자기 조직과 이슈의 경계를 쉽게 넘어서지 못한 채 파편화된 양상을 보여 왔던 것이다(Rose, 2000).

이와 같은 보수와 진보 싱크탱크의 발전 양상의 차이는 그들이 처해 있던 정치적 기 회구조(정당과 싱크탱크의 관계)와 사회적 기회구조(재단과 싱크탱크의 관계)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930년부터 무려 64년간 하원, 그리고 1954년부터 40년간 상원의 다수당의 지위를 놓치지 않았던 민주당이 상임위원회를 장악할 수 있었고, 이는 개별 입법 활동에서 막강한 우위를 점하는 구조를 의미하였다. 사회운동들 역시 이러한 구조 에 적응하였고, 진보적 성향의 싱크탱크들 대부분도 ‘단일이슈형’으로 존재하였다. 그들 은 항상 “내 이슈는 어떻게 되지?”라는 고민만 주로 했던 것이다(Armstrong and Zúniga, 2006 : 37~39).

한편 미국의 보수적 재단들은 보수적 가치와 이념을 분명히 내세우는 보수적 싱크탱 크들에 대한 집중적 지원 전략을 분명히 하였다. 이들은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단기적 지원방식보다 조직 자체에 대한 지원, 그리고 이념과 사람을 키워낼 수 있는 중장기적 지원에 공을 들여왔다(Rich, 2005 : 21~24). 반면 자유주의적․진보적 성향의 재단들은 개별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단기 지원, 분산 지원의 후원 전략을 취함으로써 진보적 사 회운동과 싱크탱크들이 단일이슈에만 집중하는데 일조하였다(홍일표, 2008: 60~62). 이 러한 ‘보수’와 ‘진보’ 싱크탱크들의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싱 크탱크들은 다양한 수단과 경로를 통해 ‘아이디어’와 ‘사람’의 공급자, ‘정치적 동원자’

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규모와 영향력의 성장을 거듭해 왔다(Abelson, 2006).

(13)

2. 미국 싱크탱크의 전통적 역할

4)

1) 정책의 제안자 : 아이디어 브로커(Idea Brokers)로서의 싱크탱크

미국 싱크탱크 연구의 고전적 저작은 미국 싱크탱크(와 그 소속 연구자)를 “아이디어 브로커(Idea Brokers)”로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다(Smith, 1991). 브루킹스연구소나 헤리 티지재단, 미국기업연구소와 같이 규모가 큰 싱크탱크들은 거의 매일 한두 개씩의 공개 세미나와 포럼을 개최하여 현안에 대한 다양한 정책적 견해가 소통하도록 한다. 특히 정치적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인 시점, 대통령직 인 수위원회가 가동되는 시점, 정권 출범 직후 등의 시기에는 훨씬 높은 집중력이 발휘된 다. 싱크탱크들은 자신들의 정책 아이디어를 보다 정교하고 체계적인 형태로 후보자나 당선자들에게 전달하려 하며, 아예 선거 캠프 멤버나 인수위원, 임명직 관료로 참여하여 영향력을 극대화하려 한다.

1991 년 선거에서 클린턴(Bill Clinton)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외치며 백악관 입 성에 성공하였다. 이에 따라 클린턴을 지지하던 몇몇 싱크탱크들은 1980년 레이건 대통 령에게 제출되어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헤리티지재단의 「리더십에 대한 요구 : 보수적 행정부에서의 정책 관리」 (Mandate for Leadership : Policy Management in a Conservative Administration) 를 모델로 하여 건강보험과 교육개혁에서부터 국제무역협 정, 방위획득프로그램에 이르는 다양한 정책프로그램들을 담은 보고서들을 인수위원회 시점에 제출하였다. 이때 가장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던 싱크탱크가 진보정책연구소였 고, 이들이 만들었던 「새로운 경제정책 보고서」 (The New Economy Policy Report)는 클 린턴 행정부의 중요 정책지침으로 받아들여졌다(Abelson, 2006 : 37~38).

텍사스 주지사에서 백악관의 주인으로 등극한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역시 화려한 명성의 싱크탱크들의 조력을 받아 자신의 정책구상을 구체화해 나갔다. 특히 외 교정책에 무지했던 조지 W. 부시는 후버연구소와 미국기업연구소로부터 막대한 정책 적, 인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또한 이들과 인적으로 상당히 중첩되면서도 조직적으로는 구분되는 독특한 싱크탱크인 새로운 미국의 세기 프로젝트(Project for New American

4) 이 절은 홍일표(2009a : 289-293)의 내용을 주로 재구성한 것이다.

(14)

Century, PNAC) 역시 중요하다. 1997년 창립된 이 작은 싱크탱크는 딕 체니(Dick Cheney),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 폴 월포위츠(Paul Wolfowitz), 스쿠터 리비 (Scooter Libby), 젭 부시(Jeb Bush), 윌리엄 크리스톨(William Kristol), 로버트 케이건 (Robert Kagan) 등 ‘네오콘’의 총집결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들이 2000년 9월 발 표했던 『미국 방위의 재건설』(Rebuilding Americaʼs Defenses)은 부시 행정부 1기의 성 격과 구성을 여실히 보여준 핵심 보고서로 평가된다(Abelson, 2006 : 214~215)

5)

.

2) 인물의 공급자 : 회전문(revolving door)과 싱크탱크

미국 싱크탱크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인물의 공급’이다. 흔히 ‘회전문 (revolving door)’ 이라 불리는 싱크탱크와 정․관계의 인적 연계구조는 미국 싱크탱크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가 된다(Abelson, 2006 : 23~42).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국가고시 를 통과한 엘리트 직업 관료가 행정부처를 주도하는 나라들과 달리, 미국은 정권교체에 따라 수천 명의 중간간부급 이상 연방공무원이 교체된다. 이들 중 많은 숫자가 싱크탱크 에서 “때를 기다려 오던” 연구원들로 채워지게 된다(Ricci, 1993 : 39~43). 미국 싱크탱 크들은 선거운동 기간 선거캠프의 멤버, 인수위원회 인수위원, 다음 정부의 핵심 각료를 배출하는 ‘인적 자원의 마르지 않는 풀(pool)’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최형두, 2007 : 49~57).

