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싱크탱크의 새로운 역할 : ʻ헤리티지 모델ʼ의 분화와 진보 싱크탱크의 역할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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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ʻ강력한 종합형 싱크탱크ʼ로의 길 : ʻ진보판 헤리티지재단ʼ(미국진보센터)의 성공과 한계

미국진보센터는 2003년 클린턴 행정부 당시 백악관 수석보좌관을 지냈던 존 포데스 타(John Podesta)의 주도로 창립되었다. 창립 당시부터 그것을 주도한 인물이 존 포데스 타라는 사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포함한 민주당의 중심적 인물들이 큰 관심과 호응을 보냈다는 점,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허버트와 매리언 샌들러(Herbert and Marion Sandler) 등 민주당 성향 억만장자들의 거액 기부가 “씨앗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는 이유 등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吉原欽一, 2005 : 69~92). 미국진보센터는 창립 5년여 만에 이미 규모(스탭 숫자 125명, 1년 예산 2,500만 달러 이상)와 영향력(언론 보 도 빈도 8위)8) 등에서 이미 다른 진보 싱크탱크들을 완전히 압도하고 기존의 주류 싱크 탱크들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미국진보센터의 창립은 진보 진영에도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강력한 종합형 싱크탱 크’가 필요하다는 깊은 성찰로부터 시작된 것이다(Bai, 2007 : 205~206). 헤리티지재단 이나 케이토연구소와 같은 보수적 싱크탱크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튼튼한 조직이 필요하며, 재정후원도 단기 프로젝트 중심이 아니라 5년에서 10년 정도의 장기적인 투 자가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것이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초기 자금 후원자들의 공통된 인 식이었다(York, 2005 : 189~219). 또한 미국진보센터는 커뮤니케이션 부서에 16명이 배 치되어 있고,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부서에 이와 별도로 15명이 근무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미국진보센터가 대중들, 특히 블로거를 포함한 인터넷 사용자들과의 소통을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수치이다(Podesta and Halpin, 2006).

7) 이 절은 홍일표(2009a : 299-307)의 내용을 주로 재구성한 것이다.

8) 도날드 아벨슨이 조사한 미국 싱크탱크들의 재정규모와 비교하면, 이는 소위 진보적 싱크탱크들 가운데 서 최대이며, 2004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미국기업연구소(AEI)의 1년 예산인 2,400만 달러를 넘어서는 수치이다(Abelson, 2006). 한편, 마이클 돌니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진보센터는 싱크탱크들 전체 에서 8위의 인용빈도를 나타냈다(Dolny, 2008).

이러한 모습들은 미국진보센터가 민주당 주류의 싱크탱크였던 진보정책연구소가 아 니라, 오히려 헤리티지재단을 자신의 모델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보정책연구소가 자신의 이념 지향과 정책 노선을 오른쪽으로 옮겨 가는 방식을 취했다면9), 미국진보센 터는 그것은 그대로 왼쪽에 둔 채, 헤리티지재단의 활동 방식과 조직 형태를 닮으려 했 던 것이다. 실제로 설립자인 존 포데스타는 미국진보센터가 “민주당판(진보판) 헤리티 지재단”을 지향하고 있으며, 지난 한 세대 동안 미국 정치를 지배해 온 보수적 싱크탱크 의 ‘거울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홍일표, 2008 : 219~220). 이들은 지금까지 진보적 싱크탱크와 사회운동이 ‘단일이슈’에 매몰되어, 잘 게 쪼개져 있던 한계를 넘어 강력한 ‘종합형’ 싱크탱크를 건설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민주당 바깥에서 분출하는 새로운 힘들을 ‘연결’하고 ‘조정’하 는, 헤리티지재단이 공화당과 보수 진영 사이에서 수행해 왔던 것과 같은 정치적 역할까 지 담당해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2008년 대선과정에서 미국진보센터는 강력한 종합형 싱크탱크로서의 성장과 독자적 역할에는 성공적이었지만, 다른 싱크탱크들과 사회운동, 그리고 민주당을 연결 하고 조정하는 역할은 제대로 해내지 못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헤리티지재단이 자원 은행이나 지역정책 네트워크(SPN)와의 협력을 통해 자신의 정책 역량, 인적 네트워크를 나누고 보다 큰 세력을 만들어 가는데 적극적인 것과 달리, 미국진보센터는 다른 싱크탱 크들이나 사회운동들에 대한 ‘수직적 지원’과 ‘수평적 조정’ 모두에서 다분히 소극적이 었다. 예를 들어, 2008년 대선 기간 동안 미국 전역의 주요 진보적 싱크탱크들과 사회운 동단체가 모여 협력을 도모했던 진보적 아이디어 네트워크(PIN)에 미국진보센터는 아예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진보센터가 진보진영이 그토록 요구하던 ‘강력한 종합형 싱크탱크’이자, 프레이 밍(framing) 전쟁에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전사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음은 분명

