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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공학적 계획

‘불균등과 격차’와 ‘성취수단의 도달’이라는 교육정책으로서 의도 를 지닌 ‘평준화’가 여러 가지 폐해를 낳고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평준화’가 ‘사회공학적 계획(social engineering project)’ 을 도모하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먼저 ‘사회공학’이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자.

‘사회공학’이란 ‘우리가 의식적으로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44)이다. 일견 이 말은 지극히 당연한 말로 들린다. 하지만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기존의 제도와 전통에 의하여 형성된 것들을 인간의 이성이 보다 나은 것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구성주 의적 합리주의’가 전제되어 있다. 더욱이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는 사 회공학을 통하여 그 오류와 심각한 폐해를 드러낸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면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합리주의와 어떤 관련이 있으며 어떻게 다른가? 구성주의적 합리주 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합리 주의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구성주의적 합리주의가 야기하는 결 과는 우리가 합리주의를 토대로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45)

44) F. A. Hayek, The Fatal Conceit: Errors of Socialism, 1988. 우리말 번역서로는 신중섭 역, 󰡔치명적 자만󰡕, 서울: 자유 기업원, 1996, p.108.

45) F. A. Hayek, 1970, The Errors of Constructivism, in: his, N ew Studies in Philosophy, Politics, Econom ics and the History of Idea s, Chicago: The Universit y of Chica go Press, 1978, pp.5-6.

첫째, 인간 이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다. 특히 인간의 이성은 오 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절대적 믿음을 가져온다.

둘째, 이성에 입각하여 사회를 의도된 목적에 따라 구성할 수 있다. 셋째, 이성을 가진 개인들이 다수결 원칙에 입각하여 ‘다수의 무 한권력(the unlimited power of the majority)’의 합리화를 한다.

이러한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는 하나의 사상 체제에 의하여 형성 된 것이 아니다. 멀리는 고대 희랍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 상에 기반을 두기도 하며, 가깝게는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에서 그 기 원을 찾을 수 있다.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는 도덕적 행위 규칙을 이 성의 한 부분으로 보는 데카르트의 믿음46)과 ‘사회는 인간의 의도된 목적에 따라 구성된 실체’라는 루소의 믿음47) 등이 결합된 사상이 다. 여기에다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는 19세기 이후의 실증주의의 영 향을 받는다. 실증주의의 영향은 다름이 아니라 ‘인간은 원인-결과 (cause and effect)의 연결고리 속에서 행동이 규율된다고 믿는’ 실증주 의의 단순한 도식에 의존한다는 것이다.48) 결과적으로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는 인간은 이성에 의하여 ‘미래의 발전을 예측하고 미래를 구체화할 수 있으며 … 인류의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49)는 믿음을 갖게 하였다. 이러한 믿음에 근거하여 자연에 대한 전문적 탐구로 인하여 자연학이 ‘자연과학’으로 대치되었듯이, “사회학은 법, 언어, 시장과 같은 성장한 구조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기성학문이 획득한 지식을 무시하고 최고의 자리에 도달하였다”50) 한마디로 구성주의

46) 하이에 크, 󰡔치명적 자만󰡕, p.104.

47) Ha yek, 1970, p.5.

48) Ha yek, 1970, pp.6-7.

49) 하이에 크, 󰡔치명적 자만󰡕, pp.107-108.

50) 하이에 크, 󰡔치명적 자만󰡕, p.108.

적 합리주의는 합리주의의 이성에 대한 지나친 믿음으로 인하여 우 리들을 지적인 오만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그 ‘지적인 오만’은 바로

‘우리가 의식적으로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 즉 사회공학적 계획의 시도로 이어진다.

그러면 사회공학적 계획이나 시도는 왜 문제가 되는가? 인간 이성 에 대한 과대평가는 인간이 이성에 따라 고의적인 설계와 계획이 그 대로 실현가능하고, 자연과학을 패러디하여 인간사 제 문제를 사회 과학적 확신에 따라 전통적으로 내려온 관습, 관행, 도덕 등을 비난 과 폐기의 대상으로 삼은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이성의 남용과 오 용이 일삼아지고,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사회주의적 맥심

(maxim)이 등장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서 시도된 사회공학적 계획

은 역사적으로 그대로 성사되지도 않았으며, 국가통제와 간섭, 전체 주의라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였다.