워싱턴 정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지미 카터(Jimmy Carter)의 당선 과정에 삼각위 원회(Trilateral Commission)의 역할이 컸음은 카터 본인의 진술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Abelson, 2006 : 27).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즈 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ew Brezinsky)는 삼각위원회의 초대 사무총장이었고 카터의 국 가안보자문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또한 삼각위원회와 깊이 연결된 외교관계평의회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회원 가운데 적어도 54명이 카터 행정부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카터 대통령의 가장 큰 인적 제공자 역시 브루킹스연구소였다(Abelson, 2006 :

5)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새로운 미국의 세기 프로젝트> 팀조차도 자기 아이디어를 듣도록 만드는데 힘들었다고 할 정도로 “매우 폐쇄적 시스템”으로 작동했다는 특징을 보였다(Abelson, 2006 : 41).

(15)

28~29).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 또한 워싱턴 입성 이후 헤리티지재단, 후버연 구소, 미국기업연구소 등에서 약 200명 이상의 연구진들을 행정부 곳곳에 중용하였다.

후버연구소에서 55명, 헤리티지재단에서 36명, 미국기업연구소에서 32명, 현존위협위원 회(Committee on the Present Danger)에서 32명, 전략 및 국제문제 연구센터(Center for Strategy and International Studies) 에서 18명이 참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박영호, 2005 : 50).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의 인수위원회 시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곳은 역시 헤리 티지재단이었다. 이들이 제출한 「리더십에 대한 요구」는 워싱턴 정가의 정책의제를 순 식간에 확정하였고, 헤리티지재단은 곧바로 워싱턴의 ‘기득권 집단’으로 등장하게 되었 다(Abelson, 2006 : 33~35).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기는 미국기업연구소 출신들의 약진이 확연하였다. ‘대통령보 다 더 대통령 같은’ 부통령이라 불렸던 체니(Dick Cheney) 부통령, 부시 행정부 1기 당 시 재무장관을 지낸 폴 오닐(Paul O'Neill), 경제고문 로렌스 린제이(Laurence B. Lindsey),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글렌 허바드(Glenn Hubbard), 국방자문위원회 위원장 리 처드 펄(Richard Perle), 그리고 가장 대표적 네오콘으로 알려져 있는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존 볼튼(John Bolton)까지 모두 미국기업연구소 출신이다. 2001년 부시 정권이 출 범했을 당시 미국기업연구소 연구원 가운데 24명이 정부 요직에 임명되었다(橫江公美.

2004 : 65~67). 헤리티지재단 소속 가운데서도 중국계 미국인인 엘린 챠오(Elain Chao) 가 노동장관으로, 대표적 보수계 시민운동가라고 불리는 아프리카 아메리칸인 케이 콜 스 제임스(Kay Coles James)가 인사부장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박영호, 2005 : 51).

3) 정치적 동원자 : ʻ헤리티지 모델ʼ의 성립

1964 년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의 참담한 패배 이후, 미국 보수파들은 자신들

의 참패가 자유주의적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전국적 재단들, 일부 신문, 아이비리그 대학

들, 뉴욕의 출판사들로 구성된 소위 ‘자유주의적 기득권 세력(Liberal Establishment)’ 때

문이라고 분석하였다. 그래서 그것에 대항하는 ‘지적 하부구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

렸고, 그들이 주목한 것이 바로 싱크탱크였다(Smith, 1991 ; Ricci, 1993 ; Rich, 2004).

(16)

이후 미국기업연구소와 후버연구소와 같은 기존 보수 싱크탱크들의 보수적 성격이 더욱 강화되었고, 미국 싱크탱크 세계와 워싱턴 정가를 뒤흔든 헤리티지재단이나 케이토연구 소의 창립이 뒤를 잇게 되었다. 그 후 30여년이 지난 2000년 대통령 선거는 칼 로브라는 걸출한 선거 전략가의 진두지휘 하에 남부 복음주의 교회와 보수적 풀뿌리 운동조직, 전국적 이익단체, 보수적 싱크탱크들이 긴밀한 협력하에서 전개되었고, 이러한 운동의 구조는 2002년 중간선거, 2004년 대선에까지 변치 않는 위력을 발휘하였다(Ryan Sager, 2006 ; 吉原欽一 編, 2005). 이 일련의 정치 과정의 핵심에 헤리티지재단이 서 있었다.

헤리티지재단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미국 싱크탱크 세계의 혁명을 이끌었다. 이들 은 그저 워싱턴 정가만 쳐다보거나 재단 프로젝트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 간 풀뿌리 대중들에게 귀를 열고 손을 내밀며 성장을 거듭해 왔다. 헤리티지재단의 회원 숫자는 25만 명을 넘는다. 그래서 이들은 정부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않으며, 기업 후원 금이나 재단 조성금 지원을 얻기 위해 연구원들이 동분서주하지도 않는다(홍일표, 2008 : 90~92). 지역의 사회운동조직과 싱크탱크, 언론들과의 협력관계를 한층 강화해 나가 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한 대중들과의 접촉 또한 적극적이다

6)

.

실제 국내 정치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데 있어 ‘지역’의 위력은 대단하다. 지난 수 십여 년간 미국의 보수세력과 공화당이 ‘풀뿌리운동’을 장악해 왔었던 것은 이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Critchlow, 2007). 그리고 이처럼 드넓은 미국 전역에 산재해 있는 ‘풀 뿌리’들을 서로 엮어주고 이어주는 역할을 헤리티지재단이 수행해 왔던 것이다. 이들은 자체 라디오 방송시설과 지역 라디오 방송국을 연결하여 전국과 지역, 지역과 지역을 서로 연결하였다. 또한 헤리티지재단 자신들이 확보한 인적 자원을 지역과 공유하는데 아낌이 없었다. 이들이 매년 개최하는 ‘자원은행(Resources Bank)’ 행사에는 보통 500명 이상의 지역 싱크탱크 대표들, 변호사, 정책 전문가, 선출직 관료, 활동가들이 모여 ‘자 유시장’과 ‘제한된 역할의 정부’라는 보수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전략과 수단을 토론한다.