9) 진보정책연구소는 <민주당 리더십 평의회> 창립 당시 두 명의 스탭 가운데 한명이었던 윌 마샬(Will Marshall)에 의해 1989년 창립되었다. 진보정책연구소가 만들었던 「새로운 경제정책 보고서」(The New Economy Policy Report)는 <평의회>는 물론 클린턴 행정부의 ‘세계화’와 ‘자유무역’ 중시의 경제정책 기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진보정책연구소는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민주당의 ‘중도화’를 이끄 는 정책과 논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다.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 출범을 전후로 “오바마의 싱크탱크”로 불릴 만큼 핵심적

‘정책 제안자’이자 ‘인물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맡았던 것 또한 틀림없다. 민주당과의 긴 밀한 관계는 공화당과 헤리티지재단의 그것에 결코 부족하지 않을 정도이다10). 하지만 이는 자기 스스로 내걸었던 ‘진보판 헤리티지재단’이라는 자기 목표의 오직 절반만 수용 한 것이라 해야 정확할 것이다. 2008년 미국 대선과정에서 미국진보센터는 헤리티지재 단이 보수적 싱크탱크들과 사회운동에 대해 수행한 정치적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 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 바깥의 진보진영과 대중들로부터의 새로운 힘들이 분출하는 상황에서 절실히 요구되었던 역할은 그런 힘들을 엮어 주고, 그들 사이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정치적 조정자’로서의 그것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정확히 인식하 고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은 헤리티지재단이나 미국진보센터와 같이 거대한 규모 를 자랑하는 종합형 싱크탱크가 아니었다.

2) ʻ탁월한 조정자 싱크탱크ʼ로의 길 : ʻ네트워크 코디네이터ʼ(커먼윌연구소)의 등장

‘보수적 사회운동의 하부구조’에 관한 2002년 로브 스타인(Rob Stein)의 기념비적인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 내용 ― 1970년대 이후 미국 보수진영은 엄청난 자원을 보수 적 싱크탱크의 설립와 운용에 투입하여 미국 사회의 보수화를 주도해 온 반면, 진보진영 은 분열되고, 분산된 채 제대로 된 싱크탱크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한 상태로 지리멸렬하 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거부들의 거액후원이 필요하다 ― 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 하면서(Bai, 2007 : 23~45), ‘진보진영의 하부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은 빠른 속 도로 확산되었고, 이에 부응하여 2003년 미국진보센터가 설립되었다(York, 2005 : 193~

201).

그러나 2008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의 또 다른 고민이 확산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력한 ‘종합형’ 싱크탱크만이 아니라, 진보진영의 ‘단순 합’을 넘어서는

‘조정의 힘(power of coordination)’을 발휘할 수 있는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고민이었

10)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윈 포일너(Edwin Feulner) 대표는 미국진보센터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조차 하였다. 자신들이 공화당에 대해 갖는 ‘독립성’을 미국진보센터는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진보판 헤리티지재단’이 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York, 2005 : 211~217).

11). 수많은 싱크탱크들과 사회운동조직들 사이를 누비며, 그들을 엮고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 내는 간사의 존재, 즉 ‘네트워크 코디네이터(network coordinator)’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8년 대선 과정에서 그것은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막강한 자원동원 능력을 자랑하는 워싱턴DC의 미국진보센터가 아니라, 커먼윌연구소(Commonweal Insti-tute)라는 샌프란시스코 소재의 작고 날렵한 싱크탱크에 의해 이루어졌다.

2001년 창립된 커먼윌연구소는 진보적 가치지향을 분명히 밝히는 ‘종합형’ 싱크탱크 이자, 일종의 ‘싱크넷(think-net)’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커먼윌연구소는 2009년 현재 베리 켄달(Barry Kendall)이라는 연극연출가 출신의 젊은 연구자를 대표로 두고, 매 우 공세적인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정책 어젠다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창립 당시 연구소가 지향했던 모습은 지금 미국진보센터의 그것에 오히려 더 가까웠다. 이들 은 헤리티지재단을 필두로 한 보수적 싱크탱크들의 성공사례를 들어 자신들 역시 충분 히 성공할 수 있으며, 성공해야 한다는 포부를 크게 밝히기도 하였다.12) 그러나 자원 동 원의 어려움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면서, 커먼윌연구소는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 을 시도하였다. 강력한 종합형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진보진영의 하부구조를 튼튼히 만 들어 나가려는 헤리티지 모델과 다른, 작고 유연한 싱크넷의 형태를 취하면서, 다른 싱 크탱크와 운동조직들을 엮고 묶는, “네트워크 코디네이터”라는 정치적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저 ‘자임’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2008년 대선 과정에서 실제로 탁월한 조정 역량을 발휘하였다.

커먼윌연구소가 주도한 ‘진보진영 원탁회의’(Progressive Roundtable)와 ‘진보적 아이 디어 네트워크’(Progressive Ideas Network)는 연구소의 ‘네트워크 코디네이터’로서의 역 할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된다. 2006년 처음 열렸던 ‘진보진영 원탁회의’는 “어

커먼윌연구소가 주도한 ‘진보진영 원탁회의’(Progressive Roundtable)와 ‘진보적 아이 디어 네트워크’(Progressive Ideas Network)는 연구소의 ‘네트워크 코디네이터’로서의 역 할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된다. 2006년 처음 열렸던 ‘진보진영 원탁회의’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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