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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제한과 박탈

문서에서 고혹 평준화 해부 蠱惑 平準化 解剖 (페이지 168-189)

가. 평준화정책과 학교선택

앞서 제Ⅱ장에서 ‘평준화’의 개념을 검토하면서 평준화정책 도입 은 이론적으로 ‘종합학교’안과 선발시험의 기능을 원천적으로 바꾸 는 일임을 확인한 바 있다. 이것이 평준화정책이 학교선택권을 근원 적으로 제한하고 박탈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1973년 평준화정책의 도입을 추진할 당시 이에 관한 이론적인 논 의가 있어 왔다. 그 중 하나가 선발시험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 키는 것이다. 당시에 나온 이에 관한 주장을 들어보자.

① 낯선 學校, 낯선 生徒 그리고 낯선 環境에서는 一回試驗으로 實力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② 試驗에 중점을 두는 學級이 편성되고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 가 實力인지 또는 準備인지 判定하기 어렵다.

③ 心理테스트의 이용도 중요하지만 현재로서는 全國的으로 信 賴할 수 없다.

④ 內申書도 중요하지만 초등교육의 성적이 中等敎育 이후의 성 적을 표시한다고 볼 수 없다.

⑤ 才能은 복잡하고 才能의 方向에도 差가 있기 때문에 現行制 度로서는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108)

위의 주장은 선발고사의 부정적인 측면을 단적으로 부각시킨 내

108) 이규환, 「선발제도와 학교제도의 개혁」, 󰡔교육학연구󰡕}제11권 제2호, 한국교육학 회 , 1973, p.19.

용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 특히 학교교육이 수행하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선발기능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위에 소개된 내용 중에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발의 기능을 전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교육이 본래 수행하는 기능과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기본권 자 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선발의 기능을 부정하면 그것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놓고 선 택할 수 있는 교육적 기능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다양 한 교육프로그램은 한 학교 안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각기 특색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각기 제공하는 다양한 형태의 학교를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 양한 형태의 학교는 전통적으로 복선형 학제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복선형 학제가 특히 교육사회학자들에 의하여 비판을 받는 이유는 위의 인용문에 제시된 사유 외에도 계층 간 사회경제적 차이가 바로 학교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이 들이 제시하는 모형이 ‘종합학교’ 안이다. 우리와 같은 단선형 학제 에서는 이 학교가 그리 새로울 것도 생소할 것도 없지만, 전통적으 로 복선형 학제를 견지해 온 국가에서 이 학교는 매우 ‘혁신적인’ 제 도이다. 이들이 꼽는 종합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어려서 한 두 번의 선발을 가지고 장래의 진로를 결정해 버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精神勞動에 장차 종사하게 될 사람들을 주로 교육하는 人文系高 等學校와 身體 및 技能的 勞動에 종사하게 될 사람들을 교육하 는 實業系高等學校를 통합하여 綜合高等學校(Comprehensive High School)體制를 확립하는 것은 中等敎育의 民主的 改革을 위해서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綜合制學校내에서는 各敎育課程系列 간의 유기적 연관을 증대시키고 共同學習의 시간을 통해서 共同 的인 社會意識을 조장시킬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일반 교육과 기술노동교육을 결합시켜 人間敎育의 理念이 全面的으로 발달 된 人間形成의 가능성을 증대시킬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綜合 制에서는 학생의 能力과 適性 그리고 進路를 장시일을 두고 실 제의 敎育의 過程에서 觀察하고 지도하기 때문에 個性에 따라 교육한다는 心理學的 要求에도 순응하는 것이 되고 또 積極的 選拔(positive Auslese)의 機能을 발휘하게 된다.109)

즉 종합학교제를 도입하여 선발에 따른 진로의 조기결정을 막자 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합학교제도의 도입과 선발제도의 ‘개혁’은 상 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는 제Ⅱ장에서 평준화의 개념을 검토하 면서, 평준화정책이 도입되면서 이 두 가지 요인이 핵심적인 내용으 로 포함된다는 것을 이미 확인한 바 있다.

문제는 선발 제도의 ‘개혁’에서 드러난다. 위의 인용문에 지적된 선발제도의 개혁은 종합학교를 만들어서 ‘조기선발’을 막자는 것이 다. 인용문의 필자는 그것을 ‘적극적 선발’이라 칭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선발의 성격상 명명이 잘못된 듯하다. 그의 설명을 통하여 이 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選拔에는 대충 둘의 방식, 즉 消極的 選拔(negative Auslese)과 積 極的 選拔이 있다. 소극적 선발이란 多種의 學校를 마련해 놓고 주로 父母의 자유로운 선택에 기초해서 入學試驗이라는 形式으 로 단시일 내에 편의적으로 選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러한 선발방식은 敎育機會의 平等 및 擴大에 큰 문제점을 던지 게 된다.110)

109) 이규환(1973), 앞의 글, p.21.

110) 이규환(1973), 앞의 글, p.21.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학부모와 학생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학교 선택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의 선발을 ‘소극적 선발’이라고 하고, ‘적 극적 선발’은 이와는 반대로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 의사를 가능 한 한 유예시켜서 조기선발을 ‘적극적으로’ 막는 방식을 지칭하는 듯 하다. 적극적 선발을 해야 한다는 그의 말을 더 살펴보자.