미국 전역의 각 주에는 하나씩의 대표적인 보수 싱크탱크들이 설립 · 운영되고 있고,

6) 헤리티지재단은 “나의 헤리티지”(http://www.myheritage.org)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헤리 티지재단의 회원과 지지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충성도 높은 대중들에 대한 공격적 정책 마케팅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애틀란타, 시카고, 댈러스, 뉴욕 등 미국 각 지역의 헤리티지 지역공동체위원회가 구축한 웹사이트가 서로 연결되어 지역 회원 간의 상호접촉은 물론 보수적 의제의 전국적 확산을 시도한다.

(17)

이들은 지역정책네트워크(State Policy Network)라는 이름으로 묶여 정책생산과 조직운 영에 대한 정보와 자원을 공유해 나가고 있다. 1992년 설립된 이후 이들은 전미입법교환 평의회(American Legislative Exchange Council)와 협력하고, 다른 한편으로 헤리티지재 단과 협력하여 보수적 가치와 쟁점들이 각 주의 정책에 반영되고, 시민사회 내에서 확산 되도록 하고 있다. 헤리티지재단의 ‘자원은행’ 행사는 지역정책네트워크가 전국 차원의 정보와 활력을 획득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헤리티지재단을 필두로 하여 보수적 싱크탱크들과 사회운동, 그리고 공화 당은 개별 이슈나 조직의 경계를 넘어선 협력을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고, 그것은 막강 한 정치적 위력을 발휘하였다. 미국의 보수 진영은 싱크탱크의 ‘정치적 역할’을 중시하 였고, 보수적 가치와 이념의 확산을 전면에 내세웠다. 단일 프로젝트를 중시하기보다

‘ 종합형’으로 운영되는 대형 싱크탱크로 자원을 결집하였다. 특히 헤리티지재단은 자신 이 가진 자원과 능력을 활용하여 다른 보수적 싱크탱크들을 ‘지원’하고, 나아가 싱크탱 크와 사회운동, 정당의 상호관계를 긴밀히 하는 ‘조정자’ 역할 모두에 적극적이었다. 이 렇게 헤리티지재단에 의해 시작된 싱크탱크의 ‘정치적 동원자’ 역할은 ‘정책의 제안’이 나 ‘인물의 제공’과 구별되는 독자적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자리 잡아 갔다. ‘헤리티지 모델’이 성립된 것이다.

<표 2> 미국 싱크탱크의 전통적 역할과 특징

전통적 역할

형태 영향력

정책 제안 인물 제공 정치적 동원

보수적 싱크탱크 ○ ○ ○ 주로 종합이슈형 대체로 강

중도적 싱크탱크 ○ ○ × 종합형 or 단일형 강~약

진보적 싱크탱크 ○ △ △ 주로 단일이슈형 대체로 약

(18)

3. 미국 싱크탱크의 새로운 역할 : ʻ헤리티지 모델ʼ의 분화와 진보 싱크탱크의 역할 확장

7)

1) ʻ강력한 종합형 싱크탱크ʼ로의 길 : ʻ진보판 헤리티지재단ʼ(미국진보센터)의 성공과 한계

미국진보센터는 2003년 클린턴 행정부 당시 백악관 수석보좌관을 지냈던 존 포데스 타(John Podesta)의 주도로 창립되었다. 창립 당시부터 그것을 주도한 인물이 존 포데스 타라는 사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포함한 민주당의 중심적 인물들이 큰 관심과 호응을 보냈다는 점,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허버트와 매리언 샌들러(Herbert and Marion Sandler) 등 민주당 성향 억만장자들의 거액 기부가 “씨앗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는 이유 등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吉原欽一, 2005 : 69~92). 미국진보센터는 창립 5 년여 만에 이미 규모(스탭 숫자 125명, 1년 예산 2,500만 달러 이상)와 영향력(언론 보 도 빈도 8위)

8)

등에서 이미 다른 진보 싱크탱크들을 완전히 압도하고 기존의 주류 싱크 탱크들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미국진보센터의 창립은 진보 진영에도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강력한 종합형 싱크탱 크’가 필요하다는 깊은 성찰로부터 시작된 것이다(Bai, 2007 : 205~206). 헤리티지재단 이나 케이토연구소와 같은 보수적 싱크탱크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튼튼한 조직이 필요하며, 재정후원도 단기 프로젝트 중심이 아니라 5년에서 10년 정도의 장기적인 투 자가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것이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초기 자금 후원자들의 공통된 인 식이었다(York, 2005 : 189~219). 또한 미국진보센터는 커뮤니케이션 부서에 16명이 배 치되어 있고,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부서에 이와 별도로 15명이 근무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미국진보센터가 대중들, 특히 블로거를 포함한 인터넷 사용자들과의 소통을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수치이다(Podesta and Halpin, 2006).

7) 이 절은 홍일표(2009a : 299-307)의 내용을 주로 재구성한 것이다.

8) 도날드 아벨슨이 조사한 미국 싱크탱크들의 재정규모와 비교하면, 이는 소위 진보적 싱크탱크들 가운데 서 최대이며, 2004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미국기업연구소(AEI)의 1년 예산인 2,400만 달러를 넘어서는 수치이다(Abelson, 2006). 한편, 마이클 돌니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진보센터는 싱크탱크들 전체 에서 8위의 인용빈도를 나타냈다(Dolny, 2008).

(19)

이러한 모습들은 미국진보센터가 민주당 주류의 싱크탱크였던 진보정책연구소가 아 니라, 오히려 헤리티지재단을 자신의 모델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보정책연구소가 자신의 이념 지향과 정책 노선을 오른쪽으로 옮겨 가는 방식을 취했다면

9)

