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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준화: 제도인가, 정책인가?

가. 무엇을 지칭하는가?

제Ⅲ장에서 ‘평준화’의 도입경위와 변천내력을 자세히 살펴보겠지 만, ‘평준화’가 이 땅에 도입되어 지금까지 많은 학생들의 학교선택 권을 비롯한 많은 기본권을 박탈하고 아울러 온갖 폐해를 드러냈지 만, 정작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는가에 대한 충분한 고려와 논의가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평준화는 무엇을 지칭하는가? 애석하게도

‘평준화’라는 말은 다의적로 사용되어 무엇을 지칭하는지 그리 명백 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학군별 배정제도’만을 지칭하는지, 고교입학전형방식을 포함하여 고등학교 교육과정, 학교운영, 재정・

시설의 균등화를 의미하는지, 그도 아니면 좌파들이 지나치게 강조 하는 평등실현을 위한 제도로 파악되는지 불분명하다. 어떤 경우에 는 이들을 모두 포함하여 매우 애매하고 모호하게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준화’가 지칭하는 다양한 의미들이 모두 입 학전형에서부터 제반 교육문제를 국가가 규정하고 통제한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현재까지도 이른바 국가통제의 망령에서 한 치도 헤어 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평준화’가 당면하고 있는 처지이다. 최근 교육당국은 단위학교장 책임 아래 교육과정 결정권의 20%와 일부 교원인사권을 행사하도록 하겠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조 치는 모두 이른바 ‘평준화’를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 조치 는 비유컨대 노예제의 폐해를 직시하지 않고 이를 유지하면서, 노

예들에게 휴가기간이나 노예의 노역여건을 개선하겠다는 발상과 비 슷하다. 그러나 평준화가 폐지되면, 자연히 단위학교장의 책임 아 래 책무성이 증가하게 된다. 폐지할 것은 방기(放棄)하면서 마치 시 혜(施惠)를 베푸는 것처럼 이루어진 조치는 그야말로 ‘짝퉁자율’에 불과하다.31)

국가통제를 자초하는 평준화정책을 합리화할 때 좌파들이 잘 도 용하는 명분이 평등 실현이다. 사실 ‘평등’을 가지고 문제를 규정하 면 모든 문제가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먹혀 들어간다.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깔려 있는 정서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다.’는 그릇된 평등주의가 평준화정책의 명분으로 인하여 쉽게 먹혀 들어간다. 그러나 이 정서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선택’을 근본적 으로 부정하는 크나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즉 학교선택, 학생선발 권 등 각종 선택권을 반대하는 기제로 사용된다. 이 문제는 제Ⅳ장 제1절과 제Ⅴ장 제1절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사실 평준화를 지지하는 좌파들의 논거는 ‘평등’을 화두로 내세우 면서 평준화정책의 폐해를 합리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평등의 미명 아래 학교선택권과 학생선발권을 ‘평준화’에 끼워 넣으면, 평등의 의 미 자체가 훼손될 뿐만 아니라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적 자유 권도 훼손한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평준화 지역에서 계층 간의 불평등을 심화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실정이다.32)

31) 이와 유사한 방안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자율’이라는 명분으로 양산되고 있다. 그 내용에서 실질적인 자율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서 ‘짝퉁자율’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율’의 원천적인 봉쇄를 하는 ‘평준화정책’의 존폐를 포함하여 근원적인 처방이 빠진 채 대증요법에만 매달리고 있는 셈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제Ⅴ장 제 5절 참조 .

32) 이를 입증하는 실증 자료는 많다. 예컨대, 서울의 자치구별 서울대학교 신입생 수 가 오차 범위를 한참 벗어나 회복할 수 없는 편차를 벌리는 것은 이른바 ‘평준화’

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하면, ‘평준화’는 단순한 정책의 차원을 넘 어서 하나의 제도인 듯하다. 여기서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이 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고, ‘제도’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관습, 관행 등에 의하여 고착된 것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좌파정부의 부동산을 포함한 재산세 중과세는 조세정책이고, 일부일처제는 결혼제도이다.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 개선할 수 있지만, 제도는 정권 교체와 같은 정치적인 이벤트보다는 문화적 인식이나 패러다임 변혁 등에 의하 여 좌우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평준화’는 이미 하나의 교육정 책이 아니라 ‘제도’로 정착된 듯하다. 평준화 도입 당시부터 이에 관 한 논의가 있는 것을 보면 ‘평준화’를 ‘정책’이 아니라 하나의 ‘제도’ 로 고착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던 듯하다.

平準化라는 말이 敎育政策의 전환에 따라서 敎育行政的 側面에 서 주로 사용되었음은 우연한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본래 敎育 政策의 가장 핵심적이며 中樞的인 指導理念의 하나이며 敎育行 政의 基本槪念에 속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正當한 인식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극적인 상황 속에서 크게 부각되어 새삼스럽게 강조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는 그런 정책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잠재적으로만 존재 하였거나 인식이 미흡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33)

위의 인용문에서 우리는 ‘평준화’가 하나의 정책임에는 틀림이 없 지만, 중추적인 이념인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를 능가하는’ 정 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정책은 하나의 정책으로 인식될 것이 아니라 교육이념 구현을 위한 구심적인 제도로 인식되

가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불평등조차 해소하지 못함을 입증한다.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제 Ⅳ장 제2절 참조.