마르크스를 위시하여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사상과 이론 이 과학적이라고 항변하지만, 그들의 사상과 이론은 합리적이거나 과 학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자도 아니다.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와 사회주의를 전달한 사람은 이러한 유명 한 과학자가 아니다. 나는 … 그들을 전문적인 ‘이념의 중고중 개상’이라고 불렀다. … 교사, 언론인과 ‘미디어 대표자’가 여기 에 속한다.51)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이를테면 ‘짝퉁과학자’라 는 말이다. 과학이 세운 합리주의 미명 아래 이들은 그릇된 좌파사 상을 전파하였다. 여기에는 중앙통제에 의한 분배, 필요에 따른 분

51) 하이에 크, 󰡔치명적 자만󰡕, pp.114-115.

배, 전통적 가치를 부정하는 가치상대주의, 자유를 무분별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의식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합리주의의 동원 등이 해 당한다. 특히 자유를 변덕스러운 욕망으로 폄하하여 변덕스러운 개 인을 통제할 ‘전체적 기구’가 필요하다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불러들 였다. 이는 독일의 관념론의 영향을 받은 이른바 관념론적 자유주의 영향이다. 이러한 자유에 대한 악의적인 오해는 “의식적 통제라는 합리주의적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 ‘체계’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이 느끼는 불행에 관한 자기충족적 예언”52)으로 변질되어 사람들을 해 방시켜야 할 존재로 파악하게 한다. 관념론자들은 ‘개인의 자유’ 대 신에 ‘전체의 통제’를 합리화하는 전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와 같이 ‘개인의 자유’ 대신에 대두된 ‘전체의 통제’는 거대한 사 회공학적 계획에 따른 통제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평준화’가 ‘사회공 학적 계획’의 일환이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평준화’의 특징과 정책지향점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평형’과 ‘기준’(=‘평준화 ’)에 의한 국가통제

∙‘불균등과 격차’ 해소와 ‘성취수단의 도달’

∙사회의 불평등을 방임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균등’을 명분으 로 국가 개입

∙학생선발권 박탈: 단위학교의 자율성 말살

∙학교선택권 박탈: 기본권적 인권의 제한 또는 박탈

∙재정 및 시설의 평준화: 교육행・재정의 국가 통제

∙교수-학습 조건의 균등화를 통한 독창성 저해

∙계층 간, 계열 간의 격차 해소 명분으로 국가 개입

∙기준점의 설정과 수월성을 자의적(恣意的)으로 예단함

52) 하이에 크, 󰡔치명적 자만󰡕, p.129.

위에 열거한 항목들은 모두 앞에서 언급한 것으로서, 평준화 도입 당시부터 평준화정책을 지지하기 위하여 줄기차게 개진되어 온 내 용들이다. 이 중 어느 하나 국가의 개입과 통제를 요구하지 않는 것 이 없다. ‘평준화’를 ‘사회공학적 계획’의 도모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 에 있다. 국가의 통제와 개입을 불러오는 ‘사회공학적 계획’이 사회 주의 발상이기 때문에, 흔히 평준화정책을 사회주의적 통제라고 하 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평준화 도입 당시 평준화를 지지하는 논거 중에서 이른바 평준화 의 ‘방향’을 제시한 내용에서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 1968年 이래 平準化 定策의 學校級別 重點이 初等敎育에서 中等敎育으로 옮아져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平等化가 주로 中等敎育분야에서의 學校差의 解消라는 뜻으로 해석된 것은 최 근에 있어서 이와 같은 中等敎育 中心의 平準化戰略이 社會的으 로 널리 인식된 데 그 연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2) 1968年 이래의 平準化政策은 入試制度의 改革에 의하여 學 生들의 平準化를 制度的으로 一擧에 성취한 다음 보다 切迫한 상황 속에서 學校 施設 財政面의 平準化를 촉진시키는 방법을 택하였으며 종전에 비하여 보다 단시일 안에 급격하게 목표를 성취하고자 한 것이 특징을 이루었다고 하겠다. 平準化가 주로 1968年 이후의 시책으로서만 인식되고 있는 또 하나의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3) 平準化政策은 公私立을 막론하고 모든 學校로 하여금 最低 適正基準(標準)의 敎育條件을 完備하게 하는 데 力點을 두어 왔 으며 따라서 政府와 學父兄의 財政負擔努力을 조화시키고 私立 의 경우 學校經營 當局과 文敎行政 當局의 努力을 토대로 정책 을 추진하는 것이 不可避한 전제가 되었다. 이와 같이 財政負擔 에 있어서 公私間의 努力의 統合이 필요하게 되었음은 곧 私立 學校에 대한 財政補助를 의미하게 된다.