, 미국진보센 터는 그것은 그대로 왼쪽에 둔 채, 헤리티지재단의 활동 방식과 조직 형태를 닮으려 했 던 것이다. 실제로 설립자인 존 포데스타는 미국진보센터가 “민주당판(진보판) 헤리티 지재단”을 지향하고 있으며, 지난 한 세대 동안 미국 정치를 지배해 온 보수적 싱크탱크 의 ‘거울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홍일표, 2008 : 219~220). 이들은 지금까지 진보적 싱크탱크와 사회운동이 ‘단일이슈’에 매몰되어, 잘 게 쪼개져 있던 한계를 넘어 강력한 ‘종합형’ 싱크탱크를 건설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민주당 바깥에서 분출하는 새로운 힘들을 ‘연결’하고 ‘조정’하 는, 헤리티지재단이 공화당과 보수 진영 사이에서 수행해 왔던 것과 같은 정치적 역할까 지 담당해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2008년 대선과정에서 미국진보센터는 강력한 종합형 싱크탱크로서의 성장과 독자적 역할에는 성공적이었지만, 다른 싱크탱크들과 사회운동, 그리고 민주당을 연결 하고 조정하는 역할은 제대로 해내지 못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헤리티지재단이 자원 은행이나 지역정책 네트워크(SPN)와의 협력을 통해 자신의 정책 역량, 인적 네트워크를 나누고 보다 큰 세력을 만들어 가는데 적극적인 것과 달리, 미국진보센터는 다른 싱크탱 크들이나 사회운동들에 대한 ‘수직적 지원’과 ‘수평적 조정’ 모두에서 다분히 소극적이 었다. 예를 들어, 2008년 대선 기간 동안 미국 전역의 주요 진보적 싱크탱크들과 사회운 동단체가 모여 협력을 도모했던 진보적 아이디어 네트워크(PIN)에 미국진보센터는 아예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진보센터가 진보진영이 그토록 요구하던 ‘강력한 종합형 싱크탱크’이자, 프레이 밍(framing) 전쟁에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전사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음은 분명

9) 진보정책연구소는 <민주당 리더십 평의회> 창립 당시 두 명의 스탭 가운데 한명이었던 윌 마샬(Will Marshall)에 의해 1989년 창립되었다. 진보정책연구소가 만들었던 「새로운 경제정책 보고서」(The New Economy Policy Report)는 <평의회>는 물론 클린턴 행정부의 ‘세계화’와 ‘자유무역’ 중시의 경제정책 기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진보정책연구소는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민주당의 ‘중도화’를 이끄 는 정책과 논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20)

하다.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 출범을 전후로 “오바마의 싱크탱크”로 불릴 만큼 핵심적

‘ 정책 제안자’이자 ‘인물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맡았던 것 또한 틀림없다. 민주당과의 긴 밀한 관계는 공화당과 헤리티지재단의 그것에 결코 부족하지 않을 정도이다

10)

. 하지만 이는 자기 스스로 내걸었던 ‘진보판 헤리티지재단’이라는 자기 목표의 오직 절반만 수용 한 것이라 해야 정확할 것이다. 2008년 미국 대선과정에서 미국진보센터는 헤리티지재 단이 보수적 싱크탱크들과 사회운동에 대해 수행한 정치적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 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 바깥의 진보진영과 대중들로부터의 새로운 힘들이 분출하는 상황에서 절실히 요구되었던 역할은 그런 힘들을 엮어 주고, 그들 사이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정치적 조정자’로서의 그것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정확히 인식하 고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은 헤리티지재단이나 미국진보센터와 같이 거대한 규모 를 자랑하는 종합형 싱크탱크가 아니었다.

2) ʻ탁월한 조정자 싱크탱크ʼ로의 길 : ʻ네트워크 코디네이터ʼ(커먼윌연구소)의 등장

‘ 보수적 사회운동의 하부구조’에 관한 2002년 로브 스타인(Rob Stein)의 기념비적인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 내용 ― 1970년대 이후 미국 보수진영은 엄청난 자원을 보수 적 싱크탱크의 설립와 운용에 투입하여 미국 사회의 보수화를 주도해 온 반면, 진보진영 은 분열되고, 분산된 채 제대로 된 싱크탱크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한 상태로 지리멸렬하 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거부들의 거액후원이 필요하다 ― 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 하면서(Bai, 2007 : 23~45), ‘진보진영의 하부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은 빠른 속 도로 확산되었고, 이에 부응하여 2003년 미국진보센터가 설립되었다(York, 2005 : 193~

201).

그러나 2008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의 또 다른 고민이 확산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력한 ‘종합형’ 싱크탱크만이 아니라, 진보진영의 ‘단순 합’을 넘어서는

‘ 조정의 힘(power of coordination)’을 발휘할 수 있는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고민이었

10)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윈 포일너(Edwin Feulner) 대표는 미국진보센터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조차 하였다. 자신들이 공화당에 대해 갖는 ‘독립성’을 미국진보센터는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진보판 헤리티지재단’이 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York, 2005 : 211~217).

(21)

11)

. 수많은 싱크탱크들과 사회운동조직들 사이를 누비며, 그들을 엮고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 내는 간사의 존재, 즉 ‘네트워크 코디네이터(network coordinator)’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8년 대선 과정에서 그것은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막강한 자원동원 능력을 자랑하는 워싱턴DC의 미국진보센터가 아니라, 커먼윌연구소(Commonweal Insti- tute) 라는 샌프란시스코 소재의 작고 날렵한 싱크탱크에 의해 이루어졌다.

2001 년 창립된 커먼윌연구소는 진보적 가치지향을 분명히 밝히는 ‘종합형’ 싱크탱크 이자, 일종의 ‘싱크넷(think-net)’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커먼윌연구소는 2009년 현재 베리 켄달(Barry Kendall)이라는 연극연출가 출신의 젊은 연구자를 대표로 두고, 매 우 공세적인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정책 어젠다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창립 당시 연구소가 지향했던 모습은 지금 미국진보센터의 그것에 오히려 더 가까웠다. 이들 은 헤리티지재단을 필두로 한 보수적 싱크탱크들의 성공사례를 들어 자신들 역시 충분 히 성공할 수 있으며, 성공해야 한다는 포부를 크게 밝히기도 하였다.

12)

그러나 자원 동 원의 어려움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면서, 커먼윌연구소는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 을 시도하였다. 강력한 종합형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진보진영의 하부구조를 튼튼히 만 들어 나가려는 헤리티지 모델과 다른, 작고 유연한 싱크넷의 형태를 취하면서, 다른 싱 크탱크와 운동조직들을 엮고 묶는, “네트워크 코디네이터”라는 정치적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저 ‘자임’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2008년 대선 과정에서 실제로 탁월한 조정 역량을 발휘하였다.