33) 김종철 (1973) , 앞의 글, p.10.

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평준화의 취지를 보면 더욱 분 명하게 드러난다.

평준화의 원래 도입취지는, 제Ⅲ장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다음 의 네 가지를 ‘평준화’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평준화’는 ‘똑같게 한 다’는 의미이다. 즉 ① 학생의 평준화, ② 시설의 평준화, ③ 재정의 평준화, ④ 교원의 평준화를 통하여 이 네 가지를 모두 똑같게 만든 다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취지가 ‘평준화정책’을 하나의 ‘제도’로서 인식하게 하 여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학생의 평준화’는 무작위 추첨에 의해 학생들의 학교배정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개성, 능력, 취향, 장래희망이 모두 제각기 다 른 학생들을 학업성적 순에 따라 학교에 무작위로 배정하는 것을 가 리킨다. 전교조 등의 좌파가 경계해야 한다고 하면서 즐겨 쓰는 말 인 ‘서열화’가 여기서 나타난다. 즉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서열화해 놓고 이 순서에 따라 골고루 각 학교에 배분하는 ‘배급제’이다. 문제 는 재화를 배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배급하는 데에 그 심각성 이 있다.

둘째, 각 학교의 시설과 재정을 평준화한다는 것은 곧 국가 개입을 불러온다. 이어 살펴보겠지만, 복잡계로 설명해야 할 대상을 단순계 로 처방(규제와 간섭, 국가 통제)을 내리면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고, 이 에 대한 또 다른 규제를 불러온다. 특히 건학이념이나 재단의 재산 상태나 시설이 같을 수가 없는 데 이를 동일하게 만들겠다고 한 것이 평준화이다. 이로 인하여 사학에 지급하는 보조금 문제가 발생하고 사학은 본래의 건학 취지와는 달리 더욱 자생력을 잃어간다.

셋째, 교원 인사의 평준화도 어불성설이고, 현실성도 없다. 제Ⅲ장

제3절의 <표 Ⅲ-8>은 이를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미미하게나마 아 주 부실한 사학의 경우, 공립학교 교원을 ‘강제’ 배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교원의 사기, 의욕, 신분 등의 제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상의 문제들이 안고 있는 공통점은 바로 ‘평등’이라는 미명 아래 동일시할 수 없는 준거를 무시하고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동일시’라 는 말은 물리적으로 외양적으로 동일하게(똑같 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지닌 교육주체와 대상을 ‘평등’이라는 명분 아래 일률적으 로 규제하는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는 꼴이다. 이와 같은 오류를 범 하게 되는 것은 ‘제도’로서 정착될 수 없는 ‘정책’이 마치 누구나가 지향해야 할 제도로 간주하고 강행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네 가지의 평준화는 당시 자의적으로 설정된 것은 아니다. 나 름대로 강력한 이론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는바, 이를 소개하면 다음 과 같다.

量的 指標와 質的 指標를 구분할 수 있다. 학생 수, 교원 수, 학 급 수, 학교 수, 재정규모 등 量的인 것이 있는가 하면 학업성취 도, 교육과정의 내용과 교수방법, 교육운영의 효율성 등 質的인 것이 있으며 量과 質의 兩面에 걸쳐서 어떠한 기준을 세우고 그 것을 달성하려고 노력하는데 量的 및 質的 指標로 볼 수 있는 反面에 敎師와 學生의 비율이나 學生의 中途탈락률은 그것이 量 的으로 표시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質的 指標로 간주되 어야 한다.34)

명목상으로 보면 ‘평준화’는 평등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제 측 면의 것을 동일하게 하려는 시도이고, 실질적으로는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에 있어서 ‘준거’를 만들어 놓고 이를 강구하기 위한 수

34) 김종철 (1973) , 앞의 글, p.11.

단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평준화’라는 하나의 정책을 마련하기 위하 여 제도가 동원되는 역리(逆理)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따라서 ‘평준 화정책’은 하나의 정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포괄적인 교육요인을 통제하는 ‘제도 이상의 것’이 되어 버렸다. 평등의 이념 과 민주화라는 명분 아래 학생 수, 교원 수, 학급 수, 학교 수, 재정 규모의 양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학업성취도, 교육과정의 내용과 교 수방법, 교육운영의 효율성 등 질적인 요인들을 ‘평준화’한다는 시도 가 합리화되었으며, 이는 다시 국가통제로 이어지면서 학교선택권과 학생선발권과 같은 기본권의 침해로 이어진다.

나. 정책지향

‘평준화’라는 말의 비적합성에도 불구하고, 앞서 우리가 사용하는

‘평준화’가 ‘불균등과 격차’와 ‘성취수단의 도달’에 염두를 둔 정책수 단임을 확인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에서 하나의 정책을 넘 어서서 ‘제도’에 가깝게 인식되는 ‘평준화’ 정책이 지향하는 바는 무 엇인가? 평준화의 정책지향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앞서 지적했듯이, ‘평준화’는 그 지향점이 하나의 정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선발제도와 학교제도의 고착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달리 말하자면 ‘평준화’는 선발제도와 학교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려는 일종의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다는 점이다. 이는 평준화 도입 당시의 논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불균등과 격차’와 ‘성취수단의 도달’을 위한 교육개혁은 선발제도 와 학교제도의 개혁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이를 실현하는 구체화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