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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통합의료모형의 모색 63)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과제 <<

1. 한국형 통합의료모형의 모색 63)

우리나라의 의료전달체계는 일면 모순되는 두 가지 양상을 가지고 있 다. 공급의 90% 이상을 민간에 의존하는 반면, 공적 의료보장체계인 건 강보험은 실질적으로 정부에 의해 관리‧운영된다. 이윤 추구를 속성으로 하는 민간자본이 공공성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공적체계에, 그것도 ‘가 격’을 매개로 통제받기 때문에 ‘저수가 논쟁’과 같은 의견대립은 불가피 하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한국의료전달체계가 보여주고 있 는 공급의 불균형, 중복과 비효율, 불필요한 과잉의료이용, 지불제도의 한계 등의 출발점이 이 모순점인 것이다.

급성기질환 치료 중심의 현재까지의 의료전달체계가 평균수명의 연장 과 위생수준 개선 등에 기여하였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과 연 이와 같은 과거의 체계가 계속하여 유지된다면 미래에까지도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급성기와 장기요양으로 양분된 우리나라의 의료기관 및 병상자원은 만성 질환 시대를 맞아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예방과 평생건강관리, 급성기 치 료 이후의 회복기 등 아급성기(sub-acute)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기에 한계가 적지 않다. 최근 급속히 증가하는 요양병원은 이 ‘틈새(gap)’를 메 꾸어준다는 긍정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질적 수준이 보장되지 않은 서비 스,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의 수행, 환자 안전 담보 등을 위한 인 프라 확보에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급격한 노령화를 반영한 만성질환의 효율적 관리,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의료의 질, 의료체계의 효율성 증진, 국민의 건강수준 향상 등에 보다 무게를 둔 새로운 의료체

63) 이 부분은 『보건행정학회지』 제24권제4호(2014.12)에 게재된 신영석‧윤장호(2014)의 논 문 중 결론 부분을 중심으로 재정리‧재작성된 것으로서, 해당 논문의 제1저자가 본 연구 를 위해 작성하였고, 사전에 한국보건행정학회의 허락을 얻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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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앞서 제2장의 개념 정의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회체계의 일종으로서 의료체계는 그 하위체계(sub-system)로서 의료공급체계나 의료전달체 계, 지불보상체계 등으로 구성되어진다. 따라서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한국적 보건의료체계의 제안을 위해서는 상호연관된 이들 하위체계의 개 편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가장 강력한 규제 수단 이라 할 수 있는 지불제도의 개편이다. 현행 지불제도인 행위별 수가제 (fee for service)는 비용 낭비적이고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공급자들의 유인수요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하며, 불필요한 의료비용과 과잉진료를 낳는 부작용을 지적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러나 지불제도의 개편은 의료인들의 이윤동기와 이용자들의 서비스 이용행태 에 동시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강력한 파급효과를 가지면서도 민감한 주 제인 ‘가격’의 변화에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 른 사회적 비용 역시 무시하지 못할 수준일 것으로 예상되기에, 먼저 ‘가 치’와 ‘질’이라는 범주를 포함하는 가치 기반의 지불제도64)를 보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사료된다.

의료공급 측면에서도 의료체계의 개편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과잉‧

중복투자와 무차별적인 과당경쟁에 따른 비효율을 지적할 수는 있으되, 공급을 통제할 적절한 방안은 찾기 어렵다. 공급자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나, 대부분의 의료서비스 공급이 민간 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자체적인 통제 기제가 구성될 수 있을 것인지, 또한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공급의 상대를 이루는 소비자들의 이용행태에도 부정적인 측면이 존재한

64) 가치 기반 지불제도에 대해서는 이번 장의 두 번째 제안에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음.

제4장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과제 163

다. 문지기(gate-keeping) 역할이 미흡한 상태이기 때문에 약간의 금전 적 본인 부담만 감수한다면 얼마든지 상급종합병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결국 강제력을 가진 규제를 통해 의료이용을 통제하거나 공급을 조절한 후, 이를 토대로 공급체계를 개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사료 된다.