커먼윌연구소가 주도한 ‘진보진영 원탁회의’(Progressive Roundtable)와 ‘진보적 아이 디어 네트워크’(Progressive Ideas Network)는 연구소의 ‘네트워크 코디네이터’로서의 역 할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된다. 2006년 처음 열렸던 ‘진보진영 원탁회의’는 “어

11) “보수적 하부구조는 지속적으로 ‘단기적 전술’을 ‘장기적 전략과 목표’에 맞도록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 냈다. 이는 수십 명의 핵심 활동가들이 논의하고 결정하여야 하는 사안의 우선성과 책임성에 관한 매주 회의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조정’과 ‘화합’이야말로 우파들의 성공을 이끌어 낸 핵심 도구들 이었다”(Forrest, 2007 : 6).

12) 창립 첫해엔 100만 달러 정도의 예산이 소요되겠지만, 둘째 해엔 1,000만 달러, 3차년도엔 1,500만 달러 이상의 재정규모를 예측하면서, “우리는 이미 사람도, 지식도, 커넥션도, 성공이 검증된 모델도 모두 갖추고 있다. 우리는 돈이 필요하다. 돈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 목표를 성사시킬 수 있 다.”는 강한 자신감을 피력하였다(http://www.commonwealinstitute.org/faqs.htm).

(22)

떻게 하면 진보적 아이디어를 보다 효과적으로 팔 수 있을 것인지, 어떻게 하면 진보적 커뮤니케이션을 조정해 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50여 개 이상 단체들의 토론을 거친 후,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17개의 이슈를 우선 선정하였다. 그리고 커먼윌연구소는 이들 아이디어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펀딩 전략을 만들고, 서로 엮어 주는 역할을 수행하였 다. 이는 자기 이슈만을 먼저 생각하는 진보진영의 구태를 벗고, 큰 틀에서의 우선순위 를 논의하며 결정하는 작업을 함께 한 뜻깊은 실험이라 할 수 있다

13)

. 여기서 커먼윌연 구소는 전체 진보진영의 ‘지도자(leader)’나 ‘기획자(facilitator)’로 모임을 주도한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를 움직이는 ‘간사(coordinator)’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 이다.

2007 년 12월 미국 전역에서 활동 중인 25개의 대표적 진보 싱크탱크 지도자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2004년 대선 패배 이후 진보진영 내부의 뼈아픈 반성의 결과로 내려진 결론, 즉 보다 큰 틀의 운동적 목표를 위해 진보진영의 아이디어 섹터가 보다 효율적이고 통합적인 논의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하였고, 3일간의 치열한 토론을 거쳐 몇 가지 결론에 합의하게 되었다

14)

. 우선 실행목표로 ‘진보적 아이디어 네 트워크(Progressive Ideas Network)’를 만들고, 다음 정권의 인수위원회에 제출할 정책자 료집을 출판하는 “이행 프로젝트(transition project)”를 실시한다고 결정하였다

15)

. 이후 이들은 일 년여 간의 준비를 거쳐 오바마 행정부 인수위원회에 「크게 생각하기」(Thinking Big : Progressive Ideas for a New Era) 를 직접 전달하는 것까지 완료하였다. 커먼윌연구

13) 2006년, 2007년에 이어 2009년 여름 세 번째 회의가 진행되었다.

14) 첫째, 조직의 논리를 넘어 운동진영 전체의 논리로 생각한다. 둘째, 보다 크고 긴 안목을 갖는다. 셋째, 진보진영의 조정력을 강화한다. 넷째, 섹터 내부의 다양한 차이를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건설한다.

다섯째, 자원과 훈련을 공유한다. 여섯째, 진보진영의 펀딩 자원과 전략을 개혁한다. 일곱째, 웹전략을 강화하고, 특히 넷루츠(Netroots)들에 대한 전략을 중시한다.

15) 진보적 아이디어 네트워크에 속한 단체들은 다음과 같다(영문표기). Campaign for America’s Future, Center for Community Change, 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 Center on Wisconsin Strategy, Commonweal Institute, Commonwealth Institute, Demos, Drum Major Institute for Public Policy, Economic Policy Institute, Grassroots Policy Project, Green for All, Institute for Agriculture and Trade Policy, Institute Policy Studies, Jamestown Project, New Vision, Opportunity Agenda, Progressive States Network, Defining Progress, Roosevelt Institution, Sightline Institute가 그것이다. 미국의 주요 진보 싱크 탱크들 상당수가 참여하고 있으며, 전국적 규모의 진보 사회운동단체들 또한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국진보센터는 참여하고 있지 않다.

(23)

소가 실무를 담당한 「크게 생각하기」의 목차 및 필진 구성을 미국진보센터가 주도한

「 미국을 위한 변화」와 비교해 보면, 두 싱크탱크들의 역할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 3> 「미국을 위한 변화」(CAP)와 「크게 생각하기」(PIN) 비교

「미국을 위한 변화」 (p.667) 「크게 생각하기」 (p.105)

책자의 구성 (기본목차)

- 백악관(12항목) - 경제정책(11) - 국내정책(19) - 국가안보정책(14)

- 앞을 내다보기(2) - 우리의 가치를 깨닫기(3) - 실천으로 옮기기(5)

필진의 구성

- 총 63명(편집자 2명 제외)

- 기획 실무 : 미국진보센터 액션펀드+새로운 민주주의 프로젝트

- 미국진보센터 소속 19명

- 관료 출신 50명(대부분 국장급 이상 고위직) - 교수 12명

- 싱크탱크+자문회사+재단 21명 - 법률회사 5명

- 총 18명(편집자 2명 제외)

- 기획 실무 : 제임스타운 프로젝트+커먼윌 연구소

- 커먼윌연구소 0명

- 관료 출신 2명(주의원 1명, 실무자급 1명) - 교수 0명(작가나 저널리스트 출신 다수) - PIN 소속 단체 20개 가운데 8개 단체에서

필자로 참여

우선 책의 분량이나 참여자의 숫자가 큰 차이가 난다. 그리고 「크게 생각하기」는 주로

‘ 진보의 가치’를 보다 전면에 내세우는 반면, 「미국을 위한 변화」는 매우 구체적인 정책 제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필진의 구성과 경력은 더욱 명백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을 위한 변화」는 전체 63명의 필자 중 50명이 관련 부처 국장급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으 며, 교수나 변호사 등의 비율도 높다. 또한 미국진보센터 소속이 전체의 1/3 가까이 되 고, 다른 싱크탱크 소속 필자는 브루킹스연구소(비상임), 아스펜연구소 등 일부를 제외 하고는 없다(대부분 컨설팅 회사나 재단 소속). 미국진보센터 스스로가 이 기획을 거의 완전히 주도하였고, 다른 싱크탱크들과의 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반면 「크게 생각하기」는 필자에 전직 관료 출신이 거의 없으며, 교수나 변호사도 전무하