(4) 平準化政策의 效率的 遂行을 위하여는 文敎行政當局에 의한 計劃과 評價活動을 강화하는 것이 不可避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또한 基準의 성취를 보장하기 위한 統制의 강화도 수반하였다.

(5) 이제까지 平準化施策의 重點이 敎育에 대한 投入要因의 量的 指標를 달성하는 데 치중하였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産出要因에 관한 質的 指標를 성취하는데 보다 더 力點을 두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의 産出要因은 결국 投入過程 및 環 境要因들의 相互 依存關係에서 유래된 것이며 그것만이 따로 있 는 것이 아닌 만큼 다른 要因의 平準化가 倂行되어야 함은 물론 이다.53)

위의 인용문에서 평준화가 국가의 통제, 즉 ‘사회공학적 계획’에 따른 통제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1)항은 격차 해소를 위

한 조치, (2)와 (3)항은 이른바 ‘평준화’를 위한 재정 지원을 강조하

고 있다. 특히 (4)항의 내용은 국가의 계획과 통제가 필수적임을 명 시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5)항은 평준화가 소기의 성과를 이루도록 다방면에서 계획과 통제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국가의 통제를 합리 화하고 있다.

더욱이 교육에 대한 국가통제 가운데서 수월성을 자의적으로 예 단하는 일은 교육적 가치를 국가가 독점하는 결과를 자아낸다. 그것 은 가치의 다양화를 인정해야 할 교육에서 공교육의 미명 아래 국가 가 가치를 독점하는 가치일원주의(value-monism)로 빠지게 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독점 여부는 경쟁 주체의 수(數)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입이 열려있는가 여부, 즉 진입장벽 여부로 결정된 다. ‘평준화’가 고교입학전형방식을 포함하여 고등학교 교육과정, 학 교운영, 재정・시설의 균등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른바 ‘균등화’를

53) 김종철 (1973) , 앞의 글, p.13.

통하여 교육과정을 포함하는 교육프로그램, 학교의 제반 운영 여건, 재정・시설의 기준 등을 동일하게 규제하는 것이라면, ‘평준화’는 바 로 국가독점에 의하여 운영되는 정책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더욱이 평준화는 학생선발권 및 학교선택권의 박탈은 특정분야의 교육이념 과 교육내용을 가르칠 학교운영에 자율적으로 진입할 수 없는 장벽 을 만들어버려 국가독점의 상태를 야기한다. 평준화가 국가독점을 야기한다는 사실은 ‘독점’ 그 자체의 폐해도 크지만, 국가독점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획일화도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연유로 평준화는 국가독점을 조장하는 ‘사회공학적 통제’에 의하여 추진되는 정책이 라고 하는 것이다.

… 平準化政策을 보다 강력히 추진하기 위하여는 計劃하는 敎育 의 體制가 강화될 것이며 그것은 合理的 統制를 수반하게 될 것 이다. 그것은 또한 財政面에서의 公費負擔의 강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될 것이다.54)

위의 글에서 ‘평준화’는 그 시작에서부터 국가재정에 의한 강력한

‘사회공학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정부의 개입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일이 일어날 수밖 에 없다.’55) 무슨 말인가 하면 기회의 평등이 진정한 평등이 아니라 는 빌미로 결과의 평등을 유도하고 이를 위하여 국가권력을 동원한 개입과 통제, 그리고 교정을 자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국가의 재정부담까지 ‘필연적으로 수반’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54) 김종철 (1973) , 앞의 글, p.17.

55) 좌승희 , 󰡔신국부론󰡕, 서 울: 굿인포메이션 , 2006, p.167.