進路決定을 장시일에 걸쳐서 신중히 하기 위해서 설치된 프랑 스의 觀察課程과 西獨의 指導課程(orietierungsstufe)은 積極的 選拔 方式의 좋은 例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흩어진 각종 중등학교 를 통합하여 하나의 綜合學校를 만들려는 民主國家의 움직임도 역시 청소년들의 適性과 能力에 따른 敎育을 하면서 高等敎育機 關에의 進學을 위한 選拔을 장시일에 걸쳐 신중하게 하려는 敎 育學的 意圖를 표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111)

그가 강조하는 ‘적극적 선발’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선택’ 과 ‘선발’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적극적 선발’의 주 체가 ‘학교’가 아니라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1970년대 당시 서유럽에서 유행했던 국가주도의 종합학교를 중심으 로 한 선발 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자유로운 의 사에 따른 ‘적극적인 선택’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선발이 ‘적극적인 선발’인 셈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는 여러 가지 수긍하기 어려운 점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선발 방식이 ‘민주적 방식’이라고 규정 하는 것이다. 대개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는 국가의 개입이 있으면 그것은 ‘민주’라는 수식어보다는 ‘전제(專制)’ 또는 ‘독점’이라는 수식 어가 더 적합하다. 그러나 국가 개입에 따른 선발 방식을 ‘적극적’이

111) 이규환(1973), 앞의 글, p.22.

라는 그릇된 수식어를 붙여서 이를 ‘민주적’이니 ‘민주국가’ 운운하는 것은 타당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설득력도 떨어진다.

우리는 이미 제Ⅱ장에서 평준화정책이 전제적인 국가에서나 통할 수 있는 정책이고, 그것이 ‘사회공학적 통제’에 입각한 정책이라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적극적 선택’에 입각한 평준화정책이 학생과 학부모의 자유로운 선택을 제한하고 국가개입을 찬양한다는 것은 그의 주장에 명백히 드러나 있다. 모르긴 해도 ‘계급사회’를 운운하 는 것에 비추어 평준화정책이 계급사회를 타파한다고 하는 좌파 혁 명의 수단으로 보는 듯하다.

子女의 進路에 대한 父母의 私的 選擇의 自由를 어느 정도 제한 하고 進路를 위한 選拔을 社會化할 필요가 있다. 家庭의 社會 經濟的 地位에서 오는 영향력을 가능한 한 排除하는 兒童中心의 選拔이 한국과 같은 階級社會에서는 절실히 요망된다.112)

‘적극적 선발’과 종합학교를 토대로 하는 평준화를 지지하는 그의 주장은 선택권의 근원적인 박탈・제한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것이 ‘민주화’ 또는 ‘민주국가’의 면모를 갖추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처럼 그릇된 주장을 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이러한 선택권을 박 탈하고 국가가 적극 개입하는 선발제도를 택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로 ‘한국과 같은 계급사회’에 절실히 요청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970년대 당시 한국 사회가 유신 체제 아래서 여러 가지 기본권이 제한된 점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지만, 좌파 시각의 계급사회라는 데에 동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한국사회가 계급사 회라고 한다면, 이를 지양하고 가야 할 사회는 공산 혁명을 거친 사

112) 이규환(1973), 앞의 글, p.22.

회를 말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의 ‘사적 선택’을 제한하는 선발 방식이 어떻게 ‘아동중심’인지도 납득하기 어렵다. 간 혹 ‘아동중심’ 사조가 좌파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수용되는 경우는 더 러 있지만, 사적인 선택을 제한하는 일이 아동중심이라는 주장은 타 당한 주장이 아니다.

제Ⅱ장에서 평준화정책이 종합학교와 선발방식의 ‘개혁’이라는 내 용을 핵심으로 한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듯이, 이상의 내용은 평준 화정책이 결국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근원적으로 박탈・제 한한다는 것을 명백히 드러낸다. 즉 평준화정책의 핵심에는 학교선 택권의 박탈・제한이라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평준화정책이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과 학교의 학생선발권 을 제한・박탈했다는 점을 심층적으로 검토하려면, 이 문제는 근본적 으로 두 가지 차원에서 조명해야 한다. 하나는 법적 차원에서 위헌 이라는 점이다. 평준화는 추첨에 의한 학교 배정이나 근거리 학교 배정을 함으로써 개인의 선택권을 박탈했다는 점에서 위헌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다른 하나는 평준화지역의 경우 거주지 제약 이 따른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토대로 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파생된다. 이를테면 추첨에 의한 강제 배정은 사립학교의 자율성 문 제를 야기하고, 이는 다시 평준화 대상에 사립학교를 포함하는 문제 는 재정결함보조금 지급 문제를 야기한다.

근거리 배정으로 인하여 평등의 이념을 실현해야 할 공립학교조 차 불평등을 조장한다면, 그것은 평준화가 그 표층논리인 평등실현 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불평등을 조장한다고 밖에 볼 수 없 다. 이 문제는 이어지는 제2절에서 검토하기로 한다.

우리는 제Ⅲ장 제6절에서 평준화를 일본의 ‘학구제’와 ‘학교군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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