다. 출판 프로젝트 전체의 기획 실무를 담당한 커먼윌연구소는 베리 켄달 대표가 서문을

공동집필했을 뿐 필자로 참여한 인물이 없다. 그 대신 진보적 아이디어 네트워크 소속

단체의 연구자들이 분야별로 집필에 참여함으로써, 미국 진보진영 전체의 통합적 정책

제안을 위한 프로젝트라는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24)

이처럼 미국진보센터가 주도한 「미국을 위한 변화」 프로젝트는 ‘정책 제안’과 ‘인물 제공’에 훨씬 초점을 맞춘 것인 반면, 커먼윌연구소는 「크게 생각하기」 프로젝트를 통해 선거 과정에서 진보진영의 정치적 결집과 협력에 기여하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커먼윌연구소는 막강한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프로젝트 전체의 구심 역할을 맡는 방식이 아니라, 각 분야를 대표하는 연구소와 단체들이 적절히 결합하 고 이슈 간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네트워크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강력한

‘ 정치적 동원자’로서의 싱크탱크라는 ‘헤리티지 모델’이 2008년 미국 대선과정에서 미 국진보센터와 커먼윌연구소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싱크탱크들로 ‘분화’되었고, 특히 이 과정에서 ‘네트워크 코디네이터’라는 진보 싱크탱크의 새로운 정치적 역할이 등장한 것 이다.

<표 4> 헤리티지 모델의 분화와 변용

헤리티지 재단 미국진보센터 커먼윌연구소

가치지향 명시적(ʻʻ보수ʼʼ) 명시적(ʻʻ진보ʼʼ) 명시적(ʻʻ진보ʼʼ)

정치개입 적극적 적극적 적극적

형태 종합형 종합형 종합형

규모 대형(ʻʻ풍부한 자원ʼʼ) 대형(ʻʻ풍부한 자원ʼʼ) 소형(ʻʻ싱크넷ʼʼ) 정당과의 관계 매우 긴밀(ʻʻ공화당ʼʼ) 매우 긴밀(ʻʻ민주당ʼʼ) 긴밀(ʻʻ민주당ʼʼ) 다른 조직(싱크탱크,

사회운동)들과의 관계 적극 협력 소극적 적극 협력

역할 정책 제안+인물 제공+정치적 동원(수직적 지원+수평적 조정)

정책 제안+인물 제공+정치적 동원(단독적)

정책 제안+

정치적 동원 (수평적 조정→

네트워크 코디네이터)

(25)

Ⅲ 한국 싱크탱크의 역사와 특징

1. 한국 싱크탱크의 역사와 현황

한국의 정책지식 생태계의 외형과 규모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결코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다양하다. 전형적인 관료 주도의 개발독재국가였던 한국에서 관료들의 정책생산을 지원하기 위한 ‘국책연구소’가 일찌감치 만들어졌다. 민주화 이후 에도 이들의 규모는 오히려 더 커졌고, 엄청난 자원을 여전히 동원하고 있다. 재벌들 역 시 자신들의 기업 활동에 직접적 도움을 제공하는 ‘기업연구소’들을 1980년대 중반 이 후 만들기 시작하였고, 이중 일부는 개별 기업 수준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정당의 국고보조 금 가운데 30%를 정책연구소 설치와 운영에 쓰도록 법률로 강제하도록 만들었다. 미국 의회의 입법지원기구를 본 딴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가 설립되었고, 빠르게 그 역할 을 키워 나가고 있다. 비상근 전문가들과의 협력에 의존하던 시민단체들과 달리, 정책 대안의 생산만을 주된 목적으로 삼으며 상근 정책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 민간 싱크탱 크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이 절에서는 독립 민간 싱크탱크를 제외한 여타 싱크탱크들의 역사와 현황을 개괄적으로 살펴본다.

1) 국책연구소 : 풍부한 자원, 취약한 독립성

1971 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설립을 시작으로 정부출연 연구기관(이하 국책연구

소)들의 설립이 이어졌다. 박정희 정권은 제한된 자원을 집중적,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국가 두뇌’들을 결집시켰고, 1970년대 중반에는 산업연구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6)

국토연구원 등 경제부처 산하 국책연구소들이 잇따라 설립되었다. 이후 1990년대에 통 일연구, 한국여성개발연구원, 한국행정연구원 등 비경제부처 산하 연구소들이 만들어졌 고,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부산발전연구원 등 광역시 도 연구원들도 같은 시기에 문을 열 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관료 주도의 정책생산 구조의 근본적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관료의 정책생산을 지원하기 위한 국책연구소들이 계속 만들어졌던 것이다. 가장 큰 비 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과학기술 분야였지만, 경제, 사회, 인문 분야 국책연구소들의 규모 또한 작지 않았다.

부처 산하의 국책연구소가 난립하면서 부처이기주의와 비효율적 중복연구, 중장기적 전략 연구 부족 등이 계속 문제가 되었고, 1999년 독일의 막스 프랑크 연구회 체제를 모델로 한 ‘연구회 시스템’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국무총리실 산하 5개 연구회 소속으로 국책연구소들이 분산, 배치되었고, 2005년 경제·인문사회 연구회로 통합을 거쳐 2010년 현재 기초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3개 연구회 체제로 운영 되고 있다.