의료전달체계에서의 접근을 통한 의료체계 개편 역시 쉽지 않은 일이 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의료서비스 공급의 대부분을 민간에 의존하 는 미국이 사적보장체계에서 공적체계로 전환을 모색하면서 실험하고 있 는 ACO 모형은 상당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과 우 리나라의 보건의료 환경과 국민들의 가치관이 다르고 의료서비스 공급과 이용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상이하지만, 부분적인 성과 를 내고 있는 ACO 모형을 우리나라 통합의료체계가 검토할 수 있는 하 나의 모형이라는 점에서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독일 통합의료체계의 ‘집단 계약’ 사례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지금과 같 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단일보험자 체계는 유지하되, 의료서비스 공급자 들은 ‘공급 네트워크’로 다각화할 것을 제안한다. 공급자는 의원, 병원, 종합병원을 망라하여 자발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형 태는 모든 종별 의료기관에 열려진 미국 ACO 방식으로 출발하기에는 위 험 부담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어디까지나 첫 출발점은 일차의료 중심 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실질적 주치의의 역할을 하는 제공조직 모형이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특별한 사유가 아닌 이상 에는 상급종합병원 중 최상위 의료기관들의 참여는 제한하는 것이 바람 직할 것으로 사료된다.

네트워크 구성의 단위는 지역이나 구성 요양기관의 종별 등 여러 가지 기준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나, 자발성을 가지고 형성된 네트워크들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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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소비자들은 하나를 선택하여 가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물론 네 트워크는 선택 기간이 종료되면 자유롭게 바꾸어 이동하는 것이 허용된 다. 의료기관이 속한 지역적 상황과 보유한 자원, 주위 다른 의료기관과 의 연계협력 정도, 주민들의 건강 수준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 크가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형 통합형 모형이 일차의료를 강화한 형태로 보다 진전된다면 모든 종류의 의원급 개별 과들이 한 개의 상급종 합병원을 모태로 모일 수도 있고, 의원 및 병원 급끼리만 네트워크를 구 성하되 전문성이 필요한 환자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상급종합병원에 의 뢰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으며, 지역사회 내의 일차의료기관들이 네트워 크를 이루는 형태도 예상할 수 있다.

〔그림 4-1〕 단일 보험자-다중 네트워크의 개념틀

자료: 신영석‧윤장호(2014)

제4장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과제 165

소비자들에게 네트워크 선택권이 있듯이 개별 요양기관들에게도 일정 한 기간을 기준으로 하여 기존의 네트워크에 잔존해 있을 수도 있고, 독 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한다. 물론 여러 개의 네트워크에 중복하여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며, 네트워크끼리의 통합도 전향적으로 검토될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

과감하게 네트워크의 구성 방식에 따라 급여 범위를 조정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독일의 베를린 프로젝트 사례에서 보았듯이 필수 급여 범위를 설정하되, 단일 보험자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소득재분배 기능 과 사회연대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그 범위를 대폭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 다(독일 베를린 프로젝트는 70~75%). 네트워크가 자체적으로, 또는 네 트워크와 이용자가 계약을 통해 허용하는 별도의 성과 기반 추가 급여는 제한적인 적용 범위가 필요할 것이며, 네트워크에 따른 보험료의 차등화 역시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하므로 우선은 허용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해 볼 것을 제안한다. 다만 가입자의 입장에서 본인이 가입한 네트워크 내 요양기관을 이용하거나 의뢰를 받아 다른 전문기관을 이용할 때는 법적 으로 정해진 본인부담을 하되 본인이 가입한 네트워크와 관련 없는 요양 기관을 이용할 때는 모든 비용을 본인이 부담하게 한다.

진료비 지불방식은 초기에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사용하되, 중장기 적으로 가입자 연령이 보정된 정액제로 개편한다. 행위별 수가제를 적용 할 때에는 목표의료비65)를 정하고 이를 충족한 기관에게는 추가 인센티 브를 제공하며, 의료의 질, 환자만족도, 환자 안전 등의 기준을 달성한 기 관에는 별도의 보상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용자의 네트워크 선택권을 돕기 위해 각 네트워크는 정부 또는 보험자가 요청하

65) 소득변화, 고령화율 변화, 보장성 변화, 물가의 변화 등을 감안하여 SGR (Sustainable Growth Rate)방식으로 3년마다 조정하되 중간에는 합의된 방식에 의해 자동 조정(선

65) 소득변화, 고령화율 변화, 보장성 변화, 물가의 변화 등을 감안하여 SGR (Sustainable Growth Rate)방식으로 3년마다 조정하되 중간에는 합의된 방식에 의해 자동 조정(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