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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싱크탱크의 역사와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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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리치는 “싱크탱크란 ‘독립적이고, 이해관계에 기반하지 않은 비영리 조직으로, 정책형성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문가의 식견과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곳”이 라고 설명한다(Rich, 2004). 세계 싱크탱크 비교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제임스 맥갠 등은 싱크탱크를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책 지향의 연구와 분석, 조언을 생산하는 조직으로, 정책결정자와 대중들이 공공정책 이슈들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갖고 결정을 내릴 수 있 도록 돕는다. 이들은 학술 이론과 과학 패러다임을 정책과 관련된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기관”이라고 정의한다(McGann and Sabatini, 2011 : 14).

그러나 “싱크탱크에 관한 논의는 ‘싱크탱크란 무엇인가’라는 성가신 질문에 완전히 발목이 잡혀 버렸다.”는 사이몬 제임스(James, 1998 : 409-410)의 지적은 여전히 옳아 보 인다. 세계 싱크탱크의 표준처럼 논해지는 ‘미국식’ 싱크탱크라는 개념조차 단일한 것은 아니다. ‘학생 없는 대학’(1세대 : 1832~1945), ‘정부 계약의 수행자’(2세대 : 1946~1970),

‘정치적 주창자’(3세대 : 1971-1994), ‘정치인 장식품’(4세대 : 1995~현재) 등 다양한 유 형과 개념으로 미국 싱크탱크도 변해 왔기 때문이다(Weaver, 1989 ; Abelson, 2006). 제 임스 맥갠은 싱크탱크를 부설기관 여부에 따라 훨씬 다양하게 분류해 본다(McGann, 2007 : 11-20).

2) 이 절은 홍일표(2011a : 95-96), 홍일표(2009a : 286-288)의 내용을 주로 재구성한 것이다.

<표 1> 싱크탱크의 유형별 분류(McGann, 2007 : 11-20을 재구성)

(a traditional think tank)

학술적-종합형/ 하는데 상당히 유용한 도움을 준다(Stone, Denham and Garnett(eds.), 1998 ; McGann and Wever(eds.), 2005(2000) ; Stone and Denham(eds.), 2004 : McGann and Sabatini, 2011 ; McGann, 2011).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싱크탱크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미국 중심적이다. 예를 들어 제임스 맥갠이 주도하는 세계 싱크탱크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2010년 현재 한국의 싱크탱크 숫자는 35개로 보고 되고 있다(McGann, 2011).

정책수요에 부응한 정부계약 수행자로서의 싱크탱크 2세대(1946~1970년)에는 랜드연 구소와 도시연구소 등이 설립되었다. 소위 ‘싱크탱크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큰 변화를 이끈 헤리티지재단이 등장하고, 정치적 주창조직으로서의 싱크탱크들이 급증한 제3세 대(1971~1994년)에는 헤리티지재단 외에도 케이토연구소, 진보정책연구소 등 보수와 진보의 이념 지향이 뚜렷한 싱크탱크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개별 정치인들의 장식품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며, 전직 대통령이나 현역 정치인 개인을 위한 싱크탱크들이 많이 늘어났고, 이 시기를 미국 싱크탱크 제4세대로 부른다. 이러한 싱크 탱크들의 역사적 유형은 현재 ‘단절’보다 ‘연속’, ‘대체’보다 ‘중첩’의 개념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헌재 미국 전역에 걸쳐 다양한 유형의 싱크탱크들이 ‘공존’하고 있다(홍 일표, 2008 : 38).

미국 싱크탱크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싱크탱크들의 평균 인적 규모(스 탭과 연구원)는 50명 정도이며, 1년 예산은 50만~70만 달러 정도이다(Rich, 2004 : 13~28).

이는 싱크탱크 세계의 ‘양극화’가 반영된 결과이다. 예를 들어 랜드연구소는 2004년 말 기준으로 한해 예산이 2억 2천 7백만 달러를 넘고, 스텝과 연구원이 1,600명을 넘는다.

브루킹스연구소 4천 7백 7십만 달러, 헤리티지재단 3천 7백 6십만 달러 등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싱크탱크들이 있는 반면, 10명도 채 안 되는 연구원과 스텝, 20~30만 달러의 1년 예산으로 운용되는 싱크탱크들도 적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Abelson, 2006 : 238).

규모의 차이는 싱크탱크의 ‘영향력 차이’를 의미하기도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보수적 싱크탱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으며, 중도적 성향의 싱크탱크들이 그들과 경합을 벌여 왔다. 그러나 진보적 싱크탱크들은 정치적 영향력이나 언론인용 빈도 등에서 확연히 낮 았다고 분석된다(홍일표, 2008 : 44~46). 1970년대 이후 계속되어 온 미국 정치의 양극 화는 미국 싱크탱크들의 이념적 분화와 양극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또한 1970 년대 이후 미국 싱크탱크의 숫자가 급증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 역시 주로 보수적 싱 크탱크들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McGann, 2006).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싱크탱크는 미국의 정치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더불어 지난 삼사십여 년 간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들은 보수적 가치를 담은 정책을 만들고, 그것이 현실의 정치를 통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 전쟁(war of idea)’

에서 우위를 점해 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수적 싱크탱크들은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종합형’ 싱크탱크가 많은 반면, 진보적 싱크탱크들은 여성, 환경, 시민권, 평화 등 단일 이슈를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은 특징을 보인다(Rich, 2004 : 13~

28). 그리고 헤리티지재단으로 대표되는 보수적 싱크탱크들이 ‘정치적 동원자’의 역할을 협력적으로 수행해 왔던 것과 달리, 지난 수십 년간 진보적 사회운동과 싱크탱크들의 활동은 자기 조직과 이슈의 경계를 쉽게 넘어서지 못한 채 파편화된 양상을 보여 왔던 것이다(Rose, 2000).

이와 같은 보수와 진보 싱크탱크의 발전 양상의 차이는 그들이 처해 있던 정치적 기 회구조(정당과 싱크탱크의 관계)와 사회적 기회구조(재단과 싱크탱크의 관계)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930년부터 무려 64년간 하원, 그리고 1954년부터 40년간 상원의 다수당의 지위를 놓치지 않았던 민주당이 상임위원회를 장악할 수 있었고, 이는 개별 입법 활동에서 막강한 우위를 점하는 구조를 의미하였다. 사회운동들 역시 이러한 구조 에 적응하였고, 진보적 성향의 싱크탱크들 대부분도 ‘단일이슈형’으로 존재하였다. 그들 은 항상 “내 이슈는 어떻게 되지?”라는 고민만 주로 했던 것이다(Armstrong and Zúniga, 2006 : 37~39).

한편 미국의 보수적 재단들은 보수적 가치와 이념을 분명히 내세우는 보수적 싱크탱 크들에 대한 집중적 지원 전략을 분명히 하였다. 이들은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단기적 지원방식보다 조직 자체에 대한 지원, 그리고 이념과 사람을 키워낼 수 있는 중장기적 지원에 공을 들여왔다(Rich, 2005 : 21~24). 반면 자유주의적․진보적 성향의 재단들은 개별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단기 지원, 분산 지원의 후원 전략을 취함으로써 진보적 사 회운동과 싱크탱크들이 단일이슈에만 집중하는데 일조하였다(홍일표, 2008: 60~62). 이 러한 ‘보수’와 ‘진보’ 싱크탱크들의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싱 크탱크들은 다양한 수단과 경로를 통해 ‘아이디어’와 ‘사람’의 공급자, ‘정치적 동원자’

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규모와 영향력의 성장을 거듭해 왔다(Abelso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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