현재 국책연구소들은 개발독재 시기 한국개발연구원과 같은 지위와 영향력을 더 이 상 갖진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막대한 자원을 운용하며 정책 수립에 필요한 기초자료 생산, 과학적 분석, 현실적 대안 제시를 계속하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23개 국책연구소들은 2009년 기준으로 4,000명에 가까운 연구 인력(박사급 1,400여명)과 6,000 억원이 넘는 한해 예산을 사용하고 있고, 15개 광역시 도 연구원들 역시 한해 1,000 억원이 넘는 예산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관련 부처나 해당 지자체로부터 ‘독 립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연구방향과 내용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조차 정권에 따라 반대의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하고, 자료 왜곡, 결

과 은폐 의혹도 이어진다. 국가 전체의 발전을 꾀하는 중장기적 비전(vision)과 정책 개

발보다 개별 부처 수준의 연구에 매몰되고 있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이러한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회 체제가 도입되었지만,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연구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27)

<표 5>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국책연구소 현황

기관명(설립연도) 총 인원

(박사, 명)

2010년 예산(단위: 백만원) 총 수입 정부출연금(%)

과학기술정책연구원(1987) 133(52) 16,126 64.7

국토연구원(1978) 346(106) 37,218 48

대외경제정책연구원(1989) 153(51) 27,804 80.9

산업연구원(1976) 163(75) 24,611 62.1

에너지경제연구원(1986) 143(53) 24,505 40.9

정보통신정책연구원(1985) 184(48) 23,177 29.5

통일연구원(1991) 65(30) 11,185 88

한국개발연구원(1971) 386(114) 68,544 72.9

한국교육개발원(1972) 174(70) 33,938 41.5

한국교육과정평가원(1998) 298(139) 114,932 26.9

한국교통연구원(1987) 264(78) 25,836 40.6

한국노동연구원(1988) 152(42) 30,784 49.3

한국농촌경제연구원(1978) 176(73) 27,178 54.1

한국법제연구원(1990) 46(36) 10,462 74.4

한국보건사회연구원(1971) 206(65) 24,075 66.2

한국여성정책연구원(1983) 86(42) 15,664 74.7

한국조세연구원(1992) 110(32) 21,169 87.8

한국직업능력개발원(1997) 133(71) 29,345 56.8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1989) 83(31) 8,688 76.6

한국해양수산개발원(1997) 175(53) 29,727 43.5

한국행정연구원(1991) 63(36) 12,237 76.3

한국형사정책연구원(1989) 63(29) 9,197 85.6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1992) 188(80) 22,038 59.9

합계 3790(1406) 648,440 53.8

경제·인문사회연구회 69 25,304 97

자료: 인원(국무총리실, 2009), 예산(기관경영공시 알리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원 및 예산(2009 연차보고서)

(28)

<표 6> 15개 광역시도연구원 현황

구분(설립연도) 재정운영(단위 : 억원)

예산 지자체 보조 기금

서울시정개발연구원(1992) 207.9 124.7(60%) 110

부산발전연구원(1992) 85.5 60.9(71%) 111.6

대구경북연구원(1991) 87.2 54(62%) 97.2

인천발전연구원(1995) 64.6 44.6(69%) 107

광주발전연구원(2007) 7* 2.6(37%)* 81

대전발전연구원(2001) 31.1* 19.5(63%)* 9

울산발전연구원(2000) 61.2 21.9(36%) 19.4

경기개발연구원(1995) 160 99(56%)* 272

강원발전연구원(1994) 83.3 25(30%) 201

충북개발연구원(1990) 59 13(24%)* 90

충남발전연구원(1995) 67.9 25(37%) 125

전북발전연구원(2005) 42.9 25(58%) 9.2

전남발전연구원(1991) 15* 0* 157

경남발전연구원(1992) 134.7* 19.4(14%)* 95.5

제주발전연구원(1997) 21.7* 13(60%)* 50

자료: 각 기관 홈페이지(2010년 4월 검색, *와 기금은 2007년말 기준)

2) 기업연구소 : 막강한 영향력, 극심한 불균형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급속한 시장화를 동반하였다. IMF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전면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경제위기를 몰고 온 주범으로 몰리던 재벌

들은 역설적으로 위기 탈출 과정의 최고 수혜자가 되었다. 특히 ‘1위 기업’으로서의 삼

성의 힘은 이미 사회 전체를 장악한 것으로 비판받을 정도이다. 흔히 세리(SERI)로 불리

는 삼성경제연구소 역시 마찬가지다. 1981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

설립된 이후 1984년 대우경제연구소, 1986년 삼성경제연구소, 현대경제연구원, LG경제

연구원 등이 잇따라 설립되었다. 이들은 개별 기업들의 경영자문과 조사기능을 주로 담

당하지만, 거시경제 동향 및 경제·사회 환경 변화 분석, 기업경영 및 시장 활성화에 필

요한 정책 제언 역할도 수행한다.

(29)

삼성경제연구소는 다른 기업연구소들과 달리 훨씬 적극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제 언과 새로운 의제 선정을 시도하였다. 참여정부의 ‘국민소득 2만달러론’, ‘동북아 금융 허브론’, ‘산업연구단지 조성방안’ 등 주요 국정과제가 대통령에게 제출된 삼성경제연구 소의 보고서 내용을 따른 것이라는 얘기는 주지의 사실이며, 삼성경제연구소와 정부 사 이의 ‘회전문’(revolving door)은 매우 잘 돌고 있다. 정책결정자들에 대한 직접적 영향력 행사만이 아니라, 언론과 대중들에 대한 간접적이지만 더욱 막강한 영향력 행사가 이루 어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홈페이지 회원수는 170만명이 넘고, 월 10만원을 내는 유료회원만 1만명이 넘는다. 국내 언론에선 하루 한 건 이상의 기사가 삼성경제연구소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브루킹스연구소와 같은 미국 싱크 탱크의 영향력 행사 방식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곳으로 삼성경제연구소를 꼽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표 7> 경제, 경영, 산업 분야 주요 기업연구소

연구소 설립연도 상근연구원(단위: 명)

삼성경제연구소 1986 104

LG경제연구원 1986 90

포스코경영연구소 2000 78

현대경제연구원 1986 41

SK경영경제연구소 2002 70

KT경제경영연구소 1998 82

GS건설경제연구소* 2008 7

롯데경제경영연구소* 2002 15

CJ경영연구소* 2003 20

한국금융연구원 1991 50

한국경제연구원 1981 24

중소기업연구원* 2004 43

자본시장연구원 1992 54

한국건설산업연구원* 1995 30

주택산업연구원* 1994 10

자유기업원* 1996 20

자료 :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한경BUSINESS, 2009), 한겨레경제연구소 자체조사(*표시)

(30)

100 명이 넘는 석·박사급 연구자를 두고, 1년 영업수익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삼성경제 연구소만이 아니라, 다른 기업연구소들 역시 수십명의 박사급 전문연구인력을 두고 다 양한 연구조사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의 한국경제연구원도 십수 명의 전문연구자들이 ‘친기업, 친시장’의 정책이 만들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반면 ‘친 노동’ 싱크탱크들의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사실상 ‘활동중 단’ 상태이며, 주요 산별노조 정책연구소들의 상근 연구자들은 모두 합해도 10명을 겨우 넘는다. ‘자본’과 ‘노동’의 정책 역량의 심각한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욱 확대 되는 양상이다. 그동안 노동 관련 정책 생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던 한국노동연 구원(국책) 또한 현 정부 들어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표 8> 노동조합 부설 싱크탱크 현황 (단위 : 명)

연구소 설립연도 상근연구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1995 6

전국공공서비스노조 사회공공연구소 2008 5

금융산업노조 금융경제연구소 2004 3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2008 3

전국공무원노조 정책연구원 2005 3

전국교직원노조 참교육연구소 2000 0

자료 : 한겨레경제연구소 자체조사(2010)

3) 정당연구소 : 부족한 역량, 중요한 위상

국책연구소의 독립성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자본’과 ‘노동’의 정책 역량 불균형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정당의 역할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선 정당의 정치

역량과 정책 역량 제고가 동시에 필요하다. ‘정책정당’에 대한 시민사회로부터의 오랜

요구가 정치적으로 수용되면서 중요한 제도변화도 이루어졌다. 2004년 정당법과 정치자

금법 개정으로 정당 국고보조금의 30%는 정책연구소 설립과 운영, 사업 예산으로 사용

하도록 의무화된 것이다. 이로써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한해 약 70억

원,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은 40억원가량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교섭단체와 비교섭

(31)

단체 사이의 지나친 격차가 문제로 지적되지만, 적지 않은 국가예산이 정당의 정책 생산 을 위해 사용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연구소들의 역량은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 여의도연구소가 1995 년에 창립되었고, 민주정책연구원은 2004년 열린정책연구원을 시작으로 한반도정 책연구원, 국가전략연구소 등을 거쳐, 2008년부터 현재의 명칭으로 운영되고 있다. 나머 지 연구소들도 거의 대부분 최근 2∼3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 소는 분당 이전에 가장 모범적인 활동을 수행한다는 평가를 들었으나, 분당 이후에는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진보신당 상상연구소로 나누어져 활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사민당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기민당의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등 독일의 정당 정치재단을 모델로 시작된 한국의 정당연구소 체제는 독일과 달리 중장기적 연구나 깊 이 있는 학술조사, 시민교육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정당의 단기적 요구 를 충족시키는 역할에 급급하며, 지원 예산의 상당 부분을 당직자들의 급여 지원에 전용 하고 있다. 이처럼 당내에서의 불안정한 지위는 시민사회로부터의 다양한 정책적 요구 를 결집하고 조정하는 것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정당연구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당연구소가 강화되어야 국책연구소의 과도한 정치화를 제어 할 수 있다. 정책 전문가들 사이의 정책논쟁과 협력의 구조를 발전시킬 수 있는 힘과 명분을 갖춘 곳 역시 정당연구소이다. 관료들이 만든 높고 두꺼운 장벽 안으로 시민사회 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선 정당연구소에 의한 증폭이 필요한 것이다.

<표 9> 정당 정책연구소 현황

구분(설립연도) 총 연구인력(박사)

(단위: 명)

총 수입(정당지원금) (단위: 백만원)

여의도연구소(1995) 58(10) 7,094(6,454)

민주정책연구원(2008) 53(17) 4,446(3,883)

새세상연구소(2009) 11(1) 845(572)

상상연구소(2008) 8(1) 248(202)

사람희망정책연구소(2008) 5(2) 435(227)

자유정책연구원(2008) 16(5) 788(654)

미래전략개발연구소(2008) 3(0) 636(635)

자료 : 2009년도 각 정당이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정책연구소의 연간 활동실적 보고> (2010)

(32)

의원들의 의정·입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국회 입법지원기구가 별도로 설립된 것도 중요한 변화이다. 미국의 의회예산국(CBO)과 입법조사국(CRS)을 본뜬 국회 예산정책 처와 입법조사처가 그것이다. 해당 분야 박사학위 소지자나 입법고시 출신자들로 구성 된 이 두 기관은 빠른 속도로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이 두 기관으로 인해 의원과 행정부 관료 사이의 정책경쟁이 최소한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평가가 늘고 있다.

<표 10> 국회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

기관명(설립연도) 인원(단위: 명) 예산(단위: 억원)

정원 현원(박사/조사관) 2009년 2010년

국회입법조사처(2007) 101 87(41 / 57) 77.9 100.7 국회예산정책처(2003) 116 102(39 / 71) 113 127

합계 217 189(80/128) 190.9 227.7

자료 : 인원(각 기관 「업무현황」, 2010.6), 예산(각 기관 「2010년도 성과계획서」, 2009)

2. 한국의 독립 민간 싱크탱크

16)

1) 민주화 이후 한국 시민사회 정책역량의 결집과 한계

① ʻ준싱크탱크ʼ로서의 시민단체

압도적인 국가 우위, 그리고 관료 주도로 이루어졌던 한국의 정책생산은 민주화(democra- tization) 를 거치며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민주화운동은 1987년 이후 민중운동(peopleʼs movements) 과 시민운동(citizenʼs movements)으로 분화하였고, 특히 시민운동은 대학교 수와 변호사 등 정책전문가들을 결집시키면서 정책과정에 대한 개입을 더욱 적극적으로 시도하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부패방지법 제정, 세법, 상법, 선거법, 정치자금법 개 정 등 수많은 정책 변화를 이끌어 낸 참여연대는 가장 전형적이고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1994년 창립한 참여연대에는 현재 40명이 넘는 상근 활동가와 수백 명에 달하는

16) 이 절은 주로 홍일표(2011a : 99-105)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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